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2.

공위공직자 초과재산 환수제를 제안합니다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은 이제껏 나라가 준 녹봉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또 역시 대부분 자신들이 가장 죄악시하던 갭투자로 불린것 아닌가. 뭐 원가만 따지면 남은 공무원 연금으로도 그들이 남은 생애동안 생존에 필요한 칼로리를 섭취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고위공직자들이 이제까지 먹고사는데 쓰고 남은 초과재산과 초과소득은 그냥 국민에게 환수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 좋은 제도를 청와대 정책실장부터 우선 적용해 보도록 할까. 마침 그가 평소에 페북에 올리는 글들을 보아하니 그의 철학과 잘 맞아 보인다. 자 어서 그의 초과재산부터 환수하자.

이재명은 참 좋겠다, 비데 돈 주고 안 사도 돼서.

2026. 5. 10.

AI 버블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금융사에서 가장 어려운 것으로 손 꼽히는 일은 바로 버블을 예측하는 것이다. 자산시장의 거품은 결코 예상할 수 없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누구도 맞출 수 없다. 그 시작과 끝은 오로지 빵 하고 터진 뒤에나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전투가 끝난 뒤 그 전사자들의 피떡이 진 시체와 부서진 잔해를 치워가면서. 하지만 모든 것을 재단하려 드는 오만한 금융시장은 끊임없이 버블을 예측하려 든다. 이게 버블이다, 아니다, 다만 아직 아닐 뿐이다. 등등. 그러니 나도 그 오만의 탑에 돌 하나를 더 보태보련다. 

신기술의 탄생은 어김없이 버블을 가져왔다. 인류는 생산성의 개선 측면에서 근대 이후 약 다섯 번의 커다란 혁신을 겪었다. 산업혁명, 전기생산, 대량생산, 자동화, 그리고 가장 최근의 IT혁명까지. 그리고 각 단계는 어김없이 주식시장의 커다란 버블을 불러일으켰다. 각 혁신이 실제로 생산성의 개선을 가져오는 데에 비교적 긴 시간이 걸렸던 반면, 각 테마의 자산/주식 가격은 단기간에 빠르게 오르곤 했다. 기대가 현실을 과도하게 앞서 달리다 과열된 시장이 발 디딜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어김없이 폭락이 찾아왔다. 신기술이 촉발한 버블은 그렇게 생겨났다 꺼지곤 했다. 그러니 AI혁명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만 신기술의 도입과 버블의 붕괴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시점이 어디에 있는지 예단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현재의 AI혁명이 기존의 혁신과 구별되는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공격적인 투자가 탐욕뿐 아니라 두려움에도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AI섹터를 이끄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의 승자들이 전체 시장을 독식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온라인 생태계 전체를 불과 서너 개의 인터넷 업체들이 독식한 것처럼 AI 모델과 그 시장도 불과 두어 개, 어쩌면 단 하나의 플레이어가 독점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국가 간의 경쟁에서도 이 구도가 반복된다. 미중 패권경쟁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AI가 있으며 두 나라가 서로에게 번갈아가며 가하는 수출 통제 역시 AI 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두려움은 G2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세계무대의 중심에 있다 밀려난 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역패권을 꿈꾸기 어려운 대한민국조차 소버린 AI를 외치며 인공지능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즉 과거의 버블이 탐욕이라는 모티브로 이루어졌다면, 현재 AI혁명은 탐욕 뿐 아니라 공포에 의해서도 견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근원적 차이는 AI로 인한 버블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것을 암시한다. 

