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9.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II) - 툰베리의 저주

글을 시작하기 앞서 당부할 것이 있다. 당신이 트레이더가 아니라면 단기적 거시경제 전망을 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말라. 그러기에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자원이다. 우리 트레이더들이야 미국의 채권 금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연준의 통화정책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보유 주식들의 성과가 갈리고 따라서 금이나 리츠, 혹은 다른 파생상품으로 위험을 분산하거나 집중해야 하지만 트레이더가 아닌 투자자라면 그럴 일이 없다. 게다가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일반인들의 거시경제 분석은 대부분 바닥부터 잘못되었고 전문가들의 전망은 대부분 틀리거나 매일매일 변하며, 또 정부와 교수들은 뒷북을 치기 바쁘니 죄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작년 코로나 초기와 하반기처럼 거시경제가 개별 투자자의 수익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순간은 10년에 한두 번뿐이다. 나머지 기간 동안 투자자들이 해야 할 일은 항상 우직하게 비싼 자산을 팔고 싼 자산을 사는 것, 그것 뿐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나는 최대한 트레이더로서의 단기 전망을 삼가고 되도록 투자자로서 장기적 전망에 집중하려고 한다. 트레이딩과 투자는 아주 다르니까. 아래의 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               *               *


작년 7월에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라는 글(링크)을 올렸을 땐 미국의 CPI는 1% 아래였고 미국 10년 금리는 0.5% 수준이었으며 누구도 인플레이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세계는 정확하게 반대 지점에 와 있다.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은 연말 미 10년 국채금리가 2%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고 CPI는 5%를 넘어 2008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과연 이제 인플레이션은 통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을까.

파웰은 그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최근 약간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그는 기저 인플레이션 압력은 내년 상반기로 접어들며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의 주장에 의구심을 보이며 한때 1.75%까지 질주하던 미국의 10년 금리는 크게 주저앉으며 don't fight the fed라는 단순한 경고를 또다시 잊은 많은 트레이더들에게 패배를 선사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조금 다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직면하기 시작했다. 치솟는 원유와 천연가스가격이 경제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하고 있고 신조어를 베껴 쓰는것 말고는 별다른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국내 경제 기자들은 그린플레이션이 닥쳤다며 호들갑을 떨기 바쁘다. 과연 파웰이 틀린 것일까.

나는 연준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현재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크게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기저효과, 둘은 코로나로 인해 멈췄던 경제가 재가동을 시작하며 나타난 일시적인 공급 차질, 나머지 하나는 코로나 이후 정치사회적 압력으로 생산라인을 바꾸는 것. 이 중 기저효과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며 두 번째 측면도 얼마 안가 정상화될 것이다. 폴 크루그먼 역시 1970년대에는 임금 상승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 기대가 경제에 만성화되었지만 현재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링크)며 연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 요소는 세계 경제에 장기적으로, 그리고 불쾌한 방식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할 것이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무척이나 다르다. 정부의 역할은 무척이나 비대해졌고 세계의 각국 유권자들은 중국에 적대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코로나를 일종의 자연재해라고 여긴 탓일까, 환경에 대한 관심과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이 모든 변화가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비대해진 정부는 민간의 영역을 구축하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낮추는 수준까지 진행될 것이고(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경제학자가 아닌 사실상 일반 유권자들이니까), 국제정치적 이유로 세계 GDP의 17%를 차지하는 중국을 밸류체인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대다수 재화와 서비스의 비용이 더 이상 최적점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환경에 대한 규제는 소비자와 기업, 그리고 납세자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야기한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다.

최근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경제는 회복하니 당연히 에너지 수요가 늘어날 것이 자명한데 과거와는 달리 시추공의 숫자가 유가를 따라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일부는 작년 파산했거나 파산할 뻔한 관련업계가 자본지출을 늘리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주된 이유는 미래의 유가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하기 때문이다. 시추공을 뚫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그 수익은 향후 10년간의 유가에 달렸다. 만약 2030년부터 각국정부가 내연기관 차량들을 금지한다면 10년 뒤의 원유 수요는 낮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시추/정제업체들은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유가가 높아 정제마진이 커져도 모두가 10년 뒤면 그 마진이 박살이 날 것이라고 얘기하니까. 오히려 현재의 휘발유 값이 높아지게 되면 전기차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높아진다. 이는 이코노미스트들로 하여금 미래의 내연기관 수요를 더 낮게 예측하게 만들고 따라서 원유 수요에 대한 전망치를 낮춘다. 그러니 미래의 수요를 바라보고 투자에 나서는 시추/정체업체들은 머뭇거리게 된다. 치솟은 유가에도 불구하고.

