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28.

주식의 적은 누구인가(II), 그리고 뒤늦은 삼프로tv 후기

굳이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아마 지금쯤이면 물적분할을 통한 지주사의 디스카운트가 어떻게 우리의 자본시장을 망가뜨리는지 모두들 깨달았을 것이다. 불행히도 작년에 이루어진 상당수의 IPO들이 신규회사의 상장이 아닌 기존 상장사들이 사업부문을 분할해 상장시킨 회사들이었고 오늘 첫 거래를 시작한 LG에너지솔루션은 역대 최대 규모의 IPO를 단행하여 화룡점정에 올랐다.

거의 대부분의 오너들이 인적분할이 아닌 물적분할을 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현재와 같은 기형적 지배 구조에서는 물적분할을 택해야 남의 자본을 조달하면서도 오너들이 지배력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오너들이 너무나 적은 자본으로 너무나 많은 의결권을 가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불과 5%의 주식을 소유하고도 회사의 의사결정을 마음대로 내릴 수 있는 오너는 배임이나 횡령을 저지를 강력한 인센티브를 가지게 된다. 내가 회사에서 100억을 빼돌려도 그중 내 손실은 5억에 불과하니까. 대부분의 비용은 생면부지인 나머지 95%의 투자자들이 지는 셈이다. 지난 몇십 년간 마치 클리셰처럼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하던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구조, 기형적인 합병비율은 모두 오너들이 투자자들의 돈으로 자신의 지배력을 늘리기 위해 자행되었고 최근 유행하는 물적분할은 강세장에 알맞은 또 다른 배임/횡령기법에 불과하다.* 

이전에도 여러차례 주장했듯(링크) 모두가 외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누군가가 5%의 지분으로 51%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어떻게 나머지 95%가 온전히 인정받겠는가. 따라서 한국 자본시장이 한 단계 더 성숙하려면 이런 잘못된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아니고서는 계속해서 잘못된 인센티브와 왜곡된 자본의 배분을 재촉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투자자들이 지게 된다, 불쾌하고 기분 나쁜 할인이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짓누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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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방영되었던 삼프로tv의 세 대선후보 인터뷰는 이를 대하는 명백한 차이를 드러냈다. 한국 증시의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으로 이재명 후보가 주가조작 세력과 대기업의 갑질 등 강자의 횡포나 불법을 근절해야 한다고 대답했다면 윤석열 후보는 자본시장의 제도를 정비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고, 안철수 후보는 한국 기업들이 선진분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셋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안 후보의 인터뷰였고 솔직하게 말해 윤 후보의 인터뷰는 끝까지 듣기가 괴로울 정도로 지루했지만 현재 한국의 자본시장에 가장 필요한 것은 윤석열 후보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오너들이 알짜배기 사업을 연달아 물적분할로 내놓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너들이 개인적 이득을 위해 사실상 주주와 회사에 손해를 끼쳤던 수많은 사건들이 모두 불법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합법이었던 경우가 더 많았다. 다만 당시 미비했던 자본시장법의 틈새를 찾아 그를 이용한 것 아닌가. 이런 조건에서는 사법적 통제와 감시를 강화한다고 해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앨 수 없으며 오너들은 계속해서 주주들의 자본을 약탈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불필요한 비용을 유발하는 제도는 폐지하고 잘못된 자본의 배분을 촉발하는 구조는 개선하도록 룰을 고치는 수밖에 없다. 아니고서는 언젠가 삼성전자는 메모리사업부를 물적분할할 것이고, 현대차는 전기차 사업부를 신설해 분할할 것이다. 

스포츠 시합을 뛰거나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재미있다. 하지만 해당 종목의 규칙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이나 따분하고 지루한 일이다. 농구의 3초 룰, 축구의 오프사이드, 야구의 보크 등.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스타 선수들의 시원시원한 플레이지 따분하고 복잡한 룰북이나 규정이 아니다. 하지만 메시나 스테픈 커리가 활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정하고 합리적인 규칙이 필요하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시장에서의 정부의 역할은 플레이어가 아닌 심판이고 그가 합리적인 규제와 제도를 마련한다면 스스로의 역할을 다 한 것이다. 혁신과 발전은 민간과 기업의 몫이고, 정부가 경제성장이나 주식시장의 가격목표를 정하는 것은 계획경제 시절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미국의 테크산업은 21세기 들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과 혁신을 견인했지만 이게 어디 당시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나 트럼프가 해당 분야에 선구자적 안목을 가지고 육성한 덕분이었던가. 반면 그 경쟁자인 중국은 국가가 주도하여 자본과 인력을 해당 산업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혁신을 이끌던 창업자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거나 감옥에 가고 성장의 결실은 소수의 권력자들이 독점하였다. 지난 몇 년 간 미국보다 중국처럼 변한 것이 비단 코스피 뿐일까.  

