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16.

영화 블랙머니 후기-정신병 상담은 129 구급센터로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조현병의 대표적 증세는 바로 피해망상증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고 속이며 고통을 주고, 심지어는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믿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피해망상증 환자들은 주관적인 경향이 강해 논리적으로 설득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더구나 망상이 계속되면서 점차 현실감을 잃어버리므로, 그 생각이 틀렸다고 설득할 경우 오히려 망상이 더욱 굳어지고 위협적인 행동을 하게 되므로 병원에 방문해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메가폰을 잡고 영화를 찍을 것이 아니라.

과거 국가부도의 날을 보며 한국영화 부도의 날을 걱정했는데(링크), 영화계 사람들은 집단으로 외국인에게 돈 떼먹히거나 홍대에서 뭐 한대 맞은적이라도 있나, 도대체 왜 이런 편집증에 사로잡혀있을까. 영화 블랙머니 역시 그 망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그 유명한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2003년에 인수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픽션이라고 하지만 감독과 배급사는 대놓고 론스타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광고했다.) 이 사건은 이 블로그의 세번째 글로 다룰 만큼(링크) 한국정부와 여론이 국제적으로 추태를 벌인 사건이고, 이를 통해 수많은 투자자들은 왜 대한민국이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지만 여전히 개도국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던 사건이다. 그리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셔야 할 감독과 작가들은 이 영화를 찍으며 사실관계까지 왜곡하고 있다.

먼저 영화는 자산 70조짜리 은행을 고작 1.4조에 팔아치우는 것이 말이 되냐며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수도 없이 분노한다. 그리고 회계나 재무 수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대사를 통해  영화의 제작자들이 얼마나 회계와 금융에 까막눈인 사람들인지 깨달았을 것이다-단 한줄짜리 대사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담겨있는가. 먼저 기업의 가격은 자산이 아니라 거기서 부채를 제외한 자본에 달려있다. 10억짜리 집에 9억짜리 전세가 들어있다면 매매가는 1억이어야 하지 10억이 아니다. 게다가 영화에서 내내 BIS(자기자본비율)를 운운하면서도 이 감독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 자기자본비율이 8%라면* 70조짜리 은행의 자본은 대충 5.6조 정도(실제론 그보다 높다)가 되고 매각가는 그 자본에 맞게 결정되어야 한다. 이 영화를 만드신 분들의 참신한 회계법에 따르면 열배의 자산가치(700조)를 지닌 리만브라더스는 외환은행 매각가의 반값인 1.5조에 팔렸는데 그럼 리만 인수를 추진했던 이명박 가카는 론스타를 뛰어넘는 투자의 귀재셨다는 말인가.

왈가왈부 할 것 없이 기업가치를 판단할 가장 확실한 근거는 바로 주가이다. 그런데 2003년 포부터 인수를 발표하기까지 외환은행의 시가총액은 1.8조에서 2.6조로 단 한번도 론스타가 매입한 기준인 2.8조**까지 오른 적이 없다. 되려 론스타는 상반기에 거래된 수준보다 더 비싸게 매입했다. 이는 일반적인 수준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한 것으로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헐값에 매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가장 강력한 반증이다. 누구든 정말로 당시 외환은행의 기업가치가 저평가되어있다고 믿었다면 그냥 증권사 HTS를 켜고 외환은행 주식을 매수하면 되지 않았는가. 확실한 저평가인데도 안 산 사람은 바보고 2003년에 바보였다면 2019년에도 여전히 바보일 테니 그들의 말은 무시해도 된다.
론스타 매각 당시 외환은행 주가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실제 상황은 피해망상증 환자들의 기억과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2003년 당시, 정부의 소비촉진정책 중 하나로 카드사용이 급격하게 늘어나다 부실이 커져 신용경색이 발생하자 외환카드를 비롯, 여러 카드사와 캐피탈사의 부도위험이 빠르게 증가했다. 대부분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이미 대량의 부실채권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터라 외환카드를 떠안고 있는 외환은행을 매수할 후보가 없었다. 심지어 지속적인 인수 압박을 받던 국민은행의 김정태 행장은 공개적으로 "금융 당국이 외환은행 인수를 강요한다. 부실을 떠안기려는 거다. 그랬다간 국민은행도 같이 망한다"고 일갈하며 정부의 인수 압력을 거부하기도 했다. 마땅한 인수후보를 찾지 못한 금융당국은 눈을 해외로 돌렸지만 부실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도 못하는 작은 은행을 인수할 후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당시 론스타가 관심을 보였지만 그들은 사모펀드인 자신들의 은행 매입을 정부가 허락해 줄 것인지 반신반의했고(어느 나라나 은행의 대주주가 되는 데에는 여러 제약조건이 존재한다), 하루바삐 인수후보를 찾아야 했던 금융당국은 이 매각이 성사되도록 스스로 편법을 찾아 준 것이다.

