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3.

황제 네로의 시, 그리고 문준용의 예술

율리우스-클라우디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코스. 우리에게 이런 길고 과장된 이름보다 폭군 네로라는 악명이 더 친숙한 그는 스스로를 빼어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네로 황제는 그리스 문화에 흠뻑 빠진 나머지 무대를 온통 그리스 식으로 꾸민 뒤 직접 무대에 올라 시를 읊고 노래와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리스를 너무나 동경한 나머지 속주였던 이 지역에 대한 세금까지 감면해 주었다. 

그렇게 그리스에 강박적으로 심취했던 그가 올림픽에 끼어들지 않을 리 없다. 그리스의 211회 올림픽은 서기 65년에 개최될 예정이었는데, 이 대회에 참가자로 출전하기로 마음먹은 네로는 정무를 제쳐두고 피나는 각종 예술 공연과 스포츠를 연습했지만 기대한 만큼 기량을 향상시킬 수 없자 황제의 이름으로 명령을 내려 올림픽을 2년 미뤄 67년에 개최하도록 했다. 그 올림픽에 출전한 황제는 음악 연주를 포함한 7개의 종목에서 우승했지만, 한 역사학자는 네로의 연주와 발성, 그리고 그가 작성한 시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야유를 보내거나 공연장을 떠나면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관객들은 억지로 환호를 보냈다고 기록했다. 체육 경기에서 네로의 상대 선수는 황제를 이길 시 사형당할 것이란 협박을 받았고 심지어 전차 경기에서 네로는 전차에서 굴러떨어져 중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진은 유권해석을 통해 황제에게 월계관을 수여하기도 했다.

한 번의 그리스 순회공연에서 총 1808개의 상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그는 반란군에 의해 쫓겨 자살하는 순간에도 "훌륭한 예술가인 내가 죽는구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자신의 정치적 능력에 절망하는 가운데서도 스스로의 예술성만큼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그, 네로는 진심으로 자신을 황제이기 이전에 예술가였다고 믿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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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는 과연 훌륭한 예술가였을까. 동시대를 살아간 타키투스는 그의 재능이 형편없었다고 기록했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폭군 네로의 악행이 원로원과 이후 기독교인들에 의해 과장되었다는 지적과 그가 그리스의 문화예술을 후원한 공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그의 노래와 시를 접해볼 수 없는 우리가 네로의 예술가적 기질을 평가할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네로의 공연을 지켜본 동시대의 평론가와 관객들이라고 황제를 평가할 수 있었을까. 더욱이 붉은 망토를 두르고 황금색 투구를 쓴 로마 근위대가 자신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허리춤에 찬 검을 매만지고 있는데. 네로는 자신을 황제보다 예술가라고 믿었지만 그의 예술성을 지탱하던 것은 바로 군대와 황제의 권력이었다. 

지금 우리는 바로 이 아이러니를 마주하고 있다.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는 파라다이스 재단과 서울시에서 각각 3천만 원과 14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아 코로나가 확산되는 가운데에서도 전시회를 열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는 아버지의 권력과는 무관하게 자신은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예술인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누가 이를 증명할 수 있겠는가. 그는 항상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들, 제1야당 대표의 아들, 국회의원의 아들, 그리고 당선인의 아들이었는데. 매우 폐쇄적이면서도 취약한 문화예술계에서 이처럼 강력한 배경을 지닌 작가를 비평할 배짱을 가진 평론가나 화랑은 존재하기 어렵다. 있다고 해도 곧 사라질 것이다. 마치 네로의 노래에 얼굴을 찡그리고 야유를 보내다 끌려나간 이름 없는 한 로마의 시민처럼. 예술가로서의 네로가 단 한번도 황제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비평받아본 적이 없듯 작가 문준용 역시 한번도 아버지의 후광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작품 활동이나 비평을 업으로 삼지 않는 나는 그저 관객에 불과하니 문준용의 예술성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그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미술학도들과 작가들은 내 주변에도 수도 없이 많지만 누구나 문 씨와 같은 기회를 얻은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나는 좋은 예술, 혹은 나쁜 예술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지 잘 팔리는 작가와 안 팔리는 작가가 있을 뿐이지. 그런데 고작 만 38살의 신진작가가 판화를 250장이나 찍어내면서 장당 $600에 파는 것은 적잖이 당황스럽다. 국내외에서 비슷한 시세를 가진 다른 작가들의 이력이 어떤지 한번 찾아보기를 권한다. 시장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의 첫 작품을 본 것은 아직도 꽃가루가 흩날리던 2017년 5월의 봄날이었다. 새로운 계절과 함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며 우리의 마음은 공정과 정의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있었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한 발을 내디딜 거라 믿었다. 사실 그랬지. 다만 그 한 걸음의 방향이 반대였을 뿐. 삼청동을 거닐던 나는 예술에서 정치를 읽어내는 것을 보며 나 자신이 편협한 것은 아닌지 부끄러워했지만(링크) 그 순간 예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와 맞닿아있었다. 


나는 율리우스 포프처럼 기술에 의존하는 예술도 훌륭한 예술이라고 믿고, 예전에 내가 박원순의 서울시가 설치한 슈즈트리를 옹호한 것(링크) 처럼 정치적 배경과 작품은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나의 불편함이 편협한 마음에서 나온 것일까 두려워 아끼는 몇몇 평론가들의 문준용 작가에 대한 평을 찾아보았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기억하는 나의 인상도 아래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20. 11. 29.

위에 민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리고 비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정치지도자는 누구일까. 그 물음에 우리는 아마 콧수염을 기른 독일(오스트리아)인이나 러시아(그루지아)인을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마오쩌둥이다.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흔히 그의 치세 아래서 약 3천만에서 최대 1억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그리고 천안문사태까지. 여느 아시아 나라들의 근대화가 대개 그러했듯 중국의 근현대사도 피와 총탄 그리고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광기의 시대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말수가 적다. 와전된 말 한마디, 혹은 동료들 사이의 작은 오해가 온 마을을 도살장으로 둔갑시키곤 하던 시대였으니까. 말을 아끼고 생각을 숨기고 감정을 감추는 것, 그것이 가장 기초적인 생존법이었던 시대를 목도한 이 작가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그 시대상을 그려냈다. 

작가가 밝혔듯이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자화상에 가깝다. 그리고 그의 그림 안에서 위에 민쥔은 필사적으로 웃는다.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온 몸을 고통으로 배배 꼬면서도, 물에 빠져 죽어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죽음을 마주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웃는다. 웃음이 광기와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 그런 것일까. 웃는 얼굴에 침도 못 뱉는다는데 설마 총알을 박아 넣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통과 절규가 숨겨지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저 심연과도 같이 어두운 입을 가리고 다시 그림을 보라. 어쩌면 그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 아닐까.


"위에 민쥔의 작품은 특유의 표정과 풍자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리시엔팅


그의 작품이 런던이나 뉴욕의 경매에 올라온 지도 벌써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다. 나는 너는, 그리고 세계는 그의 불편한 함박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외면한다. 그 저변의 시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거부한다. 이제 그의 웃음은 너무나 흔해 마치 하나의 패션이나 캐릭터상품으로 전락했고 가장 슬픈 웃음을 띤 작품은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바로 전 세기만 해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최고의 가치라고 외치던 자유진영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일당독재국가를 경제파트너로 받아들였고 전체주의와 타협했다. 자본과 물자는 끊임없이 중국의 국경을 넘나들지만 자유와 이념은 그렇지 못하다. 죽의 장막은 아직도 실존하며 새로운 도약을 이끈 구글과 아마존조차도 그를 걷어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장막의 뒤켠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비극은 서서히 잊혀지면서도, 다른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위에 민준은 그 불편한 현실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인간은 웃는 동물이라고. 그리고 인간이 짐승으로 돌변하는 시대에 그는 더더욱 웃어야 했다. 우리는 기술과 다양성이 지배하는 21세기가 이전의 시대와는 아주 다르다고 믿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슬프게도 이번 세기에도 위에 민쥔의 발작 같은 웃음은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김창열, the path

 

언뜻 단색화의 열풍에서 살짝 비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김창열을 빼놓고 한국의 현대미술사를 논하긴 어려우리라. 회화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 '아 그 물방울' 하고 알아차릴 정도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이미지는 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이 화가는 한때 자신의 문패에 이름 대신 물방울을 그려넣었다고 한다.

물방울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가벼이 대답했지만 젠체하는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억지로라도 의미를 찾아내곤 한다. 아마 각각의 해석은 다르겠지만 모두가 어떤 대조를 읽어내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수천 년을 이어온 상형문자와 순간적으로 사라질 물방울 사이에서, 어떤 이는 평면과 입체 사이에서, 또 누군가는 철저한 관념의 세계인 서예와 사실적으로 묘사된 이미지 사이의 선명한 대비를 읽었을 것이다. 마치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파리에 정착한, 조부에게 서예를 사사받고 현대화가로 살아온 그의 삶과도 같이.

최근 갤러리현대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렸다. 1929년 생인 이 노화가의 나이와 올해 작품활동이 뜸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쩌면 올해가 그의 마지막 전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1972년 파리에서 한 무명의 화가가 세수를 하다 그만 캔버스에 물을 튀기고 만다. 어지럽고 좁은 아틀리에에 세면장이 따로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는 다급하게 캔버스의 물을 닦으려다 순간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본다. 김창열의 물방울이 태어난 것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의 예술세계는 마치 작품에 그려진 문자처럼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2021년 1월 5일 김창열 화백이 작고하셨다는 보도를 접했다. 아니기를 바랬건만. 그저 부디 편히 쉬시기를]

2020. 11. 12.

대신증권의 전략적 실수 두가지

먼저 나는 대신증권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내부자 정보따위와는 거리가 멀며 심지어 가까운 지인도 없다. 따라서 아래 분석은 오로지 공개된 정보에 의거한 것이고 실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이 보기인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그저 순전히 제 3자의 시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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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교를 지나 도심으로 향하다 왼편을 돌아보면 나인원한남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도심속 타운하우스 열풍에 힘입어 자산가들의 큰 관심을 받은 이 단지는 흥미롭게도 건설사가 아닌 증권사인 대신증권이 주도하여 지은 것이다. 부동산이 반등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장기전망에 의문을 가졌던 2016년, 대신증권이 과감하게 자회사를 통해 시행사로 나서며 한남외인부지를 낙찰받아 지은 고급주거단지, 나인원 한남. 

나는 이 선택이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건설에서 금융사들의 역할은 PF에 그쳤지만 대신증권은 과감하게 시행사로 나서며 신사업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금융업계 최초로. 우리나라의 증권사들이 50개가 넘는다는 사실과 그들 중 상당수가 금융지주회사, 혹은 외국계자본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증권업 내에서 대신증권의 비교우위가 명확하지 않지만,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야하는 건설업 특성상 직접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증권사의 이점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부동산이 본격적으로 반등하는 시점에서 그것도 대형평수/고급 타운하우스라니, 업종과 트렌드 두 박자를 모두 맞추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총 사업비는 1.6조원. 모회사 대신증권의 자기자본금 규모에 육박하는 자금이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회사는 시행사로의 변신에 미래를 건 것이나 다름없다. 잘 풀렸다면 아마 케이스 스터디에 실렸을 만큼 과감하면서도 훌륭한 시도였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들이 두가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실수로 이 프로젝트 전체의 수익이 날아갔고 두번째 실수로 그들의 전략적 변신이 무위로 돌아가게 되었다. 두번째 실수가 더욱 뼈아픈 것은 그것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순간에서 기업들이 실기하는 사례들은 너무나 흔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묘수가 악수로 끝나는 것이 안타까워 내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첫번째 실수-후분양 옵션

문재인정부 출범 후 주택시장의 안정이 정치적 아젠다로 떠오르자 집값을 잡기 위해 HUG는 각 서울시의 분양가를 통제했고 나인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느 재건축 단지들처럼 HUG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이 최고급 타운하우스의 분양가를 기타 지역의 일반 아파트 수준으로 깎으라고 주문했다.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영수증을 받고 고심하던 시행사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하는 대신 4년간 임대를 주고, 희망하는 세대에 한해서 분양을 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후분양 옵션이라고 부른다. 입주자는 4년간 임차인으로 거주한 뒤 만기에 시세에 따라 분양을 받을수도, 혹은 포기할 수도 있으니 전형적인 옵션이다. 햄릿의 연극과도 같은 나인원의 비극은 시행사가 이 옵션을 너무나 싼 값에 팔면서 시작된다. 옵션의 행사가격이 시장가격보다 아래인 옵션을 내가격옵션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구조는 보통 비싸게 팔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당장의 조달비용을 아끼려고 이를 너무 싼 값에 팔아치운다. 부동산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고 미래를 베팅한 회사가, 집값이 올라도 수익을 낼 수 없는 콜옵션을 전량 매도하는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드라마의 흔한 클리셰처럼 이로 인해 시행사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룹의 전망이 정확하게 맞아 집값은 당시보다 거의 두배 가까이 뛰었지만 시행사는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했다.

반면 비용은 폭증한다. 7.10부동산 대책으로 법인의 종부세가 6%의 단일세율이 적용되면서 4년간 보유세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대신증권의 2분기 재무제표를 보면 나인원한남 관련 일시적 비용이 약 938억원이 발생해 적자로 전환했는데 새 종부세법으로 인한 비용이 내년에 부과되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 2분기의 일시적 비용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대강 계산해보면 이제까지 누적된 나인원한남의 이익을 상쇄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실수-신뢰의 상실  

이 모든 사태는 HUG가 시행사가 신청한 분양가를 몇번이고 반려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업이란게 늘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것 아닌가. 우리의 여느 삶이 다 그렇듯이. 그리고 승자와 패자는 그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법인의 종부세가 폭등하는 것은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고, 후분양 옵션을 너무 싸게 판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시행사는 여기에서 두번째 실수를 저지른다. 첫번째보다 더 치명적인 실수를.

