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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6.

아직 쓰이지 않은 글

시장에 대해 글을 쓰지 않는 것은 시장이나 경제에 대한 내 전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 외의 주제에 대해서도 글을 쓰지 않는 것은 순전히 내 게으름 때문이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할 뿐 아직 쓰이지 않은 글들은 하나둘씩 늘어만 가는데 곰곰이 돌이켜보니 나 자신마저도 뭘 쓰려고 했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 그래서 노트와 기억을 더듬어 언제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글들의 제목이라도 적어두련다.  



에세이(가제)
20세기 뮬란과 21세기 페미니즘
교포, 자이니치 그리고 조선족
달과 6펜스, 그리고 이건희 콜렉션
AI와 현대미술
저출산과 배부른 캥거루들
대한제국을 몰락시킨 고종, 그리고 대한민국의 관료들
조커와 투페이스, 그리고 이재명과 윤석열 
성난사람들, 그리고 양극화 된 정치
투자에 실패한 이들을 위하여
서글픈 레트로의 시대
전쟁사의 가장 기발한 전투들
용서하지 않는 사회


감상문
건축학개론
헤어질결심
D.P

(2023.7.6 업데이트)

2021. 10. 2.

shape of my heart


 


He deals the cards as a meditation

And those he plays never suspect

He doesn't play for the money he wins

He don't play for respect


He deals the cards to find the answer

The sacred geometry of chance

The hidden law of a probable outcome

The numbers lead a dance




내가 본 최고의 연기 중 하나는 레옹에서의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였다. 

아버지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반항적인 눈빛을 놓지 않았던 그 작은 아이가

오로지 살아남기위해 가족들의 주검을 아무렇지도 않은척 지나던 그 작은 아이가

끝끝내 무너져 레옹의 문 앞에서 절규하듯이 매달리며 초인종을 누르던 그 순간

환하게 쏟아지는 빛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 작은 아이에게.

그렇게 마틸다는 레옹에게 마리아가 되었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1:33부터 2:15까지.

2021. 9. 22.

삶에는 퇴고가 없다

 

연휴를 맞이하여 예전 글들을 쭉 읽어내려오고 나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오타와 비문에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꼭 내가 살아온 발자취와도 같더라. 그래서 하나하나 고쳐내려가다 에이 하고 관두고 말았다. 내가 온전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내 글이 온전하지 못한게 당연할 터이니.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2007년의 가을, 셔틀마저 끊긴 그 늦은 밤 학관 뒤 벤치에 앉아 미래를 고민하던 내가 있었다. 나는 작은 실수를 하나 저질렀고 그 실수로 인해 작가의 꿈을 버리고 돈이나 벌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둔한 나는 실수에 실수를 거듭했고 어찌저찌 하여 트레이더가 되고 말았노라. 하지만 사실 나는 글을 쓰는 이가 되고 싶었다. 다시 돌아가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지난 십년간 내가 번 돈이 그동안 내가 쓰지 않은 글보다 값지다고 할 수 있을까.


2007년으로부터 7+7년 뒤

늦은 가을 밤, 아라리오 미술관 앞 벤치에 앉아.

2021. 8. 4.

빨간구두



안데르센 동화 중 빨간 구두라고 알아?

소녀는 엄숙하고 경건한 정소에도 굳이 그 빨간 구두를 신고 가지.


그 구두를 신으면 두 발이 저절로 춤을 추게 되고

영원히 춤을 멈출 수도 구두를 다시 벗을 수도 없게 돼


그런데도 소녀는 빨간 구두를 절대 포기하지 않아

결국 사형집행인이 나서서 소녀의 발목을 잘라냈지만

잘려나간 두 발은 빨간 구두를 신은 채 계속해서 춤을 췄어


억지로 갈라놔도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게 있어.

집착은 그래서 숭고하고 아름다운 거야.



나, 

이제야 내 빨간 구두를 찾았어.


 사이코지만 괜찮아 中


paint by Egon Schiele

2021. 7. 24.

에드바르트 뭉크와 뱀파이어

 

모든 예술가에게 저마다의 뮤즈가 있다면 에드바르트 뭉크의 뮤즈는 바로 죽음일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뭉크가 5세가 되던 해에 죽었고 몇 년 뒤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던 큰누나마저 세상을 떠났다. 이어지는 비극을 견디지 못한 그의 여동생은 정신병에 걸렸으며 아버지는 가족이 파괴되는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광적으로 종교에 집착했다. 노르웨이의, 아니 근대 유럽의 최고의 화가 중 하나인 에드바르트 뭉크의 음울함은 죽음으로부터 탄생했다. 

