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는 결국 전략이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전략가 손자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그럼 우리는 대 일본외교에 있어 얼마나 상대를 알고있는가. 우리가 동북아시아의 외교 무대에서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의 동기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16세기 이후, 일본은 단 한번도 한반도 보다 군사적으로(경제적으로도) 열세에 놓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수도 없이 반복된 수순에 따라 강대한 일본의 지배자 도요토미는 약한 조선을 침략했고 그로부터 약 300년 뒤 일본은 결국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두 사건은 양국 사이에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었다. 그러나 개와 원숭이 같았던 두 나라는 화해 할 새도 없이 냉전의 논리아래 강제로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중국과 소련의 위협이 존재하는 한 생존의 문제가 과거의 앙금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불편한 관계의 두 나라의 군사력을 키우면서도 서로 싸울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바로 두 나라의 군사력을 비대칭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육군을 육성하고 일본은 해공군을 강화한다면 한국은 일본열도에 상륙할 수가 없고, 일본은 바다에서 한국을 누를 수 있으나 한반도에 상륙시킬 육군이 없다. 따라서 두 나라는 아무리 서로가 미워도 싸울 수가 없다. 하지만 두 나라의 군사력을 합치면 미군의 지원아래 소련이나 중국에 대항할 만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미국은 이와 같은 군사적 제한 뿐 아니라 제도적 제한까지 완비했다. 한국군의 작전권은 미군에게 있으니 자체적으로 일본을 침공할 수 없고(혹은 시도하더라도 부대이동과 재배치에 대한 정보가 한일간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 미군에게 흘러들어갈 수 밖에 없고) 일본은 평화헌법에 의거하여, 전쟁행위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지난 60년간 두 나라의 군사충돌의 길은 실제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도 막혀있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중동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동안 한일 앙국의 균형은 깨지게 되고, 그 방아쇠는 한국이 먼저 당겼다. 일본의 경제가 주춤할 때 계속해서 성장한 한국은 연안 해군 수준에 머물러 있던 해상 전투력을 급속도로 신장시켰다. 동아시아 최대 규모 상륙 강습함인 광개토대왕함과 한국 최초 이지스 함인 세종대왕함을 진수하는 등, 20년 전에 비해 질적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 뿐만 아니라 제도적 제약도 풀려가고 있다. 이미 평시 작전 통제권은 한국측이 가지고 있으며 현재 미군이 가진 전시 작통권도 한국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돌려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일본 입장에서는 과거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군국주의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해군력의 절대 우위, 즉 해상에서 병력수송 자체를 봉쇄할 규모의 해군력의 확충과 한국정부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선포할 상황에 대비해 좀 더 적극적인 군사활동이 가능하도록 평화헌법을 고쳐야 할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은 위와 같은 정치/군사 분야 뿐 아니라 문화 측면에서도 위협을 느끼고 있다. 8090년대만 해도 문화적으로 일본문화는 한국에 대해 절대 우위에 있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일본 만화와 음악에 열광했으며 일본 영화와 배우들은 한국에서 쉽게 인기를 얻었다. 현재 이와 같은 관계는 역전됐다. 한국은 일본의 가수나 영화배우를 알지 못하지만, 일본인들은 소녀시대 카라와 같은 한국 아이돌 그룹을 알고 있고 한국 배우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과거 조센징이라고 부르며 멸시하던 한국의 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끄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군사 정치적 위협보다 더 큰 불안감을 조장한다.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한국의 해군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한국이 작전권을 가져가는 것이 일본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보다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문화적 힘의 역전이 더 피부에 와 닿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 하기는 더욱 어렵다. 과거 8090년대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이 압도적 우위를 보일 때엔 일본정부가 관대하게 유화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었지만(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 당장 중국과 한국이 일본의 지위를 앞지르거나 위협하는 입장에서는 그와 같이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 국민들은 예전과 같이 강한 일본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그 소망을 만족시켜주며 표를 얻고 있다.
따라서 아베는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도, 군국주의를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일본의 사과를 듣기 위해서는 일본을 굴복시키거나 한국의 경제군사력이 과거 수준으로 후퇴해야만 한다. 하지만 전자는 가까운 시일 안에 일어나기 힘들고 후자는 우리가 원하는 길이 아니다. 그렇다면 군국주의의 포기와 사과만을 요구하는 한국측의 태도는 한일간의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만약 일본에게 뭔가를 요구할 것이라면 다른 옵션을 줄 필요도 있다. 일본이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한국이 다른 형식의 배상이나 이권을 요구해도 일본이 들어줄 여지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일본은 동아시아 나라들의 반대로 중국이 부상하기 전 엔화를 아시아의 기축통화로 만드는 데 실패했으며 UN에 엄청난 분담금을 내면서도 상임이사국 진출에도 실패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일본의 입장을 변호하려는 것도, 도덕적 당위성이나 정의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엄청난 살육을 저지른 지 70년 밖에 안된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주변국의 비난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재무장을 시도하려는 동기에 대해 분석해 볼 뿐이다. 마치 형사가 수사에 앞서 범죄자의 살인 동기를 살펴보듯, 일본이 군국주의를 포기할 수 없는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그들을 마주한 협상 테이블에서 이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세종대황함이니 광개토함의 실제 전투수행 능력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비판적인 의견을 받아들이더라도, 과거에 비해 해군의 전투능력이 크게 향상된건 사실이다.
**한미 양국은 전시작전권을 이양하기로 합의했지만, 한국측의 요구로 두차례나 연기했으며 마지막 협정에 따라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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