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31.

진짜 진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입니다. 똑바로 읽어도 우영우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하지만 내가 이상한 변호사라고 불리는 것은 자폐가 있거나 행동이 어눌해서가 아닙니다. 자폐아라고 하지만 나는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니까요. 한번 보기만 해도 모두 기억하는데 어떻게 일반인들이 저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중간고사든 변호사 시험이든 제게는 오픈 북이나 다름없어요. 게다가 저는 무척 창의적인 변호사에요. 신참인데도 불구하고 경력이 십 년이 넘는 베테랑 변호사들마저도 간과하는 쟁점을 파악하고 즉흥적으로 법정에서 변론에 나서도 훌륭하게 해내는 슈퍼스타입니다. 필드 위에 손흥민이 있다면 법정에는 저 우영우가 있는 셈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무척이나 모순적인 존재니까요. 아마 여러분들도 느끼고 있을 거에요. 제 능력은 로스쿨에서나 변호사 시험을 치르는데 대단히 유리해요. 이건 장애가 아니라 사실상 초능력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어쩌면 서울법대 창설 이래 최고의 천재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약간의 핸디캡이 있습니다. 펭수를 좋아하던 김정훈 씨나 지적 장애를 가진 신혜영 씨에 비하면 아주아주 사소한 장애이지요. 게다가 사회생활도 잘하고 직장에서는 최고의 능력자입니다. 또 얼굴까지 아주 예쁜 변호사입니다. 그래서 사내연애도 합니다. 회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직원이랑요. 심지어 사실 나는 회장님의 숨겨둔 자식이지요. 천재도 아니고 로스쿨도 못 가고 회장님 자식도 아니고 사내 훈남과 연애도 못하는 여러분들은 정말로 이런 저를 보며 동정심을 느끼십니까? 그것 참 신기한 일이네요. 아니 이 경우 이상하다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존재뿐만이 아닙니다. 제 말과 행동에도 모순이 있습니다. 저는 소덕동을 관통하는 도로의 공사를 막아달라는 사건을 맡아 승소했습니다. 왜냐하면 소덕동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팽나무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서로 돕고 웃는 이웃들이 어울려 지내는 아름다운 동네이지요. 그런 소덕동을 개발하겠다니요.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 공사를 좌초시켰어요. 아주 뿌듯한 일입니다. 이제 신도시 거주자들은 교통체증에 시달릴 것이고 이미 몇 년간 진행된 공사를 정지시킨 덕에 세금도 낭비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소덕동에 거주하는 총 2513가구 중 과반이 넘는 1557가구가 개발사업에 찬성하며 보상금을 받기를 원했지만 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소덕동을 대표해서 이 일을 막았습니다. 아, 모르셨습니까? 저는 신도시에 어마어마한 땅과 건물을 가지신 최한수 이장님의 변호사입니다. 법무법인 한바다에 수임료를 내는 건 지역 유지이신 이장님이지 저 소덕동 주민들이 아닙니다. 아마 저분들은 길도 좁고 교통도 열악하고 인프라도 부족한 이 시골 동네에서 평생 사시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깡촌은 계속해서 깡촌으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물론 저라면 여기에 안 살겠지만요. 여기엔 김밥집 배민도 안되고 고래인형 까페도 없어요. 그렇게 저와 부자 이장님은 소덕동의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겠다며 어리석게도 토지보상금을 바랬던 저 1557가구의 주민들에게 따끔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내 사정이 되면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살던 강화도가 개발되어 친구 아버지가 보상금을 받았는데 형들이 모두 가져갔다고 합니다. 모처럼 대박이 터졌는데 그 행운을 자기들이 챙기려 하다니. 정말 나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는 기지를 발휘해 그 돈을 되찾아옵니다. 네 친형들을 법정에 세우고 함정에 몰아넣어야 할 정도로 돈은 중요해요. 이건 내 돈이니까요. 돈은 매우 중요해요. 우애를 지키겠다고 돈을 포기하는건 어리숙한 바보예요. 이제 동동삼씨는 그렇게 받은 보상금으로 내 친구 동그라미에게 서울 역세권에 번듯한 신축 아파트도 사주고 비싼 도시의 물가도 걱정하지 않도록 생활비도 넉넉하게 대줄 수 있어요. 음? 지금 1557가구의 소덕동 주민들 이야기를 왜 꺼내는 겁니까? 당신은 지금 본 사건과 전혀 연관성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말 못 들어 보셨습니까?? 뒷통수 맞고 싶습니까?  

어린이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는 개똥철학을 설파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참. 기억나십니까? 제가 첫 의뢰를 수임 받았을 때 의뢰인은 저를 못 미더워 했어요. 하지만 정명석 변호사님께서 이 몸이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라는 것을 알려줬어요. 그제서야 의뢰인은 저에게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궁지에 몰릴 때면 나는 서울대 로스쿨 수석이라는 타이틀을 곧잘 써먹었습니다. 이처럼 간판의 힘은 대단합니다. 보기보다 많은 것을 설명해 주거든요. 나이키나 애플이 브랜드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학부 친구들과 로스쿨 동기들은 오랜 시간 동안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와 로스쿨에 왔어요. 물론 그렇게 공부해 봤자 읽기만 하면 다 기억하는 저를 이길순 없었지만요. 