때때로 사랑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기도 하지만 뭉크의 운명은 불행히도 정반대였다. 그의 첫사랑은 자유분방한 사교계 인사로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연애를 지향하던 보헤미안이었으며 동시에 치명적인 팜프파탈이었다.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들이 흘린 피 내음을 마치 향수처럼 온몸에 두른 그녀가 고작 스무 살짜리 풋내 나는 그림쟁이에게 만족할 리 없지 않은가. 6년여의 연애 기간 동안 뭉크는 그녀만을 바라보고 헌신했지만 그녀는 뭉크의 사랑에 오롯이 거짓으로 응답한다. 보헤미안 부인의 주위엔 늘 욕정에 불타는 남자들이 맴돌았고 그 가운데 뭉크의 순수한 사랑은 그녀에게 가벼운 키스나 갓 구운 마들렌만도 못한, 그저 작은 오락에 불과할 뿐이었다. 철저하게 농락당한 뭉크는 마침내 그녀를 떠나면서 일기에 그녀가 자신의 생의 향기를 영영 앗아갔다고 기록했으니 그에게 실연이란 마치 죽음이나 다름없었나 보다. 마치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를 떠나보내던 것처럼.

그의 두 번째 사랑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는 다그니 유엘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지만 자유연애주의자였던 그녀는 베를린에서 만난 뭉크의 동료이자 건축가인 스타니스와프 프시비셰프스키를 선택한다. 그야말로 잘못된 만남의 조연이 된 뭉크는 연인이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이 러브 스토리의 비극적 조연에 불과했다. 유엘과 프시비세프스키는 얼마 뒤 결혼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그녀를 놓지 못했던 뭉크의 영혼과 작품세계는 더욱 침전한다. 심연의 어둠으로. 첫사랑의 비극이 방종이었고 두 번째 사랑이 배신이었다면 세 번째 사랑의 비극은 집착이었다. 새 연인인 튤라 라르손은 그에게 깊이 집착하고 결혼을 강요했으며 대답을 회피하는 뭉크에게 자살하겠다며 협박한다. 한 손에 권총을 쥐고 죽겠노라며 울부짖는 연인을 말리다 실수로 총이 격발되고 말았다. 그녀의 가냘픈 손을 떠난 탄환은 화가인 뭉크의 왼손을 관통했고, 화약 내음, 폭발, 그리고 비명소리에 뒤이어 그의 손가락 하나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이후 그는 평생토록 독신으로 살았다. 그가 사랑한 모든 여자들은 일찍 죽거나 그를 배신하거나 상처 입혔으며 그에게 애정과 사랑이란 이윽고 밀어닥칠 처절한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뭉크는 술에 더욱 의존했고 폭음을 거듭했으며 불안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환각에 시달리게 된다. 그의 대표작 절규는 핏빛으로 물든 하늘이 질러낸, 그 찢어질듯한 비명소리에 공황에 빠져 귀를 틀어막은 자신의 모습을 그려낸 것인데 아마도 이는 비유나 은유가 아닌 뭉크가 실제로 겪은 환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뭉크가 처음으로 겪은 실연의 고통을 캔버스에 담아낸 것이 바로 맨 처음 소개한 이 작품이다. 한 여자가 엎어져있는 남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다. 남자가 무슨 악몽이라도 꾼 것일까, 여자는 남자를 다독이고 있고 또 그들 위로 선명하게 붉은 머리카락들이 흐르고 있다. 힘없이 늘어진 그들의 머리와는 달리 그녀의 오른팔은, 그리고 그의 왼팔은 서로를 간절히 붙들고 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음울한 어둠을 밀쳐낼 힘도 의지도 완전히 잃은 두 연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서로에게 절절하게 매달리는 것뿐인 양. 이 그림의 제목이 무엇일까? 사랑하는 연인들? 절망 속에서의 사랑?



작가는 이 그림에 뱀파이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뺨이 다소 창백해 보이지 않은가. 



*               *               *



나를 처음으로 미술로 이끈 것이 바로 이 그림이다. 세상에는 서로가 서로를 부수는 사이가 있다. 하지만 대개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과거 스무 살을 갓 넘긴 나 역시 그런 파괴적인 관계의 한 가운데에서 허우적대고 있었고 철부지였던 나는 그 수렁에서 어떻게 헤어 나올지 알지 못했다. 아니, 사실 빠져나올 의지조차 없었다. 그녀가 나에게 뱀파이어였던 것처럼 나 역시 그녀의 목에 이를 박아넣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이 그림을 마주쳤고, 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제목과 이미지를 번갈아 보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마치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황무지에서 헤매다 앞서 이곳을 지난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낸 앳된 이방인처럼. 당시 길을 잃은 이가 나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가. 그리고 그 작은 흔적들을 따라 다시금 걷고 또 넘어지고 또다시 절뚝이며 헤매고, 뭐 그렇게 어찌어찌하다 오늘날 여기까지 왔노라. 그러니 내일도 모레도 또 다른 이들의 자취를 따라 어찌어찌 살아가겠지. 당신들도 나도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도.


Kiss(1897) by Edvard Munch

2021. 4. 10.

