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1.

빼앗긴 구직시장에도 봄은 오는가

우리 2000년 전후 학번들, 특히나 명문대생들에게 취직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학교에서 취업설명회나 박람회가 열리면 해당 회사에 다니는 선배들이 아직 재학중인 후배들에게 문자를 돌리곤 했다. 관심있는 사람들이 너무 없어 심심하니까 부스에 와서 좀 놀다 가라고. 고시나 유학 석박사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기였던 터라, 선배 중 누군가가 삼성전자나 SK에 취업을 한다고 하면 "맞아 저 선배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지"하고 평가하기도 했다. 고시나 영어가 아니라 취업스터디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하지만 대충 살아도 잘 풀리던 시대는 박진영의 비닐바지나 HOT의 캔디 춤과 함께 사라졌고 지금의 20대는 취업이 입시만큼이나 힘들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데이터에 드러나는 청년의 실업난은 마치 백악기 말 대멸종 만큼이나 끔찍하다. 정부 발표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10-30대 근로자는 고작 2만여 명이 증가했는데, 50세 이상의 노동자는 무려 151만명 증가하여 사실상 그 5년간의 취업시장을 50-60대가 독차지한 것이다. 2 151. 이런 스코어는 20대가 60대 할배들과 농구시합을 해도 만들기 어렵다. 게다가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무참하게 두들겨 맞는 쪽이라니. 저성장 하나 만으로는 이 난수표같은 데이터를 설명하지 못한다.* 무엇이 20대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가.

벨제붑과 바알이 대한민국의 고용을 지옥으로 이끈 무기는 바로 최저임금이다. 청년실업은 정확하게 이 최저임금때문에 발생했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병신오인방을 다섯손가락으로 치면 중지쯤 되는 장하성 실장의 혁혁한 공로 덕에 최저임금이 왜 고용시장을 악화시키는지 설명할 노력을 아낄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최저임금이 만원이라는 말은, 생산성이 만원이 안되는 노동자들은 일하지 말라는 말이다. 학창시절에 경제원론도 똑바로 안 들은 멍청이들의 구호와는 다르게 값어치가 시간당 8천원 밖에 안되는 직원에게 시급 만원을 주고 고용할 회사는 없다. 어차피 만원을 줘야 한다면 진짜 만원어치 일을 하는 직원을 쓰거나 기계를 돌리지, 호구가 되고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적정한 최저임금은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하지만 현재의 최저임금이 오르는 속도는 이미 한참 전에 적정선을 벗어났다. 아래의 차트를 보자.
 
위의 난잡한 그래프를 보기 전 하나 퀴즈, 지난 30년동안 강남 부동산보다 더 많이 오른 것은? 답은 최저임금이다. 위에서 다른 선은 모두 잊어버리고 녹색 막대그래프만 보자. 노동운동이 결실을 맺은 이래 최저임금 상승률은 소비자물가보다 더 많이 올랐는데 이명박 정부를 제외하면 노무현-박근혜 정부는(이상한 조합이지만) 최저임금을 3-4배 더 올렸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 방점을 쾅 하고 찍었다.

언론에서는 최저임금이 고용 전반에 악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도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고용시장 내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시장에서는. 이 정책의 첫번째 호구는 단연코 구직자들이다. 기업이 신입사원에게 경력직의 연봉을 줄 수는 없으니, 그냥 검증된 경력직을 쓴다. 반면 누가 이득을 보는가? 모든 경력직들이 이득을 본다. 기업이 신입을 뽑을 수 없다면 경력직들을 계속해서 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한 코메디언이 이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모두들 경력직만 찾으면 나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 뭐 어쩌겠나. 나라에서 경력직만 쓰라는데. 최저임금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대강 정리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출처: 뇌피셜
 
