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25.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좌절한 청춘들에게

집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 폭등하는 집값을 보며 마음이 편할 수는 없다. 아마 선대인같은 멍청이들이 10년째 안 맞는 전망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데도 계속해서 그들의 유투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대중들이 그들의 전망이 아닌 희망을 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에게 팔 희망이 없다. 애초에 그런 것으로 먹고 사는 직업도 아니고. 내 전망대로라면 부동산은 경제가 침체해도 금융위기만 오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고 빈부격차는 크게 벌어질 것이다.

거기에 가장 좌절하는 사람은 바로 2030대일 것이다. 잡도 없고 집도 없는 세대. 하지만 잡은 몰라도 집은 확실하게 살 수 있는 날이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대책없는 낙관론을 펴는 것이 아니다. 정책사이클은 반드시 반복될 것이고 실제로 과거에 그랬으니까.

위의 그래프는 앞서 글에서 인용힌 서울시의 집값을 가처분 소득으로 나눈 것이다. 우리의 통념과는 반대로 월급쟁이가 자신의 봉급으로 집을 마련하는 일은 80년대가 더욱 힘들었다. 그 당시엔 은행대출도 없었고 인터넷에서 매물을 찾아볼 수도, 실거래가를 보여주는 사이트도 없었다. 복덕방에서 얼마에 거래가 되었다고 하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믿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강남 대부분의 지역에도 지하철 노선이 뚫리지 않아 도심으로 진입하는데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집값은 (소득대비) 현재보다 거의 두배 이상 비쌌다.

서울시 집값이 미친듯이 폭등했던 것은 철저하게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에는 서울시 거주가구의 1/3이 집이 없이 남의 집어 얹혀사는 구조였기에 "한지붕 세가족"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하고, 다가구 주택이라는 괴상한 형태의 주거형태가 현재까지도 흔하게 눈에 띌 만큼 서울시의 공급부족은 심각했다. 그와 같은 주택난은 노태우정부가 공격적으로 신도시를 짓고 고층 아파트를 공급하며 크게 해소된다. IMF가 터지기 전 까지 주택의 실질가격과 가처분소득대비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했고 부동산은 약 10년가량 침체기에 들어선다.

비슷한 현상이 2000년대 말에도 반복되는데 당시 시민들의 생활수준이 큰 폭으로 개선된데 비해 서울의 거주환경은 여전히 낙후된 7080대에 머물러있었기 때문에 "양질의" 주택이 크게 모자르게 된다. 80년대의 주거난이 수량적 부족 때문이었다면 현재와 2000년대 초의 주거난은 질적 부족에 가깝다. 이는 이명박이 여러 뉴타운을 개발하고 한강변을 따라 약 5만세대의 재건축을 허용하면서 잠시 완화된다.

현재의 공급부족은 필연적으로 정책노선의 수정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국토부나 건설회사 관계자들은 모두 현재의 공급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정치인들도 안다. 다만 자신들을 찍어줄 유권자들이 모르니 자신들도 유권자들의 장단에 맞춰 모르는 척 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과거를 종종 잊지만 학습의 동물이기도 해서 실질 주택가격이 폭등하고 나면 유권자들은 공급대책을 요구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재건축/재개발의 규제가 대폭 완화되어 공급이 늘어나고 주택시장은 다시한번 침체할 것이다. 모든 시장이 그렇듯이.

따라서 현재 주택마련에 실패했다고 해도 너무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말자. 우리 청춘들이 가진 가장 소중한 자원은 바로 시간이다. 자본과 경험이 많은 6070대 자산가들은 미래가 없다. 내일을 예측할 수 있어도 미래를 살 수가 없다. 내 주변의 한 70대 자산가는 자신이 20년만 더 살수 있다면 투자할 것이 너무 많은데 언제 죽어서 상속해야할지 몰라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청춘들에게는 그 시간이 있다. 버스는 떠났을 지 몰라도 역사는 반복되고 다음 버스도 반드시 올 것이다. 그 다음 버스에 올라탈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된다. 당신이 만약 40세를 넘지 않았다면 다음 버스도 너끈히 올라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으로 무장한 채 희희낙낙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내 주변에서 부동산 비관론이 팽배했던 때에 집을 산 부류는 참여정부에서 부동산이 폭등할 때 가장 괴로워했던 친구들이었다. 괴로움의 크기가 컸을 수록 더 공격적으로 투자했고 부동산 하락사이클이 길어질때에도 더 오래 버텼다. 원하는 지역의 지도를 펴고 대출제도를 살펴보고 임장도 해보고 그리고 과거의 데이터들을 반추하라. 언젠간 다시 당신의 가처분소득이 그 지역을 쫒아 올라오는 날이 올 것이다.



불편하다고 해서 눈을 감아버리고 도피하는 것, 그것 하나만 피하면 된다.

버스는 반드시 다시 올 테니까.

