2019. 12. 27.

협찬인생 박원순의 불로소득

위대하신 박원순 대통령지망자께서는 오늘 서울시부터 부동산 국민공유제를 실시하겠다는 원대한 뜻을 천명하셨다. 그가 불로소득을 적극으로 환수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쳤을 때 나는 골이 땡 하고 울리는 것을 느꼈다. 40년의 협찬인생 외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분이 일해서 번 것외엔 다 환원해야한다니.

챨리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는 것 처럼 듣기만 해도 곰팡이 냄새 폴폴나는, 그런 공감각적 심상을 불러 일으키는 이 단어, 불로소득이라는 말은 19세기 경제철학자 헨리 조지가 도입한 개념이라고 한다. 그는 토지와 건물을 통한 지대 뿐 아니라, 그 외에도 이자나 배당, 중개수수료 등 노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모든 소득을 묶어 불로소득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14세에 중학교를 중퇴한 이후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채 선원이나 인쇄공으로 일했던, 정말 밑바닥부터 올라온 블루칼라였던 터라 땀흘려 일하는 육체노동을 중점에 두고 자신의 이론을 만들었다.

자 이제 헨리의 눈으로 박원순의 생애를 살펴보자. 그는 1978년부터 법원 사무관으로 일하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3년에 개업변호사가 되었지만 86년 이후로는 시민운동에 매진한다. 네이버에서 찾아본 그의 이력은 한 페이지가 꽉 차도록 다양했지만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없었다. 펴엉생 땀 흘려본 일이라고는 여름에 삼양동 옥탑방에서 쇼할때 뿐이었을 그를 헨리 조지가 보면 뭐라고 할까? 곯을대로 곯은 관상과는 정 반대로 뽀송뽀송한 그의 손을 살펴보곤 박시장의 뒷통수를 세게 후려쳤을 것이다.

평생 남의 돈으로 놀고먹는, 그런 모두가 꿈꾸는 삶을 살아온 우리 박원순 시장. 그야말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꿈을 좆는 소년이나 다름없다. 오늘 그는 스스로 불로소득은 나쁜 것이고 따라서 사회에 환원해야한다고 천명하셨는데, 그 말인즉슨 일 하지 않고 먹고 자고 싸고 서울망치고 쌈박질하고 예능나가던 자신의 40년 협찬인생을 드디어 사회에 환원한다는 말 아닐까.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장기기증? 서울 의대에 카데바? 아니면 협찬 노하우를 경제에 접목, 세계에 빌붙는 협찬국가의 건설? 요새 북한 참 좋아하시던데 월북 후 평양시장이 되어 적의 수도를 망쳐놓으려고? 하. 도통 가늠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찌 기생충의 뜻을 헤아리겠는가.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한 것은, 대통령이 잘생겨서 뽑았다던 민주당 지지자들은 왜 세번이나 박원순을 뽑은 것일까.

2019. 12. 25.

좌절하는 청춘들에게 II, 부제: 라떼는 말이야

블로그에 방문자수가 늘어난 뒤로 내가 가장 많이 접했던 댓글들은 오르는 집값을 두고 좌절한 밀레니얼 세대의 불안과 좌절을 담고있었다. 나는 여전히 지난 30년 중 가장 길고 커다란 부동산 상승 사이클을 볼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당신이 무주택자라도 아직 40이 넘지 않았다면 지나치게 좌절하고 분노할 필요는 없다. 모든 시장에는 사이클이 있고 부동산 또한 예외는 아니니까. 현재 우리는 상승기에 있지만, 언제고 내릴 때도 있을 것이며 당신이 충분히 젊다면, 그때에도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을 테니 너끈히 집을 마련할 것이다.

예전의 글에서 어떻게 이런 사이클이 완성되는지를 밝혔다.(링크) 요약하면 과거에도 잘못된 주거정책으로 인해 집값이 크게 폭등하자, 정부는 돌아서서 과도한 공급으로 집을 오히려 지나치게 공급한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집값이 오랜기간 낮게 유지되어 중산층들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고. 하지만 몇몇은 이렇게 반문했다. "과거에는 고도성장기에 금리가 높아 재테크도 더 쉬웠고 집값도 싸서 사기 쉽지 않았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잘못된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아니, 집 사기는 과거가 훨씬 더 어려웠다. 옛 데이터를 뒤적거리는 것은 늙은이들의 넋두리를 듣는 것 만큼이나 고역이겠지만, 그래도 꾹 참고 한번 1980년대의 "라떼는 말이야"에 귀 기울여 보자.

한국의 소비자물가 연 상승률
7080년대의 은행이 예금자에게 10%가 넘는 이자를 주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목돈을 예금으로 모아 집을 살 수 있었을까. 아니 절대 불가능했다. 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에서 보다시피 7080년대에는 물가가 20-30%씩 오르는 일이 흔했다. 일반적으로 주택가격이 소비자물가보다 더 빠르게 오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저 시절의 집값은 해마다 더 크게 올랐을 것이다. 은행에 100만원을 넣으면 1년 뒤 110만원이 되지만 1000만원짜리 집은 1200만, 1500만원으로 뛰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일은 가능했을까. 그것이 거의 유일한 길이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은행예금금리가 10%인데 대출금리가 그보다 더 낮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친척 중 한분이 처음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을 때의 대출금리는 무려 15%였다고 한다. 아무리 부동산이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도, 두자리 수라는 살인적 고금리에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는 것이 어찌 쉬웠겠나. 뿐만 아니라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대출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느정도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만 허락된 특혜같은 것이었고, 때때론 은행 지점장에게 고맙다며 소정의 보답을 해야 하던 시대였다. 장담컨대 집을 사는 것은 7080년대가 훨씬 힘들었다.
과거에는 집이 매우 싸서 소득만으로 살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철부지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데이터는 그 반대를 보여준다. 위에서 보다시피, 소득대비 주택가격은 80년대가 말도 안되게 더 비쌌기 때문에 소득으로 집을 사는 것은 몇배나 더 힘들었다*. 당시의 이러한 분위기는 뉴스 아카이브에서 당시 신문들을 검색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80년 2월 27일 경향신문 기사
이처럼 고작 17평짜리 아파트, 현재는 찾아보기도 힘든 그런 초소형 거주지를 마련하는데 1980년의 도시근로자들은 11년 이상의 저축을 쏟아부어야 했다. 아마 당시의 물가상승률이 예금금리보다 훨씬 높았을테니 실제 도시 노동자가 집을 장만하는데엔 훨씬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게다가 위의 사례가 한국의 13개 주요도시의 평균을 구한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서울의 사정은 더욱 처참했을 것이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불과 40%를 갓 넘기던 시절이었으니까. 현재의 주택난이 아무리 지옥같아도 7080년대 보다는 더 낫지 않은가.

1990년 4월 30일 매일경제 기사
거기에 대응하는 우리 윗 세대의 반응도 똑같았다. 집값이 계속해서 폭등하자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결혼을 연기하고 부업에 나서며 돈을 모으기도, 아예 포기하기도 했다. 현재 젊은 세대들의 반응과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 그랬던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됐을까?

서울 주택가격 / 물가인덱스 = 서울 주택 실질가격
아마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 보통사람을 자처한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자 그는 수도권 주택 200만호 건설을 약속했고 그에 따라 서울의 실질주택가격은 1991년에 정점을 찍은 뒤 약 10년간 하락했다. 결혼을 미뤘던 사람들은 다시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부업을 뛰며 종잣돈을 모으던 사람들은 큰 집을, 그리고 현재를 즐기며 소비를 하던 사람들은 뒤늦게 돈을 모아 작은 집을 마련하고, 뭐 그렇게 살아갔으리라. 1980년에 20-30대였던 세대는 다소간의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10년 만에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41%에서 80%까지 뛰어오르자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부동산이 더 빠질 것이라고 생각한 소수의 무주택 투기꾼을 제외한다면.
당시에도 재산세를 늘려야 집값이 잡힌다고 주장하던 멍청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정부가 공급으로 방향을 선회한 후 일어난 일이다. 현재의 정부는 너무나 멍청하고 너무나 고집이 세서 공급을 꽉꽉 틀어막고 있지만, 민주주의 아래서 이런 멍청한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어디까지나 민주주의가 유지된다면) 1987년 민주화항쟁을 겪은 군사정권이 대중의 필요에 따라 정책의 방향을 주택공급으로 돌렸듯, 현재의 정부도 결국 굴복할 것이다. 언젠가 공급을 약속한 정부가 들어설 것이며, 그때 좌절한 청춘들은 1980년대의 신혼부부 崔모씨(31살)가 그랬듯 자기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미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울 아파트의 실질가격이 떨어지던 저 시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일 것이다. 내가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 옛날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꼰대처럼 그때가 더 힘들었어! 라고 일갈하며 당신들의 좌절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입견과는 정반대로 그대의 아버지들 역시 1970-80년대 주택 폭등기를 힘들게 견뎌낸 끝에 가까스로 내 집 하나 마련한 분들임을, 그리고 그들의 인고와 노력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싶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자 고통스러운 시절도 지나가고 지금의 그대들이 기억하듯, 어찌보면 너무나 쉽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듯이, 당신들이 겪을 오늘과 내일도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되고 사이클 역시 돌아올 것이다. 나는 희망을 파는 사람이 아니지만 뭐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밀레니얼 세대여, 너무 걱정하지 말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몇몇은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7080년대에 집을 사는 것이 더욱 쉬웠다고 강변할 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대치동이나 잠실같은 지역을 예로 드는데 그 당시의 이 지역들은 사실상 신도시나 다름없던 지역이거나, 심지어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이 아닌 곳들도 있었다. 지하철 3호선도 개통되기 전이라 그 지역에서 서울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데에 1-2시간이 걸렸는데, 지금도 출퇴근에 그정도 걸리는 교외의 아파트 가격은 월급으로도 살 수 있을 만큼 싸다.

2019. 12. 16.

12.16 부동산 대책 평가: 문은 닫혔다.

* 문은 닫혔다. 이제 무주택자가 집을 살 길은 없어졌고 비강남 사람들이 강남에 입성할 방법도 사라졌다. 앞으로 계층이동은 불가능하며 안타깝게도 이제 당신은 복덕방 앞을 지날 때마다 자신의 노동력이 저 자본재 앞에서 얼마나 하찮게 절하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욕하지 마라. 나 역시 그 중 하나 일테니까. 이제까지 집을 사지 못한 사람은 앞으로 10년 동안 집을 사지 못할 것이고, 이제부터 무택자들의 고민은 (집을) 사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전세를 택할지 월세를 택할지가 될 것이다. 아멘.

* 이번 정책은 헌법의 선을 넘나드는 것 처럼 보일만큼 과격하지만 그 본질은 단순하다. 하나, 대출을 죄고, 둘, 세금을 올리는 것. 하지만 앞서 17번의 부동산대책을 통해 이 둘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돈이란 물과 같아서 수익을 조금이라도 더 주는 쪽으로 흐르게 되어있기에, 정부가 고가주택 수요자의 대출을 죄어도 다른 곳에서 자본이 들어와 균형을 맞출 것이다. 여러 시장 중에서 부동산에서만 유동성을 퍼 내려는 것은, 한강변 반포대교에 앉아 열심히 물을 퍼내면 딱 그 부근만 수위를 낮출 수 있다고 믿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세금은 의심의 여지 없이 보유비용을 높이나 그 실질적 부담은 늘 세입자들이 지게 되어있다. 지금도 홍콩, 싱가포르, 런던, 맨하탄의 부동산은 모두 월세가 모기지 대출금리보다 비싸 월세보다 매매가 유리하지만, 세금과 매매비용 때문에 목돈 가진 부자들만이 집을 사고 월급쟁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금리보다 비싼 월세를 내야한다. 부자들은 그 월세에서 세금을 내고 나머지 수익으로 더욱 부자가 된다.

* 이번 조치로 월세와 전세가가 올라갈 것이고, 이는 또 매매가를 끌어올릴 것이다. 일부 무주택자들은 해당 조치들을 반기고 집값이 빠질 꿈에 부풀어있던데, 이는 헛된 바람으로 끝날 것이다. 멍청이들이 멍청한 짓을 더 세게 하는데 똘똘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거의 미친짓 아닌가. 만약 당신에게 아직도 집을 살 여력이 있다면 하늘과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곧장 달려가 사라.

* 오늘의 모든 조치는 주택이 부족한 상황 아래에서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그 나쁜 머리를 굴려가며 희망적인 상황을 가정해보지만, 미팅의 룰을 아무리 바꿔도 퀸카가 당신에게 먼저 대쉬할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전제 아래 오늘의 조치는 다음의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 15억 이상 고가주택 대출 전면 금지
    => 매매가 막힌 실거주자들이 전세로 들어가며 전세가를 올릴 것이고, 이는 갭투자를 유리하게 만들 것이다.
  • 9억 이상 고가주택 보유자 전세자금 대출 금지
    => 전세입자들은 월세로 전환할 것이니 월세 수익률이 올라갈 것이고, 세후 월세수익률이 은행이자보다 높으니 은행권의 예금을 빨아들일 것이다.
  • 임대등록한 주택도 2년 거주 해야 양도세 비과세
    =>임사주택이 매물로 나오는 시기가 2년 늦어짐.
  • 다주택자 종부세 중과 가중
    =>집값이 종부세보다 열배씩 오르는데 양도세까지 물어가며 파는게 바보. 세입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
  • 조정지역 내 대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한시적 배제
    => 이번 대책 중 딱 둘밖에 없는 유인책이지만, 양도세를 50%가 아닌 40%만 매긴다고 신나서 집 팔 멍청이는 없다.
* 오늘의 정책에는 뭔가 새로운 대책을 고심해 본, 그런 최소한의 성의조차 없었다. 38페이지에 달하는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보도자료는 이미 봤던 정책과 이미 들었던 대책들을 짜깁기했을 뿐이고, 그 행간에는 깊은 짜증과 원망 그리고  분노가 담겨있었다. 마치 구몬수학이 어려워 풀리지 않는다고 연필을 부수는 바보 덤보처럼, 권한은 많은데 머리는 나쁜 행정부의 무능한 수장들은 한 편의 개그콘서트의 꽁트 캐릭터들마냥 심각한 얼굴로 무게를 잡고 있었지만 그 아래 사무관들 조차 뒤에서 그들을 비웃고 있었으리라. 본인들이 그토록 부르짖던 이명박근혜의 잃어버린 9년이 부동산 상승 이야기였던가.

