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30.

정우성, 난민 그리고 임대주택

  • 연예인들의 연예인인 정우성이 연예인도 아닌 내 눈에 못나 보였던 적이 있었다. 바로 한 영화 시사회에서 "박근혜 나와!" 라고 외쳤을 때. 죽어가는 권력을 조롱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왜 그는 박근혜의 힘이 막강하던 임기 초에는 아무말 하지 못하다 대중들이 환호하는 시점에서야 자신의 소신을 드러냈을까. 살아있는 권력들을 마음껏 풍자하다 스러져간 여의도 텔레토비들보다 멋지지도, 웃기지도 않은 그는 그냥 한명의 광대였을 뿐이었다. 그를 움직인 것이 정치적 신념이 아닌 별풍선같은 박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으리.
  • 그 잘생긴 광대에게 내가 동의해 마지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난민정책이다. 나는 우리가 난민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전략적으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시선으로 볼 때 당신의 할아버지들과 나의 할머니들이야말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정책 덕분에 살아난 수혜자들이고, 실제 데이터로도 우리는 그 원조 없이는 태어날 수 없었다. 일본의 가혹한 수탈 이후, 6.25전쟁을 치른 우리 나라에서 대량의 아사자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미국이 이끌던 국제사회의 원조 덕이었고 한때는 국제원조가 우리나라 GDP의 약 20%에 가까웠던 적도 있었다. 이 원조는 1945년 해방부터 20여년간 대한민국의 경제와 사회를 떠받친 하나의 기둥이었는데 그 원조의 직접적 수혜자들이 다른 선진국이 떠안은 난민의 부담을 거절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로 비칠 것이다. 한국도 이제는 국제사회의 위상에 걸맞는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싫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든가.

    "우리는 국제원조를 반대한다. 1950년대 인구대비로 최대의 원조를 받은 한국인들이 대다수 선진국들이 합의한 난민수용을 거절하는 것을 보라. 인도적 차원에서 남을 도와줘봤자 그들의 후손은 싸그리 다 잊어버린채 다른 이웃을 돕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 대한민국이 증명한다. 2016년 국제 자선 순위에서 140개국 중 한국은 온두라스와 니카과라에 이은 76위를 차지하지 않았는가. 당신이 돕는 난민과 빈곤층은 부자가 되어도 자신의 이웃들을 돕지 않을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사람들이 그렇듯이"
  • 대중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난민정책을 옹호할때 비로소 정우성은 광대에서 다시 공인이 되었다. 그의 소통방식이 비록 아직 미숙하고 어리지만 적어도 쌀 한톨 희생하지 않으려는 우리보다,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위해 이를 악문 광대가 낫다고 믿는다. 그는 연기자가 되기 전 사당동 판자촌 주민중 하나였다. 우르릉 쾅쾅 하는 포크레인 소리를 참아가며 억지로 잠에 들었다가 깨면 이웃이 한집 한집 사라지던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아마도 난민들을 보며 쓰라린 어린시절 기억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대중들은 청담동 고급빌라에서 잠드는 그의 현재와 난민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교하며 그를 조롱하지만 난민을 위해 기껏해야 ARS 전화 몇통 걸어본 것이 전부인 나는 그를 비난하지 못하겠다.
  • 재미있는 것은 난민을 반대하는 대중들은 비슷한 개념의 임대주택에 대해서는 꼭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난민들이 범죄율이 높아 치안을 어지럽히고 게으르고 불성실하며 미개하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하지만 가난할 수록 범죄율이 높고, 불성실할 수록 가난하며 가난하면 교양수준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난민을 반대한다면서도, 같은 이유로 신축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꺼리면 그들은 갑자기 정우성으로 돌변한다. 아마도 몇몇은 "같은 한국인들을 돕는 것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난민들이 어찌 같은가"라고 항변하겠지만, 인류는 99.8%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임대아파트 주민들과 난민들은 유전적으로 끽해야 0.2%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유전적 유사성이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심지어 바나나도(그래 그 바나나) 우리와 유전자의 70%를 공유하는데 바나나 먹는 사람들은 다 사이코패스들인가. 백번 양보해 그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당신은 얼굴 한번 마주친 적 없는 한국인이 수백만원을 요구할때 선뜻 내어줄 수 있는가.(임대아파트와 인접한 동의 가격은 약 0.5-1.0% 저렴하다) 자신은 난민을 위해 2천원짜리 ARS도 돌리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선뜻 수백 수천만원을 희생하지 않는다며 타인을 비난한다. 반면 정우성은 자신의 인기와 시간, 그리고 광고수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난민들을 위해 욕받이를 자처하고 있다. 난민을 반대하면서도 임대주택을 반대하지 말라고 일갈하는 대중들. 그들의 민낯이 정우성보다 추한 것은 외모 뿐만은 아닐 것이다.

