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11.

독재의 서막

모든 독재는 법을 어겨가면서가 아니라 법을 지배하며 완성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독재는 지극히 합법이다. 김일성이 북한의 실정법을 거슬러 권력을 잡았는가? 스탈린이나 히틀러는? 당시의 헌법과 법전에 따르면 그들의 독재는 온전히 합법적 행위였다. 하지만 이를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독재자들은 항상 적법의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법의 경계는 민주와 독재를 나누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독재의 서막을 알려주는가.

그 답은 권력의 분산에 있다. 일부 인본주의자들이나 감성넘치는 돌대가리들의 허망한 구호와는 달리(ex. 난 달라) 유전적 다양성이 침팬치의 1/4도 안되는 인간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 인간의 본성은 놀랄 정도로 균일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누구에게나 절대 권력을 주면 어김없이 타락한 독재자로 전락했다. 인류는 수천년 간 압제자와 민중간 피의 다툼을 벌인 끝에 이를 깨달았고 근대 민주주의를 완성하던 정치철학자들은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권력의 적절한 분산을 강조했다. 우리는 구약성경의 주인공들 처럼, 현인이 벼락처럼 나타나 절대권력을 쥐고 대중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이 다른 타락한 인간을 견제하기 위해 정의로운 시늉이라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 인간이 도달 할 수 있는 차선의 경계는 딱 거기까지다.

대한민국 역시 이 삼권분립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독재의 시기를 겪지 않았나. 빈번한 독재자의 등장은 권력이 적절히 분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그리고 그 원죄는 행정부, 더 나아가 청와대의 지나친 권력집중에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독재자들은 늘 행정부의 권한을 늘리려고 하고, 독재를 막으려는 이들은 그를 분산하려고 한다. 이 법칙은 현재에도 널리 통용된다. 당신이 박근혜를 지지하든 문재인을 지지하든 , 혹은 김정은이나 허경영을 밀던 간에. 따라서 우리는 시끄러운 정치사안들과 개혁들이 권력이 무게중심을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재 벌어지는 사건들은 삼권분립의 균형을 반드시, 또 영구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게추는 분명히 행정부(혹은 청와대)로 기울어져 있다. 이는 여당 인사들, 심지어 청와대조차 반대하지 않는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미개한 신민들은 늘 자신이 좋아하는 임금님이 전권을 휘두르기를 바란다. 따라서 과거의 독재자들은 이런 점을 아주 영리하게 이용했다. 박정희는 자신의 독재를 장기화하는 유신헌법을 두 차례나 국민투표에 붙였는데, 이는 압도적인 찬성표(1차 91.5% 2차 73%)를 얻었다. 당시 선거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 수치를 조정한다고 해도 그가 상당수의 국민들에게 열성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더욱이 그의 딸 박근혜가 87년 헌법체제 아래서 유일무이하게 과반을 넘겨 득표한 것을 보아도 그렇지 않나.(나중에 애비랑 다르게 어버버하다 탄핵됐지만) 그리고 문재인 정부도 이런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초동 조국수호집회에 모인 사람들을 보라. 거기에 어떤 민주적 가치와 삼권분리의 원칙이 있나. 그저 "우리 사랑하는 임금님을 괴롭히다니, 고오얀 것!" 이라며 분노하는 신민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소수 광신도들의 열성적 지지에 힘입어 청와대는 권력을 확대하고 있다, 독재의 서막은 서서히 오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독재자들은 늘 법의 기본 정신이 아니라 껍데기 같은 형식에 치중한다. 정족수를 계산할 때 반올림을 해야한다던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이 그랬고,  현재 헌법을 수호한다는, 그러니 또 체육관대통령을 뽑겠다던 전두환의 호헌조치가 그랬다. 자신에게 불리한 수사를 진행한다고 검찰인사를 모조리 다 갈아치우는 법무부의 변명도, 국회인사청문회 보고서를 무시하면서 임명하는 행정부의 변명도 마찬가지로 법의 껍데기를 강조한다. 이는 법에 의거한 적법한 인사권이라고. 하지만 검찰청법이나 인사청문회법이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에게 인사권 행사 시, 국회나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으라고 명시한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당신들의 권한은 견제/감시받아야한다는 것이지 듣고 걍 니맘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초등학생들의 유치한 말장난이 떠오르지 않나, "야 무슨 소원이든 들어준다며", "응 네 소원 정말 잘 듣기만 했는데"

운동권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좋은 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4.19와 6월 항쟁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각의 사건들은 1960년, 그리고 1987년에 일어났다. 이 민주화의 공을 특정 세대에게 돌리는 것은 위험하지만, 그를 무릅쓰면서 분석한다면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대한민국 가장 큰 몫은 1940-50년대 출생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링크) 그들은 10대에는 이승만에게 대항해서, 그리고 3040대가 되어서는 전두환에게 대항하여 시위를 이끌었다.(영화 1987에서도 광장을 메운 것은 종북대학생들이 아닌 넥타이부대들이었다.)  현재 여당 지지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30-40대는 그 두 사건에 기여하기엔, 또 기억하기엔 너무 어렸다. 당신들이 시계를 돌려 이승만, 혹은 전두환의 독재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봤더라면 아마 지금 운동권들의 권력독점 시도를 좀 다르게 보지 않았을까.

