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31.

과연 누가 부채를 늘리고 있을까: 너나 잘하세요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회계 능력을 함께 주었다고 한다. 단둘이 있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자신의 갈비뼈를 현물로 출자하여 하와라는 독립법인을 설립하였지만 의결권은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와는 선악과를 우연히 습득하여 자신의 대차대조표에 사과라는 자산을 반영했다 아담에게 무상으로 지급하였고 아담은 이를 이전소득이라 기록했다. 그리고 화폐경제가 시작되었다. 둘 사이에서는 빈번하게 화폐가 오갔으며 그들은 자신의 대차대조표에 금융자산과 금융부채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밖에 없는 에덴동산에서 그 둘의 순부채가 동시에 증가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누군가의 부채는 다른 이의 자산이기에 한쪽의 부채가 증가했다면 다른 한쪽의 자산도 함께 증가하게 된다. 그렇기에 둘의 순 부채가 동시에 증가할 수는 없다.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있다면 한반도에는 정부와 민간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거래내역을 뜯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왜냐하면 정작 부채를 급격하게 늘리고 있는 것은 민간이 아닌 정부며, 사실상 정부부채를 충당하는 것은 가계의 예금이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동안 가계부채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예금과 채권 투자 잔액은 더욱 빠르게 늘어 약 285조가 증가했고, 그 결과 순부채는 약 120조가 감소했다. 반면 정부부채는 약 120-240조***가 늘었는데 과연 무분별하게 부채를 늘리는 쪽은 누구일까?  

따라서 진심으로 높은 부채비율이 걱정됐다면 정부는 국민들을 겁박할 것이 아니라 반성문을 써야 했다.(비록 필자는 코로나 기간 동안 강력한 정부 지출을 지지하지만) 하지만 우습게도 우리는 급격하게 순부채를 늘리는 정부가 순부채를 줄이는 가계를 상대로 부채가 과도하다며 대출을 금지하는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 새로운 수장이 이끄는 금융위는 이두박근에 힘을 가득 주고 장첸을 쥐어박던 마동석처럼 폭력적으로 은행 창구의 셔터를 쾅 하고 닫으면서 무분별한 부채증가를 막아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가 만약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면 금융위원회 로비를 찾아가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너나 잘하세요. 

만약 채권자가 돈을 융통하지 못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응당히 채무자의 자금을 회수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채권자는 가계고 채무자는 정부다. 그러니 정부의 펀딩이 원활하게 될 리가 없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이달 들어 여섯 차례의 입찰 중 다섯 번이나 발행 예정액을 채우지 못했고 국고채의 발행을 담당하는 PD들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고 한다. 자기의 전주의 돈줄을 죄는 정부의 바보 같은 행태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니 이와 같은 정부의 자학적 슬랩스틱 개그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돈을 빌린 채무자가 돈을 빌려준 채권자 보고 빚좀 내지 말라고 윽박질러놓곤 다음날 다시 찾아와 돈 좀 빌려달라고 애걸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최근의 채권시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부채로 유지되는 경제를 바꾸어야 한다면서도 내년에도 대규모의 채권 발행을 예고한 멍청한 정부가 있고, 반대쪽엔 대출이 막혀 중도금과 전세금을 구하기 위해 자금을 인출하는 가계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애 먼 고생을 반복하다 결국 삼삼오오 모여 새빨개진 얼굴로 말없이 담배만 뻑뻑 피우는 채권부서 친구들이 있다. 정부는 유동성을 줄여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하지만 공급이 부족한 특정 재화의 가격을 안정시키겠답시고 전체 유동성을 죄는 것은 채권시장 뿐 아니라 주식시장과 내수, 특히나 코로나로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된 서비스업과 자영업자들에게 사약이나 다름없으리. 

지금이야 위통약을 집어먹는 것이 채권 담당자들 뿐이겠지만 얼마 안가 더 많은 사람들이 제산제와 아스피린을 찾게 될 것이다. 그들 모두에게 내 작은 위로를 건넨다. 부디 그대들의 고통이 오래가지 않기를.



*외국인도 있지만 편의를 위해 제외한다.
**이런 현상은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거의 대다수의 나라에서도 발생했다.
***연금충당부채나 지방공기업을 포함하느냐에 따라 집계가 약간씩 다른데 순수정부부채만 계상할 경우 약 125조, 광의의 부채를 모두 포함할 경우 240조가 된다.

댓글 10개:

  1. 불도저 형아가 작심한데는 이유가 있지않을까요?
    그를 움직인 지표가 있다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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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번 정부 들어서 하루이틀 이러는 게 아니죠 ㅎㅎ
    사회주의자들은 신기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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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뭐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릴리트도 있겠죠 ㅋㅋ 이재명 경제 특보인가 돈 100억 가진 사람이 초인플레에선 1억으로 줄어든다네요 ㅋㅋ 달러는 돈이 아닌가봐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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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채 시스템도 다운됐고 채권 금리도 이상한게 시절이 하수상하네요.. 폴 볼커가 사람을 죽였지만 나라는 살렸듯 전 달러에 투자할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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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종이쪼가리일 뿐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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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자산시장이 쉬지 않고 달리지만, 위험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조차 마음 한편엔 항상 자산가격 종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듯합니다.. 이제 중앙은행의 긴축을 염두해둬야 하는것이 아닌가 싶은데.. 연준은 여전히 인플레이션에 대한 스탠스를 크게 바꾸진 않은듯하구요.. 선생님께선 긴축 사이클이 곧 다가올것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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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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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가장 최근에 작성하신 경제관련 포스트가 이 글이라 여기에 질문하고자 합니다. 원달러 환율을 1200에 가까워질정도로 오르는데, 달러위안 환율은 연일 최저치입니다. 위안과 원은 연동하는 성향이 있는 걸로 아는데 왜 요즘따라 반대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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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이 자국 금융시장을 적극적으로 개방하면서 외국인들의 투자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분산되는게 있겠죠. 과거엔 중국은 후진국에 가까웠고 한국은 준선진국이었습니다. 이제 한국은 중국스러워졌고 중국시장은 과거보다 선진화됐는데 반대로 내달리는 두 국가의 시장이 반대로 가는게 이상하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또 중국이 각 분야에서 굴기를 외치는 동안 우리는 원자력은 말려죽이고 이재용은 감방에 넣고 각종 반기업적 법안을 통과시키며 투자를 지연시켰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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