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비하하는 사람들은 이 조직을 '재경부 남대문 출장소'라고 부른다. 금리정책에 있어 독립성을 지니지 못하고 종종 재경부의 입김에 흔들리는 모습을 비꼰 말이다. 이런 탓에 한국은행은 늘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한국은행 스스로가 신뢰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4년째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제 전망을 내놓은 뒤 연중 허둥지둥 수정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디플레와 싸우며, 한국 물가가 34개월 연속으로 목표치를 하회하는 가운데 현 총재는 엉뚱하게도 인플레 위험을 강조하며 금리 인하의 타이밍을 번번히 놓쳤다. 한국은행의 형편없는 성적은 아래 차트를 보면 더욱 명확하다.
차트1: 한국은행 기준금리 밴드와 소비자 물가 상승률
초록색으로 표시된 구간은 한국은행의 물가 타겟인 3% +/-0.5%구간이고 차트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지수이다.1)보다시피 지난 15년간 실제 물가가 한국은행은 허용 밴드 안에 들어온 기간은 매우 짧다.2)
한국은행은 이와같은 잘못된 전망과 저조한 성적을 낸 이유로 '외부요인'과 '경기 불확실성'때문이라는 핑계를 댄다. 하지만 세상에 외부요인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는 없고 경기는 확실했던 적이 없다. 따라서 저 변명은 사실상 스스로 통화정책을 수행할 능력과 역량이 없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그럼 왜 한국은행이 타 중앙은행들보다 무능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차트2: 한국의 명목경제성장률(주황색)과 기준금리(흰색)
차트3: 미국의 명목경제성장률(흰색)과 기준금리(주황색)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연준과 한국은행의 정책을 비교해 보자. 첫번째 차트는 한국의 명목성장률과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그린 것이고 두번째는 미국의 성장률과 FED의 금리를 나타낸 차트이다. 확연하게 드러나다시피, 한국은행은 경제성장 등락에 비해 금리조정 폭이 훨씬 좁다. 즉 경제가 나쁠때 금리를 충분히 내리지 않고 좋을때 찔끔 올린다는 것을 알수있다. 일례로 2010년부터 현재까지의 사이클을 보면, 명목성장률이 10.4%에서 3.4%까지, 무려 6%가 하락하는동안 한국은행은 금리를 0.25%만 인하했다.3) 변화하는 경제에 대해 사실상 한국은행은 손을 놓고 있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금리정책을 변화시킨 타이밍도 틀렸다. (한국은행 자체 보고서에 따르면) 금리결정이후 그 영향이 실물시장에 나타나기까지 약 12에서 18개월정도의 시차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통화정책은 그 기간만큼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올리는 시점을 보면, 실물경제가 이미 한참 전에 움직이고 나서야 뒤늦게 따라가곤 했다. 선행적이어야 할 경제정책이 되려 후행적이니 그 성과가 좋을 리가 없다.
정리하면 한국은행의 성적이 저조한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소극적이고, 둘째 후행적인 금리결정 때문. 그리고 그 배경에는 아마추어 금융통화위원들이 있다.
우리나라 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다수결로 결정하며, 이는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하면 5명의 이력은 통화정책과 큰 연관이 없다. 하성근 위원과 문우식 위원은 경제학부 교수였지만 통화정책을 운용해보는 것은 처음이고4) 기재부 추천을 받은 정해방 위원은 금통위원이 되기 전에는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함순호 위원은 경제가 아닌 경영을 전공한 분이며 정순원 위원은 현대 계열사의 사장이었던 분으로 통화정책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분야에 계셨다. 이토록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모든 인사는 통화정책의 폭과 강도에 대해 처음 고민해 보는 사람들로, 사실상 중앙은행계의 인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인턴들에게 가장 높은 권한을 줬으니 적합한 결정이 나올 리가 없다. 금리를 얼마나 움직여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소극적이 되며, 언제 금리를 움직여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늘 뒷북을 치곤 한다. 이런 마당에 통화정책이.정상적으로 운용이 된다면 그게 더 신기할 일이다.5)
그러다 보니 통화정책은 종종 산으로 간다. 신입 금통위원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출근해서 토론에 참가하지만, 곧 금리결정이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금리를 내리자니 곧 물가가 반등해서 비난을 들을것만 같고 동결하자니 아무것도 안한다는 비난을 들을 것만 같다. 마치 초짜 주식투자자처럼 사면 빠질것 같고 팔면 오를것 같아 허둥지둥대기 시작한다.(이런 상황에 빠진 예전 총재중 한분은 "금리를 올릴수도 내릴수도 동결할 수도 있다"라고 하여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셨다) 이래저래 욕먹을 걱정만 하다 보니 문득 부아가 치민다, "미래가 어찌될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라고 항변하지만 본인도 알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경기에 대응하라고 국민이 이 조직에 세금을 퍼주고 있다는 것을. 결국 어려운 결정은 죄다 총재한테 밀어놓고 위원들은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총재는 한국은행 직원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독립성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총재가 독립성을 과시하는 방법은 상황을 불문하고 매파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 뿐이다. (그렇게 정부가 올해 3월 총재의 팔을 비틀기까지 한국은행은 세계서 가장 매파적인 중앙은행이 되었다.) 총재의 팔이 비틀리는 것을 보자 금통위원들은 그제서야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능력 부족인 그들은 뭘 할지 모르니 아무것도 못한다. 금통위 의사록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한다는 변명들만 가득하다.(그러다 뚱딴지같이 금리변동폭을 0.25%에서 0.20%로 바꾸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 위원은 언론으로부터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금통위의 결론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고, 초보 투자자들처럼 아무것도 안하면서 상황이 저절로 나아지기만을 기도한다.