어린이는 놀아야 합니다. 하지만 맨날 노는 어린이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어요. 네 그렇습니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될 수 없어요.(어린이 해방군 여러분들은 저 같은 천재가 아니잖아요?) 의사도 될 수 없어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는 건 어려워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동네에 집을 사는 것도 힘들어요. 인스타에 멋진 사진들을 올리는 삶을 살 수도 없어요. 물론 그렇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배우들은 촬영이 끝나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로 돌아가요. 이젠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해도 사기 힘든 집입니다. 작가들은 "어린이는 놀아야 합니다"라는 대사를 쓰고 작업하던 노트북을 덮자마자 나서 지인들에게 전문직들과 소개팅을 좀 주선해 달라고 카톡을 보냅니다. 이왕이면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이라면 좋겠어요. 물론 답장은 없어요. 시청자 여러분들도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나, 이상한 우영우가 변호사라서에요. 이상한 고졸경리 우영우. 이상한 쿠팡맨 우영우. 이상한 백수 우영우. 이런 드라마였다면 벌써 망했어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한국 드라마는 주로 세속적 욕망을 자극해요. 그걸 아주 잘합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요. 근데 우리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우영우라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수퍼맨을 창조해놓고 거기에 장애를 한 스푼 얹은 뒤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요. 그리고 일반 장애인들이 겪지도 않을 상황을 가정해서 사회가 부조리하다며 따끔하게 일침을 가해요. 형들을 고소해서 보상금을 타내는 이야기를 하다, 돈 많은 이장 아저씨가 보상금을 받고 싶다는 동네 주민들의 의사를 묵살하는 이야기를 미화합니다. 나보고 서울대 로스쿨을 나온 천재라고 동네방네 광고할 때는 언제고, 또 곧장 자식을 서울대 보내려고 애쓰는 부모님들을 악당으로 그려요. 갑자기 판자촌이 아름답다며 재개발을 막던 박원순 아저씨나 특목고를 없애자면서 뒤로 자기 아들 둘은 특목고에 보낸 조희연 아저씨 냄새가 나요. 킁킁. 제 이름은 우영우,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지만 드라마는 그렇지 않아요. 앞에서 볼 땐 재미었는데 뒤에서 보니 제작자의 욕망과 컴플렉스를 얄팍한 도덕적 우월감으로 덮어 사회에 일침을 가하겠다는 의도로 범벅되어 있어요. 정말 이상해요. 아. 그래서 제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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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에 딴죽을 걸자면 한도 끝도 없지. 게다가 사회경험도 적고 이해도 얕은 작가들이 작품에서 드러내는 철학적 빈곤이 뭐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니까. 게다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다큐가 아니다. 하지만 오락영화와 드라마를 양산하는 작가와 감독들이 자꾸 그 선을 넘나드는 시대에 관객과 시청자들에게만 오버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나도 그 선을 넘어 다큐라는 돋보기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들여다보련다. 

서울대 로스쿨, 젊은 직원들조차도 수 억의 연봉을 받는 로펌, 그리고 회장님의 숨겨둔 자식이라는 설정까지 이 드라마는 대중들의 세속적 욕망을 한껏 자극하는 장치들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매 화에서 작가는 그 세속적 욕망을 부정하는 사건들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그 점에 있지 않을까. 토지보상은 드라마에서 뜻하지 않은 횡재를 의미하는 클리셰나 다름없다. 이 드라마에서는 그 사건이 두 번 등장하는데 작가는 이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그 차이는 바로 관찰자의 시점에 있다. 삼형제의 난에서는 작가는 보상의 수령자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고 소덕동 이야기에서는 보상금 수령자가 내가 아닌 제3자니까. 우리의 불편함은 입장에 따른 작가의 태도가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돈을 욕망하는 것은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동그라미와 아버지의 입을 빌려 그 욕망을 표출한다. 하지만 수령자가 내가 아닌 타인이 되니 작가는 갑자기 도덕이라는 몽둥이를 꺼내 그들의 욕망을 매섭게 후려치기 시작한다. 마치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더 나아가 작가는 소덕동을 마치 인디언 보호구역이나 민속촌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묘사한다. 그곳에서 소덕동 주민들은 잘 꾸며진 어항의 관상용 물고기들처럼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이 보기 좋도록 정겨운 시골 마을을 연출한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던가. 인디언들도, 또 구한말의 오지 주민들도 지하철과 24시간 편의점, 영어유치원 그리고 신선배송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반길 것이다. 소덕동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몰락하는 1차 산업에 종사하는 대다수 주민들에게 그런 편의는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그 사람들의 삶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치 주말에 차를 몰고 용인 민속촌을 방문한 관람객의 시선으로 #대박핫플 #소덕동을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언제 다시 들릴지 모르는 그 관광지를 보존하기 위해 주민들의 미래를 나락으로 보내는 일조차 서슴지 않는다. 그런 시각은 오로지 자신의 옛 추억을 재현하기 위해 오징어 게임을 열어 455명의 지원자들을 폭력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오일남의 정서와도 이어져있다.   

