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12.

대신증권의 전략적 실수 두가지

먼저 나는 대신증권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내부자 정보따위와는 거리가 멀며 심지어 가까운 지인도 없다. 따라서 아래 분석은 오로지 공개된 정보에 의거한 것이고 실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이 보기인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그저 순전히 제 3자의 시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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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교를 지나 도심으로 향하다 왼편을 돌아보면 나인원한남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도심속 타운하우스 열풍에 힘입어 자산가들의 큰 관심을 받은 이 단지는 흥미롭게도 건설사가 아닌 증권사인 대신증권이 주도하여 지은 것이다. 부동산이 반등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장기전망에 의문을 가졌던 2016년, 대신증권이 과감하게 자회사를 통해 시행사로 나서며 한남외인부지를 낙찰받아 지은 고급주거단지, 나인원 한남. 

나는 이 선택이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건설에서 금융사들의 역할은 PF에 그쳤지만 대신증권은 과감하게 시행사로 나서며 신사업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금융업계 최초로. 우리나라의 증권사들이 50개가 넘는다는 사실과 그들 중 상당수가 금융지주회사, 혹은 외국계자본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증권업 내에서 대신증권의 비교우위가 명확하지 않지만,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야하는 건설업 특성상 직접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증권사의 이점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부동산이 본격적으로 반등하는 시점에서 그것도 대형평수/고급 타운하우스라니, 업종과 트렌드 두 박자를 모두 맞추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총 사업비는 1.6조원. 모회사 대신증권의 자기자본금 규모에 육박하는 자금이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회사는 시행사로의 변신에 미래를 건 것이나 다름없다. 잘 풀렸다면 아마 케이스 스터디에 실렸을 만큼 과감하면서도 훌륭한 시도였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들이 두가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실수로 이 프로젝트 전체의 수익이 날아갔고 두번째 실수로 그들의 전략적 변신이 무위로 돌아가게 되었다. 두번째 실수가 더욱 뼈아픈 것은 그것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순간에서 기업들이 실기하는 사례들은 너무나 흔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묘수가 악수로 끝나는 것이 안타까워 내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첫번째 실수-후분양 옵션

문재인정부 출범 후 주택시장의 안정이 정치적 아젠다로 떠오르자 집값을 잡기 위해 HUG는 각 서울시의 분양가를 통제했고 나인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느 재건축 단지들처럼 HUG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이 최고급 타운하우스의 분양가를 기타 지역의 일반 아파트 수준으로 깎으라고 주문했다.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영수증을 받고 고심하던 시행사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하는 대신 4년간 임대를 주고, 희망하는 세대에 한해서 분양을 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후분양 옵션이라고 부른다. 입주자는 4년간 임차인으로 거주한 뒤 만기에 시세에 따라 분양을 받을수도, 혹은 포기할 수도 있으니 전형적인 옵션이다. 햄릿의 연극과도 같은 나인원의 비극은 시행사가 이 옵션을 너무나 싼 값에 팔면서 시작된다. 옵션의 행사가격이 시장가격보다 아래인 옵션을 내가격옵션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구조는 보통 비싸게 팔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당장의 조달비용을 아끼려고 이를 너무 싼 값에 팔아치운다. 부동산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고 미래를 베팅한 회사가, 집값이 올라도 수익을 낼 수 없는 콜옵션을 전량 매도하는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드라마의 흔한 클리셰처럼 이로 인해 시행사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룹의 전망이 정확하게 맞아 집값은 당시보다 거의 두배 가까이 뛰었지만 시행사는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했다.

반면 비용은 폭증한다. 7.10부동산 대책으로 법인의 종부세가 6%의 단일세율이 적용되면서 4년간 보유세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대신증권의 2분기 재무제표를 보면 나인원한남 관련 일시적 비용이 약 938억원이 발생해 적자로 전환했는데 새 종부세법으로 인한 비용이 내년에 부과되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 2분기의 일시적 비용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대강 계산해보면 이제까지 누적된 나인원한남의 이익을 상쇄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실수-신뢰의 상실  

이 모든 사태는 HUG가 시행사가 신청한 분양가를 몇번이고 반려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업이란게 늘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것 아닌가. 우리의 여느 삶이 다 그렇듯이. 그리고 승자와 패자는 그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법인의 종부세가 폭등하는 것은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고, 후분양 옵션을 너무 싸게 판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시행사는 여기에서 두번째 실수를 저지른다. 첫번째보다 더 치명적인 실수를.