나를 포함한 많은 투자자들이 윤석열의 인터뷰를 미치도록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꼈던 것은, 물론 그의 답답한 눌변도 한몫했겠지만, 그가 선수가 아닌 심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관에서 근무하는 트레이더의 입장에서, 그리고 개인 투자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자본시장에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스타플레이어가 아닌 올바른 룰과 공정한 심판이다. 득점은 민간이 하면 되는 것이다. 자산이 오르든 빠지든, 코스피가 5천을 가든 2천을 가든 잘못된 투자를 한 사람은 실점을 할 것이고 올바른 투자를 한 사람은 트로피를 들어 올릴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부는 화려한 개인기로 수비수를 제치고 사이드에서 크로스를 올려줄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라 상대의 변칙 플레이를 막을 룰과 심판이다. 나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또 윤석열의 모든 공약들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간에 적어도 다음 정부는 자본시장에 대해 그런 태도를 견지하는 심판이 나타나기를 원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주관적으로 요약한 것이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댓글 19개:

  1. 주인장님의 글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글에는 이재명 후보에 대해 주인장님이 아예 평가를 안 하셨는데, 해당 인터뷰에서 이재명 후보의 발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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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대한 선입견을 빼고 보려고 했지만 90분짜리 인터뷰 내에서도 말이 바뀌고 서로 상충하는 내용이 많아 생략했습니다. 솔직히 사기꾼 같습니다. 인터뷰 내내 본인이 그가 진심으로 한 말은 단 한문장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포퓰리즘이 엘리트주의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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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러니 한국인의 부동산 비중이 금융자산보다 월등히 높을 수 밖에 없죠. 삼바, 셀트리온 보면서 그렇구나 했는데 정용진 광주신세계, LG화학 물적분할을 연이어 보면서 나도 당할 수 있겠구나 하는 실질적인(?) 위협을 느꼈습니다. 몇달 전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분할 찌라시도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그냥 오 물적분할 되면 사야지~ 했던 제 자신이 정말 멍청하고..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한심하기 그지 업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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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일반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뿐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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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더 화나는건 노동이사제로 대주주 견제한다는 사람들이..
    대주주 사익편취는 온데간데 없고 노동자들 입 다물게 만드는
    정책으로 노동 이사제는 대주주가 소액주주 겁박하기에 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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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인장님 구정 잘 쉬시고 올해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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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 가장 화가 나는게 장하성입니다. 장하성이야말로 이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청와대에 가서 뭘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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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론스타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성공한 투자를 먹튀로 표현하는 인간들한테 뭘 바라십니까.. 장하성씨가 아마 정권 초반에 국민연금으로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겠다고 했죠... 그건 축구 4333 전술이나 다를바 없어요 국가는 물론 기업까지 알뜰이 털어먹고 파나마에 계좌 트고 그들이 좋아하는 미국으로 이민 가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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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좋아하는이 아니고 싫어하는이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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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위에서 언급한 기형적 지배구조로 인한 물적분할로 인한 주주피해에 동감하고요
    단지 그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나라에는 있는데 한국에 없는 주주 법적 보호장치 8가지를 보면
    1.합병비율 결정할때 한국은 시가측정(대주주에게 유리한 쪽),OECD는 공정가로 측정함
    2.경영권 지분을 인수할때 일반주주들도 대주주와 같은 가격으로 매수하는 제도가 없다.
    (즉 대주주만 경영권 프리미엄 받고 매각.이는 한국에만 존재)
    3.언급하신 물적분할인데 물적분할 과정에서 주주가치가 훼손되도 이를 다룰 법적 장치가 없다.
    4.자진상폐 매수가격을 한국은 이사회가 임의로 정하다.(해외는 공정가격 즉 밸류에이션으로 이
    가격이 적정한가를 주주들이 따져본다.한국은 경영진이 맘만 먹으면 합법적으로 주가 폭락시킨
    후 싼 가격에 자진상폐 시킬수도 있다는 점.)
    5.자사주 매입을 경영권 보호 목적으로 백기사에게 팔아서 의결권 부활시키는 행위.
    다른 나라는 사실상 불가
    6.이사의 주주에 대한 수탁자 의무가 부인되어 있다. 충분히 검토할 충실의 의무.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챙겨야 하는데 한국은 이사회가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기에 대주주편을 들게 마련.
    7.집단소송이 매주 제한적(허위공시에 대해서만 집단소송가능하고, 주주가치 훼손에 대해서는 집
    단소송 불가)
    8.증거개시제도가 없음.(회사가 주주가치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소송을 했을때 한국은