이 글은 [민주화에 별로 기여한게 없으면서 스스로를] 민주화세대라고 일컫는 이들이 읽기엔 다소 불편할 이야기가 되겠지만, 앞서 말했듯 독재를 낳는 것은 개인의 인성이 아니라 조직의 권력구조이다. 따라서 현 제도를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집권여당이 내편이 아니라 상대편이 되었다고 생각해보는 것 아닐까. 대깨문들이여, 그리고 골수 민주당원들이여. 공수처가 박근혜 정권에서 설치되었다고 생각해보라. 검찰에 대한 청와대의 탄압이 우병우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해보라. 그 결과가 끔찍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나쁜 개혁이다. 참고로 역사적으로 처음으로 기존의 정치구조를 바꿔 독재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그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자신의 정치력을 모두 소진해버리고 제거된 뒤, 엉뚱한 사람이 그 과실을 차지했다. 루비콘 강을 넘은 것은 시저였지만 세습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은 옥타비우누스였고, 프랑스 대혁명 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것은 로베스피에르였지만 역시 황제의 자리에 오른 것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다. 현재 권력의 균형을 부수고 있는 것은 문재인이지만 정작 그 독재의 힘을 휘두르는 것은 결코 당신이 반기지 않을 사람일 것이다.

나는 문재인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실각 후 집권할 그 누군지 모를 미래의 독재자에게 반대하기 때문에 현재의 정치/사법개편 정책을 반대할 뿐이다. 다들 광화문에서 봅시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양강 구도보다 삼자대결이 더욱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이를 서기 200년에 깨달은 제갈량은 천재.
**전국적인 사건으로 두 항쟁을 언급한 것이지, 광주항쟁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사실을 미리 밝힌다.

댓글 18개:

  1. 새해들어 첫 글이시네요. 항상 명쾌한 글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2020 새해에도 계속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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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매번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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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 두분 모두 대담히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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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랑전이란 격투만화에서, 상대방에게 살인기를 쓰려고 하는 등장인물을 주인공이 "너가 그럴 자격이 있냐?"고 비난하자, 그 등장인물이 "당연히 있지! 내가 쓰는 모든 기술은 나한테 써도 되는 기술이다!"라고 되받아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공수처, 인사청문회 사문화, 검찰에 대한 자의적 인사 등 각종 패악을 저지르는 저 새끼들은 저 짓을 자기들이 당할 준비가 돼 있어서 저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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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 문제는 대안도 없고 이문제들의 심각성을 대중들은 모른다는거죠. 나라의 명운이 다해가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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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고, 비슷비슷하지만 어느정도의 경향성 정도는 있기 마련인데 불행하게도 우리가 표본으로 삼을만한 케이스는 북한입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한국은 독재에 대해 상당히 관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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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좋은 글 자보고 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로 바뀌는 과정을 보면서 눈에 다 보이는데 왜 그랬을까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을 보면 다 이해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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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널리 퍼져야 할 글입니다.
    선생님에 재치와 내공이 느껴지는 글에
    많이 배웁니다.
    좋은 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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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운동권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그의 역사를 잘 몰라서요.. 87년도에도 종북대학생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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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여기저기에 퍼져있는 운동권을 간접경험한 것은 논외로 하고, 직접 가까운 곳에서 운동권과 엮인 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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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네 핵심 운동권들은 거의 종북이었다고 봐도 됩니다. 당시 시각으론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네요. 독재자가 탄압하는데 사상적으로 기댈 희망은 북한뿐인데다 북한이 더 잘살기까지 했으니.

      문제는 상황이 변한 지금도 40년전 마인드로 사는 치매온 노친네같은 운동권 잔당들이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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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좌파들이 종북몰이 당한다고 억울해 할게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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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80년대에는 운동권 주류가 친북이었습니다만 당시만 해도 반공이 일반적인 국민정서라서 드러내고 친북이니 종북은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다만 핵심 운동권(특히 NL계열)에서는 친북이 곧 운동권 충성도의 척도라서 그들 내부에서는 경쟁적으로 종북행위가 만연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종북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권 이후 부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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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좋은 인사이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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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믓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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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선생님도 덴마 웹툰의 처참한 결말에 실망하셨군요 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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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가 빡쳐서 포스팅 썼긴 했는데 너무 과격해서 공개를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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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기다리고만 있겠습니다... 양작가에게는 속시원한 일침이 필요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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