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26.

제로유가,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

  • 작년 여름의 한 글(링크)에서 언급했듯 모든 기술적 지지선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0이다. 다양한 파생상품을 접해온 사람이라면 유럽의 장기금리가 마이너스를 찍은 마당에 WTI 유가가 마이너스를 가지 말란 법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겠지만, 아니 이해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나 어떻게 유가가 마이너스를 갈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쉽게 풀어보기로 한다.
  • 모든 재화는 저마다의 활용가치를 지니겠지만 마찬가지로 비용을 발생시킨다. 당장 당신 집앞의 주유소에서 휘발류를 공짜로 나누어준다고 한다면 당신은 집안의 온갖 드럼통과 용기들을 모두 가지고 주유소 앞에 줄을 설 것이다, 당장 쓰지 않을 기름을 모으기 위해서. 하지만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주유소는 기름을 공짜로 뿌리는데 당신의 집안에는 휘발류냄새가 진동을 한다, 흉측한 드럼통때문에 거실에는 당신이 오갈 공간조차 부족하다, 그지경이 되면 얼마간 버텨보던 당신은 기름을 버리러 통을 돌돌 굴려가며 가지고 나간다. 하지만 쓰레기 하역장엔 당신같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주유소 앞에 줄 서있던 사람들은 이제 분리수거장 앞에 다시 줄을 선다. 이제는 휘발류를 처리하는데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그때의 휘발류 가격은 당연 마이너스겠지.
  • 상품의 가격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다만 당신이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쓸만한 의자와 TV를 버리기 위해선 구청에 과태료를 내야 하며 가끔 신문에선 농민들이 배춧값이 폭락해 밭에 불을 지르고 돼지를 땅에 묻는 것을 보곤 한다. LA에서 오래 산 내 친구는 캘리포니아에선 오렌지가 굴러가도 거지도 집어먹지 않는다는 농담을 던진다. 단지 이번에는 텍사스 유가가 오렌지가 되었을뿐이다.
  •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하는 대상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너무 자책하지마라. 수많은 증권사, 헷지펀드 심지어 레이 달리오조차 그랬으니까.(그는 사실상 자신이 통화속도의 풋옵션을 팔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실수를 두번 저지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정말 유가에 대해 반등의 확신이 있다면 차라리 정유사 주식을 사는 것이 낫다.
  • 지금 이 말은 다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이제 인플레이션에 대비해야한다. 수많은 전쟁에서 영웅들은 자신들이 가장 경시하던 위험 때문에 무너지곤 했다. 적어도 금융시장은 그랬다. 선진금융시스템과 시장원리를 과신하던 월가는 바로 그 이유로 파산할 뻔했고,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던 리만직후의 세계는 디플레의 공포에 시달렸다. 그리고 현재 우리 모두는 인플레이션을 마치 지난 세기에 멸종된 생명체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다음 10년은 인플레이션이 한밤중의 도둑처럼 닥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이 닥쳤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을 것이고 그 결과 역대 가장 큰 버블사이클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 그 이유는 다음 셋과 같다. 하나-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을 아예 잊은 각 정부는 우한코로나사태 이후 수요가 회복하기 시작할 때 출구전략을 제때 시행하지 않을 것이고,  둘-2014년에 시작된 상품시장의 베어사이클로 인해 CPI는 실제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것이며 셋-코로나사태로 엄청나게 재정적자를 늘린 각 정부는 실질부채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허용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유효했던 투자전략이 다음 10년간 통용된 적은 많지 않으며 아마 포스트코로나의 시대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댓글 16개:

