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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6. 25.

쪼다를 위한 통화정책은 없다 시즌2 (feat. 이주열 again)

문재인 정부의 다른 어벤져스들에 가려지긴 했지만 이전까지 이 블로그에서 가장 신랄하게 비판했던 이는 바로 한국은행과 이주열이다. 그들은 잘못된 편향을 바탕으로 한국을 디플레이션의 구렁에 몰아넣었으며 거의 대부분의 경제 변곡점에서 매우 잘못된 시점에 매우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그 빛나는 사례가 바로 작년인데, 코로나로 세계경제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기 직전인 2020년 2월 이주열 총재는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곧 회복될 것이기에 금리를 인하할 필요는 없다고 세 번이나 장담했다. 그리고 세계가 어떻게 되었던가. 당시에 내가 시장에 대해 쓴 글 중 반이 그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링크1 2 3 4

이처럼 총재는, 그리고 한국은행이란 조직은 통화정책을 운용할 역량이 없는 소모적인 조직이다. 작년 3월 미국의 연준이 긴급회의를 통해 금리를 50bp 내린 뒤에도 이주열이 금리인하를 거부했을 때 나는 쪼다를 위한 통화정책은 없다는 글을 올렸다. 오늘날 그 쪼다는 정확하게 똑같은 쪼다짓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또다시 실기하고 있으며 이 쪼다짓은 결코 한번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자 이 덤앤 더머의 행적을 다시 한번 따라가보자. 고통스럽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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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열린 기자회견에서 총재는 연내 금리 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했고 내년 4월에 끝나는 자신의 임기 내에 두 번의 인상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이에 따라 시장금리는 급격하게 반등하며 연내 2회 이상의 금리 인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시간 코스피는 신고점을 찍고 있고 부동산은 조정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얼핏 보면 총재의 시그널은 타당해 보인다. 현재 경제성장률은 매우 견실하고 물가 상승률은 1월 0.6%에서 5월 2.6%으로 반등 중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총재와 한은을 쪼다라고 부르는 데엔 합당한 이유가 있다. 

미래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면 현재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2020년은 우한 폐렴의 전 지구적인 확산으로 인해 주요국 경제가 대부분 큰 슬럼프를 겪었고 이에 따라 금융시장 역시 신용경색의 발발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이래 가장 강력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경제와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고 금융시장과 자산의 가격은 되려 금융위기 전보다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자가격리와 코로나의 공포에서 벗어난 몇몇 대중들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방금 위기를 겪었는데 자산 가격이 되려 올랐다면 잘못된 것 아닌가. 거기에 미 재무장관 옐렌과 연준의장 파웰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것이 바로 정확하게 우리가 의도한 바라고.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리만사태 직후의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예측하지 못한 이벤트로 인해 경제가 잠재성장률 아래로 주저앉으면 정부와 중앙은행은 재정/통화정책을 사용해서 경제를 본 궤도로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과거 금융위기 이후 버냉키가 이끄는 연준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를 단행했으며 그 결과 2008년부터 미끄러진 미국의 경제는 2018년에서야 본궤도로 돌아왔다.* 하지만 경제가 기존의 성장경로로 회복한다고 해서 그 상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해고는 빠르게 일어난 반면 고용시장의 회복은 매우 더뎠기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은 장기 실업에 직면하였고 이들은 경기가 완전히 회복한 뒤에도 적절한 직업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오늘날 2020년에 대학을 졸업한 신규 구직자들을 보자, 그들은 코로나로 인해 적절한 직업을 찾지 못했고 일용직과 저숙련 임시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만약 경제가 본 궤도로 완전히 회복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면 삼십 줄에 들어섰지만 경력이라곤 아르바이트 경험밖에 없는 2020년 졸업생들이 2025년 졸업생들과 신규 구직시장에서 경쟁이 될 리가 없다. 이들은 영영 잃어버린 세대로 남을 것이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위기 직후의 경제 회복은 빨라야 하고, 또 과도해야 한다. 옐렌은 이를 high pressure economy라고 불렀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단기적 과열을 방치하겠다는 뜻이다. 연준은 지난 6월의 FOMC에서 금리 인상 시점을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적절한 중립금리의 수준은 변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재무부와 연준은 high pressure economy를 유지하기 위해 과도하거나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을 천명했다. 

또 연준은 경제 위기 직후의 인플레와 성장이 대체로 일시적이라는 사실도 강조한다. 2019년에 100이었던 경제가 코로나 타격으로 2020년에 98로 후퇴했다가, 2021년에 회복해 다시 102가 되었다고 해서 다음 해에 106까지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점진적으로 100-101-102로 움직일 것으로 기대했던 경제의 성장경로가 중간에 좀 뒤틀린 것이지. 따라서 내년에 올해만큼의 성장과 인플레이션 압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이를 여러 번 강조했고 사람들과 시장에게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지난달 미국 CPI가 한국의 2배를 넘는 5.0%를 기록하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장기금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어떤가. 아무런 철학도 없고 기준도 없다. 이들이 금리 인상을 고려하는 이유는 그저 지금 경제가 좋기 때문이고 자산 가격이 많이 오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기저효과는 올해 안에 사라지고 내년에는 마이너스로 돌 것이다. 우리는 통화정책이 선행적이어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총재와 금통위원들은 지금 경제가 좋으니 지금 금리를 올릴 것을 고려하는 것이지 그들의 머릿속에 내년 내후년에 대한 전망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장기적인 통화정책이 나올 리 없다. 연준이 첫 금리 인상이 빨라야 2022년 말이라고 미리 상세하게 언질을 준 데 비해 한국은행 총재는 3분기의 인상을 2분기의 끝자락에 던졌다.

연준과는 달리 불황의 상흔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수출과 자산 시장이 회복되어도 20대 구직자들과 한계에 직면한 자영업자들, 그리고 과도하게 높은 최저임금으로 직업을 잃은 빈곤층들은 상황은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 회복의 온기가 그들에게까지 미치려면 경기가 어느 정도 과열로 흐르도록 방치해야 하지만 한국은행은 그럴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금리 정상화의 이유로 가계부채를 들지만 정작 급증하는 것은 국가부채 아닌가. 2020년 가계부채가 125조 증가하는 동안 국가부채는 거의 두 배인 무려 241조가 증가했다. 게다가 가계가 부채를 주택이나 주식과 같은 자산매입에 쓴 반면 정부는 보조금이나 지원금 같은 일회성 지출에 쏟아부었다. 빚내서 탕진하는 정부가 빚내서 투자하는 가계에게 훈수를 두는 꼴이라니 이 얼마나 대책 없는 정책인가.

그들이 게으르고 무능한 조직이라는 점은 수치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Bank of America 리서치는 자신들이 커버하는 약 100여 개 국가들의 코로나 사태 이후 통화/재정정책을 정리했는데 이 중 한국의 재정 대비 통화정책의 규모는 약 0.5%로 세계에서 가장 미약한 통화정책을 사용한 나라이다. 참고로 이 비율은 미국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경우 60-80% 선이며 프랑스 스페인 영국은 재정정책과 비등한 통화정책을 썼고 심지어 네덜란드의 경우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의 약 4배에 달한다. 다른 나라들보다 한국의 재정정책이 너무 과도해서 통화정책이 작아보이는 것 아니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선진국들의 재정정책이 GDP의 20%에 넘는데 비해 한국은 고작 15.2%에 불과하다. 그런 재정의 고작 0.5%라니, 명백히 한국은행은 세계에서 가장 게으른 중앙은행이고 경제 위기의 한가운데서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조직이다. 일반 기업이 이 정도로 무책임하게 대응했다면 배임으로 고발당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조직은 없는 것이 낫다.

정작 위기 시에는 뒷짐 지고 6주에 한번 만나 노가리나 까며 아무것도 안 하던 조직이 이제 기지개를 켜고 경제의 고삐를 쥐겠다고 나섰다. 중국에 이어 코로나의 두 번째 피해자였던 나라인데도 가장 마지막에 움직였던 한국은행이 가장 먼저 금리를 정상화하겠다고 나서는 희극이 펼쳐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플레와 성장은 일시적이고 코로나로 인한 경제주체들의 상흔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면 경제가 어느 정도 과열로 흐르도록 해야 한다던 연준과, 위기에서도 아무것도 안 했지만 지금 경제가 회복되고 있으니 금리부터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은행은 또다시 대립하고 있다. 마치 2020년 3월과도 같이-긴급 미팅을 열어 금리를 150비피 인하한 연준과 긴급 미팅을 열어 경제가 긴급하지 않으니 인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이주열 총재. 차후 누가 맞을지는 너무나 자명하지 않은가. 

흰색-미국의 기준금리    주황색-한국의 기준금리    빨간원-둘의 통화정책이 엇갈린 기간 

연준과 한국은행이 다른 길을 걸었던 것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 2008년 그리고 2010-11년 모두 한국은행은 연준과는 반대로 금리를 올렸으며 모두 한은이 결국 금리를 급격하게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주열 총재는 또다시 돈키호테처럼 연준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떨까? 내 기억에 총재가 이처럼 강력하게 금리 정상화를 외친 적이 딱 세 번 있었는데 처음은 취임 직후, 두 번째는 코로나 직전,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오늘이었다. 그리고 세 번 모두 결국 금리를 크게 인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바보는 늘 바보짓을 반복하기에 이주열 총재와 한국은행은 또다시 금리를 너무 많이 올리고 결국 도로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그 뒷수습을 새로운 총재가 하게될 뿐.

나는 총재의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금리를 언제 올리는 것이 적절한지 나 역시 알지 못한다. 다만 금융위기에서 거의 배임에 가까운 태업을 펼친 총재가 갑자기 낙관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정책을 펼치는 것을 우려할 뿐이다. 그가 연준과 반대되는 길을 간다면 더더욱. 임기의 처음과 그의 재직 중 가장 큰 위기, 그리고 마지막을 모두 쪼다 짓으로 마무리하는 우리 이주열 총재의 완벽한 일관성에 나의 찬사를 바친다.


*GDP갭 기준










2021. 1. 3.

고루한 비관론자를 위한 해는 없다(No year for old bears)


KOSPI지수

보통 시장의 변곡점이 아닐 때엔 시장이나 경제에 대한 글을 잘 올리지 않는데, 작년을 돌이켜보니 총 25개의 시장 관련 포스팅 중 15개를 위의 두 달 사이에 올렸다. 주가가 큰 폭으로 폭락한 1월의 마지막 금요일, 나는 이 공포가 크게 번질 것이라고 전망했고(링크) 이후 대부분의 글은 시장이 어떻게 패닉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진행될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제 베어마켓이 끝났다는 포스팅(링크)을 올린 것이 4월 3일이니 사실상 작년의 투자실적의 거의 대부분은 저 60여 일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글을 통해 시장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봄에는 겨울을 생각하면 안되고 번개는 같은 곳에 두번 떨어지지 않기 마련이니까. 그 생각은 2021년에도 변함이 없다. 올해 시장은 전형적인 회복기 패턴을 따를 것이라 생각한다. 기업들은 대대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고, 그로인해 기업들의 생산성과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이며 또한 생존자들의 마켓쉐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목도할 것이다. 반면 시장 심리가 아직 취약하기 때문에 작은 헤드라인에도 발작을 일으키는 날도 겪을 것이고, 또 이례적인 환경에서 과도하게 오른 종목들이 반대로 조정을 주도하는 순간도 있으리. 하지만 그 뒤에 강력한 성장회복세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단지 시기의 문제일 뿐.