이와같은 한국은행의 거듭된 실패가 수십년간 이어져 왔다는 것은, 문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한국은행의 존폐 여부를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통화정책을 결정할 중앙은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그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밀턴 프리드먼은 극단적으로 중앙은행에게 재량권을 전혀 주지 말고, 엄격하게 통화량을 매년 k% 이상 증가시키자고 주장하기도 했다.(실제로 아주 예전 한국은행의 정책목표는 금리가 아니라 통화량의 증가량이었다) 이 경우 우리는 한국은행 대신 조폐공사만 있으면 된다. 이는 너무 극단적인데다 현실에 맞지 않으니 대안으로 기준금리를 주식, 유가, 명목경제성장 등에 연동시켜 결정하는 모델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한은의 결정은 후행적인데 이 방법으로 최소한 경기와 동행으로, 아니 주식과 유가 등 시장가격을 포함한다면 약간은 선행적으로 바꿀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행을 폐지하는 말은 금통위원들의 주장과도 합치한다. 작년 하반기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는 이유로 가계부채를 들었다. 금리를 인하해 가계부채가 커지면, 훗날 금리를 인상할때 부담이 되기 때문이고, 이는 한국은행이 가계부채때문에 통화정책을 쓸 수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조직을 폐지한 뒤 소공동 부지와 해외 사무소를 매각해 가계부채를 탕감시켜주는 것은 어떨까? 자기희생적 주장을 해주신 금통위원분들에게 존경을 바친다.
얼핏 생각하면 얼토당토 않는 아이디어로 보이겠지만 한은 폐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는 총재 부총재, 그리고 5명의 재취업자들에게 중앙은행 놀이를 할 기회와 약 2200명의 한은 직원들에게 각 평균 1억원의 연봉을 제공하면서 엉망진창인 통화정책을 받아보고 있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이런 선택을 내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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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이전에 한국은행이 금리 밴드 폭을 1%에서 2%로 늘린 적이 있지만, 이는 사실상 목표치 달성이 어려워지자 스스로 목표를 바꾼 것이기 때문에 분석에서 무시했다. 중앙은행이 단기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장기목표치를 바꾸는 일은 신뢰도에 타격을 준다.
얼핏 생각하면 얼토당토 않는 아이디어로 보이겠지만 한은 폐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는 총재 부총재, 그리고 5명의 재취업자들에게 중앙은행 놀이를 할 기회와 약 2200명의 한은 직원들에게 각 평균 1억원의 연봉을 제공하면서 엉망진창인 통화정책을 받아보고 있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이런 선택을 내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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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이전에 한국은행이 금리 밴드 폭을 1%에서 2%로 늘린 적이 있지만, 이는 사실상 목표치 달성이 어려워지자 스스로 목표를 바꾼 것이기 때문에 분석에서 무시했다. 중앙은행이 단기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장기목표치를 바꾸는 일은 신뢰도에 타격을 준다.
2)한국은행은 정책목표는 3개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 밴드 내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 평가를 위해 전 기간을 타겟밴드와 비교하였다. 그 이유는 전체 평균 뿐 아니라 3년간의 경로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년동안 연만 물가 상승률이 각각 -5% +5% +9%일 때와 +2.5% +3.0% +3.5%일 때 평균은 모두 3%로 같지만 물가안정 성과는 다르다.
3)한국은행은 명목경제성장률이 꺾이기 시작하던 2010년 7월에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여 꼭 2년만인 2012년 7월부터 금리를 다시 인하한 뒤, 2015년 3월에 금리를 이전 저점인 2% 아래로 인하했다. 금리를 인상할 타이밍도 늦고 인하한 타이밍도 늦었다.
4)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는 것과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자동차 설계가 전문인 엔지니어에게 레이싱 선수를 시킬 수 없는 것처럼 이론을 연구하는 것과 실제 데이터에 맞춰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5)반면 Fed는 최소 10년, 대개는 20년 이상의 통화정책 경력을 지닌 멤버들로 구성되어있다. 옐렌이 처음 연준에 합류한 것은 1994년이며 리차드 피셔 위원은 2005년에 합류했다. 윌리암스는 커리어를 연준에서 시작해, 2002년부터 지역연준(샌프란시스코)에서 경험을 쌓았다.
잘 모르면 소극적이라는 것에 크게 동감합니다.
답글삭제한국은행에 포지션을 못잡은 사람들이 과반수가 넘는다는게 신기하네요.
지표를 따라만 가도 보통은 하는데 아무것도 안하면 보통이하로 떨어지고
객기를 부려서 지표를 역행하면 일본꼴이 나는 거군요.
선생님 지금 한국은행 총재는 나름 시장과 소통도 잘하고 명확한 포워드 가이던스를 주면서 금리를 인상하는거 같은데 전 총재와 비교했을때 짧은기간이지만 선생님의 지금 총재 평가는 어떠하신가요?
답글삭제역대 최고의 자질을 갖추신 분이라고 평가합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훌륭한 분이 오셔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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