바로 2021년 부과될 종부세를 피하기 위해 임차인들에게 조기인도를 통보한 것. 임차인들은 나인원한남의 명의가 2023년 11월에 양도될 것이라고 믿고 그에 맞게 자금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이를 앞당겨 2021년 3월에 양도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되면 2021년 부터 23년까지 3개 년도의 종부세가 시행사가 아닌 입주자들에게 부과된다. DS한남 측은 계약서 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또 3년치 종부세에 준하는 금액을 부담하겠다고 하지만 종부세 계산은 다주택 누진세인데 비해 시행사가 부담하겠다는 종부세는 1주택자 기준이라 커다란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링크) 애초에 40억이 넘는 집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기존에 보유한 집이 없을리 없지 않은가.

법리상 시비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지만 비즈니스적 측면에선 이는 최악의 선택이다. 대신증권은 이 사업에 단순한 LP(일종의 전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직접 자회사를 설립해서 뛰어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처음 해보는 대형사업인 만큼 다소간의 시행착오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에 따른 예상외 비용은 수업료라고 받아들였어야 했다. 하지만 시행사는 사실상 손실을 자신을 믿고 계약한 소비자들에게 떠넘기기로 결정했다. 옳건 그르건 사업가가 손님과 멱살 잡고 법정에 가는 것은 앞으로 거래를 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대신이 나인원의 경험을 발판으로 진출하려는 사업이 고가주택분양이라는 것이다. KB경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금융자산이 100억이 넘는 부자의 수는 2만 4천 명, 10억이 넘는 사람은 약 35만 4천 명이다. 세다리 건너면 모두가 안다는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대신증권의 미래 사업의 소비자들은 나인원한남의 수분양자 당사자, 친인척들, 지인들과 상당부분 겹칠 것이다. 설령 겹치지 않더라도 회사의 이렇게 대응한다면 자산가들이 어떻게 그들을 믿고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인가.

또 고객들에게도 저렇게 대응하는데 회사가 프로젝트를 진행한 실무진들을 잘 대우해줄 지 의문이다. 얼마전 작고한 이건희 회장의 수첩으로 알려진 글이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는데, 그 중 실패한 연구진들을 격려하고 되려 축하하는 방안에 대한 메모가 있었다. 대신 F&I와 DS한남의 실무진들은 전체 금융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행까지 도맡아 본 경험자들이자 최악의 상황까지 겪어본 베테랑이 되었다. 정말 이 분야에서 회사의 미래를 찾겠다면 이 경험자들을 우대해야 한다. 매번 하던 사업도 실패하기 마련인데, 처음 해본 대규모 프로젝트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그들을 홀대한다면 영민하고 눈치가 빠른 직원들이 먼저 이직할 것이고 남은 임원진들은 위험이 상존하는 새로운 사업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증권사 수수료경쟁이 격화되고 자본의 규모가 곧 경쟁력이 되는 금융업에서 탈피해 대신증권이 시행사로 변모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지른 몇몇 실수로 꽃놀이패는 똥패로 전락했다. 하지만 신산업에 진출한 회사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회사의 재무구조는 그 실패를 거뜬히 감내할 정도로 탄탄하다. 대신증권의 이 변신이 성공한다면 현재의 시행착오는 사소한 비용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착오와 손실에 매몰되어 시장과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미래를 잃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실수이다. 큰 대 믿을 신. 지금이야말로 사명의 음절이 아닌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아야할 순간이 아닐까 싶다.



2020. 11. 9.

부동산과 주식은 버블인가

이전에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훌륭한 트레이더들이 막상 개인적 투자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 주된 이유는 트레이딩과 투자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시장은 마치 노련한 바람둥이처럼 당신을 위해 매일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으며, 아무리 훈련된 트레이더라도 그 앞에선 연애경험이 없는 여자처럼 쉬이 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각종 펀드와 금융기관의 트레이더들이 매달 수백, 수천만 원을 들여 정보인프라를 구축해놓고 예기치 못한 시장의 사건에 대응하는 마당에, 증권사들의 공짜플랫폼에 의지하는 개인투자자들이 그들을 앞서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트레이더들의 개인계좌도 마찬가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 지진으로 파괴되었다는 속보가 뜨는데 회사포지션을 보호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 개인계좌를 먼저 챙기는 트레이더를 짜르지 않을 회사는 없으니까.

따라서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단기적으로 끝나고 잊혀질 이벤트를 과감하게 넘기고 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사건들에 집중해서 투자해야 한다. 아마 그것이 트레이딩과 투자의 가장 큰 차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트레이더지만 이 블로그에서만큼은 철저히 투자의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지난 1월 말부터 3월까지 경제와 시장에 대한 글을 집중적으로 올렸던 가장 큰 이유는 그때가 트레이딩은 물론이고 투자에 있어 정말 중요한 분기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지나고 4월 5일 비관론자들을 비웃을 차례라는 글(링크)을* 올린 이래 시장에 대해 업로드하지 않은 것은 그때로부터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 코로나는 다시 이전 고점을 넘어섰고, 미국 대선과 지난한 브렉시트 이벤트가 있었으며 한국과 중국의 경제 지표가 크게 개선되었지만 시간의 문제지 언젠간 다 겪을 것 아니었나.

부동산 시장은 더욱 그렇다. 그동안 임대차 3법, 6.17부동산 대책, 임대주택 논란 등 수많은 이슈가 있었지만 청와대가 김수현(링크)을 다시 기용한 이래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 않나. 이제 시장과 대중 뿐 아니라 정부도 공급부족을 사실상 자인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 분석할 것도 전망을 바꿀 일도 없었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수치는 단기간에 급변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을 분석하는 일은 반기에 한번도 많다. 쓸데없이 데이터들을 자주 다운받고 정리하는건 무의미한 시간낭비일 뿐이다. 

주식도 부동산도 내 전망은 달라질 것이 없다. 전제조건들이 변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한가지 크게 달라진 것이 있는데, 바로 가격이다. 가격은 모든 거시/미시환경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아무리 전도유망한 기업도 가격이 비싸면 고꾸라질 것이고, 당장 망할 회사도 과도하게 싸면 오르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실물경제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과 주식의 가격이 계속 상승하니 비관론자들의 버블론이 다시 고개를 든다. 하지만 봄의 뒤에는 여름이 오는 법이지 다시 겨울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두개의 차트를 보자.
서울시 주택가격 / 가처분 소득
서울시의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에 오독하기 쉽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이촌향도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서울의 위성도시는 계속해서 주변지 인구를 흡수하고 있고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주택이 모자르기 때문이다. 서울시 생활권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그러니 서울시의 주택가격을 전국의 가처분 소득으로 나눈 것이 잠재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지표로 보면 현재의 주택가격은 소득기준대비 아직도 저렴하다. 단지 과거 몇년동안 너무 낮았던 터라 지금이 비싸보이는 것 뿐이다. 
이는 서울시가 역사상 최악의 공급난을 겪었던 80년대 중후반의 수치를 제외하고 보아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혹자는 참여정부 말기의 부동산 고점기와 비교하여 현재의 부동산 시장이 과도하다고 평가하지만 여러 지표로 볼 때 아직 부동산시장은 버블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인들의 가처분소득이 크게 감소하거나 소득이 정체된 상태에서 주택가격지수가 20-30% 더 상승해야 2008년의 고점에 도달하게 된다. 문제는 고유가와 싸우느라 전세계가 고금리를 유지하던 과거에 비해 디플레와 싸우는 오늘날, 부동산 가격이 고작 2008년의 고점에서 멈출 수 있을까? 
S&P500+NASDAQ시총 / USD M2통화량
주식도 마찬가지다. 위 차트는 미국의 주식시장 시총을 전체 USD통화량으로 나눈 것인데 2000년대 초반의 주식버블에 비하면 아직 한참 아래에 있다. 물론 지난 5년 평균치(노란색 선)보다 높긴 하지만 미국의 통화량 공급이 20% 넘게 풀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주식시장의이 버블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긴 어렵다.  
코스피+코스닥시총 / 원화 M2통화량
한국의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아니 되려 더 저평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을 따라 한국의 주식시장도 버블에 취해있었던 1980년대에 비하면 현재의 주식시장의 시총은 통화량 대비 현저하게 싸다. 
마찬가지로 비정상적인 기간을 빼고 최근 20년간의 수치로만 봐도 버블을 논하기엔 이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난 부동산도 주식시장도 버블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가격만 놓고 비교한다면 롤렉스와 샤넬 백의 가격이야말로 버블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모든 자산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렇게 보정해 보면 10년 중 자산을 팔아야 할 해는 고작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자산을 사지 말아야 할 기간은 2할도 되지 않으며 나머지 기간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싼 자산을 사고 비싼 자산을 파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대개 금융위기나 전쟁과 같은 혹독한 겨울을 보낸 직후에는 대다수의 자산이 저평가되기 마련이다. 물론 그런 시기에도 비싼 주식이 어디 없겠냐만은. 그리고 유명 헷지펀드 매너지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이 요새 들어 입버릇처럼 하는 말처럼 과거의 위너가 다음 시대의 루저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한국 주식시장에 더 많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했던 나도 20세기 이래 주식시장시장에서 완벽한 V자 반등은 없었고 항상 W자를 그렸으니 두번째 딥이 있을것이라 믿었다가 계획보다 높은 지점에서 진입했다. 마크 트웨인의 두가지 명언을 떠올리자,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 "10월은 주식투자하기 가장 위험한 달 가운데 하나다.나머지 위험한 달들은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2월이다.


2020. 11. 7.

바이든의 승리, 그리고 여론조사기관의 패배

글 

현재까지의 대선 결과(Google.com)

글을 쓰는 이 시간까지 확정되지 않았지만 미국 대선은 바이든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얼핏 보면 2016년과는 달리 이변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내막을 들춰 보면 그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대다수 여론조사기관의 예측과는 달리 바이든은 플로리다, 조지아, 펜실바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위스콘신, 미시건과 같은 격전지에서 패배했거나(FL, NC) 1%미만의 격차밖에 내지 못했다(WI, PA, GA, AZ). 대다수 여론조사기관은 9:1의 확률로 바이든이 거뜬히 이길 것이라고 전망했으니 답은 맞췄지만 그 풀이가 엉망진창으로 틀린 셈이다.

개표 전 여론조사기관의 전망 (fivethirtyeight.com)

여론조사기관들이 또다시 표심을 잘못 헤아렸다는 사실은 상하원 선거 결과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민주당이 상원까지 가져갈 것으로 전망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공화당이 상원의 과반을 지키는데 성공했고 심지어 하원에서 약 5석의 의석을 더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10만 명을 돌파하고 선거 전까지 백신도, 재정합의안도 나오지 않았던, 트럼프와 공화당에게 최악이었던 시나리오를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개표 전 상원의석수 전망 (fivethirtyeight.com)


현재까지 개표결과 (google.com)

정치의 세계에서는 99% 득표로 당선되든 51%로 되든 승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론조사는 그렇게 간단한 2진법의 문제가 아니다. 오차율만 보면 미국의 pollster들은 2016년에 이어 이번에도 크게 틀렸다.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통계조사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왜 자꾸 이런 이변이 발생할까.

나는 그 저변에 트럼프 지지자들에 대한 몰이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글(링크)에서 지적했던 것 처럼 민주당과 리버럴들은 아직도 못배운 백인들이나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2016년과는 달리 최종학력의 가중치를 보정해 저학력층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수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또다시 대중의 속마음을 읽는데 실패한 그들은 입가에 불편한 미소를 띄우곤 통계모델과 샘플을 뒤적거리며 "상당수의 우편투표가 도착하지 않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비율이 낮다", 와 같은 변명을 늘어놓지만 과연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일까.

답은 간단하다. 샤이 트럼프가 다 못배운 백인은 아니라는 것. 일례로 이번 선거에서 텍사스의 히스패닉들과 플로리다의 남미계 커뮤니티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는 비율이 높았다. 또 지난 선거에서 미시건이나 위스콘신의 고학력/중산층/백인이 주류인 카운티에서도 트럼프의 득표율이 예상보다 높지 않았나. 이처럼 샤이 트럼프들은 이민자들의 범죄에 겁먹은 젊은 백인 여성, 비 시민권자들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고학력 아시안, 가톨릭 전통을 존중해 낙태를 거부하는 남미계 이민자들 사이에도 흔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솔직할 수 없다. 주류언론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멍청한 백인이라는 낙인을 찍었으니까. 애초에 현직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들에게 shy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그 편향성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               *               *

1. 선거결과의 윤곽이 드러나자 주식은 무섭게 반등하기 시작했다. 미국 S&P지수는 금요일 오후까지 약 4.2% 상승했고 특히 나스닥은 8.5%나 올라 뜨겁게 화답했다. 예상과는 달리 공화당이 상원을 차지하게 되어 강력한 재정지출의 가능성이 줄어들었지만, 나는 이것이 장기적으로 주식에 가장 긍정적인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결코 시장친화적이지 않다. 각종 규제강화와 세금인상이 어느 정부에서 이루어졌나 보라. 나 개인적으로는 불평등의 완화라는 정치적 아젠다에 동의하지만 영혼이 없는 내 포트폴리오와 자산은 그런 정치따윈 알지 못한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하지만 그만큼 규제와 세금을 싫어하기 마련인지라, 예측 가능한 바이든과 규제와 증세를 막아낼 상원의 조합은 향후 몇년간 증시에 가장 좋은 조합이 아닐까 한다.

2. 정치의 변화는 시장의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집권정당이 바뀌는 해엔 더더욱. 1993년 클린턴은 경제정책 앞에 동맹을 두던 기존의 미국의 국제전략을 전면 수정했고, 2009년 오바마의 시대는 각종 금융규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새 시대의 루저는 구 시대의 위너들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주식시장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할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바로 성장성이 낮게 평가된 주식을 사고 과도하게 평가된 주식을 파는 것. 

3.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했지만 여전히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카운트다운(링크)은 진행되고 있다. 누가 의회를 잡느냐, 신임 재무부장관의 재정건전성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질문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민주주의 시스템 아래에서는. 코로나로 경제가 모두 멈춰서고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미국인들의 소득은 정부보조금 덕에 오히려 늘었다. 따라서 단순한 불황이나 심지어 리만같은 금융공황사태가 닥쳐도 미국인들은, 그리고 한국인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은 소득의 감소나 실업 구조조정 등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큰 정부는 경제의 효율성과 동력을 앗아가지만 그 페해를 기억하는 유권자는 드물고 이해하는 이는 더더욱 드물다. 부채 사이클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인데, 그들이야 말로 가장 큰 빚쟁이들이기에 이 사이클은 지속될 것이다. 최대한 현금에 대해 숏포지션을 내는 것, 그것이 현 시대의 생존법이라 생각한다.