매일 매시 매분의 가격 움직임에 집착하는 트레이더들은 종종 큰 흐름을 망각하곤 한다. 갑자기 주가가 순간적으로 1%라도 내려가면 다시 폭락이 들이닥친 것 마냥 패닉 하기 마련이고 주가가 또 그만큼 반등하기라도 하면 호황이 찾아온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조증과 울증을 발작적으로 겪는다. 하지만 커다란 조류 앞에서 수면의 잔물결은 쉬이 잊혀지듯 큰 트렌드 앞의 작은 가격움직임도 그렇게 될 것이다. 내 전망은 작년 4월 3일과 다르지 않다. 최악의 순간은 이미 예전에 지나갔으며 향후 몇년간 경제는 2020년에 잃어버린 성장을 어느정도 만회할 것이다. 동시에 전 세계 중앙은행들과 정부의 전례 없는 적극적인 조치로 시장안정에 대한 발판은 그 어느 때보다도 탄탄하며 무엇보다 빠른 유동성의 증가가 자산시장을 성장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남겠지. 늘 그랬듯이. 

과거의 패턴을 보면 위기 직후 12-24개월 내에 주식시장은 10-20%의 조정을 겪곤 했다. 그날이 오면 우리가 잠시 덮어두었던 지난 3월의 비관론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지만 누차 말했듯 우리는 모두가 비관적일 때 낙관적일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반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큰 그림에서 과거를 보면 위기가 온전히 지나간 뒤 연간으로 주식시장이 큰 폭으로 하락한 예는 무척 드물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루한 비관론자를 위한 해는 없다고.

2020. 11. 12.

대신증권의 전략적 실수 두가지

먼저 나는 대신증권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내부자 정보따위와는 거리가 멀며 심지어 가까운 지인도 없다. 따라서 아래 분석은 오로지 공개된 정보에 의거한 것이고 실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이 보기인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그저 순전히 제 3자의 시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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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교를 지나 도심으로 향하다 왼편을 돌아보면 나인원한남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도심속 타운하우스 열풍에 힘입어 자산가들의 큰 관심을 받은 이 단지는 흥미롭게도 건설사가 아닌 증권사인 대신증권이 주도하여 지은 것이다. 부동산이 반등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장기전망에 의문을 가졌던 2016년, 대신증권이 과감하게 자회사를 통해 시행사로 나서며 한남외인부지를 낙찰받아 지은 고급주거단지, 나인원 한남. 

나는 이 선택이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건설에서 금융사들의 역할은 PF에 그쳤지만 대신증권은 과감하게 시행사로 나서며 신사업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금융업계 최초로. 우리나라의 증권사들이 50개가 넘는다는 사실과 그들 중 상당수가 금융지주회사, 혹은 외국계자본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증권업 내에서 대신증권의 비교우위가 명확하지 않지만,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야하는 건설업 특성상 직접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증권사의 이점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부동산이 본격적으로 반등하는 시점에서 그것도 대형평수/고급 타운하우스라니, 업종과 트렌드 두 박자를 모두 맞추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총 사업비는 1.6조원. 모회사 대신증권의 자기자본금 규모에 육박하는 자금이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회사는 시행사로의 변신에 미래를 건 것이나 다름없다. 잘 풀렸다면 아마 케이스 스터디에 실렸을 만큼 과감하면서도 훌륭한 시도였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들이 두가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실수로 이 프로젝트 전체의 수익이 날아갔고 두번째 실수로 그들의 전략적 변신이 무위로 돌아가게 되었다. 두번째 실수가 더욱 뼈아픈 것은 그것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순간에서 기업들이 실기하는 사례들은 너무나 흔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묘수가 악수로 끝나는 것이 안타까워 내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첫번째 실수-후분양 옵션

문재인정부 출범 후 주택시장의 안정이 정치적 아젠다로 떠오르자 집값을 잡기 위해 HUG는 각 서울시의 분양가를 통제했고 나인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느 재건축 단지들처럼 HUG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이 최고급 타운하우스의 분양가를 기타 지역의 일반 아파트 수준으로 깎으라고 주문했다.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영수증을 받고 고심하던 시행사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하는 대신 4년간 임대를 주고, 희망하는 세대에 한해서 분양을 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후분양 옵션이라고 부른다. 입주자는 4년간 임차인으로 거주한 뒤 만기에 시세에 따라 분양을 받을수도, 혹은 포기할 수도 있으니 전형적인 옵션이다. 햄릿의 연극과도 같은 나인원의 비극은 시행사가 이 옵션을 너무나 싼 값에 팔면서 시작된다. 옵션의 행사가격이 시장가격보다 아래인 옵션을 내가격옵션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구조는 보통 비싸게 팔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당장의 조달비용을 아끼려고 이를 너무 싼 값에 팔아치운다. 부동산시장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고 미래를 베팅한 회사가, 집값이 올라도 수익을 낼 수 없는 콜옵션을 전량 매도하는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드라마의 흔한 클리셰처럼 이로 인해 시행사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룹의 전망이 정확하게 맞아 집값은 당시보다 거의 두배 가까이 뛰었지만 시행사는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했다.

반면 비용은 폭증한다. 7.10부동산 대책으로 법인의 종부세가 6%의 단일세율이 적용되면서 4년간 보유세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대신증권의 2분기 재무제표를 보면 나인원한남 관련 일시적 비용이 약 938억원이 발생해 적자로 전환했는데 새 종부세법으로 인한 비용이 내년에 부과되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 2분기의 일시적 비용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대강 계산해보면 이제까지 누적된 나인원한남의 이익을 상쇄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실수-신뢰의 상실  

이 모든 사태는 HUG가 시행사가 신청한 분양가를 몇번이고 반려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업이란게 늘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 가는것 아닌가. 우리의 여느 삶이 다 그렇듯이. 그리고 승자와 패자는 그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법인의 종부세가 폭등하는 것은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고, 후분양 옵션을 너무 싸게 판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시행사는 여기에서 두번째 실수를 저지른다. 첫번째보다 더 치명적인 실수를.

바로 2021년 부과될 종부세를 피하기 위해 임차인들에게 조기인도를 통보한 것. 임차인들은 나인원한남의 명의가 2023년 11월에 양도될 것이라고 믿고 그에 맞게 자금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행사는 이를 앞당겨 2021년 3월에 양도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되면 2021년 부터 23년까지 3개 년도의 종부세가 시행사가 아닌 입주자들에게 부과된다. DS한남 측은 계약서 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또 3년치 종부세에 준하는 금액을 부담하겠다고 하지만 종부세 계산은 다주택 누진세인데 비해 시행사가 부담하겠다는 종부세는 1주택자 기준이라 커다란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링크) 애초에 40억이 넘는 집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기존에 보유한 집이 없을리 없지 않은가.

법리상 시비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지만 비즈니스적 측면에선 이는 최악의 선택이다. 대신증권은 이 사업에 단순한 LP(일종의 전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직접 자회사를 설립해서 뛰어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처음 해보는 대형사업인 만큼 다소간의 시행착오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에 따른 예상외 비용은 수업료라고 받아들였어야 했다. 하지만 시행사는 사실상 손실을 자신을 믿고 계약한 소비자들에게 떠넘기기로 결정했다. 옳건 그르건 사업가가 손님과 멱살 잡고 법정에 가는 것은 앞으로 거래를 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대신이 나인원의 경험을 발판으로 진출하려는 사업이 고가주택분양이라는 것이다. KB경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금융자산이 100억이 넘는 부자의 수는 2만 4천 명, 10억이 넘는 사람은 약 35만 4천 명이다. 세다리 건너면 모두가 안다는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대신증권의 미래 사업의 소비자들은 나인원한남의 수분양자 당사자, 친인척들, 지인들과 상당부분 겹칠 것이다. 설령 겹치지 않더라도 회사의 이렇게 대응한다면 자산가들이 어떻게 그들을 믿고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인가.

또 고객들에게도 저렇게 대응하는데 회사가 프로젝트를 진행한 실무진들을 잘 대우해줄 지 의문이다. 얼마전 작고한 이건희 회장의 수첩으로 알려진 글이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는데, 그 중 실패한 연구진들을 격려하고 되려 축하하는 방안에 대한 메모가 있었다. 대신 F&I와 DS한남의 실무진들은 전체 금융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행까지 도맡아 본 경험자들이자 최악의 상황까지 겪어본 베테랑이 되었다. 정말 이 분야에서 회사의 미래를 찾겠다면 이 경험자들을 우대해야 한다. 매번 하던 사업도 실패하기 마련인데, 처음 해본 대규모 프로젝트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그들을 홀대한다면 영민하고 눈치가 빠른 직원들이 먼저 이직할 것이고 남은 임원진들은 위험이 상존하는 새로운 사업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증권사 수수료경쟁이 격화되고 자본의 규모가 곧 경쟁력이 되는 금융업에서 탈피해 대신증권이 시행사로 변모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지른 몇몇 실수로 꽃놀이패는 똥패로 전락했다. 하지만 신산업에 진출한 회사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회사의 재무구조는 그 실패를 거뜬히 감내할 정도로 탄탄하다. 대신증권의 이 변신이 성공한다면 현재의 시행착오는 사소한 비용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작은 착오와 손실에 매몰되어 시장과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미래를 잃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실수이다. 큰 대 믿을 신. 지금이야말로 사명의 음절이 아닌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아야할 순간이 아닐까 싶다.



2020. 11. 9.

부동산과 주식은 버블인가

이전에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훌륭한 트레이더들이 막상 개인적 투자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 주된 이유는 트레이딩과 투자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시장은 마치 노련한 바람둥이처럼 당신을 위해 매일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으며, 아무리 훈련된 트레이더라도 그 앞에선 연애경험이 없는 여자처럼 쉬이 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각종 펀드와 금융기관의 트레이더들이 매달 수백, 수천만 원을 들여 정보인프라를 구축해놓고 예기치 못한 시장의 사건에 대응하는 마당에, 증권사들의 공짜플랫폼에 의지하는 개인투자자들이 그들을 앞서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트레이더들의 개인계좌도 마찬가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 지진으로 파괴되었다는 속보가 뜨는데 회사포지션을 보호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 개인계좌를 먼저 챙기는 트레이더를 짜르지 않을 회사는 없으니까.

따라서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단기적으로 끝나고 잊혀질 이벤트를 과감하게 넘기고 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사건들에 집중해서 투자해야 한다. 아마 그것이 트레이딩과 투자의 가장 큰 차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트레이더지만 이 블로그에서만큼은 철저히 투자의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지난 1월 말부터 3월까지 경제와 시장에 대한 글을 집중적으로 올렸던 가장 큰 이유는 그때가 트레이딩은 물론이고 투자에 있어 정말 중요한 분기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지나고 4월 5일 비관론자들을 비웃을 차례라는 글(링크)을* 올린 이래 시장에 대해 업로드하지 않은 것은 그때로부터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 코로나는 다시 이전 고점을 넘어섰고, 미국 대선과 지난한 브렉시트 이벤트가 있었으며 한국과 중국의 경제 지표가 크게 개선되었지만 시간의 문제지 언젠간 다 겪을 것 아니었나.

부동산 시장은 더욱 그렇다. 그동안 임대차 3법, 6.17부동산 대책, 임대주택 논란 등 수많은 이슈가 있었지만 청와대가 김수현(링크)을 다시 기용한 이래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 않나. 이제 시장과 대중 뿐 아니라 정부도 공급부족을 사실상 자인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 분석할 것도 전망을 바꿀 일도 없었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수치는 단기간에 급변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을 분석하는 일은 반기에 한번도 많다. 쓸데없이 데이터들을 자주 다운받고 정리하는건 무의미한 시간낭비일 뿐이다. 