* 당신이 만약 40을 넘지 않았다면 다음의 글을 꼭 읽기 바란다. (링크)

2019. 11. 24.

세 수퍼스타들의 몰락

나는 다음의 세 수퍼스타가 몰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지난 5년간 가장 사랑받아온 업종/회사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다소 과감한 주장처럼 보이겠지만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진 않을 것이다.

1. 쿠팡

한국의, 아니 아시아의 아마존을 꿈꾸는 쿠팡. 하지만 그들은 영업 전략을 잘못세웠기 때문에 망할 것이다. 이마트나 롯데의 수익을 멱살잡고 끌어내릴 정도로 공격적인 할인정책을 펼쳤지만 애초에 이런 전략이 통하려면 1.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혁신적이라 경쟁자들보다 비용이 낮거나 2. 자본이나 규모가 월등하게 커서 출혈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하지만 쿠팡은 둘 다 갖추지 못했다. 오프라인 매장이 없다는 점이 그들의 유일한 장점이나 지난 3년간 그들의 손실은 매출에 비례해서 늘어난 것을 보면 쿠팡은 그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애초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본인들은 아마존이 목표라고 하지만 아마존의 수익 절반 이상은 클라우드에서 나오는데, 쿠팡은 클라우드 컴퓨팅은 제쳐놓고 되려 아마존의 사업 중 가장 돈 안되는 물류에 집중하고 있는데다 그마저도 훨씬 다양한 경로로 자본을 조달할 수 있고 모회사나 계열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마트나 롯데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 10년 뒤 쿠팡은 골드뱅크 처럼 한때를 풍미했던 회사로 기록 속에 이름만 남을 것이다. 물류계의 돈키호테여 안녕.


2. 테슬라

내가 테슬라에 탑승해 본 것은 불과 몇번 뿐이지만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 테슬라는 신박해보이는 패션을 파는 회사고, 샴페인 좌파들의 도덕적 우위로 타는 액세서리 카,  그 뿐이라는 것. 나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을 완전히 대체할거라는 데에 극히 회의적이지만(그만한 발전/축전/송전 능력을 갖춘 나라는 몇 없다. 게다가 탈원전과 전기자동차는 양립할 수 없다) 설령 그런 세상이 온다고 해도 그 미래는 테슬라의 것이 아닐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결국 규모의 경제를 반드시 갖춰야 하는 치킨게임이나 다름없는데 이제 겨우 연 50만대를 찍어내기 시작한 기업이 수십년간 매년 1000만대 가까이 생산해 온 TOP5와 단가/유통망/비용최적화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도체나 휴대폰과는 달리 기계분야에서 국가간, 기업간의 역전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 분야야 말로 경험과 데이터가 누적되어야 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동력원은 다이슨 같은 청소기 업체도 뛰어든다고 선언할(도로 취소했지만) 정도로 기술적 장벽이 낮은데 비해 나머지 파트들은 전통적인 기계공업의 영역으로 후발주자가 그렇게 쉽게 역전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투자만 때려박는다고 그게 되는 것이었다면 세계 자동차 시장의 거의 절반은 중국이 먹었어야 했다. 그 규모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GM이나 폭스바겐, 도요타지 테슬라는 아닐 것이다. 테슬라가 연 2-5만대 정도만 생산하며 셀럽들의 진보 코스프레용 세컨, 혹은 써드카로 쓰일 땐 그 조악한 품질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누적생산대수가 50만대를 넘어서며 중산층들이 일상용 차로 테슬라의 핸들을 잡자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내 생각에는 테슬라의 연간 생산량이 200만대를 넘어서면 품질관리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량으로 생산할 수록 일정한 수준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고 또 차량이 노후화 되면 진짜 품질수준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테슬라가 픽업트럭을 공개하며 방탄성능을 테스트 한답시고 창문에 쇠공을 던지자 유리가 퍽 하고 부서지는 사건이 발생하여, 당일 주가가 폭락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에 대한 내 전망이 암울한 근본적 원인은 (그닥 쓸모도 없는) 미약한 방탄성능에 있지 않다. 기존에 양산모델들의 기본적 품질관리도 안되면서 꿈같은 차를 남들과 같은 가격에 출시하겠다는 그 과대망상에 있다. 전기모터의 토크로 굴릴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그렇게 싼 방탄소재를 개발했다면 테슬라는 승용차가 아니라 방산업체로 재탄생해야 한다. 이 차가,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야심을 뒷받침하는 것이 과학인지 망상인지 5년 안에 결과가 나올 것이다. 사실 이 회사가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길은 완성차 제조를 그만두고 특허료나 걷는 것이었는데 그 마저 포기했으니 테슬라의 미래는 아예 없다.


3. 바디프랜드 (외 안마의자 생산업체들)

앞의 두 회사가 수익도 못 내면서 희망만 신나게 파는데 비해 안마의자 생산자들은 두자릿수의 영업이익률을 내고 있으니 같은 선 상에 두는 것이 어색할 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안마의자 생산업체들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안마의자의 경제성에 있다. 안마의자는 최소 2.1제곱미터, 설치 후 집안의 가구배치나 동선을 고려한다면 최대 약 5제곱미터, 약 1.5평의 면적을 잡아먹는다. 서울시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조만간 9억을 돌파할 것이고 이들의 평균 면적을 국민주택규모(84m2)라고 가정한다면 현재 안마의자를 사는 가구의 집값은 전용면적 기준으로 평당 약 3500만원이다. 따라서 안마의자를 놓으려면 약 5250만원(1.5평x3500만원)의 주택가격을 추가로 지불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를 연 3% 금리로 펀딩한다고 가정하면 매년 150만원의 기회비용이 발생하고 집값이 폭등할 수록 이 비용도 늘어날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주택수급은 소형보다 대형에서 두드러질 것인데, 안마의자를 편하게 두고 쓸 대형아파트의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안마의자의 수요도 곧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과거에도 중산층이 이런 대형 사치재를 집안에 들여놓은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90년대의 피아노였다. 당시 1기 신도시와 함께 대형평수 아파트들이 대거 공급되자 대형평수 프리미엄이 빠르게 내려가면서 집안에 피아노를 한 대쯤 들여놓는 것이 중산층의 필수조건처럼 여기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imf 이후 집값이 폭등하자 큰 면적을 차지하는 피아노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각 가정은 이 사치품을 팔아치우기 바빴다. 안마의자들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하지 않을까.

2019. 11. 23.

위기를 아기다리 고기다리 는 사람들에게

망하지 않는 나라경제를 배아프게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현금보유자들. 그들은 경제가 안좋은데 집값이 오르는게 말이되냐, 미국도 버블이다, 곧 꺼진다, 다 망할거다. 그 때가 되면 내 모아둔 이 현금다발로 자산을 마구 사들여 부자가 되겠노라며 세계와 경제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나는 이들에게 도덕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에 대해 각기 분석이 다를 수 있고 만약 그들이 맞다면 경제가 붕괴할 때 매수자로 나서 시장의 고통을 줄여줄 것이니까.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 저런 사람이 많은 것은 아마도 IMF의 기억 때문일 것이고, 또 그 경험이 얼마나 처절했고 고통스러웠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비관론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적어도 향후 5년간 우리나라 경제에 IMF같은 위기가 다시 찾아올 가능성은 없다. 위기가 오더라도 다른 방식과 형태로 올 것이다.

일례로 2008년과 2011-13년 그리고 2019년을 비교해 보자. 세 시기 모두 한국 경제가 각기 다른 이유로 위기를 겪었지만 여러 자산가격의 움직임은 IMF 때와 확연히 달랐고 심지어 서로도 달랐다. 먼저 외환위기는 국내에 달러가 모자라니 정부가 외화를 조달하기 위해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원화금리를 올려 국내 기업들이 원화를 조달하지 못해 도산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모든 자산들의 가격이 엇비슷하게폭락했다, 위기가 진정되자 곧 반등했다. 반면 2008년에는 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이었던 터라 우리나라엔 제한적 영향만을 미쳤고(어디까지나 미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특히나 외국 자본의 비중이 미미했던 주택시장은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하지만 그 이후 공급부담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1-13년에는 계속된 금융규제로 통화량 증가량이 명확히 디플레에 빠진 일본 수준으로 곤두박질치며 광복이래 처음으로 디플레를 겪느라 주식과 주택시장이 모두 저점을 찍다, 이후 경제부총리 최경환의 이름을 딴 초이노믹스로 반등했다. 2018년 말부터 우리가 현재까지는 정부가 괴상한 정책으로 기업의 생산성을 박살내면서도 통화정책과 재정확대로 성장률을 뒷받침하느라 주식과 주택이 정확하게 정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1998년 이후 겪은 모든 슬럼프는 결코 똑같지 않았다.

하지만 1998년의 악몽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는 투자자는 모든 위기가 IMF사태와 똑같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억에 의존해서 투자했던 이들은 모두 상처를 입어야 했다. 2008년에 서울 주택을 산 사람은 98년 과는 달리 금융위기가 진정되고도 거의 10년이 지나도록 손실을 겪어야 했고 2013년 혹은 2019년에 주식을 산 사람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이는 마치 심장마비를 혹독하게 겪은 환자가 심장약을 잔뜩 쌓아두고 이후 몸이 안좋을 때마다 원인과 상관없이 심장약을 복용하는 것과 같다. 독감에 걸려도, 저혈압이 와도, 간경화가 오거나 차에 치여도 심장약만 집어먹는데 효과가 있을리가 있나. 군의관이 아픈 환자에게 빨간약만 줄창 처방하듯 저들 역시 모든 위기에 한가지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수익이 왜 나지 않는지 갸우뚱하고 있다.


현금 보유자들이 기대하던 팡파레가 터지려면 자산들의 가격이 폭락하면서 금리가 급등해야한다.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이런 현상은 자주 벌어지지 않았는데 대표적인 예는 7080년대 오일쇼크로 인한 스테그플레이션이나 우리나라가 겪었던 외환위기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가 no inflation을 수년째 겪는데 스테그플레이션은 환상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고 리만의 붕괴 이래로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경제가 나빠지자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는 것을 최소 세번, 똥개훈련하듯 경험했으니 앞으로도 네번 다섯번 여섯번, 혹은 그 이상도 벌어질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최소한 liquidity crunch라는 단어는 구글트렌드 20위 안에 들지 않을 것이다. 주식이 50% 이상 폭락하고 GDP 성장률이 연간 마이너스를 찍는 것을 경기 사이클의 종료라고 본다면 우리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긴 사이클에 놓여있다. 뭐 이미 최장기록을 경신하기 직전이지만.

보병에게 최악의 지옥을 선사했던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프랑스인들은 독일인들이 쳐들어왔던 진격로에 거대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인류가 구축한 역사상 최강의 방어선은 이를 주도한 국방장관의 이름을 본 따 마지노 요새라고 불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군은 그 선을 우회해서 5주 만에 파리를 점령했고 결국 땅굴 에 짱박혀 있던 정예 80만의 프랑스 제2집단군은 아무것도 못한채 항복하고 말았다. "지난 번에 독일군이 여기로 왔으니 또 이곳으로 오겠지, 오기만 해봐라"며 중얼거리던 그들에게서 또 한번의 외환위기를 기다리는 현금 보유자들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역사는 늘 반복되지만 항상 똑같은 얼굴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전쟁 시작하자마자 한달여만에 파리가 털릴동안
지하에서 포커나 치다 항복하러 나온 80만 명의 프랑스 제2집단군

2019. 11. 22.

토착왜구 문재인

내 예상과는 달리 정부는 지소미아를 파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영업자들의 대가리가 퍽퍽 깨져 나가는데도 소주성을 밀어붙여 여러 사람 소주병을 기울이게 하던, 이 노빠꾸 상남자가 빠꾸를 하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어렵다던 사시까지 붙은 사람이 설마. 일부는 불경스럽게 그를 북한의 간첩으로 의심하지만 절대 그럴리 없다. 진짜 간첩이라면 간첩이 아닌 척을 하지 저렇게 대놓고 북한에 매달리겠는가. 불현듯 한가지 의심이 뇌리를 스친다. 혹시 문재인이 일본의 간첩은 아닐까. 놀랍게도 그렇게 가정하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이 말도 안되는 대일 대중 대북 외교도, 부동산도, 그리고 경제정책도.

