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3.
황제 네로의 시, 그리고 문준용의 예술
2020. 11. 29.
위에 민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리고 비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정치지도자는 누구일까. 그 물음에 우리는 아마 콧수염을 기른 독일(오스트리아)인이나 러시아(그루지아)인을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마오쩌둥이다.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흔히 그의 치세 아래서 약 3천만에서 최대 1억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그리고 천안문사태까지. 여느 아시아 나라들의 근대화가 대개 그러했듯 중국의 근현대사도 피와 총탄 그리고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광기의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말수가 적다. 와전된 말 한마디, 혹은 동료들 사이의 작은 오해가 온 마을을 도살장으로 둔갑시키곤 하던 시대였으니까. 말을 아끼고 생각을 숨기고 감정을 감추는 것, 그것이 가장 기초적인 생존법이었던 시대를 목도한 이 작가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그 시대상을 그려냈다.
작가가 밝혔듯이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자화상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그림 안에서 위에 민쥔은 필사적으로 웃는다.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온 몸을 고통으로 배배 꼬면서도, 물에 빠져 죽어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죽음을 마주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웃는다. 웃음이 광기와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 그런 것일까. 웃는 얼굴에 침도 못 뱉는다는데 설마 총알을 박아 넣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통과 절규가 숨겨지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저 심연과도 같이 어두운 입을 가리고 다시 그림을 보라. 어쩌면 그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 아닐까.
"위에 민쥔의 작품은 특유의 표정과 풍자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리시엔팅
그의 작품이 런던이나 뉴욕의 경매에 올라온 지도 벌써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다. 나는 너는, 그리고 세계는 그의 불편한 함박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외면한다. 그 저변의 시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거부한다. 이제 그의 웃음은 너무나 흔해 마치 하나의 패션이나 캐릭터상품으로 전락했고 가장 슬픈 웃음을 띤 작품은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바로 전 세기만 해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최고의 가치라고 외치던 자유진영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일당독재국가를 경제파트너로 받아들였고 전체주의와 타협했다. 자본과 물자는 끊임없이 중국의 국경을 넘나들지만 자유와 이념은 그렇지 못하다. 죽의 장막은 아직도 실존하며 새로운 도약을 이끈 구글과 아마존조차도 그를 걷어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장막의 뒤켠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비극은 서서히 잊혀지면서도, 다른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위에 민준은 그 불편한 현실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인간은 웃는 동물이라고. 그리고 인간이 짐승으로 돌변하는 시대에 그는 더더욱 웃어야 했다. 우리는 기술과 다양성이 지배하는 21세기가 이전의 시대와는 아주 다르다고 믿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슬프게도 이번 세기에도 위에 민쥔의 발작 같은 웃음은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김창열, the path
언뜻 단색화의 열풍에서 살짝 비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김창열을 빼놓고 한국의 현대미술사를 논하긴 어려우리라. 회화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 '아 그 물방울' 하고 알아차릴 정도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이미지는 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이 화가는 한때 자신의 문패에 이름 대신 물방울을 그려넣었다고 한다.
물방울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가벼이 대답했지만 젠체하는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억지로라도 의미를 찾아내곤 한다. 아마 각각의 해석은 다르겠지만 모두가 어떤 대조를 읽어내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수천 년을 이어온 상형문자와 순간적으로 사라질 물방울 사이에서, 어떤 이는 평면과 입체 사이에서, 또 누군가는 철저한 관념의 세계인 서예와 사실적으로 묘사된 이미지 사이의 선명한 대비를 읽었을 것이다. 마치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파리에 정착한, 조부에게 서예를 사사받고 현대화가로 살아온 그의 삶과도 같이.
최근 갤러리현대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다. 1929년 생인 이 노화가의 나이와 올해 작품활동이 뜸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쩌면 올해가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1972년 파리에서 한 무명의 화가가 세수를 하다 그만 캔버스에 물을 튀기고 만다. 어지럽고 좁은 아틀리에에 세면장이 따로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는 다급하게 캔버스의 물을 닦으려다 순간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본다. 김창열의 물방울이 태어난 것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의 예술세계는 마치 작품에 그려진 문자처럼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2021년 1월 5일 김창열 화백이 작고하셨다는 보도를 접했다. 아니기를 바랬건만. 그저 부디 편히 쉬시기를]
2020. 11. 12.