미국 개인소득 전년대비 변동

2020. 9. 28.

바닷물을 들이키는 청년 창업가들

리스크를 지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행동경제학의 여러 실험과 분석에 따르면 인간은 안정성에 과도한 프리미엄을 부여하기 때문에 적절한 리스크를 지는 것은 오히려 높은 보상을 돌려주곤 한다. 가장 안정적인 예금의 세후 수익률이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을 하회하는 것을 보라. 리스크를 지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하지만 그 리스크 역시 현명하게 져야 한다. 재산을 거의 탕진한 도박꾼이 마지막 한 패에 모든 것을 걸다 오링나는 것을 두고 우리는 그가 현명하게 베팅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박영화의 흔한 클리셰처럼 우리 청년들은 창업이라는 잘못된 도박판으로 몰려나고 있다.

NBER(Working Paper No. 24489),
Pierre Azoulay, Benjamin Jones, J. Daniel Kim, and Javier Miranda

다음은 전미경제조사회 2018년 7월호 보고서에서 발췌한 도표로 성공한 창업가의 연령분포를 보여준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20대들의 창업신화들과는 달리 창업에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은 나이는 바로 35-45세로 보인다. 빈도만으로 본다면 대학생의 창업이 성공할 확률은 환갑을 넘긴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조사결과와 데이터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데이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전문성의 부재에 있다. 얼마 전 인스타에서 핫한 모 비스트로를 방문했을 때 두 가지에 놀랐는데 하나는 쉐프와 오너의 나이가 너무나 어리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음식의 퀄리티가 참으로 처참했다는 것이다. 요식업의 기본조차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음식점을 개업하고 거기서 실패를 맛보는 일은 이미 TV 예능 골목식당의 단골 소재가 된지 오래다.

이는 비단 요식업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매년 여름이면 청계천 변에는 도깨비야시장이 열리는데 시의 후원을 받은 젊은 소상공인들이 가판을 열고 자신들이 만든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다. 하지만 살 것이 없다. 젊은 창업가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청계천고가도로가 철거되기 전 노점상들보다도 더 조악한 품질과 형편없는 디자인 때문에 도저히 지갑을 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내 생각에 그들의 대부분은 필히 파산할 것이고 운이 좋다면 차라리 일찍 폐업해서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형편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이 회사나 식당이나 공방에 들어가 기본기를 배울 나이에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미숙함은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와 정부가 그들로 하여금 창업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멘토들이 나서서 너는 지금 창업을 할 때가 아니라, 기본기를 익히고 기술을 배울 때다. 창업은 아이디어 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너의 비즈니스 모델은 경쟁력이 없다, 와 같은 쓰린 조언을 해주지 않는다. 되려 이상한 창업지원센터를 만들어 청년들을 실패의 일방통행길로 유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졸자들의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청년들의 창업을 장려한다. 그렇게 폐업의 비극은 나라에 의해 대량생산된다. 이는 비단 문재인 뿐 아니라 박근혜 정권부터 이어진 문제로 정부는 최저임금을 취준생들의 생산성보다 더 빠르게 높여 그들의 취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링크), 그로 인해 20대 실업률이 폭증하자 창업을 유도해 청년실업률을 낮게 유지시켜왔다. 하지만 숙련공들과 대기업 자본들이 경쟁하는 시장에, 비숙련인데다 소자본, 아니 무자본인 청년들이 뛰어드는 것은 그냥 가미가제 작전이나 다름없다.


날씨가 좋아 서울숲을 걷다 모 기업에서 후원하는 청년창업공간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시세에 맞는 월세를 감당하고 살아남을 가게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당장 이 곳의 가게들과 시장경제 맞게 월세를 내는 인근 겔러리아포레의 가게들과 비교해 보라. 이 청년들이 유동인구가 이렇게나 많은 곳에 가게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기업이 후원 덕이다. 차라리 그 자리를 일반 자영업자들에게 개방했다면 가장 많은 수익을 낼 가게들이 입점했을 것이고 또 그렇게 훌륭한 사업모델을 가진 가게들은 알바생을 고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알바생들이 직원이 되고, 그들이 경력과 자본 그리고 인맥을 모아 새로운 장소에 분점을 내고 창업하는것 그것이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선순환 아니였나. 기업이 수십만 청년창업가 중 몇명을 뽑아 마치 부자엄마나 아빠행세를 하며 월세를 대신 내주며 자비를 베푸는 것은 낭만이나 후원이 아닌 사회적 낭비고, 또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숙련공 노조들의 정치행위로 인한 최저임금의 비정상적 폭등, 그리고 코로나 사태. 한낱 개인이 넘을 수 없는 두 벽의 사이에 낀 청년들은 멧돌 사이에 갈리는 콩 처럼 부숴지고 있다. 함께 정권교체를 이뤄낸 40대 운동권들은 20대를 외면하고 배신했으며 그들의 젊은 날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식어가고 있다.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마치 갈증에 못이겨 바닷물을 들이키는 조난자들처럼 대한민국의 20대는 창업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성공하는 것은 환갑을 넘긴 노인이 실리콘밸리에 입성하는 것 만큼 힘들다. 그들도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리라. 단지 대안이 없을 뿐이지. 오늘의 20대가 한국 중산층의 황금기였던 8090년대의 대중문화에 빠져드는 것이 내겐 어딘가 모르게 서글퍼 보인다.

2020. 9. 16.

스가 요시히데는 새로운 한일관계를 시작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악명 높던 아베 신조 총리의 임기가 끝나고 그 후임자로 스가 요시히데가 일본의 행정부를 이끌게 되었다. 스가 총리의 일본은 한국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이런 희망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새로운 총리의 취임은 양국에게 손해인 현재의 긴장관계를 해소할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한일관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근본적 원인을 바꾸지는 못한다. 사실 일본을 오른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며 우리의 외교정책은 이런 역학구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마추어들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틀린 한일관계를 아베의 개인적 성향에서 찾아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용의자로 분류되었던 극우계지만 동시에 아베는 친한파였던 아베 신타로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재일교포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여 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고 그 친밀한 관계 때문에 선조가 한국계라는 루머까지 있었다. 그 영향을 받아 그가 처음 일본의 총리로 취임했던 2006년, 아베는 첫 방문지로 한국을 꼽았고 그 해 10월의 방문에서 현직 일본총리로는 최초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또한 그의 아내, 아키에는 유명한 한류 팬으로 휴대전화 배경화면에 배용준의 사진을 저장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한국어 과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으니 일본내 극우파에서 아베를 도래인(한국인)의 후손이라며 비아냥대는 것도 당연하다. 현재의 모습과 참으로 놀라운 대조를 이루지 않나. 이런 사례가 고작 아베 뿐일까. 무역분쟁을 취재하던 한국 기자들이 일본의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을 지적하고, 한국 협상단에게 의도적으로 무례를 범한 고노 다로 외무대신(현 방위대신)역시 친한파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 고노 요헤이는 (공식적으로는)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바로 그 고노 담화의 주인공으로,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그는 약 20개월간 조사를 거쳐 일본군이 위안부 동원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처럼 No Japan운동의 주적 두명은 모두 한때 친한파, 적어도 지한파였던 이들이다. 하지만 지난 십여년의 세월은 그들을 반한파로 돌려놓고 말았다. 거기에 과연 우리의 역할이 전혀 없었을까. 국제 외교사를 살펴보면 적국 온건파의 입지를 악화시키는 것은 바로 아군의 강경파였다. 북한의 유화적 대외정책을 주도하던 외교라인의 숙청을 불러온 것은 대북문제에서 강경일변도의 정책을 펴던 조지 부시와 공화당이었고 2차 세계대전에서도 영국과 협상을 준비하던 히틀러로 하여금 3천여대의 루프트바페를 동원해 런던을 폭격하게 만든 것은 주전파 윈스턴 처칠 아니었나. 강경일변도로 나서는 상대에게 유화적 태도를 고집하는 것은 간첩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자. 2000년 이전엔 문제가 되지 않던 욱일기는 갑자기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동급이 되었으며, 해방직후 반민특위가 지정한 반민족행위자는 688명에 불과했지만 그로부터 60여년 뒤인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는 모두 4,339명을 친일파로 분류했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일본이 점점 극우적 민족주의에 가까워져간다고 비난했지만 정작 우리가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과거 두편의 글을 통해 아베는 극우로 흐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나는 경제적 이유(링크), 또 하나는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에(링크). 그리고 이러한 역학관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후임 스가 총리는 아베노믹스를 계승할 것을 천명했고 한국과 중국의 잠재적 위협은 5년 전에 비해 더욱 커졌다. 몇몇 언론들은 스가 총리의 내각 인사 중 지한파/친한파를 언급하며 전향적인 관계를 점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희망은 실망만을 남길 것이다. 개인적 배경만 두고 본다면 아베와 고노보다 더 한국에 우호적이었어야 할 일본 정치가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모두 부친의 노선을 버리고 강강파로 전향했다. 이처럼 선대의 정치적 유산을 중요시하는 일본 정계에서 지한파/친한파의 아들들이 전후 최악의 한일관계를 이끌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양국의 역학관계는 불과 한 세대만에 친한파를 반한파로 만들 정도로 극심한 마찰을 빚어내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일본을 오판하고 있다. 그렇기에 합리적인 전략을 세우고 있지도 못하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 간의 외교는 지도자 개인의 취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힘의 논리와 실리를 좆는 게임이론에 따라 이루어진다. 명분이나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국가정책을 정하는 것, 그런 병신외교를 펴는 것은 대한민국 뿐이다. 그런 병신외교가 대한제국에 어떤 운명을 안겨주었는지 잊어선 안된다.

2020. 9. 12.

봄에는 겨울을 생각하지 마

골라인으로 질주하는 메시처럼 모두를 제치고 내달리던 나스닥이 고꾸라지기 시작하자 몇몇 사람들은 지난 3월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더블딥을 예상하는 암울한 전망에서부터 다시 한번 빅 숏을 외치는 사람들까지 시장에는 다시금 부정적 전망들이 우세하다. 하지만 한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봄에는 겨울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 

경제도 그리고 시장도, 사계절과 같이 순환의 사이클을 겪는다. 하지만 수많은 사건사고와 헤드라인이 점멸하는 매일의 시장에 파묻혀있다 보면 경기가 순환한다는 대명제를 종종 망각하곤 한다.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 서서 발 아래 넘실대는 물결을 쳐다보다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을 잊는것 처럼.

하지만 봄 뒤에 겨울이 오지 않듯 해빙을 맞이한 금융시장에 또 한번의 빙하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3월처럼은. 우한폐렴으로 인한 경제충격이 컸던 이유는 2008년 9월 이래 약 11년 5개월 간 쌓였던 낙관론이 공포로 뒤바뀐 충격 때문이었고 그 와중에 각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바뀐 경제상황에 제때 발맞추지 못하며 적절한 정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이 블로그에 지난 2월, 그리고 3월에 올린 글들을 보라. 불과 몇주 후 닥칠 공포와 불황의 쓰나미에 정부와 한국은행이 얼마나 안이하게 대처했는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투자자들은 혹시나 찾아올 지 모르는 새로운 충격에 대비하고 있으며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충분히,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거와 같은 수준의 패닉을 기대하기 어렵다. 

Citi Surprise Index
Citi Surprise Index

위 지표는 실제 경제데이터들이 예상치를 상회했는지, 혹은 하회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0보다 크면 기대이상, 작으면 기대이하의 지표가 나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수치가 집계 이래 최저점과 최고점을 오가는 데에 고작 73일 밖에 걸리지 않았고 아직도 이전 최고점보다 한참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이코노미스트들의 전망이 너무 암울해 실제 지표들이 예상치를 상회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그들의 재빠른 변심을 탓해서는 안된다. 이들도 자가격리중인 일개 시민들에 불과하니까.

우한폐렴사태가 처음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 지난 1월 말에 올렸던 글(링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가 낙관적일 때 비관적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비관론과 낙관론이 적절히 섞여있으니 크게 걱정할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일 작은 파도를 지켜보아야하는 트레이더들은 10%의 움직임에 일희일비 하겠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그저 늘 해오던 일들-비싼 주식을 팔고 싼 주식을 사는 것-을 충실하게 반복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겨울에서 막 벗어난 시기에 가장 낮은 리스크는 역설적으로 겨울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포탄이 같은 자리에 또 떨어질 위험을 과대계상하기 마련이라 머지 않아 시장은 하방위험을 과도하게 반영할 것이다. 하지만 잠시 찾아온 꽃샘추위에 다시 빙하기를 걱정될 때 우리는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봄에는 겨울을 생각하지마.   

2020. 9. 6.

글을 퍼가실 때 출처를 명시해 주세요.

이 블로그에는 가급적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아주 어릴때부터 저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엔 걷는 순간에도 무엇을 읽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문자에 대한 강박이 심해 어린시절 상담을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길을 건너다 몇번 차에 치일뻔 했거든요. 또 열살 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대들어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시험에서 5개 이하로 틀리면 무슨무슨 전집을 사주시기로 했는데 하필 제가 딱 5개를 틀렸더라고요. 어차피 한번 읽고 버릴 책을 뭐하러 사느냐며 다그치는 부모님께 저는 서재의 국어사전을 가져와 5개 이하라는 말엔 5개도 해당된다고 박박 우겨 그 전집을 받아냈습니다. 그래도 두번은 읽었던 것 같네요. 다른 집 아이들은 책을 안 읽는다고 혼나는데 왜 나는 책을 읽는다고 혼을 내느냐, 뭐 그런 거로 부모님과 다투곤 했습니다. 아마 제가 좀 다른 환경에 있었거나 그 시절에도 유튜브같은게 있었더라면 좀 다른 강박증이 생겼겠지만 여하튼 제 삶은 그랬습니다. 이쯤이면 이게 취미인지 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제 환경이 좀 안정되고 친구들이 늘어나며 사춘기가 되자 글자에 대한 강박도 좀 덜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며 동시에 글을 쓰는 것에 취미가 붙더군요.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지나며 제 진로나 전공과는 무관하게 글을 쓰는 것이 제 가장 큰 무기이자 기쁨이었습니다. 물론 학교 밖에서 글로 상을 타 본 적도 없고 졸업 후에도 글로 밥벌이를 하지 못했을 만큼 졸필이고 어디 내놓기엔 너무나 부끄럽지만 저는 아직까지도 그 시절의 제 글을 사랑합니다. 누군가에겐 젊은 날의 빛바랜 사진 하나가 소중한 것 처럼 제겐 그 시절의 글이 가장 소중한 기억입니다.

