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의 역사는 사실상 스포츠 신문으로부터 출발했다. 이전에는 유명 연예인들의 가쉽이나 여자 스타들의 관능적인 사진 등을 접하려면 독자들은 스포츠 신문을 사야 했지만, 인터넷이 등장하자 우리는 손쉽게 컴퓨터에 앉아 검색해보는 것 만으로 원하는 소식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신문잡지들 중에서도 특히나 자극성, 흥미성 소재를 주로 전달하던 스포츠 신문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었다. 결국 그들은 발행 부수를 대폭 줄이고 홈페이지에 올리는 광고 수입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 때 타사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컨텐츠로 만화를 주목했다. 스포츠 투데이, 일간스포츠와 같은 스포츠신문들의 홈페이지는 웹툰이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요람과도 같았다. 양영순(데뷔작은 누들누들이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것은 웹툰 아색기가이다), 곽백수(트라우마), 비타민(멜랑꼴리), 이상신-국중록(츄리닝)등, 현재 웹툰계의 1세대 중 다수가 이때 스포츠 신문들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 웹툰의 첫 세대 중 한명이 최훈이고 그의 대표작은 단연코 삼국전투기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이래로 천년간 동아시아의 수많은 작가들이 소재로 다룬 삼국지를 만화로 그리는 일은 처음부터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이미 일본에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삼국지를 60권짜리 만화로 옮겼고, 한국에서도 고우영 화백이 "고우영 삼국지"를 내놓은 적이 있다. 게다가 다른 그 어떤 역사분야보다도 일반 독자들의 이해도가 깊은 소재이다 보니 기존에 알려진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그리는 것 만으로는 결코 인정 받을 수 없던 작업이었다. 하지만 최훈 작가는 세가지 강점으로 삼국지를 다룬 가장 훌륭한 작가중 하나가 되었다. 첫번째는 여러 사료들을 종합해서 실제 삼국지 역사에 가까운 스토리를 완성한 것이요, 두번째는 다른 삼국지가 등한시 한 제갈량 사후의 이야기까지 충실한 점, 세번째는 수백명이나 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기존 만화 드라마 영화들의 캐릭터에서 따온 패러디로 채운 것이다.
이 만화는 2006년 1월 11일 일간스포츠에 첫 연재를 시작한 뒤 이후 네이버 웹툰으로 자리를 옮겼다. 초기에는 네이버 웹툰 중 대표 인기작으로 손꼽혔지만, 수도 없이 많은 지각 연재와 휴재를 거치며 그 인기와 평가는 추락했다. 그의 팬 중 새항아리라는 블로거가 있었는데, 그는 최훈이 패러디한 캐릭터들을 자신에 블로그에 친절히 설명해주곤 했다. 그러나 최훈이 의욕을 잃고 연재를 중단한 중에 그는 지병인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블로그에 "삼국전투기가 완결되기를 바란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최훈은 그를 추모하며 반드시 이 작품을 완결시키겠다고 다짐했고 그가 다시 연재를 재개한 이후로는 단 한번의 지각연재 없이 완결까지 삼국 전투기의 스토리를 완성시켰다. 그런 삼국 전투기가 지난주 수요일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종결했다.
많은 사람들은 웹툰의 역사 따위에 그리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의 역사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기엔 누군가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훈은 삼국지라는 역사를 그리며 스스로 웹툰의 역사가 되었고, 거기엔 10년간 그를 함께 지켜보아온 수많은 독자들의 역사도 함께 담겨있다. 댓글 창에는 중학교때 이 작품을 처음 보기 시작했다 어느덧 전역한 예비군이 되었다는 독자와, 대학생 때부터 팬이었던 한 남자가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소회를 남긴 글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아니 우리들에게는 이 작품은 단순한 만화가 아닌 내 젋은날을 함께 해 준 소중한 기억이기에 삼국전투기의 완결을 보며 감명과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추억이 되고, 모인 추억들은 이윽고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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