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3.

주식의 적은 누구인가? :오너가 죽으면 주식이 오른다

증권가에서 흔히 나오는 용어중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다. 한국 주식의 저평가가 지속되다 보니 이를 일컫는 용어가 어느새 시장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왜 생기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로 북한 이슈와. 이머징 마켓의 한계를 꼽는다. 하지만 이는 모두 핵심이 아니다. 먼저 북한이슈때문에 한국 주식이 저평가된다면, 한국 채권과 CDS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하지만 한국채권은 채권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종목으로 외국인들은 원화채권을 매년 5-10조씩 사고 있으며 한국의 CDS는 때때로 아시아에서 가장 낮은 일본보다도 낮을때가 있다.(참고로 미국의 5y CDS가 16bps인데 한국이 47bps밖에 되지 않는다) 시장은 바보가 아니며, 생각보다는 효율적이다. 채권투자자들과 CDS트레이더들이 프라이싱 하지 않는 북한 리스크를 주식시장 혼자 프라이싱하고 있을 리는 없다.

이머징 마켓의 한계라는 지적도 틀린 주장이다. 같은 이머징 마켓인 아시아 내에서 한국보다 주식이 싼 나라는 파키스탄 밖에 없다. 엔저의 타격을 함께 받아야할 대만이나 아직도 테러와 내전이 존재하는 인도네시아, 커머디티 약세의 타격을 받는 말레이시아 주식보다도 한국 주식이 훨씬 저렴하다. 오히려 인프라와 시스템이 더 열악한 후진국 주식들보다도 한국 주식은 더 싸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한국 주식을 싸구려로 만드는 원인은 휴전선 이북이나 한반도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바로 기업의 오너들이다.* 그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주가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한국 대표기업의 특징은 오너가들이 극소수의 지분만을 가지고 기업경영의 전권을 휘두른다는데 있다. 예를 들면 이건희 일가가 보유한 삼성전자의 주식은 모두 합쳐 5%가 채 안된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개인 자가용 만큼이나 마음대로 굴려도 되는 이건희의 사유물이라는 것을 대한민국 전체가 알고 있다.(심지어 옷 만드는 회사와 건설사가 합병하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디스카운트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첫째, 회사의 배당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배당률이 기형적으로 낮다. 코스피의 평균 배당률은 1.2%로, 전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배당을 결정하는 오너 입장에서 이를 많이 주게 되면 나와 상관없는 95%의 사람이 돈을 챙겨가니, 배당을 줄여 그 돈을 회사에 쌓아두고 횡령이나 배임으로 빼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주주 입장에서는 기업이 돈을 벌어도 나눠주는 것이 없으니 주가는 싸구려일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횡령과 배임이 많은 이유는 바로 왜곡된 기업지배구조 때문이다.) 둘째, "주식"은 기업에 대한 소유권이다. 그런데 이 주식을 사도 기업을 가질 수 없다면, 기업가치와 주식가치는 일치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백억짜리 땅이 있는데 그 땅문서를 사도 땅에 대해 소유권을 온전히 주장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 문서가 땅의 가치와 같은 100억에 거래되겠는가.(극단적으로 보면 휴지에 가깝다) 우리나라 주식도 마찬가지다.

일부 재벌가들의 논리에 설득된 사람들은 삼성과 현대를 일으킨 오너가들의 결정 덕분에 기업가치가 올라온 것 아니냐며 재벌의 기형적 지배구조가 결국 주주들에게 득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냉정히 그 배경을 재검토 해 볼 필요가 있다. 처음 설립된 1969년 당시 삼성전자의  자본금은 3억 3천만원이었으나, 이후 보통주와 우선주의 발행을 통해 자본금이 8980억원으로 늘어났다. 삼성전자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병철/이건희 일가는 자신들의 돈을 넣는대신, 남의 돈을 빌려 사업을 했다.(95% 이상이 남의 돈) 만약 본인들이 삼성전자가 이렇게 큰 회사가 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면 왜 그동안 추가 투자를 안하고 남의 돈을 받아 사업하다, 이제와서 사회적 비난을 들어가면서까지 편법상속과 순환출자구조로 억지를 쓰는 것일까? 결국 본인들도 이렇게 잘 될지 몰랐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세계적 뉴스서비스 회사인 Bloomberg는 연매출이 9조에 달하는 거대 기업인데도 불구하고 회장 마이클 블룸버그가 약 9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가 잘될 것이라는 자신이 있으니 남의 돈을 받지 않고 자신의 전재산을 투자해서 대주주로 남아 있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오너들은 남의 돈을 받아다 일단 질러보고, 망하면 자기 지분을 챙겨 내빼고 대박치면 편법으로 다 자기가 차지했다. 리스크는 남이 지고 수익은 자기가 챙기는 이런 시스템은 자본주의에 명백하게 어긋난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건희 회장이 위독하다는 루머가 흘러나왔을때, 삼성 계열사들의 주식이 크게 올랐다. 아직 이재용이 "주식을 소유하지 않고도 기업을 다스릴 준비"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주식가치가 기업가치에 맞춰 올라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씁쓸하지만 주식의 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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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오너일가는 주주 자본주의 개념에서는 회사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회사를 좌지우지 하고 있으니, 오너라는 단어를 쓰기로 한다.
**지난 5월 28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했다. 제일모직 내 건설부문이 존재하긴 하지만 대다수가 그룹 내 수주로부터 나온 매출이기에, 두 회사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를 기대하긴 매우 어렵다. 패션회사와 건설/상사회사가 합병하면서 시너지를 기대하는건 정신병자나 할 짓이다.
***이론적인 valuation modeling아래서는 회사가 배당을 많이 지급하든, 적게 지급하든 기업가치에는 영향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제로는 기업은 경영환경에 가장 적합하도록 배당을 한다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기에 우리나라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게다가 실제적으로 높은 배당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끌어올린다는 실증 사례들이 수도 없이 많다.

댓글 1개:

  1. 자사주 매입 주주환원
    상속세 절하
    가치투자의 원년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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