지금 저는 직업상, 그리고 여러 다른 이유로 제 이름으로 글을 낼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차피 다 제가 선택한 것이니 거기에 미련을 가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글은 제게 소중한, 자식같은 존재입니다. 이제 저는 자본주의에 한껏 찌들어 "내 전재산을 다 줘도 내 글들과는 바꿀 수 없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마치 어미가 아이를 낳듯 고통으로 써내렸노라고 장담할 열정조차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 글은 다 하나같이 소중한 자식입니다. 아무리 못생긴 아이도 그 어미에게만은 소중한 것처럼요. 그리고 이 블로그는 그렇게 태어난 수만 편의 글 중 일부가 세상의 빛을 보는 공간입니다. 제 가장 가까운 직장 동료들도, 제 친구들도, 심지어 제 가족들도 제가 이런 글을 쓰는건 알지 못합니다.

오딘의 양 어깨에 앉은 까마귀 Huginn과 Muninn

Huginn과 Muninn은 북유럽 신화의 주신인 오딘의 양 어깨에 앉은 까마귀로 각각 생각과 기억을 의미합니다. 이 두 까마귀는 하룻동안 미스가르드를 돌며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오딘에게 보고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상에 대한 제 생각과 기억을 정리하고자 그 까마귀들의 이름을 본따 블로그 주소를 지엇더니 구글의 AI님께서 제 이름을 HHMM라고 달아주시더군요. 발음하기도 힘들고 무슨 신음소리같은 이 괴상한 필명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몇번 제 글들이 카톡방과 여러 인터넷 게시판을 떠도는 것을 보았고 심지어 그 중 한두편은 친구들이 저한데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거기에 대고 이거 잘썼네, 라며 낯뜨거운 짓도 해봤습니다. 막상 해보니 그런 염치없는 짓이 생각보다 재밌더군요. 그 재미로 조국과 추미애는 사나 봅니다. 원래 제 내면에서 쓰였다 지워지고 잊혀힐, 그렇게 제가 죽으면 같이 순장되었을 글들이 세상의 빛을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것은 기쁘고, 감사할 일이지만 자식을 자식이라 하지 못하는 제 처지가 떠올라 허탈해지곤 합니다. 물론 널리 퍼지라고 쓴 글이니 올리신 분들께도 감사하며 또 제 주장과 믿음에 동의해주시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 비난할 마음도 없고 또 당연히 법적 대응 따위는 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글의 출처를 명기해 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고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사적인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뭐 제 글이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하긴 우리네 인생이 다 그런 법입니다. 나에겐 소중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남에겐 별 흥미조차 없는 그런 세상. 네글자로 줄여서 안물안궁. 하지만 또 그런 삭막한 세상이기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얻고 공감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애초에 이 블로그는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이 혼자 쓰던 곳이기에 앞으로도 독재자처럼 제 맘대로 글을 써내릴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웹 상의 오지나 변방과도 같은 이곳까지 찾아와 교감해주시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에도 그런 행운이 이어지기시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HHMM 드림.

2020. 8. 10.

음악이 말을 잊은 시대, 하지만 아이유.

가수들의 음반판매량보다 유튜브 조회수가 이슈가 되는 오늘의 음악시장에서 가사는 예전의 지위를 이어갈 수 없었다. 초단위로 교차편집된 현란한 영상에 홀린 인간의 뇌가 노래가사의 의미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니까. 그리하여 작사가들은 가사에서 언어를 빼내어 음절만을 남겼고 대중들은 그런 움직임을 열렬히 반겼다. 바야흐로 힙하지 않으면 멸종당하는 시대 아닌가. 그 무의미한 단어들은 가사의 일부를 넘어 이윽고 노래 그 자체가 된다.  뚜루뚜루. 짐살라빔. 으르렁드르렁 등, 그렇게 우리 시대의 음악은 벙어리 마냥 말을 잃은지 오래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고리타분하게 가사에 의미를 담아내는 이들이 있다. 그중 의외의 인물로 아이유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이따금 좋은 노래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비로소 가사가 들리기 시작하며 일순간 음악의 장르가 유치뽕짝으로 돌변하기도 하는데 그녀의 가사는 재기발랄하면서도 진솔한 한 편의 수필처럼 자연스럽게 읽힌다.

우리의 색은 gray and blue / 엄지손가락으로 말풍선을 띄워

우리의 네모 칸은 bloom 
엄지손가락으로 장미꽃을 피워 
향기에 취할 것 같아 우 
오직 둘만의 비밀의 정원

누군가를 사랑한 기억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라면 누구나 이 작은 기계를 쥐고 두근거렸던 적이 있으리라.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낸 뒤 그 작은 액정화면 건너에 그녀가 비치기라도 하는 양, LCD화면을 말 없이 응시하는 그 순간을 그녀는 이 네줄의 가사로 발랄하게 담아낸다. 엄지손가락으로 피워 내는 파란 장미, 그보다 더 적절한 은유가 있을까. 

말과 글에 민감한 탓인지 나는 가사가 없는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까지 클래식 연주회에 가기라도 하면 가면 핀잔과 눈총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대놓고 졸곤 한다. 악기도 결국 물건일진대, 사람의 목소리가 곁들지 않으면 도통 그 진동음과 마찰음에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마치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빠진 시시한 애프터파티에 초대받고, 클라이막스 없는 지루한 영화를 보는 것 처럼. 의미의 부재를 화려한 색과 안무로 채운 시대의 한 가운데서도, 서사를 지켜내는 모든 고리타분한 뮤지션들에게 작은 응원을 보낸다. 



2020. 8. 1.

영화 1987, 훌륭한 영화 그리고 각색된 기억.

정치적 사건을 다룬 영화는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보다 민감한 정치적 주제를 상업영화의 소재로 쓰는 감독이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논란에 불을 지펴 흥행을 기대하는 마음이 없진 않을 테니까. 촛불시위 이후 등장한 남산의 부장들, 택시운전수, 자전차왕 엄복동, 말모이, 대장 김창수, 블랙머니, 한국부도의 날 등 다수의 영화들이 착실하게 그런 공식을 따랐다. 

나는 대개 보수든 진보든 그런 프로파간다적 욕망을 내포한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소재가 가진 힘에 의존하느라 영화 자체는 엉망이 된 수많은 진보영화들을 보라. 지루하리만큼 악역에만 특화된, 얼굴 찌그러진 배우를 적당히 골라 나까무라 다카시 혹은 허 대령 아니면 박 사장같은 뻔한 악역을 맡기고 고증은 개나 줘버린 상상의 권선징악 최루신파극에 애국을 적당히 버무린 그저 그런영화들과 영화 1987은 매우 다르다.  

영화는 처음부터 1987년의 주인공들의 시각에서부터 시작한다. 억압하는 자와 저항하는 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 특히나 영화 외적인 측면에서 내가 1987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6월 항쟁의 반대편에 서 있던 이들의 시각에서도 사건을 주시하기 때문이다. 박처장(김윤석)은 한병용 교도관(유해진)을 고문하면서 그에게 자신의 빛바랜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묻는다. 너는 지옥이 뭔지 아느냐고. 그는 이북에서 나름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그의 부친은 굶어죽어가던 아이를 양자로 들여 가족으로 키울 뿐 아니라 학교도 보내고 결혼도 시켜줄 정도로 인덕도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박처장이 형님으로 모시던 그 아이는 공산주의 혁명이 시작되자 완장을 차고 집안으로 난입해 자신의 양아버지이자 박처장의 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이고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죽인다. 마루 아래서 그 장면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기억을 떠올린 박처장은 이윽고 독기와 눈물이 동시에 어린 눈으로 한 교도관을 보며 묻는다. "너래 지옥이 뭔지 알간? 내 가족이 죽어나가는데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하고 소리도 못지르는 거, 그것이 지옥이야." (링크 나는 김윤석의 모든 연기 중 이 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그런 박처장의 과거사를 제 3자의 시각으로 다루지 않는다. 비록 그는 정권의 편에 서서 고문하는 악당이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 울려 퍼지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의 비명소리와 총소리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메아리친다. 그 장면에서 이제까지 박처장을 악마로, 개새끼로 또 권력의 주구로 욕하던 우리들은 갑자기 그의 눈으로 시대를 다시금 바라보았을 것이다. 남한 사람들 여덟명 중 하나가 죽거나 다치거나 실종된 내전이 끝난지 고작 30여년이 흘렀던 1987년, 당시엔 북한 공작원이 남측에 침투해 군인이나 민간인을 살해하던 일이 한해 걸러 한해 일어나던 시기였다. 박처장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만약 한병용 교도관이, 또 박종철이나 이한열 열사가 박처장과 같은 경험을 했더라면 이전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1980년 광주에 있던 이들이 평생 그 기억에서 자유로을 수 없는 것 처럼 1950년 휴전선의 잘못된 쪽에 서 있던 이들도 그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하나의 지옥이 또 하나의 지옥을 만드는 것, 그것이 1987년 6월 항쟁의 본질이라는 것이 바로 감독이 전달하고 싶었던 바 아니었을까.

영화가 개봉되던 2017년을 떠올려보자.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들어선 새로운 정부엔 전대협 임원들을 비롯한 운동권들이 포진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80%에 육박했다. 적폐라는 이름이 붙으면 누구든 대중의 죽창을 피할 수 없던 시기에 개봉한 영화가, 또 정의당을 지원하고 진보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감독이 가해자였던 박처장의 시각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려고 한 시도에 나는 박수를 보낸다. 진정한 이해의 첫걸음은 상대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상대를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평론가 이동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못된 시스템을 논해야 하는 사회비판적 영화에서조차 수혜자 개인의 사악함과 피해자 개인의 불행함에만 초점을 두면서 영화를 가족영화나 액션영화처럼 만들고, 그 결과 관객들은 악한 캐릭터들을 보며 도덕적 우월감 속에서 마음껏 분노를 터뜨리다가 손쉽게 카타르시스를 얻고서 극장을 나설 뿐이다." 이제까지 쏟아진 대다수의 좌파 민족영화들이 모두 그랬다. 일본은 왜 조선을 침략했을까? 나쁜놈이니까. 군사정권은 왜 독재를 했나? 나쁜놈이니까. 그들의 세계관은 마치 5살짜리 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처럼 1차원적이다. 거기에는 착한놈, 혹은 나쁜놈 만이 있을 뿐이고 착한 놈은 뭘 해도 착한놈이다. 비서를 추행해도, 돈을 횡령해도 심지어 독재를 해도. 

물론 지나친 미화가 없다고 할 순 없다. 무엇보다 강동원이 왜 별 비중도 없는 까메오로 나오나 했더니 결국 그가 알고보니 이한열 열사였다니, 그 손발 오그라드는 빌드업은 이 영화의 옥의 티지만 1987년에서 2017년으로 이어지던 당시의 열기를 생각한다면 과연 과도했던 것이 영화뿐이었을까. 성과도 없는 대통령과 전문성이라곤 하나도 없던 내각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압도적 지지를 몰아주었던 국민들은, 오늘날 이 영화가 끝난 곳과 정확하게 같은 자리에서 반독재를 외치고 있다. 보수라는 냄새만 나도 이빨을 드러내고 문재인과 여당의 인사라면 덮어놓고 환호하던 국민들에 비하면 박처장의 눈에서 1987년을 읽어낸 감독의 시도가 훨씬 더 성숙한 것 아닐까. 


*               *               *


1987년 6월 항쟁은 4.19와 함께 대한민국 민주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사건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평범한 여대생이었던 김태리가 거리로 뛰쳐나와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내달리다 버스 위로 올라가 민중을 바라보는 장면은 영화에서는 너무나 감동적이지만 현실에서는 대단히 불편하다. 왜냐하면 이 장면이야말로 운동권이 1987년 민주화운동을 독점하는 방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을 내려다보는 운동권들의 뒷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당시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것은 적폐 서울대생이고 죽은 것도 기득권인 서울대와 연대 학생이었으며 보도지침을 어기고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은 보수찌라시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였다, 그리고 고 박종철 군의 시신에 물고문 흔적이 있었다고 증언한 것은 적폐인 의사였으며 이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저항하고 끝까지 대든 것은 바로 검새였다. 결정적으로 전두환의 호헌조치에 반대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주도한 것은 평범한 넥타이부대, 택시기사, 노점상 그런 서울의 평범한 장삼이사들이지 않았나. 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그들을 조연으로 격하한다. 이와 같은 시선은 현재 여당과 그 지지자들의 시각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들에게 1987년의 민주화 항쟁은 오로지 운동권 대학생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것은 반미 민족주의정신에 기인한 덕분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시민이 민간인 네명을 감금 폭행한 사건이나 운동권 학생들이 미국 문화원에 불을 저질러 장덕술 군이 사망하는 사건 등은 조용히 묻혔다. (공교롭게도 사망할 당시 정덕술의 나이는 박종철과 비슷했다) 그러니 1987년의 마지막은 13대 대선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의 이름을 딴 영화가 6월의 사건까지만 그려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애초에 이 영화는 6월 민주화 항쟁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운동권 새내기였던 87학번 김태리의 추억팔이였기에, CG로 87년의 풍경을 완벽하게 재현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영화는 그 해 하반기의 기억을 깔끔하게 도려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1987년은 스릴러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반전으로 끝났다. 약 6개월 뒤 치뤄진 직선제 투표에서 국민들은 놀랍게도 노태우를 선택했으니까. 민주화운동의 두 거두였던 김영삼과 김대중은 한치의 양보 없이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민들이 열망하던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양김의 대립은 시민들에게 이승만 하야 후 제 2공화국의 무질서와 혼돈을 떠올렸고 결국 유권자들은 고심 끝에 민주주의와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택한 것이다.* 

당시 광화문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생들이 아닌 직장인들이었다. 졸업하면 인생이 보장되던 당시 대학생들과는 달리 이 세대는 못먹고 못배웠는데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27년 전 이승만의 부정선거에 저항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그날과 다름없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다시 한번 민주화를 외쳤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날 틀딱이라는 조롱을 듣고(링크)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데 일조한 신문사, 검사, 의사들은 모조리 다 개혁당하고 있다. 동이라는 공산주의자에게 가족을 잃은 박처장이 동이와 똑같은 짓을 하던 것처럼, 박처장과 신군부에게 억압당했던 운동권 정치인들은 전두환과 똑같은 계층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는 아이러니는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자,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아래 87년의 실제풍경과 영화의 엔딩을 비교해보자. 영화 1987의 가장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은 마치 동전처럼 이 한 장면으로 축약될 수 있다. 실제 민주화운동의 주인공들을 내려다보는 운동권 학생, 87학번 김태리의 등을 비추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리고 영화 개봉 당시엔 감동과 전율을 느꼈던 바로 그 장면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3년간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실제 1987년 당시 시위 장면



*혹자는 이 사건을 김영삼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가 당선된 것 뿐이라며 폄하한다. 그 말은 사실이지만 당시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후보도 기호 4번으로 출마해 약 8%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것을 잊어선 안된다. 노태우/김종필은 총 44.7%를 득표했고 김영삼/김대중은 55.0%를 얻었으니 6월 항쟁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겪고도 약 45%의 국민들이 사실상 군사정권의 후예들에게 표를 던진 셈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바로 6개월 전 민주화운동을 지지한 사람이었을텐데도. 그 45%가 복잡한 심경으로 군부세력들에게 표를 던진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당시 유권자들의 치열한 고민에 대핸 모욕이며 시대상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13대 대선 투표결과

2020. 7. 27.