작가의 모순적 시각은 드라마가 설파하는 교육관에서도 드러난다. 작가는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 로스쿨과 고학력 고소득자들인 변호사를 소재로 삼아 시청률을 올리면서도 그 위치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과 경쟁에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다. 나 역시 경쟁적인 한국 사회가 바람직한지 의문이지만, 이런 과열된 경쟁은 대중들이 가진 욕망의 결과일 뿐이지 결코 원인이 아니다. 물론 내신 5등급인 학생이 2년제 전문학교를 졸업해 소덕동 인근의 빌라에서 살며 중소기업에 다녀도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밋밋한 스토리는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다. 인기 드라마에는 마치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처럼 대중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꿈틀대야 하는 법. 그래서 작가는 스토리에 서울대 로스쿨과 고소득자들이 모인 로펌, 그리고 회장님의 숨겨둔 자식을 담았다. 그것들을 욕망하지 않는 이가 어디에 있으랴. 우리 모두는 같은 것을 바라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경쟁이 발생한다. 이를 부정하려면 욕망 또한 부정해야 하는데 제작자와 작가는 대중들의 그 욕망에 기생하면서도 그 결과물은 부정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고 솔직한 우영우와는 달리 드라마 너머로 보이는 작가가 앞과 뒤가 무척이나 다르다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 권위주의의 시절, 정부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창작물에 정부가 원하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넣도록 강요했다. 하지만 그런 메시지들이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핍진성을 무너뜨리면서 등장하자 되려 설득력은 반감이 되고 시청자들은 종종 그 메시지들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곤 했다. 오늘날 이 이념적 강압은 진영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관객들의 눈은 마치 쫑긋 세운 강아지의 귀와 같아서 작가가 완력을 쓰는 순간 그 의도를 기민하게 알아채곤 한다. 작가나 감독 혹은 배우가 이념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그대들에게도 그럴 자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평균적인 대중들보다도 교육 기간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사람들이 따끔하게 일침을 놓겠다며 송곳과 대본을 들고 사회의 이곳저곳을 푹푹 찔러대는 것은 정의감이 아닌 도덕적 우월감을 내보이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의 욕망이 다른 욕망을 저열하다며 훈계하는 웃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작가들은 이제라도 마음을 다잡고 차분히 앉아 훌륭한 오락 TV 드라마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 드라마는 정말로 잘 만든 오락 드라마니까. 

댓글 71개:

  1. 무언가를 두고 이거는 '어느 시점에서는 맞는거야' '누군가 입장에선 정답이야' 라며 다양성과 개성이라는 미명하에 모든걸 정답이라고 덧붙여버리는 지금이라고 종종 느낍니다. 반면에 정답이라는 라벨만 던져두고 해결하려는 고민도 의지도 없다는 이면 또한 느껴지는 지금이지요. 하지만 욕망앞에서는 서로 방향만 다르지 똑같은 속성을 선택하는 주제에 다양성이라는 정의를 남발하려드는게 일상에서 보기보다 쉽게 접해지는데 결국 욕망앞에서는 모두가 똑같을 뿐인 것을 지켜보면서 조용히 조소하는 삶도 어쩌면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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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면에 대해 다시한번 깨닫게 되네요. 제 자신도 빗겨갈 순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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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는 그래서 대놓고 욕하라고 만든 캐릭터인 권변이 가장 잘 뽑힌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완전기억능력을 가진 초인을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으로 바라보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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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저도 권민우 캐릭터가 없었으면 참 보기 싫었을 것 같습니다. 8회 이후로는 태어난 신데렐라 같은 생각이 들어거 재미가 좀 없어 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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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전체적인 맥락은 공감합니다.

    소덕동이나 방구뽕씨 등의 에피소드 들이 어설픈 건 맞는데 동동삼씨의 보상금 문제는 보상금이 옳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형제간의 공평한 배분의 문제로 접근한 것이므로 소덕동 문제와 결부시켜 그것을 모순이라고 몰아붙이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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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견 타당한 지적입니다. 물론 법적인 쟁점만 보면 그렇지요. 하지만 각 회차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선과 악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법리다툼은 단순히 권선징악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고요. 그런데 문제는 선악을 나누는 작가의 가치관이 지극히 모순적이고 자의적이란 겁니다.