최저임금은 취준생들의 영역을 갉아먹는다. 반면 대부분의 경력직들에게 그들 생산성 이상의 연봉을 주도록 강제한다. 동시에 기존 경력직 중 최저임금보다 못한 생산성을 가진 소수는 실직하게 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강력하게 쓰자 저소득층의 소득이 폭락한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 우리 회사는 신입을 거의 안뽑는 대신 고연봉을 주지만 만약 최저임금이 시간당 뭐 한 5만원쯤 되면 우리도 신입을 못 뽑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는 절대로 나를 자르지 못한다. 적어도 최저임금이 내 연봉을 상회해서 폐업하는게 이득이 되는 그 날까지는. 이것이 모든 회사 모든 산업 모든 업종에 걸쳐 벌어지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지지하는 단체를 보라. 40-50대가 주축인 생산직 노조들이고 그들이 현 정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이다. 20대가 그들의 주장에 동조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지지한 것은 자기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래의 그 증거를 보자.
 

20대의 실업률은 최저임금을 따라 비명을 지르고 있다. 박근혜정부에서부터 최저임금이 물가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상승했고 그 결과 전체 실업률은 대단히 안정적인데 비해 청년실업률(파란색)은 고점을 깨고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다. 같은 기간 전체실업률(빨간색)은 매우 안정적인데 저기서 20대 실업률을 뺀다면 빨간색 선은 되려 더 낮아졌을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실업 데이터를 들여다 보는 것은 마치 전쟁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다. 청년들의 젊음을 무의미하게, 또 끝없이 소모시키는 동안 중장년의 장성들이 뒷짐지고 성과를 논하고 있으니. 안타깝게도 당신의 실업은 내일이면 잊혀질 숫자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를 계급간의 투쟁으로 보았다. 나 역시 그 시각에 동의한다. 그리고 전쟁에서는 올바른 전선을 택하는 것이 승패를 결정짓는다. 누군가는 그 선을 남/녀에 그을 것이고, 누군가는 남/북으로 또는 빈자와 부자로, 혹은 화개장터 어드매로 그을 것이다. 과거 20대들은 모든 대선투표에서 노동계와 연대해서 싸워왔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이 역대 최다 격차로 여당 후보를 꺾었을때도 20대는 가장 진보적인 세대로 남아있었다. 나 역시 내 20대 그 어느 해에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했고 그에 따라 표를 던졌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20대가 나눠준 열정과 땀을 삼켜 힘을 얻은 4050대 노조들은 일자리를 독점했고 순진했던 젊은 세대는 직업을 잃고 또 비전을 잃었다. 20대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는 결국 일자리였는데 그들은, 그리고 한때의 나는 전선을 잘못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일자리를 얻고 내 후배들이 얻지 못한 것은 순전히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예전에 썼던 한 글에서 나는 20대들은 과거엔 취업이 쉬웠다고 불평하면서도 그시절 구직자들이 얼마나 낮은 생활수준과 나쁜 근로여건을 받아들였는지 간과한다고 비난했지만, 나 역시 그 나이때는 알지 못했다. 전적으로 그들을 탓할수만은 없다.

최근 20대들 사이에서 보수적 여론이 높아지는 이유는 군사정권때 교육받은 쌍팔육(486/586)들 주장처럼 못 배워서가 아니라 좌파꼰대들과 자신들 사이에서 뭔가 날카로운 간극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최저임금의 두번째 피해자는 20대의 반대편 극단의 6070대들, 노령으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황혼세대라는 것이다. 4050대에게 빼앗긴 일자리를 두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연대하는 것을 아버지 세대가 혀를 끌끌차며 조롱하는 것이 오늘의 정치다. 문재인의 당선 이후 최저임금이 물가상승률을 6배가 넘었을때, 노조들은 강원랜드에서 잭팟을 터뜨린 양 축배를 들었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강남 재건축 아파트보다도 빨리 오르는데. 그 승리를 멀찍이서 박수쳐주다 돌아선 20대들이 마주해야 했던 것은 취소된 공채 일정과 서류탈락 통보문자 뿐이었다. 그들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라도 해주고 싶지만 미안하게도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6070대들은 하나 둘 씩 스러져 줄어들 것이고 전 연령층 중 가장 투표 안하는 20대들은 미래에도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이 청년들은 당차게 사회로 한 발을 내딛으며 누구에게 힘을 빌려줄 지 고민했겠지만 정작 자신들이 도움을 필요로할 때 누구도 손내밀어주지 않았다. 그들의 정치적 패배는 계속될 것이고 좌파꼰대층의 최저임금을 통한 일자리의 독점 역시 계속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내 한표와 이 레퀴엠같은 글 하나 뿐이다.