주식도 부동산도 내 전망은 달라질 것이 없다. 전제조건들이 변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한가지 크게 달라진 것이 있는데, 바로 가격이다. 가격은 모든 거시/미시환경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아무리 전도유망한 기업도 가격이 비싸면 고꾸라질 것이고, 당장 망할 회사도 과도하게 싸면 오르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실물경제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과 주식의 가격이 계속 상승하니 비관론자들의 버블론이 다시 고개를 든다. 하지만 봄의 뒤에는 여름이 오는 법이지 다시 겨울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두개의 차트를 보자.
서울시 주택가격 / 가처분 소득
서울시의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에 오독하기 쉽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이촌향도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서울의 위성도시는 계속해서 주변지 인구를 흡수하고 있고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주택이 모자르기 때문이다. 서울시 생활권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그러니 서울시의 주택가격을 전국의 가처분 소득으로 나눈 것이 잠재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지표로 보면 현재의 주택가격은 소득기준대비 아직도 저렴하다. 단지 과거 몇년동안 너무 낮았던 터라 지금이 비싸보이는 것 뿐이다. 
이는 서울시가 역사상 최악의 공급난을 겪었던 80년대 중후반의 수치를 제외하고 보아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혹자는 참여정부 말기의 부동산 고점기와 비교하여 현재의 부동산 시장이 과도하다고 평가하지만 여러 지표로 볼 때 아직 부동산시장은 버블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인들의 가처분소득이 크게 감소하거나 소득이 정체된 상태에서 주택가격지수가 20-30% 더 상승해야 2008년의 고점에 도달하게 된다. 문제는 고유가와 싸우느라 전세계가 고금리를 유지하던 과거에 비해 디플레와 싸우는 오늘날, 부동산 가격이 고작 2008년의 고점에서 멈출 수 있을까? 
S&P500+NASDAQ시총 / USD M2통화량
주식도 마찬가지다. 위 차트는 미국의 주식시장 시총을 전체 USD통화량으로 나눈 것인데 2000년대 초반의 주식버블에 비하면 아직 한참 아래에 있다. 물론 지난 5년 평균치(노란색 선)보다 높긴 하지만 미국의 통화량 공급이 20% 넘게 풀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주식시장의이 버블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긴 어렵다.  
코스피+코스닥시총 / 원화 M2통화량
한국의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아니 되려 더 저평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을 따라 한국의 주식시장도 버블에 취해있었던 1980년대에 비하면 현재의 주식시장의 시총은 통화량 대비 현저하게 싸다. 
마찬가지로 비정상적인 기간을 빼고 최근 20년간의 수치로만 봐도 버블을 논하기엔 이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난 부동산도 주식시장도 버블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가격만 놓고 비교한다면 롤렉스와 샤넬 백의 가격이야말로 버블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모든 자산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렇게 보정해 보면 10년 중 자산을 팔아야 할 해는 고작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자산을 사지 말아야 할 기간은 2할도 되지 않으며 나머지 기간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싼 자산을 사고 비싼 자산을 파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대개 금융위기나 전쟁과 같은 혹독한 겨울을 보낸 직후에는 대다수의 자산이 저평가되기 마련이다. 물론 그런 시기에도 비싼 주식이 어디 없겠냐만은. 그리고 유명 헷지펀드 매너지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이 요새 들어 입버릇처럼 하는 말처럼 과거의 위너가 다음 시대의 루저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한국 주식시장에 더 많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했던 나도 20세기 이래 주식시장시장에서 완벽한 V자 반등은 없었고 항상 W자를 그렸으니 두번째 딥이 있을것이라 믿었다가 계획보다 높은 지점에서 진입했다. 마크 트웨인의 두가지 명언을 떠올리자,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 "10월은 주식투자하기 가장 위험한 달 가운데 하나다.나머지 위험한 달들은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2월이다.


2020. 11. 7.

바이든의 승리, 그리고 여론조사기관의 패배

글 

현재까지의 대선 결과(Google.com)

글을 쓰는 이 시간까지 확정되지 않았지만 미국 대선은 바이든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얼핏 보면 2016년과는 달리 이변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내막을 들춰 보면 그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대다수 여론조사기관의 예측과는 달리 바이든은 플로리다, 조지아, 펜실바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위스콘신, 미시건과 같은 격전지에서 패배했거나(FL, NC) 1%미만의 격차밖에 내지 못했다(WI, PA, GA, AZ). 대다수 여론조사기관은 9:1의 확률로 바이든이 거뜬히 이길 것이라고 전망했으니 답은 맞췄지만 그 풀이가 엉망진창으로 틀린 셈이다.

개표 전 여론조사기관의 전망 (fivethirtyeight.com)

여론조사기관들이 또다시 표심을 잘못 헤아렸다는 사실은 상하원 선거 결과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민주당이 상원까지 가져갈 것으로 전망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공화당이 상원의 과반을 지키는데 성공했고 심지어 하원에서 약 5석의 의석을 더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10만 명을 돌파하고 선거 전까지 백신도, 재정합의안도 나오지 않았던, 트럼프와 공화당에게 최악이었던 시나리오를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개표 전 상원의석수 전망 (fivethirtyeight.com)


현재까지 개표결과 (google.com)

정치의 세계에서는 99% 득표로 당선되든 51%로 되든 승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론조사는 그렇게 간단한 2진법의 문제가 아니다. 오차율만 보면 미국의 pollster들은 2016년에 이어 이번에도 크게 틀렸다.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통계조사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왜 자꾸 이런 이변이 발생할까.

나는 그 저변에 트럼프 지지자들에 대한 몰이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글(링크)에서 지적했던 것 처럼 민주당과 리버럴들은 아직도 못배운 백인들이나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2016년과는 달리 최종학력의 가중치를 보정해 저학력층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수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또다시 대중의 속마음을 읽는데 실패한 그들은 입가에 불편한 미소를 띄우곤 통계모델과 샘플을 뒤적거리며 "상당수의 우편투표가 도착하지 않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비율이 낮다", 와 같은 변명을 늘어놓지만 과연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일까.

답은 간단하다. 샤이 트럼프가 다 못배운 백인은 아니라는 것. 일례로 이번 선거에서 텍사스의 히스패닉들과 플로리다의 남미계 커뮤니티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는 비율이 높았다. 또 지난 선거에서 미시건이나 위스콘신의 고학력/중산층/백인이 주류인 카운티에서도 트럼프의 득표율이 예상보다 높지 않았나. 이처럼 샤이 트럼프들은 이민자들의 범죄에 겁먹은 젊은 백인 여성, 비 시민권자들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고학력 아시안, 가톨릭 전통을 존중해 낙태를 거부하는 남미계 이민자들 사이에도 흔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솔직할 수 없다. 주류언론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멍청한 백인이라는 낙인을 찍었으니까. 애초에 현직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들에게 shy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그 편향성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               *               *

1. 선거결과의 윤곽이 드러나자 주식은 무섭게 반등하기 시작했다. 미국 S&P지수는 금요일 오후까지 약 4.2% 상승했고 특히 나스닥은 8.5%나 올라 뜨겁게 화답했다. 예상과는 달리 공화당이 상원을 차지하게 되어 강력한 재정지출의 가능성이 줄어들었지만, 나는 이것이 장기적으로 주식에 가장 긍정적인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결코 시장친화적이지 않다. 각종 규제강화와 세금인상이 어느 정부에서 이루어졌나 보라. 나 개인적으로는 불평등의 완화라는 정치적 아젠다에 동의하지만 영혼이 없는 내 포트폴리오와 자산은 그런 정치따윈 알지 못한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하지만 그만큼 규제와 세금을 싫어하기 마련인지라, 예측 가능한 바이든과 규제와 증세를 막아낼 상원의 조합은 향후 몇년간 증시에 가장 좋은 조합이 아닐까 한다.

2. 정치의 변화는 시장의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집권정당이 바뀌는 해엔 더더욱. 1993년 클린턴은 경제정책 앞에 동맹을 두던 기존의 미국의 국제전략을 전면 수정했고, 2009년 오바마의 시대는 각종 금융규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새 시대의 루저는 구 시대의 위너들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주식시장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할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바로 성장성이 낮게 평가된 주식을 사고 과도하게 평가된 주식을 파는 것. 

3.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했지만 여전히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카운트다운(링크)은 진행되고 있다. 누가 의회를 잡느냐, 신임 재무부장관의 재정건전성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질문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민주주의 시스템 아래에서는. 코로나로 경제가 모두 멈춰서고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미국인들의 소득은 정부보조금 덕에 오히려 늘었다. 따라서 단순한 불황이나 심지어 리만같은 금융공황사태가 닥쳐도 미국인들은, 그리고 한국인들을 포함한 세계인들은 소득의 감소나 실업 구조조정 등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큰 정부는 경제의 효율성과 동력을 앗아가지만 그 페해를 기억하는 유권자는 드물고 이해하는 이는 더더욱 드물다. 부채 사이클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인데, 그들이야 말로 가장 큰 빚쟁이들이기에 이 사이클은 지속될 것이다. 최대한 현금에 대해 숏포지션을 내는 것, 그것이 현 시대의 생존법이라 생각한다.

미국 개인소득 전년대비 변동

2020. 9. 28.

바닷물을 들이키는 청년 창업가들

리스크를 지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행동경제학의 여러 실험과 분석에 따르면 인간은 안정성에 과도한 프리미엄을 부여하기 때문에 적절한 리스크를 지는 것은 오히려 높은 보상을 돌려주곤 한다. 가장 안정적인 예금의 세후 수익률이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을 하회하는 것을 보라. 리스크를 지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하지만 그 리스크 역시 현명하게 져야 한다. 재산을 거의 탕진한 도박꾼이 마지막 한 패에 모든 것을 걸다 오링나는 것을 두고 우리는 그가 현명하게 베팅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박영화의 흔한 클리셰처럼 우리 청년들은 창업이라는 잘못된 도박판으로 몰려나고 있다.

NBER(Working Paper No. 24489),
Pierre Azoulay, Benjamin Jones, J. Daniel Kim, and Javier Miranda

다음은 전미경제조사회 2018년 7월호 보고서에서 발췌한 도표로 성공한 창업가의 연령분포를 보여준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20대들의 창업신화들과는 달리 창업에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은 나이는 바로 35-45세로 보인다. 빈도만으로 본다면 대학생의 창업이 성공할 확률은 환갑을 넘긴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조사결과와 데이터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데이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전문성의 부재에 있다. 얼마 전 인스타에서 핫한 모 비스트로를 방문했을 때 두 가지에 놀랐는데 하나는 쉐프와 오너의 나이가 너무나 어리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음식의 퀄리티가 참으로 처참했다는 것이다. 요식업의 기본조차 모르는 아마추어들이 음식점을 개업하고 거기서 실패를 맛보는 일은 이미 TV 예능 골목식당의 단골 소재가 된지 오래다.

이는 비단 요식업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매년 여름이면 청계천 변에는 도깨비야시장이 열리는데 시의 후원을 받은 젊은 소상공인들이 가판을 열고 자신들이 만든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다. 하지만 살 것이 없다. 젊은 창업가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청계천고가도로가 철거되기 전 노점상들보다도 더 조악한 품질과 형편없는 디자인 때문에 도저히 지갑을 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내 생각에 그들의 대부분은 필히 파산할 것이고 운이 좋다면 차라리 일찍 폐업해서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형편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이 회사나 식당이나 공방에 들어가 기본기를 배울 나이에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미숙함은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와 정부가 그들로 하여금 창업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멘토들이 나서서 너는 지금 창업을 할 때가 아니라, 기본기를 익히고 기술을 배울 때다. 창업은 아이디어 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너의 비즈니스 모델은 경쟁력이 없다, 와 같은 쓰린 조언을 해주지 않는다. 되려 이상한 창업지원센터를 만들어 청년들을 실패의 일방통행길로 유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졸자들의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청년들의 창업을 장려한다. 그렇게 폐업의 비극은 나라에 의해 대량생산된다. 이는 비단 문재인 뿐 아니라 박근혜 정권부터 이어진 문제로 정부는 최저임금을 취준생들의 생산성보다 더 빠르게 높여 그들의 취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링크), 그로 인해 20대 실업률이 폭증하자 창업을 유도해 청년실업률을 낮게 유지시켜왔다. 하지만 숙련공들과 대기업 자본들이 경쟁하는 시장에, 비숙련인데다 소자본, 아니 무자본인 청년들이 뛰어드는 것은 그냥 가미가제 작전이나 다름없다.