      동동삼 씨에게 공정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를 위해서 형제 간의 분쟁을 만들어 소송을 벌이는 것을 넘어 형들에게 불법을 저지르도록 유도해서 전과자를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왜? 돈 때문에요. 형제 간의 우애? 도덕?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형들은 악당이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중요시하던 공정이 소덕동에서는 철저하게 무시됩니다. 과반 이상의 주민들이 개발에 찬성했는데 과연 그들의 의사를 묵살하는 것이 공정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공정이라는 가치를 내다버린 것은 전근대적인 마을은 선하고 돈을 좆는 사람들은 악하다고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 배경에는 작가의 극히 이기적이고 편협한 욕망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작가의 철학도 궁핍하기 이를 데 없고요. 일례로 몇몇 회차에서 우영우는 과연 내가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이는 법 체계 내에서 변호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지극히 1차원적인 고찰이죠. 그런데 정작 삼형제의 난에서는 의뢰인에게 소송 상대방을 자극해 불법을 자행하도록 유도합니다. 그게 변호사 윤리와 부합하나요? 이것이야 말로 지극히 비윤리적인 행위 아닙니까? 하지만 거기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증거 있습니까?"

      결과적으로 작가는 공정하게 내 돈을 되찾기 위해서는 앞에서 형제도 전과자로 만들고 불법도 저지르고 변호사 윤리도 팔아먹어도 괜찮다고 주장합니다. 뭐 그럴 수 있죠. 돈은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그 세계관에서 불과 몇 화 뒤에 공정하게 자기 몫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돈에 눈이 먼 어리석은 이들이라며 일침을 가하고 도덕적 우월감을 내뿜는 것이 모순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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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특정 에피소드에서는 개발을 악한 것 처럼 표현하지만, 특정 에피소드에서는 개발에 의한 이익을 차지하는 것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유도하죠.

      개발을 악하다고 훈계할 생각이었으면 개발 이익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빼거나 주연급 조연과 관련된 이야기로 쓰면 안 됐습니다.

      특정한 소재에 대한 모순적인 내용이 나온다는 게 작가가 철학이 없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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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건좀.. 이병헌이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행상으로 나오지만 리얼월드에선 초부자인데 그러면 우리들의 블루스도 보면 안된다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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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블을 안봐서 내용은 모르겠지만 도덕적 우월감에 기반한 개똥철학 넣지말라는게 핀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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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리얼 월드의 박은빈 씨에 대해 언급한 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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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런 댓글은 글을 아예 이해를 못하신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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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다른 드라마 내용을 이야기하는것은 맞지 않다고 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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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도대체 저 글을 어떻게 이해했길래 이런 수준낮은 댓글이 나올까요? 부자인 배우가 행상을 연기하든, 가난한 배우가 재벌을 연기하든 그런 창작물의 기본적인 배역 설정이 문제가 아니라, 어줍잖은 도덕적 우월주의 + 내가 하면 당연한 권리찾기, 니가 하면 저열한 욕망 같은 내로남불 범벅된 모순 투성이를 지적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우블을 제대로 보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블은 도덕적 우월감에 빠진 작가가 모순투성이 개똥철학 강의하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남편과 딸을 사고로 잃고 나서 하나 남은 아들한테 상처 주면서 까지 굳이 재가한 어머니가 죽기 전에야 아들에게 한다는 말이 그냥 밥 한끼 제대로 먹이고 싶어서 그랬다 라고 덤덤하게 얘기하는 그런 드라마입니다. 부자인 이병헌씨가 행상하는 아들을 연기해도, 금수저로 태어나 손에 물 한방울 제대로 안묻혀 본 김혜자씨가 평생 고생만 하다 죽을 병 걸린 어머니를 연기해도 많은 사람들이 그 둘의 연기에 눈물을 쏟고 공감하는건 그들의 명품연기와 작가의 명품각본,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에 매료됐기 때문이죠. 여기에 어줍잖은 개똥철학 강의 한스푼이라도 끼얹었더라면 절대 그런 공감 못얻었을겁니다. 그러니까 우블의 캐스팅까지 끄집어내서 이 글에 비교하는건 정말 가당치도 않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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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하나의 욕망이 다른 욕망을 저열하다며 훈계하는 웃기는 시대" 정말 공감입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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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인사이트가 대단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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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페미논란, 박원순 헌정드라마 논란 등이 불거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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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한남 74번지에서 할말을 잃었습니다 ㅎㅎ. 하지만 이제 사람들 이런 내용 봐도 필터링 못한다고 생각해서. 겨우 그런거 하나 가지고 뭐 이리 유난이냐 싶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런 것이 하나 둘 씩 쌓여서 비상식이 관습처럼 생각될거 같네요. 이미 지난 5년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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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이번 글 완전 대박났습니다
    서울대에타,펨코,디시 실베 등등 모든 커뮤니티에 선생님글이 히트를 치고 있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다사 선생님 글이 베스트에 뜬 걸 보니 엄청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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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출처만 명기해 주시면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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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타 싸이트에서 이 글을 읽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해당 드라마는 보지 않았지만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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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서울대 대숲에 올라왔는데. 서울ㅐ학생은 퍼온글로 캡쳐뜨여 돌고도는데 좀 웃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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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어린이들한테는 텐텐으로 가둬놓고 공부시키는 것보다는 자연 속에서 놀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작가의 메시지에는 전 공감합니다. 어린이들 교육시키는 것은 지위상승욕구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직 인지 기능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시기에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인지구조를 구성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걸 안 하고 가둬놓고 공부만 시키면 일단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기고요, 시키는 거만 하게 되지 학습동기 유발과 정체성 확립에도 문제가 생기고요, 무엇보다 집중력이 강하지도 못하고 연역적 사고가 제대로 되지도 않는 연령대라 효율조차 떨어집니다. 해당 나이대에 맞는 경험을 쌓게 하는 게 교육이지 무작정 앉혀놓고 공부만 시키는 게 교육일까요? 만4,5세 초등학교 입학이랑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 게 저렇게 가둬놓고 억지로 공부시키는 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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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 동의합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저는 교육이 아닌 경쟁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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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경쟁도 바람직한 선에서 이루어져야죠. 남들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 만들겠다고 그 나이대에 경험해야 하는 것들 다 무시하고 책상 앞에만 앉혀두면 되겠습니까? 교육의 최우선 목표는 아이의 전인적인 성장에 있지 경쟁에 있지 않습니다. 이걸 생각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강제로 책상 앞에만 있게 하는 부모는 자기 욕심이 앞서서 교육의 목적을 도외시하는 거라고 봅니다. 본 드라마에서 비판한 게 이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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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네 그리고 본문의 이야기는 이율배반적으로 작가와 시청자들은 자신이 비판하는 그런 과도한 경쟁을 거쳐 서울대 로스쿨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욕망하고 소비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전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비하고 욕망하는 대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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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뭔가 싫다 싶었는데 정확하게 분석해주셨어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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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제가 서울대 커뮤니티에 댓글로 글 처음 올렸습니다. 물론 링크걸었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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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작가의 도덕적 우월감과 개똥철학이 얄팍해서 위선적, 모순적으로 드라마에 드러난다는 주장 자체에는 매우 공감합니다. 다만, 토지배상금이라는 소재로 4화랑 7~8화를 묶어서 이율배반적 태도를 지적하려고 한게 개인적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4화( 삼형제 이야기 ), 7~8화( 소덕동 이야기 )는 4화에서는 주인공의 절친이라는 점, 형제들에게 나눠주다가 오히려 빚이 생긴 점 등 최대한 소송과 토지배상금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극적인 재미도 잡았고, 7~8화도 마찬가지로 상대측에서 토지배상금 증액을 내걸지만 실제로 증액이 없을 것이라고 언급되는 등 최대한 이야기의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물론 최대한 그러한 극적 장치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아예 감출 수는 없는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소덕동 이장과 같이) 극적 재미와 전개를 위해 어느정도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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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몇몇 분들이 이 부분을 지적하시는걸 보면 제가 글을 매끄럽게 쓰지 못한것 같습니다. 창피하네요. 하지만 저는 적절한 비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둘은 다른 사안이지만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꽃혀있는지 그 차이를 지적한 것입니다.