댓글 13개:

  1. 해방 후 한국이 국제사회와 미국의 지원을 받은 건 순수 인류애적 지원에 가깝나요, 아니면 지정학적 위치 덕에 가깝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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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연말 구세군 냄비 앞에서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순수하게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하나요 아니면 자기 만족과 도덕적 우월감 때문에 내나요?"라고 묻지 않듯 한국이 받은 원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231님께서 유니세프를 통해 평생 후원해 온 빈민가의 아이가 성인이 된 뒤 "당신이 날 후원한 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우리를 종속시키는 이기적 행위였을 뿐이다"라고 편지를 보낸다면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괘씸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우리 한국인들은 일본의 강제근대화나 국제원조 그리고 미국이 우방에게 제공하는 혜택에 대해 결과보다 "의도"에 방점을 둡니다. 그게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될 진 몰라도 전략적 판단을 내리는데엔 방해가 되죠. 상대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할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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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답변이 명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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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항상 글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제 체감상으로는 난민 수용을 찬성하는 ‘착한’ 사람들이 임대아파트도 착하게 찬성(일반 입주세대와 구분짓는 거 반대)합니다. 저는 착하지 못해서 둘다 반대지만요. 그리고 난민 수용과 국제원조는 다릅니다. 사실 난민 수용에 가장 인색한 일본이 난민 관련 국제원조는 가장 많이하는 편이에요. 돈은 얼마든지 퍼주겠지만 우리땅엔 오지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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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언젠가는 난민을 받아야 할 수도 있겠죠.아니 국가가 존립하려면 지금과 같은 인구추세로는 받아야합니다. 그런데 지금당장은 그럴만한 역량이 매우 부족하지 않나요? 지금 다문화가정도 사회에 정착을 제대로 못시키고 있는데 이것도 해결못하면서 난민을 받는게 이로운지는 잘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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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다만 현재 널리 퍼져있는 난민 수용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는 불과 2~3년 전에 난민을 수용한 유럽 국가들에 벌어진 일도 제법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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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잘 봤습니다만 이건 저랑 의견이 다르네요
    한국이 다른 나라에 경제적 원조를 하는 건 저희도 받았기에
    저는 당연히 찬성합니다만 난민은 다르죠 지금 유럽 난민으로 엄청난 사회적 문제가 되고있고
    특히 종교적 문제는 그 해결책이 없다시피 합니다
    이상과 다르게 현실은 더욱더 끔찍하더군요 유럽을 보고 느꼈습니다
    경제적 원조는 OK 하지면 난민은 NO 정식적인 절차를 받은 이민은 OK
    가 제 생각입니다 난민들의 가장 큰 문제는 대다수의 난민들은
    해당 국가의 사회구성원이 되려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특히 종교적인 이슬람권 사람들이 그런게 더 심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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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결국 국민들의 이중성을 꼬집는 글이네요. 그에 대하여는 얼추 공감되는 부분도 많으나
    저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우리나라 자체가 아직 난민을 받을만한 역량이 매우 부족한것이라 생각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다른 인종뿐이 아니라 비슷한 조선족,탈북자부터 정착을 제대로 못시키고 있죠.. 물론 글에서 언급하신 "난민들이 범죄율이 높아 치안을 어지럽히고 게으르고 불성실하며 미개하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와 같은 맥락으로요, 그리고 실제로도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수 있으나 결국 난민을 받는다면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건 예정된 수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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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생각에 그래서 가장 타협하기 쉽고 합리적인 수순은 원조를 늘리는것이죠.
      최소한 지금 이 현상태에서 난민을 받는다? 양심이니 신념이니 그런걸 떠나서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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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단지 유전자로만 판단하는건 섣부르지않을까요
    일본은 상대적으로 쓰레기를 덜 버린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게 유전자 차이일까요? 사실 그건 강력한 법적 처벌, 잦은 청소와 연관되어있고 그로인해 그 국민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습관이 억제되고 그것이 몇 세대동안 이어져 지금의 일본 국민성이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전자와 국민성은 사실상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 국민성이 어떤 나라에 태어나는지와 관련되어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로인해 사실상 법이란게 의미없는 후진국 국민들은 국민성이 확실히 다른 나라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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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위에 적어주신 댓글과 관련해 따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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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난민을 구별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동남아 난민이라면 받아들였을지도 모르지만, 이슬람 율법은 법치 위에 있다보니, 반감이 크지 않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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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 맞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준을 과거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죠. 아이가 이쁘다고 성기를 만지고 개고기를 먹고 또 당연히 현지인들에 비해 한국인 난민/이민자들의 교육수준은 물론 윤리의식도 낮고 범죄도 많았겠죠. LA한인타운의 과거 이미지를 생각해 봅시다.

      신정분리시대에 법 위에 교리를 두는 무슬림들의 문화는 현재 대한민국의 시스템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건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선진국들에서도 이민자 문제에 대해 첨예한 마찰이 있고요. 그에 대해 저 역시 백번 동감합니다.

      하지만 그럼 한국 사회는 어떤 이민자를 받아들이려 하나요? 무슬림은 종교가 안맞아 안되고 조선족은 중국 스파이들이라 안되고, 우리가 용납할 수 있는 난민은 누군가요? 말끔하게 수트 입은 키 60피트의 백인 남성? 그런 난민은 없습니다.

      자국내 여론이 어떻든 국제사회의 선진국들은 자신의 몫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무와 선진국이란 인정과 권위는 같이 오는거겠죠. 우리나라는 k시리즈로 국제적 인정은 원하면서 책임을 철저히 회피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무슬림 범죄는 거기에 대한 좋은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범죄를 옹호하는건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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