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6.

샐리와 앤 실험, 그리고 사회적 자폐아들

 


-공을 가지고 놀던 샐리가 공을 바구니에 넣고 방을 떠나 산책을 나갔다. 

-그 사이 앤은 그 공을 꺼내 상자에 넣었다. 

-산책에서 돌아와 공을 찾는 샐리는 바구니와 상자 중 어디를 열어볼까?


이 간단한 질문은 자폐증을 진단하는데 쓰이는 테스트 중 하나인데 자폐아들은 대개 샐리가 바구니가 아닌 상자를 열어볼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방을 떠나 있던 샐리가 공이 이동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폐아들은 공이 상자 안에 있으므로 샐리 역시 상자를 열어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자폐아들만이 이런 성향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발달단계 초기에 있는 5세 이하의 아동들도 때때로 샐리-앤 실험에서 잘못된 답을 고르곤 하는데 아직 자아개념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자폐아나 5세 이하의 아동뿐 아니라 성인에게서도 흔히 나타난다.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삼촌들이 왜 그토록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로 삼촌들은 왜 조카들이 민주당에 반대하는지 헤아리지 못한다. 여성은 남성의 좌절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내가 일반 대중이 왜 금리 인상을 저토록 바라는지 납득하지 못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한국의 철수와 영희뿐 아니라 북미의 샐리와 앤에게서도 발생하고 있다. 어째서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을까.

나는 점점 파편화되는 사회가 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더 이상 나란히 앉아 TV를 보지 않으며 가족의 범위 역시 점점 좁아져 삼촌과 조카는 예전처럼 대화를 오래 나누지 않는다. 전라도 광주에 사는 큰고모와 대구 수성구에 사는 막냇삼촌이 대전에 모여 함께 명절을 쇠는 집도 줄어들고 있으며 한 자녀 가정의 비율이 늘어나 딸에게는 오빠가 없고 아들에겐 누나가 없다. 그렇게 나와는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을 이해할 기회마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동물인 그들은 외로움을 피해 커뮤니티를 찾아다니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매우 동질적인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온라인 사이트든 페친 목록이든 유튜브 채널이든 정당이든 간에. 

그렇게 우리는 타 집단을 이해하는 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샐리는 샐리와만 어울리며 앤은 앤들만 만난다. 그래서 바구니에 손을 넣은 샐리는 늘 화가 나 있고 상자 앞에 선 앤은 샐리를 조롱하기 바쁘다. 하지만 사회적 자폐아로 점차 퇴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둘은 매우 닮았다. 코로나로 사회활동이 극도로 제약된 지 어느덧 1년 반이 지났고 그 결과 자산 가격과 소득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더욱 극으로 치닫고 있다. 생물학적인 바이러스에 대항하여 백신을 개발하고 항체를 형성한 우리는 조만간 집단면역에 도달하겠지만 개인과 개인이, 그리고 집단과 집단이 자발적으로 자가격리에 나선 가운데 코로나처럼 번지는 사회적 자폐증은 어떻게 극복할까.


하기야 그 흔한 sns조차도 하지 않는, 할 줄 모르는 나야말로 가장 고립된 이 아닌가.

댓글 38개:

  1. 과거에는 심리적, 정신적 거리감이 있었다면 지난 4년은 물질적 거리감까지 더해져 더 이상 이해하려, 이해하고 싶지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와 기준이란게 망가지면서 진심 한번도 보지못한 나라가 되었는데, 우리 후손들에겐 당연한 세상이 될듯 하네요
    그 와중에 이주열은 역시나 한결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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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년이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사라져 물가상승률이 1.5%라 목표치를 하회하지만 인상한다는, 그 바보짓을 안할까봐 한참 마음 졸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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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늘 하루종일 의사봉을 치며 웃던 이주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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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난 6주간 얼마나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냈을까요. 나는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제반여건이 따라와주지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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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알고리즘이 참 무서워요….
    저도 저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 딴지일보랑 북유게 가끔 들어가 보고 그들의 생각을 때론 곱씹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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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유게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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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극단 친문사이트 있습니다. 문재인을 우상숭배하는 무지성 지지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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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는 어르신과 오늘 대화 할 일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금리인상을 되게 좋아하셔서..
    왜 그러냐 여쭸더니

    "금리 오르면 집값내린다. 내리면 나도 집 살 수 있다."
    이런 이상한 대답을 하시더군요.

    당신처럼 집값이 내리면 사려고 준비하는 사람들 때문에 집 값은 내리지 않는다고 설명해줘도
    당최 이해를 못합디다.. 안타까웠습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러시는것도 이해를 하는데, 문제는 젊은 사람들 중에도 상당수가
    비슷한 사고로 생각을 하더라구요.