      소덕동이야기에서 작가는 소덕동과 팽나무를 선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도덕을 돈을 주고 살 수 없듯 아름다운 동네를 돈을 더 준다고 포기할 수는 없죠. 작중의 쟁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덕동을 보존하는 것이지 적절한 보상금을 따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소덕동에서는 무형의 가치가 보상금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던 작가가 삼형제 이야기에서는 무형의 가치 따위는 언급조차 안하고 유형의 가치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 핵심에는 보상금의 수령자를 1인칭 시점으로 바라보는지, 아니면 3인칭 시점으로 보는지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돈 받을 때엔 주판을 튕기다 남이 돈 받을 땐 감성팔이를 하는것, 좀 이중적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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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형적인 그분들의 내로남불.. 케이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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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ㅋㅋㅋㅋㅋㅋ 이 세상엔 참 우매한 문화적 천민이 많나보네요... 이 드라마 보면서 이런 생각 전혀 안해봤는데 진짜 뭐 동정심에 빠진 루저가 있나보네요 이렇게 길게 쓰신걸보니.... 나이든 사람중에 많은건가??.. 당연히 대중들이 많이 보는 드라마에서 선악구도를 이용해야 기획자가 돈을 벌죠...심지어 당연히 여주가 이뻐야지 장난합니까 ㅋㅋㅋ 뭐 독립영화에요? 미디어와 콘텐츠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인간이라야 뭐 우영우 보면서 모순점이라는 거에 휘둘리겠죠. 귿데 애초에 이 드라마는 별로 모순가득하게 뭔가를 자극하는 편도 아닙니다 ㅋㅋ 그리고 변호사가 변호하는게 직업인거고 모순투성이죠 거기에 스토리를 섞으니 그걸 다루기 힘든거구여... 쥔장님 글 좋아하는데 여기 댓글들이 뭐 너무 웃겨서 한마디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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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례지만 부들거리고 계십니다. 마지막 문장 전까지는 분명 주인장의 이 글을 비판하고 계신데, 쥔장님 글을 좋아하는데 여기 댓글이 웃겨서 한마디 하다니요. 그냥 쥔장이 웃기신 거겠죠. 얼마 길지도 않은 문단 내에서도 자기 답답함에 못이겨 두서가 없으시고 모순이 있으신 걸 보면 '모순'을 이해할 지력이 안되시는 거 아닐지..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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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개천용님 죄송하지만 님이 부들거리시는거 같은데용.. 저는 주인장이 얼마나 주뱐에 드라마 하나보면서 정의가 어쩌느니 장애인 애가 불쌍하다느니 하면서 권모술수를 현실에 없을법한 죽일놈으로 보는 도덕적 우월감에 찌든 천민이 많으면 이런 글을 쓰실까 하는 안타까운 맘에 쓴 댓글입니다. 댓글들 보면 그들과 비슷하게 과잉반응하는게 많죠 님처럼요ㅠㅠ 그리고 넷상에서 두서가 없는걸따지고 그걸로 지력을 운운하는거보니 과잉반응 딱 잘하게 생긴 어르신이시네요. 오늘하루도 화이팅입미다 출근잘하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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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취미생활로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있고, 또 취미생활로 그 드라마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둘 모두에 해당됩니다. 이 글은 어떤 사명감이 아닌 취미로 쓴 글입니다.