0.7%의 확률

나는 트레이더다. 세상에 고작 0.7%의 확률에 베팅하는 바보 같은 트레이더는 없다. 사실상 그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니까. 그러나 비참하게도 지난 몇 주간 나는 그 멍청한 확률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매달리고 무릎 꿇고 애원해야 했다. 0.7%이라니. 이 얼마나 하찮은 숫자인가.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희망에 더더욱 매달리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청천벽력이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던 그 소식을 처음 전해 들은 금요일 오후,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그 희망들을 잔인하게 잘라냈다. 날개가 있는 것은 추락하기 마련이니 희망을 품은 우리들은 결과를 받아본 순간 더욱 절망할 것이다. 그들이 의지할 사람은 나뿐이니 적어도 나만큼은 그 순간 더 절망해선 안되었다. 기업이 재무제표에서 잔존가치가 얼마 남지 않은 악성부채를 상각하듯이 나 역시 0.7%의 희망을 철저히 지워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막상 겪어보니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더라. 예상하지 않았던,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 비극을 약간이라도 막을 방법은 돈에 의지하는 것 외엔 없었다. 얼마 전 의사가 내게 심부전증이 의심된다고 했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그날 내 심장이 그랬던 것 아닐까. 제멋대로 날뛰는 심박을 애써 무시하고 최악의 경우를 모면할 비용을 계산했다. 반쯤 마비된 머리로 어떻게 그 숫자를 도출했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그 계산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것들이 몰락했다. 미국채는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고 빌황의 펀드는 하루아침에 파산했으며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여당의 지지도는 보궐선거에서 25개 구 모두에서 패배하리만큼 떨어졌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 무엇도 나보다 더 빨리 침몰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0.7%란 확률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신에게 애원하는 것과 동시에 희망을 버리기를 반복하는것, 또 반복해서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신이 내 기도를 들었는지 한낱 인간인 나로서는 알 길이 없고, 버렸다고 생각한 희망은 문득문득 고개를 쳐들어 나를 더욱 괴롭혔으며 밥은 먹는 족족 체했고 별일 없이도 숨을 헐떡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쓸 수 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간절히 바랬던가. 암울하게 글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을 정도로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0.7%의 확률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구원했다. 사실 담당자가 몇몇 특이사항을 간과하는 바람에 그 확률을 잘못 전한 것이라고 했다. 화가 나기는커녕 울음이 터져 나오도록 기뻤다. 지난 몇 주간 나는 삶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가장 혹독한 방법으로 깨닫고 있었으니 지금 그 고통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었다. 처음 전화를 받던 날이나 마지막 날이나 여전히 시장에서는 여러 가격들이 어지러이 점멸하고 있었고, 창밖에선 봄이랍시고 벚꽃이 피고 지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가장 끔찍한 지옥에서 엉금엉금 기어돌아왔다. 

이렇게 나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삶에서 최악의 비극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또) 겪을 것이며 궁극엔 나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삶은 미쳐 생각지도 못한, 참으로 창의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비극을 선사하곤 한다. 그저 주식이 좀 빠지고 오른다고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앞차가 끼어든다고 빵빵대며 부잣집 친구 놈이 전화해서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듣는 이 삶은 얼마나 평온한가. 내 일상이 또다시 부서지기 전 남은 시간 동안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보고, 느끼고, 웃고, 만나고, 나누고,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2020. 9. 6.

글을 퍼가실 때 출처를 명시해 주세요.

이 블로그에는 가급적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아주 어릴때부터 저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엔 걷는 순간에도 무엇을 읽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문자에 대한 강박이 심해 어린시절 상담을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길을 건너다 몇번 차에 치일뻔 했거든요. 또 열살 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대들어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시험에서 5개 이하로 틀리면 무슨무슨 전집을 사주시기로 했는데 하필 제가 딱 5개를 틀렸더라고요. 어차피 한번 읽고 버릴 책을 뭐하러 사느냐며 다그치는 부모님께 저는 서재의 국어사전을 가져와 5개 이하라는 말엔 5개도 해당된다고 박박 우겨 그 전집을 받아냈습니다. 그래도 두번은 읽었던 것 같네요. 다른 집 아이들은 책을 안 읽는다고 혼나는데 왜 나는 책을 읽는다고 혼을 내느냐, 뭐 그런 거로 부모님과 다투곤 했습니다. 아마 제가 좀 다른 환경에 있었거나 그 시절에도 유튜브같은게 있었더라면 좀 다른 강박증이 생겼겠지만 여하튼 제 삶은 그랬습니다. 이쯤이면 이게 취미인지 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제 환경이 좀 안정되고 친구들이 늘어나며 사춘기가 되자 글자에 대한 강박도 좀 덜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며 동시에 글을 쓰는 것에 취미가 붙더군요.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지나며 제 진로나 전공과는 무관하게 글을 쓰는 것이 제 가장 큰 무기이자 기쁨이었습니다. 물론 학교 밖에서 글로 상을 타 본 적도 없고 졸업 후에도 글로 밥벌이를 하지 못했을 만큼 졸필이고 어디 내놓기엔 너무나 부끄럽지만 저는 아직까지도 그 시절의 제 글을 사랑합니다. 누군가에겐 젊은 날의 빛바랜 사진 하나가 소중한 것 처럼 제겐 그 시절의 글이 가장 소중한 기억입니다.

