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9.

오징어게임3: 최악의 사이코패스 성기훈

비범한 일을 겪은 사람은 결코 이전의 평범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그가 겪었던 사건이 끔찍하다면 더더욱. 이 잔혹한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은 성기훈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지막 게임에서 그의 친구-상우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게임을 포기하겠다는 기훈을 막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그렇게 기훈은 자신의 손으로 단 한 명조차 죽이지 않았음에도 이 잔혹한 데스매치의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깨달았다. 자기 안에서 무엇인가가 분명히 부서졌음을.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는다는 도파민의 끝을 경험한 그의 뇌는 더 이상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었다. 머리를 빨간색으로 물들여 보아도, 456억이라는 돈을 아무리 써도, 아무도 없는 호텔 방에서 소총을 난사해 보아도, 심지어 가까운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그의 뒤틀린 욕구는 도통 만족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광적으로 프런트맨을 찾는 일에 집착했다. 새로 피어난 사이코패스적 욕망을 자각하지 못한 그는, 그것이 오징어게임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포장했다. 하지만 기훈은 형사처럼 섬을 수색하지도, 이 끔찍한 사건을 언론이나 유튜브에 폭로하지도 않았다. 그가 간절하게 찾던 것은 바로 지원자를 모집하던 딱지맨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태 살인마가 되어버린 기훈이 진심으로 원했던 건, 다시 그 게임에 참가하는 것이었으니까.

오징어게임의 세계관에서는 큰돈을 내면 죽음을 구경할 수 있다. 살인 게임을 두고 내기를 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오징어게임을 설계하고 플레이했던 오일남조차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재미있을 수는 없다고. 수십 회의 라운드를 거치며 그가 본 모든 극적인 살인과 자극적인 죽음들을 다 합쳐도, 단 한 번의 직접 겪어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455개의 죽음을 직접 경험한 성기훈의 내면은 과연 얼마나 비틀려 있었을까. 그리고 그 너머에는 오일남도, 프런트맨도, 딱지맨조차도 미처 도달하지 못한 또 다른 차원의 쾌락이 있었다. 그것은 단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넘어, 영혼을 파괴하는 일. 누군가가 자신을 믿고, 바로 그 믿음 때문에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쾌감은,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살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쾌감에 눈을 뜬 세계관 최악의 싸패 살인마가 그 두 번째 게임을 시작했다. 첫 번째 게임에서 그는 낯선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나를 믿지 않는 이들이 랜덤하게 죽는 일은 아무런 재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자 그는 끔찍한 욕망을 분출한다. 밤에 혈투가 벌어질 것이 뻔하니 먼저 기습하자는 오영일의 제안을 극구 말린다. 그러다 X파가 이겨서 게임이 끝나면 재미없잖아. 또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켰다. 처음부터 미궁 같은 게임장의 지리도 모르고 병력도 적고 무기도 탄약도 없던 반란파가 이길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다. 희생자들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무모한 반란을 감행한 건, 한 번 게임을 경험했다는 기훈에게 뭔가 믿을 만한 계획이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애초에 기훈의 계획은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한 번에 몰살시키는 것이었으니까.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기훈은 목숨을 걸고 그들의 믿음을 샀던 것 아닌가. 타다다다탕. 그를 따르던 모든 사람이 끔찍하고 비참하게 죽었다. 미션 완료.

모든 것이 끝난 그는 의욕을 잃었다. 이제 나를 신뢰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나를 믿고 죽어줄 사람도 없다. 아 재미없다. 나는 고작 돈이나 벌자고 이 게임에 다시 들어온 것이 아닌데. 왜 벌써 끝났지. 힘이 빠진다. 그 와중에 눈치 빠른 대호라는 자식이 내 본심을 꿰뚫어 보았다. 그가 절규한다. "그때 차라리 동그라미 새끼들이랑 싸웠으면 이길 수도 있었어.  싸움도 이기고! 투표도 이기고!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말한 그 말도 안 되는 작전 때문에 다 죽은 거야! 당신이 죽인 거야!" 

아니 어떻게 알았지. 안 그래도 화가 나는데 그를 가만둘 수 없다. 누군가를 죽여야 통과할 수 있던 네 번째 게임에서 그는 다른 타겟들은 모두 버리고 오로지 대호 만을 노린다. 뭐 여기서 이겨서 456억을 더 받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징어게임 전 시즌의 모든 참가자들이 생존을 위해, 또 상금을 늘리기 위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인을 저지를 동안 기훈은 오로지 살인 그 자체를 움직인 유일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탈락해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도.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지독한 싸패 살인마였는지 알 수 있지 않나. 그는 결국 목적을 달성한다.

아 이제 정말 끝이다. 아무 재미가 없다. 오징어게임 밖에서도, 또 안에서도 이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다. 여기까지다. 모든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한 그 앞에 갑자기 새로운 사건이 펼쳐진다. 한 아이가 탄생하고 여러 사람들이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한다. 한 미친 노파는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제 손으로 친아들을 죽이기까지 했다. 아 이거다. 이 미친 싸이코패스의 눈이 다시 희번덕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는 벌떡 일어나 이 아이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아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를 위해 스스로 죽어줄 것인가. 히히.