일반적인 버블은 시장의 수요가 가격을 쫓아오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투자를 점차 줄이며 꺼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튤립 하나가 10만 굴덴의 효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그 구근의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IT버블 역시 기술기업들의 매출이 주가의 상승속도만큼 증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꺼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AI로 인한 버블 역시 같은 경로를 따를 것이라 예측하기 쉽다. 하지만 탐욕과 두려움이 뒤섞이면 좀 더 복잡한 미래가 펼쳐진다. AI에 투입되는 자원이 그 결과물의 시장가치를 현저하게 상회하게 되면 투자가 줄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뒤쳐지면 자신이 공룡처럼 멸종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기업들을 지배하고 있다, 국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니 좀처럼 투자가 줄어들 지 않는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capex지출을 줄일 계획이 전혀 없고, 중국은 미국의 제제로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확연하게 뒤처졌는데도 여전히 천문학적인 비용을 써가며 비효율적으로 별도의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독자적 AI모델을 만드는 것이 별 경쟁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모델을 개발하는데 나라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참고로 AI투자에 대한 예산 지출은 여타 복지예산보다 우선순위가 높았던 몇 안 되는 항목 중 하나이다. 모두가 수익을 더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생존을 위해 투자를 하고 있으니까.

따라서 우리 앞에 다가올, 어떤 이들이 이미 다가왔다고 말하는 이 AI버블의 끝은 과거의 버블보다도 더 지독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일반적으로 버블이 잦아들 시점에 거대 자본을 가진 국가와 기업들이 가진 실존적 두려움에 떠밀려 계속해서 과도한 투자를 이끌 수 있다는 면에서 더욱 지저분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것도 각 정부들이 가진 재정의 여력이 점점 한계에 가까워져가는 좋지 않은 시점에. 과거의 버블의 고점과 저점은 해당 기술이 가져올 생산성의 개선의 폭과 얼추 비례했다. 그리고 산이 높으면 봉우리도 깊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앞에 AI가 만들어낼 버블은 본래 감당했어야 할 수준보다도 훨씬 더 높이 치솟고 더 깊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본문을 AI에게 던저주고 그린 이미지

나는 투자를 해라 말아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나는 그 버블을 발라먹을 자신이 있어" 라며 자신있게 투자에 뛰어들거나, 어쩌면 과감하게 숏을 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투자자들은 늘 오만하니까. 하지만 당신들보다 더 돈이 많고, 더 경험이 많고, 더 좋은 대학을 나오고, 더 성공하고, 더 지혜롭고, 더 뛰어나고, 더 명석하고, 모든 면에서 나와 당신보다 훨씬 뛰어났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시도를 하다 그 버블에 집어삼켜져 파산하고 빈털털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이 어떤 뷰를 가지고 어떤 자산을 가지고 있든 간에 그 날이 오면 분명 우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가격이 점멸하는 MTS와 뉴스창에 새로고침을 연타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버블을 맞이할 내 목표는 그 광기와 패닉의 순간에도 올곧게 살아남는 것이다. 

2026. 5. 5.

정책실장과 엑셀방송의 사회적 효용의 비교

 


얼마나 출세하고 싶으면 저렇게 권력의 뒤를 헷헷대며 핥아댈 수 있는지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다. 참, 코인 때려잡다 코인 회사 간 전적이 이미 있구나. 순수하게 궁금증이 든다. 알량한 자리 하나 받아먹으려고 지성과 양심을 파는 일과 별풍선 몇 개에 수술한 가슴을 흔들어대며 섹시 댄스를 추는 엑셀방송 중에서 어떤게 더 사회에 해를 끼치는 쪽일까? 어느 쪽이 더 천박한 것일까. 

2025. 12. 8.

창용상회 사장의 철없는 푸념

한 전통시장이 있다. 이름하여 대한시장. 한때는 크게 번창하기도 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지만 이제는 시설도 낡았고 가게들도 트렌드에 뒤떨어져서 점차 활력을 잃어가는, 뭐 그저 그런 여느 전통시장 중 하나인 곳이다. 이 전통시장에 새로운 가게를 내려면 먼저 상인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컨셉의 가게가 시장 분위기에 어울리는지, 요 상품들이 여 대한시장에서 팔리는게 적절한지 일일이 검사를 받고 허가를 받아야 장사를 할 수 있다. 아따 그거시 우리 대한상회의 전통이랑께? 죠오기 도심에서 잘 나간다는 유명 프랜차이점도, TV에도 나왔던 유명 쉐프들이나 인플루언서들도 한 번씩은 대한시장의 명성을 듣고 가게를 내려고 했지만 상인회의 까다로운 허가를 받지 못해 계획을 접어야 했다. 거 뭐라카노, 로마 오면 로마법 따르라 카더라.