먼저 대일외교를 보자. 지난 2015년 일본 정부는 위안부에 관한 과거 잘못을 시인하고 약 100억 원의 기금을 위안부치유재단에 출연하기로 했지만 당시 문재인 대표는 그 사과에 진심이 없다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만나보지도 않은 니혼진들의 혼네(진심)를 어찌 그리 잘 알까. 그랬던 그는 징용공 문제를 다룰땐 일본에게 보상금을 한국과 반반씩 출연하자고 제안했는데 그마저도 거절당했다. 일본이 100% 내는 안에는 입에 게거품을 물고 반대하고 대신 반반씩 더치페이 하자는 이 남자. 뭔가 의심스럽지 않나? 게다가 그 제안을 내놓기 바로 몇달 전, 정부는 위안부재단의 해산을 발표했는데, 그로 인해 생존해 계신 46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 생전 일본에게 배상이나 사과를 받을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2017년 당시에는 생존 피해자들은 총 47명이었지만 지난 1월 28일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46명으로 줄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평균나이 91세에 달하는 일제의 전쟁피해자들이 보상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박탈한 자, 문재인. 그는 왜 그랬을까.
욱일기를 단 일본 함정을 자국 관함식에 초청한 중국

돌이켜 보면 그의 대미 대중 대북 외교 모두 이렇게 일본에게 이로운 쪽으로 움직였다. 일본과의 무역분쟁에서 행여나 미국이 한국의 편을 들까봐 지소미아 파기라는 카드를 꺼내서 미국이 일본의 손을 들어주게 만들었고, 사드배치 이후 유유부단한 모습을 보여 중국이 한국을 실컷 때리면서 일본과 친해지도록 만들었다. (일본군은 중일전쟁에서 약 2천만 명의 중국인을 죽였는데 이 어려운 것을 문재인이 해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북한에게 삶은 소대가리라는 듣도 보도 못한 모욕을 당하면서도 한없이 퍼주는 호구를 자처하며 모든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북한을 경계하도록 만들었지 않은가. 심지어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는 격언을 거슬러, 허허 웃으면서도 김정은을 빡치게 만들어 올해만 총 12번의 북 미사일 발사를 뽑아내는 쾌거를 이뤄냈다.(투수 문재인 대통령=홈런 제조기) 그 덕에 각종 비리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일본 총리 아베의 지지율은 북한 헤드라인이 뜰 때마다 펑펑 뛰었다. 아베를 위한 폭죽을 쏘아올린 남자.

부동산을 보자. 문재인 정부는 서울을 폭등시키지 못해 안달난 것처럼 보이는데 혹시 일본처럼 버블을 만들어 한국판 잃어버린 20년을 만드려는 것이 아닐까. 도쿄의 평균 부동산 가격은 80년대 말까지 5년간 약 3배 폭등한 뒤 버블이 꺼지며 폭락했다는 점을 기억하면, 이 정부가 들어선 이후 2.5년간 강남의 부동산은 평균 약 50% 이상 뛰었으니 그는 남은 임기 동안 있는 힘껏 집값을 위로 쥐어 짜려는 것 처럼 보인다. 정책실패? 동네 중졸 복덕방 아줌마까지도 우려하는 것을 사시까지 붙으신 인권 변호사께서 어디 모르시겠는가. 떽.

경제정책을 보자. 소주성으로 요약되는 이 정부의 경제 정책은 우리 제조업의 급격한 침체를 가져왔는데 세계 무대에서 한국 제조업의 가장 큰 경쟁자가 누구인가. 바로 일본이다. 한국의 제조업이 몰락할 때 가장 크게 웃는 것은 바로 저 일본이다. 소주성을 지지하는 경제학자도 거의 없고 그 부작용이 심각하게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소주성에 대한 고집을 놓지 않았다.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의심이 가시질 않는다.

셜록 홈즈는 말했다, "모든 가능성을 소거했을 때 남는 것이 답이다. 그것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현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이 대한 다른 가능성들을 모두 소거 하고 나면 두 가지 결론만 남는다. 이 정부가 단체로 병신이거나, 아니면 간첩이거나. 돌이켜보면 아마도 우리 영민하신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조국을 조진 윤석렬 역시 문재인의 손에 임명된 사람이다. 혹시 조국이 민정수석 시절에 눈치없이 일본을 향해 죽창을 들자고 말한 것이 문재인의 눈에 거슬렸고, 그래서 그를 어거지로 법무부 장관에 앉혀 만신창이를 만든 것 아닐까. 일식을 좋아하시는 가카께서 딸까지 일본의 극우계 대학에 유학보낸 것도 모르고, 청와대 한켠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킥킥대고 있었을 조국을 떠올리니 문득 눈치없는 그가 가련하게 느껴진다. 부디 콩밥 맛있게 잡수시길.

2019. 11. 21.

문프가 다주택자들을 부유케 하리라.

그저께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토론을 보며 부동산에 관한 부분만 요약해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단 하나다, 지난 부동산 향후 예측(링크)은 그나마 보수적인 수치에 가까울 것이다. 왜냐하면 행정부 수장의 부동산에 대한 인식은 바닥부터 크게 잘못되어 있고 그 아랫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Moon: 저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자신 있다고 장담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부동산 가격을 못 잡은 것은 역대 정부가 늘 경기부양 수단으로 활용을 해왔기 때문이다.

=과거 부동산으로 경기를 부양한 것은 대부분 건설투자를 통해서이고 이는 부동산의 공급을 늘렸다. 우리 지엄하신 문재인 가카 께서는 지금 부동산의 공급을 늘리면 가격이 상승한다며, 경제학의 I-S곡선을 새로이 그리고 계신것이다. 나는 경제학에서 가격을 올릴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재화는 들어봤지만 공급을 늘렸다고 가격이 오르는 재화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무주택자들이여, 이민가라. 당신이 문재인 대통령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닌 이상.


Moon: 양도세같은 경우는 집 1개만 있으면 면세 되니까 실소유자가 주택 사는데 방해가 될거라고는 생각 하지않는다.

=현행법 상 1주택 2년 실거주자여도 9억까지만 면세고 그 이상은 모두 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서울의 중위 주택가격은 올해가 가기 전 9억을 넘어설 것이니 서울시민들의 절반은 1주택자여도 이사갈 때 양도소득세를 물어야한다. 내 계산이 맞다면 3년 뒤 서울 시민 넷중 셋은 이사하며 주택을 사고 팔때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헌데 그 말은 곧 이사하는 이들에게 벌금을 물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당신이 진짜 실거주자라면 지금 사는 집을 팔고 어디로 가든 정부는 세금을 뜯겠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서른 살이 원하는 집과 마흔의 집, 그리고 쉰 살 또 예순의 집은 또 다르다. 그런데 실거주자들에게 이사할 때 마다 돈을 걷어간다는 말이 도대체 현실성이 있는 말인가. 이 남자는 장담컨대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얼마인지 알지도 못한다. 


Moon: 공급을 늘리는거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도권 30만호 3개 신도시를 포함해서 공급 늘릴거다. 

=(신도시 기 주민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소나타의 가격을 반값으로 만들어도 람보르기니나 마세라티의 가격은 빠지지 않는다. 클럽에 김신영이 백만명이 들이닥쳐도 트와이스 9명의 인기를 누를 수 없다. 왜냐하면 애초에 둘의 수요계층은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공급이 부족한 것은 서울과 도심이지 지방이 아니지 않은가. 지방에 아파트를 때려박을테니 도심에 살지 말고 지방에 살라는 문프께서는 대통령 자리 대신 우리 동네 동장 자리를 드릴 테니 이직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Moon: 우리나라는 주택 보급률이 100%에 가깝지만 여러채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자가 주택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다주택다들 덕분에 10억짜리 집을 살돈이 없는 사람들이 전세금 6억, 혹은 월세 250만원만 내고 그 집에 살수 있다. 다주택자들이 사라지면 그들이 그 집을 10억보다 저렴하게 살수 있을 것 같나. 아니, 그들은 평생 그 지역에 살 가능성을 잃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부동산 투자, 아니 평생 투자를 멀리하라)


Moon: 기존 정책은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주택 정책이 이루어졌지만 요즘은 1인 가구 비율이 높고 높아지고 있다. 모든 가구 중에서 1인가구 비율이 높다. 4인용 기준의 주택이 필요하지 않기에 점점 낮추는 형식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지금 만들고 있는 시설들이 확대되면 청년들의 주거 문제가 해결될거라 본다. 


=1인 가구는 지난 2년간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이는 부동산 상승장에서 청약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세대분리가 활발하게 일어난 것 때문이지 실제로 1인가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1인가구를 위한 공급은 지금도 충분하다. 사람들은 혼자 외로이 잠들 오피스텔이 아닌 가정을 꾸리고 안락함을 누릴 home을 원하지 않는가. 오피스텔은 house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home은 될 수 없다. 세상물정 모르는 이 할아버지는 지금 남의 다리를 벅벅 긁고 계시다. 어서 가서 대형 사라. 벅벅.

Moon: 부동산 거품보다 공급으로 커버하고 있다. 젊은세대나 1인 가구에 대해선 빌라의 공급을 늘릴 것이다. 

=아파트 못샀다고 빌라 사면 죽는다. 


 
 

장담컨대 문재인 대통령은 자기 손으로 등기 한번 쳐본 적도 없고 현재 아파트 중위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르며 내년 서울시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이 얼마인지도 모를 것이다. 자신의 지지율을 갉아먹는 쌍두마차 중 하나가 부동산 정책 실패인데도 알아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 할아버지와 그 추종자들이 청와대에 있는 한 다주택자들의 축제는 계속될 것이다. 무주택자들이여, 당신이 정말 현명하다면 그제의 대통령 토론을 보고 이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하던 대한민국은 이게 아니었지만 어쩌겠는가. 그대들이 원하던 나라가 이럴진대.

나라에서 가장 보호해야 할 빈민층의 소득을 박살내는 정부

2019. 11. 20.

방위비 분담과 미군의 가격2

오늘 오전 3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파행으로 끝났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오전 10시에 시작된 회의는 11시를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측이 협의 없이 협상장을 떠나면서 조기에 종료되었다고 한다. 한 관계자의 발언에 따르면 지난 수십년 간 한미 앙측 방위비 협상에 나서면서 차후 협상 타임라인을 정하지 못한 적은 처음이라고 한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이것이 트럼프의 뜻이라는 갓은 쉽게 알수 있다. 먼저 협상대표 James P. DeHart의 이력을 보면(링크) 그는 어린 시절부터 외교가에서 자라 본인 역시 외교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외교관들과 대화를 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외교가의 사람들은 파격을 꺼려하고 의전을 중요시하는데, 동맹국에게 저런 모욕적인 행동으로 상대를 외통수로 몰아가는 것은 전통적인 외교가의 행동이 결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상대가 제안을 거부할 때 파격적으로 판을 깨는 행동은 트럼프의 전매특허 아닌가.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을 만났을 때도 그랬고 류허 부총리가 미중 무역회담을 위해 워싱턴에 방문했을때 그랬다. 그리고 이 두 경우 모두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딜이 되어도 좋지만 되지 않아도 우리에겐 나쁠 것이 없다." 그 비즈니스 맨의 방식은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넣어 모든 조건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태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은 병신외교를 펼치는 우리와 너무나 다르다. 그들은 트럼프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그와 딜을 할 수 없으며 그와 딜을 하지 않는다면 더 큰 고통을 겪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결국 자국의 법을 고쳐가며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북한은 미국과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평범한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미국 최고의 재벌 중 하나가 되고, 이어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를 우리나라 언론과 대중은 병신 또라이 취급하지만 그는 취임하면서 자신이 호언장담한 거의 대부분의 목표를 이뤘고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협상단에게 한국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라고 주문했다면 우리를 확실히 외통수에 넣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현 정부의 지지율은 낮아져가는데 우방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 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신경쓰던 북한마저 우리를 삶은 소대가리로 보고 있다. 우리에게 우방은 없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극동 파트너 자리를 두고 우리와 일본에게 각각 5배의 영수증을 내밀었다. 트럼프는 남한이 거부한다면 주한미군을 축소할 명분이 생겨 그대로도 좋은 것 아닌가. 이 사활에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한 수는 일본이 한국과 함께 트럼프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 뿐이지만 얍삽한 저 아베와 일본이 과연 그럴 족속들인가.

에휴 잠이나 자자.

의적 로빈훗과 종부세

부동산 폭등의 장인 김수현 명인께서 처음 종부세를 도입했던 2003년, 나는 강남에서 자란 친구들이 두 무리로 나뉘는 것을 보았다. 이후 헌재에서 위헌을 받았듯 종부세의 부과기준은 상당히 불합리했는데 따라서 이에 반발하는 무리들이 있었고 술자리서 그에 맞서 "야 우리 집도 종부세 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자애로운 노무현 각하께서는 강남 전역에 널리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셨고(링크) 불과 3년 만에 종부세를 내보는게 소원이라던 친구들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것도 아주 빡세게.

소녀시대가 흰색 유니폼을 입고 소원을 말해보라며 긴 다리를 휘젓기도 전에 소원을 이룬 그 친구들은 감격하며 노 전 대통령의 공덕을 칭송했을까? ㅋ 그럴리가. 집값 상승의 쓰나미가 남쪽으로 퍼져가면서 종부세 영수증을 받아들자 그들은 등을 돌려 은근슬쩍 반대론자들의 무리에 끼어들었다. 그들중 몇몇에게 "야 너 언제는 종부세 내보는게 소원이라며?"라고 슬쩍 쿡 찔렀을 때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야 그건 부자들이나 내는 세금이지!" 엥. 대한민국에서 대치동이 부자가 아니면 누가 부자던가.

