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 ideas for my own
2026. 5. 5.
정책실장과 엑셀방송의 사회적 효용의 비교
2025. 12. 8.
창용상회 사장의 철없는 푸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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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관치금융과 자본제도가 후져서가 아니라 외국시장이 쿨해보여서 환율이 오른다는 쿨병 창용상회 사장 |
2025. 12. 7.
진보는 갑자기 왜 토착왜구가 되었나
지난 며칠간 소년범 출신 배우를 옹호하는 진보 평론가들의 글을 보면, 그들의 논리가 일본 극우의 사고 구조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의 극우들은 과거 전범행위들이 모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모두 처벌받았으니, 해당 사건은 이미 끝난 과거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미 여러 차례의 사과와 보상으로 과거사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되었으니, 그 시대의 범법자들이 아닌 현대의 일본인들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과거사를 되묻는 이들을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피해자들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부로 격하되어 어느덧 삭제된다.
신기한 것은 그런 관점을 그 누구보다도 혹독하게 비난하던 진보진영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일본 극우들의 관점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에서 대상을 일제로 바꾸어 보자. "과거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나라가 국제연합의 주요 국가로 자리 잡은 것은 오히려 칭찬해야 할 일 아닌가.", "한번 전쟁범죄를 일으킨 나라는 영원히 전범국가로 살아야 하나", "이미 과거사 배상과 처벌은 다 끝났는데 이를 계속 언급하는 의도가 뭔가" 욱일기를 머리에 두르고 혐한 시위에 나선 일본의 극우들이 박수 치고 환호할 논리가 펼쳐진다. 놀랍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진보가 이와 같은 극적인 사고의 전환을 이룬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쟤, 우리 편이잖아. 초딩같은 진영논리에 따라 하루는 말이 사슴이 되고 다음 날은 사슴이 말이 되는 고무줄 논리를 펴면서도 도덕적 선민의식이 그윽한 그들의 태도란 참으로 보기 흉하다. 자신의 위선과 가식을 온갖 현학적 용어와 유려한 문체로 치장하는 것은 구차하고 추하게 보일 뿐이다. 보수 역시 진영논리에 따라 같은 편이면 계엄도 옹호하는 머저리들인데도 불구하고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유독 진보를 상징하게 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하다못해 이제는 자신들이 극렬하게 비난하던 일본 극우들의 뇌구조까지 빌려와서 침튀기며 아군 지원사격에 나선 영포티들과 쉰세대들의 태도가 괴이할 뿐이다.
* * *
나는 연예인들에게 정치인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대중사회의 정서가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술계가 진보적 성향을 띠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예술은 원래 그런 것이다. 가슴이 차갑고 뇌가 뜨거우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많은 작가나 배우, 감독 화가들 중에서는 훨씬 더 큰 결함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폭행, 마약, 도박, 더 나아가 싸이코패스나 살인자, 사디스트, 아동 성착취, 인종차별주의자, 여성 혐오, 파시스트 등 개인적으로 상종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창작물이 모두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이 배우 또한 그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나는 그가 영영 은퇴하는 대신 이제 정의의 용사 코스프레를 그만두고 과거의 피해자들에게 뉘우친 뒤에 계속해서 활동하며 소년범들을 갱생하는데 좋은 롤모델이 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 더 나은 길이라고 믿는다. 나는 진심으로 미래에 그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물론 그보다 더 사소한 잘못으로 커리어가 박살 난 수많은 연예인들도 함께.
하지만 자기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아주 티끝만 한 잘못에도 린치를 가하고 축출하고 선거날 특정 색이 들어간 옷만 입어도 우르르 달려가 멍석말이를 할 때는 같이 낄낄거리며 웃던 인간들이 이번엔 자기편이랍시고 갑자기 정색하며 차가운 이성을 되찾는 진보 인사들의 모습이 참 싫다. 그 내로남불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만들었는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라. 예술계에는 박근혜의 블랙리스트만이 있던 것이 아니다. 진보 홍위병들의 린치는 그보다 더 폭력적이었고 현재진행형이다. 언제는 피해자 중심적 사고를 하라더니, 어라? 이번엔 우리 편이다 사격중지를 외치며 어느새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이 슬그머니 빼버리는 그 이중잣대가 싫다. 그런 주제에 틈만 나면 남들을 가르치려고 드는 그들의 선민의식과 위선이 진심으로 싫을 뿐이다. 으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논리는 내로남불이 아니라 보편타당하다 믿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너 혹시 토착왜구니?