바로 2021년 부과될 종부세를 피하기 위해 임차인들에게 조기인도를 통보한 것. 임차인들은 나인원한남의 명의가 2023년 11월에 양도될 것이라고 믿고 그에 맞게 자금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이를 앞당겨 2021년 3월에 양도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되면 2021년 부터 23년까지 3개 년도의 종부세가 시행사가 아닌 입주자들에게 부과된다. DS한남 측은 계약서 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또 3년치 종부세에 준하는 금액을 부담하겠다고 하지만 종부세 계산은 다주택 누진세인데 비해 시행사가 부담하겠다는 종부세는 1주택자 기준이라 커다란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링크) 애초에 40억이 넘는 집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기존에 보유한 집이 없을리 없지 않은가.

법리상 시비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지만 비즈니스적 측면에선 이는 최악의 선택이다. 대신증권은 이 사업에 단순한 LP(일종의 전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직접 자회사를 설립해서 뛰어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처음 해보는 대형사업인 만큼 다소간의 시행착오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에 따른 예상외 비용은 수업료라고 받아들였어야 했다. 하지만 시행사는 사실상 손실을 자신을 믿고 계약한 소비자들에게 떠넘기기로 결정했다. 옳건 그르건 사업가가 손님과 멱살 잡고 법정에 가는 것은 앞으로 거래를 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대신이 나인원의 경험을 발판으로 진출하려는 사업이 고가주택분양이라는 것이다. KB경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금융자산이 100억이 넘는 부자의 수는 2만 4천 명, 10억이 넘는 사람은 약 35만 4천 명이다. 세다리 건너면 모두가 안다는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대신증권의 미래 사업의 소비자들은 나인원한남의 수분양자 당사자, 친인척들, 지인들과 상당부분 겹칠 것이다. 설령 겹치지 않더라도 회사의 이렇게 대응한다면 자산가들이 어떻게 그들을 믿고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인가.

또 고객들에게도 저렇게 대응하는데 회사가 프로젝트를 진행한 실무진들을 잘 대우해줄 지 의문이다. 얼마전 작고한 이건희 회장의 수첩으로 알려진 글이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는데, 그 중 실패한 연구진들을 격려하고 되려 축하하는 방안에 대한 메모가 있었다. 대신 F&I와 DS한남의 실무진들은 전체 금융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행까지 도맡아 본 경험자들이자 최악의 상황까지 겪어본 베테랑이 되었다. 정말 이 분야에서 회사의 미래를 찾겠다면 이 경험자들을 우대해야 한다. 매번 하던 사업도 실패하기 마련인데, 처음 해본 대규모 프로젝트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그들을 홀대한다면 영민하고 눈치가 빠른 직원들이 먼저 이직할 것이고 남은 임원진들은 위험이 상존하는 새로운 사업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증권사 수수료경쟁이 격화되고 자본의 규모가 곧 경쟁력이 되는 금융업에서 탈피해 대신증권이 시행사로 변모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지른 몇몇 실수로 꽃놀이패는 똥패로 전락했다. 하지만 신산업에 진출한 회사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회사의 재무구조는 그 실패를 거뜬히 감내할 정도로 탄탄하다. 대신증권의 이 변신이 성공한다면 현재의 시행착오는 사소한 비용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착오와 손실에 매몰되어 시장과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미래를 잃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실수이다. 큰 대 믿을 신. 지금이야말로 사명의 음절이 아닌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아야할 순간이 아닐까 싶다.