대신증권의 전략적 실수 두가지
먼저 나는 대신증권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내부자 정보따위와는 거리가 멀며 심지어 가까운 지인도 없다. 따라서 아래 분석은 오로지 공개된 정보에 의거한 것이고 실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이 보기인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그저 순전히 제 3자의 시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기를 바란다.
* * *
한남대교를 지나 도심으로 향하다 왼편을 돌아보면 나인원한남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도심속 타운하우스 열풍에 힘입어 자산가들의 큰 관심을 받은 이 단지는 흥미롭게도 건설사가 아닌 증권사인 대신증권이 주도하여 지은 것이다. 부동산이 반등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장기전망에 의문을 가졌던 2016년, 대신증권이 과감하게 자회사를 통해 시행사로 나서며 한남외인부지를 낙찰받아 지은 고급주거단지, 나인원 한남.
나는 이 선택이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건설에서 금융사들의 역할은 PF에 그쳤지만 대신증권은 과감하게 시행사로 나서며 신사업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금융업계 최초로. 우리나라의 증권사들이 50개가 넘는다는 사실과 그들 중 상당수가 금융지주회사, 혹은 외국계자본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증권업 내에서 대신증권의 비교우위가 명확하지 않지만,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야하는 건설업 특성상 직접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증권사의 이점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부동산이 본격적으로 반등하는 시점에서 그것도 대형평수/고급 타운하우스라니, 업종과 트렌드 두 박자를 모두 맞추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총 사업비는 1.6조원. 모회사 대신증권의 자기자본금 규모에 육박하는 자금이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회사는 시행사로의 변신에 미래를 건 것이나 다름없다. 잘 풀렸다면 아마 케이스 스터디에 실렸을 만큼 과감하면서도 훌륭한 시도였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들이 두가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실수로 이 프로젝트 전체의 수익이 날아갔고 두번째 실수로 그들의 전략적 변신이 무위로 돌아가게 되었다. 두번째 실수가 더욱 뼈아픈 것은 그것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순간에서 기업들이 실기하는 사례들은 너무나 흔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묘수가 악수로 끝나는 것이 안타까워 내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첫번째 실수-후분양 옵션
문재인정부 출범 후 주택시장의 안정이 정치적 아젠다로 떠오르자 집값을 잡기 위해 HUG는 각 서울시의 분양가를 통제했고 나인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느 재건축 단지들처럼 HUG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이 최고급 타운하우스의 분양가를 기타 지역의 일반 아파트 수준으로 깎으라고 주문했다.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영수증을 받고 고심하던 시행사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하는 대신 4년간 임대를 주고, 희망하는 세대에 한해서 분양을 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후분양 옵션이라고 부른다. 입주자는 4년간 임차인으로 거주한 뒤 만기에 시세에 따라 분양을 받을수도, 혹은 포기할 수도 있으니 전형적인 옵션이다. 햄릿의 연극과도 같은 나인원의 비극은 시행사가 이 옵션을 너무나 싼 값에 팔면서 시작된다. 옵션의 행사가격이 시장가격보다 아래인 옵션을 내가격옵션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구조는 보통 비싸게 팔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당장의 조달비용을 아끼려고 이를 너무 싼 값에 팔아치운다. 부동산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고 미래를 베팅한 회사가, 집값이 올라도 수익을 낼 수 없는 콜옵션을 전량 매도하는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드라마의 흔한 클리셰처럼 이로 인해 시행사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룹의 전망이 정확하게 맞아 집값은 당시보다 거의 두배 가까이 뛰었지만 시행사는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했다.
반면 비용은 폭증한다. 7.10부동산 대책으로 법인의 종부세가 6%의 단일세율이 적용되면서 4년간 보유세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대신증권의 2분기 재무제표를 보면 나인원한남 관련 일시적 비용이 약 938억원이 발생해 적자로 전환했는데 새 종부세법으로 인한 비용이 내년에 부과되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 2분기의 일시적 비용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대강 계산해보면 이제까지 누적된 나인원한남의 이익을 상쇄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실수-신뢰의 상실
이 모든 사태는 HUG가 시행사가 신청한 분양가를 몇번이고 반려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업이란게 늘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것 아닌가. 우리의 여느 삶이 다 그렇듯이. 그리고 승자와 패자는 그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법인의 종부세가 폭등하는 것은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고, 후분양 옵션을 너무 싸게 판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시행사는 여기에서 두번째 실수를 저지른다. 첫번째보다 더 치명적인 실수를.