2025. 12. 6.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V) - 인플레이션, 그리고 1965년 12월 5일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 (링크)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I) (링크)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II) (링크)
반세기 전, FOMC를 앞두고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가 동료들을 설득해 금리 인상을 내부적으로 결정한 며칠 뒤인 1965년 12월 5일, 대통령 린든 존슨으로부터 서늘한 초대장이 날아왔다. 존슨은 마틴을 자신의 텍사스 목장으로 불러 처음에는 환대와 미소로 맞이했지만, 목장 내 저택의 깊숙한 곳에 이르자 그의 태도는 돌변했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존슨은 마틴을 벽에 몰아붙이며 격렬하게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그는 “내 병사들이 베트남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당신은 내가 필요한 돈을 찍어주지 않는다”라고 얼굴 바로 앞에 대고 외쳤다. 마틴이 간간이 중앙은행의 책무를 상기시키려 했지만, 이는 오히려 존슨의 분노를 더 키웠다. 존슨은 욕설을 섞어가며 마틴을 인격적으로 몰아붙였고, 그의 격앙된 고함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키가 190cm가 넘는 대통령이 왜소한 연준 의장을 벽에 밀어붙이며 위협하던 장면은 당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얼마나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해 연준은 이미 결정한 대로 금리 인상을 발표했지만 다음 해부터 통화정책은 눈에 띄게 완화 기조로 돌아섰고 1967년 5월에는 50bp 인하와 함께 기준금리가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그 뒤 인플레이션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후임 의장이었던 아서 번즈가 진정한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오늘날 많은 경제학자들은 1970년대의 실패가 이미 마틴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한다. 어쩌면 마틴 본인도 이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영예로워야 할 은퇴 만찬에서 이 노쇠한 중앙은행가는 잠시 침묵을 머금은 뒤 “I've failed”이라는 문장으로 말문을 열었다고 했으니.
후임자 아서 번즈는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전미경제연구소를 거친 그는 자타공인 경제 전문가였으며, 과거 선거에서 닉슨의 패배가 지나치게 긴축적인 통화정책 때문이었다고 대통령에게 직언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를 금리 인하를 바랐던 닉슨이 연준 의장 자리에 앉힌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운전대를 잡은 이 신참 중앙은행장은 자신의 책상에 놓은 여러 경제지표를 보자 지금은 금리인하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행정부는 그가 소신대로 움직이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이 샌님 경제학자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철학을 이러쿵 저러쿵 설교를 늘어놓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재무장관과 백악관의 보좌관들은 아주 집요하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아서 번즈에게 압력과 협박을 가했고 결국 연준은 이에 굴해 금리를 크게 내렸다. 그 결과 과열된 경제는 더욱 달아올랐고, 닉슨은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것은 폭발적으로 불어난 통화량과 거센 인플레이션의 파고였다. 그 선택이 어떤 시대를 열어젖혔는지는 오늘의 역사적 평가가 분명히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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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옆에 선 연준의장 파월, 그리고 린든 존슨과 악수하는 연준의장 마틴 |
1970년대의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두 차례의 오일 쇼크와 여러 전쟁 같은 인상적인 사건들에 가려 마치 피할 수 없었던 우발적 비극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은 결코 그러하지 않았다. 정치적 압력에 오염된 통화정책이 폭발적인 통화 팽창을 불러왔고, 파괴적 인플레이션은 그 필연의 끝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현재를 돌아보자. 지금 백악관과 연준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장면은 기이한 데자뷔를 일으키고 있다. 존슨이 마틴을 직접 텍사스 목장으로 호출한 사건과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파월을 공격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위협적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당시와 지금 사이의 닮은 점이 대통령의 190cm 장신 하나가 아님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례마다 차이는 있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을 받을 때 이후의 인플레이션이 뚜렷하게 지속적으로 상승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50년 전 중앙은행들이 물가를 잡는 데 실패한 이유는 독립적 통화정책의 원칙을 몰랐거나 경제학적 식견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틴은 전후 19년에 걸쳐 연준의 독립성을 체계화한 최장수 의장이었고, 번즈는 연준 역사상 최초의 경제학 박사 출신 의장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처절한 실패를 겪었다는 사실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결정적 변수는 중앙은행의 모델이나 경제학 박사들보다 백악관과 의회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는 또한 어느 한쪽 진영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트럼프의 연준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민주당 역시 지난 집권기에 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유력 대선 후보들까지 그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마치 당적이 달랐던 린든 존슨과 리처드 닉슨이 똑같이 연준을 몰아붙였던 것처럼. 따라서 어느 쪽이 집권하든 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고 선거를 앞둔 갈등이 극단적으로 고조된 오늘날 연준이 오롯이 중립적 데이터만을 근거로 금리를 조절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잠시 언급하지 않았나. 정치로 오염된 통화정책 뒤에 인플레이션이 따라오는 것은 필연적이었다고.
