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대한시장에는 아름다운 전통도 내려온다. 잘 팔리는 가게들이 파리 날리는 가게들의 관리비와 월세를 모두 대신 내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낮에 반짝 열고 잠깐 앉아있다 집에 가는 베짱이 가게들이 늘어하긴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혼자 잘 되는 게 어딨어유, 다 같이 먹고 사는 게 중요하쥬. 그들의 월세까지 버느라 잘 되는 가게의 사장들은 더더욱 열심히 일하느라 골병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저찌 대한시장은 안 망하고 잘 돌아가고 있다. 아니,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이 모든게 상인회가 상가들을 잘 지도편달하고 관리한 덕 아니겠는가. 그 보답으로 각 상인회들은 회비를 걷어다가 상인회에 갖다 바친다. 상인회의 임직원들을 직원으로 고용하기도 하고, 여름휴가도 보내주고 경조사도 챙기고 장사 말고도 할 것이 참 많다. 아 이게 다 우리 시장 잘 되라고 애쓰는 분들 아니던가요잉.
그렇게 잘 지내는 줄 알았던 대한시장의 요새 분위기가 이상하다. 어쩐지 옛날보다 빈 가게도 많이 보이고 시장을 찾는 손님들도 좀 줄어든 것 같다. 매출도 줄었다. 경기가 어려워 그렇겠지, 해보지만 시내 백화점과 쇼핑몰은 불황이 없단 말도 들린다. 상인들끼리도 뭔가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저기 골목에 있던 이가네 있쥬? 여기 월세가 비싸다구 시내로 나가부렀다유." "아랫목에서 가게 크게 하던 김 씨는, 여기서는 장사해먹기 힘들다꼬 문 닫아부렀다 카더라." 이대로는 안된다. 상인회는 팔을 걷어부쳤다. 그래그래, 우리가 통 크게 양보해서 신토불이 말구 요새 아들이 좋아하는 깔쌈한 카페도 허가하고! 주차장도 늘리고! 대청소도 하자카이! 다시금 대한상회의 부흥을 꿈꾸며 대대적 캠페인을 일으킨다. 자자 거 김씨. 내가 다 해결해줄라니께 자네는 내가 시키는 대루만 허랑게?” 하지만 나훈아 메들리로 가득 찬 CD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빛바랜 새마을운동 모자를 쓰고 갑질하는 상인회가 이 재래시장을 뒤바꿀 수 있을 리 없다. 상인회장은 계속 화만 낸다. "아니 시방 우리는 런던 베이글인가 뭔가 그 거시기를 못 해부는 거여??"
상품이 거지 같으면 장사가 안 되고 음식이 맛이 없으면 손님이 끊기는 것처럼 경쟁력을 잃어가는 재래시장에도 한파가 찾아온다. 대한상회도 예외는 아니다. 듣자 하니 대한상회 상품권이 신세계 백화점 상품권의 반값에 팔린다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 하. 잘나가던 우리 시장이 어쩌다 이 꼬라지가 됐는지 상인회 간부 중 하나인 창용상회 사장님이 한 말씀하신댄다. 야야 있어봐라, 가가 그래도 서울대까지 나온 우리 동네 최고 천재라 안카나? 연단에 오른 창용상회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그거시 그 뭐다냐 요새 아들이 쿨허다구 저기 읍내 쇼핑몰 가브러고 시내 백화점만 들락날락 허니께, 그러니께 우리 시장이 망한 거 아니여??" 상인회 간부들이 옳소를 연발하며 박수를 친다. 환호하는 사람들 앞에 기분이 한껏 들뜬 창용상회 사장의 핸드폰에는 그 집 아들들이 시내의 백화점에서 긁어 대는 신용카드의 결제 문자들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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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관치금융과 자본제도가 후져서가 아니라 외국시장이 쿨해보여서 환율이 오른다는 쿨병 창용상회 사장 |

연속해서 올려주시는 글들이 너무 반갑네요.
답글삭제오늘은 이 말이 생각납니다.
중국인은 누구보다 자본주의적인데 중국은 공산주의를 택했고,
일본인은 누구보다 개인주의적인데 일본은 집단주의를 택했고,
한국인은 누구보다 사회주의적인데 한국은 민주주의를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