바로 2021년 부과될 종부세를 피하기 위해 임차인들에게 조기인도를 통보한 것. 임차인들은 나인원한남의 명의가 2023년 11월에 양도될 것이라고 믿고 그에 맞게 자금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이를 앞당겨 2021년 3월에 양도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되면 2021년 부터 23년까지 3개 년도의 종부세가 시행사가 아닌 입주자들에게 부과된다. DS한남 측은 계약서 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또 3년치 종부세에 준하는 금액을 부담하겠다고 하지만 종부세 계산은 다주택 누진세인데 비해 시행사가 부담하겠다는 종부세는 1주택자 기준이라 커다란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링크) 애초에 40억이 넘는 집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기존에 보유한 집이 없을리 없지 않은가.
법리상 시비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지만 비즈니스적 측면에선 이는 최악의 선택이다. 대신증권은 이 사업에 단순한 LP(일종의 전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직접 자회사를 설립해서 뛰어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처음 해보는 대형사업인 만큼 다소간의 시행착오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에 따른 예상외 비용은 수업료라고 받아들였어야 했다. 하지만 시행사는 사실상 손실을 자신을 믿고 계약한 소비자들에게 떠넘기기로 결정했다. 옳건 그르건 사업가가 손님과 멱살 잡고 법정에 가는 것은 앞으로 거래를 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대신이 나인원의 경험을 발판으로 진출하려는 사업이 고가주택분양이라는 것이다. KB경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금융자산이 100억이 넘는 부자의 수는 2만 4천 명, 10억이 넘는 사람은 약 35만 4천 명이다. 세다리 건너면 모두가 안다는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대신증권의 미래 사업의 소비자들은 나인원한남의 수분양자 당사자, 친인척들, 지인들과 상당부분 겹칠 것이다. 설령 겹치지 않더라도 회사의 이렇게 대응한다면 자산가들이 어떻게 그들을 믿고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인가.
또 고객들에게도 저렇게 대응하는데 회사가 프로젝트를 진행한 실무진들을 잘 대우해줄 지 의문이다. 얼마전 작고한 이건희 회장의 수첩으로 알려진 글이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는데, 그 중 실패한 연구진들을 격려하고 되려 축하하는 방안에 대한 메모가 있었다. 대신 F&I와 DS한남의 실무진들은 전체 금융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행까지 도맡아 본 경험자들이자 최악의 상황까지 겪어본 베테랑이 되었다. 정말 이 분야에서 회사의 미래를 찾겠다면 이 경험자들을 우대해야 한다. 매번 하던 사업도 실패하기 마련인데, 처음 해본 대규모 프로젝트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그들을 홀대한다면 영민하고 눈치가 빠른 직원들이 먼저 이직할 것이고 남은 임원진들은 위험이 상존하는 새로운 사업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증권사 수수료경쟁이 격화되고 자본의 규모가 곧 경쟁력이 되는 금융업에서 탈피해 대신증권이 시행사로 변모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지른 몇몇 실수로 꽃놀이패는 똥패로 전락했다. 하지만 신산업에 진출한 회사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회사의 재무구조는 그 실패를 거뜬히 감내할 정도로 탄탄하다. 대신증권의 이 변신이 성공한다면 현재의 시행착오는 사소한 비용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착오와 손실에 매몰되어 시장과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미래를 잃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실수이다. 큰 대 믿을 신. 지금이야말로 사명의 음절이 아닌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아야할 순간이 아닐까 싶다.
2020. 11. 9.
부동산과 주식은 버블인가
S&P500+NASDAQ시총 / USD M2통화량 |
코스피+코스닥시총 / 원화 M2통화량 |
2020. 11. 7.
바이든의 승리, 그리고 여론조사기관의 패배
글
현재까지의 대선 결과(Google.com) |
개표 전 여론조사기관의 전망 (fivethirtyeight.com) |
개표 전 상원의석수 전망 (fivethirtyeight.com) |
미국 개인소득 전년대비 변동 |
2020. 9. 28.
바닷물을 들이키는 청년 창업가들
NBER(Working Paper
No. 24489), Pierre Azoulay, Benjamin Jones, J. Daniel Kim, and Javier Miranda |
2020. 9. 16.
스가 요시히데는 새로운 한일관계를 시작할 수 있을까
2020. 9. 12.