게다가 대한시장에는 아름다운 전통도 내려온다. 잘 팔리는 가게들이 파리 날리는 가게들의 관리비와 월세를 모두 대신 내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낮에 반짝 열고 잠깐 앉아있다 집에 가는 베짱이 가게들이 늘어하긴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혼자 잘 되는 게 어딨어유, 다 같이 먹고 사는 게 중요하쥬. 그들의 월세까지 버느라 잘 되는 가게의 사장들은 더더욱 열심히 일하느라 골병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저찌 대한시장은 안 망하고 잘 돌아가고 있다. 아니,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이 모든게 상인회가 상가들을 잘 지도편달하고 관리한 덕 아니겠는가. 그 보답으로 각 상인회들은 회비를 걷어다가 상인회에 갖다 바친다. 상인회의 임직원들을 직원으로 고용하기도 하고, 여름휴가도 보내주고 경조사도 챙기고 장사 말고도 할 것이 참 많다. 아 이게 다 우리 시장 잘 되라고 애쓰는 분들 아니던가요잉.

그렇게 잘 지내는 줄 알았던 대한시장의 요새 분위기가 이상하다. 어쩐지 옛날보다 빈 가게도 많이 보이고 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좀 줄어든 것 같다. 매출도 줄었다. 경기가 어려워 그렇겠지, 해보지만 시내 백화점과 쇼핑몰은 불황이 없단 말도 들린다. 상인들끼리도 뭔가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저기 골목에 있던 이가네 있쥬? 여기 월세가 비싸다구 시내로 나가부렀다유." "아랫목에서 가게 크게 하던 김 씨는, 여기서는 장사해먹기 힘들다꼬 문 닫아부렀다 카더라." 이대로는 안된다. 상인회는 팔을 걷어부쳤다. 그래그래, 우리가 통 크게 양보해서 신토불이 말구 요새 아들이 좋아하는 깔쌈한 카페도 허가하고! 주차장도 늘리고! 대청소도 하자카이! 다시금 대한상회의 부흥을 꿈꾸며 대대적 캠페인을 일으킨다. 자자 거 김씨. 내가 다 해결해줄라니께 자네는 내가 시키는 대루만 허랑게?” 하지만 나훈아 메들리로 가득 찬 CD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빛바랜 새마을운동 모자를 쓰고 갑질하는 상인회가 이 재래시장을 뒤바꿀 수 있을 리 없다. 상인회장은 계속 화만 낸다. "아니 시방 우리는 런던 베이글인가 뭔가 그 거시기를 못 해부는 거여??" 

상품이 거지 같으면 장사가 안 되고 음식이 맛이 없으면 손님이 끊기는 것처럼 경쟁력을 잃어가는 재래시장에도 한파가 찾아온다. 대한상회도 예외는 아니다. 듣자 하니 대한상회 상품권이 신세계 백화점 상품권의 반값에 팔린다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 하. 잘나가던 우리 시장이 어쩌다 이 꼬라지가 됐는지 상인회 간부 중 하나인 창용상회 사장님이 한 말씀하신댄다. 야야 있어봐라, 가가 그래도 서울대까지 나온 우리 동네 최고 천재라 안카나? 연단에 오른 창용상회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그거시 그 뭐다냐 요새 아들이 쿨허다구 저기 읍내 쇼핑몰 가브러고 시내 백화점만 들락날락 허니께, 그러니께 우리 시장이 망한 거 아니여??" 상인회 간부들이 옳소를 연발하며 박수를 친다. 환호하는 사람들 앞에 기분이 한껏 들뜬 창용상회 사장의 핸드폰에는 그 집 아들들이 시내의 백화점에서 긁어 대는 신용카드의 결제 문자들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한국의 관치금융과 자본제도가 후져서가 아니라 외국시장이 쿨해보여서 환율이 오른다는 쿨병 창용상회 사장


2025. 12. 7.