뿐만 아니라 전기차, IOT, 블록체인, 클라우딩, 스트리밍 서비스 등 4차 산업은 막대한 전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독일과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그 늘어난 전력수요를 친환경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우리가 새로운 산업인 신에너지의 효율과 생산량을 정확하게 예측해 줄어든 화석연료 생산에 알맞게 대응할 수 있다고? 당장 올해 초 텍사스에서 벌어진 전력난을 떠올려보자, 인류는 고등생명체이긴 하지만 결코 신의 반열에 오르진 못했다.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을 생산하는 제철업계 역시 이 문제를 지적한다.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스코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에 도달하려면 약 40조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링크) 이 숫자는 다소 과장된 것이겠지만 과거 장기적 사업들의 비용은 대부분 기존의 추계치를 크게 벗어났지 않은가. 그뿐만 아니라 전기차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리튬이나 알루미늄, 그 외의 다른 원자재 생산라인을 뜯어보면 대부분 환경규제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아니 거의 모든 원자재 산업들이 영향을 받는다. 

이런 공급충격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근본적으로 70년대의 오일쇼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오일쇼크가 초단기적으로 큰 충격을 가했던데에 비해 사회/정치/규제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훨씬 점진적이고 약한 충격을 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환경규제로 인한 비용이 지나치게 상승하면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은 현재의 환경정책을 재고할 것이고 오일쇼크와는 달리 그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일 테니까. 그렇기에 이를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은 심각한 과장이고 그저 다소 불쾌하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재는 대다수의 정치인들, 대중들 심지어 투자자들도 이런 사실을 잘 언급하지 않는다. 모든 관심이 구글과 아마존 넷플릭스 그리고 전기차에 쏠려있고 또 오로지 장밋빛 미래만을 그리지만 그런 정책들이 가져올 변화가 기저에서 어떤 비용을 야기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미 그 징후들을 목도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고작 중학교만 졸업한 채 배우기보다 남을 가르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써 온 그레타 툰베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환경전문가가 아니기에 탄소배출을 얼마나 급격하게 줄여야 하는지 이야기해 줄 수 없지만 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도덕적 우월감에 가득 찬 툰베리들의 목표만큼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공급 쇼크라는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고. 당신들이 쿨하게 테슬라 전기차를 사고 텀블러를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키지 않고 다이소의 생필품 값이 두 자릿수 퍼센티지, 혹은 그 이상으로 상승할 것인데다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여행조차 줄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레타 툰베리, 그린에너지 기업, 그리고 환경운동가들 그 누구도 이런 비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시대의 투자 패러다임은 과거와 꼭 같지는 않을것이다. 규제로 인한 공급 측면 인플레이션에 각 중앙은행들이 과거와 같이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지 의문이고 또 소비자에게 비용상승을 전가할 수 있는 기업과 아닌 기업들의 장래 역시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는 단기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에 걸쳐 이뤄질 것이고 순전히 이로 인해 경제가 불황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이에 걸맞게 비싼 자산을 팔고 싼 자산을 사는 것. 언제 어디서나 늘 그랬듯이. 


사족: 툰베리의 sns에 올라온 이 한장의 사진은 그녀가 마주한 모순을 상징한다. 열차, 텀블러, 바나나 밀과 치즈 빵의 운송, 종이컵, 비닐, 플라스틱 등 단 한장의 사진에서 그녀가 사용하는 이 모든 제품들은 직간접적으로 석유와 탄소배출에 연관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을 누리면서 10년 내에 그녀가 원하는 수준으로 급격하게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안타깝지만 자살 외에는 방법이 없다. 툰베리는 커서 멜서스나 타노스가 될 것인가.

댓글 18개:

  1. 오랜만에 써주신 글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편으로는...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들.. 그리고 기상변화 등등을 보면서.. 이제 단순히 내가 평소 소비하던 재화들의 가격상승으로 인한 피해? 보단 보고싶은 깨끗한 바다를 더 이상 볼수 없다는 점, 오염된 공기 그리고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앞으론 볼수 없다는 것? 과 같은 다른 류의 피해도 불가피 할까봐 두렵네요. 이러나 저러나 세상은 점점 여태까지 인간들이 누려왔던 것들을 금전적이든 어떠한 형태이든,, 토해내게 하려는거 같은 느낌입니다 ,,