봄에는 겨울을 생각하지 마
Citi Surprise Index |
2020. 9. 6.
글을 퍼가실 때 출처를 명시해 주세요.
오딘의 양 어깨에 앉은 까마귀 Huginn과 Muninn |
2020. 8. 10.
음악이 말을 잊은 시대, 하지만 아이유.
우리의 색은 gray and blue / 엄지손가락으로 말풍선을 띄워 |
2020. 8. 1.
영화 1987, 훌륭한 영화 그리고 각색된 기억.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을 내려다보는 운동권들의 뒷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
실제 1987년 당시 시위 장면 |
13대 대선 투표결과 |
2020. 7. 27.
아름다운 성추행, 그리고 천박한 도시
누군가가 내게 서울의 명소를 딱 하나만 추천해달라고 부탁한다면 나는 광화문 광장을 들 것이다. 넓은 광장의 다른 곳 말고 그 끄트머리.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그 광장의 끝에서 방문자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때는 한국적이다, 전통적이다는 말이 촌스럽다는 말과 동의어로 여겨졌지만 2010년에 복원된 현재의 광화문을 보면 누구도 그런 말을 꺼내지 못할 것이다. 고동색 성문과 연회색 성벽과의 선명한 대조. 그리고 화려한 단청과 누각까지. 한국의 미란 국뽕이 억지로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고궁의 색도 충분히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려준 이가 바로 광화문이다.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북한산과 함께 그 문을 보고 있노라면 책과 사극에서 보았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곤 한다.
그 순간 뒤를 돌아보면 새로운 도시를 발견하게 된다. 드넓은 광장을 중심으로 양편에 들어선 현대적 건물과 고층빌딩들. 은은한 광화문의 불빛과는 대조되는 강렬한 LED와 할로겐 빛을 동공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은 마치 과거에서 현대로 단숨에 넘어오는 것과 같은 충격을 선사한다. 한국이 중세에서 단 한걸음 만에 근대를 넘어 현대로 도약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경험해보고 싶다면 해가 지고난 직후 광화문 광장의 끝에 서서 한바퀴 돌아보라. 이 광장의 끝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놓여있으며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처럼 평범한 방문객을 시간여행자로 탈바꿈시켜 준다. 여기에 서보기 전의 나는 서울을 몰랐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평생 이상을 이 도시에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당 대표는 이런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했다. 나와 서울 시민은 응당 그 말에 분노해야 한다. 도시는 시민의 얼굴을 닮아가기 마련이니 그는 나와 우리의 삶이 천박하다고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겪은 격동의 근현대사가 투영된 광화문 광장은 샹젤리제 거리나 라데팡스처럼 유명하거나 아름답지 않아도 분명히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있다. 여느 도시가 그렇듯이. 아름답지 않은 아이도 부모에겐 사랑스럽고 서투른 글도 무명의 작가에겐 소중한 것 처럼 이 도시와 우리의 삶 역시 그렇다. 그런 도시를 두고 천박하다는 낙인을 쿵 하고 찍은 이가 국민을 대표해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는 쌍욕을 던진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아마 처음부터 그에게 우리는 후레자식이자 천박한 시민이었겠지.
그의 미적 기준은 너무나 난해해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바로 몇주 전 서울시장이 여비서를 성적으로 희롱하며 학대하다 적발되자 자살했을때 여당의 여러 인사들은 그를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나. 못생긴데다 탈모까지 온 환갑넘은 늙은이가 여비서에게 속옷사진을 보내고, 아내와 별거중이라며 추근대는 모습은 아름답기는 커녕 더럽다. 노년의 로맨스가 더럽다는 것이 아니라 노년의 성추행이 더럽다는 말이니 나이든 독자들이 있다면 상처받지 마시길. 나이와 상관없이 성범죄란 본디 추잡한 것이지만 나이든 권력자의 성범죄가 더욱 혐오스러운 것은 욕정 앞에 자신의 살아온 역사와 품격 그리고 명예를 모두 내던졌기 때문이 아닐까. 종로의 한 술집에서 시인 고은이 후배 문인들 앞에서 바지 앞섶을 풀고 자위행위를 시작한 그 순간 추락한 것은 그의 명예만이 아닌 한국문학의 자긍심이었던 것처럼 서울시장이 여비서에게 팬티 사진을 보내다 자살한 순간 이 도시의 품격도 함께 목을 매달았다. 헌데 박원순의 빤스는 아름답고 서울은 천박하다니. 저들의 미적 기준에는 분명 심각한 결함이 있다.