지금 저는 직업상, 그리고 여러 다른 이유로 제 이름으로 글을 낼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차피 다 제가 선택한 것이니 거기에 미련을 가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글은 제게 소중한, 자식같은 존재입니다. 이제 저는 자본주의에 한껏 찌들어 "내 전재산을 다 줘도 내 글들과는 바꿀 수 없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마치 어미가 아이를 낳듯 고통으로 써내렸노라고 장담할 열정조차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 글은 다 하나같이 소중한 자식입니다. 아무리 못생긴 아이도 그 어미에게만은 소중한 것처럼요. 그리고 이 블로그는 그렇게 태어난 수만 편의 글 중 일부가 세상의 빛을 보는 공간입니다. 제 가장 가까운 직장 동료들도, 제 친구들도, 심지어 제 가족들도 제가 이런 글을 쓰는건 알지 못합니다.

오딘의 양 어깨에 앉은 까마귀 Huginn과 Muninn

Huginn과 Muninn은 북유럽 신화의 주신인 오딘의 양 어깨에 앉은 까마귀로 각각 생각과 기억을 의미합니다. 이 두 까마귀는 하룻동안 미스가르드를 돌며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오딘에게 보고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상에 대한 제 생각과 기억을 정리하고자 그 까마귀들의 이름을 본따 블로그 주소를 지엇더니 구글의 AI님께서 제 이름을 HHMM라고 달아주시더군요. 발음하기도 힘들고 무슨 신음소리같은 이 괴상한 필명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몇번 제 글들이 카톡방과 여러 인터넷 게시판을 떠도는 것을 보았고 심지어 그 중 한두편은 친구들이 저한데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거기에 대고 이거 잘썼네, 라며 낯뜨거운 짓도 해봤습니다. 막상 해보니 그런 염치없는 짓이 생각보다 재밌더군요. 그 재미로 조국과 추미애는 사나 봅니다. 원래 제 내면에서 쓰였다 지워지고 잊혀힐, 그렇게 제가 죽으면 같이 순장되었을 글들이 세상의 빛을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것은 기쁘고, 감사할 일이지만 자식을 자식이라 하지 못하는 제 처지가 떠올라 허탈해지곤 합니다. 물론 널리 퍼지라고 쓴 글이니 올리신 분들께도 감사하며 또 제 주장과 믿음에 동의해주시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 비난할 마음도 없고 또 당연히 법적 대응 따위는 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글의 출처를 명기해 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고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사적인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지만 뭐 제 글이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하긴 우리네 인생이 다 그런 법입니다. 나에겐 소중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남에겐 별 흥미조차 없는 그런 세상. 네글자로 줄여서 안물안궁. 하지만 또 그런 삭막한 세상이기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얻고 공감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애초에 이 블로그는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이 혼자 쓰던 곳이기에 앞으로도 독재자처럼 제 맘대로 글을 써내릴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웹 상의 오지나 변방과도 같은 이곳까지 찾아와 교감해주시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에도 그런 행운이 이어지기시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HHMM 드림.

2019. 9. 15.

언어를 보호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모든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해야 합니다. 정확함과 완벽한 문체가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모든 착오를 겪은 후에야 독창성의 이면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 독창성과 같은 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창성의 면에는 정확성-'어슴푸레한 달', '미소짓는 착한 마음', '모든 연도 중에서도 가장 불행했던 해' 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어를 보호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이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한때는 작가를 꿈꾸었던 내가 금융계에 발을 디딛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장 흔하고 평범한 언어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푸르스트의 조언대로 나는 언어를 공격하고 공격하고 또 물어 뜯어가며 독창적인 색채를 갖추기 위해 갖은 애를 써왔지만 나만의 언어세계를 구축하는데에 실패했고 몇번의 도전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야 나는 작가의 꿈을 접었다.

그렇게 독창성이 없던 글을 쓰던 내가 회사에서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 글이 너무 독특하다는 것이었으니 어떻게 내가 돌지 않았겠나. 그리고 그렇게 십여 년동안 그저 그런 글을, 숫자와 전문용어가 뒤범벅된 딱딱하고 영혼이 결여된 글을 써오고 나니 이젠 언어를 공격하는 법 마저 잊어버린듯 하다.

 photo by Elliott Erwitt

하지만 난 아직도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노라 ㅋ

2019. 9. 9.