    답글삭제
    답글
    1. 동의합니다. 만약 정치인들과 언론이 말하는 탄소시계가 사실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삭제
  2. 유가는 올라가는데 그에 비례하여 rig count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는 않는 상황이네요. 이렇게 되면 여기에 쓰이는 유정관이나 송유관의 경우에도 현재의 마진을 유지하기는 어렵게 되려나요..이번에는 급등한 코일가격을 강관가격에 전가해서 마진은 좋았지만요.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현재 중국에서 천연가스를 쓸어담는 중이고, 영국정부가 현재 가스를 필요한 만큼 구하지 못해서 원성을 듣는 중인데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네요

    답글삭제
    답글
    1. 모든 정책과 규제는 비용을 발생합니다. 사람들과 정치인들은 친환경정책의 효과를 이야기할 뿐 비용에 대해선 둔감했는데 그 첫 고지서가 도달한 것 뿐이죠.

      삭제
  3. 스스로 정한 탄소일정을 뒤로 미루는 순간 친환경 주식들이 땡겨온 미래할인 값들이 망가지게됩니다.
    환경관련 일정들을 손대기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답글삭제
    답글
    1. 저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현재와 같은 정책을 시행할 경우 거의 모든 것의 가격이 오를 것이고 이는 임금발 인플레이션과 유사한 효과를 낼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친환경주식들이 시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탄소일정을 미루면 탄소시계가 더 큰 문제지 그린에너지주 주가는 부차적 문제 같습니다.

      삭제
  4. 저 역시 선생님의 툰베리에 대한 비판이나 탄소 감축이 공급 쇼크와 상당한 인플레이션이 따를 거라는 데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그럼에도 더 고강도의 환경정책 (탈원전은 당연히 포함되지 않습니다)을 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후변화가 더 심각해지면 아마 물리적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수준이 될 겁니다.

    답글삭제
    답글
    1. 감축이->감축에

      삭제
    2. 그 주장에 대해 저 역시 공감하나 제 전문분야가 아니어서 확신이 없네요. 어쩌면 피할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삭제
  5. 안녕하세요^^ 글 기다렸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싼 자산을 사야한다고 하셨는데 어떤게 싼 자산일까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답글삭제
    답글
    1. 아마 다들 자신이 가진 주식들이 싸다고 생각하겠지만 제 생각엔 전통적 가치주들 아닐까 합니다.

      삭제
  6. 개미는 죽어도 롱에서 죽어야 하고, 바텀업만이 개미가 할 수 있는 해야하는 것이죠.

    답글삭제
    답글
    1. 잡주만 아니라면 롱 물려서 죽을 일은 없습니다.

      삭제
  7. 싼 걸 사고 비싼걸 판다... 개미 입장에서는 정말 어렵네요. 결국 현금도 하나의 자산군인데 주식을 팔고 현금을 산다면 마켓타이밍을 예측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요? 인덱스 투자에 주식 현금 비중을 일정하게 기계적으로 리밸런싱하며 가져가는 것도 비싼 자산을 팔고 싼 자산을 사는 것에 해당되는 것에 해당될까요

    답글삭제
    답글
    1. 현금비중은 경기전망보다는 라이프 사이클에 따른 지출에 따라 다른것 같습니다.

      삭제
  8. 저는 탄소중립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올때부터 이럴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기서 저는 설마 그때 감수해야 될 비용에 대해서 생각을 안하지는 않았겠지, 석유를 단계적으로 대체할 에너지 계획을 다 마련해놓고 저런 소리 하는거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고 그냥 무지성으로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최근의 에너지 급등을 보면서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게 당연한건데 아무런 대책이 없나? 아니면 운송에 대한 타격이 이렇게 클 줄을 몰랐던 것일까? 저런 비용에 대한 생각이 뭔가 비범한 사람만 할 수 있는 맹점에 대한 것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자명한 생각이었을텐데
    (한전만봐도...) 이런 것들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의아함이 남네요. 아니면 서구 선진국 정부의 시스템이라는게 제가 생각하는것만큼 뛰어나지 않다거나...

    답글삭제
    답글
    1. 혹자는 그 부분이 진짜 목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환경보호라는 도덕 그 뒤에 제조단가와 진입장벽, 기술적 장벽을 확 높여 선진국 제조업의 비교우위를 확보하려는 의도라고요. 실제는 늘 그렇듯 그 중간 어디쯤에 있겠죠.

      삭제
  9. 저 아스퍼거 ㄸㄹㅇ의 멍멍이 소리로 전세계 수십 억 명의 생계와 생존이 위협받고 있으니 참 황당한 세계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