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0.

쿠오 바디스 부동산(Quo Vadis Domus)

2019년 말 김현미의 마지막 대규모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이래(링크) 부동산에 대해 별다른 분석을 하지 않은 것은 이 시장이 더 이상 저평가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도한 규제로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은 크게 증가한데다 시장의 수급과 적정가치를 판단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기에 나는 부동산 상품을 분석하는 일에 시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코로나 직후 자산시장이 버블인지에 대해 잠시 분석한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급격하게 늘어나는 통화량과 재정지출로 인해 모든 자산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차원에서 분석한 것이지 꼭 부동산에 국한된 전망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인플레이션은 현재 피크를 찍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조만간 소비자물가지수 역시 고점에서 후퇴하여 하향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내 전망이 맞는다면 지난 10년보다 향후 10년의 인플레이션이 높을 것이며 상당 부분은 임금과 에너지 가격의 상승과 같은 공급 측 요인에 기인할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부동산은 어떻게 될까?

현재만큼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았던 1970년대의 미국을 살펴보자. 당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4.8%까지 상승했는데 이런 인플레이션을 제한하기 위해 연준은 기준금리를 3%에서 20%(1980년 3월)까지 올려야 했고 그 결과 이전 10년간 연평균 약 4.4% 성장했던 미국의 실질 GDP는 3% 아래로 주저앉았으며 다우존스 지수는 1970년 800에서 1979년 말 840으로 거의 오르지 못했다. 동기간 미국의 주택 가격은 어떻게 변했을까? 미국 주택의 중위값은 $24,000에서 $55,000로 약 2.3배 상승했다. 같은 기간 CPI 지수가 약 1.99배 상승했으니 주택 가격은 당시의 주식시장이나 경제성장률이 아닌 인플레이션을 착실히 쫒아간 셈이다. 

1950-90년대의 인플레이션과 주택가격 변동
그래서 장기 차트를 그려 보면 주택가격은 대개 금리가 오를 때 상승하고 금리가 하락할 때 함께 하락한다. 반면 장기간 대규모의 투자를 바탕으로 높은 성장성을 반영한 테크 주식들이나 무형자산의 비중이 큰 회사의 주가는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최근 유망한 테크주들의 하락이 타업종 주가보다도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슈퍼 고성장을 대표하는 테크 주식이 있다면 1970년대엔 Nifty Fifty가 있었다. 고성장 블루칩 50개 주식들로 이루어진 이 포트폴리오는 한때 주식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에 반드시 담아야 했던 Must have 아이템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십수 년간 잠잠했던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개를 들고 연준이 이를 제어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기 시작하자 한때의 블루칩이었던 이들은 다른 업종보다도 더 급격한 손실을 기록했다. 한편 주식과는 달리 물가와 상품, 그리고 주택가격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투자자들의 피웅덩이를 철벅철벅 밟으며 뛰어올랐고 1970년대는 상품가격들이 주가와 가장 크게 괴리된 시기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대표적 성장주들의 밸류에이션은 그 시절의 Nifty Fifty보다도 높다. 아직도.*

따라서 그 역사를 거울로 삼는다면 지금 성장주들이 급격하게 하락했다고 해서 부동산이 그를 쫒아 하락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주가의 하락폭은 수요나 어닝의 급격한 감소보다 단순히 금리의 상승을 반영한 것에 가까우니까. 하지만 오르는 인플레이션과 금리는 부동산의 수요 뿐 아니라 공급에도 타격을 준다. 장기금리가 오르기 시작하자 상당수 건설 프로젝트들의 비용이 증가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고 당면한 인플레이션과 인건비 상승으로 이미 시작된 공사현장들도 멈춰섰다. 한국의 건축 인허가 건수가 급감한 것이 금리 상승이나 인플레이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성장주의 폭락이 부동산 시장에서 재현되긴 어렵다. 물론 199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과 부동산과의 괴리가 벌어지기 시작했으니 인플레이션이 올라온대도 부동산이 과거만큼 그를 정직하게 따라가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부동산은 어떤 잣대로 보아도 저평가되었다고 볼 수는 없기에 투자에 나서기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다루는 상품들 중에서 부동산은 인플레이션을 가장 정직하게 따라가는 자산이고 그렇기에 피터 린치나 워런 버핏뿐 아니라 험난한 인플레이션의 고비를 넘어온 우리의 부모님들이 인플레이션의 피난처로 부동산을 꼽는것 아닌가. 적어도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과대평가된 성장주와 부동산을 같은 그룹으로 묶는 일은 매우 위험한 접근이다.

고전 영화의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쿠오바디스라는 구절은 성경에 기록된 베드로의 일화에서 인용한 것이다. 로마의 박해를 피해 달아나는 베드로 앞에 예수의 환영이 십자가를 지고 나타난다. 베드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Quo Vadis Dominus,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는 대답한다. "네가 내 백성들을 버리기에 내가 또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로마로 간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심히 부끄러워하며 다시 로마로 돌아가 순교를 택했다. 이 일화를 곱씹으며 베드로의 심정으로 이렇게 물을 수 있지 않을까? Quo Vadis Domus?**(부동산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역사는 이렇게 답한다,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온다면 부동산과 성장주의 길이 결코 같지 않으리라고.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십자가 형을 선고받은 베드로는 감히 자신이 주님과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며 자신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이 더욱 고통스러운 죽음임을 알면서도. 코인이나 나스닥이 하락했다고 자신이 거주하는 주택을 파는 일은, 만약 내가 전망하는 대로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온다면, 베드로처럼 자신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될 것이다.

