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7.

진보는 갑자기 왜 토착왜구가 되었나

지난 며칠간 소년범 출신 배우를 옹호하는 진보 평론가들의 글을 보면, 그들의 논리가 일본 극우의 사고 구조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의 극우들은 과거 전범행위들이 모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모두 처벌받았으니, 해당 사건은 이미 끝난 과거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미 여러 차례의 사과와 보상으로 과거사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되었으니, 그 시대의 범법자들이 아닌 현대의 일본인들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과거사를 되묻는 이들을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피해자들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부로 격하되어 어느덧 삭제된다. 

신기한 것은 그런 관점을 그 누구보다도 혹독하게 비난하던 진보진영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일본 극우들의 관점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에서 대상을 일제로 바꾸어 보자. "과거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나라가 국제연합의 주요 국가로 자리 잡은 것은 오히려 칭찬해야 할 일 아닌가.", "한번 전쟁범죄를 일으킨 나라는 영원히 전범국가로 살아야 하나", "이미 과거사 배상과 처벌은 다 끝났는데 이를 계속 언급하는 의도가 뭔가" 욱일기를 머리에 두르고 혐한 시위에 나선 일본의 극우들이 박수 치고 환호할 논리가 펼쳐진다. 놀랍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진보가 이와 같은 극적인 사고의 전환을 이룬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쟤, 우리 편이잖아. 초딩같은 진영논리에 따라 하루는 말이 사슴이 되고 다음 날은 사슴이 말이 되는 고무줄 논리를 펴면서도 도덕적 선민의식이 그윽한 그들의 태도란 참으로 보기 흉하다. 자신의 위선과 가식을 온갖 현학적 용어와 유려한 문체로 치장하는 것은 구차하고 추하게 보일 뿐이다. 보수 역시 진영논리에 따라 같은 편이면 계엄도 옹호하는 머저리들인데도 불구하고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유독 진보를 상징하게 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하다못해 이제는 자신들이 극렬하게 비난하던 일본 극우들의 뇌구조까지 빌려와서 침튀기며 아군 지원사격에 나선 영포티들과 쉰세대들의 태도가 괴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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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예인들에게 정치인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대중사회의 정서가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술계가 진보적 성향을 띠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예술은 원래 그런 것이다. 가슴이 차갑고 뇌가 뜨거우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많은 작가나 배우, 감독 화가들 중에서는 훨씬 더 큰 결함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폭행, 마약, 도박, 더 나아가 싸이코패스나 살인자, 사디스트, 아동 성착취, 인종차별주의자, 여성 혐오, 파시스트 등 개인적으로 상종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창작물이 모두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이 배우 또한 그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나는 그가 영영 은퇴하는 대신 이제 정의의 용사 코스프레를 그만두고 과거의 피해자들에게 뉘우친 뒤에 계속해서 활동하며 소년범들을 갱생하는데 좋은 롤모델이 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 더 나은 길이라고 믿는다. 나는 진심으로 미래에 그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물론 그보다 더 사소한 잘못으로 커리어가 박살 난 수많은 연예인들도 함께.

하지만 자기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아주 티끝만 한 잘못에도 린치를 가하고 축출하고 선거날 특정 색이 들어간 옷만 입어도 우르르 달려가 멍석말이를 할 때는 같이 낄낄거리며 웃던 인간들이 이번엔 자기편이랍시고 갑자기 정색하며 차가운 이성을 되찾는 진보 인사들의 모습이 참 싫다. 그 내로남불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만들었는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라. 예술계에는 박근혜의 블랙리스트만이 있던 것이 아니다. 진보 홍위병들의 린치는 그보다 더 폭력적이었고 현재진행형이다. 언제는 피해자 중심적 사고를 하라더니, 어라? 이번엔 우리 편이다 사격중지를 외치며 어느새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이 슬그머니 빼버리는 그 이중잣대가 싫다. 그런 주제에 틈만 나면 남들을 가르치려고 드는 그들의 선민의식과 위선이 진심으로 싫을 뿐이다. 으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논리는 내로남불이 아니라 보편타당하다 믿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너 혹시 토착왜구니?

댓글 1개:

  1. 이번 비유 매우 공감가고, 그들로서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주제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뭐가 옳고 그른지는 일본과 한국처럼 초고령화 사회에서는 현실적인 의미가 없는듯 합니다.
    (1) 외눈들의 왕국에선 외눈박이가 왕이고, 두눈은 환영받을 수 없듯이, 투표권의 힘은 인구가 많은 고령-초고령층(일본 극우, 한국 진보)에게 있을테니까요.
    (2) 나이가 들면 본인의 생각을 바꾸기 힘들고,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도덕과 fact는 중요하지 않죠.
    (3) (누군가의 말처럼) 65세가 넘어가면 뇌의 노화에 따라 사회적 지능이 퇴화하고, 협력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현재의 현상은 나빠지면 나빠지지 좋아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의 흐름으로, 구멍난 타이타닉호에서 개개인이 빨리 구명정을 찾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 문화가 대세이지만, 이것또한 마천루의 저주처럼 한 나라의 경제가 쇠퇴하기 직전에 나오는 현상이라고 들었습니다. (프랑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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