miscellaneous ideas for my own

  • 재무제표를 분석하다 보면 대개 밑바닥에 miscellaneous라고 표기된 항목들을 발견하게 된다. 회사의 경영상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너무나도 작고 사소하고 보잘것 없는 그런저런 활동들. 그런 하찮은 것들에 회계사, 재무담당자들 그리고 투자자들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모두 뭉뚱그려 miscellaneous profits/expenses라고 표기한다.
  • 하지만 신중한 투자자라면 이 항목들을 뜯어볼 필요가 있다. 이따금씩 회사가 숨기고 싶어 하는 행위들의 단서가 그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불법이든 편법이든 그 무엇이든. 그리하여 때로는 매출액이나 EBITA가 아닌 바로 이 항목에서 그 회사의 진짜 본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 어쩌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분석하고 투자하고 투기하며 그로 인한 결과에 웃고 울지만 그것들이 내 본질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는 하루종일 돈을 벌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사회적으로 쓸모있는 사람을 연기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는 그것이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니라는 그 날카로운 간극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단지 돈, 혹은 권력, 혹은 명예를 좆느라 그 마찰음을 외면할 뿐.
  • 그래서 나는 아무도 모를 이 곳에 진짜 내 생각들을 남기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물론이고 내 실명을 달고서는 아무데서도 할수도 없는-사실 별 쓸모도 없는 그저 그런 잡다한 이야기들. 하지만 나에게는 경제와 시장을 예측하는 것 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도 이 별볼일 없는 생각들이 더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기록하는 것은 대개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한, 철저히 이기적인 행위라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paint by Saul Steinberg

2019. 9. 8.

희망의 가격

로또를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 45개의 숫자 중 6개를 맞춰야 상금을 지급하는 로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바보같이 비싼 상품이다. 로또의 당첨확률은 800만분의 1보다 더 작은데*, 이 바늘구멍을 뚫고 당첨되었을 경우의 상금은 전체 매출액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서 세금을 떼고 나면, 실제 수령액은 매출액의 1/3로 줄어들게 된다. 수학적으로 1천원짜리 한 장의 기대값이 약 333원인 셈이니, 로또는 내재가치의 3배나 되는 증권이나 다름없다.

물론 적정가치의 10배 100배에 팔리는 주식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주식들은 애초에 내재가치를 계산하기 어렵지 않은가. 게다가 잡주는 일시적으로 폭등하기도 하지만 결코 과대평가 수준에 장기간 머물수 없다. 하지만 로또의 기대값은 수학적으로 명확하게 확정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적정 가격의 세배라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이보다 더 안정적으로 더 비싼 상품을 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바보들만이 로또를 산다고 생각했다. 아니고서야 누가 이렇게 비싼 프리미엄을 내고 이걸 사나. 아무리 얼빠진 동네 바보라도 "돈놓고 돈먹기, 천원 내고 삼백원 먹기"라고 외치는 야바위꾼의 테이블에 앉지는 않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난 10여년간 나는 이 업계의 수백억대의 자산가들이나 명문대 박사학위를 사진 영재들이 로또를 사는 것을 보았다. 나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도,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도 로또를 산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희망을 필요로 하고 부자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으스대며 수억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늘 부족함을 느낀다. 사람은 원래 만족을 모르게 설계되어 있으니까. 게다가 수입이 큰 만큼 지출도 크기에 가족들을 위해 이런 저런 비용을 모두 빼고 남는 돈도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나면 오늘의 나를 위한 돈은 몇 푼 안남게 된다. 당신의 연봉이 5천이든, 5억이든, 50억이든, 다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정, 연봉 50억은 솔직히 장담 못하겠다.) 해가 진 뒤 우리 직장인들의 삶은 다 비슷하다. 연봉 5천의 김과장은 3호선을 타고 연신내로 돌아갈 터이고, 연봉 5억의 대니 킴은 포르쉐를 몰며 타워펠리스로 향하겠지만 집에 도착한 그들은 똑같이 윗집 남편, 아내 친구 남편, 딸내미 반장 아버지와 자신을 비교당하고, 비교하며 좌절한다. 서른살이 넘으면 삶의 테두리가 어느정도 선명해지고 자신의 미래도 적당히 그려지지 않는가. 그 추세에서 벗어나려면 한 번의 모험을 해야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다. 무섭다. 따라서 작은 비용으로 삶을 바꿔줄 희망을 찾게 된다. 그 마음 만큼은 부자도 똑같지 않을까.

게다가 로또는 그런 희망을 독점한 유일한 상품이다. 천원의 소비로 인생이 바뀌진 않는다. 심지어 개폭등할 알트코인을 찾았다고 해도, 고작 천원어치를 사면 당신의 미래엔 아무 변화도 없을 것이다. 뭐 친구들에게 술 한번 사고 정말 운좋으면 좋은 시계도 하나 살수 있겠지. 천원으로는 이젠 컵라면이나 김밥한줄도 사먹기 어려운 시대이지만 그 돈으로 로또를 한장 사면 수십억 어치 상금을 받을 꿈에 부풀어 한주를 지낼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겠나. 국가는 이런 극단적 페이아웃 구조를 지닌 상품들을 사행성이라는 명목으로 금지하면서도 뒤돌아서 열심히 복권을 판다. 하기사 담배도 인삼도 그리고 카지노도 마찬가지지. 로또는 그렇게 희망을 독점하고 있다.

