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박근혜 행정부의 경제 구원투수로 등장한 정치인 출신의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곧바로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새로이 과세를 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당시 주요 대기업들은 투자도 배당도 하지 않으면서 사내에 과도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었는데 이와 같은 정책은 두 가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되었다. 하나는 거시경제적으로 기업들이 보유한 잉여 현금이 이전되는 과정에서 정부는 추가 세수를 확보하면서도 투자와 소비가 증가할 것이었고, 재무와 가치평가 측면에서는 기업들이 비합리적인 현금보유성향*이 지나치게 쌓아두는 것이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기 때문에 한국 주식이 재평가될 수 있다는 기대가 고개를 들었다.
그 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사라졌을까. 바로 이듬해 한 건설회사와 의류회사가 합병하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회사를 합쳤고, 최경환을 등용한 청와대는 여전히 기업들에 낙하산 인사들을 내려보내고 영향력을 행사하다 그중 몇몇이 유죄판결을 받고 구속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뒤가 구린 신주배정과 전환사채의 발행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기형적인 물적분할과 기업공개는 봇물 터지듯이 이어졌다. 그 중 가장 무분별하게 분할과 공개에 나섰던 몇몇 회사들의 오너들은 뻔뻔하게도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기업인들을 대표한다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드리밀고 있다. 정상적인 주주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는 그 대신 머그샷을 찍었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이.
그로부터 10년 뒤, 정부는 또다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PBR이 1.0이하인 기업들에게 적극적인 주주환원 조치를 요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절름발이 자본시장에서 고전하던 투자자들은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그 조치들을 반기며 매수 버튼을 두들기고 있지만 과연 올해는 이 지긋지긋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과거의 유물이 되는 원년이 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감언이설에 속아 온 우리는 기대와 회의가 뒤섞인 복잡한 심경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다.
지난 몇몇 글에서 한국 주식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주요 원인들로 기형적 지배 구조와 비정상적 상속세를 비판했다. 하지만 이 어마어마한 주식 할인 파티의 주범이 어찌 둘뿐이겠는가. 그 세 번째 독 사과는 바로 업종과 분야를 가리지 않는 관치의 DNA를 들 수 있다. 따라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영구적으로 해소될 수 있는지는 이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재벌들의 잘못된 거버넌스와 상속세는 법률을 보완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현 행정부와 여당은 현 국회 회기 내내 손가락이나 빨면서 놀다가 막판에 개고기 법안이나 통과시키는 것으로 21대 국회의 임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선거를 앞두고 황급히 주식시장 저평가 대책 방안을 발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정작 우려되는 것은 이 정부의 대안이라는 것이 관이 민간의 의사결정에 더욱 깊숙이 개입하는, 즉 관치를 강화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현상은 특히 금융주에서 두드러진다. 한국의 금융사들, 특히 금융 지주사들이 낮은 PBR를 가진 이유는 이 관치가 가장 만연한 업종이 바로 금융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모든 정부는 금융사들의 영업형태부터 순이익, 배당, 인사, 성과금 등 전분야에 걸쳐 무제한적 개입을 일삼았다.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를 읽고 시장경제를 존중한다는 현 정부라고 해서 달라진 것은 조금도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지난 정부보다 그 개입의 정도가 더 심해지기도 했다. 나 역시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미개하고 무분별한 금융정책을 지적했고, 보수언론들 역시 여러 차례 윤석열 정부의 반시장적 행태를 비판한 바 있다.(링크1 링크2 링크3) 관이 제 입맛대로 민간의 팔을 비틀어 생긴 디스카운트를, 다시금 팔을 반대로 비틀어 해소하겠다는 발상은 우매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다.
현 정부는 출범 당시 코스피를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하는 것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삼았다. 아마도 총선 전에 그 목표를 달성해서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야심찬 계획은 난관에 부딪쳤고 대신 정부는 난데없이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삽질을 터뜨려 한국의 금융시장이 왜 여전히 후진국으로 분류되는지 세계 투자자들에게 몸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돌려 올바른 관치금융으로 관치금융의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는 정부24판 피식 쇼를 벌이고 있다. 잊을 때만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거지 떼처럼 그들은 깡통을 두드리며 이번에는 믿어주십쇼를 외치지만, 우리는 그들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아야 한다. 여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여전히 주주 비례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여러 물적분할과 주식공개를 막지 못할 것이고, 지지리도 인기 없는 대통령실은 상속세를 개편할 정치력이 없으며, 출신 학교와 기수를 따져가며 퇴임 후 낙하산 자리만 학수고대하는 세종시 공수부대들은 관치를 그만 둘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게 정부와 관료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단순한 방조범이 아닌 공동정범이 되었다. 따라서 나는 당분간 인기를 끌 이 각설이 쇼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10년 전의 각설이들이 그러하였듯이.
하지만 이를 회의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 코로나 이후 개인 주식투자자들의 수는 크게 증가하였고, 이후 몇 차례의 문제적 유상증자와 주식공개를 통해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주주 가치가 어떻게 훼손되고 있는지 여실히 경험했다. 그로 인해 주주비례의 원칙을 제도적으로 보전해달라는 대중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따라서 지난 대선에서 여당과 야당은 모두 이를 공약으로 내세워야 했다. 그런 적이 또 있던가. 지금의 대통령실과 관료들은 어설픈 품바쇼로 그러한 요구를 적당히 다독이고 넘기려 하지만 유권자들은 진정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제도와 법의 개선을 요구할 것이다. 나는 그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번이 아니라면 다음에서라도.
2010년 이후 KOSPI P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