아름다운 성추행, 그리고 천박한 도시



누군가가 내게 서울의 명소를 딱 하나만 추천해달라고 부탁한다면 나는 광화문 광장을 들 것이다. 넓은 광장의 다른 곳 말고 그 끄트머리.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그 광장의 끝에서 방문자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때는 한국적이다, 전통적이다는 말이 촌스럽다는 말과 동의어로 여겨졌지만 2010년에 복원된 현재의 광화문을 보면 누구도 그런 말을 꺼내지 못할 것이다. 고동색 성문과 연회색 성벽과의 선명한 대조. 그리고 화려한 단청과 누각까지. 한국의 미란 국뽕이 억지로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고궁의 색도 충분히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려준 이가 바로 광화문이다.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북한산과 함께 그 문을 보고 있노라면 책과 사극에서 보았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곤 한다.

그 순간 뒤를 돌아보면 새로운 도시를 발견하게 된다. 드넓은 광장을 중심으로 양편에 들어선 현대적 건물과 고층빌딩들. 은은한 광화문의 불빛과는 대조되는 강렬한 LED와 할로겐 빛을 동공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은 마치 과거에서 현대로 단숨에 넘어오는 것과 같은 충격을 선사한다. 한국이 중세에서 단 한걸음 만에 근대를 넘어 현대로 도약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경험해보고 싶다면 해가 지고난 직후 광화문 광장의 끝에 서서 한바퀴 돌아보라. 이 광장의 끝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놓여있으며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처럼 평범한 방문객을 시간여행자로 탈바꿈시켜 준다. 여기에 서보기 전의 나는 서울을 몰랐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평생 이상을 이 도시에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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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대표는 이런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했다. 나와 서울 시민은 응당 그 말에 분노해야 한다. 도시는 시민의 얼굴을 닮아가기 마련이니 그는 나와 우리의 삶이 천박하다고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겪은 격동의 근현대사가 투영된 광화문 광장은 샹젤리제 거리나 라데팡스처럼 유명하거나 아름답지 않아도 분명히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있다. 여느 도시가 그렇듯이. 아름답지 않은 아이도 부모에겐 사랑스럽고 서투른 글도 무명의 작가에겐 소중한 것 처럼 이 도시와 우리의 삶 역시 그렇다. 그런 도시를 두고 천박하다는 낙인을 쿵 하고 찍은 이가 국민을 대표해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는 쌍욕을 던진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아마 처음부터 그에게 우리는 후레자식이자 천박한 시민이었겠지.

그의 미적 기준은 너무나 난해해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바로 몇주 전 서울시장이 여비서를 성적으로 희롱하며 학대하다 적발되자 자살했을때 여당의 여러 인사들은 그를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나. 못생긴데다 탈모까지 온 환갑넘은 늙은이가 여비서에게 속옷사진을 보내고, 아내와 별거중이라며 추근대는 모습은 아름답기는 커녕 더럽다. 노년의 로맨스가 더럽다는 것이 아니라 노년의 성추행이 더럽다는 말이니 나이든 독자들이 있다면 상처받지 마시길. 나이와 상관없이 성범죄란 본디 추잡한 것이지만 나이든 권력자의 성범죄가 더욱 혐오스러운 것은 욕정 앞에 자신의 살아온 역사와 품격 그리고 명예를 모두 내던졌기 때문이 아닐까. 종로의 한 술집에서 시인 고은이 후배 문인들 앞에서 바지 앞섶을 풀고 자위행위를 시작한 그 순간 추락한 것은 그의 명예만이 아닌 한국문학의 자긍심이었던 것처럼 서울시장이 여비서에게 팬티 사진을 보내다 자살한 순간 이 도시의 품격도 함께 목을 매달았다. 헌데 박원순의 빤스는 아름답고 서울은 천박하다니. 저들의 미적 기준에는 분명 심각한 결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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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인사들의 망언을 듣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왠지 이번엔 분노가 가시질 않아 차를 끌고 서울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한강철교를 아래를 지날때 전철이 머리 위로 굉음을 내며 지나가던 순간 나는 다큐에서 본 6.25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폭파를 담당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인민군 탱크가 서울에 진입하면 다리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아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했으나, 그 바람에 다리 위 수백 명의 시민들이 폭사하거나 한강으로 떨어져 물에 빠져죽고 말았다. 이후 서울을 버린 대통령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아지자 정부와 군은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명령을 충실히 따른 최 대령을 군법회의에 회부해 사형을 언도한다. 이후 1962년에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하여 그는 사후 무죄판결을 받고 2013년에는 국립현충원에 위패가 봉인되었다고 한다.

한강대교를 지나 몇분 더 달리면 수많은 고층빌딩으로 뒤덮인 여의도를 볼 수 있다. 이 섬은 본디 활주로로 쓰던 단단한 모래섬이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섬의 명칭은 "너나 가져라"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사실인지 모르겠다만. 고층건물 중 가장 인상 깊은 건물은 트럼프월드와 파크원이 아닐까. 트럼프월드는 당시 세계경영을 모토로 내걸었던 김우중 회장의 대우건설이 뉴욕의 트럼프월드타워를 수주한 것을 계기로 이 미국의 부동산업자에게 로열티를 주고 상표권을 따내 지은 것인데 아마 그도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물론 그 직후 대우가 와해될 줄은 더더욱 몰랐겠지만. 여의도 파크원은 2008년 당시 2013년 완공을 목표로 당시로는 한국의 최고층 빌딩이 탄생할 예정이었지만 이후 들이닥친 금융위기와 통일교와의 분쟁 등으로 거의 공사 초기단계에 멈춘 채 방치되었다 최근 법적 다툼이 마무리되고 곧 완공을 앞두고 있다. 안타깝게도 건물 외골격의 빨간 띠는 포장을 뜯지 않은 필름이 아니라 건물의 디자인이라 계속 유지된다고 한다.

거기서 더 달리면 양화대교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는 자이언티 덕에 더욱 유명해졌는데,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노래의 가사를 곱씹어보면 숨겨진 장면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택시 기사였는데 어디냐고 물어보면 항상 양화대교. 양화대교. 그런데 자이언티의 다른 노래 Click me에서 집은 강서구라고 했으니 양화대교를 건너도 한참은 더 가야 집에 도착하는데 왜 아버지는 늘 양화대교에 서 계셨을까? 삶은 힘들고 고되고. 또 아프고. 왜 택시기사는 그리고 (예전에) 가난했던 뮤지션 자이언티는 차를 마땅히 댈 곳도 없는 양화대교에 서 있었을까. 어쩌면 이 노래는 아버지가 다리 위에 서 계시다는 것이 무엇을 뜻했는지 깨달았을때 탄생한 것이 아닐까. 지나친 상상은 고소로 가는 지름길.

그 다리를 지나면 망원동과 합정에 도착한다. 망원동은 태종의 둘째아들이자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별장인 망원정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번잡한 이태원을 피해 사람들이 한남오거리에 몰리듯 힙스터들은 홍대보다도 망원동에 모이며 이곳을 망리단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마포와 아현이 있다. 과거 아현 고가 아래에는 세글자 이름으로 이루어진 방석집들이 즐비했다. 잘은 몰라도 어떤 방식이든 성을 파는 곳임은 확실했다. 그런 장소 특유의 시큼하면서도 서글픈 느낌이 물씬 나던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대한민국에서 최고 고소득자들이 선망하는 주거지 중 하나로 변모하여 과거의 그 음침한 기운은 온데간데 찾아볼 수 없다. 천대받는 창녀. 그중에서도 아현 굴레방다리는 나이든 창녀들이 모이는 곳이었다는데 억세게 20세기를 버턴 그녀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처럼 서울은 젊은이도 노인도 그리고 아버지도 딸도 열심히 먹고 마시고 즐기며 일하고 사랑하다 잠드는 일상의 터전이고 다양한 삶이 모여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다. 사람은 떠났어도 그들의 인생은 이곳에 쌓여 하나의 서사를 이루고 있다. 그 삶은 모두 하나같이 소중하다. 누구도 어미 앞에서 그 자식이 못생겼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그 누구도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그리고 그것이 모인 이 도시를 천박하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 천박한 것은 국민과 서울이 아니라 반시장적인 조치로 집값을 쳐올려 시민들에게 고통을 안기고도 아집을 꺾기 싫어 수도를 이전하겠다는 괴상한 발상을 꺼낸 70먹은 노친네의 가벼운 주둥아리이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의 당대표 답게 이 천박한 노친네는 세종시에 영혼의 몰빵을 쳤다. 내심 손혜원과 노영민이 무척이나 부러웠나보다. 이런 후레자식.

2020. 7. 13.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중요한 내용을 급하게 작성하느라 비문이 많고 생략된 부분이 많아 몇몇 부분을 수정하여 다시 업로드합니다. 또한 본문을 읽기 전 슈로더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의 글(링크)을 참고하기를 권합니다. 비록 2년 전에 작성된 칼럼이지만 그가 지적하는 1960년대와의 특징은 당시보다 현재와 더 가깝습니다.


지난 한달간 거의 글을 올리지 못했던 것은 앞으로의 시장에 대한 전망이 정리되지 못해서, 구체적으로는 전망은 정리되었지만 투자방법을 정리하지 못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향후 장기간 세계가 저성장을 동반한 인플레이션, 어쩌면 스테그플레이션에 가까운 형태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현상이 1960년대 중반 저금리가 끝나갈 무렵의 세계경제와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은 금융시장과 당시 시민들의 삶뿐 아니라 경제학에도 커다란 도전이었다. 때맞추어 등장한 케인즈라는 걸출한 학자는 급격한 불황으로 수요가 위축되었을 때 정부지출을 늘려 벗어날 수 있다는 해결책을 제시했고 미국은 그 처방을 충실히 따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대공황과 같은 급격한 수요의 급감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비했고 일부 부침이 있긴 했지만 비극은 되풀이되지 않았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세계대전에서 나치와 일본을 쳐부수고 명실공히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다는 미국의 자부심은 어떤 불황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만을 낳았고 국민들 역시 그런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정치인과 유권자들은 불황이 닥칠 때마다 계속해서 과도한 재정지출에 의존했고 전체 경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은 전례없이 낮았으며 이에 연준은 극도로 낮은 금리를 유지하며 연방정부의 채권발행을 간접지원했다.

연방기금금리

미국 CPI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서 종종 황금의 시대는 예고없이 종말을 고하곤 한다. 그리고 그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벨 에포크가 그랬듯이. 60년대 하반기에 들어서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신호를 무시하기 어려웠던 연준은 점차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다. 대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는 것은 호경기인 경우가 많아 금리가 올라도 시장과 성장률이 하락하지 않는데,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기를 보낸 끝에 낮은 성장을 동반한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들어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1970년대의 스테그플레이션을 두차례의 오일쇼크 때문이라고 기억하지만 이미 오일쇼크가 시작되기 전에도 미국에서는 분명 스테그플레이션의 압력이 가중되고 있었다. 세상에 언제 어디서든 널리 통용되는 황금률은 많지 않은 법인데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지출확대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었고,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는 그 믿음을 산산히 부수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후 학자들이 내린 진단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부의 지출은 민간에 비해 비효율적이라 정부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면 생산성을 해치는 단계에 이르른다고. 이는 경제를 위축시키면서 물가의 상승을 가져오는 스테그플레이션을 촉발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현상은 놀랍게도 현재와 매우 유사하다.