진보는 갑자기 왜 토착왜구가 되었나

지난 며칠간 소년범 출신 배우를 옹호하는 진보 평론가들의 글을 보면, 그들의 논리가 일본 극우의 사고 구조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의 극우들은 과거 전범행위들이 모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모두 처벌받았으니, 해당 사건은 이미 끝난 과거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미 여러 차례의 사과와 보상으로 과거사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되었으니, 그 시대의 범법자들이 아닌 현대의 일본인들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과거사를 되묻는 이들을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피해자들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부로 격하되어 어느덧 삭제된다. 

신기한 것은 그런 관점을 그 누구보다도 혹독하게 비난하던 진보진영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일본 극우들의 관점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에서 대상을 일제로 바꾸어 보자. "과거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나라가 국제연합의 주요 국가로 자리 잡은 것은 오히려 칭찬해야 할 일 아닌가.", "한번 전쟁범죄를 일으킨 나라는 영원히 전범국가로 살아야 하나", "이미 과거사 배상과 처벌은 다 끝났는데 이를 계속 언급하는 의도가 뭔가" 욱일기를 머리에 두르고 혐한 시위에 나선 일본의 극우들이 박수 치고 환호할 논리가 펼쳐진다. 놀랍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진보가 이와 같은 극적인 사고의 전환을 이룬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쟤, 우리 편이잖아. 초딩같은 진영논리에 따라 하루는 말이 사슴이 되고 다음 날은 사슴이 말이 되는 고무줄 논리를 펴면서도 도덕적 선민의식이 그윽한 그들의 태도란 참으로 보기 흉하다. 자신의 위선과 가식을 온갖 현학적 용어와 유려한 문체로 치장하는 것은 구차하고 추하게 보일 뿐이다. 보수 역시 진영논리에 따라 같은 편이면 계엄도 옹호하는 머저리들인데도 불구하고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유독 진보를 상징하게 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하다못해 이제는 자신들이 극렬하게 비난하던 일본 극우들의 뇌구조까지 빌려와서 침튀기며 아군 지원사격에 나선 영포티들과 쉰세대들의 태도가 괴이할 뿐이다. 


*                *                *


나는 연예인들에게 정치인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대중사회의 정서가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술계가 진보적 성향을 띠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예술은 원래 그런 것이다. 가슴이 차갑고 뇌가 뜨거우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많은 작가나 배우, 감독 화가들 중에서는 훨씬 더 큰 결함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폭행, 마약, 도박, 더 나아가 싸이코패스나 살인자, 사디스트, 아동 성착취, 인종차별주의자, 여성 혐오, 파시스트 등 개인적으로 상종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창작물이 모두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이 배우 또한 그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나는 그가 영영 은퇴하는 대신 이제 정의의 용사 코스프레를 그만두고 과거의 피해자들에게 뉘우친 뒤에 계속해서 활동하며 소년범들을 갱생하는데 좋은 롤모델이 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 더 나은 길이라고 믿는다. 나는 진심으로 미래에 그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물론 그보다 더 사소한 잘못으로 커리어가 박살 난 수많은 연예인들도 함께.

하지만 자기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아주 티끝만 한 잘못에도 린치를 가하고 축출하고 선거날 특정 색이 들어간 옷만 입어도 우르르 달려가 멍석말이를 할 때는 같이 낄낄거리며 웃던 인간들이 이번엔 자기편이랍시고 갑자기 정색하며 차가운 이성을 되찾는 진보 인사들의 모습이 참 싫다. 그 내로남불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만들었는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라. 예술계에는 박근혜의 블랙리스트만이 있던 것이 아니다. 진보 홍위병들의 린치는 그보다 더 폭력적이었고 현재진행형이다. 언제는 피해자 중심적 사고를 하라더니, 어라? 이번엔 우리 편이다 사격중지를 외치며 어느새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이 슬그머니 빼버리는 그 이중잣대가 싫다. 그런 주제에 틈만 나면 남들을 가르치려고 드는 그들의 선민의식과 위선이 진심으로 싫을 뿐이다. 으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논리는 내로남불이 아니라 보편타당하다 믿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너 혹시 토착왜구니?

