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21.

미래를 예언한 영화들 2부 주토피아와 트럼프

대중의 영화취향을 들여다 보면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가늠할 수 있다. 그 이유는 1부(링크)에서 설명했으니 생략하자.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고작 디즈니 만화영화가, 그것도 발랄하고 귀여운 토끼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트럼프가 힐러리를 누르고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을 예언했을까.
주토피아의 주인공 주디, 그리고 격분한 트럼프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주디는 각고의 노력 끝에 경찰 뱃지를 달게 된다. 하지만 딱 봐도 강력한 남성미를 뿜뿜 풍기는 포유류들이 가득한 경찰서에서 작고 가녀린 그녀에게 진짜 사건을 맡기는 사람은, 아니 동물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우연히 몇몇 동물들이 갑자기 이성을 잃고 야만적으로 돌변하는 사건을 추적하게 되었고 파트너 닉의 도움으로  함께 수사를 펼친다. 몇번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그들은 이 사건의 이면에 모종의 음모가 숨겨져 있음을 찾아낸다. 그것은 바로 시장의 비서였던 작은 양 벨웨더가 육식동물들을 문젯거리로 만들어 사회에서 배제하기 위해 그들이 이성을 잃고 본성을 드러내게 만드는 약물을 사용했다는 것. 주디와 닉은 교묘한 연기로 벨웨더의 음모를 밝히고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귀여운 주디의 외모와 재치넘치는 위트 덕에 놓치고 지나가기 쉽지만 사실 이 애니메이션은 사회 구성원들의 생물학적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 애초에 주디에게 경찰다운 일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그녀가 생물학적으로 토끼이기 때문이었고 닉이 자신의 꿈을 버린것도 영악한 여우였기 때문이다. 하울링을 따라 하는 늑대들도, 느리게 일을 처리하는 나무늘보도, 시기심 많은 양도, 시장인 사자도 모든 등장인물들의 본성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생물학이고 그들의 DNA이다. 애니메이션은 주디의 입을 빌려 그 점을 명확하게 지적한다.(링크) 포식자들에게는 그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포악한 사냥의 본성이 존재하고 그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독특하게도 주토피아에서는 핍박받고 탄압당하는 쪽이 강한 포식자다. 음모를 꾸민 벨웨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초식동물들)는 늘 무시당하지, 그래, 육식동물들은 힘이 세. 하지만 포식자와 피식자의 비율은 1:10이야, 사회 구성원의 90%가 공공의 적에 대항해 뭉친다고 생각해봐.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어"(링크) 자연상태에서는 피식자가 아무리 많아도 포식자를 누를 수 없다. 라이온킹에서 미어캣 열마리가 사자 심바를 학대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민주주의 아래서는 다르다. 다수결에 의해 통제되는 주토피아에서 약하고  남성성의 반대편에 서 있는 양이 유전적으로 더 강인한 야수들을 핍박하고 통제하는 것, 그것이 이 서사의 핵심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교묘하게도 우리로 하여금 맹수가 보잘것 없는 피식자들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이 애니메이션이 미국에서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끈 데에는 귀여운 주디의 외모 뿐 아니라 약자가 강자를 억압하는 아이러니한 서사가 미국의 주류 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의 미국인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에겐 안되는 것도 많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같은 소득수준에서도 인종에 따라 교육열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함부로 지적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어린 침팬치 수컷과 암컷들조차 성에 따라 좋아하는 장난감이 다르지만 미국의 PC들은 그와 같은 생각은 관습적 성역할을 고착화시키는 잘못된 관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fireman, policeman과 같은 단어는 fire fighter, police officer로 대체되었고, 남미에서 건너오는 불법이민자를 막자는 지극히 합법적인 주장을 펼치려면 무식한 텍사스 레드넥이라는 비난을 견뎌야만 했으며, 중국에서 건너온 코로나를 중국코로나라고 부르는 것은 인종차별적이라는 비난을 듣게 되었다. 어휴 피곤해.

미국의 주류 백인들은 급격하게 늘어나는 이민자들의 숫자로 인해 계속해서 자신들의 권리가 줄어드는 데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말과 행동을 과도하게 구속하는 PC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극장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봤을때 무엇을 느꼈을까? 주토피아는 현대 인간사회와 너무나도 유사하고 유전적 차이가 존재하는 다양한 동물들이 혼재된 도시는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과 닮았다. 영화 초반부터 여러 동물들이 등장하는 추격 신을 떠올려보라. 파키스탄인이 우버를 몰고, 유태인 사업가가 승객으로 탑승하며 그 옆을 한 아시안 비즈니스맨이 바쁘게 뛰어가고 또 베네수엘라에서 온 대학생이 파트타임으로 커피를 내리는 뉴욕의 일상과 닮아있지 않은가. 이성을 갖춘 동물들의 사회, 종에 따라 각자 다른 본성을 지닌 동물들, 그리고 그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약점이 되는 곳. 미국 어린이들에게 주토피아는 판타지 만화였지만, 어른들에게는 현실을 모방한 우화였다. 이에 열광한 미국인들이 불과 몇개월 뒤의 대선에서 입으로는 힐러리를 찍겠다고 응답하면서도 실제론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실(링크)과 무관하지 않다.