댓글 28개:

  1. 멋지네요^^ 잘 읽고 있습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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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최근 본 글중 최고의 마무리 그리고 독보적인 인사이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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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안녕하세요 애독자입니다. 늘 통찰력 넘치는 글 잘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현재 HHMM님 블로그페이지가 PC화면에서는 괜찮은데 모바일화면에서는 블로그제목위로 제법 큰 공백이 생기고 있습니다. 제가 개발자화면으로 보니 구글광고패널이라고 뜨던데 레이아웃 들어가셔서 한번 확인해보셔야할 것 같아요. 위치가 타이틀(Miscellaneous ideas from~) 위라서 좀 애매해보이네요. 평소 구독료를 내고싶을정도로 잘보고 있는데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댓글 작성합니다. 오지랖이라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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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드백 감사합니다. 애드센스를 신청해봤는데 그 때문에 그렇게 보이나 보군요. 몇주 더 해보고 혹시 수익이 변변찮은데 보기에 거슬리면 그냥 해지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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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이제 광고 잘 나오네요. 구독료는 못 내는 대신에 광고는 많이 클릭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블로그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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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감사합니다! 취미가 글쓰기라 글은 계속해서 써왔고 계속해서 쓰겠지만 최근 조회수가 늘어 걱정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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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Substrack 같은 서비스 이용해보시면 어떨까요. 뉴스레터로 받아볼 수도 있고, 구독서비스도 쉽게 붙일 수 있습니다. 구독료 내서라도 hhmm님 글 계속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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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요즘 돌아가는 정세에 충격만 받다가 우연히 이 곳을 발견하고
    지난글들까지 꼬박 밤을 새워가며 한글자 한글자 숙독했습니다.

    몇백년전 태어났다면 당장 내일 논에 댈 물걱정이나 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외적의 칼에 부모형제 잃고 꺼져가는 눈으로 딸과 처가 강간당하는걸 쳐다보며
    왜 이것들이 여기 나타났지라는 의문과 함께 논두렁위에 썩어갈 신세였을지도 몰랐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맥 학맥 지연은 커녕 가진거라곤 아직은 멀쩡한 두 다리와 병들지 않은 몸뿐인 저 같은 사람도
    이런 혜안이 가득 담긴 글을 인터넷과 오래된 컴퓨터 하나로 볼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부디 건승하시고 몸건강히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써주시기 바랍니다.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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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부디 NoOne님도 건승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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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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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저랑 생각이 똑같네용 정부가 진짜 집값을 잡을 생각이 있다면
    기만형식의 규제가 아닌 그린벨트 해제 및 인프라 구축, 아파트 건설을 실행했겠죠
    3기 신도시 같은 병신짓이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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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너무나도 좋은 글 항상 감사히 생각하며 정독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유료화해도 전혀 아깝지 않을 소중한 생각들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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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우리나라 주택 통계의 문제점이 준거점을 일본과 함께 버블이 일어났던 80년대 후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데이터의 시작점을 버블 꼭대기로 해놓으니 당연히 대비되서 싸보일수 밖에요. 그리고 주택 보급률이 80%대였던 당시와 비교해서 주택을 그렇게 많이 공급해서 주택 보급률이 100%를 훌쩍 넘은 지금도 자가점유율이 전혀 올라가지 않았다는게 더 재밌는 데이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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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1980년대 일본의 버블과 한국은 매우 다릅니다. 집값이 소득대비 비쌋던 것은 뒤틀린 공급때문이지 일본버블과는 연관도가 낮아요. 게다가 통계시스템이 확립된게 80년대지, 그 전에는 소득대비 집값이 더 비쌌어요. 80년대 일본버블에 관해서는 이 블로그 첫 글을 읽어보세요.
      2.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고작 96%입니다. 그중 대략 3-4%는 살기 어려운 집이고요.
      3. 자가점유율이 낮아지는건 필요지역에 공급하지 않고 대출을 죄는 병신같은 정책 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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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득 대비 집값에 대한 상식으로 한가지 덧붙이면, 세계적으로 봐도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의 소득대비 집값보다는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에서의 소득대비 집값이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나더군요.
      횡단면 분석이라 시계열에서도 그렇게 나타날지는 조사를 해봐야겠습니다만 시계열에서도 그런 현상이 관찰된다면 현재 PIR이 과거보다 낮다고 판단하는 기준을 단순평균보다는 좀 더 낮게 잡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달아주신 답글 중에 '80년대 이전에는 소득대비집값이 더 비쌌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이에 대한 생각을 적어봅니다.
      경제적 통찰이 넘치는 글 잘 읽고 있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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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감사합니다. 다만 가난한 국가의 소득대비 집값이 비싼 이유 중 하나가 개발도상국에서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현상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일례로 홍콩이나 싱가폴은 선진국임에도 PIR아 전세계적으로 높은 나라거든요.