  1. 통찰력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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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엄청 풀린 돈으로 인한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엄청난 버블의 흐름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려하는 이유는 엄청난 버블이 평생 갈수는 없고, 언젠가 이게 터질수 있는데 이미 온갖 정책(통화, 재정 등)수단을 쓴 상황에서 과연 버블붕괴에 대응할수 있는 수단이 각국정부에게 있는가? 그때가 되면 그냥 몸으로 버블붕괴를 다 맞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요. 물론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야 할거고, 일단 버블이 껴야 그 후 전개를 생각해볼수 있겠지만 예상대로 인플레이션과 버블이 온다면 그 후의 흐름이 어떨지 우려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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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급격한 빈부격차의 확대가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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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qe를 그렇게 했는데도 인플레가 없다고 다들 얘기하죠
    실상은 인플레를 수출한 것인데 말이죠
    대표적인 사건이 아랍의 봄 사건이고요
    그로 인해 난민들은 유럽으로 몰려들었죠
    경제력이 낮은 순대로 I의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보이며
    지금은 터키,아르헨, 베네수엘라 정도이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G10 근처 그룹에게도 찾아올 것이라고 봅니다
    그때와는 다르게 10년간 검증되었기에 이머징 국가 또한 자국 화폐를 연준이 푸는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무한정으로 살포하고 있고 그렇게 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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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작성자님께서
      QE에 대해서 반대하신다고 생각한게 아니라
      제가 중학생 때의 경제 선생님께서 반대하신게
      기억이나서 그렇게 회상을 했구요...
      제가 잘못 작성한 댓글에
      오해가 있었던 점이라고 생각합니다.ㅠㅠ
      저도 중국 속담중에 모든 정책에는
      대책이 있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말씀하신 부분처럼 정책을 내가 어떻게 최대한
      이용할까는 각자가 고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화폐에 대해선 이전과 달리 통제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인플레가 매년 10%~20%와 같은
      수치는 보이지 않을것 같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탈 중국은 결국 JIT든 JIC든 생산관리적 관점에서
      동남아/동유럽으로 갈건 예정된 사실이고요.
      저는 혁신을 연료 효율과 같은 차원에서 보고 있어서
      조금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폴딩 방식의 스마트폰이 기술혁신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스마트 그리드/긱 이코노미 등이
      결국 효율을 가져다 줄것이기 때문에
      글로벌리 생산시스템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더 큰 규모의 경제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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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그리고 현재 시스템에서 저도 수혜자의 위치에
      서 있어서 저도 체제 자체가 무너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닙니다. 정말 진심입니다.
      조국 장관 부부와 같은 이중 사고는
      1984와 같은 사회에서나 어울리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체제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스템을 완성시키는 와중의 저희 세대에서
      누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라는 생각은
      거시적 차원에서 앞으로의 우리를 파괴할 생각일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며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우리는 우리라는 범주의 확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현재 위기에서
      EM과 developed의 갈등을 최소화
      하는 움직임이 필요하고요.
      환율 전쟁이든 저유가로 인한 산유국간 경쟁이든
      고민이 깊은건 맞겠지만
      정책 결정자들이 최선의 판단과
      그에 걸맞는 글로벌 시민의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갈등의 단순 봉합이 아니라
      치료를 원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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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 저랑 생각이 다른부분이 있네요
      일단 미국이 탈세계화를 하고 있기에 기존과 기조가 다르다는 점 한가지와
      코로나 사태로 선진국들이 여러 물자 부족을 겪었으므로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빼는게 아니라 타국은 못믿기 때문에
      자국으로 제조업을 뺄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기업은 대책이 있다라고 하신 부분에는
      기업은 지금보다 더 높은 자동화를 할 것이라고 봅니다
      Humun less Fab 같은 게 나오겠죠 사람이 없는 생산공장
      4차,5차 산업헉명의 이명은 개도국에 대한 복수라고도 하죠
      선생님과 저는 기본적으로 생각이 다르니 견해가 달라지는거겠죠
      어떻게 될지는 차후에 지켜보면 될 것 같네요
      저도 모든 물품 전체 분야의 인플레보다는
      처음엔 식자재, 원자재 같은 기초 분야에서의 인플레가 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다음엔 다른 제품들로 전가되겠지요
      결국 은행도 기업도 다 국가가 살려줄테니까요
      저번에도 이번에도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기업은 어차피 망하지 않는다면 제품 가격으로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제가 죽는 것보다 자본주의가 더 빨리 죽을거같습니다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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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인플레 수출.... QE반대하는 분들의 대표적인
    논리였던걸로 기억합니다. 동의하지만 기술개발에 따른
    긍정적 디플레도 있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극심한 인플레는 나타나지 않을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구리/헬륨/리튬 같은 희귀한 자원에서만
    일정한 스테그플레이선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재료공학/합성 분야가
    각광받고 있는 이유기도 할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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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댓글에 다셨다 삭제하신거 같아서 사족을 좀 달자면
      저는 QE 반대론자 아닙니다;
      제가 반대하든 찬성하든 FED의 마음대로 흘러가는 게 시장 아니겠습니까?
      현실을 인정할뿐이죠 솔직히 얼굴도 한번 본적없는 남이 굶어죽은 무슨 상관입니까
      내 주식 주가만 오르면 그만이지;
      다만 본질을 볼 뿐이에요
      전세계가 정말 그대로라면 모든 국가에서 중국을 놔둔다면
      저는 아예 인플레가 없는 수준일거라고
      확신합니다
      근데 코로나로 선진국은 제조업을 더 회수하려고 할 것이고
      실제로 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55716
      나토는 중국을 가상 적국으로 지정했고요
      https://news.joins.com/article/23651229

