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9.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 2

불특정 다수에게 글쓴이의 주장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면 그건 글을 잘 못썼다는 반증이다. 그 글도 마찬가지다. 다시 읽어보니 그냥 지우고 새로 쓰고 싶지만 여러 답글까지 달려있으니 놔두고 다만 몇가지를 보충해서 다시 정리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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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중에 한 의사로 추정되는 분이 답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셨다. "의사의 진료는 단순한 지식의 적용이 아니라 인간의 오감을 동원하는 복잡한 작업이다. 따라서 이를 AI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오래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AI가 대체하게 될 것은 쉽고 단순한 작업들일 것이다." 이것이 가장 흔한 통념이겠지만, 난 정확하게 반대로 생각한다.

의사를 예로 들어보자. 그분의 주장대로 의사는 오감을 사용해서 진료를 한다. 밀다가 갑자기 저항이 감소하는 느낌, 촉감, 밀다가 연부조직 아래로 뼈가 만져지는 감각 등. 하지만 이런 물리적인 측정은 기계가 인간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다. 인간이 조직을 만지며 "부드럽다" "피부가 마르고 거칠다" 와 같은 감각에 의존할 때, 기계는 피부의 표면거칠기가 타 피부조직보다 x% 높다, 환자가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는 압력이 xx PSI로 평균치의 1.97SD에 해당한다, 등 수치화 된 데이터를 소숫점 수십자리까지 뽑아낼 수 있다. 간단하게 인간 의사가 맨손과 고무줄만 가지고 환자의 혈압을 측정한다고 생각해보라. 그가 평생 혈압측정만 해왔다고 해도, 그는 중국산 싸구려 혈압측정기보다 못한 성적을 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진료기록들의 DB를 구축한다면 현대의 로봇의사는 인간의사 보다 더 정확한 촉진, 청진, 시진을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 구현비용이 너무나 비싸기 때문이다. 알파고 같이 수천 억원을 투자해서 로봇의사를 하나 생산하느니, 그냥 의대를 설립하고 양질의 의사들을 육성하는게 훨씬 싼데 뭐하러 로봇의사를 만드나. 다시 말하지만 인간 뇌의 우수성은 효율성에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로봇의사의 생산비용을 낮출 것이다. 만약 1대의 로봇의사의 비용이 수백억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그는 어떤 의사를 가장 먼저 대체할까? 존스 홉킨스 대학의 최고 심장외과 의사? 아니면 저어기 강원도 산골에서 할머니들 감기약 지어주시는 김선생님. 당연히 전자 아닌가.  AI와 기술의 발달은 고숙련 고임금 노동자를 가장 먼저 대체할 것이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최고 심장외과의 K씨는 이전까지는 전세계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고난이도의 수술로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지만 그와 같은, 혹은 그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가진 로봇의사들이 십수대 등장하면 다른 의사들과 똑같은 평범한 환자의 진료를 시작해야한다. 물론 연봉도 깎일 것이고.