하지만 세금에 대한 이런 이중적 태도는 모두가 다 똑같다. 다들 부자에 대한 중과세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부자가 아닌 자신에게 걷는 세금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로빈훗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처럼. 하지만 로빈훗에게 털리던 귀족들도 과연 그를 의적이라고 생각했을까? 또 폭력적으로 부유한 이에게 돈을 뜯어 가난한 이에게 베푸는 것이 옳다면 가난한 북한이 로빈훗의 탈을 쓰고 지구촌 상위 1%의 나라 남한을 침략해서 약탈하는 것 역시 정의롭다는 말 아닌가. (북한과 남한이 다른 정치체제 아래에 있지 않냐고 주장하는 사람이여, 부자들도 당신과 다른 지자체에 속해 있음을 기억하라)

나는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또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복지를 줄여야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이 박수치고 환호하는 저 로빈훗 같은 세금이 당신들을 덮칠 것이고 그때가 되면 그대들의 추한 이중성이 극명하게 들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과거 내 친구들이 그랬던 것 처럼. 멍청한 정부 덕에 집값은 폭등할 것이고 명목가격으로 정해진 종부세의 문턱은 이제 강남을 넘어 강북의 일부 지역까지 덮칠 것이다. 무주택자라고 안심하지 마라. 당신보다 더 부유한 사람이 세금부담 때문에 던진 집을 당신이 산다는 것은 환각에 불과하니까. 종부세 때문에 대치동이나 반포에 집을 사지 못한 사람들은 마용성으로 몰릴 것이고 거기서 밀려나는 사람은 또 다른 이들을 밀어내고 최종적으로 당신을 밀어낼 것 아닌가. 종부세의 타격은 다주택자들에게 몰릴 거라고? 나는 진정으로 그대들의 그 사악한 어리석음을 가슴아파하는 동시에 무척이나 사랑한다. 맨하탄이나 런던, 홍콩같이 주택에 대한 세금이 어마무시한 지역들을 보면 공급이 부족한 상태서 매겨지는 모든 비용은 세입자나 차후 구입자가 짊어지게 되어있다. 조선시대에도 중앙정부가 지대를 올리자 세부담은 소작농에게 넘어가지 않았던가. 올라간 종부세는 다주택자들이 아닌 세입자나 무주택자인 당신이 내고 있는 셈이다.

곧 올해의 종부세 고지서가 각 다주택자들의 집으로 날아 올 것이고 몇몇 부자들은 한숨을 내 쉴 것이다. 그리고 대중은 이를 보며 크게 기뻐하겠지만 그 한숨이 결국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12-13세기 영국 셔우드 숲 근방을 배회하던 도적 무리가 있었다. 그 도적들이 부자 상인들의 마을과 가난한 마을 중 어디를 먼저 덮쳤겠나. 옆 상인마을에 불이 나고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평민들은 환호하고 로빈훗의 이름을 소리높여 외쳤지만 그 도적들은 곧 말머리를 돌려 평민들의 마을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또 아직 그들을 마주하지 못한 더 가난한 이들은 옆 마을이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보고 기뻐했지만 얼마 안가 그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그 파란에서 무사한 것은 성을 쌓고 사는 권력자들과 귀족들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귀족들인 다주택 부자들은 이 로빈훗 같은 세금을 피할 방법도, 낼 능력도 갖추고 있다. 이 의적이 터는 대상은 당신들이지 저어기 부자 나으리들이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세금이 그대들을 덮칠때 비로소 종부세의 부당함을 깨달을 것이겠지만 그땐 이미 늦으리. 그 날은 이미 예정되어 있으며 당신들의 반응도 판에 박힌듯 똑같을 것이다. 그 옛날의 내 친구들처럼. 이처럼 대중의 사악한 이중성을 조롱하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2019. 11. 19.

독립을 유지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


에휴



연간 대한민국의 GDP는 1.6조 달러고 중국은 13.6조 달러인데 미군이 철수하면 우리가 무슨 수로 중국과 군사적 균형을 유지하겠는가. 현재 중국과 우리나라와의 격차는 을사늑약을 체결할 당시의 대한제국 vs 일본의 격차보다도 더 크다. 트럼프는 이런 약점을 알고 우리에게 천문학적인 청구서를 내민 것인데 그 배경도 분석하지 않고 무조건 비싸다며 입에 거품부터 무는 저 종자들의 선조는 분명 구한말 죽창으로 일본과 러시아의 대포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던 멍청이들일 것이다. 

저런 멍청이들은 독립을 유지할 자격이 없다.

2019. 11. 17.

방위비 분담과 주한 미군의 가격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원가에 따라 가격을 정하는 것은 조선같이 미개한 중세시대의 사고방식이고, 자본주의 아래서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진다. 그리고 트럼프는 자본주의 국가 미국의 비즈니스맨이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상대했던 여느 정치인들과 다른, 수요와 공급의 관점에서 주한미군의 주둔 가격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여러번 언급했듯 내가 아닌 상대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지능의 문제이다. 그러니 IQ가 낮은 분들은 부디 애쓰지 마시고 글을 넘기고 나머지 분들은 함께 트럼프와 미국의 눈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자.

미국에게 주한미군의 효용은 대북보다 대중전략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중 전략은 중국을 포위해서 유사시 무역망을 차단하는 데에 있다. 이와 같은 전략은 미국이 세계의 헤게모니를 두고 다툰 지난 100년간의 대립에서 항상 승리를 안겨주었다. 1차 세계대전 독일으로부터, 70년 전 일본, 그리고 냉전시대 소련에게서도. 그러니 그들의 대중전략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 때문에 미국은 인도, 필리핀, 대만, 일본과 같은 나라들과 군사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중국에 대한 봉쇄선이고 당연히 한국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대중봉쇄망(대충그려서 죄송)

이 측면에서 수요공급을 살펴보자. 대중 봉쇄선의 극동방면에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가지 옵션을 가지고 있다. 지도를 펴고 보면 굳이 한국이라는 교두보를 두지 않아도 일본과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 만으로 중국의 북태평양 방면을 완전하게 봉쇄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주둔지를 공급할 후보가 둘이나 있는 셈이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전쟁 발발시 동맹군 역할을 해줄 다른 군대를 찾기 어렵다. 중국은 탄생 이래 주변의 모든 나라들, 심지어 같은 공산권인 소련과 베트남과도 전쟁을 벌인 가장 공격적인 나라인데다 6.25때 우리와 직접 싸운적도 있는데, 유사시 북한이나 중국에 대항해 남한에 상비군을 파견할 다른 나라가 있는가. 아무리 급진적인 좌파라고 해도 이 질문에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가격은 이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미국에겐 대체재가 있지만 우리에겐 없다는 것.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한국인들이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주한미군은 이미 65년째 철수 중이고 이와 같은 추세는 지속될 것이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1953년 종전 이후로 미군은 계속해서 한반도에 배치한 전략자산과 상비/예비 병력의 규모, 그리고 군사적 역할을 축소하고 있지 않은가. 대중은 한반도가 미군에게 얼마나 중요한 요충지인지 침을 튀겨가며 주한미군의 철수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65년 동안 천천히 철수하고 있는 군대가 지금부터 65년 뒤에도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특히나 미국의 평택기지를 예로 들어보자. 6.25 전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미군의 기지가 평택으로 후퇴했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한미 연합군은 중공의 참전에 밀려 붕괴하듯 후퇴하기 시작해 심지어 1951년 1월 4일에는 서울까지 빼앗겼다. 이에 크게 당황한 미군 수뇌부는 평택 방어선까지 뚫린다면 한반도를 포기할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평택은 미군의 마지노선으로 이 선이 뚫린다면 미군은 다음 전략적 방어선은 낙동강이 아닌 현해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1953년과 2019년의 상황을 비교해보자. 군사기술의 발달로 미군이 극도로 꺼려했던 대규모의 상륙작전은 훨씬 더 수월해졌으며 필요성도 줄어들었다. 반면 중국/북한의 원거리 무기의 발달로 국경 가까이에 대규모 상비군과 HQ를 주둔하는 것은 더욱 위험해졌다. 결국 미군의 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의 효용은 감소했는데 비용은 올라간 셈이다. 그리고 수요공급 측면에서 미군은 한국과 일본의 후보지를 두고 고심하는데 비해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이게 주한미군의 가격을 폭등시키는 근원적 문제이다. 상대가 가격을 올릴 동기는 점점 커져가는데 우리에겐 대체재가 없다는 것.

한국이 지소미아를 폐기하고 나서자 미국은 방위비 인상을 들고 나왔다. 여기에 47명의 국회의원들이 공갈협박이 도를 넘었다며 대응하고 있지만 공급이 줄고 비용이 커진 상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공갈협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시장원리일 뿐이고 안타깝게도 우리의 상대는 이런 특성을 철저하게 이용할 미국의 비즈니스맨 트럼프이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한국에 50억불, 일본에 80억불이라는 막대한 방위비분담금청구서를 내밀었다. 이에 대응하는 유일한 길은 한일이 담합해서 가격을 깎는 것 뿐이지만 애초에 힘들던 이 담합은 어떤 병신집단 덕에 아예 불가능한 옵션이 되었다. 

물건이 비싸면 안 사면 그만이다. 반대로 매수자가 값을 더 쳐주지 않는다면 안 팔면 그만이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반드시 사야 하는 입장에 처해있고 미국은 우리 아니면 일본에 팔면 그만이다. 거기에 트럼프가 부르는 주한미군의 가격이 터무니 없으며 이는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조선시대 사대부 마인드를 가지신 분들이 있는데, 트럼프가 가장 경멸하는 무리들이 바로 저런 무능한 명분론자들 아닌가. 트럼프를 상대하려면 철저하게 그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아야 햔다. 우리가 택시를 타고 돈을 내는 것은 서울시 운수협회의 번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 때문이고, 그 택시기사들 역시 우리의 이동권이 아닌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 엑셀을 밟듯, 트럼프와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하루바삐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상 그 양키 비즈니스맨은 미군의 극동 군사파트너 자리를 두고 우리와 일본을 두고 비딩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말 자정 강남역에서 택시 한대를 두고 경쟁하는 그룹처럼 높은 가격을 부를 수 밖에 없다. 택시기사가 얼마를 부르던 추운 겨울 밖에서 노숙하는 것 보다 그 가격이 낫다면 손을 들고 따따블을 외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새벽 첫차를 기다리다 벌벌 떨어가며 택시기사의 인성을 탓하는게 무슨 도움이 되나. 가격에 도덕을 들이대는 것은 병신외교 추종자들이나 할 법한 어리석은 짓이다. 또 그들이 주도하던 반일운동은 결국 이낙연 총리가 덴노 헤이카를 외치는 것으로 끝났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지만 이번에도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이번엔 과연 갓블레스유 아메리카를 몇번 외치는 것 만으로 끝날 수 있을까.

2019. 11. 16.

영화 블랙머니 후기-정신병 상담은 129 구급센터로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조현병의 대표적 증세는 바로 피해망상증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고 속이며 고통을 주고, 심지어는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믿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피해망상증 환자들은 주관적인 경향이 강해 논리적으로 설득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더구나 망상이 계속되면서 점차 현실감을 잃어버리므로, 그 생각이 틀렸다고 설득할 경우 오히려 망상이 더욱 굳어지고 위협적인 행동을 하게 되므로 병원에 방문해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메가폰을 잡고 영화를 찍을 것이 아니라.

과거 국가부도의 날을 보며 한국영화 부도의 날을 걱정했는데(링크), 영화계 사람들은 집단으로 외국인에게 돈 떼먹히거나 홍대에서 뭐 한대 맞은적이라도 있나, 도대체 왜 이런 편집증에 사로잡혀있을까. 영화 블랙머니 역시 그 망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그 유명한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2003년에 인수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픽션이라고 하지만 감독과 배급사는 대놓고 론스타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광고했다.) 이 사건은 이 블로그의 세번째 글로 다룰 만큼(링크) 한국정부와 여론이 국제적으로 추태를 벌인 사건이고, 이를 통해 수많은 투자자들은 왜 대한민국이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지만 여전히 개도국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던 사건이다. 그리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셔야 할 감독과 작가들은 이 영화를 찍으며 사실관계까지 왜곡하고 있다.

먼저 영화는 자산 70조짜리 은행을 고작 1.4조에 팔아치우는 것이 말이 되냐며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수도 없이 분노한다. 그리고 회계나 재무 수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대사를 통해  영화의 제작자들이 얼마나 회계와 금융에 까막눈인 사람들인지 깨달았을 것이다-단 한줄짜리 대사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담겨있는가. 먼저 기업의 가격은 자산이 아니라 거기서 부채를 제외한 자본에 달려있다. 10억짜리 집에 9억짜리 전세가 들어있다면 매매가는 1억이어야 하지 10억이 아니다. 게다가 영화에서 내내 BIS(자기자본비율)를 운운하면서도 이 감독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 자기자본비율이 8%라면* 70조짜리 은행의 자본은 대충 5.6조 정도(실제론 그보다 높다)가 되고 매각가는 그 자본에 맞게 결정되어야 한다. 이 영화를 만드신 분들의 참신한 회계법에 따르면 열배의 자산가치(700조)를 지닌 리만브라더스는 외환은행 매각가의 반값인 1.5조에 팔렸는데 그럼 리만 인수를 추진했던 이명박 가카는 론스타를 뛰어넘는 투자의 귀재셨다는 말인가.