    뭐.. 이주열을 비롯한 한국은행 사람들의 생각하는 수준이야. 주인장께서도 매번 비판해주셨으니 그러려니 하지만서도.
    그냥 대중들 조차 금리인상 = 집값하락 이거말고는 아무것도 생각을 못한다는게 참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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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이든 세대는 대개 고금리를 선호합니다. 호르몬의 영향이 안전자산을 선호하게 만드는데 안전자산의 수익률은 전적으로 기준금리 연동이라서요.

      젊은 세대야 고금리를 선호하면 어떻게 되는지 곧 배우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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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빈대를 잡기위해서 집을 태우는게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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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확하게 말하면 집을 태우는게 목적인데 빈대 핑계를 대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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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선배님 글이 정말 좋습니다. 매번 감탄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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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볼때마다 참 글을 잘쓰시는거 같으시네요 존경스럽습니다. 혹시 블로그외에 다른곳에 글을 올리시나요? 그리고 이번 잭슨홀을 보니 fed는 아직도 경제 성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인플레이션는 일시적일것을 주장하는 반면 한은은 이번에 금리인상을 하고도 연말에 한번 더 금리를 인상해야한다는 한국은행 어떻게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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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블로그 외엔 글을 올리는 곳은 없습니다. 인터넷이라는 넓은 공간의 구석 한켠에서 혼자 끄적이는게 가장 편해서요.

      Fed와 한국은행의 목적이 달라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연준은 물가안정보다 고용을 우선하고 있고 한은은 물가안정보다 금리인상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말이 이상한게 아니라 한은의 행동이 이상한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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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렇군요 경제를 정말 좋아하는 고등학생인데 이 블로그보고 정말 많이 배우는거 같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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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고등학생의 질문이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습니다 대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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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주인장님 실례지만 혹시 카톡도 안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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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제가 그렇게 보였나요? ㅋㅋ 그정도로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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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회사에 입사를 했더니 담당 선배가 DKM 인 것 같습니다.
    직속은 아니고 한 2주정도 교육하고 끝날 것 같긴 한데 그동안 심히 괴로울 것 같네요.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회사인데 어째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신입 교육에 배치 된 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고 여하간 멘탈이 나가버릴 것 같네요.
    회사가 병들어 버린 걸까요? 교육이라서 말을 안 할 수도 없고요...고과에 영향을 줄까봐요.
    이걸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그냥 티를 내고 다녀요 뻔하게. 신입도 알 수 있을 정도로요.
    진짜 왜 그렇게 티를 내고 다닐까요? 그렇게 하면 주변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은데요
    회사 이미지도 마이너스고.
    한편으론 제가 사회적 자폐아가 된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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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선배 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번영을 가져올거라고 믿지만 그걸 온전하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유교가 종교로 분류되는 것처럼 이념은 종교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서로 종교가 다른거에요.

      제가 이 블로그에서는 그들의 위선적인 면이나 이율배반적인 면을 지적하고 조롱하기도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냥 잘 지냅니다. 나와 다른 신념과 종교를 가진 사람과도 잘 지내는 것도 사회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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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넵 선생님 말씀이 맞는것 같습니다. 전 그냥 조용히 지낼 수만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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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안녕하세요. 선생님.
    금리 인상과 관련해서 선생님 블로그 글,다른 부동산이나 경제 전문가 분들의 공통된 의견을 보며 저의가 느껴지는 금리 인상에 대해 직장인 커뮤니티에 글을 썼는데요.

    놀랍게도 선생님 말처럼 대중들은 금리 인상을 원하고 있더라구요. 나름 배운 사람들이 많다는 커뮤니티인데도...

    많이 충격이었습니다.잘 이해가 되지않고 제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제가 이상한건지 그들이 이상한건지 의문입니다. 이토록 커뮤니티나 공간에 따라서 의견이 180도 다른 수 있는지요ㅠ

    본문 글이 좀 가벼운 논조인데 댓글은 최대한 자세히 달았습니다. 선생님이나 다른 분들이 보시기엔 어떤지 궁금합니다.

    [Blind]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 보셨어요?
    금리 인상은 누굴 위한 것인가 (부동산)
    https://kr.teamblind.com/s/0isbyA5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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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방역을 위한 락다운은 경제주체들에게 극단적으로 다른 영향을 끼칩니다. IT나 게임주 반도체는 초호황을 누린 반면 여행/관광/레져 분야는 파산이 이어졌고 자영업자들의 처지는 말할것도 없고요. 그리고 블라인드의 주 이용층인 대기업 직장인들은 전자에 속합니다.사실상 코로나로 인한 피해를 전혀 입지 않고 월급도 꼬박꼬박 받은 사람들이죠. 아, 재난지원금까지 챙겼네요. 그들 중 위험자산에 충분히 투자한 사람들은 소수일테니 대다수가 급격하게 오른 자산가격을 보며 배아파고 있을 겁니다.