이와 같은 일들이 산업혁명 시대에도 존재했다. 남들보다 시력이 두배 좋은 측량기사나 근력이 두배나 강한 건설노동자들은 각자의 시장에서 어마어마한 프리미엄을 누렸지만, 광학장비의 발달과 기중기 등의 개발은 그들이 누리던 독점적 지위를 없애버렸고, 그들의 소득은 평범한 노동자들보다 그저 약간 더 나은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이제 기계가 육체노동시장의 엘리트들에게 불러온 변화를 이제 AI가 지식노동시장에 가져올 것이다. 나는 트레이더지만 AI가 등장한다고 해서 금새 나를 대체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보다 연봉이 훨씬 높은 포트폴리오 매니저나 헷지펀드 트레이더들을 먼저 대체하겠지. 금융 뿐 아니라 의사나 법률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번면 저소득층이 받을 타격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맥도날드를 예로 들어 보자. 키오스크자체는 기술적으로 이미 20세기 후반에 완성되었지만 그 후 수십년이 지나도록 온전히 도입되지 않았다. 이 기계가 보편화 된 것은 오바마와 민주당이 미국의 최저임금을 올려 인건비가 장비값보다 비싸지고 난 후 부터였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하지만 미국에서는 실업자가 늘어나기는 커녕 감소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기계보다 인간을 쓰는게 싼 일자리들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숙련 저소득 노동자일 수록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는 것이 쉽다. 키오스크의 도입으로 맥도날드에서 해고된 P군은 쉽게 도미노 피자의 배달부로 재취업할 수 있고, (키오스크를 도입한 뒤) 해고되지 않고 남은 맥도날드의 노동자들은 생산성의 향상으로 임금이 올라가 더 많은 피자를 시켜먹어 도미노 피자의 수요는 늘어났다. 이런 연쇄 과정은 산업혁명 이래 200년간 이어진 변화고 그 결과 하층 노동자들의 삶은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러다이트는 분명히 틀렸다.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신종 러다이트들을 보고 있다. 저소득 육체 노동자들은 AI와 자동화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소득 지식 노동자들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팔짱을 끼고 AI테마주를 검색하고 있지만, 기업이 비싼 AI를 도입한다면 이는 몸값 비싼 고소득자를 대체하기 위함이지, 싸구려 노동자들을 갈아치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저소득 육체 노동자들도 다수 해고되겠지만, 그들은 금새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맥도날드에서 패티를 뒤집는 데에 별 다른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듯, 그들은 또 그저 그런 저숙련 노동을 필요로하는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세상에는 기계보다 싼 일자리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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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의사분이 주장한 대로 우리는 로봇의사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사람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때 우리는 단순히 병의 진단과 처방 뿐 아니라 정신적인 위로를 함께 받는다. 본인이 큰 병에 결렸거나, 혹은 그런 가족을 둔 사람이라면 의사의 따듯한 말들-괜찮아요, 곧 나을 겁니다, 이런 인간적인 위안과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알 것이다. (로봇의사에게 이런 위안 기능까지 넣는다면 개발비용은 훨씬 더 비쌀 것이다.) 마찬가지로 AI가 나보다 투자실적이 더 낫더라도 내 상사들이 나를 AI로 대체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손실이 커도 AI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불러서 항의할 수는 없지 않은가. AI의 최종 소비자는 결국 인간이고 그는 비합리적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온전히 AI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댓글 5개:

  1. 마지막 문단이 되게 그럴싸합니다.

    지금까지는 기계화가 블루칼라 고숙련을 저숙련으로 도태시키고, 고학력 일자리는 오히려 그 가치와 수를 증가시켜왔죠. 다만 새로운 패러다임의 AI가 등장하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엔 법조인, 의사 등 전문직의 양극화를 야기할 것 같습니다. 플랫폼을 선점한 전문직은 더욱 잘나가고 나머지 전문직은 시다나 하겠죠..

    그리고 양자컴퓨터가 도입되든 무슨 컴퓨터가 도입되든 연산속도가 빨라질 뿐, 컴퓨터가 못푸는 문제는 반드시 존재함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발자 역시 완전히 대체되진 못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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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아 ㅠㅠㅠㅠㅠㅠ 전문직 조차 암울하면 빠른 요리 테크를 타고 장인의 경지에 올라야 이런 변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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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쉽게 대처되지 않을 거라 생각되던 산업이 가장 위험하다는 말씀이 공감이 되네요.

    알파고의 등장 전 바둑계의 반응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죠.

    절대 인간이 질일이 없다고 하였지만 알파고의 등장과 함께 인간은 절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요즘은 일반 PC에서 돌리는 소프트웨어로 엄청난 성능을 뽑아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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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인공지능의 무서움은 복제가능성 아닐까요,
    개발비용이 수백억이라는 말씀을 토대로 비용문제를 말씀하시는데 인공지능은 한번 훈련하면 수억번 복제해도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오히려 데이터 때문에 더욱 지혜로워집니다.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을 한번만 만드는데 성공하면 인간을 무한정 복제해낼 수 있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매번 통찰력 있는 글 써주셔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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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생각에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비용은 복제로 아낄수 있어도 그 연산속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이 너무 크지 않을까 싶어요. 제 기억이 맞다면 알파고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하드웨어 비용이 연 수백억이라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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