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9.

오만한 멍청이들과 크레디트 스위스

본인은 현재 언급되는 금융사들의 재정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으며 아래 글은 모두 현재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나 해당 회사가 발표한 재무자료, 혹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금융시장의 데이터에 의존한 자료에 개인의 견해를 얹은 것임을 밝힙니다. 

무엇인가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누구도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낙관론을 펼치는 사람들이나, 확신에 찬 비관론을 펼치는 사람들이나 모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진앙은 16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투자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로부터 출발한다.

낙관론을 펼치는 몇몇 은행 애널리스트들은 이 회사의 대차대조표는 탄탄하며 충분한 유동자산을 보유했기 때문에 과도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장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재 크레디트 스위스의 PBR은 불과 0.13에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주요 투자은행들은 물론이고 이름이 알려진 금융사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비율이다.  어쩌면 이는 투자자들이 그들의 대차대조표를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또 이 숫자를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신용부도스왑에 대입하면 CS의 파산 확률을 추산 할 수 있고 그 수치는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이에 대응하여 스위스 중앙은행과 스위스 금융 규제 기관, 그리고 스위스의 다른 대형은행인 UBS는 발 빠르게 CS를 인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한 지 불과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세계적 은행 하나가 또 금융시장의 도마 위에 올라온 것이다. SVB의 실패는 테크와 스타트업에 집중한 은행이 리스크 관리를 엉망으로 하는 바람에 터진, 해당 은행 고유의 문제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금리 아래서 버티기 어려운 산업은 테크 하나가 아닐뿐더러 자신이 어떤 리스크를 짊어졌는지 모르는 기관과 투자자가 비단 SVB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경계심을 높여야 한다. 

절대 오해하지 마라. 나는 인버스에 몰빵하는 것을 권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가진 금융주를 모두 매도하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현재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던 멍청이들이 그 오만함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뿐이다. 각 나라의 중앙은행들과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게 대응에 나서고 있으니 이번에는 파산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 수도 있다. 혹은 인플레이션 압력 때문에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응이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앞서 언급한 두 개의 시나리오를 빠르게 오갈 수도 있다. 심지어 2008년 리만 위기에서도 먼저 파산한 베어스턴스 은행이 인수되고 나서 시장은 두 달간 약 15% 랠리 하기도 하지 않았나. 여하튼 지금은 호가 창을 가득 채울 만큼 부푼 에고와 과도한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시장과 싸울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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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언급했듯 금리를 올리면 무엇인가가 무너진다. 그리고 가장 무모하고 멍청한 놈이 먼저 무너지곤 한다. 그러니 잠시 그 멍청이들의 명단을 읊어보자. 금융 시스템의 기초나 화폐금융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던 권도형은 자신이 통화 시스템을 대체할 알고리즘을 개발했다고 허풍을 떨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열역학 법칙을 뛰어넘을 수는 없듯 대단한 알고리즘과 뛰어난 블록체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통화이론의 기본 원칙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평생 경제나 금융을 공부해 본 적이 없던 너드 프로그래머들과 제도권 밖의 사기꾼들, 그리고 과도하게 대범했던 투자자들은 기존의 금융을 비웃으며 자신만의 금융 시스템을 창조했다. 하지만 권도형이 주장했던 루나 생태계와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가장 업신여기던 중앙은행의 지원에 기반했던 사업이었고,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거둬들이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규제와 시스템을 준수하던 기존의 체계를 미개하게 여기던 오만한 투자자들은 울부짖으며 방향을 180도 바꾸어 자신들이 멸시하던 중앙정부와 은행에 보호와 사후 처리를 애걸하고 있다. 2022년 5월의 루나 사태는 첫 번째 멍청이들의 몰락을 의미했다.

두 번째 몰락은 샘 뱅크먼 프리드의 FTX였다. 앞서 상장된 종목 하나가 파산한 것이었다면 이는 거래소가 통째로 몰락한 사건이었다. FTX는 거래소를 자청하면서도 동시에 자사의 코인을 발행해 유통한 참가자였고 또 동시에 코인 펀드를 운용한 이해 당사자이기도 했다. 창시자 SBF는 이렇게 통정매매와 내부자거래, 시세조종을 거듭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는데 기 금융시스템이 엄격한 권한/직무분리에 집착하는 것을 두고 제도권의 투자자들과 펀드들을 크게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거듭한 결과 해당 거래소의 담보 자산은 거의 대부분 자기 자신이 발행한 코인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신뢰성이 손상되자 빠르게 뱅크런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거래소가 통째로 파산하는 바람에 FTX가 발행한 코인에 투자한 투자자는 물론 해당 코인을 사지도 않았지만 FTX에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까지 자신의 돈을 모두 날려야 했다. 앞서 루나 사태가 특정 증권의 파산이었다면 FTX의 파산은 크립토 세계의 은행의 파산이나 다름없었다. 