정치권 인사들의 망언을 듣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왠지 이번엔 분노가 가시질 않아 차를 끌고 서울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한강철교를 아래를 지날때 전철이 머리 위로 굉음을 내며 지나가던 순간 나는 다큐에서 본 6.25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폭파를 담당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인민군 탱크가 서울에 진입하면 다리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아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했으나, 그 바람에 다리 위 수백 명의 시민들이 폭사하거나 한강으로 떨어져 물에 빠져죽고 말았다. 이후 서울을 버린 대통령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아지자 정부와 군은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명령을 충실히 따른 최 대령을 군법회의에 회부해 사형을 언도한다. 이후 1962년에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하여 그는 사후 무죄판결을 받고 2013년에는 국립현충원에 위패가 봉인되었다고 한다.
한강대교를 지나 몇분 더 달리면 수많은 고층빌딩으로 뒤덮인 여의도를 볼 수 있다. 이 섬은 본디 활주로로 쓰던 단단한 모래섬이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섬의 명칭은 "너나 가져라"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사실인지 모르겠다만. 고층건물 중 가장 인상 깊은 건물은 트럼프월드와 파크원이 아닐까. 트럼프월드는 당시 세계경영을 모토로 내걸었던 김우중 회장의 대우건설이 뉴욕의 트럼프월드타워를 수주한 것을 계기로 이 미국의 부동산업자에게 로열티를 주고 상표권을 따내 지은 것인데 아마 그도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물론 그 직후 대우가 와해될 줄은 더더욱 몰랐겠지만. 여의도 파크원은 2008년 당시 2013년 완공을 목표로 당시로는 한국의 최고층 빌딩이 탄생할 예정이었지만 이후 들이닥친 금융위기와 통일교와의 분쟁 등으로 거의 공사 초기단계에 멈춘 채 방치되었다 최근 법적 다툼이 마무리되고 곧 완공을 앞두고 있다. 안타깝게도 건물 외골격의 빨간 띠는 포장을 뜯지 않은 필름이 아니라 건물의 디자인이라 계속 유지된다고 한다.
거기서 더 달리면 양화대교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는 자이언티 덕에 더욱 유명해졌는데,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노래의 가사를 곱씹어보면 숨겨진 장면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택시 기사였는데 어디냐고 물어보면 항상 양화대교. 양화대교. 그런데 자이언티의 다른 노래 Click me에서 집은 강서구라고 했으니 양화대교를 건너도 한참은 더 가야 집에 도착하는데 왜 아버지는 늘 양화대교에 서 계셨을까? 삶은 힘들고 고되고. 또 아프고. 왜 택시기사는 그리고 (예전에) 가난했던 뮤지션 자이언티는 차를 마땅히 댈 곳도 없는 양화대교에 서 있었을까. 어쩌면 이 노래는 아버지가 다리 위에 서 계시다는 것이 무엇을 뜻했는지 깨달았을때 탄생한 것이 아닐까. 지나친 상상은 고소로 가는 지름길.
그 다리를 지나면 망원동과 합정에 도착한다. 망원동은 태종의 둘째아들이자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별장인 망원정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번잡한 이태원을 피해 사람들이 한남오거리에 몰리듯 힙스터들은 홍대보다도 망원동에 모이며 이곳을 망리단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마포와 아현이 있다. 과거 아현 고가 아래에는 세글자 이름으로 이루어진 방석집들이 즐비했다. 잘은 몰라도 어떤 방식이든 성을 파는 곳임은 확실했다. 그런 장소 특유의 시큼하면서도 서글픈 느낌이 물씬 나던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대한민국에서 최고 고소득자들이 선망하는 주거지 중 하나로 변모하여 과거의 그 음침한 기운은 온데간데 찾아볼 수 없다. 천대받는 창녀. 그중에서도 아현 굴레방다리는 나이든 창녀들이 모이는 곳이었다는데 억세게 20세기를 버턴 그녀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처럼 서울은 젊은이도 노인도 그리고 아버지도 딸도 열심히 먹고 마시고 즐기며 일하고 사랑하다 잠드는 일상의 터전이고 다양한 삶이 모여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다. 사람은 떠났어도 그들의 인생은 이곳에 쌓여 하나의 서사를 이루고 있다. 그 삶은 모두 하나같이 소중하다. 누구도 어미 앞에서 그 자식이 못생겼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그 누구도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그리고 그것이 모인 이 도시를 천박하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 천박한 것은 국민과 서울이 아니라 반시장적인 조치로 집값을 쳐올려 시민들에게 고통을 안기고도 아집을 꺾기 싫어 수도를 이전하겠다는 괴상한 발상을 꺼낸 70먹은 노친네의 가벼운 주둥아리이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의 당대표 답게 이 천박한 노친네는 세종시에 영혼의 몰빵을 쳤다. 내심 손혜원과 노영민이 무척이나 부러웠나보다. 이런 후레자식.