날씨가 좋아 서울숲을 걷다 모 기업에서 후원하는 청년창업공간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시세에 맞는 월세를 감당하고 살아남을 가게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당장 이 곳의 가게들과 시장경제 맞게 월세를 내는 인근 겔러리아포레의 가게들과 비교해 보라. 이 청년들이 유동인구가 이렇게나 많은 곳에 가게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기업이 후원 덕이다. 차라리 그 자리를 일반 자영업자들에게 개방했다면 가장 많은 수익을 낼 가게들이 입점했을 것이고 또 그렇게 훌륭한 사업모델을 가진 가게들은 알바생을 고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알바생들이 직원이 되고, 그들이 경력과 자본 그리고 인맥을 모아 새로운 장소에 분점을 내고 창업하는것 그것이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선순환 아니였나. 기업이 수십만 청년창업가 중 몇명을 뽑아 마치 부자엄마나 아빠행세를 하며 월세를 대신 내주며 자비를 베푸는 것은 낭만이나 후원이 아닌 사회적 낭비고, 또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숙련공 노조들의 정치행위로 인한 최저임금의 비정상적 폭등, 그리고 코로나 사태. 한낱 개인이 넘을 수 없는 두 벽의 사이에 낀 청년들은 멧돌 사이에 갈리는 콩 처럼 부숴지고 있다. 함께 정권교체를 이뤄낸 40대 운동권들은 20대를 외면하고 배신했으며 그들의 젊은 날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식어가고 있다.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마치 갈증에 못이겨 바닷물을 들이키는 조난자들처럼 대한민국의 20대는 창업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성공하는 것은 환갑을 넘긴 노인이 실리콘밸리에 입성하는 것 만큼 힘들다. 그들도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리라. 단지 대안이 없을 뿐이지. 오늘의 20대가 한국 중산층의 황금기였던 8090년대의 대중문화에 빠져드는 것이 내겐 어딘가 모르게 서글퍼 보인다.

2020. 9. 12.

봄에는 겨울을 생각하지 마

골라인으로 질주하는 메시처럼 모두를 제치고 내달리던 나스닥이 고꾸라지기 시작하자 몇몇 사람들은 지난 3월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더블딥을 예상하는 암울한 전망에서부터 다시 한번 빅 숏을 외치는 사람들까지 시장에는 다시금 부정적 전망들이 우세하다. 하지만 한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봄에는 겨울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 

경제도 그리고 시장도, 사계절과 같이 순환의 사이클을 겪는다. 하지만 수많은 사건사고와 헤드라인이 점멸하는 매일의 시장에 파묻혀있다 보면 경기가 순환한다는 대명제를 종종 망각하곤 한다.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 서서 발 아래 넘실대는 물결을 쳐다보다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을 잊는것 처럼.

하지만 봄 뒤에 겨울이 오지 않듯 해빙을 맞이한 금융시장에 또 한번의 빙하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3월처럼은. 우한폐렴으로 인한 경제충격이 컸던 이유는 2008년 9월 이래 약 11년 5개월 간 쌓였던 낙관론이 공포로 뒤바뀐 충격 때문이었고 그 와중에 각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바뀐 경제상황에 제때 발맞추지 못하며 적절한 정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이 블로그에 지난 2월, 그리고 3월에 올린 글들을 보라. 불과 몇주 후 닥칠 공포와 불황의 쓰나미에 정부와 한국은행이 얼마나 안이하게 대처했는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투자자들은 혹시나 찾아올 지 모르는 새로운 충격에 대비하고 있으며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충분히,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거와 같은 수준의 패닉을 기대하기 어렵다. 

Citi Surprise Index
Citi Surprise Index

위 지표는 실제 경제데이터들이 예상치를 상회했는지, 혹은 하회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0보다 크면 기대이상, 작으면 기대이하의 지표가 나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수치가 집계 이래 최저점과 최고점을 오가는 데에 고작 73일 밖에 걸리지 않았고 아직도 이전 최고점보다 한참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이코노미스트들의 전망이 너무 암울해 실제 지표들이 예상치를 상회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그들의 재빠른 변심을 탓해서는 안된다. 이들도 자가격리중인 일개 시민들에 불과하니까.

우한폐렴사태가 처음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 지난 1월 말에 올렸던 글(링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가 낙관적일 때 비관적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비관론과 낙관론이 적절히 섞여있으니 크게 걱정할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일 작은 파도를 지켜보아야하는 트레이더들은 10%의 움직임에 일희일비 하겠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그저 늘 해오던 일들-비싼 주식을 팔고 싼 주식을 사는 것-을 충실하게 반복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겨울에서 막 벗어난 시기에 가장 낮은 리스크는 역설적으로 겨울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포탄이 같은 자리에 또 떨어질 위험을 과대계상하기 마련이라 머지 않아 시장은 하방위험을 과도하게 반영할 것이다. 하지만 잠시 찾아온 꽃샘추위에 다시 빙하기를 걱정될 때 우리는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봄에는 겨울을 생각하지마.   

2020. 7. 13.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

*중요한 내용을 급하게 작성하느라 비문이 많고 생략된 부분이 많아 몇몇 부분을 수정하여 다시 업로드합니다. 또한 본문을 읽기 전 슈로더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의 글(링크)을 참고하기를 권합니다. 비록 2년 전에 작성된 칼럼이지만 그가 지적하는 1960년대와의 특징은 당시보다 현재와 더 가깝습니다.


지난 한달간 거의 글을 올리지 못했던 것은 앞으로의 시장에 대한 전망이 정리되지 못해서, 구체적으로는 전망은 정리되었지만 투자방법을 정리하지 못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향후 장기간 세계가 저성장을 동반한 인플레이션, 어쩌면 스테그플레이션에 가까운 형태로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현상이 1960년대 중반 저금리가 끝나갈 무렵의 세계경제와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은 금융시장과 당시 시민들의 삶뿐 아니라 경제학에도 커다란 도전이었다. 때맞추어 등장한 케인즈라는 걸출한 학자는 급격한 불황으로 수요가 위축되었을 때 정부지출을 늘려 벗어날 수 있다는 해결책을 제시했고 미국은 그 처방을 충실히 따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대공황과 같은 급격한 수요의 급감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비했고 일부 부침이 있긴 했지만 비극은 되풀이되지 않았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세계대전에서 나치와 일본을 쳐부수고 명실공히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다는 미국의 자부심은 어떤 불황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만을 낳았고 국민들 역시 그런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정치인과 유권자들은 불황이 닥칠 때마다 계속해서 과도한 재정지출에 의존했고 전체 경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은 전례없이 낮았으며 이에 연준은 극도로 낮은 금리를 유지하며 연방정부의 채권발행을 간접지원했다.

연방기금금리

미국 CPI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서 종종 황금의 시대는 예고없이 종말을 고하곤 한다. 그리고 그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벨 에포크가 그랬듯이. 60년대 하반기에 들어서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신호를 무시하기 어려웠던 연준은 점차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다. 대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는 것은 호경기인 경우가 많아 금리가 올라도 시장과 성장률이 하락하지 않는데,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기를 보낸 끝에 낮은 성장을 동반한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들어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1970년대의 스테그플레이션을 두차례의 오일쇼크 때문이라고 기억하지만 이미 오일쇼크가 시작되기 전에도 미국에서는 분명 스테그플레이션의 압력이 가중되고 있었다. 세상에 언제 어디서든 널리 통용되는 황금률은 많지 않은 법인데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지출확대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믿었고,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는 그 믿음을 산산히 부수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후 학자들이 내린 진단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부의 지출은 민간에 비해 비효율적이라 정부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면 생산성을 해치는 단계에 이르른다고. 이는 경제를 위축시키면서 물가의 상승을 가져오는 스테그플레이션을 촉발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현상은 놀랍게도 현재와 매우 유사하다.

과거 70년대의 스테그플레이션은 두가지 트라우마를 남겼다. 첫째,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 둘째, 큰 정부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이어진 디플레이션은 첫번째 두려움을 망각하기에 충분했고 코로나에 대한 대중과 정부의 공포는 두번째 두려움을 마비시켰다. 놀랍게도 코로나 아래서 신용위험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는데 최소한 생명의 위협은 없었던 08년의 위기가 얼마나 많은 기업들을 도산시켰는지를 감안하면 우리는 상당히 평온하게 위기를 넘긴 셈이다.(3월의 몇주를 제외한다면)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올해 상반기에 우리가 보았던 정부와 중앙은행의 예외적인 대응책들이 우리의 새로운 기준점이 되었고 다시 불황이 찾아와도 정부와 유권자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경제적 고통을 회피하려 들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정부 부채가 크게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각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는 수준을 넘어 조장할 수 밖에 없다.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도 대규모 추경으로 인한 재정악화에 대해 찬반논란이 있었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선방한 축에 속한다. 미국은 이미 GDP의 10%가 넘는 재정지출 외에도 다른 여러 지원프로그램들을 가동, 혹은 준비중이며 재정건전성의 첨병으로 여겼던 독일은 금융지원을 포함 GDP의 30%가 넘는 프로그램을 운용중에 있다. 물론 이 수치는 상반기에 발표된 대책만을 집계한 것으로 하반기에 경제둔화가 지속되거나 우한폐렴의 2차확산이 시작된다면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성장률이 2010년 이전의 속도로 회복하지 않으면 이 수치가 가까운 미래 안에 개선될 가능성은 아예 없기에 정부가 다시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플레이션으로 부채를 태우는 길 밖에 없다. 

여기에 두가지 부수적인 사건은 이 인플레이션이 성장에 따른 부수물에 그치기보다, 우리가 70년대에 본 것과 같이 매우 불쾌한 인플레이션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하나는 미중 무역분쟁을 비롯한 리쇼어링 정책, 또 하나는 코로나로 인한 생산라인의 다변화. 리쇼어링은 순전히 정치적이고 경제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대중의 요구로 이루어졌지만 후자는 코로나로 인해 생산라인에 타격을 입은 기업의 전문가들이 생산기지를 다변화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들이며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인간은 방금 겪은 사건을 과도하게 평가하기 마련이니까. 이 두 요소는 앞으로 우리가 마주한 인플레이션이 공급측면에서도 시작될 것을 암시한다.

금값으로 환산한 S&P500 지수

새로운 시대에는 구시대의 투자법이 독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중후장대가 그룹의 미래라고 믿었던 두산이 그러했듯이. 따라서 나는 앞으로 다가올 10년은 IT와 같은 테크주식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주식의 시대가 될 것인지도 확신하지 못하겠다. 과거 1970년대의 사례를 보면 골디락스의 시대가 끝나며 금값으로 환산한 주가지수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다시 전고점을 회복하는데 거의 3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스테그플레이션의 시대에서는 주식이 금이나 은, 유가, 부동산과 같은 현물을 이기지 못한다.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운율은 반복된다고. 분명 미국의 주식시장이 오랜기간 상품시장을 언더퍼폼한 시기는 굵직한 현대사들과 겹친다. 석유파동, 베트남전쟁, 케네디 암살,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말, 미중수교 등.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미래에 그런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정부부채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시작하는 정치인들과 유권자는 우리가 70년대와 비슷한 운율을 따를 것이라는 미래를 암시한다. 

무엇보다 올해 말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이 집권한다면 이와 같은 추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60년대 말-70년대에 명목금리가 인플레이션의 속도를 쫒아가지 못했던 것 처럼 디플레이션의 시대에 너무나 익숙한 세계의 중앙은행장들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제때 대응하지 못할 것이며 대응하려 해도 방대해진 정부부채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이미 우리를 덮치기 시작했으며 오랜 가뭄 끝 단비처럼 세계는 그를 반길 것이나 그것이 불쾌한 인플레이션의 시대로 이어지는 이정표였다는 것을 바로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이 시기에 확실한 투자는 하나다. 바로 최대한 현금을 숏치는 것. 인플레이션의 초입에서는 당신이 무엇을 사는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빚을 냈는 지에 따라 수익이 정해지고 당신의 근로소득이 휴지가 되는 것을 겪을 것이다. 그렇게 인플레이션의 초반부를 지나고 나면 이윽고 하반기가 시작될 것고 시대의 막바지를 향해 달릴수록 각 중앙은행들이 뒤늦게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것을 겪을 것이다. 디레버리징의 시대가 오겠지만 그 시기를 완벽하게 맞춰 적응하는 투자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니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가 레버리지된 채 새로운 후반전을 맞이하겠지. 그제서야 투자자들은 자신이 어떤 자산을 샀는 지에 따라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이, 더 나아가 자신의 생사가 엇갈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2020. 5. 10.

