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5.

미래를 예언한 영화들 1부 킹스맨과 브렉시트

대중의 영화취향을 들여다 보면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가늠할 수 있다. 사람들이 영화에 기대하는 바와 정치에 기대하는 것이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억압된 욕망을 해소시켜주며 돈을 끌어모으는 영화의 흥행방식은, 정치인들이 표를 끌어모으는 방식과 대단히 유사하다. 게다가 정치와 영화는 타겟층마저 똑같다. 누구나 극장에 갈 수 있듯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영국인들의 욕망이 투영된 이 영화, 킹스맨은 브렉시트의 전주곡이었다. 이제 그 노래를 다시 풀어보자.
맨 오른쪽이 평민 출신 주인공 에그시
영화는 잉글랜드 서민층의 신데렐라 스토리다. 주인공 에그시는 영국에서도 찢어지게 가난한 슬럼가 출신인데, 심지어 거기서도 골목대장 출신이나 범죄자 꿈나무도 아닌 그냥 찐따 똘마니로 나온다. 동네 깡패들에게 맞고. 엄마 남친 깡패 대장한테도 맞고. 맨날 맞는다. 그렇게 헬조선의 쌍팔년도 이등병처럼 쳐맞는게 일과였던 주인공은 갑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어쩌다 뭐 비밀 조직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금수저 도련님들을 만나지만 그들을 모두 제치고 구원자가 되어 폼나게 정장도 입고 스웨덴 공주한테 찐한 섹드립도 날리는, 출세한 개룡남에 등극한다. 이제까지의 스파이 첩보 액션영화가 영국의 젠틀한 젠틀맨들이나 피지컬이 우수한 몸짱들의 손에 이끌려왔다면, 킹스맨의 줄거리는 신박하게도 브리티쉬 찐따가 이끌어간다.(아메리칸 찐따가 주인공인 액션을 보고 싶다면 원티드를 보시라.) 잉글랜드 중하류충의 카타르시스는 마지막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서민들이 죽어가는데 자기들끼리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한손에 샴페인 잔을 든 고오급 상류층 사람들의 머리가 폭죽처럼 차례차례 펑펑 터지는 그 장면을 보며, 참수된 귀족들의 머리를 들고 환호하는 프랑스 대혁명을 떠올리는 일이 어렵진 않으리라.

이 대한민국 아침드라마 급의 신분상승 스토리는 스케일을 키워 국제적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바로 여기가 이 영화의 셀링포인트다. 현실 국제무대에서 영국이 주연에서 쫒겨난 지 수십년이 지났는데 영화에선 인류를 구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뭐 이정도의 국뽕가지고 뭘,이라고 넘기기엔 미국인 악당에 묘사가 너무 적나라하다. 발렌타인 박사는 혀가 짧아 발음도 이상한 영어를 구사하는데다, 손님에게 정찬으로 맥도날드 감자튀김을 내 놓는 경박스러움 까지 갖췄다. 이 모두는 영국인들이 평소에 미국인들을 조롱할 때 쓰는 전형적 클리세들 아닌가. 이 잉글랜드의 아메리칸 까기는 교회 액션 신에서 절정을 이룬다. 미국 교회는 종교적 관용도 없고 유색인종, 성적 소수자를 다 사탄의 아들로 싸잡아 비난하는 광신도 집단으로 나온다. 그 미국인들은 발렌타인 박사의 조종으로 미치기 전에 이미 반쯤 미쳐있다. 감독이 왜 이 액션 신을 쇼핑몰이나 극장, 혹은 학교가 아니라 교회로 잡았는지 생각해 보시라. 스크린 저 너머로 영국인 감독이 미국인들을 향해 내미는 중지가 비치지 않는가.

결국 킹스맨은 앞서 말한대로 영국 중산층이 상류층에게, 그리고 미국인에게 느꼈던 컴플렉스를 적나라하게 해소하는 신분상승 판타지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사람들이 바로 브렉시트를 주도한 계층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투표함의 개표가 끝났을 때 영국인들은(그리고 전 세계인들은) 이 투표는 영국을 반으로 가른 계급투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United Kingdum의 사실상 비주류에 속하는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중절모를 쓰고 거들먹거리길 좋아하는 런던의 잘난 젠틀맨들은 브렉시트에 반대한 반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잉글랜드 서민들은 영국이 EU를 떠날 것을 요구했다. 왜 그들은 영화속 에그시에게 열광하며 EU탈퇴를 주장했을까?

브렉시트 투표의 결과-노란색: 반대/파란색: 찬성
그 답은 영화 안에 있다. 영화 속에 간간히 비치는 몰락한 공장지대가 암시하듯 영국의 산업경쟁력은 후퇴하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금융과 같은 서비스업종이 메웠다. 영국이 21세기에 주력으로 삼은 이 신 사업에 자기자리 한켠을 차지하는 것은 고학력자 상류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이었으며 수많은 고졸 에그시들은 고향의 작은 펍에 앉아 낮에는 공을 차고 밤에는 펍에 모여 에일 잔으로 테이블을 두들기는 것으로 분노를 해소해야 했다. 청년 실업률이 20%에 이르고 세계 GDP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반세기만에 반토막나자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더욱 내려갔으며 이윽고 그들의 불만이 수면 위로 등장하게 된다. 성난 그들은 신분상승 포르노, 킹스맨을 보며 열광적으로 자위하는 동시에 현실세계에서 "강한영국"이 재건되길 원한다. 솔직히 그들은 브렉시트를 통해 어떻게 강한 영국이 되는지 별 관심이 없다. 그저 브렉시트를 추종하던 정치인들이 EU에서 탈퇴하면 영국이 더 부강해진다고 주장했으니 찬성표를 던진 것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관객이 킹스맨을 보고 나에게 저런 일이 일어날 확률을 계산한 뒤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듯, 대중도 브렉시트가 정말 좋은 것인지 생각하고 투표한 것이 아니다. 다만 막연하게 영국이 EU의 규제와 법령에 얽매이는게 싫다는 자존심 투표를 한 것이다. (그래서 투표 다음날, uk google의 최다검색어는 "what's brexit?"가 됐다) 전세계는 이를 두고 영국인들을 조롱했지만, 그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투표 저변의 심리를 깨달아야 한다.

킹스맨이 제공한 카타르시스, 그리고 무기력한 영국에 대한 대중의 분노. 이 둘의 뿌리는 맞닿아있었으니, 이는 바로 꺾인 잉글랜드의 욕망이요, 침전하는 중하류층의 꿈이었다. 전세계인은 영화를 보며 머리가 터지는 불꽃놀이에 열광할 것이 아니라 왜 첩보 액션영화의 주인공이 제임스 본드에서 깡촌의 문제아로 바뀌었는지 눈치 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문제는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어떤 영화가 트럼프의 당선을 예견했는지 보자.

댓글 1개:

  1. 이제 보니 원티드에서 아메리칸 찐따를 연기한 제임스 맥어보이가 영국 하층 계급출신이라는 점도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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