2025. 12. 6.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V) - 인플레이션, 그리고 1965년 12월 5일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 (링크)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I) (링크)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II) (링크)


반세기 전, FOMC를 앞두고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가 동료들을 설득해 금리 인상을 내부적으로 결정한 며칠 뒤인 1965년 12월 5일, 대통령 린든 존슨으로부터 서늘한 초대장이 날아왔다. 존슨은 마틴을 자신의 텍사스 목장으로 불러 처음에는 환대와 미소로 맞이했지만, 목장 내 저택의 깊숙한 곳에 이르자 그의 태도는 돌변했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존슨은 마틴을 벽에 몰아붙이며 격렬하게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그는 “내 병사들이 베트남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당신은 내가 필요한 돈을 찍어주지 않는다”라고 얼굴 바로 앞에 대고 외쳤다. 마틴이 간간이 중앙은행의 책무를 상기시키려 했지만, 이는 오히려 존슨의 분노를 더 키웠다. 존슨은 욕설을 섞어가며 마틴을 인격적으로 몰아붙였고, 그의 격앙된 고함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키가 190cm가 넘는 대통령이 왜소한 연준 의장을 벽에 밀어붙이며 위협하던 장면은 당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얼마나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해 연준은 이미 결정한 대로 금리 인상을 발표했지만 다음 해부터 통화정책은 눈에 띄게 완화 기조로 돌아섰고 1967년 5월에는 50bp 인하와 함께 기준금리가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그 뒤 인플레이션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후임 의장이었던 아서 번즈가 진정한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오늘날 많은 경제학자들은 1970년대의 실패가 이미 마틴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한다. 어쩌면 마틴 본인도 이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영예로워야 할 은퇴 만찬에서 이 노쇠한 중앙은행가는 잠시 침묵을 머금은 뒤 “I've failed”이라는 문장으로 말문을 열었다고 했으니. 

후임자 아서 번즈는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전미경제연구소를 거친 그는 자타공인 경제 전문가였으며, 과거 선거에서 닉슨의 패배가 지나치게 긴축적인 통화정책 때문이었다고 대통령에게 직언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를 금리 인하를 바랐던 닉슨이 연준 의장 자리에 앉힌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운전대를 잡은 이 신참 중앙은행장은 자신의 책상에 놓은 여러 경제지표를 보자 지금은 금리인하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행정부는 그가 소신대로 움직이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이 샌님 경제학자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철학을 이러쿵 저러쿵 설교를 늘어놓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재무장관과 백악관의 보좌관들은 아주 집요하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아서 번즈에게 압력과 협박을 가했고 결국 연준은 이에 굴해 금리를 크게 내렸다. 그 결과 과열된 경제는 더욱 달아올랐고, 닉슨은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것은 폭발적으로 불어난 통화량과 거센 인플레이션의 파고였다. 그 선택이 어떤 시대를 열어젖혔는지는 오늘의 역사적 평가가 분명히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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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옆에 선 연준의장 파월, 그리고 린든 존슨과 악수하는 연준의장 마틴  