공급이 제한적인 독점시장의 가격은 늘 균형점을 넘어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렇게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3배의 프리미엄이 붙어도 불티나게 팔리는 로또는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내일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난히 고단했던 하루가 지나고 나면 불꺼진 업무지구 내 조그만한 한 편의점에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대형 금융사의 등기이사도 청소부도 계산대 앞에 나란히 서서 서로 어색한 눈인사를 나눈 뒤 들뜬 마음으로 여섯개의 숫자를 세심하게 고른다. 누구는 사랑하는 이의 생일을 찍을 것이고, 누구는 자신만의 행운의 숫자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 그 숫자들 만큼이나 당첨금을 어떻게 쓸지 그 꿈도 다양하겠지. 그렇게 제냐 수트와 아식스 츄리닝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들뜬 마음으로 각자의 꿈을 한장씩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 순간 만큼은 모두가 평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희망의 값어치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소중한 법이니까. 부자에게도, 또 빈자에게도.



*1/45C6=8,145,060

2018. 12. 16.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이기주의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내가 원하는대로 살라고 강제하는 것이라고.

2016. 5. 16.

흐드러지다

 
 
우리가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항상 벚꽃이 흐드러지는 날들만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언젠가 그 아름다운 분홍색 꽃몽아리가 부풀어 오르다 터져오를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더이상 봄이 오지 않을 것을 깨닫게 되면 그땐 도대체 어찌할 것인가.

2016. 4. 4.

멍청한 경제 기사의 좋은 예

다음 글을 읽고 그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내 시간과 노력을 매우 비경제적으로 쓰는 것이지만, 나름 이런 멍청이들을 보며 조소하는 즐거움도 있으니 오락하는 기분으로 글을 써내려 가겠다.


'한국판 QE' 공방…"野 관치금융 vs 與 나쁜 데 가만 있냐" 링크


위 글은 연합뉴스의 이성규 기자가 4월 4일자로 작성한 기사이다. 고교 교과과정을 공부한 정상적인 학생이라면 절대로 쓰지 않을 내용을 이 기자는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써놨다. 그 내용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자.

1. 한국판 QE는 관치금융이다: 야당의 주장이야 정치적 레토릭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경제를 담당하는 기자가 관치금융의 뜻도 몰라서는 안된다. 관치금융은 금융기관의 영업을 시장질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규제등을 통해 정부가 멋대로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형이든 미국형이든 일본형이든 QE는 기본적으로 장기금리, 혹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끌어내려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즉 창구지도 등을 통해 가계부채를 억누르는 것이 관치금융이지, QE는 관치금융과 상관없다. 만약 금융당국의 금리개입도 관치금융의 영역에 들어간다면 공개시장 조작이나 한국은행의 금리결정도 관치금융의 영역에 속한다.

2. 일본 QE는 실패했다: 일본의 양적완화가 실패한 것은 신용을 늘리는 것에 실패해서 그런 것이지 QE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잘못된게 아니다. 즉 은행들에게 돈을 공급하는데엔 성공했으나 가계와 기업들에게 돈을 공급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같은 일은 유로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만약 QE라는 것이 실패했다면 가장 먼저 QE를 도입한 미국이, 신용위험의 진원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불황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3. 아베노믹스는 환율에만 의존했지, 인플레이션 퇴치에는 실패했다: 이 부분이 이 기사의 백미이다. 어떻게 이런 멍청한 소리를 부끄럼 없이 꺼낼수 있을까. 일본처럼 자유롭게 열린경제에서는 환율과 인플레이션이 같이 가기 마련이다. 게다가 앞서 여러 글에서 말했듯이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환율이 아니다. 리플레이션이다. 이러한 기본사안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경제 기사를 쓰고 있다.


*     *     *


여담으로 예전 최경환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느낀 바이지만, 생각과는 달리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다. 강봉균 선거대책위원장이 내놓은 한국형 QE 역시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미국과는 달리, 유럽과 일본에서 양적완화가 생각보다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규제와 금융위기, 혹은 디플레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에 돈을 공급한다고 해도 이것이 실물경제로 잘 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그렇다고 QE가 효과 없다는 주장은 멍청한 소리다. 은행권에도 돈을 풀지 않으면 실물경제는 더더욱 유동성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밥을 먹었는데도 살이 찌지 않으면 회충약을 먹거나 밥의 영양소가 부실한게 아닌지 검토해봐야지, 밥을 먹는게 소용이 없다고 주장해선 안된다.) 강봉균의 주장은 실물경제로 돈을 투입하는 역할을 민간은행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정책을 통해 직접 투입하자는 소리다. 금리를 150비피나 인하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QE를 생각해야 하는지, 통화정책의 대상은 불특정 다수여야 하는데, 그게 주택담보대출로 한정되면 부작용은 없는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는 있지만 적어도 유럽/일본이 처한 문제-실물경제로 돈이 잘 흘러들지 않는다는 점(QE에도 불고하고 M2증가율은 낮음)에 대해서는 탁월한 처방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멍청한 기자들과 병신같은 블로거들은 정치인들을 욕하고 있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기자와 블로거들보단 공부를 많이 한다는 점이다. 역시 민주주의는 위대하다.

