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5.

진화하는 연준-FED는 어째서 경제의 과열을 방치하는가

지난 글에서 한국은행과 이주열을 비난한 것은 그들이 금리를 올리기 때문이 아니다. 중앙은행의 의무는 인플레에 대한 기대감을 조절하는 것이고 그들의 첫 번째 도구는 바로 금리이다. 제때 금리를 올리지 않는 것은 경제의 과열이나 자본의 잘못된 배분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마땅히 지양해야 한다. 내가 지금의 총재와 한은이라는 조직이 비난하는 것은 금리를 올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방식과 정책의 부재 때문이다. 그와 가장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이 바로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니 그들을 행보를 조명해보자.

경제나 금융시장이 예상치 못한 충격을 마주하면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유지하여 그 충격을 최소화한다. 버블이 꺼지거나 911테러와 같은 급작스러운 사고, 혹은 2008년 서브 프라임 사건과 같은 충격이 발생하면 중앙은행은 가장 먼저 금리를 인하한다. 금리를 제로로 만들고 나면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한다. 그것이 일반적인 통화정책이다. 그리고 21세기 중앙은행들은 이를 넘어 더욱 정교한 통화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모형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다소간의 오류는 있지만 큰 그림에서 위기 직후의 경제의 반응과 중앙은행의 대응은 위와 같다. 위기 전후의 성장경로를 파란색 선이라고 가정할 때 경제에 충격이 발생하면(1) 실제 성장경로는 빨간색 선을 따라 급격하게 하락한다. 이때 중앙은행과 정부는 부양책을 사용하게 되고(2) 그에 따라 경제는 반등한다(3). 이것이 일반적으로 위기 직후에 정부/중앙은행이 지향하는 경로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이처럼 깔끔하지 않았다.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되살아난 것처럼 보이던 경제와 시장은 종종 다시 고꾸라지거나 저성장에 빠지곤 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90년대의 일본을 들 수 있다. 세계의 여러 정책 연구자들은 OECD 국가들 중 국가채무비율이 가장 높고 기준금리도 가장 낮은 일본이 가장 낮은 성장성을 보이는 기현상에 주목했고 그들은 일본이 부양책을 너무 약하게, 그리고 너무 늦게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아직 경제가 성장궤도에 진입하지 않은 순간에(4) 부양책을 거둬들이는 바람에 경제가 자생적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것.

이를 연구한 학자 중 하나가 바로 버냉키였다. 따라서 그가 연준 의장이 되어 금융위기를 맞았을 때 연준은 일본은행의 실수를 답습하는 우를 저지르지 않았다. 연준은 위기 직후 인플레이션 압력이 되살아나 타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상하는 동안에도 경제가 탈출속도에 도달하기까지 지속적으로 강력하고 충분한 부양책을 써야 한다며 강력한 어조로 백악관과 의회 대중을 설득했다. 당시 정치인들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며 연준에 서한까지 보냈지만 오늘날 우리는 누가 옳았는지 알고 있다. 연준과 반대의 길을 갔던 모두는 인플레이션은 커녕 가장 지독한 디플레이션을 마주했고 타 중앙은행들은 미국의 꽁무니를 쫒아 금리를 도로 낮추고 양적완화라는 길을 따라가야 했다. 미국 역시 두번째, 세번째 양적완화에 나서며 세계경제 회복세를 견인했다. 
하지만 그런 21세기의 통화정책도 온전하지 못했다. 경제가 성장 동력을 회복한 뒤에도 미국에는 장기 실업자들이 상당수 존재했으며 이중 일부는 경제가 완전히 회복한 이후에도 고용시장으로 복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 불균형은 특히나 인종, 교육수준, 지역, 직종별로 다르게 나타났으며 그룹 간 불평등을 낳았다. 이는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빠르게 낮아지고 서비스업의 비중이 빠르게 상승한 이유도 있지만 고용이 줄어든 속도에 비해 회복의 속도가 느려 노동자들의 숙련도와 나이가 악화한 탓도 크다. 위의 차트에서 보듯 경제가 이전 궤도로 회복해도 A 만큼의 성장은 영영 잃어버린 셈이나 다름없으며 이는 경제뿐 아니라 사회에도 큰 영향을 남기게 된다. 마치 IMF처럼.
그래서 오늘날의 연준은 새로운 관점을 도입했다*. 경제가 본궤도로 회복하더라도 A만큼의 잃어버린 성장을 상쇄할 만큼 오버슈팅(B)을 방치하겠다고. 그리고 이를 위해 연준은 정책시차를 고려해 1-2년 뒤의 상황에 맞춰 오늘날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과거의 방식 대신 실제 회복이 완전히 가시화된 뒤에 움직이겠다고 선언했다. 바로 이전 연준 의장이었던 옐런 재무부장관도 이를 high pressure economy라고 부르며 연준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것이 AIT혹은 FIT의 핵심이다. 지난 6월의 FOMC에서 연준은 첫 금리인상 계획을 앞당겼지만 terminal rate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10년 미국채 금리는 FOMC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연준이 금리를 언제 올릴지, 얼마나 올릴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이와 같은 철학과 믿음을 바탕으로 시장과 소통하고 있다.  