과거 70년대의 스테그플레이션은 두가지 트라우마를 남겼다. 첫째,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 둘째, 큰 정부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이어진 디플레이션은 첫번째 두려움을 망각하기에 충분했고 코로나에 대한 대중과 정부의 공포는 두번째 두려움을 마비시켰다. 놀랍게도 코로나 아래서 신용위험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는데 최소한 생명의 위협은 없었던 08년의 위기가 얼마나 많은 기업들을 도산시켰는지를 감안하면 우리는 상당히 평온하게 위기를 넘긴 셈이다.(3월의 몇주를 제외한다면)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올해 상반기에 우리가 보았던 정부와 중앙은행의 예외적인 대응책들이 우리의 새로운 기준점이 되었고 다시 불황이 찾아와도 정부와 유권자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경제적 고통을 회피하려 들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정부 부채가 크게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각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수준을 넘어 조장할 수 밖에 없다.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도 대규모 추경으로 인한 재정악화에 대해 찬반논란이 있었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선방한 축에 속한다. 미국은 이미 GDP의 10%가 넘는 재정지출 외에도 다른 여러 지원프로그램들을 가동, 혹은 준비중이며 재정건전성의 첨병으로 여겼던 독일은 금융지원을 포함 GDP의 30%가 넘는 프로그램을 운용중에 있다. 물론 이 수치는 상반기에 발표된 대책만을 집계한 것으로 하반기에 경제둔화가 지속되거나 우한폐렴의 2차확산이 시작된다면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성장률이 2010년 이전의 속도로 회복하지 않으면 이 수치가 가까운 미래 안에 개선될 가능성은 아예 없기에 정부가 다시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플레이션으로 부채를 태우는 길 밖에 없다. 

여기에 두가지 부수적인 사건은 이 인플레이션이 성장에 따른 부수물에 그치기보다, 우리가 70년대에 본 것과 같이 매우 불쾌한 인플레이션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하나는 미중 무역분쟁을 비롯한 리쇼어링 정책, 또 하나는 코로나로 인한 생산라인의 다변화. 리쇼어링은 순전히 정치적이고 경제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대중의 요구로 이루어졌지만 후자는 코로나로 인해 생산라인에 타격을 입은 기업의 전문가들이 생산기지를 다변화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들이며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인간은 방금 겪은 사건을 과도하게 평가하기 마련이니까. 이 두 요소는 앞으로 우리가 마주한 인플레이션이 공급측면에서도 시작될 것을 암시한다.

금값으로 환산한 S&P500 지수

새로운 시대에는 구시대의 투자법이 독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중후장대가 그룹의 미래라고 믿었던 두산이 그러했듯이. 따라서 나는 앞으로 다가올 10년은 IT와 같은 테크주식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주식의 시대가 될 것인지도 확신하지 못하겠다. 과거 1970년대의 사례를 보면 골디락스의 시대가 끝나며 금값으로 환산한 주가지수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다시 전고점을 회복하는데 거의 3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스테그플레이션의 시대에서는 주식이 금이나 은, 유가, 부동산과 같은 현물을 이기지 못한다.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운율은 반복된다고. 분명 미국의 주식시장이 오랜기간 상품시장을 언더퍼폼한 시기는 굵직한 현대사들과 겹친다. 석유파동, 베트남전쟁, 케네디 암살,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말, 미중수교 등.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미래에 그런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정부부채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시작하는 정치인들과 유권자는 우리가 70년대와 비슷한 운율을 따를 것이라는 미래를 암시한다. 

무엇보다 올해 말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이 집권한다면 이와 같은 추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60년대 말-70년대에 명목금리가 인플레이션의 속도를 쫒아가지 못했던 것 처럼 디플레이션의 시대에 너무나 익숙한 세계의 중앙은행장들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제때 대응하지 못할 것이며 대응하려 해도 방대해진 정부부채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이미 우리를 덮치기 시작했으며 오랜 가뭄 끝 단비처럼 세계는 그를 반길 것이나 그것이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로 이어지는 이정표였다는 것을 바로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이 시기에 확실한 투자는 하나다. 바로 최대한 현금을 숏치는 것. 인플레이션의 초입에서는 당신이 무엇을 사는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빚을 냈는 지에 따라 수익이 정해지고 당신의 근로소득이 휴지가 되는 것을 겪을 것이다. 그렇게 인플레이션의 초반부를 지나고 나면 이윽고 하반기가 시작될 것고 시대의 막바지를 향해 달릴수록 각 중앙은행들이 뒤늦게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을 겪을 것이다. 디레버리징의 시대가 오겠지만 그 시기를 완벽하게 맞춰 적응하는 투자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니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가 레버리지된 채 새로운 후반전을 맞이하겠지. 그제서야 투자자들은 자신이 어떤 자산을 샀는 지에 따라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이, 더 나아가 자신의 생사가 엇갈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2020. 7. 9.

절세미인(節稅美人) 노영민

많은 투자자들이 말한다, 세금을 줄이는 것이 투자의 핵심이라고. 하지만 이 남자보다 더 완벽한 투자와 절세의 기교를 보여준 사람이 대한민국 역사에 또 있었을까. 반포의 13평 아파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명예도, 대통령도, 당도 심지어 지역구 유권자들도 가차없이 손절할 수 있는, 뜨거운 머리와 냉철한 가슴을 가진 남자-청와대 비서실장 노영민. 숨가쁘게 흘러간 그의 지난 몇일을 되돌아보자.

집값이 한여름의 수온주보다도 더 뜨겁게 달아오르던 7월의 어느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청와대 춘추관으로 불려들어간다. 굳게 닫힌 문 너머로 고함소리와 의자 넘어지는 소리, 그리고 연신 죄송합니다 송구스럽습니다 각하 소리가 들린지 한참이 지났을까. 이윽고 문이 열리자 얼굴이 벌개진 김 장관이 바쁜 걸음으로 걸어나오고 무거운 얼굴의 노영민 비서실장이 그 뒤를 따랐다. 노 실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사무관에게 한마디를 던진다. "내일까지 청와대 포함 다주택 고위공직자들 명단 작성해서 보고해." 평소엔 눈치없던 그 사무관조차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서둘러 대답한다. "네 실장님."

다음날 아침, 다주택 보유자 명단을 받아 첫 부분을 읽던 노 실장의 동공이 잠시 흔들린다. [1. 노영민 2주택자, 반포 1채 청주 1채] 분노가 폭발한 그는, 충분히 위협적이면서도 대통령집무실까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사무관을 다그친다. "야 이놈새끼야. 왜 내가 맨 위에 올라가있어?" 성실하지만 다소 센스가 부족한 이 사무관은 이렇게 대답한다. "명단을 작성할 땐 서열순으로 하라고 배웠습니다" 하. 오랫동안 학생운동을 이끌어 본 그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놈은 언젠가 큰 사고를 칠 놈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시간이 없다. 그는 검은색 플러스펜을 꺼내 자신의 이름을 직직 지우고선 이렇게 말한다, "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과 면담시간 잡아서 다시 보고해. 단독면담형식으로, 당장 오늘 오후부터." 

그렇게 면담이 시작됐다. "아니 은 위원장님. 왜 세종시 주택은 안 파시는 겁니까?" "실장님 그게 제가 안 팔려는게 아니고.. 코로나 때문이라 그런지 이게 잘 팔리지를 않습니다요." "얼마에 내놓으셨는데요?" 위원장은 움츠려든 목소리로 대답한다. "oo억에 내놨습니다." 노 실장은 손수 남보라색 바탕의 호갱노노 앱을 켜고 바로 그저께 직힌 실거래가를 눈앞에 들이밀며 소리친다 "위원장님 지금 장난하십니까? 아니 로얄동 15층이 oo억에 거래됐는데 그 가격에 호가를 내는게 안팔겠다는 것과 무어가 다릅니까!" 우물쭈물하는 상대의 변명을 연신 끊고 울려퍼지는 그의 호통소리는 문 밖에 앉은 사무관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수도 없이 많은 고위공직자들이 청와대 비서실장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고 방에서 나온 당사자들은 어김없이 입 밖으로 새어나가려는 ㅆ발음을 힘겹게 입술에 힘을 주어 참아가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하루종일 독대를 마친 노영민 실장이 물었다. "명단에 있는 사람 모두 면담 했지?" 충혈된 눈의 사무관이 대답한다 "네" "그럼 불가피한 사람 제외하고 서약서 빠짐없이 받은거 맞지?" 관료주의에 충실한 사무관은 스스로 매를 번다. "실례지만 실장님꺼 아직 안주셨는데요" 그 눈치없는 한마디에 반쯤 감겨있던 노 실장의 눈이 매섭게 불타오르며 커진다. "이놈새끼야 시발 팔어! 판다!! 나도 판다고!!! 그러니 나가!!!" 영문도 모르고 혼나 황급히 달아나는 사무관의 뒤를 바라보던 비서실장은 곧 집무실 책상 위에 엎드린다. '마누라에겐 뭐라고 하지...' 하지만 국보법 위반으로 지명수배를 당하던 중에도 기지를 발휘해 도주한 덕에 노꾸라지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 아닌가. 그는 번개같이 일어나 세종시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어어 김국장, 나 청와대 노실장이야. 잘 지내? 아직도 조세쪽에 있지? 거 시간 되면 오늘 같이 저녁이나 하지"  

다음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노영민 실장은 민정수석, 사회수석 앞에서 한참 너스레를 떤다. "내가 또 머리가 비상하잖아? 이렇게 하면 된다니까" "아니 실장님. 진짜 이게 사실입니까? 반포 아파트 매매차액이 12억인데 양도소득세가 650만원 밖에 안되는게 가능합니까?" 노 실장은 종이를 꺼내 도표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래! 자 봐, 청주를 먼저 팔고 응? 그 다음에 반포를 팔면 이게 세금 3억이 650만원으로 준다니까? 게다가 아파트 두 채를 판 돈으로 새로 똘똘한 한 채를 사면 현재 오른 시가가 취득가액이 되니까 미래에 낼 양도소득세까지 대폭 절감되는거라고" "와 역시 실장님! 머리가 비상하십니다!" 보도자료를 작성하던 사무관은 잠시 일을 멈추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도통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아마 우리 중 그 누구든 그 자리에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다만 노 실장이 사무관의 책상 위에 두고 간 종이에 반포라는 두 글자만이 크게 적혀 있었을 뿐이다. 잠시 후 사무관이 작성한 보도자료가 춘추관에 모인 기자들에게 전달되었고 얼마 안가 각 언론사의 헤드라인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청와대 다주택 고위공직자들 집 판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반포아파트 매물로 내놔]

식사 후 사무관이 타다 준 믹스커피를 마시고 노곤하게 기지개를 펴던 노 실장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사랑하는 여보님] 한껏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노 실장과는 달리 아내는 분노와 공황을 한데 모아 소리를 지른다. "야 이 화상아, 너 미쳤어?? 뭐? 반포 집을 팔어? 당신 혹시 청와대에서 치매 옮았어?" 노 실장은 짐짓 점잖은 척 품위있게 대답한다. "아 이 여편네가 무슨 소리야. 그건 올해 안에만 팔면 된다니까." 아내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되묻는다"그럼 이 뉴스 속보는 뭔데?" 네이버 뉴스페이지를 켜서 헤드라인을 읽던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몇분간 정지화면처럼 얼어있던 그는 간신히 입을 열어 다급히 사무관을 찾는다 "야!! 이 새끼 어디갔어!" 공직자들의 주택처분동의서를 정리하고 보도자료를 만드느라 홀딱 밤을 샌 탓에 엎드려 자던 사무관이 곧장 집무실로 튀어들어왔다. "야 이 새끼야. 이 보도자료 니가 낸거 맞아? 내가 언제 반포를 판댔어!!" 예고했던대로 성실하지만 눈치는 없는 사무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실장님 어제 분명 집 파신다고 하시고 아까 낮엔 반포.." 사무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고성이 다시금 터져나왔다. "야 이 미친놈아 너 일부러 이러지? 혹시 미통당 쁘락치냐? 세상에 어느 다주택자가 비싼 집을 먼저 팔아, 너는 시발 집도 안사봤냐?" 사무관은 위축된 가운데 이것 만큼은 떳떳하다는 투로 대답한다. "네 저는 전세라서.." 분을 못이긴 노실장은 다시 고함을 질렀다. "야 시발 나가, 나가!! 나가!!!" 학창시절 따르던 운동권 선배에게 첫사랑을 뺏긴 이래 그렇게 절규한 것은 처음이었으리라.

그 사이에 그가 반포 집을 처분한다는 기사는 계속해서 올라왔고 그때마다 마누라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그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그는 침착하게 이 상황을 아내에게 설명하고자 마음 먹는다. "여보.. 저 이왕 기사가 나갔고 내 체면도 있고 하니.." "뭐 체면? 평생 땡전 한푼 못 벌어본 인간이 체면? 야 너 그 돈이 어떤 돈인줄 알아? 너 국회의원 한답시고 적금 깬거, 내가 니 사무실에 직접 신용카드 단말기 가져다 놓고 감사기관들 안면몰수하고 쭉 불러다 책팔아 채워넣은 돈이야. 니가 뒷돈도 잘 안 들어오는 야당 의원이나 할때 내가 홍의원 와이프한테 직접 전화해서 그쪽 비서관으로 우리 아들 꽂아 넣으며 마련한 돈인데, 뭐 니 체면 때문에 그 돈을 세금으로 날려? 내가 너 세금 벌어오라고 그 자리 보냈지 세금 내라고 보낸줄 아냐? 너 진짜 쪽팔린게 뭔지 보여줘? 내일 조간 헤드라인에 현직 비서실장 마누라가 집에서 분신자살했다는 속보 뜨게 해줄까?? 당장 물러! 물러!!" 노 실장은 이미 아내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금 호소해본다. "아니 그래도 이러면 내가 뭐가 돼.. 여보 제발.." 하지만 그의 아내는 단호하다. "야야. 그건 모르겠고 난 김의겸네 와이프처럼 못 살아, 차라라 안 살아. 나 지금 가스밸브 열었어. 야 너 반포 팔거면 빨리 말해, 지금 붙 붙이게" 그는 어렵사리 아내를 진정시키고 전화를 끊는다.

잠시 후 청와대 비서실은 짤막하게 정정보도를 냈지만 그 정정된 한 줄은 이전 23건의 부동산 대책보다도, 수백 건의 대통령의 부동산관련 발언보다도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청와대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비서실장은 또다시 웃음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무엇을 똘똘한 반포의 대지지분 13평 재건축 아파트에 견줄까. 노모를 팔고 아내를 팔 지언정 흑석만은 못 팔겠다던 김의겸 선생도 금뱃지에 혹해 흑석의 1+1 상가건물을 파는 우를 범했는데, 명철한 우리의 노영민 선생은 자신의 체면도, 당의 지지율도 심지어 청주의 유권자들도 버려가면서까지 똘똘한 한채를 거머쥐었다. 더욱이 청주 아파트를 매각한 뒤 여론에 못이기는 척 하며 반포를 팔아 1가구 1주택 장기특별공제까지 챙겼으니 어찌 감탄하지 않으랴.  

