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25.

좌절하는 청춘들에게 II, 부제: 라떼는 말이야

블로그에 방문자수가 늘어난 뒤로 내가 가장 많이 접했던 댓글들은 오르는 집값을 두고 좌절한 밀레니얼 세대의 불안과 좌절을 담고있었다. 나는 여전히 지난 30년 중 가장 길고 커다란 부동산 상승 사이클을 볼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당신이 무주택자라도 아직 40이 넘지 않았다면 지나치게 좌절하고 분노할 필요는 없다. 모든 시장에는 사이클이 있고 부동산 또한 예외는 아니니까. 현재 우리는 상승기에 있지만, 언제고 내릴 때도 있을 것이며 당신이 충분히 젊다면, 그때에도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을 테니 너끈히 집을 마련할 것이다.

예전의 글에서 어떻게 이런 사이클이 완성되는지를 밝혔다.(링크) 요약하면 과거에도 잘못된 주거정책으로 인해 집값이 크게 폭등하자, 정부는 돌아서서 과도한 공급으로 집을 오히려 지나치게 공급한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집값이 오랜기간 낮게 유지되어 중산층들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고. 하지만 몇몇은 이렇게 반문했다. "과거에는 고도성장기에 금리가 높아 재테크도 더 쉬웠고 집값도 싸서 사기 쉽지 않았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잘못된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아니, 집 사기는 과거가 훨씬 더 어려웠다. 옛 데이터를 뒤적거리는 것은 늙은이들의 넋두리를 듣는 것 만큼이나 고역이겠지만, 그래도 꾹 참고 한번 1980년대의 "라떼는 말이야"에 귀 기울여 보자.

한국의 소비자물가 연 상승률
7080년대의 은행이 예금자에게 10%가 넘는 이자를 주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목돈을 예금으로 모아 집을 살 수 있었을까. 아니 절대 불가능했다. 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에서 보다시피 7080년대에는 물가가 20-30%씩 오르는 일이 흔했다. 일반적으로 주택가격이 소비자물가보다 더 빠르게 오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저 시절의 집값은 해마다 더 크게 올랐을 것이다. 은행에 100만원을 넣으면 1년 뒤 110만원이 되지만 1000만원짜리 집은 1200만, 1500만원으로 뛰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일은 가능했을까. 그것이 거의 유일한 길이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은행예금금리가 10%인데 대출금리가 그보다 더 낮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친척 중 한분이 처음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을 때의 대출금리는 무려 15%였다고 한다. 아무리 부동산이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도, 두자리 수라는 살인적 고금리에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는 것이 어찌 쉬웠겠나. 뿐만 아니라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대출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느정도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만 허락된 특혜같은 것이었고, 때때론 은행 지점장에게 고맙다며 소정의 보답을 해야 하던 시대였다. 장담컨대 집을 사는 것은 7080년대가 훨씬 힘들었다.
과거에는 집이 매우 싸서 소득만으로 살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철부지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데이터는 그 반대를 보여준다. 위에서 보다시피, 소득대비 주택가격은 80년대가 말도 안되게 더 비쌌기 때문에 소득으로 집을 사는 것은 몇배나 더 힘들었다*. 당시의 이러한 분위기는 뉴스 아카이브에서 당시 신문들을 검색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80년 2월 27일 경향신문 기사
이처럼 고작 17평짜리 아파트, 현재는 찾아보기도 힘든 그런 초소형 거주지를 마련하는데 1980년의 도시근로자들은 11년 이상의 저축을 쏟아부어야 했다. 아마 당시의 물가상승률이 예금금리보다 훨씬 높았을테니 실제 도시 노동자가 집을 장만하는데엔 훨씬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게다가 위의 사례가 한국의 13개 주요도시의 평균을 구한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서울의 사정은 더욱 처참했을 것이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불과 40%를 갓 넘기던 시절이었으니까. 현재의 주택난이 아무리 지옥같아도 7080년대 보다는 더 낫지 않은가.