1970년대의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두 차례의 오일 쇼크와 여러 전쟁 같은 인상적인 사건들에 가려 마치 피할 수 없었던 우발적 비극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은 결코 그러하지 않았다. 정치적 압력에 오염된 통화정책이 폭발적인 통화 팽창을 불러왔고, 파괴적 인플레이션은 그 필연의 끝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현재를 돌아보자. 지금 백악관과 연준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장면은 기이한 데자뷔를 일으키고 있다. 존슨이 마틴을 직접 텍사스 목장으로 호출한 사건과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파월을 공격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위협적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당시와 지금 사이의 닮은 점이 대통령의 190cm 장신 하나가 아님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례마다 차이는 있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을 받을 때 이후의 인플레이션이 뚜렷하게 지속적으로 상승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50년 전 중앙은행들이 물가를 잡는 데 실패한 이유는 독립적 통화정책의 원칙을 몰랐거나 경제학적 식견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틴은 전후 19년에 걸쳐 연준의 독립성을 체계화한 최장수 의장이었고, 번즈는 연준 역사상 최초의 경제학 박사 출신 의장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처절한 실패를 겪었다는 사실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결정적 변수는 중앙은행의 모델이나 경제학 박사들보다 백악관과 의회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는 또한 어느 한쪽 진영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트럼프의 연준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민주당 역시 지난 집권기에 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유력 대선 후보들까지 그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마치 당적이 달랐던 린든 존슨과 리처드 닉슨이 똑같이 연준을 몰아붙였던 것처럼. 따라서 어느 쪽이 집권하든 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고 선거를 앞둔 갈등이 극단적으로 고조된 오늘날 연준이 오롯이 중립적 데이터만을 근거로 금리를 조절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잠시 언급하지 않았나. 정치로 오염된 통화정책 뒤에 인플레이션이 따라오는 것은 필연적이었다고. 

1970년대의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이 탄생한 1965년 12월 5일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현재 우리가 마주한 장면들은 반세기 전의 모습들과 데자뷔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맞이할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는 결국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다. 아, 이미 헤겔이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인간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배웠다고. 


2025. 10. 4.

미 통화스왑과 기재부의 오래된 그짓말

1998년 여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당시 월가의 스타였던 존 메리웨더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런 숄즈가 손잡고 세운 LTCM이라는 헤지펀드는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은 뒤 극단적인 레버리지를 활용해 최대 1조 달러 규모의 포지션을 운용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들의 핵심 투자 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 국채였다는 것이다. 이미 아시아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은 펀드는 러시아 채무 불이행으로 치명적 손실을 보고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LTCM의 포지션 규모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공포는 순식간에 미국 금융시장으로 확산되었다. 우량 회사채조차 매수자를 찾지 못해 시장이 얼어붙었고 신용경색의 조짐은 점차 뚜렷해졌다. 연준은 여러 차례 금리를 인하했지만 위기를 잠재우는 데 실패했고, 결국 주요 투자은행들을 불러들여 구제금융 참여를 압박해야 했다. 이 사건을 통해 연준은 신흥국 위기가 미국 금융 시스템까지 직접 위협할 수 있음을 절감했고, 이는 주로 국내 통화정책에 집중하던 연준이 EM 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첫 사례가 되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자, 연준은 과거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되새겼다. 미국 금융기관들의 해외 자산 익스포저가 매우 컸기 때문에, 해외에서 달러 자금 경색이 발생하면 우량 자산의 투매가 이어지고 연쇄적인 충격으로 번질 위험이 높았다. 이에 연준은 ECB와 영란은행 등 주요 기축통화국 중앙은행과 스왑라인을 체결했고, 위기의 후반부에는 한국, 싱가포르, 브라질, 멕시코 등 신흥국 중앙은행과도 스왑라인을 열었다. 연준이 다른 나라 중앙은행에 달러 유동성을 제공하는 목적과 기준은 분명했다. 첫째, 해당 국가에서 외화 자금 경색이 발생하고 있는가. 둘째, 이를 방치할 경우 미국 금융시장까지 신용경색이 확산될 위험이 있는가. 이 프로그램은 미국 내 금융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자, 연준은 기존 상설 스왑라인에 더해 9개 중앙은행과의 한시적 스왑라인을 추가로 개설했으며, 이 역시 미국계 금융기관이 글로벌 우량 자산을 무분별하게 매도하지 않도록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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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한국 정부는 이러한 통화스왑의 본질적 배경을 외면하고, 의도적으로 국내에 왜곡된 여론을 조성해왔다. 연준의 조치는 한국을 특별히 신뢰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금융 안정을 위한 조치였으며, 글로벌 달러 유동성 경색을 완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외교적 성과로 포장하며 마치 한국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해 쟁취한 승리인 것처럼 홍보했다. 리만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 환율주권론을 내세우던 강만수의 경제팀은 대규모 외환보유액을 이미 소진한 탓에 정작 위기가 현실화하자 대응 여력이 크게 부족했다. 당시 정부는 위기는 크지 않으며 대응 여력은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했지만, 여러 리서치 기관들은 한국의 외환보유고 상당 부분이 모기지 채권이나 파산 위기에 직면한 Fannie Mae·Freddie Mac 채권으로 구성되어 있어 실제로 가용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훨씬 적다고 지적했다. 그릇된 판단과 대응으로 신뢰를 잃고 파산 위기에 몰린 기획재정부를 구원한 것이 바로 통화스왑이었다. 이후 강만수와 경제팀은 곧바로 태세를 전환해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이것이 마치 FTA와 같은 경제외교적 성과인 양, 통화스왑을 한국 정부의 외교적 성취이자 자신의 치적으로 홍보했다. 당시 경제부 기자들 역시 해외 언론들과 팩트체크도 하지 않고, 정부 프레임을 그대로 확대 재생산하며 국민들에게 국가 위상이 높아졌다는 그릇된 메시지를 주입했다. 이러한 왜곡은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도 반복되었다. 연준이 9개국과 일괄적으로 임시 스왑라인을 개설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우리의 특별한 노력으로 미국의 지원을 얻어냈다”라는 식의 홍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실제 연준의 기록이나 연준 의장들의 회고록, 혹은 국제 언론 보도에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스왑을 성사시켰다는 내용은 없었으며, 당시 연준은 동일한 조건으로 브라질·멕시코·싱가포르와 같은 신흥국들도 함께 스왑을 맺었다. 무엇보다 2008년에도 그리고 2020년에도 한국의 기재부 외 다른 나라 정부들 중 그 어느 나라도 연준과의 스왑라인을 자국의 성과로 포장해 발표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연준과의 스왑라인은 정치/외교적 거래의 대상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재부는 이를 자신들의 정치적 성취로 포장해 대중을 기만하는 거짓말을 펼친 것이다.   

