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는 기업의 실적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코스피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반면 원화는 정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하는 자산인데 그 실적은 놀랍게도 세계 꼴찌를 달리고 있다. 그것도 아무 신용위기나 공황 없이, 기록적 반도체 호황과 역대 최대 수출이라는 장애물을 모두 이겨내고 한국 정부의 통화가치는 바닥을 뚫고 추락했다. 정말로 대단하지 않은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업적이 장기적으로 달러 강세나 대외변수의 도움 없이 오로지 한국의 힘 만으로 이루어낸 것이다. 이야. 이 감탄은 비꼬는 것이 아니다. 나의 진심이다. 전세계 모든 주요 통화와 싸워서 이긴, 아니 진 대한민국 원화. AI붐이라는 봉우리보다 더 깊은 골짜기를 파내려간 정부. 이것이 대한민국 정부의 품격. 크아 국뽕 한 사발에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보수나 진보의 일도 아니다. (자칭)경제전문가 모피아들이 가득했던 윤석열 정부 아래서 환율은 20% 넘게 폭등했으며 진보정권이라고 이 성적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왜 우리나라의 원화가 이토록 장기적으로 심한 약세를 겪는 것일까. 물건이 비싸면 안 팔리기 마련이고, 그러면 가격이 내려간다. 마찬가지로 OTT를 구독했는데 볼 게 없다면 해지하게 되고, 그럼 가격이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장사를 잘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기업에는 문제가 없다. 노동생산성의 개선 역시 과거보다 둔화되었을뿐 여전히 주요 경쟁국들보다 더 개선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단 한 놈이 범인이다. 바로 정부. 오늘 우리가 마주한 환율의 상승은 정부가 제공하는 행정과 정책이 개차반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민간의 우월한 성과를 모두 갉아먹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왜 정부의 정책조합이 엉망인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긴 글이 될 테니 비판의 대상을 정부의 외환정책으로 좁혀 보기로 하자. 게다가 여기서 벌어지는 구조적 실패가 다른 대부분의 산업에서도 발생하며, 정부의 이 총체적 실패가 경제 전반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분기별로 얼마나 외환시장에 개입했는지 내역을 발표하는데 이 자료를 바탕으로 정부의 환시 개입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찬찬히 분석해 보자. 처음으로 달러를 팔기 시작한 2021년 3분기부터 가장 최근의 데이터인 2025년 4분기까지 누계를 보면 정부는 무려 1000억 달러가 넘은 금액을 외환시장에 쏟아부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자료에서 보이다시피 그들은 대부분의 달러를 싼 레벨에 무분별하게 팔아치웠다. 지난 4년 동안 쓴 천억 달러 중 약 절반의 금액을 1200원 초반에 팔아 치우는 바람에 이후 환율이 고공행진하는 동안 기재부는 아무것도 못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다 한동안 쉬며 자신감이 충전했는지 2025년 4분기에는 갑자기 역대 최대 규모의 매도 개입을 단행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곧장 환율이 폭등하며 최악의 평가손을 냈다. 현재 환율로 이 손실을 추산해 보면 약 26조 원에 육박한다.
외환시장 개입이 막대한 평가손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 환율을 안정시키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기재부가 환율 상승 초기에 낮은 레벨에서 무분별하게 대규모 개입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가격을 억지로 낮게 눌러봐야, 그 낮은 가격에서 달러 수요량만 크게 늘어나 환율은 다시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결국 보유고만 소진할 뿐이다. 오히려 시장 왜곡은 더 심화되고, 그 왜곡은 언제나 비용을 낳는다. 낮게 누를수록, 오래 누를수록 그 비용은 더 커진다. 그 비용은 매도 개입에 따른 26조 원의 평가손실에 그치지 않고, 경제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직간접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기재부가 이런 오판을 내리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IMF 사태 역시 기재부의 전신인 재경원의 끔찍하리만큼 멍청한 판단으로 촉발된 흑역사(링크)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재부가 섣부른 대응으로 외환보유고를 탕진하는 일이 거듭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외환시장을 분석할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환율은 매우 다양한 거시경제 변수들이 얽힌 함수를 통해 결정된다. 그리고 금리 역시 그렇다. 한국은행이 그에 맞는 기준금리를 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경제학 박사들과 방대한 리서치 조직을 운영하는지 보라. 반면 금리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복잡한 환율의 적정 수준을 추정하는데 투입된 기재부 인력과 배경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론적 배경이라곤 고시촌에서 고시공부하던 게 전부이고 민간에서 실무 경험이 전무한 초짜들이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를 외치며 환율 전문가 코스프레를 시작한다. 그렇게 가짜전문가 노릇을 십수년 하고 나면, 마치 시골 뒷산에서 동네 할매들에게 가짜약이나 처방하는 무당마냥 기재부 내에서 진짜 전문가라고 믿어지게 된다. 그렇게 1 고시합격자=100 경제학 ph.D.라는 미개한 발상에 걸맞게 걸핏하면 바닥에 외환보유고를 팔아버리는 미개한 환율정책 역시 반복되고 있다.
그럼 외환보유고를 탕진한 이들은 어떤 책임을 졌을까? 놀랍게도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일부는 되려 더 좋은 자리로 영전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권력의 심장부로 진출하기도 했다. 몇몇은 낙하산 자리를 타고 고연봉을 받는 민간의 자리에 진출하기도 했다. 전혀 전문성이 없는 아마추어들에게 수백 조원의 외환보유고를 멋대로 사용할 권한이 주고, 그 결과 국가와 시장경제에 엄청난 손실을 냈지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 되려 영전하고 더 좋은 보직으로 발령 나는 기괴한 시스템을 가진 조직. 과거 IMF를 일으키며 국가부도의 날을 일으킨 재정경제원의 가짜경제전문가 노릇을 하는 나쁜 습관은 여전히 기재부 안에 만연해 있다.
과거 원시 부족국가 시대의 인간들은 왕이 바람이나 비와 같은 자연현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다. 단군신화에 환웅 역시 날씨를 관장하는 풍백, 운사, 우사라는 관리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은 날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기후를 다룰 수 있다고 가스라이팅 하여 막대한 권력을 누리고 부귀영화를 누렸을 것이다. 오늘날 환율을 다룬다는 기재부 역시 그렇다. 이제까지 외환은 자신들의 영역이라며 수천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제멋대로 쓰고, 대외협력이나 해외파견직을 마음껏 누렸으며, 퇴임 후 낙하산 자리도 냥냥하게 챙겨 잡수시다가 수십조 손실을 내놓고선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가 환율 1500원은 어쩔 수 없는 뉴노말이라니, 이거 너무 뻔뻔한 것 아닌가. 원시시대에서는 흉작이나 홍수가 나면 날씨를 관리했어야 하는 왕이나 제사장의 목을 치기도 했다. 자연재해가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이제까지 날씨 초능력자 코스프레를 하며 권력을 누렸다면 그 응보도 마땅한 결과일 것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환율은 마치 날씨와도 같다. 1560원이라는 자연재해가 닥쳤다면, 자신들이 그걸 관리하고 있다고, 그럴 능력이 있다고 가스라이팅을 일삼아 온 저 가짜전문가-풍백과 운사 우사들의 모가지를 날려버리는 것이 그리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굳이 책임을 묻자면 기재부 역시 고환율의 직접적 원인인 후진 대한민국의 행정과 정책을 설계한 공범 중 하나라는 것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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