      결론적으로 배아픈 사람들이 배고픈 사람들을 외면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 뿐이죠. 막상 통화정책의 때이른 긴축으로 자신들의 회사가 하나투어 아시아나 항공처럼 부도위험에 처해 자신의 직장이 사라질 위기를 마주한다면, 그래도 그들은 한은이 긴축해야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걸 이해시키기란 아예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나의 이해득실이 곧 사회의 정의라고 믿거든요. 그들의 믿음을 바꾸는 것은 논리와 지식이 아닌 손실입니다. 제가 무명의 블로그에서 혼자 끄적이는 이유도 그와 같습니다. 그들과 너무 논쟁하려들지 마세요. 시간낭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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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예상은 했지만 절 이상한 사람 취급하길래 충격을 좀 먹었었습니다. 전 정말로 주위의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걱정되서 화가 났거든요.

      선생님 말씀대로 오히려 코로나로 재택근무에 월급에 재난지원금까지 부가 늘었으니 외면하는게 당연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들의 진심은 오른 자산가격이 배아픈 시기 질투라는걸 조금 엿봤습니다.

      위 댓글을 남기고 난 후 그들과 논쟁은 시간낭비라는걸 깨달았습니다. 다시한번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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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아, 물론 제 댓글이 이상할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최대한 반대 사이드도 이해하려고 합니다만 저도 욱해서 감정적인 댓글을 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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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저런 인간들이 많을 것 같아서 구역질이 나는군요. 공부를 하고 말을 하라는 댓글도 있던데 보면서 얼마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던지... 공부 해봤자 뭐 본인이 얼마나 안다고 ㅋㅋ 공부하면 할수록 끝이 없더만 ㅎ 그런 분들은 공부 안했다가 재앙적 손실을 봐야 정신좀 차리실것 같네요.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면 곱게가면 안될건데 말이죠. -다른 대기업 직장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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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한 번 건보를 납부하는 부모님께 여쭤 봤습니다. 그만큼 내시는게 아깝지 않으신가요?
    저는 20대로서 건보나 국민연금을 납부하는 구조에 커다란 의문이 있었지만, 부모님께서는 다 같이 사는 세상에
    그것을 아까워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고 그것을 사회에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으로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구조에 대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납부하는 시민의 납세저항이 발생하지 않는지 의문은 해결됐습니다.)
    부모님은 당신들의 어릴 때 이야기를 해주시며 왜 국민의 힘에 대해 강한 비토를 보이시는지,
    민주당을 지지한 이유를 이야기 해주시며 어느 정도 이해는 갔습니다.
    (시골이라 고무신 막걸리의 부정선거가 80년대 90년대에도 ㅋㅋ)
    아무튼 부모님과의 공통점은 "남의 돈을 함부로 써서는 안됨" 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불법적 축재한 재벌집단을 개혁 해야 한다 생각하고,
    저는 조세와 준조세를 거둬 축내는 국가를 개혁 해야 한다 생각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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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저는 이주열이 절대로 미국보다 먼저 금리 인상을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준선진국(?)중 제일 먼저 올리네요 한국이 이토록 호키시할 이유는 집값밖에 없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그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워먹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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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준선진국이라뇨.. 경제규모만 좀 클뿐 의식수준은 개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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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hhmm님 안녕하세요, 독자입니다. 시간 되시면 홍준표 후보 한번 다뤄주실수 있을까요? 트럼프 같은 이미지로 요즘 마니아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보수의 희망으로 이번에 경쟁력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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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준표로는 본선 절대 못이기죠... 경선도 못뚫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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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경쟁력이 가장 낮은 후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지금 지지율도 과대표집 된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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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여기 계신 분들은 민주당 정책을 지지하는 분은 안계실 테고(특히 안보, 경제 분야)
      야권 윤석열과 홍준표가 투톱인데 그간 둘의 토론을 보면 윤석열은 짧은 정치경험과 대선준비로 본인 정책에 대한 이해부족 모습을 보인 측면이 많았고 가족 리스크(장모,부인,부친) 또한 무시할수 없네요
      이에 비해 홍준표가 경쟁력이 낮아 보이진 않는데 뭐 어쨋든 정권은 바뀌겠죠 야당 후보 누가됐든
      이번에도 안바뀌면 노답나라 떠나겠습니다. 어자피 100년 뒤면 인구 1500만명 된다고 통계나왔는데
      출산율 이대로면 어자피 망할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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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HHMM님 안녕하세요, 최근 쇼킹한 기사 하나를 봤는데 이걸 다뤄주실수 있나요?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421&aid=0005566062
    약간 충격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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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터넷이 발달하며 계층구분이 지역이 아닌 세대나 성별 등으로 재구성되는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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