2020. 7. 13.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지난 한달간 거의 글을 올리지 못했던 것은 앞으로의 시장에 대한 전망이 정리되지 못해서, 구체적으로는 전망은 정리되었지만 투자방법을 정리하지 못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향후 장기간 세계가 저성장을 동반한 인플레이션, 어쩌면 스테그플레이션에 가까운 형태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현상이 1960년대 중반 저금리가 끝나갈 무렵의 세계경제와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연방기금금리 |
미국 CPI |
금값으로 환산한 S&P500 지수 |
2020. 7. 9.
절세미인(節稅美人) 노영민
2020. 5. 22.
미래를 예언한 영화들 3부 조커와 2020년 미 대선
2부: 주토피아와 트럼프 (링크)
앞의 두 편의 글은 영화가 대중의 어떤 욕망을 자극했고 또 그 욕망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가져왔는지를 분석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관점을 바꿔서 특정 정치성향을 가진 지지자들이 일반적인 대중, 즉 유권자들을 얼마나 잘못 파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또한 앞의 두 글은 사후 분석인데 비해 아래의 글은 올해 11월에 예정된 미국 대선에 관한 글이므로 반년 뒤 어떤 결과가 나올지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길.
히스 레저가 아닌 그 누가 감히 조커를 연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호아킨 피닉스는 그런 염려를 단번에 잠재우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했고 이 영화는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커다란 성공을 이뤘다. 주연배우의 연기는 물론이고 스토리, 음향, 영상 등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완벽했다. 단 하나, 엉성한 사회비판을 제외한다면.
미국정치를 잘 몰라도 이 영화가 트럼프와 공화당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뉴욕(고담시티)의 가장 후미지고 외진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폭력이 난무하고 쓰레기가 사방에 널린, 국가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난한 동네. 그 곳에서 돈은 교환이나 가치척도의 수단이 아닌 생존의 필수품이기에 당장 일자리를 잃으면 다음날 끼니마저 굶어야 하는 삶. 거기서 태어난 평범한 정신병자 아서 플렉이 온 도시를 뒤흔드는 비범한 빌런으로 변화한데엔 두가지 촉매가 있었다, 바로 권총과 정신상담. 아서의 동료는 그에게 호신용으로 권총 한 자루를 건네는데 결국 그는 그 총 때문에 직업을 잃어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또 고담시는 복지예산을 삭감하는데 그로 인해 아서의 정신상담이 중단되게 되어 그는 더이상 정신약을 처방받지 못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제 아닌가. 공화당 지지자들은 총기소유의 자유를 종교적 신념처럼 지지하는데, 영화에서 주인공이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쉽게 총을 손에 넣고 결국 네 건의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정신상담이 중단되는 것은 ACA, 일명 오바마케어와 연관되어 있다. 오바마케어의 존치는 지난 대선에서 뜨거웠던 논쟁거리로 반대론자들은 이 법이 사실상 정부의 재정을 악화시키고 보험사의 비용을 증가시켜 결국 국민들에게 부담만을 안겨준다는 이유로 폐지를 주장했는데 반해 민주당은 저소득층을 의료의 사각지대에 방치해서는 안된다며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항변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의료복지가 축소된 이후의 세상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보라.