왈가왈부 할 것 없이 기업가치를 판단할 가장 확실한 근거는 바로 주가이다. 그런데 2003년 포부터 인수를 발표하기까지 외환은행의 시가총액은 1.8조에서 2.6조로 단 한번도 론스타가 매입한 기준인 2.8조**까지 오른 적이 없다. 되려 론스타는 상반기에 거래된 수준보다 더 비싸게 매입했다. 이는 일반적인 수준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한 것으로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헐값에 매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가장 강력한 반증이다. 누구든 정말로 당시 외환은행의 기업가치가 저평가되어있다고 믿었다면 그냥 증권사 HTS를 켜고 외환은행 주식을 매수하면 되지 않았는가. 확실한 저평가인데도 안 산 사람은 바보고 2003년에 바보였다면 2019년에도 여전히 바보일 테니 그들의 말은 무시해도 된다.
론스타 매각 당시 외환은행 주가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실제 상황은 피해망상증 환자들의 기억과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2003년 당시, 정부의 소비촉진정책 중 하나로 카드사용이 급격하게 늘어나다 부실이 커져 신용경색이 발생하자 외환카드를 비롯, 여러 카드사와 캐피탈사의 부도위험이 빠르게 증가했다. 대부분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이미 대량의 부실채권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터라 외환카드를 떠안고 있는 외환은행을 매수할 후보가 없었다. 심지어 지속적인 인수 압박을 받던 국민은행의 김정태 행장은 공개적으로 "금융 당국이 외환은행 인수를 강요한다. 부실을 떠안기려는 거다. 그랬다간 국민은행도 같이 망한다"고 일갈하며 정부의 인수 압력을 거부하기도 했다. 마땅한 인수후보를 찾지 못한 금융당국은 눈을 해외로 돌렸지만 부실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도 못하는 작은 은행을 인수할 후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당시 론스타가 관심을 보였지만 그들은 사모펀드인 자신들의 은행 매입을 정부가 허락해 줄 것인지 반신반의했고(어느 나라나 은행의 대주주가 되는 데에는 여러 제약조건이 존재한다), 하루바삐 인수후보를 찾아야 했던 금융당국은 이 매각이 성사되도록 스스로 편법을 찾아 준 것이다.

외환은행의 주당 순이익
우여곡절 끝에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매수해서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이끌었고 몇년동안 막대한 적자를 내고 부실채권을 떠안던 이 은행은 매년 꾸준히 흑자를 내는 기업으로 다시 탄생했다. 심지어 리만금융위기에도 흑자를 냈으니 HSBC같은 국제금융그룹이 왜 욕심을 내지 않았겠는가. 처음에 론스타의 외환은행인수를 반대하던 노조는 막상 외국인 행장 아래서 복지가 업계 최고 수준으로 개선되자(당시 외환은행의 여성직원 비율과 근속년수는 모두 업계 최고) 이후 론스타가 은행을 팔고 떠나는 것에 극구 반대했다. 이는 결국 주주-회사-직원이 모두 이득을 본, 교과서에 실려야 할 가장 성공적인 인수합병이었다. 자산-부채가 뭔지도 모르는 노망난 감독이 갑자기 등장해서 재를 뿌리기 전 까지는.

론스타의 실책이나 불법행위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애초에 허가를 내 줄테니 외환은행을 매입해달라고 나선 것은 은행의 파산을 막고자 했던 금융당국이었고 론스타가 제시한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에도 외환은행을 인수하지 않겠다며 달아난 이들은 한국의 금융기관들과 그 주주들 아닌가. 모든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르고 리스크가 큰 만큼 큰 보상이 있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론스타는 아무도 떠안지 않던 위험을 떠안았고 그 대가로 큰 수익을 내었다. 어려울 때엔 콧배기도 보이지 않다 잔치판에 갑자기 뛰어들어 먹튀 운운하던 저 무리들은 과연 외환은행이 파산해서 론스타가 투자금 대부분을 날렸더라면 보상해주라고 했을까. 그 저변에 깔린 심정은 정의감도, 공정성도 아닌 그냥 천박한 배아파리즘에 불과하다.

그 천박한 감정이 지속되다 보면 피해망상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망상증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결함이나 불만을 다른사람에게 투사해서 그들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믿게 된다. 이 영화를 찍은 정지영 감독은 73세의 고령의 감독으로 본디 "여자의 함정",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와 같은 통속물이나 만들던 사람이었는데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하지 않다 갑자기 "남영동 1985", "천안함 프로젝트", "국정교과서 516일" 과 같이 정치색이 강한 영상들을 제작하며 충무로로 복귀했다. 혹시 이 감독은 지난 날 자신의 실패와 부진이 외국계 자본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보수진영 때문이라고 믿는 것 아닐까? 이 노인은 자신의 망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화에서 재경부 관료들과 론스타를 살인까지 불사하는 악당으로 묘사했는데 백번 양보해서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고 해도 그게 살인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투자자와 공직자를 살인자로 몰아가는 그의 정신상태는 결코 건전하지 못하다. 그는 메가폰을 잡기 전에 정신과 의사를 만나야 했다.

혹시나 그의 치료에 도움이 될까 몇줄 더 보태고자 한다. 론스타 매각은 참여정부에서 추진된 일이고, 론스타 매각에 관여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변양균 전 청와대 비서실장(신정아가 처녀라고 주장했던 바로 로맨틱 가이)은 모두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등용되거나 임명된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꼭 론스타 사태를 비난해야겠다면 저어기 민주당으로 찾아가시라. 아니면 사실 감독이 숨겨진 꼴보수라 앞서 언급했듯 리만인수를 추진한 이명박 가카를 떠받들며 민주당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것일까. 나도 헷갈린다. 그냥 나이도 지긋하신 분이 잘 모르는 금융사건은 이제 그만 다루시고 본디 전공이시던 통속물이나 계속 제작하시는 것은 어떨까. 그게 더 재밌어 보이는데.


정지영 감독의 과거작 "까"의 포스터와 네티즌 평점(3.45)
참고로 이 영화의 평점은 희대의 망작 리얼(4.23)이나 성냥팔이소녀의 재림(4.15)보다도 낮다.


*자기자본비율을 산정할 때에는 자산의 위험도에 따라 각기 다른 가중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BIS는 실제 자본비율보다 대체로 낮다.
**론스타는 지분 51%를 약 1.4조에 매입했으니 기업가치의 100%를 약 2.75조로 본 셈.

2019. 11. 14.

당신은 왜 주식투자로 부자가 되지 못하나(수정)

오해를 피하기 위해 우선 밝히자면 나는 주식투자로 목돈을 만든 사람들을 존경하고 또 좋아한다. 그리고 나 역시 수도 없이 주식에 투자를 했고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할 것이다. 나 만큼이나 공격적으로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내 친구들이나 주변인들에게도 주식투자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에서 주식투자로 부자가 된 사람은 많지 않다. 간혹 한 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중 대부분은 리딩방이나 개설해서 사기치는 양아치들이고 나머지 중 다수는 손실을 숨기고 수익만 자랑하는 허풍선이들이다.

내 비금융권 친구들은 여의도의 주식쟁이들이라면 영화에서 보듯 뭐 기가막힌 정보를 미리 입수해서 돈을 버는 줄 알고 있던데, 미안하지만 우리 금융권 사람들 만큼 주식을 못하는 집단도 드물다. 도대체 우리가 주식을 잘 못한다면 누가 주식을 잘하겠는가. 행여나 한 둘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주식과 달리 부동산시장에는 누구나 부자가 되지 않는가. 당신이 주식투자로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는 데에는 분명한 네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 자본시장의 왜곡.

예전 글에서 여러번(링크 링크 링크) 지적했다시피,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은 왜곡되어있기 때문에 비즈니스의 성장성이 주가로 곧장 연동되지 않는다. 애초에 당신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대거 사들여도 고작 3-5%밖에 보유하지 않은 이건희-이재용이 회사를 마음대로 주무르는데 왜 당신의 주가가 삼성전자의 지분가치를 온전히 반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에서 가업승계가 예정된 그룹들은 예외없이 승계 전 주가가 폭락했다 승계 이후 반등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소수의 지분을 가지고 기업을 지배하는 변태적 구조가 지속되는 한 오너는 기업을 망칠 동기가 있으니까. 한 교수는 이를 자본주의가 아닌 재벌사회주의라고 불렀고(링크) 나는 이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우리나라가 만약 미국의 시스템을 도입했다면 우리나라 거의 대부분 재벌 오너들은 감방에서 여생을 보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제대로 기업가치를 분석해 보기 위해서는 회계장부를 믿을 수 있어야 하는데, 대형 유명기업들의 회계장부도 엉망인데 중소기업들은 오죽할까. 1980년 코스피 종합주가지수가 출범한 이후 이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졌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다만 여기에 더 구체적으로 적지 못할 뿐.

둘. 전문성의 결여.

개미 투자자들은 늘 공매도 세력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개미들이 돈을 못버는 이유는 병신같은 주식을 병신같은 타이밍에 샀기 때문이지 공매도 때문이 아니다. 증권쟁이는 하루 내내 밥 먹고 주식을 분석하는 것이 생업이다. 여의도와 광화문에 저능아 등신들만 모아둔 것이 아닌 이상, 회사 갔다 데이트 하고 밥도 먹고 여행도 다니고 영화보고 술도 먹다 남는 시간에 (엉터리 숫자도 간간히 껴 있는)기업재무보고서와 그럴싸 한 인터넷 까페 글 몇개 읽는다고 기관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더 어리석은 일이다. 반면 부동산과 비교해 보자. 여러 이유로 기관은 주거용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기 어렵고 세제 혜택을 받기도 힘들다. 무엇보다도 새들이 적절한 장소를 찾아 둥지를 틀고 곰이 굴을 파듯, 우리의 본능은 적절한 주거지를 골라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그리고 이 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월등히 앞선다.) 좋은 부동산을 골라내는 데엔 숫자로 점철된 보고서보다 우리의 본능이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외 유명 투자자들이나 기관들이 특정 지역 부동산에 집중할 때, 복부인들은 코웃음을 치며 강남으로 몰려가곤 한다. 아마 이 부분이 부동산과 주식이 가장 다른 부분이 아닐까. 하지만 오늘도 (나를 비롯한) 수많은 개미들은 자신의 전문성이 없는 분야에서 남들보다 앞설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HTS를 켜고 매수를 누른다.

셋. 레버리지.

부동산은 자동으로 레버리지가 되는 상품이다. 갭투자를 하든, 아니면 은행 대출을 끌어 쓰든. 설령 100% 현금으로 매수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미래의 소비를 줄여 자금을 끌어다 부동산을 사기에 그들의 현금흐름을 보면 사실상 어느정도 레버리지를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다. 반면 주식투자자들은 레버리지를 극도로 경계한다. 게다가 소비를 줄이지도 않는다. 주식으로 돈을 벌면 벌었다고 쓰고, 터지면 스트레스 받는다고 쓴다. 왜냐면 애초에 그 돈은 날려도 죽지 않을 돈이었으니까.(날리면 죽을 돈을 주식에 박은 투자자는 이미 다 죽었겠지.) 따라서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제약을 뚫고 주식투자에 성공해도 그들의 인생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집값이 두배 뛰면 사람들의 삶은 크게 변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두 자산의 실적이 인생에 미치는 민감도가 매우 다르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이 레버리지를 전혀 하지 않은 주식에 돈을 넣으면서, 투자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한 기업이 자동차를 만들면서 노력의 거의 대부분을 백미러 디자인과 에어백 색상에 할애한다면 결과가 좋을 수 없지 않은가. 심지어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다. 시간과 노력은 많이 투자하면서 자본을 적게 배정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주식투자로 부자가 되지 못하는 한계이다. 추가: 게다가 그들은 적은 자본을 투입하면서도 터무니없이 큰 수익을 꿈꾸기 때문에 삼성전자같은 우량주가 아닌 이상한 잡주나 비트코인 같은 부실한 버블자산을 매입한다. 모두가 얌체같이 적은 돈으로 일확천금을 꿈꾸기 때문에 그런 대박이 가능한 자산들의 밸류에이션은 터무니 없이 높다. 로또의 기대값을 떠올려보라.(링크) 그래서 그들은 늘 버블의 끝자락에 뛰어드는 실수를 반복하기 쉽다.

넷. 장기보유.

삼성전자를 한번도 사보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장기보유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부동산이 폭등하기 시작한 2015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이 강남 부동산을 사든, 삼성전자를 사든 실적의 차이는 거의 없었겠지만 내 주변에서 그때 삼성전자를 사서 지금까지 들고있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사람은 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에 특히 돈을 벌고 있을 때에는 시장의 작은 물결까지 다 예측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오를때 팔았다, 살짝 빠지면 더 사서 쫒아가야지 라는 생각을 안해본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심지어 아이작 뉴턴도 못한 일을 자신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부동산은 이를 원천적으로 막아준다. 세금과 부족한 유동성, 그리고 높은 거래비용은 사람들을 강제로 장기투자자로 만들어준다. 반면 주식시장에서 투자자가 장기투자가로 변모할 때는 대부분 물렸을 때 뿐이다. 만약 강남아파트 ETF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ETF에 투자하는 개미들은 필연적으로 단타에 나설 것이기에 그들의 실적은 아파트 보유자들보다 현저하게 낮을 것이다. 거래빈도와 장기실적은 반비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지 않은가.