주식은 어째서 강한가 (by Paul Krugman)

요새 우리가 가장 빈번하게 받는 질문은 "어째서 실물경제는 이렇게 엉망인데 주식은 강한가"일 것이다. 거기에 대해 폴 크루그먼의 짧은 글이 있으니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링크) 이 글의 핵심은 주식시장은 실물경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들에게 다음의 간단한 한가지 사고실험을 해보도록 하자.


1. 우한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세계인을 모두 죽고 단 한명이 살아남았다고 하자, 그런데 우연히 인류 유일의 생존자가 파웰 연준의장이었다고 가정하자. 이 처참한 비극의 과정에서 연준은 1,524,231번째 양적 완화에 나설 것이고 세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넘어 무로 돌아가겠지만 S&P500 지수는 0이 되기는 커녕 더 오를수도 있다. 100을 만들지 100,000,000을 만들지 그것은 순전히 파웰의 마음에 달렸다.

2. 사실 당신은 닥터 스트레인저다. 영화와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신이 외과의사가 아니라 기업의 회계사, 혹은 GDP를 산정하는 한국은행의 직원이라는 점이다.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은 타노스가 어떤 힘을 발휘해서 지구의 시간을 멈췄다고 한다. 하지만 특별한 능력을 가진 당신만은 그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성실한 당신은 회사로 출근해 2분기 재무제표, 혹은 GDP 통계를 작성하고 있다. 당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경제활동이 멈췄으니, 이번 분기 실적은 전분기 대비 -100%가 될 것이다. 이런 젠장할. 이런 끔찍한 지표는 인류 역사를 넘어 백악기 대멸종이래 처음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활약으로 타노스의 마법이 풀리고 사람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3분기 GDP는 전분기 대비 무한대의 성장을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당신을 제외한 아무도 이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1과 2의 복합적 현상과 같다. 세계 주요 경제는 전면적 셧다운에 들어갔지만 아직 죽지 않은 파웰은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시행했고 셧다운이 풀리고 나면 닥터스트레인져의 장부 뿐 아니라 많은 국가와 기업의 장부가 그와 비슷해 질 것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사람들이 코로나의 상흔을 기억하리라는 것과, 또 수많은 가계/기업들이 락다운 기간동안의 비용지출로 인해 파산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정부가 각종 구제책을 내놓아 이를 막는다면 위의 사례와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경제는 나쁜데 주식시장은 좋다는 아이러니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처참하게 망가진 GDP와 미국의 실업률을 내세우며 왜 주식시장은 하락하지 않냐며 고성을 지르는 것은 수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시 금융은 다 사기야! 라는 자기위안도 당신의 수익률을 개선시키지 않는다.

1973년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 그리고 로버트 머튼은 옵션의 공정가격을 계산할 수 있는 방정식을 정립해서 1997년에 노벨상을 받았지만, 그 수식에 따라 산정한 옵션가격은 시장가격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고 한다. 정작 시장을 우습게 알았던 그들이 만든 펀드는 당시 역대 최대규모로 파산했다. 우리는 늘 시장을 앞서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하지만 동시에 시장이 충분히 효율적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를 인정하고 시장이 무엇을 프라이싱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트레이딩과 투자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보지 말아야할 영화, Big Short

[영화 Big Short에 대한 감상은 과거에 한차례 올린 적이 있으니(링크) 본문을 읽기에 앞서 먼저 읽기를 권한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두가지 카타르시스를 판다. 대중들이 동경하는 월가의 고소득 뱅커들은 사실 인성 빻은 멍청이들이자 사기꾼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똑똑한 당신이라면) 그들의 헛점을 노려 큰 돈을 벌 기회가 수시로 찾아온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부자가 되고 싶은 이들은 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한다. 그 환상은 무척이나 잘못되어 있으니까.
 
금융권은 매년 대학 졸업자들 중 가장 똑똑하고 명석한 사람들을 뽑기 위해 애쓰고 그들중 가장 돈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승진하며, 또 가장 훌륭한 시스템을 가진 회사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애쓴다, 낮에도 그리고 밤에도. 뭐 그러다 비도덕적인 일을 저지르다 감방에 가기도 하지만. 그리고 금융시장은 그들중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돈을 몰아준 뒤,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곳이다. 따라서 당신이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있다면 시장이 아닌 자신이 바보가 아닌지를 먼저 의심해야 한다. 명심하라, 당신은 천재도 아니고 또 금융시장에 타고난 천재란 없다. 타고난 일중독자만이 있을뿐.

트레이더가 보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의 팀원들이 자신에게 CDS를 매도한 도이치의 세일즈 지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을 불러 항의하는 장면이다. 모기지 시장의 붕괴에 베팅했던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기초자산이 박살나는데 어떻게 MBS의 가격이 오를 수 있냐면서. 지레드는 침착하게 그들에게 이렇게 받아친다. "당신들은 이 시스템이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데에 베팅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시스템을 믿고 있지 않냐." 사실 MBS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은행들의 양심이 불량이어서가 아니라, 당시 연준이 7개월동안 금리를 325bp나 급격하게 인하해서 모든 채권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시점부터는 파산위험이 금리하락분을 상쇄해서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맞았겠지만, 부동산시장의 붕괴에 베팅한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 않은가. 그런 은행들이 매기는 시가평가가 하락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애초에 시장이 비합리적라는데에 베팅한 이들이 시가평가가 잘못됐다고 항의하는 것 또한 비합리적인 일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기억해야하는 것은 투자은행의 로비에서도 쫒겨나던 얼치기들이 베팅을 잘해서 수억달러를 버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시장을 거슬러 베팅하기로 결정한 마크 바움의 팀원들이 실사를 펼치는 장면이다. (그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실제로 수천개의 모기지를 기반으로 한 CDS를 매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모기지 집 주인들, 부동산 중개업자, 모기지 세일즈, 세입자들을 찾아가 일일히 면담했고 심지어 그들 중 하나인 스트리퍼를 만나기까지 했다. 그는 평생 살면서 자신이 마주칠 일도 없던 사람들을 일일히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조롱을 참아가며 실사를 마친 뒤 베팅에 나섰다. 99대 1의 베팅을 하기 위해서는 남들의 99배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시장에 맞선 베팅기회는 십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인데다 그 기회를 포착하려면 백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머지 시간은 시장에 순응한 이의 몫이다. 지난 한달간 개미들이 세번째로 많이 사들인 종목이 코스피 인버스인데 우리 한국 시장에 마이클 베리와 마크 바움 꿈나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마이클 베리는 비관론이 최고조일 때가 아니라 낙관론이 팽배할 때 시장을 거슬러 베팅했고, 마크 바움은 시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접 자기 발로 뛰어 밝혀낸 뒤 행동에 나섰다. 악재가 터진 뒤 시장이 붕괴한 뒤에 방구석에 앉아 신문기사 몇개 읽고 인버스를 사는 것은 Big Short이 아닌 그저 small gamble일 뿐이다.

2020. 5. 5.

착한 건물주, 못된 정부 그리고 빵구난 지준

착한 시리즈가 유행이다. 우한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나빠지자 정부가 앞장서서 임대료를 인하하는 착한 건물주 운동을 선도하더니, 이제는 또 사지도 않은 물건의 대금을 미리 납입하라는 착한 소비자 운동을 외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정부는 4월 건보료를 예정대로 걷었고 6월 1일 기준으로 부과될 종부세의 공시지가를 십여년만의 최고치로 올렸으며 공기업/공무원들의 임금을 줄이거나 그러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 얼마나 파렴치한 짓인가. 타 경제 주체들에게 착해질 것을 요구하면서 정작 본인은 반대로 행동하다니. 임대료를 내리는 건물주가 착하다면, 기회를 틈타 세금을 더 올리는 정부는 못된 정부인가.

윤리적으로 무차별한 경제활동에 착하다는 도덕적 평가를 내리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지 논하기에 앞서 우리가 걱정해야할 것이 있다. 바로 연달아 빵구나는 지준이다. 지준이란 지급준비금의 약자로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예치해야하는 지급준비금적립액의 적수를 의미한다. 모든 은행은 고객 예금의 일정 부분을 중앙은행에 예치해서 자신들이 고객의 예금인출에 대비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야하는데, 간단히 말해 모든 은행은 매달 특정 날짜에 중앙은행에 특정 금액을 예금해야한다. 만약 이를 못 맞추면? 우리 세련된 금융인들은 이를 전문용어로 빵구났다고 하는데 자금부에 오래 계신 분들이라면 이 용어를 듣자마자 문득 조인트가 얼얼해지는, 그런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키는 마술적 단어라고나 할까.

아마 다른 사람들은, 심지어 금융시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이 시스템이 어떻게 운용되고 돌아가는지 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지준이 금융시장의 주목을 받은 적이 두번이나 있다. 올해 1월에 사상최대의 지준적수가 대량으로 발생했으며 이어 4월에 다시 한번 빵구가 났다. 상세한 내용을 공개된 자리에 쓰기엔 적절하지 못하지만(과거 경제전망을 맞췄다는 이유로 미네르바를 색출해 기소한 무시무시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길), 아마 각각의 날짜로 기사를 검색해보면 대충의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뒤의 실상은 기사에 설명된 것 보다 더 심각했다고 생각하길. 그러나 그 원인은 분명하다. 정부의 실패. 2020년이 시작한 지 고작 4달밖에 안되었는데 그 중 지준이 빵구난게 벌써 두 달이다. 그리고 두번 모두 정부가 시장에서 대규모로 자금을 환수하거나 지급일정을 바꾸며 벌어진 일이다. 열심히 일하는 기재부/한은 사무관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는 순전히 그들의 잘못이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진 배경은 블로그에 쓸 수 없으니 지인들이 있다면 한번 물어보시라.

작년 미국에서 9월 그리고 12월에 일어난 대규모 단기자금시장과 비슷한 일이 올해 1월 4월에 한국에서 벌어졌지만, 그 배경은 판이하게 다르다. 정부의 정책실패로 인한 이 지준부족사태는 현재 한국경제에서 벌어지는 일의 축소판이다. 정부는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으며, 정책이 필요한 순간에도 가장 멍청한 방법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빵구난 지준처럼 올해는 세수도 빵구나고 정부보조금도 틀어지는 등 각종 정책이 빵구나는 해가 될 것이지만 관료주의와 정치에 가려, 그 실수들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될 것이다.

내일이 바로 5월의 지준일이다. 또다시 지준이 빵구나는 일도, 또 정부가 못된 짓을 하는 것도, 그러면서도 경제주체들에겐 착하기를 강요하는 것도 보지 않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합리적인 나라에 살고 있지 않다.



2020. 4. 26.

