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1.

슈즈트리 on 홍위병들의 블랙리스트

서울역 앞에 설치된 슈즈트리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대중은 흉물스러운 오브제를 철거하라고 주장하고 기자들은 자극적 타이틀로 이를 부추기고 있다. 시민들은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정권을 바꾼 터라 한껏 자신감에 차 있으며 집단행동을 정치 외의 영역으로 확대하려든다. 진중권, 반이정과 같은 미술 평론가들이 대중들을 제지하지만 그들은 듣지않고 자기들끼리만 의견을 교환하며 자기확신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는 물리학을 영화 인터스텔라로 배우고 경제학을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서 배우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해당 분야에 수십년을 바쳐 연구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조롱을 덕지덕지 달고 묻히기 마련이다. 왜?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그런 글들은, 자기표현을 권장하는 sns에 익숙해져 배우려기보다 가르치기를 즐기는 대중들에게 맞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에 그네들의 태도가 왜 반달리즘인지 길게 설명하는 것은 또하나의 헛된 노력이 될 것이다. 어느 서점에 가던 미학에 대해 쉽게 쓰여진 책 한권쯤은 있고 나는 진중권씨보다 더 쉽게 쓸수가 없으므로.
 
따라서 그냥 대중들의 주장을 따른 비슷한 사례를 상기해보련다. 가깝게는 박근혜 김기춘의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그렇다. 서울시 예산에는 예술작품에 할당된 항목이 있고 그 일부가 공공 설치미술에 투자되는데, 내 취향에 맞지 않는걸 만드는 작가에겐 단 몇달간의 기회도 주지 말아아하는 것 처럼(그리고 그걸 기업이 후원할리도 없으니 그는 결국 창작을 접든가 굶어죽어야 하는 것 처럼) 박근혜 정부의 눈에는 좌편향 문화인들이 그랬다. 정부 돈으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친북성향을 가진 문화인사들에게 왜 국가지원금을 주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 취향에 어긋난 슈즈트리를 철거하라는 사람들은 박근혜 김기춘의 취향대로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실제 예술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과의 어마어마한 차이.
 
보다 완벽한 사례로 나치의 퇴폐예술이 있다. 화가시절의 히틀러의 작품들은 참 예쁘다. 파스텔톤의 색채로 표현한 평화로운 풍경이 캔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으니,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수천만명을 죽일 수 있었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화가로 실패했다. 동시대 미술계는 이미 "예쁜 그림"을 넘어서서 회화의 표현을 다변화하고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그는 여전히 수백년전의 지루한 "예쁜그림"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가 정치인으로 성공하여 집권한 뒤, '흉측한'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의 작품을 모두 압수하여 "퇴폐미술전"이란 테마로 전시했는데, 역설적으로 이는 20세기 초의 최고 미술전시로 남았다. 이후 막스 에른스트나 케테 콜비츠같은 당시 생존화가들의 작품 뿐 아니라 피카소나 뭉크의 작품들도 같이 불태워졌다. 공공조형물에서 추한 작품은 배제해야한다고 주장하는 한국 대중들의 취향과 태도는 히틀러와 똑같이 닮았다.(그리고 "한마음 한뜻"을 강조하는 전체주의적인 사상도 똑같이 닮았다.)
 
또한 대중들은 자기 세금이 들어갔으니 자기 취향에 안 맞으면 철거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일견 옳은 말인데 내생각에 그럼 모든 공공조형물은 이건희나 이재용의 취향대로 만들거나 강남구에만 세워야 한다. 그리고 2030대들은 지방세를 거의 내지 않으니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5060대 취향에 맞춰 매일 트로트 콘서트나 열어야 하지 않을까? 또 지방세에는 담배세와 취등록세도 있는데 비흡연자들이나 집을 사고팔지 않은 사람들은 이번 논의에서 좀 빠져야 할 것 같다. 이런식의 사고방식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번외로 진중권씨를 비롯한 예술평론가들이 대중의 반달리즘을 막으려면 좀 다른 전략을 써야했다. 미적분학조차 배운 적도, 배울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선형대수를 가르칠 수 없듯 예술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 현상이 왜 문화탄압인지 가르쳐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대신 대중들은 예술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 슈즈트리의 미학을 예찬하며 이 작품의 사회적 의미와 조형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뒤 이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현대미술을 모르는 무식한 원시인이라고 깔아뭉개야한다.(게다가 그건 사실이다) 대중들은 슈즈트리와는 비교도 안되게 혐오스러운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보기 위해 아귀같이 미술관으로 달겨들며 슈즈트리보다 더 정신 사나운 잭슨 폴록의 작품이 수천억원에 거래되자 앞다투어 작품 이미지들을 자기 블로그에 올린다. 당장 내일이라도 찰스 사치가 저 작가의 작품을 자기 콜렉션에 넣으면 대중들은 벌떼같이 몰려들어 슈즈트리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작가를 팔로우 할 것이다. 찰스 사치까지 가지 않아도, 딱 열명의 예술평론가가 신문에 기고해서 이걸 이해 못하는 사람들을 폄하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중들의 예술인식 수준은 딱 그정도밖에 안되니까.
 
얼마 전 배우 송강호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블랙리스트라는 것은 소문만으로도 그 힘을 발휘한다, 그런게 있다는 말을 들으면 모든 제작자들과 배우들이 작품을 고를때 이걸 정부가 좋아할까 생각해보며 자기검열에 나서게 된다고. 그의 말처럼 검열은 창의를 제한하는 가장 위험한 예술가의 독이다. sns에서 활개치는 저 홍위병들은  몇만원 내고 구입한 미술전 티켓과 블로그 포스팅을 완장으로 차고 안 이쁜 예술에 테러를 가하며 진중권씨 글에 악플을 단다. 송강호가 지적한 것처럼 이제 설치미술작가들은 예쁜걸 좋아하는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 자기검열에 나서게 되리라. 분명한 반달리즘이다.
 
오천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대국 중국이 변방의 작은 나라 한국의 문화를 수입하는 나라로 전락하게 된 데에는 홍위병들의 힘이 컷다. 붉은 완장을 찬 어리고 젊은 청년들이 앞다투어 자기 취향에 맞지 않은 문화예술품들을 파괴하고 문인들과 예술가들을 꿇어앉혀 집단 린치를 가했다. 그런 검열은 오늘날까지 계속된다. 그 결과 중국의 대중문화는 한국의 TV프로와 영화를 베끼기에 급급하고 중국인들은 가로수길에서 커피한잔을 마시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검열은 문화를 파괴한다. 한 예술품에 대해 자신의 감상을 표출하는 것과 비난하는 것, 그를 넘어 철거를 논하는 것은 과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신중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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