숱한 양심의 압박과 여론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1주택 실거주자보다도 더 적은 세금을 납부한 노영민 선생. 평범한 수식어로는 그의 스킬을 묘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 않은가. 그의 절세는 단순한 기(技)를 넘어 예(藝)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으니 나는 그를 절세미인(節稅美人)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돌이켜보면 작년 영혼의 몰빵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신 흑석 김의겸 선생의 뒤를 따른 수많은 투자자들이 돈방석에 앉지 않았나. 올해 재테크의 핵심은 절세라는 것을 친히 깨우쳐주신 절세미인 노영미인. 오늘 그가 보여준 절세법은 두고두고 내 마음 속에 남을 것 같다.


환하게 웃는 모습마저도 아름다운 남자, 절세미인 노영미인



*본 글은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한 것으로 사실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0. 5. 22.

미래를 예언한 영화들 3부 조커와 2020년 미 대선

1부: 킹스맨과 브렉시트 (링크)
2부: 주토피아와 트럼프 (링크)

앞의 두 편의 글은 영화가 대중의 어떤 욕망을 자극했고 또 그 욕망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가져왔는지를 분석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관점을 바꿔서 특정 정치성향을 가진 지지자들이 일반적인 대중, 즉 유권자들을 얼마나 잘못 파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또한 앞의 두 글은 사후 분석인데 비해 아래의 글은 올해 11월에 예정된 미국 대선에 관한 글이므로 반년 뒤 어떤 결과가 나올지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길.

 히스 레저가 아닌 그 누가 감히 조커를 연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호아킨 피닉스는 그런 염려를 단번에 잠재우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했고 이 영화는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커다란 성공을 이뤘다. 주연배우의 연기는 물론이고 스토리, 음향, 영상 등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완벽했다. 단 하나, 엉성한 사회비판을 제외한다면.

미국정치를 잘 몰라도 이 영화가 트럼프와 공화당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뉴욕(고담시티)의 가장 후미지고 외진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폭력이 난무하고 쓰레기가 사방에 널린, 국가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난한 동네. 그 곳에서 돈은 교환이나 가치척도의 수단이 아닌 생존의 필수품이기에 당장 일자리를 잃으면 다음날 끼니마저 굶어야 하는 삶. 거기서 태어난 평범한 정신병자 아서 플렉이 온 도시를 뒤흔드는 비범한 빌런으로 변화한데엔 두가지 촉매가 있었다, 바로 권총과 정신상담. 아서의 동료는 그에게 호신용으로 권총 한 자루를 건네는데 결국 그는 그 총 때문에 직업을 잃어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또 고담시는 복지예산을 삭감하는데 그로 인해 아서의 정신상담이 중단되게 되어 그는 더이상 정신약을 처방받지 못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제 아닌가. 공화당 지지자들은 총기소유의 자유를 종교적 신념처럼 지지하는데, 영화에서 주인공이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쉽게 총을 손에 넣고 결국 네 건의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정신상담이 중단되는 것은 ACA, 일명 오바마케어와 연관되어 있다. 오바마케어의 존치는 지난 대선에서 뜨거웠던 논쟁거리로 반대론자들은 이 법이 사실상 정부의 재정을 악화시키고 보험사의 비용을 증가시켜 결국 국민들에게 부담만을 안겨준다는 이유로 폐지를 주장했는데 반해 민주당은 저소득층을 의료의 사각지대에 방치해서는 안된다며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항변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의료복지가 축소된 이후의 세상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보라.

공화당에 대한 비판은 토마스 웨인이 등장하며 정점에 이른다. 여러 기업체를 거느린 CEO출신에다 장신이고 공격적 언행을 일삼는 그는 누가 보아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판박이다. 특히나 여자문제가 복잡하고 무례하며 자기중심적이걸 보면 이 의혹은 확신이 된다. 그는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서에게 펀치를 날리고 그를 모욕하여 그를 조커로 만드는 결정적 원인들 중 하나를 제공한다. 이처럼 정치적 편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토드 필립스 감독은 그가 결국 조커의 추종자중 하나에게 살해되는 것을 보여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은유같은 저주를 퍼붓는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조커라는 괴물이 탄생하게 된 것은 그를 방치한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이며 바로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은 미국을 고담시로 만들 것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은 조커가 아닌 트럼프다) 문제는 영화를 만든 이들의 인식이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데에 있다. 만약 아서 플렉이 실존한다면 그는 2016년 대선에서 누구를 찍었을까? 통계에 따르면 그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다. 인종, 성별, 소득수준, 최종학력 그리고 연령에 따른 트럼프 지지율을 보면(링크) 아서 플렉은 이 다섯가지 카테고리 중 연령을 제외한 다른 모든 카테고리에서 트럼프의 지지층과 일치한다. 그런 마당에 영화를 보며 아서에게 공감한 미국의 빈민층들이 과연 감독의 정치적 메시지에 공감했을까? 이 샴페인 좌파 감독이 조금이나마 현실감각이 있었더라면 아서 플렉은 이민자 가정 출신의 박사학위를 가진 고학력 20대 흑인 여성이었을텐데.
교육수준이 낮을 수록 트럼프에 대한 지지도가 높다
왜 현실의 아서 플렉은 트럼프를 지지하는가. 영화 속 아서의 비극이 일자리를 잃으며 시작했던 것처럼 미국의 빈민층은 값싼 중국산 제품과 불법 이민자들에게 밀려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의 비극을 가져온 것은 38구경 권총이 아닌 세계화다. 또 미국의 중하류층에게 위화감을 안기는 것은 억만장자이면서도 싸구려 야구모자를 쓰고 맥도날드를 먹는 트럼프가 아니라 수백만 불짜리 대저택에 살고 제트기를 타고 다니면서도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설파하는 엘 고어나, 빈부격차를 줄이자고 외치면서 편당 수백만달러를 받고 페라리를 모는 헐리웃 배우들 같은 리무진 리버럴들이다. 그들이 기아와 빈곤을 논하며 자선파티에 모여 우아하게 브르고뉴산 와인을 따를때 트럼프는 코카콜라를 마시며 옥스포드 사전따위를 필요로하지 않는 하류층들의 언어와 트위터로 유권자들과 소통한다. 저질 농담들과 함께, 때때로 어법도 틀려가면서. 미국의 상류층들이 트럼프를 경멸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류층들은 그를 사랑한다.  

비벌리힐즈나 웨스트우드 혹은 베니스 해안가에 사는 서부의 리버럴들은 미국의 평균적인 유권자들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 지난 대선에서 힐리러가 패배한 것은 미국의 유권자들이 멍청하거나 인종차별주의자여서가 아니라 그녀와 그녀가 이끄는 민주당에 아무런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당시 힐러리의 대선공약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라. 아마 그녀 자신도 자신의 공약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주요 쟁점사안에 대해 입장을 여러번 바꿨다) 힐러리를 비롯한 민주당은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고 따라서 자신들이 무엇을 보여줄 지도 몰랐다. 반면 트럼프의 공약이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지 않았나,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간에. 그는 세계화가 진행되며 미국의 자본가들이 생산기지의 이전과 해외투자로 더욱 부자가 될 동안 미국의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고 새로운 아서 플렉으로 전락하는 것을 꿰뚫어보았고 따라서 리쇼어링 정책을 들고나왔다. (사업으로 인생의 부를 일군 사람이 리쇼어링 정책이 경제적 관점에서 효율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모를거라 생각하지 마라.) 그리고 영화 조커는 트럼프와는 달리 진보주의자들이 아직도 그 무지 속에 갖혀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아서 플랙의 망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리버럴들의 망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서에게 예쁜 여자친구가 존재하지 않았듯, 좌파들이 생각하는 공화당이 야기한 카오스 또한 없었다. 지피지기는 물론이고 자기가 왜 졌는지 아직도 모르는 민주당은 다음 대선에서도 또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맨하탄의 남단에서 빨간색 IRT Seventh Avenue Line를 타면 월스트리트를 지나 섬의 북쪽 끝에 도달하고, 거기에서 버스를 타면 조커가 춤추던 계단이 있는 브롱크스까지 갈 수 있다. 호아킨 피닉스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을 연기하는 대가로 약 45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았는데 이는 미국의 상위 약 0.05%에 해당하는 소득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며 단순한 히어로 시리즈가 아니라 사회고발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겠지만, 그가 기획한 이야기와 실제 현실은 아서 플렉과 호아킨 피닉스의 수입 만큼이나 달랐다. 테슬라 S모델과 함께 배우고 가진 자들의 힙해보이는 패션아이템으로 전락한 리버럴리즘과 민주당이 과연 올해 대선에서 다시금 미국 대중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2020. 5. 21.

미래를 예언한 영화들 2부 주토피아와 트럼프

대중의 영화취향을 들여다 보면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가늠할 수 있다. 그 이유는 1부(링크)에서 설명했으니 생략하자.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고작 디즈니 만화영화가, 그것도 발랄하고 귀여운 토끼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트럼프가 힐러리를 누르고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을 예언했을까.
주토피아의 주인공 주디, 그리고 격분한 트럼프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주디는 각고의 노력 끝에 경찰 뱃지를 달게 된다. 하지만 딱 봐도 강력한 남성미를 뿜뿜 풍기는 포유류들이 가득한 경찰서에서 작고 가녀린 그녀에게 진짜 사건을 맡기는 사람은, 아니 동물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우연히 몇몇 동물들이 갑자기 이성을 잃고 야만적으로 돌변하는 사건을 추적하게 되었고 파트너 닉의 도움으로  함께 수사를 펼친다. 몇번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그들은 이 사건의 이면에 모종의 음모가 숨겨져 있음을 찾아낸다. 그것은 바로 시장의 비서였던 작은 양 벨웨더가 육식동물들을 문젯거리로 만들어 사회에서 배제하기 위해 그들이 이성을 잃고 본성을 드러내게 만드는 약물을 사용했다는 것. 주디와 닉은 교묘한 연기로 벨웨더의 음모를 밝히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귀여운 주디의 외모와 재치넘치는 위트 덕에 놓치고 지나가기 쉽지만 사실 이 애니메이션은 사회 구성원들의 생물학적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 애초에 주디에게 경찰다운 일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그녀가 생물학적으로 토끼이기 때문이었고 닉이 자신의 꿈을 버린것도 영악한 여우였기 때문이다. 하울링을 따라 하는 늑대들도, 느리게 일을 처리하는 나무늘보도, 시기심 많은 양도, 시장인 사자도 모든 등장인물들의 본성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생물학이고 그들의 DNA이다. 애니메이션은 주디의 입을 빌려 그 점을 명확하게 지적한다.(링크) 포식자들에게는 그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포악한 사냥의 본성이 존재하고 그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독특하게도 주토피아에서는 핍박받고 탄압당하는 쪽이 강한 포식자다. 음모를 꾸민 벨웨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초식동물들)는 늘 무시당하지, 그래, 육식동물들은 힘이 세. 하지만 포식자와 피식자의 비율은 1:10이야, 사회 구성원의 90%가 공공의 적에 대항해 뭉친다고 생각해봐.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어"(링크) 자연상태에서는 피식자가 아무리 많아도 포식자를 누를 수 없다. 라이온킹에서 미어캣 열마리가 사자 심바를 학대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민주주의 아래서는 다르다. 다수결에 의해 통제되는 주토피아에서 약하고  남성성의 반대편에 서 있는 양이 유전적으로 더 강인한 야수들을 핍박하고 통제하는 것, 그것이 이 서사의 핵심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교묘하게도 우리로 하여금 맹수가 보잘것 없는 피식자들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이 애니메이션이 미국에서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끈 데에는 귀여운 주디의 외모 뿐 아니라 약자가 강자를 억압하는 아이러니한 서사가 미국의 주류 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의 미국인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에겐 안되는 것도 많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같은 소득수준에서도 인종에 따라 교육열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함부로 지적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어린 침팬치 수컷과 암컷들조차 성에 따라 좋아하는 장난감이 다르지만 미국의 PC들은 그와 같은 생각은 관습적 성역할을 고착화시키는 잘못된 관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fireman, policeman과 같은 단어는 fire fighter, police officer로 대체되었고, 남미에서 건너오는 불법이민자를 막자는 지극히 합법적인 주장을 펼치려면 무식한 텍사스 레드넥이라는 비난을 견뎌야만 했으며, 중국에서 건너온 코로나를 중국코로나라고 부르는 것은 인종차별적이라는 비난을 듣게 되었다. 어휴 피곤해.

미국의 주류 백인들은 급격하게 늘어나는 이민자들의 숫자로 인해 계속해서 자신들의 권리가 줄어드는 데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말과 행동을 과도하게 구속하는 PC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극장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봤을때 무엇을 느꼈을까? 주토피아는 현대 인간사회와 너무나도 유사하고 유전적 차이가 존재하는 다양한 동물들이 혼재된 도시는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과 닮았다. 영화 초반부터 여러 동물들이 등장하는 추격 신을 떠올려보라. 파키스탄인이 우버를 몰고, 유태인 사업가가 승객으로 탑승하며 그 옆을 한 아시안 비즈니스맨이 바쁘게 뛰어가고 또 베네수엘라에서 온 대학생이 파트타임으로 커피를 내리는 뉴욕의 일상과 닮아있지 않은가. 이성을 갖춘 동물들의 사회, 종에 따라 각자 다른 본성을 지닌 동물들, 그리고 그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약점이 되는 곳. 미국 어린이들에게 주토피아는 판타지 만화였지만, 어른들에게는 현실을 모방한 우화였다. 이에 열광한 미국인들이 불과 몇개월 뒤의 대선에서 입으로는 힐러리를 찍겠다고 응답하면서도 실제론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실(링크)과 무관하지 않다.