외환은행의 주당 순이익
우여곡절 끝에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매수해서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이끌었고 몇년동안 막대한 적자를 내고 부실채권을 떠안던 이 은행은 매년 꾸준히 흑자를 내는 기업으로 다시 탄생했다. 심지어 리만금융위기에도 흑자를 냈으니 HSBC같은 국제금융그룹이 왜 욕심을 내지 않았겠는가. 처음에 론스타의 외환은행인수를 반대하던 노조는 막상 외국인 행장 아래서 복지가 업계 최고 수준으로 개선되자(당시 외환은행의 여성직원 비율과 근속년수는 모두 업계 최고) 이후 론스타가 은행을 팔고 떠나는 것에 극구 반대했다. 이는 결국 주주-회사-직원이 모두 이득을 본, 교과서에 실려야 할 가장 성공적인 인수합병이었다. 자산-부채가 뭔지도 모르는 노망난 감독이 갑자기 등장해서 재를 뿌리기 전 까지는.

론스타의 실책이나 불법행위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애초에 허가를 내 줄테니 외환은행을 매입해달라고 나선 것은 은행의 파산을 막고자 했던 금융당국이었고 론스타가 제시한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에도 외환은행을 인수하지 않겠다며 달아난 이들은 한국의 금융기관들과 그 주주들 아닌가. 모든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르고 리스크가 큰 만큼 큰 보상이 있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론스타는 아무도 떠안지 않던 위험을 떠안았고 그 대가로 큰 수익을 내었다. 어려울 때엔 콧배기도 보이지 않다 잔치판에 갑자기 뛰어들어 먹튀 운운하던 저 무리들은 과연 외환은행이 파산해서 론스타가 투자금 대부분을 날렸더라면 보상해주라고 했을까. 그 저변에 깔린 심정은 정의감도, 공정성도 아닌 그냥 천박한 배아파리즘에 불과하다.

그 천박한 감정이 지속되다 보면 피해망상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망상증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결함이나 불만을 다른사람에게 투사해서 그들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믿게 된다. 이 영화를 찍은 정지영 감독은 73세의 고령의 감독으로 본디 "여자의 함정",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와 같은 통속물이나 만들던 사람이었는데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하지 않다 갑자기 "남영동 1985", "천안함 프로젝트", "국정교과서 516일" 과 같이 정치색이 강한 영상들을 제작하며 충무로로 복귀했다. 혹시 이 감독은 지난 날 자신의 실패와 부진이 외국계 자본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보수진영 때문이라고 믿는 것 아닐까? 이 노인은 자신의 망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화에서 재경부 관료들과 론스타를 살인까지 불사하는 악당으로 묘사했는데 백번 양보해서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고 해도 그게 살인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투자자와 공직자를 살인자로 몰아가는 그의 정신상태는 결코 건전하지 못하다. 그는 메가폰을 잡기 전에 정신과 의사를 만나야 했다.

혹시나 그의 치료에 도움이 될까 몇줄 더 보태고자 한다. 론스타 매각은 참여정부에서 추진된 일이고, 론스타 매각에 관여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변양균 전 청와대 비서실장(신정아가 처녀라고 주장했던 바로 로맨틱 가이)은 모두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등용되거나 임명된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꼭 론스타 사태를 비난해야겠다면 저어기 민주당으로 찾아가시라. 아니면 사실 감독이 숨겨진 꼴보수라 앞서 언급했듯 리만인수를 추진한 이명박 가카를 떠받들며 민주당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것일까. 나도 헷갈린다. 그냥 나이도 지긋하신 분이 잘 모르는 금융사건은 이제 그만 다루시고 본디 전공이시던 통속물이나 계속 제작하시는 것은 어떨까. 그게 더 재밌어 보이는데.


정지영 감독의 과거작 "까"의 포스터와 네티즌 평점(3.45)
참고로 이 영화의 평점은 희대의 망작 리얼(4.23)이나 성냥팔이소녀의 재림(4.15)보다도 낮다.


*자기자본비율을 산정할 때에는 자산의 위험도에 따라 각기 다른 가중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BIS는 실제 자본비율보다 대체로 낮다.
**론스타는 지분 51%를 약 1.4조에 매입했으니 기업가치의 100%를 약 2.75조로 본 셈.