공화당에 대한 비판은 토마스 웨인이 등장하며 정점에 이른다. 여러 기업체를 거느린 CEO출신에다 장신이고 공격적 언행을 일삼는 그는 누가 보아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판박이다. 특히나 여자문제가 복잡하고 무례하며 자기중심적이걸 보면 이 의혹은 확신이 된다. 그는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서에게 펀치를 날리고 그를 모욕하여 그를 조커로 만드는 결정적 원인들 중 하나를 제공한다. 이처럼 정치적 편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토드 필립스 감독은 그가 결국 조커의 추종자중 하나에게 살해되는 것을 보여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은유같은 저주를 퍼붓는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조커라는 괴물이 탄생하게 된 것은 그를 방치한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이며 바로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은 미국을 고담시로 만들 것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은 조커가 아닌 트럼프다) 문제는 영화를 만든 이들의 인식이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데에 있다. 만약 아서 플렉이 실존한다면 그는 2016년 대선에서 누구를 찍었을까? 통계에 따르면 그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다. 인종, 성별, 소득수준, 최종학력 그리고 연령에 따른 트럼프 지지율을 보면(링크) 아서 플렉은 이 다섯가지 카테고리 중 연령을 제외한 다른 모든 카테고리에서 트럼프의 지지층과 일치한다. 그런 마당에 영화를 보며 아서에게 공감한 미국의 빈민층들이 과연 감독의 정치적 메시지에 공감했을까? 이 샴페인 좌파 감독이 조금이나마 현실감각이 있었더라면 아서 플렉은 이민자 가정 출신의 박사학위를 가진 고학력 20대 흑인 여성이었을텐데.
교육수준이 낮을 수록 트럼프에 대한 지지도가 높다 |
비벌리힐즈나 웨스트우드 혹은 베니스 해안가에 사는 서부의 리버럴들은 미국의 평균적인 유권자들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 지난 대선에서 힐리러가 패배한 것은 미국의 유권자들이 멍청하거나 인종차별주의자여서가 아니라 그녀와 그녀가 이끄는 민주당에 아무런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당시 힐러리의 대선공약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라. 아마 그녀 자신도 자신의 공약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주요 쟁점사안에 대해 입장을 여러번 바꿨다) 힐러리를 비롯한 민주당은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고 따라서 자신들이 무엇을 보여줄 지도 몰랐다. 반면 트럼프의 공약이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지 않았나,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간에. 그는 세계화가 진행되며 미국의 자본가들이 생산기지의 이전과 해외투자로 더욱 부자가 될 동안 미국의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고 새로운 아서 플렉으로 전락하는 것을 꿰뚫어보았고 따라서 리쇼어링 정책을 들고나왔다. (사업으로 인생의 부를 일군 사람이 리쇼어링 정책이 경제적 관점에서 효율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모를거라 생각하지 마라.) 그리고 영화 조커는 트럼프와는 달리 진보주의자들이 아직도 그 무지 속에 갖혀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아서 플랙의 망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리버럴들의 망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서에게 예쁜 여자친구가 존재하지 않았듯, 좌파들이 생각하는 공화당이 야기한 카오스 또한 없었다. 지피지기는 물론이고 자기가 왜 졌는지 아직도 모르는 민주당은 다음 대선에서도 또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맨하탄의 남단에서 빨간색 IRT Seventh Avenue Line를 타면 월스트리트를 지나 섬의 북쪽 끝에 도달하고, 거기에서 버스를 타면 조커가 춤추던 계단이 있는 브롱크스까지 갈 수 있다. 호아킨 피닉스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을 연기하는 대가로 약 45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았는데 이는 미국의 상위 약 0.05%에 해당하는 소득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며 단순한 히어로 시리즈가 아니라 사회고발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겠지만, 그가 기획한 이야기와 실제 현실은 아서 플렉과 호아킨 피닉스의 수입 만큼이나 달랐다. 테슬라 S모델과 함께 배우고 가진 자들의 힙해보이는 패션아이템으로 전락한 리버럴리즘과 민주당이 과연 올해 대선에서 다시금 미국 대중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2020. 5. 21.