이러한 성과 포장은 단기적으로는 조직의 위상을 높여주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민과 정치인들에게 통화스왑의 본질에 대한 오해를 심화시켰다. 사실 이 제도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미국 금융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일 뿐인데, 한국 내부에서는 마치 경제외교적 역량에 따라 성사되는 것처럼 잘못 인식되게 된 것이다. 이 왜곡된 인식은 위기 때마다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과 과도한 기대를 불러일으켜 오히려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환율이 다시 1200원을 돌파하자 기재부는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외환보유액을 투입했지만, 이미 지나치게 낮은 수준에서 무리한 개입을 쏟아부은 탓에 환율 안정에 실패했다. 그러자 기재부는 과거와 똑같은 그짓말을 반복했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미 재무부 장관을 만나 “통화스왑을 논의했다”, “긍정적 대화가 있었다”와 같은 별 의미가 없는 문구를 언론 헤드라인에 올리는 데 주력한 것이다. 그러나 통화스왑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만 있었더라도 한국의 요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강도 높은 긴축을 진행 중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특정 국가에만 달러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것은 애초에 들어줄 수 없는 요청이었다. 더구나 통화스왑은 연준의 권한임에도 이를 미 재무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것은 연준의 독립성을 무시하는 처사로 비칠 위험이 있었다. 하물며 당시 재무부 장관은 전직 연준 의장이던 자넷 옐런이지 않았던가. 경제전문가를 자처하던 경제관료들이 얼마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반복하는 한국 정부를 보는 일은 괴로울 만큼 쪽팔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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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재부의 그짓말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국이 과거 플라자 합의처럼 달러 약세 정책을 선호할 것이라는 기대가 제기되자, 기재부는 이를 외환보유액을 소진하지 않고도 코를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초기 단계에서 미국 내부 일부 논의가 있었던 정황은 보인다. 그러나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나 백악관 고위 당국자의 환율 관련 발언을 보면, 적어도 5월 이후부터는 미국 정부가 달러 약세를 정책적으로 추진할 의지가 없었다는 점이 분명하다. 실제로 한국 외 다른 어떤 국가에서도 미국이 통화 절상을 요구한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마치 ‘플라자 합의식 환율 압박’이 존재하는 것처럼 헤드라인을 내며 시장과 여론을 호도하려 했다. 시장은 곧 이러한 언론 플레이가 근거 없는 것임을 간파했지만, 양치기 소년의 행태는 멈추지 않았다. 불과 지난 주말까지도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미국을 방문한 뒤 귀국길에서 “환율 협의를 마쳤다”라는 식의 발언을 내놓으며 어떤 기대를 부추겼지만 곧이어 공개된 합의문에는 의미 있는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기재부가 스스로 “미국 측에서 원화 절상 요구는 없었다”라고 인정하면서 자신들이 반년간 이어온 언론 플레이가 결국 값싼 기만전술에 불과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외환보유고 Flex의 원조 강만수는 한 인터뷰에서 "정부는 환율에 관해서는 거짓말할 권리가 있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세기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거짓말로 국민과 시장을 기만하는 그 그릇된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거짓말에는 대가가 따른다. 시장이 정부의 말을 믿지 않고 정책당국의 역량을 의심하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무능과 부정직함을 반복적으로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또 연준이 함부로 통화스왑라인을 열지 않는 이유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과거 리만위기 때 연준이 한국에게 열어준 스왑라인이 300억 달러였는데 비해 불과 몇 년 전 정부가 개입을 시작하며 1년 반 만에 팔아버린 금액이 무려 600억 달러에 달했다. 연준이 당시 스왑라인을 열어주었다면 한국은 진작에 그 달러를 모두 끌어다 1200원대에 팔아버렸을 것이다. 그리고서도 환율이 훨씬 더 올라왔으니 그들은 스왑이 만기가 되었을때 돌려줄 상황이 아니라며 드러누웠겠지. 그뿐이겠는가, 달러 돌려줄 상황이 아니다, 근데 한도를 좀 늘려주면 안 되냐며 땡깡을 피웠을 것이다. 지금 이미 그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비상금을 평소 군것질하는데 펑펑 써버렸다 비상상황이 닥치자 손 벌리러 오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에게 무제한으로 돈을 빌려줄 사람은 없다. 연준은 바보가 아니다.

