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볼리비아 정부는 정당한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는가? 이 글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위 예시는 지어낸 것이지만,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은 아니다. 위에서 볼리비아 정부를 한국 정부로, 한국자원공사 대신 론스타로 바꿔 읽으면 우리가 잘 아는 외환은행 매각 사건의 개요가 된다.
위 예시를 읽으며 우리가 부당하다고 느낀 것처럼, 론스타도 자신들이 공정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으며 그들은 한국 정부를 고소했다.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세계은행 산하 중재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지난 15일 세계은행 ICSID 회의실에서 한국 정부와 론스타 관계자 등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심리를 벌였다고 한다. 이 사건을 접하는 많은 국민들은 분개하며 국부를 뺏어가려는 론스타를 욕하고, 이에 맞서는 정부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는 두가지 관점에서 보다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한국 정부의 결정이 국제 사회에서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둘째, 과연 이와 같은 행적이 우리나라 국익에 도움이 되었는가.
결론적으로, 이는 후진국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치졸한 생떼에 가깝고 우리나라 국익을 심각하게 해친 사건이다. 이제부터 한국 정부가 왜 생떼를 부린 것으로 비춰지는지, 그리고 우리의 이익이 어떻게 손상되었는지 살펴보자.
1. 한국정부의 생떼
이 사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기로 하자. 론스타가 이번 소송에서 문제 삼은 첫번째 쟁점은 "한국정부가 외국 자본을 차별해 매각을 지연시켜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의 지분 51%를 약 1조 4천억에 인수했던 론스타는 4년이 지난 2007년, HSBC에게 모든 지분을 약 6조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HSBC의 인수건을 승인해주지 않았고, 그 핑계는 주가조작 의혹과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적격성 여부였다. 그러나 주가조작 의혹은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을 공표한 직후(2006년 1월)에 시작된 감사(2006년 3월)에서 불거져 나왔다. 즉 3년간 별말 없이 있던 한국 정부가 갑자기 론스타의 위법사례를 찾기 시작한 것으로, 결국 이는 외환은행의 정상적 매각을 막기 위한 것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또한 HSBC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 중 하나로, 론스타에 비해 자격이 부족하다고 지적할 부분도 없다. 결국 외환은행 매각건은 불발되었고 이 때부터 론스타의 기나긴 고난이 시작된다.
론스타는 여러 차례 투자자를 물색했지만 한국 정부가 온갖 트집으로 매각을 막는 상황에서 외환은행에 관심을 보일 투자자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 금융당국은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도 박탈하여 지분을 강제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결국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을 국내은행인 하나은행에 매각했는데, 이때 매각금액이 HSBC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가격(4조 2천억)보다도 낮아(4조) 큰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론스타 입장에서는 처음 살 때는 장부가치와 BIS비율까지 낮춰주며 적극적으로 떠넘기더니, 막상 투자가 성공하고 나자 온갖 핑계를 들어 매각을 불발시키고 검찰수사까지 동원해 결국 다른 한국 은행에게 싼 값에 넘기게 만든 셈이다.
2.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우리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팔게 만들어 (우리가 아니라 하나은행이)약 2조원의 이득을 보게 되었다. 그 대신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신뢰와 공정의 원칙을 잃었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해외투자자에 대한 차별 없이 원칙대로 진행했을뿐" 이라고 변명하지만, 당장 네이버에서 론스타를 입력해보면 "먹튀"가 연관검색어로 뜬다. 먹고 튀는 투자, 즉 우리나라에서 돈을 벌어 나가는게 문제라면 해외 투자자는 우리나라에서 무조건 돈을 잃어야 한다는 말인가. 한국 정부와 언론이 론스타를 "악덕자본"으로 둔갑시킨 이유는 론스타가 주가조작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주가 조작은 재벌들이 밥먹듯이 한다.) 바로 한국에서 돈을 벌어 나가는게 아니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외 자본에 대한 적대적 정서는 결국 우리에게 독이 된다. HSBC는 결국 한국에서의 소매금융사업을 포기한 뒤 11개 지점을 매각했고,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은 한국에서 철수했다. ING생명은 국민은행과의 전략적 제휴관계를 청산했고 아비바그룹은 우리아비바생명 지분 47%를 우리금융지주에 넘겼으며, 2008년 국내에 진출한 독일의 에르고는 한국 진출 4년 만에 에르고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을 프랑스계 악사다이렉트에 넘기고 한국을 벗어났다. 국민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일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차트: 외환은행의 주당 순이익
|
지난달 나는 브라질과 미국에 투자한 해외펀드를 해약했다. 둘을 합해 3년간 들고있으면서 꽤 쏠쏠한 수익을 본 셈이니, 우리나라 금융 당국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미국과 브라질에서 소위 "먹튀"를 한 셈이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과 기관들이 해외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약 400조원의 해외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민연금은 70조 수준의 해외 부동산/채권/주식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우리 모두의 목표는 "먹튀"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먹튀는 해당 국가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국경을 넘어 좀 더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게 도우며 그 수익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룰과 합리적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위해 이 문제를 좀 더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론스타의 주가 조작은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이라고 할지라도 한국의 법규를 준수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정한 게임의 룰이다. 그리고 그 룰은 평등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집행되어야 한다. 내가 돈을 버는 것은 올바른 투자고 남이 돈을 버는 것을 먹튀라고 부른다면 우리에게 투자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우리의 투자를 받아줄 사람도 없다. 물론 사람의 심리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지라, 외국투자자가 몇년만에 그런 큰 수익을 내는 투자를 한 것을 보고 샘이 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편법을 써 가면서 까지 사모펀드에게 외환은행을 맡긴 것은 금융 당국 자신들이다. 우리나라는 협정을 무시하고 자기들 맘대로 공단을 폐쇄하는 북한과 같은 시스템을 운영하는 나라가 아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과연 론스타에게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
주석
*어떤 이들은 PE가 단기적 실적에 집착하느라 기업의 장기적 성장성을 간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PE의 목표는 기업을 더 높은 값에 되파는 것이며, 돈많은 바보가 있지 않는 이상 장기적 성장성이 훼손된 기업을 비싸게 살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PE는 기업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다만 PE가 해당 분야에서 경험이 부족한 경우, 기업 정상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도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들이다.
오늘 론스타관련 재판 결과가 10년걸려 드디어 나왔군요. 우리나라의 패배지만 합리적 원칙의 승리라 생각됩니다.
답글삭제이렇게 깊고 냉철한 분석글을 우연히도 알게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답글삭제좋은 글 감사합니다
답글삭제이런 일도 있었군요...참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