      경제, 군사적으로 물밑작업 하던게 표면으로 계속 나오고 있는 만큼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을겁니다
      저는 이러한 변수들이 우리가 여태까지 아예 외면해왔던 I에 대한 공포를 일깨워줄 것이라고 봅니다
      그때랑 다르게 선진국만 돈을 푸는게 아니니까요
      지구상에 무한정한 것은 화폐말고는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기술의 발전 속도 보다 화폐를 찍어내는 속도가 수만배 빠르니까요
      잡스가 만든 스마트폰을 10년간 노력해서 겨우 접는데 성공했습니다
      10년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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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번엔 진짜다(대공황이다) 하던게 불과 한달전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자산시장의 빠른 안정화로
    지금은 식당에 가도 한달전과 같이 모든 테이블에서 주식얘기로 떠들석하지 않는 듯 합니다.
    그렇게 불현듯 인플레이션이 찾아오고 정신차린 순간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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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언빌리'버블'하겠죠..사실 이 정부가 정상적인 정부라면, 투자할만한것들이 보이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 저의 투자판단을 너무 힘들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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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그리고 빈부격차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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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코로나 이 후 자유무역시대가 가고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면 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럼 실물자산을 많이 가지고있는 회사주식도 도움이 될까요? 현제 호텔리츠, 상업부동산 리츠를 국내 오피스텔의 대안투자로서 투자해 놓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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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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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블로그 주인님의 통찰력 높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인플레 vs 디플레 논란에서 주의깊게 봐야할 지표는 M2 그리고 통화승수 일 듯합니다. 지난 10년간 늘어난 통화량을 통화승수가 줄어들면서 M2를 적당한 기울기의 우상향(?)으로 유지 시켰는데 시켰는데 어떤 이유에서든 승수가 회복된다거나 하면 걷잡을 수 없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실제로 2013년 테이퍼텐트룸이나 2018년 금리상승기 FED의 의사록들을 읽어보면 승수의 갑작스러운 회복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심이 많이 읽힙니다.

    10년전 QE 처음 할 때도 인플레 vs 디플레 논란이 많았고 CPI상으로는 우려했던 만큼의 인플레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생활물가 특히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보면 CPI의 집계 방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실제 주택가격 포함 물가는 M2와 거의 겹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CPI가 정확히 반영 못하더라도 인플레는 M2증가분만큼 발생할 것이고(여전히 우상향), 확률이 낮지만 통화승수가 급작스럽게 늘어났을때의 하이퍼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할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빈부격차가 극심해 질거라는 견해에 걱정스럽게 동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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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의합니다. 7080년대 공급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에 대한 공포가 지나쳐 디플레를 초래하게 되죠.

      이젠 디플레에 대한 공포가 심해져 인플레를 촉발하게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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