감독 바이런 하워드는 한 인터뷰에서 이 애니메이션이 기존의 동물 의인화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는 영화의 대표 OST에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난다. 도입부에서 주디는 "In Zootopia, anyone can be anything!"이라고 외치지만 결국 영화는 "Try everything"으로 마무리된다. 당신의 배경과 상관없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같은 외침으로 출발한 영화가 그저 시도나 해보라는 무책임한 말로 마무리된다는, 그런 비관적인 전개를 발랄하게 포장한 것 뿐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결국 생물학적 본성을 극복한 것은 끽해야 주인공인 주디와 닉 뿐이고, 주목받지 못하는 기타 모든 조연들은 그들의 DNA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가. 심지어 주디의 부모조차도. 참고로 주토피아의 줄거리는 원래 더 어두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로 바꾸라는 경영진들의 주문때문에 현재처럼 밝고 쾌활한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하니 내 짐작이 근거없는 억측만은 아닐 것이다.

본디 더 어두웠던 주토피아의 스토리 라인

사족1: 애초에 이 글을 구상한 것은 4년 전이지만 제목만 써두고 내 게으름 덕에 완성하지 못할뻔 한 수십개의 빈 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 미래를 예언한 세번째 영화가 나온 덕에 귀찮음을 이겨내고 두번째 편을 완성했다. 그런 의미에서 세번째 글은 미래가 실현되기 전에 미리 올리련다. 

사족2: 주디 너무 귀여움 ㅠㅠ 

댓글 9개:

  1. 3번째 영화의 배경은 한국이지아닐까싶네요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네이버나 카카오의 웹소설의 최상위권은 대부분 회귀한 먼치킨 류의 소설들이며, 댓글들을 보면 대중들은 열광하고 현실에 감정이입하고 분노하죠.

    그런 감정을 이용해서 지난 과거를 돌리고싶은 대중들에게 넌 그동안 어쩔수없이 지금 이모습따위로 살게된거야 넌 잘못한게 없어!! 다독거리며 달콤한 면죄부 던져주고, 앞에서는 영웅인척 뒤에서는 온갖 짓거리로 뱃속을 채우는 위선자패거리가 떠오르네요

    답글삭제
  2. 요즘 아예 말을 못하게 막는 풍토가 답답하네요. 말하다 보면 잘못되거나 논쟁거리가 있을 수 있는건 자연스러운건데, 우루루 몰려와 못배워먹은 천하의 나쁜놈으로 만드니까 무서워서 암말도 못하겠음...

    답글삭제
  3.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혹자는 앞으로 더더욱 PC에 잠식당해서 표현의 자유가 질식당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도 하고

    아니다, 미국 유럽등 서구권에서 이렇게 부작용을 겪어본 것을 다수가 알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더 심해지진 않을 것이다 라는 주장도 하더군요

    요새 돌아가는 꼴을 보니 전자인 것은 아닐까 해서 가슴이 답답하긴 하네요...

    답글삭제
  4. 선생님 자주 올려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아무리 독서량이 많다 한들 이런 글재주는 타고난것이 아니면 불가능할거 같네요 언제나 글 잘보고 잘 배우고 갑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운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5. 경제쪽에서 일하시는 분이라서 굉장히 딱딱한 글만 쓰실줄 알았는데 이런 문학적 갬성을 자극 하는 글도 너무 좋습니다.제가곧 군대를 가야되는데 혹시 한국 징병제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좀 듣고싶습니다.

    답글삭제
  6. 와...... 이렇게 도출되는 것도 그리고 마무리 하시는 것도
    정말 멋집니다.

    답글삭제
  7. 예전 대공황 시절 황화론이 부상했는데(저급일자리 장악 + 저렴한 중국농작물) 지금 지표상으로는 대공황이나 다름없는 지금 황화론과 다름없는 이야기를 트럼프가 하고 있다는 걸 보면 사람의 본성은 불변인 듯 합니다.

    PC 자체가 본성 억압인데 공산주의 만큼 허황된 이론이죠 금주법 시절 때 여성참정권을 얻은 페미여성들이 도끼를 들고 술집을 공격하던 사례와 주토피아는 참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3편이 기대되어지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8. 글 마지막 문단 Try everything 부분부터 잘 이해가 안됩니다..
    개인적으로 주토피아는 감독이 진짜 PC는 이런거야 세련된 PC를 보여주겠어 라는 메세지와 함께 기존 PC에 대한 비꼼은 있지만 결구에는 PC 테두리안에서 하고싶은말을 하는것 같았거든요

    Try everything은 결국에는 편견에 갇혀있지말고 뭐든지 시도해보라는 메세지였던거 아니었나요?

    답글삭제
  9. 선생님 생각하신것처럼 생각을 못했는데 저에게는 너무 새로운 접근이네요
    원래 어두운 내용이었다고 하니 설득력이 있는것 같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