정의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가 이해하는 현대적인 통화정책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1971년 닉슨이 금태환을 정지한 이래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갔다. 과거 물가가 강하게 올라오면 금리를 강하게 올리고 물가가 약하게 내리면 금리를 약하게 올리던 1차원적인 20세기의 방식에서 더 나아가 통화정책이 좀 더 정교하게 운용되어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많은 연구가 이어져왔다.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오늘날 보는 통화정책이다. 

물론 연방준비위원회가 실수했던 적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채권 학살의 해라고 부르던 1994년이 그렇다. 당시 연준이 금리를 25비피 올리면서 시장금리가 소폭 상승했는데, 이후 공개된 의사록을 보니 FOMC는 금리를 올릴지 말지가 아니라 한 번에 두 단계를 올릴지 한단계만 올릴지를 고민했던 것이 드러났다. 채권시장의 폭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리를 3%에서 6%로 올리던 연준은 바로 이듬해 금리를 세 차례나 내리며 94년의 결정이 사실상 실수였음을 자인했다. 그 당시의 연준은 비밀에 쌓인 조직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시장과 언론은 연준의 결정을 팩스로 받아보아야 했다. 그래서 금리를 결정하는 날이면 모든 주식, 선물, 채권 상품시장의 트레이더들이 팩시밀리 앞에 옹기종기 모여 지지직 지직 하며 연준으로부터 전송되는 종이를 바라보다 숫자가 뜨는 순간 객장으로 고함을 지르며 뛰어가던 아주 원시적인 시절. 의장의 기자회견도 없었고, 질의응답도 없었으며 금리 경로를 예고하는 점도표 따위는 더더욱 없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현대의 통화정책은 얼마나 세련되었는가. 그린스펀은 점진적이고 예측 가능한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보여주었고 버냉키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결코 금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제 옐런과 파웰은 재정과 통화정책이 훨씬 정교하게 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그들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지금으로는 알 수 없지만 현대적 통화정책의 최전선에 연준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한국은행이 1994년의 연준에 가깝다는 것이다. 연준이 내년 말의 점도표를 1년 반 앞서 공개하는데 비해 한은은 다음 분기에 곧장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예고했다. 마치 변심한 애인의 이별 통보만큼이나 급작스러운 예고에 시장이 발작하자 총재는 자신의 과거 발언을 끄집어내어 시장이 나의 미묘한 뉘앙스를 캐치하지 못했다며 슬쩍 책임을 전가한다. 이런 것을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던가. 그는 중앙은행이 급박하게 움직여야 했던 이유로 견고한 경제지표를 들었다. 그렇게 21년 2분기 경제지표가 좋으리란 예측을 21년 2분기에나 내놓고 있다. 이럴 바엔 통계 집계를 통계청으로 일원화하고 통계청장이 금리를 결정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무리 레트로가 유행이라지만 중앙은행마저 복고풍인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연준이 이와 같은 정책을 도입한 이유는 후술한 이유 외에, 판데믹이 시작되기 전에도 미국 경제가 다운사이클에 있어 하방압력을 받고 있었고 2010년대에 장기화된 저물가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가 무조건적으로 과열의 상태로 흐르게 방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경제를 다소간 과열 상태에 두는 것은 인플레이션과 성장이 일시적이고 통제 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명백하게 밝혔다. 물론 옐런과 연준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지나치게 경제를 미세조정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댓글 17개:

  1.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장마가 다가오는거 같은데 건강관리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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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진짜 글 잘쓰시는 듯.... 잃어버린 시간을 최대한 잊혀지지 않케끔 연준도 진화하는 군요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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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A구간의 손실은 영구적이다... 생각도 못해본 관점이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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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실 그 이유보다 현재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위기 직후에 흔하게 관찰되던 일시적인 현상인 이유가 큽니다. 하지만 저런 면까지 고려하는게, 올해 경기가 나쁘니 내리고 올해 경기가 좋으니 올리는 원숭이같은 한국은행과 가장 대조되는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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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살짝 논점을 벗어나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기술의 혁신 속도는 저하되고, 중국의 등장으로 공급은 과잉 되고, 선진국의 인구는 늙어가는 일련의 변화들을 고려할때 20세기 부터 이어져 온 기존의 성장 궤도를 유지하겠다는 목표 자체가 다소 무모한게 아닐까요? 무모한 목표를 달성하려다 보니 점점 더 세련된 통화정책의 개입이 요구되고, 양적완화까지 동원하는 지나친 개입으로 자산버블과 부채 비율 증가라는 부작용이 점점 커지는게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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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앙은행마다 살짝 다르긴 하지만 중앙은행의 목표는 성장률을 높이는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통화정책을 적절하게 써서 안정적인 물가를 유지하는데(근래엔 여기에 고용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그 궁극적 목적은 경제가 잠재성장률 만큼 성장할 수 있게 하는겁니다. 잠재성장률 자체를 높이는건 통화정책의 목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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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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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어려운 글을 쉽게 써주셔서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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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우연히 알게된 블로그인데 글 정말 감사히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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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혹시 작성하실때 참조하신 관련기사, 참고문헌이 있으시면 소개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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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가 학자가 아니다보니 정교하게 정리하는 작업을 빠트렸네요. 다양한 레포트와 칼럼 데이터 그리고 제 생각을 덧붙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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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최근 증시를 보면 과열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저성장으로 빠질것만 같단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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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부 섹터나 주식은 지나치게 과열이죠 ARKK가 좋은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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