미국은 관세 협상의 대가로 한국에 터무니없는 금액의 백지수표를 요구했다. 한국은 연준의 스왑라인 없이는 그 금액을 충당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연준의 독립성이 어느 때보다 위협받고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시대인 만큼, 이번에는 연준과의 스왑라인 체결 가능성이 열려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성격을 감안하면, 그들은 반드시 추가적인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무엇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지는 다각적인 고려가 필요하며, 그 결론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촌뜨기들이 국제 금융시장의 룰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바쁜 상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걸복걸하며, 마치 다섯 살 아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만 되풀이하는 구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재부와 경제 관료들은 과거 주먹구구식 외환정책이 거듭된 실패를 낳았고, 특히 대외환경이 급변할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대량의 외환보유고를 허비하는 실수를 저질러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스왑라인은 한국의 외교적 성과가 아니라 비상시에 작동하는 연준의 금융시장 안정책일 뿐이며,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억지를 부린다고 얻어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과 언론에 솔직히 알려야 한다. 그것이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다. 그들은 왜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선진국 대우를 받지 못하냐며 묻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온 힘을 다해 후진국스럽게 굴면서 선진국 배지가 갖고 싶다고 온종일 징징대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리냐고. 


PBR이 고작 5밖에 안되는 나라를 방문해 아무 의미 없는 사진 한 방 찍고 오신 구윤철 경제부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