2000년대 미국의 주택가격 변동과 미국 5년 금리

*하지만 2000년 IT버블보다는 훨씬 낮다.

**라틴어 Dominus는 주님, 혹은 주인님을 의미하는데 이는 집을 뜻하는 Domus와 같은 어원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한다.  

댓글 24개:

  1. 요약 : 실거주 1주택은 항상 옳다.
    요즘 인사이트를 공유해주시니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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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혹시 주거용 부동산이 아닌 상업 부동산, 상가 빌딩 오피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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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택과 같은 부동산에 가까울지.. 아니면 월세 수익을 기반으로 하니 주식에 가까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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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아주 크게 다르진 않을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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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일본 버블경제와 완전히 동일한 상황! 이번엔 다르다 역대급 하락 반듯이 온다. 다주택자 대가리 빠개지는 지엄한 심판! COMING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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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찰떡같이 알려주는걸 굳이 개떡같이 알아듣는 것도 대단한 재능입니다. 어떤면으로는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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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냅두셔요 ㅎㅎ 저런 사람들이 있어야 밟고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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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일본 버블경제와는 많이 다릅니다. 주가의 밸류에이션만 봐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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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생각이 참 반듯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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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과거 지독했던 디플레에서 빠져나와 이제 인플레이션으로의 리짐 쉬프트가 일어난다고 보면... 자산시장도 여러모로 과거와는 다르게 흘러가겠군요 (주식/채권) 선생님 말씀데로 만약 흘러간다면... 채권장은 이제 재미가 그닥 없을것이라고 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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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어제 루나/테라 사태를 보며 주인장님의 비트코인에 미래는 없다는 글이 떠오르더군요. 비트코인은 바로 죽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나머지 알트코인과 그에 기생하는 프로젝트들은 수명이 며칠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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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안녕하세요 선생님... 늘 글만 보다가
    제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다보니
    댓글남기게 되네요 ㅜ
    주택담보대출로 주식하다가
    거의 말아먹었습니다...
    이자부담이 상당한데...
    그래도 파는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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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손실액이 어느정도 되시나요..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조언드리자면 손실액이 이미 상당히 크다면 ex >50% 등 그냥 가지고 계신것이 나아요.. 잡주가 아니라면요...그리고 현금흐름 (월급 등) 이 꾸준하시다면...흔히 말하는 존버 하시라해도 어느정도 조건이 맞아야 추천드릴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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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략 지금 주식다 처분해도
      담보대출을 갚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고
      손실액은 어마어마하구요 ㅜ
      -70%정도 됩니다 ㅜㅜ
      현금흐름은 어느정도 되는데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부담되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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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전 선물 포지션이었기에.. 만기도 있고 레버리지도 너무 높아 확정손실쳤었는데 주식 포지션이고 잡주가 아니시라면 + 그리고 현금으름이 꼬박꼬박 있으시다면 전 20% 정도 일부만 확정손실 보고 나머지는 존버할것 같습니다... 이는 물론 연말에는 주가가 어느정도 회복할것이란 제 뷰에 기반해서 말씀드린것이지만 ... 70% 정도의 평가손실중이라면 이제와서 전액 처분하는건 바보같은 짓입니다 (물론..계속해서 말씀드리지만 잡주가 아녀야합니다..) ㅠㅠㅠ 현재 상황에서 이자가 부담이시라면 어느정도는 처분해서 이자 부담을 낮추는게 존버하는데에도 도움이 될듯하구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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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대략 지금 주식다 처분해도
    담보대출을 갚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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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이 뷰 , 아직도 유효하신가요?? 저같이 대출금리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우하향하지 않을까요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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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금리는 모든 자산의 가격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내립니다. 하지만 현재처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매우 긴축적인 수준으로 금리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긴축에서는 무엇인가가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한국의 PF, 영국의 보험사, 스위스의 대형은행, 미국의 어느 중소은행처럼요.

      하나가 무너지고 멈출지, 두어개 혹은 서너개가 무너지고 멈출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어느정도 경제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나면 현재의 금리 역시 조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비유하자만 각 자산의 전망은 구조조정이 충분히 진행되고 나서 생존자 그룹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뉘겠죠. 제 생각에 실물자산과 원자재 에너지 등은 생존자 그룹에 들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시가총액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고평가 주식들은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좀 더 높고요.

      따라서 위의 전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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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감사합니다. 누구나 어떠한 전망이 맞을수도, 틀릴수도, 변할수도 있겠지만 현재 주인장님의 견지나 입장이 상황에 맞춰변하신 것이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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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맞는지 틀리는지는 지나 보아야 알겠죠. 질문 주신 덕분에 제가 가졌던 생각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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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안녕하세요. 리츠는 실물자산과 채권형자산중 어디에 해당될까요? 우둔한 질문이지만 답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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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단 리츠는 채권과 매우 다른 수익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또 레버리지 정도와 부채의 만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리츠 펀드들은 상당 부분 레버리지를 끼고 있는데다 부채의 만기가 길지 않은 경우가 많아 실질금리 상승에 취약합니다. 물론 대다수의 자산들이 그렇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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