      참, 그리고 두 가지 반박하자면 저는 변호사가 모순적인게 아니라 저런 변호사를 창조한 작가의 세계관이 모순적이란 겁니다. 사기꾼을 변호한 변호사가 다음 재판에선 다른 사기 피해자를 변호할 수 있죠. 그게 변호사의 일입니다. 하지만 사기꾼을 변호한 변호사는 나쁘다고 일갈하던 작가가 바로 다음 화에서 사기꾼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기지를 칭찬한다면 그건 모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전 대중들보다 똑똑하거나 사려깊지도 않으면서 일침을 가하려고 드는 작가의 도덕적 오만함을 비판한 것이지 제가 대중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다시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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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네 주인장님 직접 이렇게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에서 작가의 의도 혹은 디렉팅의 작가주의는 미장센으로부터 직접적일수도 있고 우회적일 수도 있죠. 근데 머 그런걸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 두서없지만 좀 적어 보겠습니다. 우선 저는 글을 읽고 광장히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미슐랭도 맛집도 아닌 백종원 레시피 따라하면 나올법한 길거리 평범한 파스타 하나 드시고선 셰프가 내놓은 것을 드신것마냥 비평을 하신 느낌이랄까요. 작가에 대한 원망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세계관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있다해도 있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종원 수준의 레시피를 쓰는 만원도 안하는 값싼 대학로 파스타인데 뭐 세계관의 짜임새야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할 정도라 봅니다.. "파스타"를 구성하기 위한 구성물 및 구조물은 있겠죠. 그걸 우린 세계관이란는 용어를 붙이진 않지 않습니까? /
      우영우는 천재적인 변호사인데, 자폐를 가져 한국인에게는 '무능력할것'이라는 선입견이 덧씌워진 매우 심플한 양면의 캐릭터를 설정해 놓았죠. 심지어 자폐를 가져서 법리해석 또한 컴퓨터처럼 할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죠.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등장합니다. 저는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니클라스 루만에 따른 작동체계에서 가장 우리 윤리의식을 자극하는 작동방식을 띨거 같다고 봅니다.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했고 작가는 그걸 알고서 건드렸다고 봅니다. 저에게는 "저게 옳아." 라고 하기보다 "이건 모순적일 수 있는데 대중들 너네는 우영우 편을 들겠지? 근데 다시 한번 생각해봐. 불쌍해서 정의로워 보이는간 아닌지? 이상하지 않아?"라는 설정을 해둔거 같이 느껴집니다. 왜냐믄 딱히 쌍팡년도 식으로 우영우를 글케 영웅적으로 그리지도 독립영화처럼 인간본연을 파지도 않습니다. 진짜 무슨 컴퓨터 ai 같죠. 옴니버스 형식의 여러 사건을 풀어내면서 적당히 귀엽고 얘기거리 많이 나오게하는 웰메이드라 생각합니다. 근데뭐 이것도 제 개인적 생각이고 그 설정 자체가 대단하다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작가 개인적 견해도 별 관심없구요.
      끝으로 저도 주인장님 글을 좋아해서 늘 홈화면에 놔두고 자주 열어보는데 오랜만의 글 반가워서 좋았구요. 댓글 감사합니다. 재밌는건 저도 뭔가 모를 흥분을 하면서 또 댓글을 적었는데요. 드라마를 보고 혐오감을 느꼈을 다른 사람들의 감정도 제가 댓글을 달 때 그 찰나와 같을지도 모르는데 무시하는듯한 말투는 제 오만이었습니다. 모순적이네요. 인간이 느끼는 참지 못할 무언가에 대한 감정은 제각각이라는 생각을 다시 또 합니다. 변태처럼 댓글 달았네요 ㅋㅋㅋ 즐거운 금욜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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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감사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서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데 그 생각을 나누는 과정 자체가 즐겁지 않나요? 저 역시 직업병 때문인지 글을 때때로 공격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여러 목적 중 하나는 생각을 나누는 것입니다. 댓글 쓰신 분 역시 생각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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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1년 넘게 전부터 들르며 항상 좋은 글 읽고있어서 감사하다는 글 이제야 남깁니다. 깊이있는 글과 통찰력에 언제나 놀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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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방금 막 이 글을 보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더라도 단순 재미로만 시청하고 드라마에서 던지는 메세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지난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되고 인사이트도 넓어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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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반성이라뇨. 저 역시 드라마를 단순 재미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이따금 이렇게 글을 남기기도 하고요. 오락 드라마를 오락용으로 소비하는게 전혀 나쁠게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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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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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매번 다시 생각하게 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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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인간은 이중잣대의 달콤함을 버리지 못합니다. 언제나 나의 이익과 손해에 의해 잣대를 바꾸며 타인의 그름을 말할때는 또 옳아보이는 기준을 꺼내옵니다. 논리와 합리성따위 내다 버린 체 어떠한 문제에서도 옳은 편에 설 수 있도록 갖은 말을 합니다. 그리고 끔찍히도 가증스러운 것은 스스로의 모순에 대해 잊고 합리화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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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론 저 자신에게도 그 모순이 있습니다. 전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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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익명이라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읽어도 우영우 뒤로읽어도 우영우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저는 당신의 관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틀렸다는게 아닙니다 절대요.
    동삼씨의 사건은 5천평이나 되는 땅지입니다. 그렇다면 그 걸 온전히 받는다는건 그 5천평이 누구의 집이 있는게 아니라, 농사꾼인 동삼씨의 땅입니다. 그래서 주장할수 있습니다.
    1500명정도가 주장한 소곡동은 떠날수 있는 사람이 토지보금이라도 받자고해서 동의한겁니다. 나머지 소수는 돈이 없어서 못가는걸수도있어요. 돈만은 이장님의 문제만 볼게아닙니다.
    어린이는 놀아야한다고 했습니다. 그건 어릴때 추억을 만들라는거아닌가요?
    방구뽕씨는 어린이는 늘 건강해야한다. 늘 놀아야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맨날 놀라고 안했어요. 그건 추억을 만들자였습니다.