      흥미로운것은 단일국가 내에서는 시계열로 PIR변동이 있지만 국가간으로 보면 PIR순위는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인구밀도가 변하지 않으니까요. 참고로 서울은 세계 1위인 싱가폴보다 인구밀도가 2배 이상 더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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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감사합니다. 서울 주거용부동산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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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전국적 평균을 보면 한국에서 년 소득 대비 주거용 주택가격은 미국에 비해서 아직은 싼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하위 50% 소득에 속하는 20-30대 한국인이 어떤 형태가 되었든 자택을 소유한 '코리언 드림'을 이룰 찬스는 같은 미국인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가능성 보다 훨씬 적을 겁니다. 물론 주거환경 자체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 어렵지만요. 이유는 크게 두가집니다.



    첫째, 미국인의 평생소득(적극적 소득 + 소극적 소득)은 한국인에 비해서 많습니다. 아마 3-4배는 될 겁니다. 소극적 소득(passive income)을 한국에서는 '불로소득'이라고 하더군요. 소극적 소득은 렌트, 이자, 연금, 투자 배당금 등 여러가지고요. 그리고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융자보험 (FHA, 페니뫼, 프레디맥 등)이 있어서 30년 장기 분할 상환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저소득 층과 노령자, 처음 주택 구입자, 전문인, 베테란을 위한 할인 프로그램이 연방정부, 주정부 단위로 있고요.

    미국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은 미국 가정(family)가 부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개인의 상속세 부과 한도는 1,200만 달러 이상입니다. 트러스트를 세우면 면세가 되고요. 주택을 포함해서 모든 재산 양도는 등록세 이외에는 없습니다. 회사를 양도/상속할 경우에도 별도의 세금이 없습니다. capital gains이 발생하는 시점에서 세금을 내기는 하지만 세율은 20%, 15%, 0% 3가집니다. 공화정에서는 국가가 개인의 권리(생명과 재산권 포함)를 override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현재 한국 정부는 '활빈당' 역할을 합니다. 부자를 뜯어서 빈자에게 돌려주는 정책을 취합니다. 예수가 선호한 정책이고, 조선의 사대부가 주장한, 그리고 나치와 파시스트의 국가사회주의지요. 한국인 상당수가 이런 정책을 지지합니다. '정의'를 말하지만 실상은 '평등'입니다.

    여기의 끝은 북한입니다. 나는 판문점 JSA에서 7년을 장교로 근무한 후 보위부에서 간부로 근무하고 있던 북한인을 만나본 적이 있었읍니다. 당원임에도 불구하고 주택을 배급받지 못해서 와이프와 생후 6개월 된 아이와 떨어져 살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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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이 글도 서울대숲에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이미 올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저는 서울대생이 아니라 제가 올리지는 못합니다.)

    2015~2018년동안 서울 주요 지역 집값은 50%쯤 올랐을텐데 그래프는 큰 차이가 없네요.
    '주요'지역이라 그런가요?
    그리고 잡도 확실하지 않은데 집을 확실하게 살수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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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만큼 가처분소득도 같이 상승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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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렇군요. 가처분소득이 그렇게 상승했는지 몰랐습니다. GDP에는 큰 차이가 없길래요.

      이런 그래프를 작성할 때 통계치는 어떤 곳에서 인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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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로 통계청이나 블룸버그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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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이거 쓰실 때 까지만해도 오려나 싶었던 그 시기가 다시 왔군요. 다시 젊은이들이 잡은 몰라도 집은 살 수 있는시기가 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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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만 그 이유가 공급증가가 아닌 급격한 금리인상이라니 세상일 참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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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현재는 금리인상으로 인한 모든 자산가격의 일시적 조정입니다. 물론 어떤 자산들은 영구적, 혹은 그 이상의 조정을 받겠지만요. 그리고 그 목적은 다르게 해석하면 임금상승률을 낮추고 실업률을 올리기 위함도 있습니다.

      현재와 같이 매우 긴축적인 통회정책을 장기간 지속하기엔 부담이 큽니다. 최근 은행권에 스트레스가 걸린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죠.

      실질가격을 낮추려면 공급이 재개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소득대비 가격은 더 낮아질수도 있겠죠. 또 그래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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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렇다면 지금이 탑승시점이네요. 향후 몇년간 수도권 공급이 유의미하게 늘 것 같지는 않아서요. 저는 안타깝게도 3년 전 영끌매수를 하는 바람에 둔촌,장위 자이를 줍지 못했습니다.ㅠ 아직 어린데 너무 성급했던 것 같긴하네요. 웃긴 점은 정작 집값 거품이라고 하던 주위의 2030들은 부동산을 만(못)사더라도 이미 주식,코인으로 재산이 털려서 가격이 떨어져도 부동산을 살 수 없더라구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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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원래 2030대의 투자는 대개 그런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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