인터넷에는, 특히 sns에는 부동산으로 번 돈을 폄하하는 젊은 자본가들이 많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건 누구나 한다, 그렇게 큰 돈을 깔고 앉아있는 것은 사실상 손해다, 그 시절에 레버리지로 삼성전자 주식만 샀어도 강남 부동산 만큼 벌었다, 등등. 하지만 그들은 결과적으로 레버리지를 일으키지 않았고, 삼성전자를 사지도 않았다. 그래서 부동산에 돈을 깔아둔 것 보다 못한 수익을 냈고 따라서 누구나 쉽게 버는 돈을 벌지도 못했다. 십수년 간 회사에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수도 없이 많은 투자에 나서며 깨달은 것은 투자란 마치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 물살을 거슬러 가는 것 보다 해류를 따라 가는 것이 훨씬 쉽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 역시 주식보다 부동산으로 훨씬 큰 돈을 벌었고 이는 물결이 어느 방향으로 치고 있는지를 암시한다. 펠프스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해류를 거슬러 가 볼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쩌면 평범한 투자자일 뿐이니 그저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해류를 따라갈 것이다. 하지만 언제고 물살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기에 우리는 그에 대해 오감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 글은 그에 대한 작은 고찰이다.

삼성전자와 반포래미안퍼스티지 34평의 지난 5년간 실적 비교

2019. 11. 10.

너희는 죽창가 나는 덴노 헤이카

나루히토 천황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이낙연 총리
이낙연 총리는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식에 참석하여 그를 덴노 헤이카(천황 폐하)라고 부르고 일본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일본어로 문답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베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의 친서를 전달했지만,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아베는 그의 친서를 그 자리에서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외교적 관례에 따르면 정상 간의 친서는 그 자리에서 열어보는 것이 관례라고 하는데 아베는 한국과 정상회담을 열 생각이 없음을 강하게 표현한 셈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정상회담 요구가 거절당하자 즉석에서 아베에게 요청해 즉흥적으로 열린 11분 간의 대담.
 
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병신외교의 종주국이라고 불릴 수 없다. 아베의 강력한 시그널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은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베의 옷깃을 잡으며 예정에 없던 정상회담을 요구했다. 그 결과 소파 위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약 11분간 대담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사진으로 남겨 줄 기자들 조차 없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직접 찍어서 언론에 배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은 산케이 신문을 통해 협의되지 않은 사진을 무단으로 올렸다며 한국 측에 강한 불만을 표명했다고 한다.
 
캬. 병신외교란 바로 이런 것이다. 자신이 이길수도 없는 상대를 있는 힘껏 빡치게 해놓고 이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는 모조리 다 토착왜구라고 몰아붙이며 국민들에게 죽창가를 뿌린다. 그러면서 동시에 유일한 우방 미국에게는 지소미아를 폐기하겠다며 자해공갈을 펼친다. 결국 고립무원에 빠진 정부는 남몰래 일본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외교부 실무자를 일본에 여러번 보내다 안되니 통역장관을 보내보기도 하고 결국 국가의전서열 2위인 총리가 대통령의 친서를 가져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하다, 대통령이 직접 대화좀 하자고 애원하는 것. 이게 바로 병신 외교의 진수다.
 
정부와 여당 지지자들은 우리보다 일본의 타격이 더 심하다며 애써 정신승리를 부르짖지만, 만약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정부가 저렇게 매달리는지 설명해 보라.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상 자리에 일본은 아베의 짤막한 조의를 전달했을 뿐, 친서를 보내지도 대화의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거절당했는데도 정상들 모인 자리서 애기좀 하자고 옷깃을 붙잡는 것은 장삼이사들의 대화법이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상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국제사회는 우리의 이런 행동을 보며 배를 잡고 웃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정부의 고위급들이 외교에 대해 얼마나 안이하고 한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엿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외교란, 대화를 할 생각도 없는 상대에게 줄 것도 없으면서 그저 붙잡고 끈질기게 내 주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면 기적이 일어나 상대가 굴복하고 천하를 갖다바칠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비슷한 일이 2017년 7월에도 벌어졌기 때문이다.(링크) 당시 사드 문제로 한중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때,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끈질긴 태도로 설득해서 전향적인 태도를 내놓았다며 자평했는데 아마 외교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얼마나 한심한 지 머릿속에 쉬이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상대에 내 주장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은 자폐아들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끈질긴 것이 아니라 멍청한 것이다. 그리고 저 멍청함의 대가는 그를 뽑은 국민들의 몫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던 시진핑은 아직도 사드제제를 해제하지 않았고 한국 연예인들은 중국에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지 못하다. 일본이 원하는 징용공문제에 대한 해답를 내지 않는 한 아베는 문재인과 정상회담을 열지 않을 것이다. 매달려도 소용없다. (이 운동권 무리들이 젊은 시절 어떻게 연애를 했는지 안봐도 뻔하다.)
 
국민들에게 죽창가를 부르짖으면서 본인은 덴노 헤이카(천황폐하)를 외치는 그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더니 아베 총리의 소매를 붙잡고 예정에도 없던 대담을 구걸하는 대통령. 김포와 인천에서 출발하는 일본행 비행기는 다시금 한국 관광객들로 가득 차있고 no japan을 외치던 소비자들은 11월 일본차들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예전에 읽었던 한 연구조사에서 한국인들의 지능지수가 유대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틀렸나 보다, 두 번째가 아니라 두 자리라고 했던가. 

부동산, 어디까지 오르나

내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분양가상한제가 실시되었다. 이제 서울 부동산의 공급은 끝났다. 청약로또를 바라보며 분양가상한제를 외치는 이 머리 나쁜 사이코패스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조합들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지연할 것이고 저들은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다. 나는 거기에 일말의 동정도 하지 않겠다. 남의 재산을 빼앗아 자신의 배를 불리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 이들에게 응당한 댓가가 돌아가는 것 뿐이지 뭘. 이제 뭐가 남았는가? 그래 너희들 하자는 대로 다 해보자. 자신의 미래를 자신의 손으로 망치는 당신들을 나는 지지한다.

좌: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득표한 지역[빨간색] 문재인이 득표한 지역[초록색]                                                              우: 분양가 상한제 실시 지역
(투표 좀 잘하지 그랬어요 강남거주민님들)
하지만 그런 악당들은 소수고,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은 이 부동산 폭등이 정책실수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정부노선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한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 정부는 절대로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현재 부동산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김수현, 김현미, 박원순 등. 80년대 운동권/좌파였던 그들은 대학생 시절부터 고수해 온 친북적 성향을 단 한번도 버린 적이 없다. 80년대에는 그럴 수도 있었다. 남이나 북이나 독재자 아래서 자유가 없기는 매한가지고 북한이 더 잘 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소련이 무너지고 북한이 빈민국으로 전락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버린 적이 없었지 않았는가. 그럴 사람들은 전부 전향했지. 무려 35년동안이나 그릇된 신념을 품으면서도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인데 그런 그들이 서울 부동산이 고작 두 배 올랐다고 자신들의 정책 실수를 인정할까? 늙은 개에게는 새로운 기술을 가르칠 수 없고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저들은 결코 노선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다. 노빠꾸 상남자들 킵고잉. 캬.

그렇다면 부동산은 얼마까지 폭등할까? 현재의 부동산 정책이 바뀌려면 2022년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모두 패배해야 한다.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설령 그런 일이 벌어져도 개정된 법들을 다시 다 되돌리고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이 사업을 진행하는데엔 아무리 빨라도 5년이 걸린다. 즉 현재의 주택부족은 2027년까지 100% 확정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적정가격을 산출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사막에서 조난당한 사람에게 생수 한 병을 100만원에 팔면서 적정가격을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제 아파트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중산층들은 고통스러운 경주를 시작해야한다. 5년 전만 해도 강남의 중형평수 소형단지를 알아보던 사람들은 작년에 마용성으로 임장을 다녀야 했고, 이제는 마용성도 놓치고 태어나 처음 들어본 지역들의 부동산을 기웃거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현실에 먼저 순응하고 눈을 낮춰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이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인내해야만 한다.(전에 작성한 글에서 말했듯, 당신이 40을 넘지 않았다면 인내도 좋은 선택일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하지만 그래도 예측이 우리의 일이니 간단한 계산을 해보려고 한다. 먼저 경기도에 공급하는 신혼주택단지와 2기 3기 신도시가 서울의 집값을 얼마나 잡을 수 있을까? 먼저 가장 먼저 완공될 GTX-A가 들어서는 지역을 중심으로 역산해보겠다. 서울의 25평 대신 용인 수지, 일산 등의 25평에 사는 것은 어느정도 값어치를 가질까? 어려울 게 없는 간단한 계산이니 직접 해보기를 권한다. 먼저 서울과 수도권의 집을 비교하는 사람들의 평균 소득은 최저임금보다 훨씬 위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소득을 시급 만원으로 잡자. 그리고 수도권으로 이사가게 되면 평균 출퇴근 시간이 약 45분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하루 1.5시간. 따라서 25평의 주 수요자인 맞벌이 가정은 둘이서 합해 하루에 3시간을 통근에 쓰게 되는 것이다. 시급 만원으로 계산하면 하루 3만원의 비용이 든다. 여기에 GTX요금 4천원을* 더하면 4만 6천원(30,000+4,000x2명x2왕복). 그리고 한달 30일 중 약 27일(휴일에도 서울로 외출할 수 있으니)동안 이 비용을 낸다고 계산하면 그들은 약 월 124.2만원을 지불하게 된다. 1년이면 약 1,490만원이 되고 이를 매매가격의 월세수익률 4.5%로 나누어주면 3.31억, 여기에 서울거주 프리미엄 20%를 감안하면 3.97억, 거의 4억에 가까운 금액이 나온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시간당 기회비용   : 10,000
통근시간 증가       : 1.5시간(왕복)
GTX 통근비용       :   8,000 (왕복)
평균 가구원 수      :      2명
하루 가구 지출      : 46,000 [(10,000*1.5+8,000) x 2]
월 비용(27일)        :    124.2만원
연 비용(12달)        : 1,490.4만원 (A)
월세수익률(신축) :       4.5%       (B)
매매가격 환산       : 33,120만원 (A)/(B)
서울 프리미엄20%: 39,744만원

따라서 상대적으로 출퇴근이 용이한 강동이나 영등포, 혹은 관악구의 25평 아파트의 가격보다 4억 이상 저렴해야 GTX-A노선의 아파트들은 비교우위를 가지는 셈이다. 현재의 가격을 보면 동남권을 대체할 용인수지의 25평 가격이 대략 3.9억, 서북권을 대체할 일산/고양의 25평 가격이 약 2.5-2.7억으로 아직 4억의 차이에 미치지 못한다. 즉 GTX가 들어서는 지역의 집값을 훨씬 더 떨어뜨려야 서울의 수요를 분산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여당의 텃밭의 집값을 폭락시켜 서울의 집값을 잡는다는 정책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2,3기 신도시 계획들은 서울의 수요를 대체하지 못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으니 서울의 수요공급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경기도권의 물량은 계산에 넣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서울시의 주택 수급상황은 지난 30년간 가장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링크) 따라서 보수적으로 생각해도 주택시장은 2006/07년보다 과열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매매 비율은 지난 저점을 갱신할 가능성이 크다.(아래 그림) 그리고 정말 운이 좋아 2022년에 정권이 교체되어 2027년에 수급부담이 해소되기 시작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수급부족에도 불구하고 아주 보수적으로 향후 전세가 상승률이 지난 1년 평균 수준(1.5%)이라고 감안하면 2027년의 전세가격은 현재보다 약 12.65% 상승할 것이며 전세/매매 비율이 지난 저점에 도달하려면 매매가격이 현재보다 약 75% 오를 것이다. 아멘.
전세/매매 비율 변화

수식만 보면 학을 떼는 물리울렁증 환자조차도 아는 공식, F=ma를 낳은 근대물리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 하지만 그런 천재 조차도 런던의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전재산의 거의 전부를 날리고 말았다. 마크 파버의 분석에 따르면 뉴턴은 18세기 당시 대표적 버블이었던 남해회사에 비정상적 투자를 했다고 한다. 그는 1720년 초, 회사의 주가가 뛰기 전 주식을 매입해서 불과 3개월 만에 두배 가까이 차익을 보고 매도했다. 하지만 그의 추천으로 주식을 샀지만 팔지 않았던 친구들이 더 큰 수익을 보자, 초조해진 그는 전재산을 들고 상투를 잡았다. 얼마간 더 오르던 회사의 주가는 곧 폭락을 시작하게 되고 뉴턴은 거의 파산상태에 몰려 주식을 전량 처분하고 만다. 그가 잠시마나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가 파산하기까지는 1720년 2월부터 11월 말까지, 고작 1년도 걸리지 않았다.이후 그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런 저런 수치를 들어 집값의 미래를 가늠해보지만 서울에 보금자리를 찾지 못해 밀려나는 사람들의 공포와 시장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노하는 멍청이 정치인들의 어리석음의 깊이는 측정할 수 없다. 내가 젊은 날을 부동산에 베팅한 것은 내 영민함을 믿어서가 아니라 저들의 멍청함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천재 뉴턴은 자신이 거인의 어깨에 서 있었기 때문에 멀리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인용하자면 나는 저 멍청이들의 반대편에 서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노라고 답하리라. 멍청이들 화이팅!

뉴턴의 남해 주식 투자 시점































*이마저도 너무 낮아 GTX 운용은 대부분 적자가 될 것이다.
**이는 내 독창적인 분석이 아니라 다른 여러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임을 밝힌다.
***혹자는 리만 전 금융버블기보다 더 과열될 수 있느냐고 묻겠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주택/주식시장을 보라. 이미 그런 일이 벌어진 지 수년이 지났다.

