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조직은 부패한다. 그리고 선관위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선관위는 절차적 파행을 야기했고 시민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이후 감사원이 감찰에 나서자 선관위는 자신의 헌법적 독립성을 침해한다며 강하게 거부했지만, 이는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 내부의 병폐와 태만을 감추기 위한 저항에 불과했던 것이 드러났다. 수많은 채용비리와 근무태만 그리고 절차적 결함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그것이 자신의 권리라는 방패 뒤에 숨어 아무런 개혁을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투표용지 미교부라는 초유의 사고를 쳤다. 이로 인해 손상된 민주주의의 가치와 신뢰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선관위의 독립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정한 선거를 위한 수단이다. 그 궁극적 목표를 위해 일개 공무원들에 불과한 당신들에게 그 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천부특권이 주어진 것처럼 선관위신수설을 밀다 오늘날에 이르렀다. 1960년 3월 15일, 한국의 시민들은 선거의 종말을 보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의 선관위를 만들었다. 현재의 선관위가 민주주의에 방해가 된다면 이 조직은 이제 그만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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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가 과거 몇 번이나 절차적 위반을 저질렀을 때 일부 유권자들은 그에 항의하며 부실인지 부정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재검표를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정치인들은 그 유권자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그들을 바보 취급 하며 목소리를 잠재우려 했다. 그런 행동은 매우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보든 천재든 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결격사유가 없다면 투표장에 나가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마땅한 권리이듯 그들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재검표를 요구하는 것도 정당한 요구이다. 그 권리는 선거 결과나 정치공학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그 원칙은 조국혁신당원들이니 애국보수당원들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나는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1960년 같이 조직적인 부정선거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오랜 기간 동안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은 나태하고 부패한 조직이 얼빠진 실수를 거듭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검표를 요구한 다른 이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막을 권리가 나에게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자기의 커리어를 걸겠다며 다른 이들의 권리요구를 막으려고 했던 이들의 행태(링크)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이제는 공감할 수 있겠는가. 물론 당사자들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그런 거라며 홍상수를 추억하듯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말을 읊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간단하다. 당신의 추정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해서 타인의 권리를 억압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만약 누군가가 그들에게, 합리적으로 당신네들은 당선될 리가 없으니 자원을 아끼기 위해 너희들은 선거에 못 나가게 막는 게 맞다고 하면 그들은 무어라 대꾸할 것인가.
폰을 붙잡고 카톡을 보내는 남자친구를 의심하며 뭔지 보여달라는 여자친구의 요구에 "너의 의혹은 논리적이지 않으니 묵살한다"라고 대답하는 모쏠찐따는 더 큰 의혹과 싸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여친에겐 남친의 폰을 볼 권리가 없지만 선거인들에겐 개표 결과를 검증할 권리가 있는데. 지난 수 년간 정치를 좀먹어 온 부정선거론의 덩치를 키운 책임은 타인의 정당한 권리를 묵살하려 든 오만한 그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씨발 폰 까서 안 나오면 넌 뭘 걸래"라며 여기저기 쌈박질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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