1970년대의 고통스러운 인플레이션이 탄생한 1965년 12월 5일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현재 우리가 마주한 장면들은 반세기 전의 모습들과 데자뷔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맞이할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는 결국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다. 아, 이미 헤겔이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인간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배웠다고.
2025. 10. 4.
미 통화스왑과 기재부의 오래된 그짓말
1998년 여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당시 월가의 스타였던 존 메리웨더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이런 숄즈가 손잡고 세운 LTCM이라는 헤지펀드는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은 뒤 극단적인 레버리지를 활용해 최대 1조 달러 규모의 포지션을 운용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들의 핵심 투자 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 국채였다는 것이다. 이미 아시아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은 펀드는 러시아 채무 불이행으로 치명적 손실을 보고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LTCM의 포지션 규모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공포는 순식간에 미국 금융시장으로 확산되었다. 우량 회사채조차 매수자를 찾지 못해 시장이 얼어붙었고 신용경색의 조짐은 점차 뚜렷해졌다. 연준은 여러 차례 금리를 인하했지만 위기를 잠재우는 데 실패했고, 결국 주요 투자은행들을 불러들여 구제금융 참여를 압박해야 했다. 이 사건을 통해 연준은 신흥국 위기가 미국 금융 시스템까지 직접 위협할 수 있음을 절감했고, 이는 주로 국내 통화정책에 집중하던 연준이 EM 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첫 사례가 되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자, 연준은 과거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되새겼다. 미국 금융기관들의 해외 자산 익스포저가 매우 컸기 때문에, 해외에서 달러 자금 경색이 발생하면 우량 자산의 투매가 이어지고 연쇄적인 충격으로 번질 위험이 높았다. 이에 연준은 ECB와 영란은행 등 주요 기축통화국 중앙은행과 스왑라인을 체결했고, 위기의 후반부에는 한국, 싱가포르, 브라질, 멕시코 등 신흥국 중앙은행과도 스왑라인을 열었다. 연준이 다른 나라 중앙은행에 달러 유동성을 제공하는 목적과 기준은 분명했다. 첫째, 해당 국가에서 외화 자금 경색이 발생하고 있는가. 둘째, 이를 방치할 경우 미국 금융시장까지 신용경색이 확산될 위험이 있는가. 이 프로그램은 미국 내 금융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자, 연준은 기존 상설 스왑라인에 더해 9개 중앙은행과의 한시적 스왑라인을 추가로 개설했으며, 이 역시 미국계 금융기관이 글로벌 우량 자산을 무분별하게 매도하지 않도록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간 한국 정부는 이러한 통화스왑의 본질적 배경을 외면하고, 의도적으로 국내에 왜곡된 여론을 조성해왔다. 연준의 조치는 한국을 특별히 신뢰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금융 안정을 위한 조치였으며, 글로벌 달러 유동성 경색을 완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외교적 성과로 포장하며 마치 한국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해 쟁취한 승리인 것처럼 홍보했다. 리만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 환율주권론을 내세우던 강만수의 경제팀은 대규모 외환보유액을 이미 소진한 탓에 정작 위기가 현실화하자 대응 여력이 크게 부족했다. 