    드라마는 드라마 재미로볼뿐 작가의 생각이 어렴풋이 들어날수 있습니다. 저보다 더 배우신분이니까요. 하지만 보는 그대로 보일수도있다고 말하고싶어요.
    그런 관점으로만 보면 어느 영화든 드라마든 못보실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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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러기토마토스위스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 와칸다는 포에버입니디. 반증가능하시면 ... 증거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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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다시 말하지만 저는 작가의 철학이 틀렸다고 말한게 아닙니다. 이중적이고 또 모순이라고 했죠.

      동동삼씨가 자기 소유물에 대해 권리를 가지는 것처럼 소곡동의 과반이 넘는 주민들도 자신의 소유물에 권리를 가져요. 그리고 그들은 개발에 찬성했답니다. 하지만 이장님을 비롯한 소수파가 다수의 의견을 묵살했습니다. 그걸 드라마는 어떻게 정당화하느냐, 소덕동 그 자체가 아름답고 옳기 때문이라지요. 정의는 때때로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정의는 분배의 문제인지라 다수결이 중요하지만 어떤 정의는 절대선을 다루고 있기도 하죠. 예를 들어 구성원들이 모두 찬성한다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올바를까요? 아니죠. 왜냐하면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명제는 대체로 절대선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물론 꼭 그렇진 않습니다)

      작가는 개발사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 사건을 상반된 주제로 풀어갔습니다. 동동삼씨의 경우 분배의 문제로(이 분배는 공정하지 못하다) 소덕동 에피소드에서는 절대선의 문제로요.(아름다운 소덕동을 파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 형제간의 우애는 절대선의 가치가 되지 못할까요? 왜 작가는 소덕동의 주민들이 다수결로 자신의 지분권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무시할까요? 3화에서는 공정이란 잣대를 7화에서는 절대선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그 이정성을 지적한 겁니다.