그래서 그는 준희에게 헛된 희망을 준다. 혹시나 그녀가 무리해서 다리를 건너다 하찮게도 고작 사고로 죽을까 봐 그녀를 만류한다. 끝까지 자신을 믿고 거기에 남아 있으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그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발목을 다친 준희를 데리고 돌아오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진짜 간다? 내가 간다, 갈게? 참 근데 그랬다가 나도 죽으면 애는 어떻게 하지. 응? 사실상 기훈은 준희에게 자살을 강요하고 있었다. 결국 이 싸이코패스는 그 목적을 이룬다.

기훈: 네가 거기서 다 죽이면 재미가 없잖아

마지막 고공 오징어게임에서도 그의 천연덕스러운 싸패 짓은 계속된다. 그는 100번 참가자의 도시락 제안이 답이 아니라며 이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그럼 한 명밖에 안 죽잖아. 어차피 누군가 최소 하나는 죽어야 나머지가 사는 이 게임에서 기훈은 아득바득 분란을 일으켜 기어코 하나 대신 다수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자 이제 드디어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친부인 명기와 엄마를 잃은 아이. 그것이 기훈이 기획한 엔딩이었다. 근데 이런 젠장, 엄마처럼 아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어줄 줄로만 알았던 명기가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일 수 있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 아닌가. 아니 애써 극적인 마지막까지 다 준비했더니 이 쬐그만 놈이 망쳤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가만둘 수 없다. "넌 자격이 없어" 기훈은 저 아래로 그를 밀어 떨어뜨린다. 

이제 정말 다 끝났다. 이제 죽일 사람은 모두 죽었고 나를 믿고 더 죽어줄 사람도 없다. 밖으로 나가면 기다리는 건 또다시 아무 의미 없는 하루들. 공허함이 몰려온다. 차라리 아까 죽을걸. 그런 그의 눈에 VIP들의 관람석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깨닫는다, 아직 그가 배반할 믿음이 하나 더 남아있음을. 타인의 믿음을 배신하며 죽음을 가져오는 일에서 기쁨을 느끼던 이 뇌가 망가진 사이코패스는 자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믿음을 배반하기로 한다. 자신을 죽여가면서까지. 절벽 아래로 뛰어들기 전 그는 "아직도 사람을 믿나"라는 프런트맨의 질문을 떠올리며 이렇게 답한다 "(응 그리고) 사람은 (그 믿음 때문에 죽더라)" 


*               *               *


극적인 장치와 연출, 그리고 탄탄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시즌 3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박하다. 그 이유는 많은 시청자들이 성기훈의 변화된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오징어게임을 한차례 겪었던 인물이 별다른 계획도 없이 진행요원들의 본부에 무작정 침입한다거나, 순박한 얼굴로 모두를 살리겠다고 다짐하던 성기훈이 갑자기 증오에 휩싸여 대호를 추격 끝에 죽인다는 설정은, 감정선의 연속성이 너무 부족했다. 그의 반복적인 변화와 불규칙한 선택들은 시청자에게 설득력을 주기 어려웠고, 도리어 그는 세계관 최강의 변태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이 아니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인물처럼 보였다.

이렇게 모순된 주인공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황동혁 감독 본인의 모순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오징어게임이라는 세계관을 통해 경쟁적 자본주의의 잔혹함과 비인간성을 비판적으로 묘사해 왔다. 그러나 이 작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미국 테크회사의 막대한 자본 덕분이었다. 황 감독은 10여 년 전부터 오징어게임의 시나리오를 구상했지만, 국내의 협소한 펀딩 환경에서는 이질적인 내용을 다룬 작품에 선뜻 투자할 이가 없었다. 결국 그 모험을 감수한 것은 자금력이 막강한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였다. 그리고 시즌 1은 성공했다.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 수많은 경쟁작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황 감독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마치 게임의 최종 우승자가 모든 것을 거머쥐듯이. 이제 그는 후속 시즌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도 원래 하나였던 이야기를 두 시즌으로 쪼개는 방식으로. 황 감독 본인도 인터뷰에서 인정했듯이, 그 동기는 다름 아닌 돈이었다.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했던 감독은 다시 기훈을 게임으로 밀어 넣었지만, 그의 페르소나가 반영된 주인공은 그 작품 안에서 이상주의를 호소해야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성기훈이라는 인물은 갈라지고 어그러진다. 자본을 비판하려는 이상과 자본을 좇는 욕망 사이에서

결국 성기훈의 혼란스러운 변화는 단지 캐릭터의 붕괴가 아니라, 창작자인 황동혁 감독 스스로가 겪고 있는 자기기만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자본을 비판하며 만들어진 이 세계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의 힘으로 탄생했고,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주인공 역시 그 모순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시즌 3이 유독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오징어게임은 작품 자체로는 어색하고 파편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작품 밖 현실과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창작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파열음을 비추는 거울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제 현실에서 VIP에 더 가까워진 이 글로벌 스타 감독은, 억지로 사회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참가자들에게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하려 애쓰며, 그 간극을 지적하는 대중의 비판을 오히려 사회 탓으로 돌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가 만들어낸 세계와 자신이 택한 현실 사이의 모순과 균열이 다음 작품에서는 과연 어떻게 정당화될지, 또 감독은 어떤 변명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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