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4.

금리의 온도

우리 모두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다른 모든 분야의 아마추어 혹은 초보들이다. 그리고 그 둘의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종종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다 오해를 낳는다. 나 역시 금통위를 앞두고 작성된 기사의 댓글들을 보고서야 왜 일부 대중들이 금리인상을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요구하는지 그제서야 알았다. 지난 1년여간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강력한 부양책을 사용했고 그 결과 금융시장이 발달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주가와 부동산이 고점을 경신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주변을 돌라보기 시작했고 그들은 이제 자산 가격들이 마천루보다 더 높아진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자괴감을 느끼고 있고 그런 정서는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전해 듣기론 모 재벌도 술자리에서 측근들에게 그런 푸념을 늘어놓았다고 하니 일반 서민들이야 오죽하랴. 

대중은 상대적 빈곤의 원인으로 느슨한 통화정책을 지목하고 있다. 우한폐렴의 지독한 상흔이 지나갔으니 어서 통화량 공급을 줄여 이 늘어나는 빈부격차의 확대를 막아야 한다고. 특히 한국에서는 끝도 없이 올라버린 집값이 사람들의 박탈감을 자극하고 있다. 규제로도 세금으로도 집값을 잡을 수 없다면 그 범인은 분명 통화정책 때문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이 때이른 금리 인상 기대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하지만 이 불은 꽁꽁 언 얼음을 녹이는 동시에 바짝 마른 종이를 태워버릴 것이다. 아니 얼음이 녹기보다 종이가 타는 것이 빠를 것이다. 금리의 온도는 당신이 누구인지 또 어떤 일을 하는지에 따라 매우 다를 테니까.

부문별 대출 연체 추이를 보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가계부채의 연체율이 가장 낮고 중소법인의 연체율이 가장 높은데 심지어 주택 담보대출은 대기업 대출보다 연체율이 낮은,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대출 중 하나라는 것. 또 우리는 연체율의 추이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지원으로 코로나의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중소법인과 신용대출의 연체 추이가 지난 1년간 크게 하락했다 최근 다시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각종 지원책들을 종료시키거나 거두어들이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정책의 영향은 경제주체와 부문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일부 대중들은 금리를 올리면 부동산의 상승세가 잡히고, 따라서 빈부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나치게 이른 출구전략은 그들의 믿음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로 괴로워하는 몇몇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질 것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매출이 사라진 개인사업자들이 청산될 것이며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산업의 기업들도 투자를 줄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고용을 줄일 것이니 구직시장에서 소외된 청년들의 취직이 회복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주택시장이 잠시 주춤하는 동안 취약계층과 업종의 소득이 크게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이는 결국 빈부격차를 개선하고 서민들의 주택 구입을 용이하게 하기는커녕 반대로 악화시킬 것이다. 

흥미롭게도 내 주변 금융권 중 이른 금리 정상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 든 자산가들이다. 한국 가계가 소유한 금융자산은 금융부채의 2.2배인데 그 상당액을 중/장년층, 그리고 노년층 자산가들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자산가들의 소득은 빠르게 증가한다. 반면 가장 가난한 1분위 계층이나 젊은 층, 특히 학생들은 금융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아 금리 상승은 그들의 소득을 갉아먹는다. 2020년 자료를 보면 순자산 기준으로 가장 가난한 1분위의 대출은 작년 한 해 동안 무려 21.6%가 늘어났으며 그들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은 무려 81%에 달한다. 그리고 그들의 소득은 각종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17.1%가 감소했다. 같은 기간 5분위의 대출은 고작 2.2%가 늘었고 부자들의 부채비율은 14.5%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금리 인상이 누구에게 이롭고 누구에게 타격을 줄지 너무나 명확하지 않은가.

금리를 결정하는 이들의 자산 내역을 보면 그들의 편향을 이해할 수 있다. 금통위원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임지원 위원은 약 71억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고 총재 역시 16억 원을 예금에 넣어두고 있다. 조윤제와 서영경 위원도 각각 22억 원의 예금을 보유 중이고 고승범 의원도 18억이 넘는 예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예금액은 모두 합해 반올림하면 200억이다. 이들이야말로 벼락거지란 말에 가장 속이 쓰릴 사람들이다. 불과 몇년 전에는 강남 신축을 몇 채나 살 수 있던 돈이 이젠 전셋값도 간당간당하게 되었으니 누구라도 그들만큼 예금이 많다면 경제상황을 무시하고 금리를 올리고 싶지 않을까? 금통위원들이 가장 견실한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배경엔 이러한 편향이 있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아리팍과 샤넬, 그리고 포르쉐를 소비하는 현금부자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평균적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코로나로 타격받은 산업과 계층이 금리 인상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건실한가. 그것도 가장 높은 단계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새롭게 실시하는 이 시점에서.

당신이 경제가 매우 견고하다고 느낀다면 코로나의 타격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금리 인상을 부르짖는 그대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 역시 축복받은 그런 운 좋은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모두가 우리처럼 축복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벼락거지의 기분을 느끼기 싫어 때이른 그리고 과도한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것은 서민들을 진짜 거지로 만들 것이다. 각각이 느끼는 금리의 온도는 무척이나 다를테니까. 부디 나의 이 모든 걱정이 기우로 끝나기를 바란다. 