2016. 1. 4.

Molecular Sciences Between Human Relationship


대부분의 경우 원자는 홀로 존재하는 것 보다 다른 원자와 결합을 형성하여 존재할 때 훨씬 더 안정적이다. 따라서 두 원자가 만나게 되면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를 당겨 점점 더 가까워 지지만, 반대로 원자간의 거리 r이 지나치게 가까워지게 되면 급격하게 반발력이 발생해 상대를 밀어내게 된다. 따라서 이 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이 평형을 이루는 점을 계산하여 서로의 상태가 가장 안정적인 원자 사이의 "적절한 거리" r을 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홀로 놓여지면 고독과 불안의 상태에 휩쓸린다. 따라서 그는 누군가를 향해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그 거리가 지나치게 좁아지면 어떤 관계든 반드시 강한 반발력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적절한 거리가 존재하며, 홀로 존재하는 한 어떤 이는 누군가를 위하여 그 간격을 찾아 헤메는 기나긴 시간들과 외로운 밤을 지새우게 된다. (2008. 5.22)



*   *   *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이와 같은 경험들이 반복되면 내가 다른 이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보편적인 거리 r을 체득하게 된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그 거리를 거듭된 실패와 상처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 슬픈 거리를 내가 잊지 않기를.

2016. 1. 2.

과잉과 결핍

우리는 하나의 결핍을

다른 하나의 과잉으로 메우려 한다.

따라서 누군가의 과잉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결핍이 무엇인가 살펴보는 것이다.

2015. 11. 26.

인간의 마음, 그리고 너의 마음.

인간의 마음은 합리적이진 못해도 매우 논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인간의 마음이 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때때로 행동의 원인이 그 결과로부터 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몇번의 데이트를 거치며 가까워 진 그녀가 갑자기 돌아선 이유는 마지막 저녁식사에서 그가 어떤 실수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에 그가 자신의 음식 취향을 기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실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응답이 없는 핸드폰을 쥐고 그는 마지막 데이트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되짚어보며 술잔을 기울이겠지만, 원인을 발견하지 못한채 인간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말 것이다.

*  *  *

모든 사람은 어떤 누군가를 원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들을 평생토록 반복한다. 내가 볼 수 없는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낚시를 하는 일과 같다. 마치 가느다란 낚시대 끝에, 더 가느라단 낚시줄 하나를 드리우고 저 수면 아래 깊은 곳의 물고기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는 것 같이. 그녀의 마음이 나의 바늘 근처에 있는지, 아니면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는지, 혹은 그에 입맞추기 위해 기다리는 중인지 수면 위 만을 쳐다 보는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저 낚시줄과 수면이 닿아있는 그 작은 점을 하염없이 응시하며 나의 마음속에 그녀의 마음을 그려볼 뿐.

*  *  *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고통 받는다고 해도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내가 그들을 만나기도 전 부터 그들의 호불호는 정해져 있었으며 나는 단지 그들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것이 그들의 잘못일 수는 없다. 요는 내가 왜 그들에게 맞는 사람이 아닌가의 문제일 뿐이며, 또 나는 왜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가의 문제일 뿐이다. 그 댓가가 매우 혹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마음은 아마 내가 가장 오랫동안 관심을 가진 분야일 것이다. 십수년 전, 수능을 공부하던 시절에도 나는 프로이트의 저서들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아마도 상대의 마음을, 그리고 나의 마음을 통제하고 싶은 욕망에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15년이 지나도록 나는 타인의 심리는 물론이고 나의 마음마저도 움직이지 못한다. 마치 중학생이 F=ma라는 물리법칙을 배웠다고 해서 공을 골대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나는 블랙박스 같은 인간의 마음 앞에 여전히 무기력하다. 하지만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번잡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2015. 11. 23.

master

자네는 너무 특이해서 프로페션은 될수 없겠군.

하지만 마스터는 될수 있겠어.

.

-마스터 키튼 중에

2015. 10. 13.

그는 돌아 볼 것이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별것 아닌 그 초라한 세상이

곁에 남은 유일한 친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2015. 8. 17.

프리다와 디에고.