2019. 11. 9.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 2

불특정 다수에게 글쓴이의 주장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면 그건 글을 잘 못썼다는 반증이다. 그 글도 마찬가지다. 다시 읽어보니 그냥 지우고 새로 쓰고 싶지만 여러 답글까지 달려있으니 놔두고 다만 몇가지를 보충해서 다시 정리해 보려고 한다.
 
*          *          *

답글 중에 한 의사로 추정되는 분이 답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셨다. "의사의 진료는 단순한 지식의 적용이 아니라 인간의 오감을 동원하는 복잡한 작업이다. 따라서 이를 AI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오래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AI가 대체하게 될 것은 쉽고 단순한 작업들일 것이다." 이것이 가장 흔한 통념이겠지만, 난 정확하게 반대로 생각한다.

의사를 예로 들어보자. 그분의 주장대로 의사는 오감을 사용해서 진료를 한다. 밀다가 갑자기 저항이 감소하는 느낌, 촉감, 밀다가 연부조직 아래로 뼈가 만져지는 감각 등. 하지만 이런 물리적인 측정은 기계가 인간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인간이 조직을 만지며 "부드럽다" "피부가 마르고 거칠다" 와 같은 감각에 의존할 때, 기계는 피부의 표면거칠기가 타 피부조직보다 x% 높다, 환자가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는 압력이 xx PSI로 평균치의 1.97SD에 해당한다, 등 수치화 된 데이터를 소숫점 수십자리까지 뽑아낼 수 있다. 간단하게 인간 의사가 맨손과 고무줄만 가지고 환자의 혈압을 측정한다고 생각해보라. 그가 평생 혈압측정만 해왔다고 해도, 그는 중국산 싸구려 혈압측정기보다 못한 성적을 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진료기록들의 DB를 구축한다면 현대의 로봇의사는 인간의사 보다 더 정확한 촉진, 청진, 시진을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 구현비용이 너무나 비싸기 때문이다. 알파고 같이 수천 억원을 투자해서 로봇의사를 하나 생산하느니, 그냥 의대를 설립하고 양질의 의사들을 육성하는게 훨씬 싼데 뭐하러 로봇의사를 만드나. 다시 말하지만 인간 뇌의 우수성은 효율성에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로봇의사의 생산비용을 낮출 것이다. 만약 1대의 로봇의사의 비용이 수백억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그는 어떤 의사를 가장 먼저 대체할까? 존스 홉킨스 대학의 최고 심장외과 의사? 아니면 저어기 강원도 산골에서 할머니들 감기약 지어주시는 김선생님. 당연히 전자 아닌가.  AI와 기술의 발달은 고숙련 고임금 노동자를 가장 먼저 대체할 것이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최고 심장외과의 K씨는 이전까지는 전세계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고난이도의 수술로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지만 그와 같은, 혹은 그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가진 로봇의사들이 십수대 등장하면 다른 의사들과 똑같은 평범한 환자의 진료를 시작해야한다. 물론 연봉도 깎일 것이고.

이와 같은 일들이 산업혁명 시대에도 존재했다. 남들보다 시력이 두배 좋은 측량기사나 근력이 두배나 강한 건설노동자들은 각자의 시장에서 어마어마한 프리미엄을 누렸지만, 광학장비의 발달과 기중기 등의 개발은 그들이 누리던 독점적 지위를 없애버렸고, 그들의 소득은 평범한 노동자들보다 그저 약간 더 나은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이제 기계가 육체노동시장의 엘리트들에게 불러온 변화를 이제 AI가 지식노동시장에 가져올 것이다. 나는 트레이더지만 AI가 등장한다고 해서 금새 나를 대체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보다 연봉이 훨씬 높은 포트폴리오 매니저나 헷지펀드 트레이더들을 먼저 대체하겠지. 금융 뿐 아니라 의사나 법률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번면 저소득층이 받을 타격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맥도날드를 예로 들어 보자. 키오스크자체는 기술적으로 이미 20세기 후반에 완성되었지만 그 후 수십년이 지나도록 온전히 도입되지 않았다. 이 기계가 보편화 된 것은 오바마와 민주당이 미국의 최저임금을 올려 인건비가 장비값보다 비싸지고 난 후 부터였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하지만 미국에서는 실업자가 늘어나기는 커녕 감소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기계보다 인간을 쓰는게 싼 일자리들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숙련 저소득 노동자일 수록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는 것이 쉽다. 키오스크의 도입으로 맥도날드에서 해고된 P군은 쉽게 도미노 피자의 배달부로 재취업할 수 있고, (키오스크를 도입한 뒤) 해고되지 않고 남은 맥도날드의 노동자들은 생산성의 향상으로 임금이 올라가 더 많은 피자를 시켜먹어 도미노 피자의 수요는 늘어났다. 이런 연쇄 과정은 산업혁명 이래 200년간 이어진 변화고 그 결과 하층 노동자들의 삶은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러다이트는 분명히 틀렸다.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신종 러다이트들을 보고 있다. 저소득 육체 노동자들은 AI와 자동화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소득 지식 노동자들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팔짱을 끼고 AI테마주를 검색하고 있지만, 기업이 비싼 AI를 도입한다면 이는 몸값 비싼 고소득자를 대체하기 위함이지, 싸구려 노동자들을 갈아치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저소득 육체 노동자들도 다수 해고되겠지만, 그들은 금새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맥도날드에서 패티를 뒤집는 데에 별 다른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듯, 그들은 또 그저 그런 저숙련 노동을 필요로하는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세상에는 기계보다 싼 일자리가 많으니까.

*          *          *

하지만 그 의사분이 주장한 대로 우리는 로봇의사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사람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때 우리는 단순히 병의 진단과 처방 뿐 아니라 정신적인 위로를 함께 받는다. 본인이 큰 병에 결렸거나, 혹은 그런 가족을 둔 사람이라면 의사의 따듯한 말들-괜찮아요, 곧 나을 겁니다, 이런 인간적인 위안과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알 것이다. (로봇의사에게 이런 위안 기능까지 넣는다면 개발비용은 훨씬 더 비쌀 것이다.) 마찬가지로 AI가 나보다 투자실적이 더 낫더라도 내 상사들이 나를 AI로 대체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손실이 커도 AI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불러서 항의할 수는 없지 않은가. AI의 최종 소비자는 결국 인간이고 그는 비합리적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온전히 AI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2019. 10. 31.

사회주의 정부의 좋은 예

각 재화의 가격을 시장이 아닌 정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하려고 드는 것이 사회주의가 아니면 무엇이 사회주의인가. 시장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깽판치는게 도대체 정부가 할 일인가.

트레이더나 운용역들은 대개 성격이 더럽다. 회사 내에서도 그들이 성질부리는 것을 다소간 용인해 줄 정도로. 그리고 그들이 성질부리는 것은 대부분 시장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샀는데 내리고, 팔았는데 오르고. 기다리는데 안오고. 나도 뭐 때때로 성질부리곤 하긴 하지만, 뭐 시장이 내 마음대로 되는게 정상인가. 그래야 할 이유가 뭐 하나라도 있나. 최대한 감정을 죽이고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지.

현재 정부는 무능한 트레이더들의 모습을 똑 닮았다. 강남의 아파트는 평당 얼마여야 한다는 자기 혼자만의 괴상한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에 반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그런데 그 구성원들조차도 퇴근 뒤 강남복덕방으로 달려가지 않나. 자신의 욕망 하나도 통제 못하는 인간들이 남의 욕망을 통제하겠답시고 칼춤을 추고 있다.

그 마무리가 어찌 좋겠나.

2019. 10. 30.

탕탕절과 중력절

우리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 고인모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우리가 이순신장군을 두고 "최고 지휘관이 최전선에서 총맞아 죽는게 과연 올바른 리더쉽인가"라고 평가한다고 이눔새끼! 나라를 위해 몸바친 분에게 예끼!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 공과 과를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박정희와 노무현 둘 다 당신들의 친구나 선배가 아닌 역사적 인물이고 따라서 그들에 대한 공과 과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누군가에게 그들은 친구나 선배일 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그들을 평가할 때 고인모독이란 죄명을 들이대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역사적 인물이 아닌 일개 필부로 격하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독재하며 자기 수하들을 경쟁시키다 경쟁에서 밀려난 김재규에게 총 맞아 죽었다. 노무현은 깨끗한 정치인 흉내를 냈지만 자기 형 아내 딸이 모두 돈 받은게 드러나자 자책하며 자살했다. 그들의 죽음의 원인은 각자의 비리에 있었지, 좌빨간첩들이나 수꼴보수신문이 죽인 것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대중들은 자신들이 마치 박정희와 형님동생 하던 사이인 마냥, 혹은 노무현의 싸이 일촌이라도 되는 것 처럼 행동한다. 박정희가 총 맞아 죽은 날을 탕탕절이라고 부르거나, 노무현이 투신한 날을 중력절이라고 부르면 갑자기 노발대발하며 인륜과 도덕을 들이민다. 그렇게 치면 모든 위인들은 다 죽고 없는데 뭐 고인모독에 안걸릴게 뭐가 있나. 누군가는 독재자가 암살당한 날을 기념할 수도 있는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돈 받은 형을 보호하기 위해 남을 자살로 몰아간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자살한 것을 업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이를 고인모독이라며 핏대를 올리며 비난하지만, 그 고인은 당신의 절친이나 가족이 아니라 역사적 위인들이다. 그들에 대한 평가의 자격은 국민 모두에게 있는 것이지 당신들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내 주변 누군가가 탕탕절이라는 말을 쓰는 것과 중력절을 기념하는 것 모두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존중한다.

학창시절 유행했던 YS 지우개
마찬가지로 나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 종교에 대한 모독을 제외한다면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는 것이 건전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노태우가 자신을 보통사람이라고 지칭했던 것이나, YS가 자기를 희화화한 캐릭터 문구용품을 허용한 것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이 스트레스 받으면 대통령 욕도 할수 있고 그런거지 뭘! 이라며 일갈했을때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아 노태우시절엔 박수를 보내기엔 너무 어렸구나.)마찬가지로 표창원 의원이 국회에 박근혜를 희화화하는 더러운 잠을 걸었을 때, 나는 그를 지지했다. 패러디의 수준이 너무나 1차원적이고 유치하다는 점을 비판했지, 민주주의 사회에서 비웃을 만한 짓을 한 정치인들은 언제나 비웃음을 당하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놀랍게도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던 무리들이 갑자기 엄숙주의에 빠져서 권위를 내세우는 기행을 마주하고 있다. 탕탕절은 괜찮지만 중력절은 인간쓰레기들이나 쓰는 용어고, 여자대통령의 누드를 전시하는 것은 패러디지만 남자대통령이 애니매이션에서 상의를 벗고 있는 것은 패륜이라는 그 이중잣대는 적잖이 당황스럽다. 아래의 두 예시를 보자, 한국 정치를 모르는 이들에게 1번은 표현의 자유로 보장받아야 하지만 2번은 절대 허용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들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우물거릴것이다.


사람마다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지 그 기준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그 기준은 진영과 상관없이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이다이 맞짱을 뜨면서 맨주먹만 쓸지, 연장도 허용할 지, 아니면 총이나 바주카포 같은 걸 써도 되는지 그 기준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길다란 일본도를 들고 나왔다면 적어도 상대가 품 속에서 자그마한 회칼을 꺼내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우스꽝스럽게도 이러한 내로남불이 헌법으로 자리잡은 나라가 있다. 바로 조선인민공화국. 그 괴상한 나라에서는 체고존엄 자국 지도자의 사진을 집집마다 걸어놓고 액자에 먼지가 앉아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심심할 때마다 남의 나라 대통령들 사진을 인형에 붙이고 불태우고 칼로 베고 뭐 그런다. 자신과 상대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높은 도덕의 문제인 동시에 지능의 문제이기도 하다. 뭐 머리나쁜 사람들에게 이런 애기를 백날 하면 뭐하나, 재는 나쁘니까 당해도 싸고 우리편은 착하니까 그러면 안된다며 유아들의 니편내편 놀이 말곤 할줄 아는게 없는데.
 

2019. 10. 27.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공존

먼저 나는 AI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그 분야에 종사하지도 않는 비전문가임을 밝힌다. 하지만 내연기관을 설계/제작하지 않아도 그 특성을 이해한다면 운송업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듯 나 역시 AI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뭐, 틀리면 할수없고.

최소한 생명체의 진화과정을 이해한다면 AI가 인간의 뇌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뇌 역시 복잡하게 연결된 수억 개, 어쩌면 그 이상의 논리회로에 따라 학습하고 판단하고 창조한다. 일반적인 유아가 학습하는 방식은 머신러닝과 아주 다르지 않다. 인간의 독자적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창조성 역시 조만간 AI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적어도 두가지 측면에서 AI보다 열등하다.* 바로 망각이 이루어진다는 점과 감정, 편향 등으로 인해 논리적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그 둘은 수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우리의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망각은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정보를 메모리에서 삭제하는 것과 같고, 감정이나 편향은 특정 조건 아래서 우리가 뇌의 특정 기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분노하거나 흥분할 경우 발생하는 아드레날린은 근육에 산소와 포도당의 공급을 늘리고 통증을 덜 느끼게 한다. 우리의 뇌는 한정된 에너지와 용량을 가지고도 최대한의 성능을 발휘하도록 진화되었다.