댓글 10개:

  1. 부러진 화살에서도 자기 좋을 대로 붙여넣은 데마고그 같은 영화를 만든 전적이 있습니다. 초범이 아니죠. 진중권 교수의 평이 모든걸 깔끔하게 정리해줄 정도인데 1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변한것 없이 만성적이네요. 사실 도통 변하지 않는게 문자 그대로 꼴보수가 맞는 듯 합니다.
    그리고 더 끔찍한건 저딴 세대, 어른들 아래에서 배운 것들이 지금의 광신적인 대깨들의 주력(하나의 괴물을 이루는 하나의 세포들 같은)이라 생각하면 정말 해악 중 해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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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고보니 저 노감독이 아주 옛날에는 할리우드 영화가 직접배급으로 들어온다는 이유로 극장에 뱀을 풀은 적도 있었죠. 아마 NL을 80년대부터 엑기스만 뽑아내고 발효까지 시켜서 정수만 남긴다면 딱 저런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보딱지를 달고있지만 해외엔 무조건적으로 배타적이고 폐쇄성 강한 민족주의적 의식. 조선사람도 아닌 폐쇄적 한반도 원시인이란 말이 가장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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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이코패스시네요. 본인이 남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받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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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금도 은행, 금융주 p/b 0.3~0.5 수준입니다. 이것도 2016년 하나금융 주가가 2만 이하일때랑 비교하면 많이 오른거죠. 당시 외환은행은 적자였고, KB쪽에서 인수하면 같이 망한다고 할 정도로 폭탄이었으니 당연히 p/b값은 더 낮았을겁니다. 말이 자산 70조지, 금융회사들 부채비율 생각하면 순자산은 수 조원 수준일테고, p/b값 낮고, 또 전체를 인수한게 아니라 지분 51%만 인수한 거 생각하면 실제 가치는 훨씬 낮았고 본문에 언급하신 대로 당시 주가보다 비싸게 프리미엄 얹어서 준 게 맞습니다. 이런데도 론스타가 먹튀라 하는 사람들은 크게 3가지 종류 같습니다. 하나는 반미, 반기득권, 반자본주의 성향을 가진 좌파쪽에서 외세 자본과 당시 기득권 세력이 담합한 국부약탈로 보는 쪽입니다. 그런데 정작 찾아보니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한 건 노무현 정부고, 거기에 이의를 제기한 건 박근혜 정권 당시 초이노믹스로 유명한 최경환 의원이더라고요... 두 번째는 사건에 대해 잘 모르지만 단순한 민족주의적 애국심으로 한국vs외국기업이라, 무슨 스포츠 국대 응원하듯이 응원하는 부류입니다. 가장 일반적이고 많습니다. 세 번째는 먹튀가 아니란 진실을 알면서도 일단 우리 세금으로 배상해야하니 아까우니 진실을 호도하면서 선동하는 사람인데 이게 자기나름에는 애국심으로 한다지만 제일 안 좋은 부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경에서도 당시 주가보다 14% 높게 산 것 등 어느정도 지적했는데 댓글보면 암담합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4464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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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시 우간다만도 못한 금융인식 대한민국입니다 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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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진짜 네이버영화 리뷰에 올려주세요 ㅠ 국민들이 잘못된 정보에 세뇌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탐욕의 별 다큐를 보고 론스타가 잘못한걸로만 알고있었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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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분명히 영화 시작할 때 실제 인물과 연관없다고 친절하게 자막을 깔아줬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큐나 뉴스보도로 착각하는 클라스. 어벤져스 보고 역사왜곡이라 할 분들이시군요. 그러면서 선민의식 착각은 오지구 지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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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감독과 주연배우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IMF 이후 외국자본이 국내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후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난 '론스타 사건'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네요. 뿐만 아니라 영화제목의 연관검색어에 외환은행이나 론스타가 뜰 정도면 영화를 다큐로 받는 것이 저 하나가 아닌가 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분노하는 이들에게도 실화와 무관하다고 전해주세요. 무엇보다 이 판국에 정말 허구임을 밝히고 싶다면 감독이 나서서 창작이라고 좀 밝혀야 할 것 아닌가요? 뒤에서 손익분기점 따져가며 인터뷰에사 분노를 부채질할게 아니라요.

      아니면 초반의 실제 인물과 상관 없다는 말은 뽀르노 같은 작품이나 찍던 감독이 좌파코인타고 돈좀 벌어보고싶어 사기치면서도 소송당하긴 무서워서 영화 시작할때 변명부터 던지고 언플하는 걸까요? 거기에 무식과 왜곡을 지적하는 것은 선민의식이 아니라 양심 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댓글을 남기는 댓글러님도 저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닐테니 마찬가지로 모든일이 잘 풀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사이코패스들에게 살인자 범죄자로 매도당할 때 누군가 나서서 선민의식 오지고 지리게 해서 진실을 밝혀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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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기 오실게 아니라 영화사나 감독한테 가서 포스터에 붙은 '실화극', 모피아의 '실체' 그리고 영화 말미에 기소당한 사람은 0명이다 같은 문구들 같은걸 실제랑 연관없으면서 왜 넣었냐고 따지셔야할 듯 합니다. 배우나 감독 관계자들도 신나서 인터뷰에 잊지 말아야할 이야기, 꼭 알아야할 이야기, 실체를 고발한다 운운하면서 진실을 퍼트려주세요~ 마인드로 말하는데 그렇다면 관계자들은 실제도 아닌걸 뭘 그리 퍼지길 바라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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