제로유가,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

  • 작년 여름의 한 글(링크)에서 언급했듯 모든 기술적 지지선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0이다. 다양한 파생상품을 접해온 사람이라면 유럽의 장기금리가 마이너스를 찍은 마당에 WTI 유가가 마이너스를 가지 말란 법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겠지만, 아니 이해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나 어떻게 유가가 마이너스를 갈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쉽게 풀어보기로 한다.
  • 모든 재화는 저마다의 활용가치를 지니겠지만 마찬가지로 비용을 발생시킨다. 당장 당신 집앞의 주유소에서 휘발류를 공짜로 나누어준다고 한다면 당신은 집안의 온갖 드럼통과 용기들을 모두 가지고 주유소 앞에 줄을 설 것이다, 당장 쓰지 않을 기름을 모으기 위해서. 하지만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주유소는 기름을 공짜로 뿌리는데 당신의 집안에는 휘발류냄새가 진동을 한다, 흉측한 드럼통때문에 거실에는 당신이 오갈 공간조차 부족하다, 그지경이 되면 얼마간 버텨보던 당신은 기름을 버리러 통을 돌돌 굴려가며 가지고 나간다. 하지만 쓰레기 하역장엔 당신같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주유소 앞에 줄 서있던 사람들은 이제 분리수거장 앞에 다시 줄을 선다. 이제는 휘발류를 처리하는데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그때의 휘발류 가격은 당연 마이너스겠지.
  • 상품의 가격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다만 당신이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쓸만한 의자와 TV를 버리기 위해선 구청에 과태료를 내야 하며 가끔 신문에선 농민들이 배춧값이 폭락해 밭에 불을 지르고 돼지를 땅에 묻는 것을 보곤 한다. LA에서 오래 산 내 친구는 캘리포니아에선 오렌지가 굴러가도 거지도 집어먹지 않는다는 농담을 던진다. 단지 이번에는 텍사스 유가가 오렌지가 되었을뿐이다.
  • 아마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하는 대상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너무 자책하지마라. 수많은 증권사, 헷지펀드 심지어 레이 달리오조차 그랬으니까.(그는 사실상 자신이 통화속도의 풋옵션을 팔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실수를 두번 저지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정말 유가에 대해 반등의 확신이 있다면 차라리 정유사 주식을 사는 것이 낫다.
  • 지금 이 말은 다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이제 인플레이션에 대비해야한다. 수많은 전쟁에서 영웅들은 자신들이 가장 경시하던 위험 때문에 무너지곤 했다. 적어도 금융시장은 그랬다. 선진금융시스템과 시장원리를 과신하던 월가는 바로 그 이유로 파산할 뻔했고,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던 리만직후의 세계는 디플레의 공포에 시달렸다. 그리고 현재 우리 모두는 인플레이션을 마치 지난 세기에 멸종된 생명체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다음 10년은 인플레이션이 한밤중의 도둑처럼 닥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이 닥쳤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을 것이고 그 결과 역대 가장 큰 버블사이클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 그 이유는 다음 셋과 같다. 하나-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을 아예 잊은 각 정부는 우한코로나사태 이후 수요가 회복하기 시작할 때 출구전략을 제때 시행하지 않을 것이고,  둘-2014년에 시작된 상품시장의 베어사이클로 인해 CPI는 실제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것이며 셋-코로나사태로 엄청나게 재정적자를 늘린 각 정부는 실질부채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허용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유효했던 투자전략이 다음 10년간 통용된 적은 많지 않으며 아마 포스트코로나의 시대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적 생물학

1. 아마 기원전 1만년 전 쯤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했다면(그리고 그들이 우리와 아주 다른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면) 털도 없고 강한 근력이나 이빨 혹은 날개도 없는 호모 사피엔스가 조만간 이 행성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압도적 성공이 우리의 뛰어난 지능과 이성에 있다고 주장했고, 인류학자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화석들이 대량으로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들은 현생인류보다도 더 늦게 출현했으며 놀랍게도 우리보다 더 강한 근력과 더 큰 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250cc나 더 큰 두뇌를. 이 차이는 우리보다 약 140만년 앞서 탄생한 호모 에렉투스와 현생인류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은* 보다 힘세고 영리한 네안데르탈인들을 멸종시키고 호모 종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승리자로 남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답은 집단의 규모에 있다. 네안데르탈인이 고작 20-30명의 무리로만 구성된 반면 호모 사피엔스들은 100명 이상의 집단을 구성할 때도 있었고 때때로 다른 무리와 연합하여 그 이상의 규모를 이루기도 했다. (현대 가장 큰 집단인 중국의 인구는 15억 이상이다.) 그러니 아무리 개개인이 뛰어난 네안데르탈인조차도 호모 사피엔스들의 집단 공격을 이겨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증거는 우리의 행동양식에도 깊이 남아있다. 침팬치와 같은 타 유인원들은 아무리 가까운 친족에게도 결코 자신의 새끼를 맡기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과 유전자가 전혀 섞이지 않은 이웃에게도 아이를 맡긴다. 이렇듯 우리의 생존 비결은 바로 집단화, 사회학적인 단어로 사회화에 있었다. 태초부터 사회주의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생존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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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집단화를 곧장 사회주의로 연결하는 것이 논리적 비약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 둘은 필연적으로 이어져있다. 대규모의 집단을 이루려면 분업이 필요한데 구성원들끼리 생산물을 공유한다는 믿음이 존재하지 않으면 집단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식량을 찾을 수 있을지 알수 없다면 누군가는 가젤을 잡으러 가고, 누구는 낚시에 나서며, 어떤 이는 과일을 따러 갈 것이다. 해질녘에 돌아온 그들이 모였을 때 실패한 이들에게도 자신의 수확물을 나누어줘야 내가 실패했을때 저들도 나에게 식량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첫 발생부터 큰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면 이런 평등은 후천적 학습이 아닌 우리의 본능에 기인해야 한다.

이는 한 심리학실험으로 입증된 바 있다.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카타리나 하만 박사는 3살짜리 아이들을 둘씩 짝지어 줄을 동시에 잡아당기면 장난감 구슬들을 얻지만 한 쪽에겐 3개, 나머지 한 명에겐 1개씩 불평등하게 배분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흥미롭게도 실험에 참여한 75%의 아이들은 자신이 받은 구슬 하나를 상대에게 나누어주며 공평하게 2개씩 가졌는데, 이는 교육을 받기 전에도 인간이 협업한 상대에게 생산물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참고로 침팬지들을 같은 실험에서 동료와 획득물을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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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같은 방식으로 진화적 종의 경쟁에서 정점에 오른 생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개미. 당신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 아니더라도 개미와 인간에겐 많은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개미와 우리는 기후를 가리지 않고 전 대륙에 퍼져 살고, 둘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그렇다. 개미도 농사를 짓는다), 거대분업으로 생산한 먹이를 나누고, 또 빈번하게 전쟁을 벌이며 영역을 확장해 왔다. 그렇게 인간은 땅 위를 평정했으며 개미는 땅 아래를 정복했으니 이 두 종은 지구를 공평하게 반반씩 나눠가진 셈이다.

한낮 개체로서의 개미 역시 너무나 초라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위풍당당한 하늘소나 사나워보이는 사마귀에 비해 땅바닥에 떨어뜨린 잉크방울 같은 저 조그만한 개미를 보노라면 우리는 종종 그들이 땅 속을 지배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하지만 개미는 인간보다도 먼저 농업과 목축을 시작했으며 훨씬 더 철저한 분업과 계급에 의해 효율적으로 사회를 운영한다. 전쟁이 발생하면 몇몇 인간 전사가 그러하듯, 개미 역시 오로지 자살이 목적인 특공대까지 운용하곤 한다. 인간이 소뇌의 언어처리능력을 발전시켜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이끌어냈다면 개미는 독특한 유전자변형(개미는 수정시 정자에서 받은 유전자의 절반이 없어져 형제끼리는 유전자의 75%를 공유한다. 반면 대부분의 양성생식 동물은 형제끼리 50%만 공유한다.)을 통해 사회주의를 이룩했다. 진화의 과정을 나타내는 생명의 나무에서 인간과 개미가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는데도 불구하고 동등한 진화적 성공을 이룩한 것을 보면 두 종이 채택한 사회주의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진화의 계보를 그린 생명의 나무: 개미와 인간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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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위에서는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를 혼용해서 썼지만 엄밀히 저 둘은 다르다. 아니 사실 대체로 같다. 우리는 전체주의를 표방한 독일과 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련이 맞붙은 2차세계대전의 기억 때문에 그 둘이 매우 다른 것으로 인식하지만 이들은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일 수 밖에 없다. 개미와 인간에게 성공을 가져온 것을 무엇이라고 명명하든 이는 결코 민주적이지도, 또 자본주의스럽지도 않다. 이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실패가 인간 본성에 반하는 정치시스템 때문이라고 배워온 우리 자유진영 사람들에겐 불쾌하리만큼 낯선 결론을 안겨준다.

어쩌면 우리는 인정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비록 사회주의가 현대의 체제경젱에서 우월하지는 않더라도, 인간 본성에 맞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레닌이 연단에 올라서기도 전부터, 또 스탈린이 시베리아에 굴라크를 세우기도 전 부터 수도 없는 사회주의적 실험이 존재했고 또 하나같이 실패했지만, 인류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마치 달콤한 사탕처럼 계속해서 집어먹는다. 인간의 몸이 단짠의 유혹을 거절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은 좀처럼 사회주의를 밀어내지 못한다. 넘어져서 코가 깨지기 전 까지는.

우리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문재인의 사회주의는 이미 엇나가고 있고 때가 되면 대중은 그 부작용을 깨닫고 이명박같은 지도자를 찾을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경우는 여당이 이번 총선에서 200석 이상 가져가며 개헌선을 넘겨 34년만에 헌법이 개정되는 것이었는데, 일단 그 선은 지켰으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앞으로 정치는 게속해서 시끄러울 것이고 또 대중이 현실을 깨닫기까지 더 많은 사건들이 터지겠지만 이들이 대한민국의 장래에 불가역적인 상흔을 남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에 명시된 한은.*** 그래도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좌절에 빠진 이들을 위해  미국의 20세기 소득세율 표를 공유하고자 한다. 미국 뿐 아니라 모든 선진사회는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위치에 도달했다. 다행스럽게도 현 정부의 노선이 너무나 멍청하기 때문에, 그의 사회주의는 아래 수준에 이르기 전에 좌초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다들 너무 낙심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의 최고세율 구간: 1916년 이전과 1925-31년을 제외한다면 1986년 이전 미국의 소득세 최고구간은 상당히 높음  

* 사하라 이남의 인류를 제외하면 우리 모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3-5%정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우리는 그 두 종의 혼혈 후손인 셈이다.
** 개미 외에도 벌이나 흰개미도 있다. 참고로 흰개미는 개미가 아닌 바퀴벌레의 아종.
***하지만 만약 개헌이 된다면 나는 곧장 영주권을 취득할 것이다

2020. 4. 9.

경제수장이 된 타짜들

영화 타짜에서 아귀는 구라치다 걸리면 손목이 날아간다는 가르침을 설파하다 잘못걸려 자기 손목을 날렸다. 그런 아귀를 잡은 고니조차도 벌벌 떨며 손목을 옷섶으로 숨기게 만드는 진짜 타짜들이 있다, 기재부와 한국은행에.

홍남기 부총리는 어제 2차 추경을 하지만 그 재원은 기존 세출을 아껴 마련한다고 했으며 2월 말까지도 코로나 그거 별거 아니라며 큰소리를 땅땅 치던 우리 팔불출 이주열은  6월 말까지 무제한 RP매입을 한다고 외쳤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타짜 아니겠는가.

경제가 어려워 총수요가 위축될 때 정부는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출을 늘린다. 그러기 위해 마련하는 것이 바로 추가경정예산, 줄여서 추경이라고 한다. 즉 이 재정정책의 핵심은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인데,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하지만 적자내긴 무서우니 다른 지출을 줄인다는 소리는 그냥 추경을 안하겠다는 소리와 다름없다. 밑장빼기와 무어가 다른가. 주식시장은 그의 발언과 함께 반락했으니 과연 시장의 귀는 타짜들의 눈보다 빠르다.

은행시스템에서 신용이 위축되기 시작해 총통화량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늘리는 것이 통화정책의 핵심이고, 또 중앙은행이 금리를 0%로 내리고 나서도 통화승수가 늘지 않아 자산을 직접매입하는 것을 양적완화라고 한다. 양적완화의 효과가 직접적이고 얼마나 강력한지는 연준이 여러번 증명한 바 있다. 한국은행 부총재도 "이 조치가 양적완화가 아니라고 하긴 어렵다"고 밝히며 한국은행의 강력한 통화정책을 강조했지만 과연 이게 양적완화라고 할 수 있을까. 널 너무나 사랑해, 올해 여름까지는. 이라는 고백에 설렐 사람이 없는것 처럼, 코흘리개의 첫사랑보다도 짧은 3개월짜리 양적완화는 QE가 아니다. 그냥 남대문의 흔한 일수업자일 뿐이지.