      방구뽕씨는 어린이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한 어린이는 맨날 그렇게 놀고 싶다고 했죠. 그런데 지금 당장 맨날 그렇게 놀면 변호사가 되긴 어렵습니다. 맨날 놀면서 추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변호사가 되는 것이 중요한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여러분들은 어린시절부터 뛰논 추억이 많은 쿠팡맨 우영우가 아닌 서울대 수석졸업 우영우 이야기를 소비하고 계신다는 점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물론 추억도 많이 만들며 놀고 서울대 로스쿨도 수석졸업하면 좋겠지만 여러분은 천재 우영우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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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그렇게 말하는 님들은 떳떳하세요?
    저 반박글을 쓴 제가 잘못된 생각인지 여쭙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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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마 이 글을씨신분은 아이언맨이나 어벤져스 안보시겟네요. 아이언맨은 처음부터 부잣집아들에 천재라서 사막에서 아이언맨기계를 만들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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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수정합니다 이린이는 "늘" 이 아니라 "지금당장"이랬네여
      반박가능시 님말이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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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전 아이언맨 재미있게 봤습니다. 하지만 아이언맨 2에서 토니 스타크가 "아크 원자로는 존재할 수 없어. 그건 불가능해" 라고 했다면 모순이라는 글을 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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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와 진짜 오만한 글이다 요즘 이런 의견이 팽배하던데 여기서 퍼진 글이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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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 배우시고 잘쓴글이니 글쓴이님의 입장을 들보고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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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네 저는 오만합니다. 인기드라마의 모순점을 지적할 딱 그정도로만요. 하지만 그만큼의 오만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런 비판도 할 수 없다는 뜻인데 그건 좀 끔찍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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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퍼온글인줄 알았는데 원출처가 여기였군요 글 되게 잘쓰시네요 대단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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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훌륭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사람의 욕망이 불편한게 아니라 마치 자기는 욕망이 없는양 도덕적 훈계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훨씬 불편합니다. 인터넷의 발달이 "까보면 그런 사람은 사실 없어 (혹은, 드물어 ㅎㅎ)" 라는 걸 잘 보여줬지요. 반론도 보고 싶어서 열심히 댓글들 (여기 말고 이곳저곳 퍼간 곳 포함해서) 도 읽어 봤는데... 솔직히 트집잡기라 생각되는 것들 밖에 안 보이네요, e.g.

    "드라마에 왤케 과몰입하냐" -> 그럼 당신은 왜 비평글에 과몰입하시는지?
    "너는 얼마나 잘났냐" -> 메시지 공격이 안되니 메신저 공격..

    이런 식으로 바로 반박되는 거 밖에 안 보여서 원글이 고퀄임을 다시 느끼게 되네요 ㅎㅎ 암튼 원 소스를 찾아보고 싶어서 왔다가 감사 남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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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사회적으로나 지위적으로나 명백한 강자인 우영우에게 '자폐' 티스푼 하나 부어놓고 약자코스프레를 시켜놓은 다음 우영우가 약자임을 인정하는걸 부정하는 허수아비 캐릭터를 등장시켜놓고 신나게 줘패면서 '약자를 괴롭히는 기득권을 패는 사이다 전개'를 반복하는 꼬라지를 지켜보고있자니 사회에서 '자칭 약자'들이 부리는 온갖 패악질이 떠올라 눈물을 질질 흘려버렸습니다. 이 사회에선 '약자향 0.01mg 첨가'된 강자분들이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례가 너무많아서 말입니다.
    주인장 말마따나 이런 우영우의 편을 서서 우영우의 약자취급을 거부하는 무례한 존재에게 징벌을 내리는 장면에서 환호하는 자들은 과연 우영우와 비교해서 얼마나 강자인지 궁금하네요. 우영우는 오히려 '어라 나보다 불쌍한 존재들이 왜 나를 응원하지?'라고 의아해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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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저는 작가를 불쾌하게 해서 싸워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냥 이런 글을 쓰는 게 즐거워서 씁니다. 어떤 분들은 모든 행위의 목적이 대결과 경쟁이고 또 싸움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마치 게임처럼요. 저와는 가치관이 다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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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에이 선생님은 저를 모르시지만 저는 선생님 글을 꽤 오래 봤는데요ㅋㅋㅋㅋㅋ 선생님이 이주열이나 노영민 혹은 이준석에 대해 어떻게 글쓰셨는지 다시 읽어보세용 뭐 그런걸 순전히 유희로 하신다고 하면 그런걸로 알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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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그리고 짜쳐보인다는 건 이기고 지고의 이야기가 아니고 저도 이번 글은 재미가 없다는 뜻의 이야기죠. 약간의 지적 수준만 가지고 행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면 다층적으로 짜여있다는 걸 빤하게 파악할텐데요

    제가 광고보고 읽거나 유료로 돈내고 글읽는 입장도 아니라 송구한 말씀이지만 제가 약간 ??했던 글들의 공통점은 문화비평이나 주특기이신 경제분석을 벗어난 글이었습니다. 아마 글로 생계유지하는 분이라면 자기가 약한 분야는 독자들에게 신뢰도 하락을 피하기 위해서 안쓸텐데 찐취미로 하시는 분의 스웩이랄까요ㅎㅎ 여하튼 항상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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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으...님 passive aggressive하게 글쓰는거 진짜 찌질하고 음침하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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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이주열이나 노영민은 그만두길 바랬지만 저는 우영우 드라마를 마지막 화까지 재밌게 보았습니다. 마지막 문장처럼 이건 "정말 잘 만든 오락드라마"이니까요. 아마 그 점이 다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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