당시 정부는 위기는 크지 않으며 대응 여력은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했지만, 여러 리서치 기관들은 한국의 외환보유고 상당 부분이 모기지 채권이나 파산 위기에 직면한 Fannie Mae·Freddie Mac 채권으로 구성되어 있어 실제로 가용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훨씬 적다고 지적했다. 그릇된 판단과 대응으로 신뢰를 잃고 파산 위기에 몰린 기획재정부를 구원한 것이 바로 통화스왑이었다. 이후 강만수와 경제팀은 곧바로 태세를 전환해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이것이 마치 FTA와 같은 경제외교적 성과인 양, 통화스왑을 한국 정부의 외교적 성취이자 자신의 치적으로 홍보했다. 당시 경제부 기자들 역시 해외 언론들과 팩트체크도 하지 않고, 정부 프레임을 그대로 확대 재생산하며 국민들에게 국가 위상이 높아졌다는 그릇된 메시지를 주입했다. 이러한 왜곡은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도 반복되었다. 연준이 9개국과 일괄적으로 임시 스왑라인을 개설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우리의 특별한 노력으로 미국의 지원을 얻어냈다”라는 식의 홍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실제 연준의 기록이나 연준 의장들의 회고록, 혹은 국제 언론 보도에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스왑을 성사시켰다는 내용은 없었으며, 당시 연준은 동일한 조건으로 브라질·멕시코·싱가포르와 같은 신흥국들도 함께 스왑을 맺었다. 무엇보다 2008년에도 그리고 2020년에도 한국의 기재부 외 다른 나라 정부들 중 그 어느 나라도 연준과의 스왑라인을 자국의 성과로 포장해 발표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연준과의 스왑라인은 정치/외교적 거래의 대상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재부는 이를 자신들의 정치적 성취로 포장해 대중을 기만하는 거짓말을 펼친 것이다.
이러한 성과 포장은 단기적으로는 조직의 위상을 높여주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민과 정치인들에게 통화스왑의 본질에 대한 오해를 심화시켰다. 사실 이 제도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미국 금융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일 뿐인데, 한국 내부에서는 마치 경제외교적 역량에 따라 성사되는 것처럼 잘못 인식되게 된 것이다. 이 왜곡된 인식은 위기 때마다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과 과도한 기대를 불러일으켜 오히려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환율이 다시 1200원을 돌파하자 기재부는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외환보유액을 투입했지만, 이미 지나치게 낮은 수준에서 무리한 개입을 쏟아부은 탓에 환율 안정에 실패했다. 그러자 기재부는 과거와 똑같은 그짓말을 반복했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미 재무부 장관을 만나 “통화스왑을 논의했다”, “긍정적 대화가 있었다”와 같은 별 의미가 없는 문구를 언론 헤드라인에 올리는 데 주력한 것이다. 그러나 통화스왑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만 있었더라도 한국의 요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강도 높은 긴축을 진행 중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특정 국가에만 달러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것은 애초에 들어줄 수 없는 요청이었다. 더구나 통화스왑은 연준의 권한임에도 이를 미 재무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것은 연준의 독립성을 무시하는 처사로 비칠 위험이 있었다. 하물며 당시 재무부 장관은 전직 연준 의장이던 자넷 옐런이지 않았던가. 경제전문가를 자처하던 경제관료들이 얼마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반복하는 한국 정부를 보는 일은 괴로울 만큼 쪽팔린 일이었다.