깊고 지독한 사랑은 한 사람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때때로 예술은 그와 같은 고통 속에서 만개한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관계와 그들의 예술도 그러했다. 교통사고로 심하게 다친 프리다는 병상에 누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이 때 디에고가 그녀의 멘토가 된다. 프리다는 21살 연상인 디에고를 신처럼 여기며 따랐지만 그는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과 추문을 일으켜 척추가 부서진 그녀의 가슴까지 박살내곤 했는데, 심지어 그 상대 중에는 프리다의 친동생인 크리스티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리다는 끝없는 남편의 방종에 괴로워 하면서도 그에게서 독립할 수 없는 어린아이 같은 여자였다. 그녀에겐 처절한 아픔을 그림으로 게워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디에고는 프리다에게 그림을 그릴 기술과 감정, 둘 모두를 전해준 셈이다.

디에고는 바람둥이였지만 프리다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여러 여자를 만나면서도 프리다가 진실한 영혼의 동반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의 외도에 지친 프리다가 다른 애인을 두기도 하고 심지어 동성애까지 하자 그는 화를 내며 이혼을 통보했지만, 얼마 못가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다시 프리다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조용히 고향 코요아칸으로 돌아가 프리다가 죽는 그날까지 그녀의 곁을 지킨다.

죽을만큼 갈망하면서도 차지할 수 없던 남자를 사랑한 프리다와, 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스쳐가면서도 한 여자를 놓지 못했던 디에고. 프리다의 그림세계를 설명하면서 디에고를 빼 놓을순 없으며 디에고의 삶을 이야기하며 프리다라는 이름을 이름을 빠뜨릴 수는 없다. 그 둘은 살아서 뿐 아니라 미술사가들의 기억 속에서도 늘 함께 할 운명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교묘하게 기획된 것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둘의 전시회가 한국에서 동시에 열렸다.(프리다 칼로: 소마미술관. 디에고 리베라: 세종문화회관) 하지만 그 전시회에는 상대 전시회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나 안내도, 혹은 있을 법한(그러나 정작 했다면 유치했을것 같은) 이벤트도 없어, 마치 다툰 뒤 냉전중인 연인의 모습처럼 서늘했고 어색했다. 어제가 디에고 전의 마지막 날이었으니 그 누구보다도 운명적이었던 부부화가의 두 전시회는 두달여간 각자 뚱하게 열려있다 어색함을 남긴 채로 마무리 된 셈이다.

평생 바람을 피워댄 주제에 먼저 이혼을 통보했던 디에고가 1년만에 프리다에게 돌아가던 날, 아마도 그는 잡초같이 못생긴 꽃다발을 들고 넓적한 얼굴에 능글맞은 웃음을 띄워 미안함을 감추며 프리다의 병실에 들어섰을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어색한 시간을 보냈겠지. 한참 후에 디에고가 나직한 목소리로 '당신이 너무나 그리웠소'라는 말을 꺼낼 때까지.

어쩌면 이 어색한 두 전시회의 컨셉은 바로 그 순간을 기리는 것 인지도 모른다.

2015. 5. 24.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웃는 자화상



화가의 인생을 알지 못하면 그가 그린 그림들의 의미를 모두 파악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화가들의 인생 이야기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게르스틀의 자화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얼핏 보면 광기어린 모습 같고, 때론 아하하하 웃는 바보 같기도 하며 어쩌면 웃는 모습이 아닌 우는 모습 같아 보이는 이 자화상에는 그보다 더 깊은 감정이 담겨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타고난 미술적 재능으로 베엔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여느 천재들이 그러하였듯이 자만에 가득해 교수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홀로 그림을 그렸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지독하게도 싫어했던 그였지만 음악가들과는 즐겨 다니곤 했다. 그리고 그는 존경하던 현대음악의 거장, 아놀트 쇤베르크를 만나게 되었다. 쇤베르크의 가족들과 종종 어울리던 게르스틀은 이내 쇤베르크의 아내 마틸다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는 마틸다에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신경질적이고 괴팍한 작곡가 남편에게 지친 마틸다는 결국 남편과 두 아이를 버리고 열정에 불타는 25살의 젋은 게르스틀을 선택한다.

그러나 쇤베르크는 결코 마틸다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아내에게 외도를 그만 두고 자신과 두 아이에게 돌아와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기도 했고 때론 자살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결국 마틸드는 두 달만에 젊은 애인을 버리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고 만다.

존경하던 자신의 스승과, 그 스승을 버릴 정도로 사랑한 여인, 둘 모두를 잃은 게르스틀은 처절한 상실의 고통에 짓눌렸다. 결국 삶에 대한 열정과 목적을 잃은 그 갸날픈 영혼은 죽기로 결심한다. 게르스틀은 마지막으로 자화상을 한점 남긴 뒤 자신의 다른 작품들을 불태우고 목을 매달았으며, 확실히 죽기 위해 자신을 칼로 찔렀다.

고통으로 가득찬 생애의 끝자락에서 그려진 초상화 속의 게르스틀은 초점 잃은 눈으로 웃고 있었다. '이젠 다 끝이야'라고 중얼거리듯이.
 
paint by Richard Gerstl
"웃는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