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5.

영화 Big Short - 실패한 파티의 DJ들

금융위기가 터지자 은행과 금융인들은 모두 실제적, 잠재적 범죄인이 되었다. 대중들의 인식에 따르면, 탐욕스러운 뱅커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고 베팅을 벌였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실업과 빈곤의 고통속으로 몰아 넣었다. 이 영화는 그들에게 두가지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하나는 '역시 은행원들은 양심없는 쓰레기야'라고 외치며 침을 뱉는 것이고, 두번째는 몇명의 괴짜들이 그 악당들에게 패배(혹은 손실)를 안겨주는 과정을 중계하면서 느끼는 대리만족일 것이다. 마치 자신들은 탐욕적이지 않고 버블 붕괴와 무관하다는 듯이.

하지만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버블의 공범이었다. 여러 금융상품들이 개발되자, 금융기관과 자본은 리스크를 더 분산할 수 있어(혹은 그럴 것이라고 착각하며)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줄 수 있게 되었고, 그 덕에 대중들은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집을 가진 이들은 더 큰 부자가 될 꿈에 부풀어 소득도 없는데 여러채의 집을 사들이는 한편, 집이 없던 이들은 상환능력을 상회하는 대출로 집을 구매한 뒤 집주인의 닥달과 월세걱정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파티는 뉴욕의 월가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파티는 금융의 중심지와 떨어진 신시내티, 밀워키, 오스틴 그리고 수많은 미국의 중소 마을까지도 번졌다. 미국 전역에서 상류층들은 초현실주의나 야수파 화가들의 그림을 사는데 수억불을 지출했고, 중산층들은 새 메르세데스와 BMW를 뽑아 거리를 질주했으며 하류층들은 이전의 중산층들이 살던 삶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금융은 단지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도록, 그들이 요구한대로 시스템과 시장을 구축해줬을 뿐이다.

물론 월가의 잘못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들 파티에서 누리던 만큼 취해 있었을 뿐이며, 그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뤘다. 베어스턴스, 리만, 와코비아를 비롯한 수도 없이 많은 금융회사들의 주식가치는 휴지가 되었고, 살아남은 은행들도 그 과도한 파티의 비용을 톡톡히 지불했다.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정부 소유가 되었던 Citi그룹의 주가는 10년전 400-500불 수준에서 현재 45불로 1/10토막이 났고 투자은행의 대표주자 Goldman Sachs의 현재 주가도 10년전과 같은 수준이다.(반면 S&P지수는 10년 전에 비해 50% 상승했다.) 어떤 사람들은 수백 수천만 달러의 성과급을 받은 뱅커들은 그 보너스를 챙겨 여전히 부자로 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 돈을 지급한 것은 대중들이 아니라 대형은행 주주들이다. 그 부자 주주들이 뱅커들에게 얼마를 지급하던 그것은 그들이 결정할 문제고, 그 결과 그들은 현재 혹독한 손실을 입었다.(사실 그 부자 주주들 명단에는 고점에서 Merrill Lynch의 주식을 대거 매입한 KIC가 있으니 한국인들은 메릴린치 뱅커들의 보너스를 제한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부동산 하락에 베팅한 두 청년들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자 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만약 너희들의 베팅이 맞는다면 미국인들은 연금과 자산을 날리고 직장과 집까지 잃게 된다. 너희들이 지금 어떤 짓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의 몰상식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빅롱'베팅을 해서 버블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름다운 일 인가. 그 시기 숏베팅을 한 이들 덕분에 버블은 그나마 덜 커질 수 있었고, 그들의 숏 포지션 덕에 시장이 무너질 때의 충격이 완화될 수 있던 것이다. 시장이 무너질 때 마이클 버리가 미리 구축해 둔 포지션이 없어 살 사람이 아예 없었다면 시장이 얼마나 더 폭락했을지 상상해보라. 우리는 세상이 망하기를 바라고 숏 포지션을 잡은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런 베팅을 하는 사람이 적어 버블을 키웠다는 사실에 분노해야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내 파티가 끝난것 남 탓이다" 라고 주장하곤 한다. 영화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진실은 시와 같다. 사람들은 그를 혐오한다."

달콤한 칵테일에 취해있었던 것은 뱅커들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파티를 즐기며 거나하게 취하자 한두명이 과음으로 휘청거리고 괴로워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누군가 응접실에 구토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몇명이 따라 오바이트를 하고, 더러는 넘어지며 집기를 부수고 누군가는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둘렀다. 그렇게 21세기의 첫 파티는 엉망으로 끝나고야 말았다. 즐거운 파티가 한순간에 난장판으로 변하자 분노한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아 두리번거렸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대 위에 서있던 DJ였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더 신나는 음악을 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은 이제 DJ에게 왜 사람들을 과도하게 흥분시켜 모두를 만취하게 만들었냐며 그의 멱살을 잡았다. 하기사, 60년 전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날에도 미국인들은 원폭 투하를 결정한 정치인들이 아니라, 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에게 침을 뱉지 않았는가. 그 정치인들을 누가 뽑았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 영화는 그런 대중들을 위한 영화다.

댓글 3개:

  1. 이제서야 읽었는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

    답글삭제
  2. 날카로운신 통찰력을 흠모합니다.

    답글삭제
  3. 영화 보면서 뭔가 찝찝했는데,
    통찰력 담긴 글을 읽으니 시원해지네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