이러한 기재부의 그짓말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국이 과거 플라자 합의처럼 달러 약세 정책을 선호할 것이라는 기대가 제기되자, 기재부는 이를 외환보유액을 소진하지 않고도 코를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초기 단계에서 미국 내부 일부 논의가 있었던 정황은 보인다. 그러나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나 백악관 고위 당국자의 환율 관련 발언을 보면, 적어도 5월 이후부터는 미국 정부가 달러 약세를 정책적으로 추진할 의지가 없었다는 점이 분명하다. 실제로 한국 외 다른 어떤 국가에서도 미국이 통화 절상을 요구한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마치 ‘플라자 합의식 환율 압박’이 존재하는 것처럼 헤드라인을 내며 시장과 여론을 호도하려 했다. 시장은 곧 이러한 언론 플레이가 근거 없는 것임을 간파했지만, 양치기 소년의 행태는 멈추지 않았다. 불과 지난 주말까지도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미국을 방문한 뒤 귀국길에서 “환율 협의를 마쳤다”라는 식의 발언을 내놓으며 어떤 기대를 부추겼지만 곧이어 공개된 합의문에는 의미 있는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기재부가 스스로 “미국 측에서 원화 절상 요구는 없었다”라고 인정하면서 자신들이 반년간 이어온 언론 플레이가 결국 값싼 기만전술에 불과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외환보유고 Flex의 원조 강만수는 한 인터뷰에서 "정부는 환율에 관해서는 거짓말할 권리가 있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세기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거짓말로 국민과 시장을 기만하는 그 그릇된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거짓말에는 대가가 따른다. 시장이 정부의 말을 믿지 않고 정책당국의 역량을 의심하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무능과 부정직함을 반복적으로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또 연준이 함부로 통화스왑라인을 열지 않는 이유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과거 리만위기 때 연준이 한국에게 열어준 스왑라인이 300억 달러였는데 비해 불과 몇 년 전 정부가 개입을 시작하며 1년 반 만에 팔아버린 금액이 무려 600억 달러에 달했다. 연준이 당시 스왑라인을 열어주었다면 한국은 진작에 그 달러를 모두 끌어다 1200원대에 팔아버렸을 것이다. 그리고서도 환율이 훨씬 더 올라왔으니 그들은 스왑이 만기가 되었을때 돌려줄 상황이 아니라며 드러누웠겠지. 그뿐이겠는가, 달러 돌려줄 상황이 아니다, 근데 한도를 좀 늘려주면 안 되냐며 땡깡을 피웠을 것이다. 지금 이미 그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비상금을 평소 군것질하는데 펑펑 써버렸다 비상상황이 닥치자 손 벌리러 오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에게 무제한으로 돈을 빌려줄 사람은 없다. 연준은 바보가 아니다.
미국은 관세 협상의 대가로 한국에 터무니없는 금액의 백지수표를 요구했다. 한국은 연준의 스왑라인 없이는 그 금액을 충당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연준의 독립성이 어느 때보다 위협받고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시대인 만큼, 이번에는 연준과의 스왑라인 체결 가능성이 열려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성격을 감안하면, 그들은 반드시 추가적인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무엇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지는 다각적인 고려가 필요하며, 그 결론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촌뜨기들이 국제 금융시장의 룰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바쁜 상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걸복걸하며, 마치 다섯 살 아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만 되풀이하는 구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재부와 경제 관료들은 과거 주먹구구식 외환정책이 거듭된 실패를 낳았고, 특히 대외환경이 급변할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대량의 외환보유고를 허비하는 실수를 저질러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스왑라인은 한국의 외교적 성과가 아니라 비상시에 작동하는 연준의 금융시장 안정책일 뿐이며,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억지를 부린다고 얻어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과 언론에 솔직히 알려야 한다. 그것이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다. 그들은 왜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선진국 대우를 받지 못하냐며 묻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온 힘을 다해 후진국스럽게 굴면서 선진국 배지가 갖고 싶다고 온종일 징징대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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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BR이 고작 5밖에 안되는 나라를 방문해 아무 의미 없는 사진 한 방 찍고 오신 구윤철 경제부총리 |
2025. 7. 9.