1990년 4월 30일 매일경제 기사
거기에 대응하는 우리 윗 세대의 반응도 똑같았다. 집값이 계속해서 폭등하자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결혼을 연기하고 부업에 나서며 돈을 모으기도, 아예 포기하기도 했다. 현재 젊은 세대들의 반응과 너무나 똑같지 않은가. 그랬던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됐을까?

서울 주택가격 / 물가인덱스 = 서울 주택 실질가격
아마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 보통사람을 자처한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자 그는 수도권 주택 200만호 건설을 약속했고 그에 따라 서울의 실질주택가격은 1991년에 정점을 찍은 뒤 약 10년간 하락했다. 결혼을 미뤘던 사람들은 다시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부업을 뛰며 종잣돈을 모으던 사람들은 큰 집을, 그리고 현재를 즐기며 소비를 하던 사람들은 뒤늦게 돈을 모아 작은 집을 마련하고, 뭐 그렇게 살아갔으리라. 1980년에 20-30대였던 세대는 다소간의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10년 만에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41%에서 80%까지 뛰어오르자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부동산이 더 빠질 것이라고 생각한 소수의 무주택 투기꾼을 제외한다면.
당시에도 재산세를 늘려야 집값이 잡힌다고 주장하던 멍청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정부가 공급으로 방향을 선회한 후 일어난 일이다. 현재의 정부는 너무나 멍청하고 너무나 고집이 세서 공급을 꽉꽉 틀어막고 있지만, 민주주의 아래서 이런 멍청한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어디까지나 민주주의가 유지된다면) 1987년 민주화항쟁을 겪은 군사정권이 대중의 필요에 따라 정책의 방향을 주택공급으로 돌렸듯, 현재의 정부도 결국 굴복할 것이다. 언젠가 공급을 약속한 정부가 들어설 것이며, 그때 좌절한 청춘들은 1980년대의 신혼부부 崔모씨(31살)가 그랬듯 자기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미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울 아파트의 실질가격이 떨어지던 저 시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일 것이다. 내가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 옛날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꼰대처럼 그때가 더 힘들었어! 라고 일갈하며 당신들의 좌절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입견과는 정반대로 그대의 아버지들 역시 1970-80년대 주택 폭등기를 힘들게 견뎌낸 끝에 가까스로 내 집 하나 마련한 분들임을, 그리고 그들의 인고와 노력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싶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자 고통스러운 시절도 지나가고 지금의 그대들이 기억하듯, 어찌보면 너무나 쉽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듯이, 당신들이 겪을 오늘과 내일도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되고 사이클 역시 돌아올 것이다. 나는 희망을 파는 사람이 아니지만 뭐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밀레니얼 세대여, 너무 걱정하지 말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몇몇은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7080년대에 집을 사는 것이 더욱 쉬웠다고 강변할 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대치동이나 잠실같은 지역을 예로 드는데 그 당시의 이 지역들은 사실상 신도시나 다름없던 지역이거나, 심지어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이 아닌 곳들도 있었다. 지하철 3호선도 개통되기 전이라 그 지역에서 서울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데에 1-2시간이 걸렸는데, 지금도 출퇴근에 그정도 걸리는 교외의 아파트 가격은 월급으로도 살 수 있을 만큼 싸다.