    '입증 책임은 주주에게 있고 자료는 회사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사실상 승소가 불가능. 미국은 증거개시제도가 있어서 주주가 모든 증거를 법정에
    공개하라고 요구할 수 있고 증거 없으면 패소함.)
    마지막으로 법적인 것은 아니지만 열악한 배당금. 미국은 잉여 이익 90%를 주주에게 돌려주고,
    대만은 60% 환원, 한국은주주에게 돌아가는 것은 18% 남짓한데 문제는 재투자도 안하면서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것. 이런 모든 이유가 한국주식시장에서 저평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
    되는데 윤석열이 삼프로에서 나와 말한 자본시장 제도의 정비는 그냥 원론적인 예기를 한것이지
    정말 문제되는 이유의 핵심이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언급한 내용이 전혀 아니라는 걸
    삼프로TV를 보셨다면 더 잘아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과잉해석이시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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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 그리고 모두 기본적으로 주주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죠. 대통령 본인이 구체적 시행령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국정철학을 정하면 그 아래 전담부처에서 세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면에서 대기업의 갑질을 근절하고 주가조작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국 주식의 리레이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재명이나 한국이 정부차원에서 4차산업에 몰두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안철수보다 제도적 개선을 언급하는 윤석열이 더 근접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말씀하신 세부안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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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지분가치와 의결권이 불일치하는건 구글같은 경우를 보아도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 않나요? 기형적인 상속세가 낳은 기형적인 구조라는 것은 맞지만... 참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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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광주신세계 사건은... 주주로서 너무 화가 나네요
    무차입구조로 들고있는 순현금만해도 시총을 아득히 넘어서는데 말이죠.
    정용진 지분만 프리미엄 먹여서 인수하고, 나머지 비지배지분은 질질끌다가 주가가 낮은 시점에 시가로 합병하려 들겠죠. 결국 염가매수차익이 뻔하니 그만큼 지배지분에 프리미엄 줄 수 있는 셈이라 수탈당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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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합리한 점이 산재되어있고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한국 주식시장에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부디 주주자본주의가 한국에도 뿌리내리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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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재명의 말바꾸기는 눈앞에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결국 어느것도 믿을 수 없는 거짓말쟁이 이미지를 강화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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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결국 시대에 맞지않는 제도로 인한 세금체계로 인하여, 개미들만 피해보는 악순환이죠. 오너 일가입장에선 사실 제도의 헛점을 이용할뿐이죠. 여기 댓글 다신 모든 분들도 그들과 같은 입장되시면 그럴거고 똑같이 행동한다에 99% 확신합니다. 사실 제일 땡큐입장은 정부죠 세금에 정경유착에..
    미국으로 치면 구글이 유튜브를 상장하고 메타가 인스타그램을 상장하는 아사리개판인 상황인지라, 클래스ABC같은 차등의결권 같은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보지만, 글쎄요..

    이런 본질적인 문제의식보다는 따블가서 30만원 먹는거에 환호하는게 더 좋은 국민들이 '뭐!! 똑같은 한국인인데 차등의결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 죽창들어랏!!'할 확률이 높기에 요원해보입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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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투자에 관해서 저는 유튜브를 잘 안보는 편입니다. 가끔 애널리스트 분들이 나와서 산업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해주실 때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이 분들이 추정한 적정주가는 사실 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자료는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월가아재'라는 분의 유튜브를 보게 되었는데 내공이 상당하신 분 같더군요.. 최소한 사짜는 아니신 것 같아서 같은 트레이더인 선생님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좀 궁금하네요. 채널 목록에 강의 선행편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1,2,3 편하고 11편의 가설 매매 방법론을 매우 인상깊게 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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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직히 해당 유튜브를 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현업에서 트레이더로 일한 사람이라면 투자에 관해서 배울 점은 있지 않을까요? 제가 함부로 남을 평가하기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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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생각해보니 제가 큰 영양가가 없는 질문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사람 알아보고 평가하는 건 제 역량이 결정하는 것일 텐데요..

      앞으로도 좋은 글 써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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