오징어게임3: 최악의 사이코패스 성기훈
비범한 일을 겪은 사람은 결코 이전의 평범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그가 겪었던 사건이 끔찍하다면 더더욱. 이 잔혹한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은 성기훈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지막 게임에서 그의 친구-상우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게임을 포기하겠다는 기훈을 막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그렇게 기훈은 자신의 손으로 단 한 명조차 죽이지 않았음에도 이 잔혹한 데스매치의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깨달았다. 자기 안에서 무엇인가가 분명히 부서졌음을.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는다는 도파민의 끝을 경험한 그의 뇌는 더 이상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었다. 머리를 빨간색으로 물들여 보아도, 456억이라는 돈을 아무리 써도, 아무도 없는 호텔 방에서 소총을 난사해 보아도, 심지어 가까운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그의 뒤틀린 욕구는 도통 만족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광적으로 프런트맨을 찾는 일에 집착했다. 새로 피어난 사이코패스적 욕망을 자각하지 못한 그는, 그것이 오징어게임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포장했다. 하지만 기훈은 형사처럼 섬을 수색하지도, 이 끔찍한 사건을 언론이나 유튜브에 폭로하지도 않았다. 그가 간절하게 찾던 것은 바로 지원자를 모집하던 딱지맨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태 살인마가 되어버린 기훈이 진심으로 원했던 건, 다시 그 게임에 참가하는 것이었으니까.
오징어게임의 세계관에서는 큰돈을 내면 죽음을 구경할 수 있다. 살인 게임을 두고 내기를 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오징어게임을 설계하고 플레이했던 오일남조차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재미있을 수는 없다고. 수십 회의 라운드를 거치며 그가 본 모든 극적인 살인과 자극적인 죽음들을 다 합쳐도, 단 한 번의 직접 겪어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455개의 죽음을 직접 경험한 성기훈의 내면은 과연 얼마나 비틀려 있었을까. 그리고 그 너머에는 오일남도, 프런트맨도, 딱지맨조차도 미처 도달하지 못한 또 다른 차원의 쾌락이 있었다. 그것은 단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넘어, 영혼을 파괴하는 일. 누군가가 자신을 믿고, 바로 그 믿음 때문에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쾌감은,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살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쾌감에 눈을 뜬 세계관 최악의 싸패 살인마가 그 두 번째 게임을 시작했다. 첫 번째 게임에서 그는 낯선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나를 믿지 않는 이들이 랜덤하게 죽는 일은 아무런 재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자 그는 끔찍한 욕망을 분출한다. 밤에 혈투가 벌어질 것이 뻔하니 먼저 기습하자는 오영일의 제안을 극구 말린다. 그러다 X파가 이겨서 게임이 끝나면 재미없잖아. 또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켰다. 처음부터 미궁 같은 게임장의 지리도 모르고 병력도 적고 무기도 탄약도 없던 반란파가 이길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다. 희생자들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무모한 반란을 감행한 건, 한 번 게임을 경험했다는 기훈에게 뭔가 믿을 만한 계획이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애초에 기훈의 계획은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한 번에 몰살시키는 것이었으니까.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기훈은 목숨을 걸고 그들의 믿음을 샀던 것 아닌가. 타다다다탕. 그를 따르던 모든 사람이 끔찍하고 비참하게 죽었다. 미션 완료.
모든 것이 끝난 그는 의욕을 잃었다. 이제 나를 신뢰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나를 믿고 죽어줄 사람도 없다. 아 재미없다. 나는 고작 돈이나 벌자고 이 게임에 다시 들어온 것이 아닌데. 왜 벌써 끝났지. 힘이 빠진다. 그 와중에 눈치 빠른 대호라는 자식이 내 본심을 꿰뚫어 보았다. 그가 절규한다. "그때 차라리 동그라미 새끼들이랑 싸웠으면 이길 수도 있었어. 싸움도 이기고! 투표도 이기고!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말한 그 말도 안 되는 작전 때문에 다 죽은 거야! 당신이 죽인 거야!"
아니 어떻게 알았지. 안 그래도 화가 나는데 그를 가만둘 수 없다. 누군가를 죽여야 통과할 수 있던 네 번째 게임에서 그는 다른 타겟들은 모두 버리고 오로지 대호 만을 노린다. 뭐 여기서 이겨서 456억을 더 받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징어게임 전 시즌의 모든 참가자들이 생존을 위해, 또 상금을 늘리기 위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인을 저지를 동안 기훈은 오로지 살인 그 자체를 움직인 유일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탈락해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도.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지독한 싸패 살인마였는지 알 수 있지 않나. 그는 결국 목적을 달성한다.