감독 바이런 하워드는 한 인터뷰에서 이 애니메이션이 기존의 동물 의인화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는 영화의 대표 OST에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난다. 도입부에서 주디는 "In Zootopia, anyone can be anything!"이라고 외치지만 결국 영화는 "Try everything"으로 마무리된다. 당신의 배경과 상관없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같은 외침으로 출발한 영화가 그저 시도나 해보라는 무책임한 말로 마무리된다는, 그런 비관적인 전개를 발랄하게 포장한 것 뿐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결국 생물학적 본성을 극복한 것은 끽해야 주인공인 주디와 닉 뿐이고, 주목받지 못하는 기타 모든 조연들은 그들의 DNA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가. 심지어 주디의 부모조차도. 참고로 주토피아의 줄거리는 원래 더 어두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로 바꾸라는 경영진들의 주문때문에 현재처럼 밝고 쾌활한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하니 내 짐작이 근거없는 억측만은 아닐 것이다.

본디 더 어두웠던 주토피아의 스토리 라인

사족1: 애초에 이 글을 구상한 것은 4년 전이지만 제목만 써두고 내 게으름 덕에 완성하지 못할뻔 한 수십개의 빈 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 미래를 예언한 세번째 영화가 나온 덕에 귀찮음을 이겨내고 두번째 편을 완성했다. 그런 의미에서 세번째 글은 미래가 실현되기 전에 미리 올리련다. 

사족2: 주디 너무 귀여움 ㅠㅠ 

2020. 5. 18.

요코 이야기와 위안부, 그리고 정의연

최근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위안부 피해자 중 가장 많이 대외활동을 하던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 대표 윤미향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촉발된 이 사건은, 그동안 정의연에 지급된 막대한 후원금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었을 뿐 아니라 실제 피해자에게 지급되기는 커녕, 사적으로 유용되고 심지어 횡령한 혐의까지 있어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공적 자금인 정부의 보조금과 사적 후원금으로 운용되어온 정의연은 마땅히 모든 혐의에 대해 해명해야하고, 그 과정에서 편법/불법 사건이 있었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비판은 결코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개인의 비극을 공공재로 여긴, 전후 한국사회가 겪는 수많은 마찰들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               *

혹시 요코이야기라는 책을 기억할까. 한때 한국 사회에서, 특히 미주 한인 커뮤니티 내에서 아주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이 수필은 11살의 요코가 일본의 패망 이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도피하는 과정에서 겪은 것을 서술한 자전적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되자 한국인들은 크게 반발했다. 조선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일본인 처녀가 조선인에게 강간당하는 이야기, 공산주의자들이 일본인들을 조직적으로 찾아내 박해하고 학살하는 이야기 등이 실려있는데 이것이 마치 조선인들을 가해자-일본인을 피해자로 그리고 있어 한국인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분명 역사에서 조선은 피해자고 일제는 가해자였다. 일부 일본 극우사학자를 제외한다면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구도를 개개인에게 투영할 때 논쟁이 발생한다. 집단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조선이라는 국가가 피해자라는 사실은 모든 조선인들이 피해자였다는 것과 동의어가 되고, 또 모든 일본인들은 나쁜 가해자라는 명제로 귀결되지만 그것은 결코 사실일 수 없다. 모든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이 피해자와 가해자로 딱딱 나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여기가 바로 두 나라의 역사적 감정이 충돌하고, 또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지점이다.

내선일체 운동 아래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일본인에 준하는 권리를 약속했고 그에 따라 많은 조선인들은 일본인들과 평등한 지위를 가지가 위해 노력했다. 따라서 우리가 해방 이전 문학이나 2000년대 이전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듯, 악인이 아니더라도 일제 부역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수많은 조선인이 존재했다. 특히 1910년 이후 출생한 조선인들은 태어날 때 부터 일본인으로 나고 자랐으니 그들에게 있어 국가에 대한 충성은 일본제국을 의미했고, 상당수는 자신이 배운 그대로를 따랐다. 하지만 해방이 찾아오자 모두가 약속이나 한듯 독립운동가가 되었으며 그런 기만은 시간이 지나며 역사적 사실로 둔갑했다.(링크) 그렇게 모든 조선인들은 피해자로 둔갑했다. 그와 함께 조선인이 가해자였던 기억들 역시 삭제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의 역사교과서에서 1927년 화교배척운동이나 평양화교학살사건, 그리고 전후 미군정 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판정된 조선인들의 기록은 모두 지워졌다. 아마 역사에 특별히 흥미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위의 사건들은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일 것이다. 만약 평양에서 학살된 중국인의 후예나 태평양전쟁시 필리핀의 조선족 군무원들이나 군인에게 학대를 당한 연합군 병사들의 후손이 우리에게 너희의 교과서는 왜곡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까. 조선은 피해자니 조선인들에 의한 가해의 역사는 배울 필요가 없다고?

이처럼 개인의 역사를 모두 뭉뚱그려 민족의 역사로 해석한다면 요코의 비극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일본인이니까. 설령 강간을 당하고 목숨을 빼앗겨도 쇼비니즘에 빠진 한국인들의 국민감정 앞에 그녀는 절대 희생자들의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이처럼 개인을 부정하고 민족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그 태도야말로 우리가 혐오하고 경멸하는 바로 일본 극우들의 태도와 정확하게 닮아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들이 피해자의 증언을 부정하는 방법까지도 똑같다. 한국의 많은 시민단체들은 작가 가와시마 요코가 11살 무렵이던 60년 전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고, 그 증언에 세부적인 오류가 있다는 점-당시에는 인민군이 조직되기 전이었고, 요코가 증언한 대나무 숲이 함흥 일대에는 자생하기 어렵다는 등을 지적하며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단편적인 기억의 오류를 빌미로 핵심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의 극우세력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트집잡아 부정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하지만 피해자를 규정하는 것은 국적이 아니지 않은가. 요코와 위안부 모두 똑같은 전쟁 피해자고 그 사실은 현해탄의 어느 편에서든 바뀌지 않는다.
 
이런 쇼비니즘적 사고는 타 집단의 희생자들 뿐 아니라 우리편에게도 비극을 안긴다. 사람들이 정의연에 분노하는 이유는 마땅히 소수의 사람들과 단체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돌아가야 할 보상을 마치 자기것인 양 남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우리 역시 정의연과 비슷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나. 2015년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는 과거 전쟁범죄에 대한 포괄적인 배상이 아니라 생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안이기에, 이 합의를 받아들일지는 오로지 그녀들이 결정할 문제였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그녀들에게 묻기도 전에 반대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윤미향이 이끄는 정의연은 그 돈을 받으면 창녀가 되는 셈이라며 피해자들을 회유했다. 결과적으로 위안부 생존 희생자들 47명 중 절대 다수인 36명이 차후 지원사업을 받아들였던 것과는 반대로 국민의 66.7%는 위안부 협상을 반대했고 이 사건은 한일관계뿐 아니라 실제 피해자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당시 많은 피해자들은 생활고를 겪고 있었고 그들의 평균연령은 87세나 되었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불과 5년이 지난 지금 27명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고작 20명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라.) 애초에 원고는 47명의 위안부였고 피고는 일본정부였던 재판에서 일제시대를 겪지도 않은 국민 대다수가 갑자기 방청객의 자리에서 원고석으로 난입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실제 피해자들은 조연으로 밀려났다. 이처럼 그들의 비극을 공공재로 삼아 사유화 한 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당사자들과 협의 없이 일본과의 협상에 나선 박근혜 행정부나 정의연, 그리고 일반 국민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앞서 말했듯이 이 모든 태도는 전체주의적 사고로부터 비롯되었다. 개인과 전체를 분리하지 못하고 한 사람의 비극을 진영으로 판단하며 개인의 비극을 공유하는 쇼비니즘적인 태도는 도덕적으로 잘못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갈등의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책 요코이야기를 태우던 개량한복을 입은 민족주의자와 이마에 욱일기를 두르고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의 극우가 만났다고 하자, 그 둘이 합의에 이르는 길은 어느 한 쪽의 죽음 뿐이다. 과연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과거사가 매듭되는 것일까. 결코 아닐 것이다. 한일 양국에서 누군가는 희생자의 아픔을 사유화하는 것을 넘어 상업화했고 그런 비극은 좋은 비즈니스가 되었다. 정의연이 지난 4년간 거두어들인 기부금 수입은 50억에 육박하는데 이는 국내 프로야구 연봉순위 5위인 SK 이재원 선수의 지난 4년간 수입보다도 많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이용수 할머니 개인의 문제가 아닌 민족적 문제로 여겼고 정의연은 단순히 아군이라는 이유로 모든 면죄부를 받아왔다. 아니고서야 어떻게 30여 년간 회계장부를 저렇게 엉망으로 작성했는데도 단 한번의 지적없이 그 대표가 국회의원까지 되었겠는가. 

요코이야기를 쓴 작가 가와시마 요코는 1933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났고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같은 땅에서 같은 시기에 태어난 두 소녀의 삶은 B52 폭격기의 굉음과 덴노헤이카라는 외침이 뒤섞이기 시작하며 함께 망가지기 시작했고 전쟁의 시대는 그녀들에게 반백년이 지나도 씻어낼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겼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서로를 죽였고 탱크에 짓이겨지고 포격에 불타버린 수천만 구의 주검 앞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아픔을 술회하는 것은 흰 쌀밥에 고깃국과 함께 하나의 사치가 되었다. 매일 밤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그네들을 겁탈한 것이 몇 천 번 즈음 되었을까. 생의 마지막 장에서 죽음을 마주한 그들이 악몽의 기억들을 어렵사리 꺼냈을 때 그녀들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했던 것은 아마도 그런 일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외치는 무리들이었을 것이다. 그 두 소녀들 사이에서, 어떤 이는 누구의 아픔이 더 큰지를 따졌고, 어떤 이는 편가르기에 나섰으며 어떤 이는 그녀들을 내세워 큰 돈을 벌었다. 그녀들은 아직도 민족과 국가 앞에 개인이 지워지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비극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2020. 5. 12.

이준석, 실패한 갬블러

 
난 인터넷 커뮤니티나 페북을 잘 하지 않는다. 읽을 가치가 없는 글들에 너무 많이 노출되는 것도 싫고 또 멍청한 소리에 발끈해서 반박하느라 정작 훌륭한 글을 읽고 사색할 시간을 빼앗기는게 아까워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읽었다가 분노한 적이 딱 두번 있었는데, 한번은 아빠찬스를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왕세자 문준용님의 글이었고 나머지 한번은 박근혜와 밥먹고 지니어스 출연한게 인생의 최대 업적이신 이준석 최고위원님의 어제자 포스팅이다. 이 글을 단톡방에 두번이나 올려 억지로 읽게 만든 A야, 반드시 복수할테다.
 
민주주의에서 타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대단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단순히 경제적, 혹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누군가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사악한지 궁금하다면 8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한 나치가 자국의 소수파 시민들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떠올리길. 그리고 최근 정치색 강한 이들의 단톡방을 뜨겁게 달구는 21대 총선 재검표 논란 역시 그 대표적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논란은 대개 진영논리의 연장선상에 있기 마련이다. 민주당 지지자는 200석도 넘었어야 할 결과가 불과 180석 밖에 안 나왔는데 무슨 조작이냐 할 것이고, 또 보수 지지자들은 작년 여름의 광화문 집회와 커다란 규모의 반조국 시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라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진영의 논리도 아니며 상식/비상식의 문제도 아니다. 심지어 실제 조작이 있었냐, 아니냐의 문제도 아니다. 단지 선거인과 후보자의 권리 문제일 뿐이다.
 
우리나라 공직선거법 222조(링크)와 223조(링크)는 선거인과 정당, 그리고 후보자가 선거의 효력이나 당선에 관하여 이의가 있는 경우, 당해 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을 상대로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과 절차를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선거소송이냐 당선소송이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해당 조문들은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의 권리를 명확하게 보장하고 있고 나머지 조문들을 읽어보아도 그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법이 당신에게 보장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려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설득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선거가 조작되었다기보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용되던 선관위의 한심함이 드러난 것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생각을 재검표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강요할 권리가 내게는 없다. 그런 권한 따윈 대한민국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이준석은 반대파를 설득하기는 커녕 윽박지르고 있다.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려면 정치생명을 걸고, 유튜브를 걸고, 또 뭐 페북 아이디를 걸라고 하는데 그는 유권자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이지 갬블러가 아니다. 게다가 무리하게 판돈을 올려 블러핑으로 상대를 죽이려는 것이야말로 허풍센 멍청이들이 자멸하는 흔한 클리셰 아닌가. 게다가 그는 경찰수사관이나 검사나 판사가 아니라 이번 21대 총선에서 (또) 떨어진 한 후보에 불과한데 자신이 투개표 절차의 적합성 여부를 뭘 어떻게 입증한단 것인가. 정작 본인은 선거법도 똑바로 몰라서 공개토론회에서 망신당한 주제에. 당장 포털에 특정 제과회사 이름이 들어간 단어를 검색하면 빵 사진보다 선관위 사진이 더 많은데, 그럼 이준석은 선거과정중 위법적인 행위나 규정위반이 아예 없었다는데에 자신의 삼족을 멸하는 멸문지화를 걸 수 있겠나. (대신 나는 내 남은 정치생명과 파리바게트 포인트 카드를 걸겠다.)
 
그는 아마 미통당이 무너진 후 자신이 새로운 구심점이 될거란 희망에 가슴이 벌렁벌렁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보수가 무너진 것은 우병우와 김기춘 같은 꼰대들이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닫고 국민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며 계도하려고 들었기 때문인데 이준석이 보이는 태도는 그들과 똑닮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혹시 박근혜 키즈였던 이준석이 명맥이 끊어진 진박의 계보를 잇기 위해 불통 타이틀을 승계하려는 것은 아닐까.
 
NBA에서 Rookie는 데뷔한 해에 훌륭한 성적을 낸 신인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하지만 만년 중고 신인신세를 못 벗어나는데다, 경험도 없고 실적은 더더욱 없으며, 정치철학도 없는데다 유권자들과 맨날 쌈박질까지 벌인다면 그 루키의 미래는 대단히 어둡다. 심지어 이렇게 조언해 줄 측근조차 없다는 것이 그의 암담한 미래를 암시한다. 데뷔에 실패한 많은 루키들이 종종 스포츠 해설자로 전향하던데 혹시 이준석의 재능도 차라리 그쪽에 있지 않을까.
 
 
요새 가장 핫한 빵.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