댓글 16개:

  1. 신뢰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지요.선생님 말대로 한 다리 걸치면 다아는 인맥에 나인원 한남에 살정도면 부족하지 않은 통장에 유동성과 높은 곤조가 생명인 사람들인데 이와 비슷한 문제로 대한항공 땅콩사건도 1등석 승객에게 조현아가 소란을 일으키고 겨우 모형비행기와 달력 준거랑 비슷한 셈이지요. 1등석 탈정도면 기저에 곤조가 있는 사람일텐데...ps.(10월에 못 쓰신길 11월에 막 써주시는거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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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전에 쌓아둔 원고를 탈고해서 몰아 올렸습니다. 게으름은 나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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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신증권도 오너 기업일텐데, 저런 결정을 내렸다는게 이해하기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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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가 감히 평가하긴 어렵지만 경험부족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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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렇게 Price에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정부를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사람들이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별로 못느낀다는 게 더 충격적인 것 같습니다

    부동산도 어쨌든 시장에서 거래되는 하나의 상품인데
    그 가격을 왜 멋대로 지정하는지, 그게 문제해결에 역행한다는걸 알면서도 저러는 것인지
    참으로 기상천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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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인들이 겪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자연발생적인것이 아니라 상당부분 미국이 체제선전을 위해 강제로 이식한 영향도 크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중우정치의 폐해를 일찌감치 눈치챈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설령 군중심리가 한쪽으로 쏠려도 한 정당이 백악관과 상원/하원을 동시에 가져가기 어렵도록 선거제도를 설계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를 보면 그런 고려따위는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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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스크 의무화까지 벌금 10만원... 이거 너무 강압적이고 너무 전체주의적인거 아닐까요? 프랭클린이 했던 말중에 약간의 안전을 얻기 위해 약간의 자유를 포기하는 사회는, 자유도 안전도 가질 자격이 없으며 둘 다 잃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한국인들은 냄비에서 천천히 끓여지는 개구리처럼 될거같습니다.. 대다수의 국민이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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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최근 입법하는 법들 보세요. 진짜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었는데 똥이 여기저기 안 묻은 곳이 없어서 요즘은 여기가 이승인지 저승인지 구분이 안 가네요. 저는 첫 취준을 이번에 했지만 너무 걱정이 많이되고 두렵습니다.. 계속 경력을 개발시키고 이직하고 제태크해서 돈을 모으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대로 가다간 대규모 국가 탈출 엑소더스가 일어나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제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요. 물론 일정정도의 통제가 전염병 상황에서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이건 좀 도를 넘고있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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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래전에 대신증권 회장님 뵌적이 있었는데 여자분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 분인가 모르겠네요 여하튼 오늘도 깨우침을 주시는 글 감사드립니다. 점점 최악으로 치닫는 주거시장에 대한 혜안도 한번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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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맞으실겁니다. 주거시장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있다, 정도로 요약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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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좋은 글 잘읽고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이런 좋은 내용의 글을 유려하게 쓰시는지 궁금하네요..대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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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재미있는 건 나인원 한남에 사는 사람들의 거주만족도가 높지않다는 거더군요..자칭 핫플들을 위한 핫플장소들을 상가에 세팅했는데, 이거에 대한 불만이 많고 두번째로 집 구조가 별로라는 의견이 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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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하에 고메 푸드코트를 만든건 잘못된 전략인듯 싶습니다. 부자들은 남들과 섞이길 싫어하지 시장바닥이 가깝길 바라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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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HHMM님 블로그 재개하신줄 모르고 굉장히 오랜만에 방문해, 절세미인 노영민 이후로 정독중입니다. 감사합니다.

    나인원은 시행빼고는 모든걸 엉망으로 한 듯하네요. 나인원 입주를 희망했던 사람이라 많이 알아보고 다녔는데, 두 번째 비하인드는 저도 방금 알았는데 흥미롭군요... (소위 양XX 같은 짓을 했네요) 시공도 고급아파트 짓는데는 절대 안쓴다는 롯데건설로 시공을 해서, 층간소음, 마감, 단열이 엉망이라고 하더라고요.

    이제 다음글로 넘어가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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