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지독한 사랑은 한 사람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때때로 예술은 그와 같은 고통 속에서 만개한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관계와 그들의 예술도 그러했다. 교통사고로 심하게 다친 프리다는 병상에 누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이 때 디에고가 그녀의 멘토가 된다. 프리다는 21살 연상인 디에고를 신처럼 여기며 따랐지만 그는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과 추문을 일으켜 척추가 부서진 그녀의 가슴까지 박살내곤 했는데, 심지어 그 상대 중에는 프리다의 친동생인 크리스티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리다는 끝없는 남편의 방종에 괴로워 하면서도 그에게서 독립할 수 없는 어린아이 같은 여자였다. 그녀에겐 처절한 아픔을 그림으로 게워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디에고는 프리다에게 그림을 그릴 기술과 감정, 둘 모두를 전해준 셈이다.
디에고는 바람둥이였지만 프리다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여러 여자를 만나면서도 프리다가 진실한 영혼의 동반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의 외도에 지친 프리다가 다른 애인을 두기도 하고 심지어 동성애까지 하자 그는 화를 내며 이혼을 통보했지만, 얼마 못가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다시 프리다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조용히 고향 코요아칸으로 돌아가 프리다가 죽는 그날까지 그녀의 곁을 지킨다.
죽을만큼 갈망하면서도 차지할 수 없던 남자를 사랑한 프리다와, 수도 없이 많은 여자를 스쳐가면서도 한 여자를 놓지 못했던 디에고. 프리다의 그림세계를 설명하면서 디에고를 빼 놓을순 없으며 디에고의 삶을 이야기하며 프리다라는 이름을 이름을 빠뜨릴 수는 없다. 그 둘은 살아서 뿐 아니라 미술사가들의 기억 속에서도 늘 함께 할 운명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교묘하게 기획된 것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둘의 전시회가 한국에서 동시에 열렸다.(프리다 칼로: 소마미술관. 디에고 리베라: 세종문화회관) 하지만 그 전시회에는 상대 전시회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나 안내도, 혹은 있을 법한(그러나 정작 했다면 유치했을것 같은) 이벤트도 없어, 마치 다툰 뒤 냉전중인 연인의 모습처럼 서늘했고 어색했다. 어제가 디에고 전의 마지막 날이었으니 그 누구보다도 운명적이었던 부부화가의 두 전시회는 두달여간 각자 뚱하게 열려있다 어색함을 남긴 채로 마무리 된 셈이다.
평생 바람을 피워댄 주제에 먼저 이혼을 통보했던 디에고가 1년만에 프리다에게 돌아가던 날, 아마도 그는 잡초같이 못생긴 꽃다발을 들고 넓적한 얼굴에 능글맞은 웃음을 띄워 미안함을 감추며 프리다의 병실에 들어섰을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어색한 시간을 보냈겠지. 한참 후에 디에고가 나직한 목소리로 '당신이 너무나 그리웠소'라는 말을 꺼낼 때까지.
어쩌면 이 어색한 두 전시회의 컨셉은 바로 그 순간을 기리는 것 인지도 모른다.
블로그 첫번째 포스팅부터 하나씩 읽어보고 있는데 이렇게 중간중간 나타나는 '비경제' 포스팅이 흥미롭고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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