추경이 아닌 것을 추경이라 하고 양적완화가 아닌 것을 양적완화라고 포장하는 저들의 손기술은 캬. 참으로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경제가 무너지는데도 밑장이나 빼고 탄이나 돌리는 홍남기&이주열 콤비의 대담함을 보라. 홍경장과 남대문 작두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으리. 하지만 문제는 그 판에 앉은 호구가 당신이라는 것이다. 연준이 양적완화를 펼치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무역파트너들에게 스왑라인을 열어준 덕택에 시장은 빠르게 안정되었다. 하지만 타짜들의 손장난에 놀아나는 한국의 금융시장은 또다시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보나마나 홍경장께서는 3차추경을 발표하며 적자국채를 찍을 것이고, 남대문 작두 이주열은 무제한 RP를 6월 말에서 더 연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수많은 투자자들의 손모가지가 날아가겠지. 여러분들이 진정 자신의 손모가지를 아낀다면 저 타짜들의 모가지를 쳐낼 것을 권한다.

2020. 4. 5.

Time to laugh at bears

아직도 비금융권 친구들은 종종 나에게 고급정보를 좀 털어놓으라며 술을 연거푸 먹이곤 한다. KOSPI가 무엇의 약자인지도 모르는 드라마/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이 만들어 낸 환상 덕에 대중들은 우리 금융계 사람들의 휴대폰엔 비밀 정보통이나 어둠의 작전세력의 연락처가 숨겨져 있으며 그들과 작당해서 개미들을 털어먹고 사는 줄 안다. 하지만 사실 개미들이 털리는 것은 늘 개떡같은 주식을 고르기 때문일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주변에서 가장 개떡같은 주식들, 진짜 상장되어있는게 더 신기한 거지같은 주식들을 발굴해서 몰빵했다 n토막난 뒤 머리를 쥐어 뜯는 것은 어김없이 금융쪽 사람들이다. 여러분도 명심하길, 금융계 사람들이 추천하는 주식은 절대 사지 마라. 이 한마디를 따르는 것 만으로도 여러분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수억을 더 벌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이렇게 대중이 가진 금융인의 환상을 깨는게 취미지만(게다가 사실이니까) 이따금 대중들이 못보는 것을 우리가 본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회사 내에서도 누군가는 시장의 최전선에 서있고 누군가는 후방, 지원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금융인들 사이에서도 정보의 비대칭성은 존재한다. 따라서 이에 공감하는 것은 아주 소수겠지만, 우리는 가장 끔찍한 불황의 문턱까지 갔다 유턴해서 이자리에 와 있다.

우리나라는 미네르바 같은 무명의 블로거도 잡아 쳐넣은 전력이 있으며 현정부는 그 누구보다도 반민주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힌트도 남기지 않으련다. 하지만 정말 몸서리치는 경제적 비극이 도둑처럼 다가왔다 동틀무렵 물러나는 어둠같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며 누군가의 회사는, 어떤 업종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파멸의 절벽에 세손가락으로 매달려있다 간신히 기어올라왔다. 머언 옛날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한 만화의 주인공이 악당에게 던지는 대사처럼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죽어있다, 도로 살아난 셈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그들의 재무팀도 모르는 동안에.

향후 주식시장이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신만이 알겠지만 이제 최악의 시간은 지나갔다. 경제와 이익전망, 그리고 시장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확인하는 작업만이 남았을 뿐 이제 어떤 일이 터져도 3월 중반의 공포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금융시장에선. 그 폭풍의 한가운데서 간신히 엉금엉금 기어나온 우리의 눈엔 각종 인터넷 게시판과 유튜브에 횡행하는 비관론은 그저 귀여울 뿐이다. 예수가 살려낸 나사로가 지가 죽었다 깨어난 줄도 모르고 침상에서 일어나다 발을 접지르고 "아파 죽는줄 알았네"라고 엄살을 부리는 것을 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건 진짜 아픈게 아니고, 또 죽을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지난 3월에 겪은게 그런것이지.

따라서 이제 모든 비관론을 비웃을 차례다. 비관론자들은 똑똑해 보이지만 돈을 벌지 못한다. 어느 상황에서도 투자를 하면 안될 백만가지 이유는 언제나 존재하니까. 하지만 아무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 아무 결과도 얻지 못하지 않나. 코스피가 2000이고 S&P가 3300일 때엔 뭐 하다 이제와서 비관론을 설파할까. 그들의 비관론이 장기적으로 들어맞으려면 코로나의 치사율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야 한다. 몇번 강조했던 것 처럼 우리는 모두가 비관적일때 낙관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1900년생 미국인 Jim의 삶을 떠올려보자. 그가 첫 월급을 받을 무렵 대공황이 터져 주가지수가 80% 폭락하며 다우존스지수는 그가 태어나던 무렵으로 돌아갔고 십여년이 지나 좀 살만하니까 2차세계대전이 터져 국제무역은 붕괴되고 금융중심지 런던에 나치의 폭격이 이어졌으며 일본은 미국의 태평양 핵심기지 진주만을 박살냈다. 세계는 가까스로 이 전쟁을 마무리했지만 곧장 냉전에 돌입해 사람들은 핵무기의 공포에 빠져들었다. 당신이 J씨라면 평생 주식을 한번이라도 사 볼수 있었을까. 당시 어떤 미국인은 주식에 투자했고 어떤 미국인은 월가 근처에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들의 인생을 둘로 나누었다.
인류 최악의 비극이 몰아 터진 1930-50년대의 다우존스지수
우한코로나가 치명적이긴 하지만 5천만 명이나 죽인 2차 세계대전만큼은 아니며 세계 경제가 셧다운 되긴 했지만 7년간 대서양을 누비던 유보트보다 더 큰 장애도 아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주식투자하기 어려웠을 그 시절에 벤자민 그레이엄, 존 템플턴 그리고 워렌 버핏과 같은 영웅들이 왜 혜성처럼 몰려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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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보니 개인투자자 독자들이 많던데 혹시나 성급한 매매를 부추기는 글로 읽힐까봐 첨언하면, 암흑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 수도 있으며 그 누구도 타이밍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또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서 반자이 돌격을 외치는 멍청한 대통령과 무능한 한은총재가 경제를 지휘하는 한국의 시장을 분석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라는 점을 고려하자. 다들 부디 성공하시길.

2020. 3. 31.

경제백치 대통령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종의사결정권자라면 핵심적인 분야에 대해 최소한의 상식은 갖추고 있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일례로 군사, 정치, 입법, 그리고 지금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경제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하지만 추경재원 마련에 대해 대통령이 내놓은 한마디는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황당하고 또 창피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3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위태로운 경제여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지출을 늘릴 추경을 주문한다"고 밝히며, 또한 동시에 "그 재원 대부분을 정부예산 구조조정으로 마련하겠다. 국회의 협력을 당부드린다”고 답했다. 이게 어떻게 한 문장안에 묶일 수 있는 내용인가.
 
경제가 다운사이클에 들어서면 정부는 수요부족을 메워주기 위해 지출을 늘린다. 따라서 경제가 나쁘기 때문에 지출을 늘리지만, 그 돈을 다른 지출을 줄여 마련한다는 발상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지출항목을 변경하는 것 뿐이다. 치매가 아니라면 그는 마땅히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에게 왜 적자재정을 펼쳐야 하는지 물었을 것이며 그들은 대통령에게 알기 쉽게 설명했을 것이다. 장담컨대 문재인 대통령은 추가경정예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뭔지도 모르면서 경망스럽게 몇마디 던졌다 망신당한 일이 비단 이번 뿐인가.
 
평생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해본 적이 없고, 자기 손으로 돈 벌어본 적도 거의 없으며 돈이라는 건 윽박지르면 튀어나오는 줄 아는데다 최소한의 상식마저도 없는 사람들이 경제 사령탑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가장 위험한 시기에 경제백치들에게 정책을 맡기고 있다. 이런데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착란이다, 일종의 정신병이다.
   
나보고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해서 이러는 것 아니냐고? 맞다. 그런데 무능한 사람이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아 국정을 망치는데도 좋아한다면 그게 더욱 문제인 것 아닌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그는 내게 비호감보다는 호감에 가까운 정치인이었으며 아마 그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무능하고 부도덕하며 또 비상식적 행보를 거듭하는데도 호감/비호감을 따지고 앉은 것은 미친 짓이다.
 
 
단언컨대 그는 내 생애 가장 최악의 대통령이다.

2020. 3. 23.

America, save the world.

                                              한국                            미국
첫 사망자 발생일                   2/21                            2/29
기준금리 인하              50bp(29일 뒤)        150bp(4일, 17일 뒤)
추경예산(GDP대비)            1%이상                     10%이상
중앙은행매입자산               10억불                        무제한
대통령 특단의 대책     공무원월급삭감           기본소득 $1k


대한민국에서 종부세 소득세 양도세 등등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한 사람으로서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영하는 것이 결코 달가울 수 없다. 게다가 정부가 내가 피 토하며 번 돈을 걷어가서 등신같이 쓰는 것을 보면 더더욱.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이 사치인 시점이다. 미네르바처럼 잡혀가기 싫어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한국은행조차 1년짜리 채권을 완판하기 힘들정도로 경제 주체들이 심각한 신용경색을 겪고 있으며 이와 같은 일들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미국 GDP가 25%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에 벌렁거리는 가슴이 진정하기도 전에 모건스탠리는 이에 질세라 -30%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내놓았다. 2차세계대전에서도 이와 같은 수치가 나온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면 이게 얼마나 커다란 일인지 가늠이나 할까.

전대미문의 사건에 맞서 연준과 미국의 행정부, 그리고 의회는 전대미문의 정책으로 맞서싸우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한국은행과 한국의 정치인들은 쓸데없이 자기자신의 어리석음과 싸우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셋 중 하나는 실직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며 당신이 내년 이맘때에도 소득세를 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저 코쟁이 중앙은행장과 미국 하원에 달린 것이다.

대가리에 뇌 대신 우동사리가 든 이주열과 홍남기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


no brainer by DJ Khaled

2020. 3. 14.

이주열. 치매거나, 혹은 못났거나

최악의 순간에 최악의 인물이 정책결정자 자리에 앉아있을 때 어떤 촌극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신라의 경애왕은 견휜이 침공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포석정에서 파티를 열었다 술이 덜 깬 상태로 잡혀 죽었으며, 한국의 현대사에서 5.16사태가 터지자 미군까지 나서서 쿠데타군을 진압하겠다고 한국정부에게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당시 결정권자였던 장면총리는 수녀원에 쳐박혀 기도나 하고 있다 축출되었다. 그리고 이런 희극인지 비극인지 구분되지 않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증시가 동시에 10% 안팎으로 폭락하고 금융시장이 극심한 신용경색을 겪자 거의 모든 주요국의 금융수장들은 앞다투어 대책을 내놓았다. 연준은 일정에 없던 50bp 금리인상을 단행하여 가장 선제적으로 대응하였고, 영국 호주에서는 중앙은행과 행정부가 동시에 통화정책 완화와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것으로 대응했다.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 역시 재정과 금리인하를 동시에 시행하여 경기침체와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아무것도 없다. 중앙은행장이 대통령에 이어 우한코로나 사태가 별것 아니라고 선언한 것 외엔.