따라서 우리 뇌의 가장 큰 강점은 효율성이다. 예전에 언급했듯이(링크)  인간을 꺾은 바둑머신 알파고를 개발하는데 수천 억을 썼고 유지하는데도 연 수백 억의 비용이 들지만 바둑 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반면 커제나 이세돌은 바둑 뿐 아니라 어우 짜증나 라고 옆사람에게 말하기도 하고 직접 운전해서 귀가하는데다 노래하고 글쓰고 스타크래프트도 할 수 있지만 그에 들어가는 에너지라곤 고작 몇백g의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그리고 몇몇 무기물과 비타민 뿐이다. 물론 알파고에 이런 모든 기능을 추가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시 수백 명의 전문기술자를 고용해야 하고 데이터 저장용량을 확장해야 하며 전력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 애초에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진 기관과 분자 수준에서 재조합된 생명체의 에너지효율은 차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인간 뇌의 효율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은 저학력 노동자들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이렇게 비싼 돈과 운영비를 들여 개발한 인공지능은 저학력자들을 대체하는것 보다 고학력자들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그 실마리는 과거의 사례로부터 찾을 수 있다. 영국의 엔지니어들이 증기나 전력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기계의 발명하자, 최고 숙련공 인간 노동자들과 기계 간의 대결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마치 우리가 오늘날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지켜보던 것 처럼. 기계는 인간의 몸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엄청난 괴력을 보여주었고 얼마 안가 노동시장에서는 우수한 신체능력에 대한 값어치가 폭락했다. 남들보다 두배의 힘을 가진 육체 노동자가 남들보다 크게 대접받을 곳이라곤 이제 UFC경기장이나 올림픽 투포환 경기장 뿐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두려움과는 달리 난 인공지능으로 인한 대량실업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업혁명기의 노팅엄이나 요크셔의 공장들을 떠올려 보라. 기계들과 컨베이어벨트가 도입되자 러다이트를 필두로 대다수의 저숙련 인간 노동자를은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집어 삼켜 모두 굶어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도끼와 망치를 꺼내 기계들을 부수고 다녔지만,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지금, 실업률은 되려 낮아지고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은 어마어마하게 개선되었다. 왜냐하면 여전히 공장에는 특정 업무에 특화된 기계를 도입하는 것 보다 그냥 인간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저렴한 공정들이 널렸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AI에게 밥그릇을 뺏기는 것은 십수년 간 공부해서 고소득을 올리는 전문직들이지 인공지능의 개발/운영비용 본전도 안나올 다수의 저숙련 직무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다소간 형태야 바뀌겠지만.

게다가 인공지능의 또다른 한계는 그 엔드유저 역시 인간이라 비합리적이라는 데에 있다. 오늘도 전 세계에서는 불완전한 인간 운전자들이 매일 수만 건의 교통사고를 내며 매일 약 3천 명을 죽이고 있지만, 대중은 자율주행 차가 옆 차를 긁은 사건에 더욱 경악한다. 인간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공포영화를 보면서 동공이 수축되고 근육이 경직되는 공포를 느끼면서 인류 역사상 수백만 명을 넘어져 죽게 만든 길거리의 돌뿌리를 보면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이렇게 사용자인 인간이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인공지능의 효용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앤드류 양이라는 대만계 후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경선에서 큰 돌풍을 가져오고 있다. 그는 미국의 대형 IT기업들이 AI와 자동화로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대량실업에 직면할 것이니 그들에게 세금을 걷어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주장했다. 뭐 각자 생각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난 대량실업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계를 되돌려 1875년 코네티컷의 한 농장을 상상해 보자. 앤드류라는 한 마부가 주장하길, 자동차라는 놈은 말과는 달리 지치지도 않고 수백 마일을 달리고 발굽을 갈고 접종을 할 필요도 없으니, 이 기계가 도입되고 나면 마부 뿐 아니라 대장장이, 건초판매업자, 등등이 모두 실직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윽고 포드 T형이 1500만 대나 생산될 동안 미국의 실업자는 되려 줄어들었다. 마부와 대장장이들은 채찍과 모루를 버리고 포드의 공장에 재취업했고 건초를 팔던 사람은 이제 타이어를 팔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부의 아들은 코네티컷 주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아버지와는 달리 휴가철마다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캘리포니아부터 시카고까지 마음껏 다닐수 있었다. 기계는 결국 우리의 자유를 확대했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확장하는 사건이었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두뇌를 넘어서는 사건이고 이는 대량 실업은 커녕, 일반 노동자들의 삶을 크게 개선할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당연히 연산속도도 차이가 나는 것 처럼 보인다. 47,964.61^988,17.554와 같은 수학연산은 AI는 커녕, 간이계산기조차 인간의 뇌 보다 빠르니까. 하지만 사칙연산이 아닌 다른 다양한 정보처리에서도 과연 그럴까. 예를들어 아이유와 신봉선의 사진을 보여주며 누가 더 아름다운 얼굴인지 판별하는데 딥러닝으로 학습한 AI가 과연 인간의 뇌보다 빠를까? 기본적으로 뇌에서의 정보처리 역시 전기신호로 이루어지는데. 여전히 AI가 더 빠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는 바가 없어 잘 모르겠다.

지독한 대중의 지독한 오류

사람들은 좌파의 내로남불을 비난하지만, 그들 역시 지극히 이중적이다. 영리한 이들은 조국처럼 그 간극을 파고 들어 이익을 취하고 현명한 사람들은 그런 대중의 특성을 잘 활용해서 공공의 선을 이룩하겠지만 내 재주는 그 이중성을 꼬집어내서 조롱하는 것, 딱 그 선에 멈춰있다. 그리고 이는 내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자 이제 또 이 고약한 취미를 풀어볼까.


1. 최저임금과 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또래들 중 최저임금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이들은 대부분 IT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댓글로 경제학자들의 기고나 외신의 논평을 붙여줘도 그들과의 논쟁은 늘 "사람의 노동력에 그정도 값을 못 주냐"며 경제학이 차지해야할 영역에 도덕을 쑤셔넣으며 끝나곤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택시업계가 타다와 분쟁을 시작하자 돌연 태도를 바꾸어 뒤쳐진 노동자들은 도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이 가슴 따듯한 그 인본주의자들을 냉철한 신자유주의자들로 탈바꿈시켰나.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과는 반대로 나는 우리나라 택시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교통 시스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1인당 GNI 대비 택시값을 고려하면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할 뿐더러 택시 요금 체계는 수요가 많은 시간에 빙빙 돌지 않도록 설계되어있다. 물론 나 역시 늦은 밤 연달아 승차를 거부당하거나 괴팍한 택시기사와 논쟁이 붙을 때면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주먹을 불끈 쥔 적이 한 두번이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택시는 완벽하지 않아도 상당히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2호선을 제외하고 죄다 적자인 지하철을 생각해보라) 당신이 택시를 거지같다고 느끼는 이유는 사실 당신이 거지같은 요금을 내기 때문이다. 당신이 봉천동에서 신사역까지 10만 원씩 내고 택시를 부른다면 그대를 모시기 위해 집 앞에 택시가 줄을 설 것이며 기사는 흰색 장갑에 턱시도를 입고 하차하는 당신의 문까지 열어줄 지 모른다. 서비스는 가격에 비레하니까. 못믿겠다면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에 강남역 사거리에서 오만원짜리 네장을 꺼내고 봉천동 이십만원! 을 외쳐보라, 대한민국에 당신을 거부할 택시는 없다.

이미 가격 대비 극한의 효율을 보이는 택시업계에 타다가 뛰어들자 운수노조는 크게 반발했다. 대중과 언론은 그들을 자기 밥그릇을 위해 시대에 역행하는 악당으로 묘사하지만, 도대체 타다가 무슨 시대적 변화나 혁신을 가져왔는가. 그냥 돈 많은 IT업계 자본가가 목돈 뚜드려 박아 적자를 메우고 여객운수법을 우회하기 위해 디젤 SUV를 동원한 것을 제외하면 기존의 택시와 다를 바가 하나 없다. 타다의 서비스에 비해 요금이 저렴한 것은 대주주가 남의 돈을 끌어다 신명나게 손실을 내는 덕분이지 혁신 때문이 아니다. 게다가 나 역시 타다를 애용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기존 택시들의 효율성에 대해 더욱 감탄하게 된다. 먼 거리를 갈 수록, 바쁜 시간대일 수록 타다는 항상 기존 택시보다 느리다. 어떻게 아무런 인센티브가 없는 월급제 기사들이 목구멍이 검찰총장인 기사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길을 찾고 운전하겠나. 쿠팡의 손실이 매출에 비례해서 늘어나듯, 타다의 손실 역시 그리할 것이다. 대주주들이 무엇인가가 잘못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대중은 돈많은 부자가 택시기사들을 죽음의 경쟁으로 내모는 것을 보며 도태된 노동자들은 망해야 한다고 외치고, 운수노조가 택시요금을 인상하라고 주장할 때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지만 당신들이 매년 두자릿 수로 최저임금을 옹호한다면 왜 5년에 한번 택시요금이 인상하는 것에 그리 야박하게 구는가. 택시기사들도 노동자 아닌가. 셔츠 위에 니트를 입고 sns에 아름다운 글빨로 최저임금을 예찬하던 좌파 IT 종사자들이 갑자기 신자유주의자가 되어 운수노조를 씹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기 돈이 나가니까. 남의 돈으로 올리는 최저임금은 정의로운 것이고 내 돈 나가는 택시요금은 동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엔 논리도 지능도 정당성도 없다. 그냥 멋있어 보이고 싶으면서도 빈티나는 구두쇠 멍청이가 한명 있을 뿐.


2. 분양원가 공개와 노동원가.
집값이 오를 때마다 현대교육을 덜 받은 멍청이들이 늘상 외치는 단어가 있다. 분양원가 공개. 지금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정부가 멍청한 정책을 써서 그런것이 아니라) 건설사들이 원가를 뻥튀기해서 턱없이 높은 분양가를 매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사비 지출 내역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나면 분양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쓰면서도 한숨이 나오는 이런 멍청한 주장을 펼치는 똥멍청이들에겐 매가 답이다. 하지만 무식한데 용감하면 위험하다고, sns를 둘러보다 보면 그런 똥멍청이들의 주장에 넘어가는 또다른 똥멍청이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달려있다.

그 저변에는 모든 물건은 제 값을 주고 팔아야지, 수요가 늘어난다고 해서 제 값 이상의 가격을 매기는 것은 사악하다는 믿음이 끼어 있다. 현대사회가 시민들에게 교육의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원시시대와 별반 차이 없는 뇌를 학습시켜 현대사회에 걸맞는 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함인데, 저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분명히 교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니 감방에 보내야 하지 않을까. 만약 같은 논리를 그들의 노동시장에 적용해 보자. 4인 가구가 하루에 필요로 하는 칼로리는 약 8,000Kcal이고 수분은 대략 7-8L 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 몇몇 무기질과 비타민을 더하면 대충 한 끼 식비는 교도소나 학교의 식비보다 쌀 것이다. 어차피 모든 공교육은 무료니 빼고 사람이 필요로 하는 최소 거주공간 등등을 계산하면 그들의 제공하는 노동력의 원가를 산출할 수 있다.(대충 계산해보면 한달에 75만원이 채 안된다.) 이런 노동원가의 수준으로 삶을 꾸리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노동의 원가는 설국열차에서 프로틴 바나 처먹는 식생활 기준으로 계산되어야 하고, 그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우리 모두는 사치와 허영의 삶을 사는 것인가? 만약 사측이 저런 노동원가를 제시하면서 당신의 월급을 깎겠다고 하면 그게 깎아 지겠는가. 하지만 토지정의연대 같은 조직에는 이런 머리 나쁜 미친놈들이 가득하다. 저들이 노동을 팔고 주택을 사는 입장이라 다행이지 이 인간들이 만약 주택을 팔고 노동을 사는 건설사 사장이었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겠는가.


3. 기회주의자들의 평등
사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평등의 추구가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여러 심리학 실험에서도 증명된다. 심지어 인간 뿐 아니라 긴꼬리원숭이조차도 분배와 평등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인간은 그 평등의 영역을 선택적으로 적용한다. 평등을 외치는 모든 사람들은 "나보다 잘 사는 사람과의 평등"을 외치지 그 반대를 외치진 않는다. 진보성향을 지닌 노원구나 일산 덕양구의 주민들 역시 지구촌 상위 10%안에 드는 부유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가난하고 못사는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사람들과 평등을 외치지 않는다. (그러면서 세계시민정신을 배반한 트럼프는 가열차게 깐다) 물론 청담동이나 대치동 주민들도 이건희 앞에서는 평등을 외칠 것이다.

결국 평등을 외치는 사람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사람들을 삥 뜯는 달건이들이나 다름없다. 재산을 n등분 하는 바운더리를 교묘하게 설정해서 자기들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가도록 설계하는 그 기회주의자들이야 말로 현대판 타짜다. 그들의 그럴싸 한 sns포스팅들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호구를 찾아 화투를 챡챡챡 섞는 고니의 싸다구를 짝짝짝 후려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믿는다. 평등을 외치는 목소리가 강할수록 탐욕적인 속물들이라고. 평등을 더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강남에 등기치고 싶어하고 렉서스나 벤츠를 몰고 싶어하며 자녀들은 미국의 명문사립에 보내고 싶어하는 가장 지독한 속물들이다. 내가 우러러 볼 평등이란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과 자신의 것을 나누는 이들 뿐인데 그런 사람들은 죄다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나머지 잔챙이들은 죄다 냄새나는 꾀죄죄한 기회주의자들일 뿐.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런 멍청이들을 보고 조롱하고 경멸하고 비웃는 데에 큰 즐거움을 느끼는 변태니 뭐 어쩌겠는가. 계속 이렇게 낄낄거리고 웃다 화내다 울어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