아 이제 정말 끝이다. 아무 재미가 없다. 오징어게임 밖에서도, 또 안에서도 이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다. 여기까지다. 모든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한 그 앞에 갑자기 새로운 사건이 펼쳐진다. 한 아이가 탄생하고 여러 사람들이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한다. 한 미친 노파는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제 손으로 친아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아 이거다. 이 미친 싸이코패스의 눈이 다시 희번덕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는 벌떡 일어나 이 아이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아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를 위해 스스로 죽어줄 것인가. 히히.
그래서 그는 준희에게 헛된 희망을 준다. 혹시나 그녀가 무리해서 다리를 건너다 하찮게도 고작 사고로 죽을까 봐 그녀를 만류한다. 끝까지 자신을 믿고 거기에 남아 있으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그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발목을 다친 준희를 데리고 돌아오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진짜 간다? 내가 간다, 갈게? 참 근데 그랬다가 나도 죽으면 애는 어떻게 하지. 응? 사실상 기훈은 준희에게 자살을 강요하고 있었다. 결국 이 싸이코패스는 그 목적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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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훈: 네가 거기서 다 죽이면 재미가 없잖아 |
마지막 고공 오징어게임에서도 그의 천연덕스러운 싸패 짓은 계속된다. 그는 100번 참가자의 도시락 제안이 답이 아니라며 이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그럼 한 명밖에 안 죽잖아. 어차피 누군가 최소 하나는 죽어야 나머지가 사는 이 게임에서 기훈은 아득바득 분란을 일으켜 기어코 하나 대신 다수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자 이제 드디어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친부인 명기와 엄마를 잃은 아이. 그것이 기훈이 기획한 엔딩이었다. 근데 이런 젠장, 엄마처럼 아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어줄 줄로만 알았던 명기가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일 수 있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 아닌가. 아니 애써 극적인 마지막까지 다 준비했더니 이 쬐그만 놈이 망쳤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가만둘 수 없다. "넌 자격이 없어" 기훈은 저 아래로 그를 밀어 떨어뜨린다.
이제 정말 다 끝났다. 이제 죽일 사람은 모두 죽었고 나를 믿고 더 죽어줄 사람도 없다. 밖으로 나가면 기다리는 건 또다시 아무 의미 없는 하루들. 공허함이 몰려온다. 차라리 아까 죽을걸. 그런 그의 눈에 VIP들의 관람석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깨닫는다, 아직 그가 배반할 믿음이 하나 더 남아있음을. 타인의 믿음을 배신하며 죽음을 가져오는 일에서 기쁨을 느끼던 이 뇌가 망가진 사이코패스는 자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믿음을 배반하기로 한다. 자신을 죽여가면서까지. 절벽 아래로 뛰어들기 전 그는 "아직도 사람을 믿나"라는 프런트맨의 질문을 떠올리며 이렇게 답한다 "(응 그리고) 사람은 (그 믿음 때문에 죽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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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장치와 연출, 그리고 탄탄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시즌 3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박하다. 그 이유는 많은 시청자들이 성기훈의 변화된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오징어게임을 한차례 겪었던 인물이 별다른 계획도 없이 진행요원들의 본부에 무작정 침입한다거나, 순박한 얼굴로 모두를 살리겠다고 다짐하던 성기훈이 갑자기 증오에 휩싸여 대호를 추격 끝에 죽인다는 설정은, 감정선의 연속성이 너무 부족했다. 그의 반복적인 변화와 불규칙한 선택들은 시청자에게 설득력을 주기 어려웠고, 도리어 그는 세계관 최강의 변태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이 아니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인물처럼 보였다.