미래를 예언한 영화들 2부 주토피아와 트럼프
주토피아의 주인공 주디, 그리고 격분한 트럼프 |
귀여운 주디의 외모와 재치넘치는 위트 덕에 놓치고 지나가기 쉽지만 사실 이 애니메이션은 사회 구성원들의 생물학적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 애초에 주디에게 경찰다운 일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그녀가 생물학적으로 토끼이기 때문이었고 닉이 자신의 꿈을 버린것도 영악한 여우였기 때문이다. 하울링을 따라 하는 늑대들도, 느리게 일을 처리하는 나무늘보도, 시기심 많은 양도, 시장인 사자도 모든 등장인물들의 본성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생물학이고 그들의 DNA이다. 애니메이션은 주디의 입을 빌려 그 점을 명확하게 지적한다.(링크) 포식자들에게는 그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포악한 사냥의 본성이 존재하고 그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독특하게도 주토피아에서는 핍박받고 탄압당하는 쪽이 강한 포식자다. 음모를 꾸민 벨웨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초식동물들)는 늘 무시당하지, 그래, 육식동물들은 힘이 세. 하지만 포식자와 피식자의 비율은 1:10이야, 사회 구성원의 90%가 공공의 적에 대항해 뭉친다고 생각해봐.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어"(링크) 자연상태에서는 피식자가 아무리 많아도 포식자를 누를 수 없다. 라이온킹에서 미어캣 열마리가 사자 심바를 학대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민주주의 아래서는 다르다. 다수결에 의해 통제되는 주토피아에서 약하고 남성성의 반대편에 서 있는 양이 유전적으로 더 강인한 야수들을 핍박하고 통제하는 것, 그것이 이 서사의 핵심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교묘하게도 우리로 하여금 맹수가 보잘것 없는 피식자들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이 애니메이션이 미국에서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끈 데에는 귀여운 주디의 외모 뿐 아니라 약자가 강자를 억압하는 아이러니한 서사가 미국의 주류 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의 미국인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에겐 안되는 것도 많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같은 소득수준에서도 인종에 따라 교육열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함부로 지적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어린 침팬치 수컷과 암컷들조차 성에 따라 좋아하는 장난감이 다르지만 미국의 PC들은 그와 같은 생각은 관습적 성역할을 고착화시키는 잘못된 관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fireman, policeman과 같은 단어는 fire fighter, police officer로 대체되었고, 남미에서 건너오는 불법이민자를 막자는 지극히 합법적인 주장을 펼치려면 무식한 텍사스 레드넥이라는 비난을 견뎌야만 했으며, 중국에서 건너온 코로나를 중국코로나라고 부르는 것은 인종차별적이라는 비난을 듣게 되었다. 어휴 피곤해.
미국의 주류 백인들은 급격하게 늘어나는 이민자들의 숫자로 인해 계속해서 자신들의 권리가 줄어드는 데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말과 행동을 과도하게 구속하는 PC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극장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봤을때 무엇을 느꼈을까? 주토피아는 현대 인간사회와 너무나도 유사하고 유전적 차이가 존재하는 다양한 동물들이 혼재된 도시는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과 닮았다. 영화 초반부터 여러 동물들이 등장하는 추격 신을 떠올려보라. 파키스탄인이 우버를 몰고, 유태인 사업가가 승객으로 탑승하며 그 옆을 한 아시안 비즈니스맨이 바쁘게 뛰어가고 또 베네수엘라에서 온 대학생이 파트타임으로 커피를 내리는 뉴욕의 일상과 닮아있지 않은가. 이성을 갖춘 동물들의 사회, 종에 따라 각자 다른 본성을 지닌 동물들, 그리고 그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약점이 되는 곳. 미국 어린이들에게 주토피아는 판타지 만화였지만, 어른들에게는 현실을 모방한 우화였다. 이에 열광한 미국인들이 불과 몇개월 뒤의 대선에서 입으로는 힐러리를 찍겠다고 응답하면서도 실제론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실(링크)과 무관하지 않다.
감독 바이런 하워드는 한 인터뷰에서 이 애니메이션이 기존의 동물 의인화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는 영화의 대표 OST에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난다. 도입부에서 주디는 "In Zootopia, anyone can be anything!"이라고 외치지만 결국 영화는 "Try everything"으로 마무리된다. 당신의 배경과 상관없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같은 외침으로 출발한 영화가 그저 시도나 해보라는 무책임한 말로 마무리된다는, 그런 비관적인 전개를 발랄하게 포장한 것 뿐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결국 생물학적 본성을 극복한 것은 끽해야 주인공인 주디와 닉 뿐이고, 주목받지 못하는 기타 모든 조연들은 그들의 DNA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가. 심지어 주디의 부모조차도. 참고로 주토피아의 줄거리는 원래 더 어두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로 바꾸라는 경영진들의 주문때문에 현재처럼 밝고 쾌활한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하니 내 짐작이 근거없는 억측만은 아닐 것이다.
본디 더 어두웠던 주토피아의 스토리 라인 |
2020. 5. 18.
요코 이야기와 위안부, 그리고 정의연
2020. 5. 12.
이준석, 실패한 갬블러
요새 가장 핫한 빵.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