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인생을 알지 못하면 그가 그린 그림들의 의미를 모두 파악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화가들의 인생 이야기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게르스틀의 자화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얼핏 보면 광기어린 모습 같고, 때론 아하하하 웃는 바보 같기도 하며 어쩌면 웃는 모습이 아닌 우는 모습 같아 보이는 이 자화상에는 그보다 더 깊은 감정이 담겨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타고난 미술적 재능으로 베엔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지만 여느 천재들이 그러하였듯이 자만에 가득해 교수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홀로 그림을 그렸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지독하게도 싫어했던 그였지만 음악가들과는 즐겨 다니곤 했다. 그리고 그는 존경하던 현대음악의 거장, 아놀트 쇤베르크를 만나게 되었다. 쇤베르크의 가족들과 종종 어울리던 게르스틀은 이내 쇤베르크의 아내 마틸다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는 마틸다에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신경질적이고 괴팍한 작곡가 남편에게 지친 마틸다는 결국 남편과 두 아이를 버리고 열정에 불타는 25살의 젋은 게르스틀을 선택한다.
그러나 쇤베르크는 결코 마틸다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아내에게 외도를 그만 두고 자신과 두 아이에게 돌아와달라고 간절히 애원하기도 했고 때론 자살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결국 마틸드는 두 달만에 젊은 애인을 버리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고 만다.
존경하던 자신의 스승과, 그 스승을 버릴 정도로 사랑한 여인, 둘 모두를 잃은 게르스틀은 처절한 상실의 고통에 짓눌렸다. 결국 삶에 대한 열정과 목적을 잃은 그 갸날픈 영혼은 죽기로 결심한다. 게르스틀은 마지막으로 자화상을 한점 남긴 뒤 자신의 다른 작품들을 불태우고 목을 매달았으며, 확실히 죽기 위해 자신을 칼로 찔렀다.
고통으로 가득찬 생애의 끝자락에서 그려진 초상화 속의 게르스틀은 초점 잃은 눈으로 웃고 있었다. '이젠 다 끝이야'라고 중얼거리듯이.
paint by Richard Gerstl
"웃는 자화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