세 번째 몰락은 드디어 제도권 금융기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실리콘 밸리 은행은 본디 세상을 바꿀 천재 창업가들을 주로 상대하던 은행이었다.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프로세스, 양자컴퓨터 등에 비하면 안전자산이라는 채권이라는 상품은 얼마나 재미없고 따분하고 쉬운가. 그래서 그들은 1% 중반 밖에 안되는 금리에 채권을 사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만기가 아주 긴 채권을 아주 많이. 채권이라는 것은 안전한 자산이기 마련인데 관리할 리스크 따위가 있을까. 하지만 작년은 바로 그 채권금리 때문에,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기업의 주가도, 최첨단 테크 기술을 보유한 전도유망한 회사의 주가도 폭락을 거듭했다. 은행의 CFO들은 자신이 무엇에 투자하는지, 어떤 리스크를 짊어졌는지 안다고 착각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결국 그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첫 번째로 파산한 은행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리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많은 투자자들은 코로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에 충격이 가해질 경우 중앙은행과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들의 어리석음은 권도형이나 샘 뱅크먼, 혹은 실리콘밸리 은행의 CFO들에 비견될 만큼 막대하고 무모하다. 지난 2020년에는 하나, 이미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는 사이클에 있었고, 둘, 세계경제가 기나긴 시간 동안 디플레 압력 아래 있었고, 셋, 충격이 경제적 원인이 아니라 공중보건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중앙은행과 정부는 대담한 부양책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2020년 이전과 정확하게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 급격하게 금리를 인하하고 양적완화에 나서는 기준은 시장이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높고 대규모 부양책과 구제책을 마련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반대는 훨씬 더 강하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테크 회사들이나 쓰레기 같은 알트 코인들이 금리 인상을 선 반영하며 랠리를 이어가는데 정작 루나, FTX, SVB와 가장 흡사한 자산은 바로 그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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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오만한 멍청이들은 현 정부 안에도 있다. 경상수지가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는데도 외화보유고를 지속적으로 풀어 자신들이 원하는 환율 수준을 맞출 수 있다고 믿는 멍청이와, 검사였던 자신이 나서면 모든 금융기관을 살려줄 수 있고 또 그것이 옳다고 믿는 멍청이, 그리고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에 대통령이 말 몇 마디 했다고 더 부실하고 빈약한 자본을 가진 참가자들을 허용하겠다는 멍청이. 그 멍청이들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며 그 해악은 우리나라 경제와 시장에 커다란 상흔을 남길 것이다. 

이들은 오만하게도 자신들의 배경이 좋기 때문에 자신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영역에 적극 개입해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맞춰 이렇게 이렇게 조언하겠다. 권도형은 스탠퍼드를 졸업했고 샘 뱅크먼은 공학의 꽃인 MIT를 졸업했으며 현재 어려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크레디트 스위스에는 서울대보다 훨씬 더 이름 높은 명문대의 졸업생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도 실패하지 않았나. 그러니 당신들도 잘 모르는 분야에 오만하게 나서지 말고 할 줄 아는 것이나 잘 해라. 능력에 걸맞지 않은 야망은 늘 무언가를 망치는 법이다.

댓글 25개:

  1. 금융권의 몰락을 현재 반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대대적인 금리인상기를 지금껏 맞아본 적 없는 크립토에 대해 현재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크립토투자자들이 주장하는 금융권의 몰락은 시작되었고 비트코인의 호황은 시작되었다는 말을 납득하기가 어렵네요. 위기는 끝났고 금융권의 위기를 막기 위한 조치들이나 심지어는 위기를 막지 못한 순간까지도 결국 테크주나 크립토쪽으로의 유동성이 될 것이다 라는 낙관론자들의 의견 역시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리먼 때 파산한 은행의 경우에도 시장은 되려 15% 랠리가 있었다는 말을 첨부하며 현재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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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기는 끝났고 는 오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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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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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선생님 글 잘 봤습니다. 혹시 신용화폐나 달러 패권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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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용화폐를 유지시키는 근간 중 하나는 정부입니다. 그리고 그 정부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미국 정부이고요. 코인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대체하는 일은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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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물가에 대한 관심은 옛날일이며,, 금리는 다시 크게 하락할것이고,,, 요즈므 눈에 띄는것은 달러의 위치를 부정하며 금과 비트코인이 new fiat money 가 될것이다? 라는 어처구니 없는 뷰도 등장하는듯합니다. 코인 외 혹시 금에 대한 고견은 어찌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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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70년대가 재현된다면 금이 가장 훌륭한 자산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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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개인적으로 모르고 그러는 애들보다 알고 그러는 애들이 더 많은거 같음. 그와중에 아무것도 모르고 머리에 꽃꽂은 애들이 개판치는게 이나라 행정이라는게 말이 안되는거라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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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우리가 모르고 있는게 박살나고 있는 중이고 그게 수면 위로 들어나며, 그리고 정부는 그것을 살려둘 생각이 없을 그 때 시장이 엄청난 공포를 느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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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근 테크, 비트코인이 안전자산이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몰락은 결국 머지 않았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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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트코인에 대해 7일정도만 깊게 연구해보신다면 서울부동산만큼 안전하고 완벽한 자산인 것을 깨닳으실겁니다. 비트코인의 고점은 없으며 제 갈길을 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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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동의하기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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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기에 비트는 지금 가격까지 왔네요. 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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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글씨 크기만 좀만 더 크게 안될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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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번 키워서 써보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제 눈엔 블로그의 기본 글씨체가 더 좋게 보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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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으며 미국 금리와의 차이를 유지하거나, 혹은 벌리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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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한국과 미국 간의 금리차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각 경제가 처한 상황이 다르니 두 나라의 중립금리도 다른데 미국과 금리 수준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올릴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이제 핵심은 중립금리를 상회해서 올린 금리를 얼마나 오래 가져갈 것인지, 경기가 둔화되면 금리를 얼마나 내릴 것인지가 핵심이고 마찬가지로 두 나라는 저마다 다른 답을 가지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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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선생님, 새마을금고의 100% 이자감면에 대한 기사를 오늘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이 글이 생각나서 방문하게 되었어요. 제가 금융은 사회 진출 후 이제 막 공부하기 시작한 어른이 인지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은행의 부채를 구성해주는 주체들의 신뢰가 이번 일을 계기로 점차적으로 훼손될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뭔가 당겨서는 안 될 트리거를 당긴 것만 같아요. 너무 걱정이 됩니다. 글에서 언급한 사람들은 모두 이런 결정에 대한 대가를 치르겠지만, 그 여파가 금융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가 된다는게 너무나도 아이러니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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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실 크레딧 스위스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스위스 금융당국은 두가지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했습니다. 바로 인수자인 UBS주주들의 의견을 무시해서 주식의 의결권을 묵살한 것과, CS 채권(AT1) 보유자들의 권리를 주식보다도 후순위로 둔 것이죠. 이 둘은 사실상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결정이었기에 다른 금융 상품에도 충격을 주었고, 현재 후자의 경우는 소송까지 걸려 있습니다.

      새마을금고는 각 지점 이사장 승인 만으로 대출의 지연된 이자를 모두 감면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아마도 급하게 상승하는 연체율을 낮게 마사지하기 위한 꼼수로 보입니다. 아니 추심을 해보지도 않고 지점 이사장이 승인하면 이자를 면제해준다니요, 안그래도 여러 비리 의혹이 제기된 마당인데 채무자들이 납입 이자의 반만 이사장에게 찔러주고 탕감을 받아도 남는 장사네요.

      두 사례 모두 패닉에 빠진 정부와 관료들이 자본주의라는 선을 넘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당국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려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경우 구제조치가 늦어진다면 사회전체가 지불해야할 비용이 급격하게 증가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우리가 리만사태에서 배운 것이니까요.

      하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미국과 스위스의 경우 구제금융의 대가는 대부분 납세자들이 아닌 해당 금융기관의 주주와 채권자들이 부담했습니다. 하지만 새마을금고의 경우, 현재와 같은 해결책이라면 그 비용이 출자자들이나 불법에 가까운 방만경영을 방치한 임원진/행안부 관료들이 아닌 납세자들과 국민들에게 돌아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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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선생님, 어머니가 새마을금고 대전 삼성동 지점과 대전제일지점에 1.2억 1.8억 총 3옥을 예금하셨습니다. 만기는 4달 남았고 전화해서 확인해보니 올해 6월 30일 기준으로 연체율은 4%정도라고 하더라구요...
    이거 해지하는게 맞을까요?? 부모님은 괜찮다고 하시는데 주변에 많이들 빼서 너무 불안해서 여쭤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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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단히 안타깝지만 저는 이 문제에 조언을 드릴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자탕감까지 허용해주는 마당에 과연 예금자들의 지불을 지원하지 않는 단계까지 갈까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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