이렇게 모순된 주인공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황동혁 감독 본인의 모순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오징어게임이라는 세계관을 통해 경쟁적 자본주의의 잔혹함과 비인간성을 비판적으로 묘사해 왔다. 그러나 이 작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미국 테크회사의 막대한 자본 덕분이었다. 황 감독은 10여 년 전부터 오징어게임의 시나리오를 구상했지만, 국내의 협소한 펀딩 환경에서는 이질적인 내용을 다룬 작품에 선뜻 투자할 이가 없었다. 결국 그 모험을 감수한 것은 자금력이 막강한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였다. 그리고 시즌 1은 성공했다.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 수많은 경쟁작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황 감독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마치 게임의 최종 우승자가 모든 것을 거머쥐듯이. 이제 그는 후속 시즌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도 원래 하나였던 이야기를 두 시즌으로 쪼개는 방식으로. 황 감독 본인도 인터뷰에서 인정했듯이, 그 동기는 다름 아닌 돈이었다.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했던 감독은 다시 기훈을 게임으로 밀어 넣었지만, 그의 페르소나가 반영된 주인공은 그 작품 안에서 이상주의를 호소해야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성기훈이라는 인물은 갈라지고 어그러진다. 자본을 비판하려는 이상과 자본을 좇는 욕망 사이에서
결국 성기훈의 혼란스러운 변화는 단지 캐릭터의 붕괴가 아니라, 창작자인 황동혁 감독 스스로가 겪고 있는 자기기만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자본을 비판하며 만들어진 이 세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의 힘으로 탄생했고,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주인공 역시 그 모순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시즌 3이 유독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오징어게임은 작품 자체로는 어색하고 파편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작품 밖 현실과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창작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파열음을 비추는 거울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제 현실에서 VIP에 더 가까워진 이 글로벌 스타 감독은, 억지로 사회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참가자들에게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하려 애쓰며, 그 간극을 지적하는 대중의 비판을 오히려 사회 탓으로 돌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가 만들어낸 세계와 자신이 택한 현실 사이의 모순과 균열이 다음 작품에서는 과연 어떻게 정당화될지, 또 감독은 어떤 변명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2025. 7. 2.
문제는 공급이야, 멍청아 (It's gong-gub,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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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주택 인허가 수 |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자신들의 실책을 인정할 생각이 없다."서울에 신축 아파트가 없으면 빌라에 살면 되지 않나?"라고 말하지만, 정작 빌라 공급도 줄어들고 있다. "경기도 외곽엔 빈 아파트가 많다"고 하지만, 그 말은 인생에서 총 5년을 통째로 빨간 버스 안에서 보내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역세권 재건축을 장려하겠다"고는 하지만, 세대당 수억 원씩 정부에 바치라는 조건이 붙는다. 이처럼 현실과 괴리된 방안들만 쏟아내는 사이, 주택시장의 수급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시장이 자신들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정부는, 급기야 망가진 공급에 맞춰 수요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야 인마, 침대가 너무 짧으면 손님의 다리를 자르면 되는 거 아니냐 이 말이야." 이번에 발표된 6.27 부동산 대책은 정부가 지난 10년 동안 발표했던 수많은 수요 억제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그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어벙한 정치인들이 설계한 수많은 대책이 그랬듯이, 그리고 윤석열 정권에서 무능한 관료들이 내놓은 수많은 대책이 그랬듯이, 그들은 또다시 당신들의 다리를 슥삭슥삭 자르러 오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공급에 맞춰 수요자의 다리를 자르는 강도의 칼이 무척이나 날카로운 것은 사실이다. 다리가 잘린 시장은 잠시 동안은 안정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손님은 끊임없이 올 텐데, 언제까지 침대에 맞춰 국민들의 다리를 잘라댈 수 있겠는가? 나는, 그리고 당신들 역시 이 게임을 이미 해봤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이 옳다고 믿는다면, 네 다리부터 잘라라. 금융위를 미분양 주택이 넘쳐나는 지방으로 이전하자. 이제 필요 없을 테니 수도권의 집 팔 기회도 드리겠다. 거기에 딸려 있는 대출도 다 상환하시라. 당신의 대출도 엄연히 가계대출의 일부다. 부당하다고? 그렇다. 부당하지. 그런데 당신들이 지금 벌이고 있는 짓은 왜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나. 가계부채가 심각한데 그럼 어쩌냐고 되묻는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문제는 공급이야, 멍청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