출처: KOSIS



*사실 통화정책의 영향은 동일하지만 각 경제주체들이 현재 너무나 다른 위치에 있어 파급력이 다르게 보일 뿐이다, 똑같이 초콜렛을 먹어도 당뇨환자와 일반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른 것처럼

댓글 18개:

  1. 예전에 주인장님께서 지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글을 쓰셨고 마지막쯤에 되서는 "당신들이 원한다면 그래 한번 해보자" 이렇게 적으셨던게 기억에 납니다. 요 몇달간 한국은행의 지나치게 빠른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 글을 쓰셨는데.. 왠지 부동산 정책의 실기처럼 반복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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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시 부동산 정책과는 달리 현재 언제 금리를 올리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사실 그건 저보다 한국은행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을텐데 제가 우려하는 부분은 한은이 연준과 다른 길을 갈 이유를 못찾겠고 이 조직이, 특히 총재와 금통위가 편향이 지나치게 강한 집단이라는 점입니다.

      편향이 완전히 배제된 동등한 환경에선 당연히 아무것도 아닌 저보다 한국은행과 총재가 더 현명한 결정을 하겠죠. 그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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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믿고 보는 hugin!!!! 따뜻한 인본주의를 가진 21c 융합형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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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씀은 감사하지만 현재와 같은 환경에서 통화정책을 실기하면 장기성장성에 손상을 줄 수 있어 우려했던거라 부끄럽지만 따듯함과는 거리가 머네요..

      반대로 빈곤층이 아무리 상황이 안좋아도 경제여건이 마련된다면 금리를 인상해야한다고 주장했을겁니다. 과거에 그런 적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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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국에서는 타국에서는 기업부채로 잡힐 것이, 높은 자영업 비율 때문에 가계부채로 잡혀서 과대평갇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맞는 말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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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저도 경제 관련해서는 문외한이라 선생님의 블로그를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좋은 글 많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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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야말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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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현재 통화정책의 문제가 이주열 개인의 문제인지,
    아니면 한국은행 조직 자체의 내재적 결함인지 궁금하네요

    만약 후자라면 이주열 총재를 갈아치워도 문제가 해결이 어려울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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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조적인 문제지만 이주열 개인의 무능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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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매번 좋은 글 너무너무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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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정권 바뀔때 쯤 결혼하면서 생활근거지 합치고 옮기는 과정에서 현금을 축적하고 집을 나중에 마련하기로 하고 (경기도 외곽이 생활근거지라 여기까지 폭등할까? 싶었습니다. 문재앙의 무능을 너무 과소평가했었죠.) 전세 살다보니 허울좋은 현금만 조금 갖고 있는 벼락그지가 돼 버린 상황인데요. 즉 부채는 없고 현금은 조금 들고 있고 직업은 안정된 상황인데.

    요즘은 기왕 망한 거 나만 망할 수 없으니 다 같이 망해보자!는 생각이 듭니다.

    소규모 상공업자나 중소기업 직원에 비하면 비할 나위 없이 나은 상황인데도 자산 가격이 하늘 넘어 우주로 치솟으니 저도 이렇게 되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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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위로를 보냅니다.. 진심으로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다같이 망하는 상황이 되어 자산가격이 폭락하면 소득과 고용도 폭락해 그땐 망한기분이 드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부터 문제가 생겨 진짜 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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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막연히 금리가 올라가면 집값이 잡히긴 할텐데 라고 생각해본적이 있었는데 또 배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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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대부분의 공황에서 더 크게 고통받은 사람들은 서민들이었지요ㅠㅠ
    저금리 정책을 진행하면서 고자산세를 거둬야 하지않을까요 미국도 바이든 정부 정책 기조가 이쪽인거 같은데 답이 될런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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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금리를 올리면 제일 취약층부터 타격을 받는다는 것엔 동의하지만, 단지 부동산 때문에 올렸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금리가 올라간 게 당장 환율관리에는 도움이 되었고, 더불어 금리인상 결정에는 환율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금리인상은 양날의 검이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올리든 안 올리든, 장단점이 둘다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와 별개로 이렇게 양자택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린 것은 안타깝습니다. 충분히 잘할 기회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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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어떻게 합리적으로만 생각이 되겠습니까, 감정이 섞이는걸요. 마치 100을 둘명이 나눠갖는데 두번째 사람은 첫번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둘다 못가지게 파토낼수 있는 상황의 게임을 보는듯 합니다. 이성적 이라면 주는대로 1원이라도 받아먹는게 합리적인 것이지만 그 푼돈이라도 지키라는 합리적인 조언을 들으며 느끼는 분노와 굴욕의 감정을 어찌 견딜 수 있을까요. 벼락거지가 되었거나, 저소득층의 사람들이 느끼는 금리의 문제는 딱 저 이야기의 두번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어요. 금리 올리면 니들이 더힘들어 그러니 낮은 금리를 지지해 라는 조언이 벼락거지 혹은 진짜 거지가 된 사람들에게는 첫번째 사람이 자원배분의 결정권이 없는 두번째 사람에게 내리는 일방적인 선고로 느껴지는 것이죠. 그러니 차라리 다 망하자 이겁니다. 나는 이미 아무것도 없으니. 이성적으로 백번 이해하지만 감정도 너무나 강력한 인간의 본성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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