댓글 24개:

  1. 이대로 가면 한국이 도시국가화하는 건 기정사실일텐데, 수도권 집중화를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수도권 집중화를 막지 않는 게 답이려나요.. 지역균형 운운하는 정책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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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생각엔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수도권에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시너지든 규모의 경제든 그래야 유리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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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수도권에 집중할수록 도리어 국가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경쟁력에 가장 불안 요소는 고령화이고 그걸 부추기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가 수도권 집중입니다. 님이 예전에 언급했듯 출산율은 인구 밀도에 영향을 많이 받고 사실 정책적으로 손댈 수 있는 몇 안되는 저출산 대책은 인구 분산 뿐입니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수도권 집중은 해소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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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좋은 글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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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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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부분의 자료는 kosis에 있습니다. 부동산 데이터는 kb를 많이 참조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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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간만에 올라온 글 잘읽었습니다 선생님
    항상 냉철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논조가
    너무나 존경스럽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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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따듯하기보다 사실 맨날 너무 못되게만 쓴것 같아 찔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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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애독자입니다. 모처럼 마음따뜻한 글을 써주셨네요 ^^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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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새해복 많이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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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늘 감사하게 보고있습니다.. 갓 한살된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집을 보러 다니다보면 한숨만 나오는 요즘입니다. 이 와중에 서울시장이라는 작자는 부동산공유제니 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네요~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워낙 말도 안되는 정부라서 영 찝찝합니다.
    실거주라 어떻게든 집을 사겠지만 마음은 영 무거웠는데 써주신 글보고 많이 힘이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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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되고 힘드시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아버지가, 그리고 배님의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 처럼 모두 이겨내고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내실겁니다. 원래 집은 자식 초등학생 되고 나서 4050에 마련하는 겁니다. 배님은 결코 뒤쳐지신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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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익명의 애독자입니다. 여기글 반복해서 읽으며 공부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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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젋은 세대들이 주류인 커뮤니티에서 저시절 젋은 새대들은 지금보다 개꿀빤거 아니냔 베댓에 꼭 그렇지많은 않다 항변한 386세대 뻘 이용자가 댓글을 남긴걸 봤는데 https://hugin00munin.blogspot.com/logout?d=https://www.blogger.com/logout-redirect.g?blogID%3D8486587927749642077%26postID%3D3541341084573075394그럴만한 사정이 있긴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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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최고로 꿀빠는 세대는 늘 현재세대입니다. 다음세대는 물론 그보다 더 꿀빨며 살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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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선생님 블로그를 보고 쭉 정독하고 이제라도 보게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30대초반이고 아파트는 없으며 인서울 대학가에 오피스텔 3채 약 100세대 정도를 빚 포함해서 겨우겨우 운용하고 있는데 아파트를 보유하는것이 더 좋을까요.. 1인거주는 가격변동이 크지 않고 임대수익뿐이라 아파트와는 성격이 조금 다른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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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피스텔은 아파트와 별개의 자산이니 구분지어 생각하시는게 좋을듯 하네요. 30대 초반이시면 앞으로 상당기간 소득이 나오실텐데 임대소득에 대해 종합과세로 세율이 크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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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옙 대출이자와 세금을 생각하면 수익이 크게 줄었습니다. 부동산 성격상 가격을 올리기 애매하기도 하구요 적다보니 결국 답은 똘똘한 아파트 한 채 같기도 하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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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각각의 세금이 크지 않을테니 파시고 대형평수로 갈아타는게 좋다고 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시각일 뿐이고 또한 개별 물건마다 평가가 다를 터이니 신중히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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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무주택 투기꾼이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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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세입자들중 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들이 능력이 있는데도 집을 사는 대신 전새로 목돈을 맡기는 이유는 집값이 떨어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청약만 바라보고 있고요.

      오르는 것 뿐 아니라 내리라고 베팅하는 것 역시 투기입니다. 투기가 나쁜건 결코 아니지만 그걸 나쁘다고 바라보는 금융원시인들의 관점에 따르면 그들도 투기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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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80년대의 공급부족은 왜 일어난건가요? 5공때도 지금같은 공급억제정책이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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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해가지 않지만 정부는 공급을 억제했습니다. 무엇보다 남북의 군사적 대결구도 아래의 전략적 판단 아니었을까요? 서울이 지나치게 커져버리면 전략적으로 북한의 장사정포에 너무나 취약하게 되니 의도적으로 서울보다 남쪽에 위성도시를 지어 인구를 분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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