(아멘)

 
*무엇보다 저성장은 단기적 실업을 설명할 뿐이지 십년이 넘게 이어지는 장기실업을 설명하지 못한다. 학파간 시기에 대한 견해차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수요공급 시장이 그렇듯 고용시장도 수요가 줄면 가격이 내려가 다시 균형점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청년실업은 장기간 이어졌다. 지난 15년간 경제성장률이 OECD평균보다 높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기간을 통틀어 악화된 청년실업률은 경제성장의 문제가 아님을 의미한다.
 
**최저임금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크고 여기에는 많은 경제학자도 동의하며 나 역시 최저임금 제도를 지지한다. 하지만 세상에 장점만 있는 제도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아주 급격하게 올린 최저임금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댓글 11개:

  1. 물론 좋은 대학이라기엔 부족하지만 그래도 어디가서 부끄럽지는 않은 서성한 라인 대학생인데 알바조차 없어서 물류 알바를 뛰고 있습니다. 물류가 아닌 알바는 자리 자체도 군대 다녀온 사이에 체감상 1/5정도로 줄었고 그나마도 주휴수당 때문에 주당 2~3일만 일할수 있습니다. 가끔 너무 막막한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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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족하긴요. 제 자녀들이 서성한에 갈 수만 있다면 저는 더할나위 없이 기쁠것 같네요. 그리고 만약 1993년생 이하라면 너무 걱정마세요. 혹시 그 이상이라면 독하게 마음먹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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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93년생 기준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저는 그 이상의 대학생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계속해서 읽어보며 공부하겠습니다.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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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앞으로 이러한 잘못된 조치를 되돌리는데 적어도 5년은 걸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5년 뒤에 만으로 30세를 넘지 않는 마지노선의 나이가 93년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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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직설적으로 더민당대신 자한당을 찍어야 해결이 되는 부분인데, 솔직히 야당쪽에 표주고 싶은 사람도 없어서 (저는 보수당에 표를 주지만) 남한테는 추천하기도 어렵죠... 아마 결국 투표장에서는 욕하면서도 다들 더민당에 표를 주지 않을까요... 마치 대운하는 반대지만 이명박 대통령 찍은 사람 많았던 것 처럼요. 그럼 취업 문제는 정말 심해질거고 아마 90~00년대생은 잃어버린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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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필력이 아주 좋으시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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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필력이 너무 놀랍습니다. 익명으로 쓰시는 줄 알지만 혹시 연락을 드릴 방법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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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재작년에 쓴 글과는 서론은 같으나 원인분석이 완전 달라졌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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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작년까지만 해도 주 52시간제 등의 엄격한 적용이 없었기 때문에, 취준생들은 실제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최저임금 이하로 임금을 낮출 길이 있었습니다. (계약상 52시간 근로계약을 맺고 60시간 근로 등) 그때는 취업은 취준생들의 의지 문제가 컸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취준생들에게는 아예 아무런 대안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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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너무나 슬프고, 한편으로 마음 속 깊이 분노를 자아내는 레퀴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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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현재 경영대 3학년 입니다! 현상에 대해서 대충 그리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분석된 글로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생각하봐도 정말 20대 스스로 사지로 몰고 간거는 너무 안타깝네요... 왜 그렇게 선전에 다들 약한지.. 하지만 그래도 아무리 어려운 역사 속에서도 매 순간 성공하는 사람들은 존재했기에!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사회 탓만 하며 주저 앉지는 않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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