한국은행은 2월 14일, 2월 18일, 그리고 3월 4일 세차례나 시장의 패닉에 대응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이 사태가 별거 아니라며 설레발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특히 오늘 코스피와 코스닥, 그리고 선물시장에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자 한국은행은 "임시 금통위 개최를 고려할 것"이라고 발표하여 큰 웃음을 선사했다. 마치 핏물이 흐르는 전쟁터의 야전병원마냥 시뻘겋게 변한 모니터 속의 숫자들 한 가운데서 하얗게 질린 우리에게. 아마 전쟁이 터져 적군이 쳐들어오는데 국군통수권자가 "군사적 대응까지 고려할 것"이라는 촌평을 내놓는다면 이만큼 웃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첫 사망자가 나온 것은 2월 20일이었는데 그로부터 23일이 흘렀건만 한국은행은 아직도 금리인하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첫 사망자가 나온 것이 2월 29일인데 연준의 첫 인하는 3월 3일이니 두 중앙은행간의 엄청난 갭이 돋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현재 3월 13일까지 미국 이외에도 호주, 캐나다, 일본, 잉글랜드, 노르웨이, 홍콩, 중국 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모리셔스 세르비아 같은 나라들도 모두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전환했다. 과연 한국은행은 뭘 하는 조직일까. 과연 우리나라가 현대 통화정책을 쓰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혹자는 대규모 판데믹으로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금리를 0.25%내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 의문을 품고 한국은행을 옹호할 지 모른다. 그리고 한국은행의 역할은 주식시장의 안정이 아니라 물가와 금융시장의 안정에 있지 않냐고 하면서. 하지만 타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고작 주식이 몇%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불안을 넘어 패닉으로 치닫고 있고 실물경제의 타격으로 다시 한번 디플레의 위협에 빠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3달 뒤에 나오는 GDP 수치를 보고서야 대응에 나서겠다는 중앙은행을 보고 있노라면 맥박이 멎어야 응급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사와 무엇이 다른가 싶다. 무엇보다 정부는 착한 임대료운동이라며 건물주들에게 임대료를 낮출 것을 지시하는데 중앙은행의 기준금리얌말로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매기는 임대료와도 같지 않은가. 할 수 있는 정책은 방기하면서 할 수 없는 착한임대료운동이나 운운하는 것은 업무상 배임에 가깝다. 법률적으로는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은 금융수장들과의 만찬을 주선하고 대책을 내놓을 것을 당부했지만 거기서도 통화정책이 설 자린 없었다. 유일한 조치라고는 주식공매도를 6개월간 전면 금지한 것 뿐인데 이는 투자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조치로 한국의 금융시장에 더 큰 파장을 가져올 것이다. 대부분의 주식을 공매도하는 펀드들은 한국기업이 망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롱숏 전략의 일종으로 전망이 나쁜 기업을 공매도하고 전망이 좋은 기업의 주식을 사서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할 뿐이다. 6개월간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은 숏 뿐만 아니라 롱도 하지 말라는 뜻과 같다. 따라서 롱숏전략이 막힌 투자자들은 이제 전망이 좋은 기업의 주식까지 팔아치울 것이다. 아멘.

우리는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총재를 짊어지고 있다. 어쩌면 박근혜의 최고 실책은 최순실이 아니라 애초에 이주열을 한은 총재로 앉힌 것이며 저런 무능한 인간을 연임시킨 것이야말로 문재인의 가장 큰 실책 중 하나이다. 처음엔 글의 제목을 못난 이주열이라고 적었지만 그의 위대함 멍청함을 장식하기엔 두글자의 수식어로는 너무도 부족하다. 시장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별것 아니라고 우기는 모습은 그가 혹시 치매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으며 강남부동산 때문에 나라경제가 무너져도 금리인하를 할 수 없다는 발언은 마치 한복 입고 클럽에 가서 EDM에 맞춰 사물놀이 춤을 추는 것 만큼 우스꽝스러웠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한국은행이라는 조직이 유지되는게 과연 합리적인지 모두가 돌아보게 만들었다는데에 있다. 단언코 그는 내가 본 모든 중앙은행장 중 가장 최악의 인물이며 우리는 최악의 순간에 최악의 결정권자를 둔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앙은행장은 당장 탄핵해야 한다.

trading the fear(2)

아인슈타인이 굳이 어려운 수식으로 증명해주지 않아도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즐거운 순간은 너무나 짧게 지나가는 반면, 아픈 시간들은 너무나 길다. 특히 그 한가운데서는 매 순간이 엿가락처럼 주욱 늘어나 영원히 계속될 것 처럼 느껴지곤 한다. 마치 내무반에 정자세로 앉아 시계나 바라보는 이등병의 하루처럼. 트레이더들에겐 지난 2주 간의 시간들이 그랬다. 미국 주식은 폭락하다 반등하길 반복하다 20%나 하락한 채 끝났고 모니터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본 적이 없던 온갖 경고등들이 번쩍거렸다. 덜떨어진 한국 시장은 물론이고 세계 최강의 미국 주식시장마저도 심정지가 온 80대 노인의 맥박마냥 거래가 정지되었다 풀렸다 다시 정지가 걸리곤 했다. 까먹었던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의 차이를 몇년 만에 검색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번 말하지 않았나. 좋은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비명을 지를 때 낙관적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경게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 각종 시장은 금융시스템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우리가 지난 200여년간 쌓아온 자본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다는 성급한 분석까지 내놓는다. 하지만 현대의 경제학과 금융시장은 재정의 승수효과를 모르던 케인즈 이전의 시대도 아니고, 금본위제가 폐지된 것 만큼의 충격도 아니며, 아무리 저 우한코로나가 위험하다 해도 인명의 손실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보다 더 크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시스템이 붕괴되는 경우도 제외한다면 모든 패닉은 길어야 6개월 안에 마무리되었다. 서브프라임과 은행들의 줄도산을 겪은 2008년 가을 미국의 주식시장도 불과 반년만에 저점을 찍고 반등했으며 패닉의 교과서적인 사례로 언급되던 1987년의 블랙먼데이조차 불과 한달만에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이 바이러스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알지 못하고 시장의 저점이 어디일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가 미래의 거울이라면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은 어떤 자산을 어느 가격에 매입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예전에 언급했듯(링크) 첫번째 폭락이 마무리되면 시장은 빠른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횡보할 것이고, 두번째 폭락이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섣부른 투자로 단기 반등을 쫒아 투자하다가 이어지는 두번째 폭락에 손절하고 싶지 않지만, 또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웅크려있느라 그 두번째 기회를 놓치기도 싫기 때문이다. 시장은 언제고 다시 얼어붙을 것이며 그 순간 다른 모두를 제치고 우리가 과감하게 발을 내딛기 위해선 그 어느때보다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현금흐름도, 지식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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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한국시장에 덜떨어졌다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다분히 중의적 의미였다. 오늘 당국이 보여준 모습은 총체적 개망신/개뻘짓/개무능의 완벽한 콤비네이션이었으니까. 한국이 다른 나라들과 같이 움직일거라 생각하지마라. 병신같은 한국은행 총재가 다른 중앙은행들과 따로 놀듯 한국 시장도 그러할 테니까. 이젠 빡치기는 커녕 의문이 든다, 저새끼는 대가리에 뭐가 들었을까. 지지난주 금요일처럼 시장에 대한 글과 무능한 총재에 대한 글을 두편 썼는데 고소당할까봐 좀 다듬어서 올리련다. 에휴.

2020. 3. 8.

제로금리 그리고 마그나카르타

일본식 영어표기를 따르는 우리나라는 경제와 재정을 총괄하는 경제부처를 Ministry of finance*라고 부르지만, 영국과 미국은 보통 treasury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이 단어는 재무부라는 딱딱한 이름보다 머릿속에 해적선과 대포를 연상시키는 보물/재화라는 뜻이 더 친숙한데 어원을 찾아보니 아니나다를까 불어에서 온 단어로 14세기 왕의 재정을 담당한 대신이 보물을 담아두던 방의 열쇠를 지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중앙집권시스템이 갖춰졌고, 또 유교식 국가관에 익숙한 우리에겐 다소 어색한 개념이지만 강력한 왕권을 갖추지 못했던 봉건 유럽에서는 돈이 없으면 왕도 파산하고 자산을 저당잡히곤 했다. 시대에 따라 다소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왕과 신하들의 관계도 일종의 계약이라고 볼 수 있었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해도 영주였던 신하들이 병력을 보내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군대도 소집하지 못할 정도로 왕의 위상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무지왕 존(John Lackland)의 수모가 그 대표적 예인데,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해 영지를 잃어 재정이 악화되는데도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다 파산위험에 처하자 귀족들에게 세금을 더 징수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귀족들이 반발해서 군사반란을 일으켜 런던을 포위하자 존 왕이 항복하며 자신의 권한을 제한하는 문서에 서명하게 되는데, 이것이 영국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하는 마그나카르타이다.** 이후 삼권분립이 정립된 근대국가에서도 세금을 걷는 권한은 국민들의 대표인 국회가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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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역사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이유는 우리가 조만간 마주할 경제현실이 저 무지왕 존이 겪었던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월가는 우한폐렴이 창궐한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그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이 바이러스가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어떠한 타격을 줄 지 아무도 그 끝을 모른다. 투자은행들은 계속해서 성장전망을 수정하고 있지만 그들의 전망이 하향되는 속도보다 사태가 악화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이 바이러스가 얼마나 더 퍼질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경제를 전망하나. 이코노미스트들도 월급을 받으니 밥값하려고 억지로 고통스럽게 숫자를 짜내는거지 솔직히 죄다 무의미한 가정에 근거한 엉터리 전망이라 주말 내내 보고서를 읽다 그냥 때려치웠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더욱 귀기울여 듣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시장의 가격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똑똑한 경제학자들의 글이다. 전자는 저번 글(링크)에서 언급한 대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후자의 사례 중 하나로 폴 크루그먼의 기고를 종종 찾아보곤 한다. 최근의 글 두편(1 / 2)에서 그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고 통화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재정정책, 그것도 매우 강력한 재정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 역시 통화정책으로는 시장의 공포를 잠재울 수 없으며 과감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링크)

현재 미국의 10년 채권금리는 0.75%로 잃어버린 20년을 마주한 당시 일본 수준으로 하락했는데, 전세계에서 가장 탄탄했던 미국의 성장전망이 저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굳이 분석해 볼 필요조차 없다. 그리고 시장은 중앙은행이 2008년 리만사태때 만큼이나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장의 패닉이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통화정책의 한계는 0%가 아니라 상상력과 중앙은행의 의지 뿐이니 연준이 더욱 놀라운 조치를 취할 수도 있고 그들은 이에 대한 연구도 해왔지만 비전통적인 방법에는 늘 정치적 반대와 마찰이 따른다. 연준이 첫 QE를 실시할 때 얼마나 많은 멍청이들이 하이퍼인플레이션 운운하며 반대했는가. 따라서 신속하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재정정책밖에 없다.

하지만 마그나카르타에 서명한 존 왕이 겪었던 고통을 현재의 행정부도 겪고 있다. 세수감소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재무부가 지출을 늘리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공화당은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지출한도를 증액해주지 않아 정부가 셧다운 되도록 방임한 적이 있으며 다분히 그에 대한 보복적 성격으로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를 3년간 두번이나 셧다운시켰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의 정치성향도 과거보다 훨씬 더 양극화되었고 또 대선을 앞둔 터라 정치적 마찰이 더 심할텐데 과연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이 쉽게 재정지출 확대를 승인할 수 있을까. 참고로 2008년 리만이 파산한 직후 부시행정부가 제시한 구제금융법안을 하원이 부결시키면서 S&P가 사상 최대의 일중 폭락을 기록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때 반대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 중 하나가 현재의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

과거보다 훨씬 더 양극화 된 미국

미국인들은 자국 정치인들을 멍청하고 이기적이며 어리석다고 하지만 문재인이 당선되고 강경화가 외교부장관을 맡는 한국인의 눈에는 적어도 미국의 정치인들은 정쟁으로 나라를 파산시킬 얼간이들이 아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영민하고 추진력을 갖춘 대통령으로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정책을 관철시킬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전에 언급한 대로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며 또 낙관적 결과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아마도 시장은 좀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전에 말했듯이 좋은 투자자가 되려면 가장 비관적인 순간에 낙관적일 수 있어야 한다. 트럼프가 자리를 지키는 한 미국은 또다시 공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원이 구제금융법안을 부결시킨 날의 S&P500


*정확히는 Ministry Of Economy and Finance
** 그러나 이후 왕의 요청으로 교황이 무효를 선언하고 절대왕정 시대에는 사실상 사문화되는 등, 그 의의는 후대에 과장되었다고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