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뒤엎는 선거결과와 함께 백인 진보층의 위선이 들어났다. 경합주, 혹은 민주당이 우세할 것으로 보였던 지역 중 진보 백인들이 주를 이룬 미시건, 위스콘신, 펜실베니아 주는 여론/통계조사와는 달리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두가지 뿐이다. 여론조사의 표본과 실제의 오차가 컷거나, 아님 그 표본이 거짓말을 했거나. 하지만 미국 대선은 가장 정교하면서도 방대한 통계와 백데이터를 기반으로 여론을 조사하기 때문에 전자의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나는 후자의 가능성을 높게 본다. 고학력자인 북서부 백인들은 '나는 남부 촌뜨기 카우보이들과 다르다'라고 주장하며 힐러리를 지지한다고 응답했지만 실제 투표장에 가서는 트럼프를 찍었다. 개표와 함께 들어난 그들의 민낯은 텍사스 카우보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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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인들은 트럼프를 지지했나? 이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떠맡을 역할이 21세기에는 달라질 것을 암시한다. 미국은 세계 주요 국가 중 세율이 높은 편에 속하면서 가장 형편없는 복지 시스템을 가진 나라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국민의 세금을 각종 국제기구의 분담금과 군비에 쓰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국인들에게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라는 선민의식을 심어주며 과도한 부담을 강요했으나 이제는 이 모델에 한계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인들은 세계화라는 가치를 위해 손해보며 FTA를 맺는데 이골이 낫고 더이상은 자국 군대를 해외에 파병하는데 돈을 쓰고 싶지 않다고 외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오바마케어와 트럼프의 고립주의는 국제사회에 퍼붓는 비용을 줄이고 내국민에게 쓰겟다는 점에서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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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수많은 SNSer들이 주장하던 것 처럼 트럼프의 당선은 멍청함의 승리일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멍청한 것이다. 그들은 트럼프의 공약이 무엇인지 거의 모른다.(불법이민자를 추방하고 멕시코 국경에 담장을 건설한다는 것 외에는) 트럼프 본인이 이해하고 세운 정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가 내세운 두 핵심 경제공약-재정지출 확대와 금융규제 철회는 지금 현대경제가 마주한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처방이다. 대선결과에 비통해하는 노벨 경제학 수상자 폴 크루그먼(직업: 민주당원. 취미: 경제학)조차도 재정지출의 확대와 통화정책 지원을 강조해왔다. 더욱 웃긴건 트럼프를 얼간이 악마로 취급하던 SNSer들은 자기가 지지하던 힐러리의 공약에 대해선 더더욱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힐러리가 패배한 가장 큰 원인이다. (그리고 얼간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SNSer들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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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승리로 미국마저 극우의 나라가 되었나? 천만의 말씀. 미국은 본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국가이다. 카톨릭에서 파생한 근본주의자들이 기독교고 그중에서 더 극단적인 이들이 탄압을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했다. 미국은 국민의 40% 이상이 아직도 창조론을 믿고, 불과 15년전만 해도 유명 아이돌 소녀가 혼전순결을 지키겠다고 선언했으며(물론 안지켰지만) 미국의 43대 대통령은 아프간을 침공하며 이를 "십자군 전쟁"이라고 명명했다.(그러면서도 서방세계는 십자군전쟁을 일컫는 이슬람 용어인 '지하드'라는 단어를 범죄와 동의어로 취급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든 말든 살았든 죽었든 미국인들은 본디부터 근본적 극우 극단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었으나 자신들이 세계의 경찰이라는 선민의식으로 이를 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참고로 북한, 시리아 등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힐러리보다 트럼프가 더욱 온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트럼프의 승리가 전쟁을 불러올 것을 암시하는 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SNSer들의 무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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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대상을 한국인들로 한정해서 보면 더욱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수 있다.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 결과에 가장 분노하고 있는 세대가 바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투표를 안하는 세대라는 것이다. 이 정치적 3무세대(무생각/무경험/무지식)의 오지랍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바로 그 3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정치는 매우 복잡한 다차원의 방정식이다. 모든 경우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 따위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가치관을 서로 재보고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후보를 선택해야한다. 하지만 2030대는 정치를 단순하게 선과 악의 대결로 바라보려한다.(왜? 생각하기 귀찮고 아는것도 없고 공부하기도 싫으니깐) 그러니 각 후보의 공약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트럼프는 악, 힐러리는 선이라는 구도를 만든 뒤, 아하 하며 넘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겐 미 대선의 결과가 악당이 승리한 디즈니 만화영화의 결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유아들은 시청자 게시판 대신 sns를 뻘글들로 도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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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당과 미국의 민주당은 아주 다르다. 하지만 프로 SNSer들은 마치 모든 나라의 민주당은 선이요, 반대인 보수는 악마들의 집단인 것처럼 떠들고 있다. 통계적으로 사람은 젊어서 민주당을 지지하다 나이들어 보수로 바뀌니,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들은 나이들어 악마가 된다는 말이다. 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 Die young - Ke$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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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한국인들은 미국인들보다 나을까? 2년전 인터넷에 이자즈민 의원이 이민법을 발의한다는 잘못된 사실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잘못 퍼진 적이 있었다. 한국인들의 반응은 미국 레드넥 백인들과 정확하게 같았다. (링크) 저당시 반대서명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근 트럼프를 욕했을 것이다. 이 어리석음과 역겨운 이중잣대에 어찌 침을 뱉지 않을 것인가.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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