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실리콘밸리 은행의 경우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 은행은 과도한 레버리지나 위험자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너무 많이 산 채권 때문에 파산에 이르렀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이 빠지고 그렇게 되면 손실이 난다는 매우 기초적인 사실을, 엄청난 규모로 간과한 탓에 회사는 큰 손실을 내어 예금자와 투자자들의 불신을 샀고 뱅크런이 발생했다. 이런 작은 은행은 대형 금융기관에게 적용되는 각종 규제들을 적용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무분별한 대차대조표를 운용하다 사달이 난 것이다.*
금리 인상 후 첫 제도권 금융기관의 파산을 겪은 미 정부는 과감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내놓았다. 아시아 시장이 개장하기 전, FDIC는 금액과 무관하게 모든 예금을 보장한다고 발표했고 연준은 새로운 기금을 조성하여 담보를 제공하는 금융기관에 적절한 시장금리에 1년간 대출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과는 반대로 자금경색을 겪는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조치는 모순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한번 시작한 뱅크런은 좀처럼 멈추기 어렵고, 또 금융 시스템 자체가 위협받게 되면 그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에 연준과 미 정부는 이처럼 과감하게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치가 뱅크런을 초기에 차단할 수 있을지, 또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얼마나 튼튼한지, 그리고 좀처럼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는 연준의 노력과 위의 조치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일으킬지 현재로서는 함부로 예단하기 어렵지만 백여 년에 걸쳐 수많은 부침과 사고를 겪으며 내구성을 강화한 현대 금융 시스템은 그 역할을 보여줄 것이며, 또 진화하고 발전하여 다시 미래에 새로운 도전을 맞이할 준비를 마칠 것이다. 물론 살아만 남는다면.
그리고 한국에는 덤앤 더머가 있다. 저번에는 PF 전수조사에 나서겠다며 자금경색을 야기한 선무당이 등장하더니(링크), 이번에는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는 가운데 은행의 설립 조건을 완화하겠다는 금융위가 있다. 지난 3월 2일 날 발표한 보도자료(링크)에서 그들은 선진국의 참고 사례로 실리콘밸리 은행을 소개했다. 그렇다, 바로 지난 주말 파산한 그 은행이다. 자신들이 자랑스럽게 소개한 회사가 곧장 파산하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긴급 간담회를 열어 해당 사건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시장을 다독였는데 회사 하나도 똑바로 못 보는 화상이 바다 건너 나라의 복잡한 금융시장을 무슨 근거로 예측할 수 있을까. 이런 희극은 계속된다.
금융은 반드시 규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규제는 규제 당국의 영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나, 기초적인 시가평가도 이해하지 못하는 담당자들의 면피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금융사들 간의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을 촉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업에서 느끼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그 모습은 격변하는 금융시장의 전광판 앞에서 한국의 두 금융 수장이 덤 앤 더머를 자처하며 서로 질세라, 열심히 슬랩스틱 코미디를 펼치는 장면으로 대변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슬랩스틱 쇼가 계속 지속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관람료로 상당히 비싼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금리를 올리면 늘 무엇인가가 무너진다. 어쩌면 이는 인플레를 잡는 과정에서 필수 불가결한 단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적자를 내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재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자산을 비싸게 사는 것에 익숙하며, 비용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거쳐왔다. 은유로 표현하자면 주식도 주택도 채권도 배당주도 가치주도 신흥국도 선진국도, 모든 자산이 공평하게 하락했던 작년의 금융시장은 그 시기가 지속될 수 없다는 첫 번째 경종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앞에는 고통스러운 선택 만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우리는 중앙은행에게 독립성을 허용하고 전문 인력들을 제공한 것 아닌가. 그러니 우리 아무런 경험도 식견도 없는 두 덤 앤 더머는, 한국식으로 표현한다면 우리 영구와 땡칠이는 본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금융시장에 손대다 체면만 깎아먹지 말고 그냥 금융 범죄자들이나 열심히 잡아넣는 것이 경제에 이바지하는 길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반면 각종 규제를 적용받는 대형 금융기관들의 경우 유동성 비율이나 위험자산의 비중 등을 면밀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SVB의 문제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1빠 댓글 달아봅니다. 어제 cpi 오늘 ppi예정인데 인플레 전쟁은 끝나가는 것일까요? 고견 여쭙니다
답글삭제아닌듯 합니다.
삭제시장의 기준금리 프라이싱이 100bp 를 하루아침에 왔다갔다 하는것을 보고... 그동안의 easing policy 에 얼마나 찌들어 있었는지 가늠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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