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6.

시장의 비명, 그리고 병신된 이주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역대 2번째로 높게 올라간 공포지수 VIX
지난 열흘간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치면서 수도 없는 시장 전망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중 절대 다수는 금융시장 참가자가 아닌 사람들이 상상력을 가미해 쓴 것이고 나머지 중 또 대다수는 금융인이라고는 하나, 트레이딩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쓴 뇌피셜에 불과하다.(얼마나 많은 금융권 종사자들이 경제와 금융시스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이 안다면 놀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국제 금융시장을 가까이 관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끽해야 주식이나 환율 몇개나 볼 뿐. 물론 나보다 더 열심히 트레이딩하는 사람들도, 나보다 실적이 더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은 한글로 글을 쓰지 않거나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시간이 없다. 나는 지금부터 설명할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 글을 쓸만큼 한가한, 딱 그 경계에 있다. 그리고 최대한 쉽게 써볼테니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보다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내 개인적 전망은 []로 따로 표시하겠다.

지난 글에서 금과 주식이 동시에 하락하면서 국채금리가 하락하는 것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라고 했는데, 이는 신용경색의 대표적 징후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좋지 않을때엔 금이 오르고 채권금리가 내린다. 금이 내리면서 금리가 오른다면 경제(인플레)전망이 좋기 때문이라 주식이 오른다. 금이 빠지면서 주식이 하락하는데 채권금리가 내린다면? 역사적으로 그런 경우의 수는 딱 둘 뿐이었다. 하나, 금시장에 투기적 포지션이 과도하게 들어와 있었거나 둘, 유동성이 마르고 있을때. 그리고 지금은 적어도 첫번째 경우는 아니다.

두번째 신호는 자산 간의 상관관계가 부서지는 것이다. 대개 주식이 좋지 않으면 환율은 오르기 마련이다. 경제전망이 좋지 않으면 성장주보다 가치주가 선방한다. 유가가 오를때 정유/화학주가 강세를 가는 등, 모든 금융자산 사이에는 시장에서 널리 통용되는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투자자들은 이를 참고하여 투자를 한다. 그런데 지난 14일간 우리는 이들이 망가지는 것을 목격했다.

세번째 신호는 자본을 조달하면서 더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은행은 판사보다 목수에게 더 비싼 금리를 받고 돈을 빌려준다. 우리가 아무리 일본에게 지지 않는다고 외쳐도 국제금융시장은 국민은행보다 미즈호은행에게 더 낮은 금리를 받고 돈을 빌려준다. 금융기관끼리도 1주간 융통하는 돈의 이자가 1달간 운용할 자금의 이자보다 낮다. 그리고 지난 12시간 동안 자금을 조달하는 프리미엄이 빠르게 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 모든 신호는 금융시장이 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비명소리나 다름없다. 그것도 연준이 50bp의 깜짝 인하를 단행하고 시장이 이달 말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추가 인하를 예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준의 가장 과감한 안정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비명을 멈추지 못하는 셈이다. 앞서 언급했던 글과 같이 리만사태 이후 연준이 시장의 공포를 잠재우지 못한 적은 2011년을 제외하면 지금이 유일하다. 우리는 이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경제성장률을 수정하거나 아니면 기업의 실적을 하향하는 사건은 주가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수익률이 다시 올라가 다시 매입할 환경이 조성되지만, 신용경색이 일어나게 되면 가치평가와 무관하게 무조건 팔아야 할 압력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천억 짜리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의 입장에서, 만약 무역분쟁이 터져 메모리 수요가 감소한다면, 생산업체의 목표주가를 낮추면 끝이다. 실적이 100에서 80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면 주식을 만원이 아니라 8천원에 사면 되지 뭐. 설령 시장이 과도하게 하락해 7천원까지 간다고 해도, 버티거나 아니면 물타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금융시장이 붕괴하며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급격한 환매를 시작하면 펀드매니저는 무조건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주가와 상관없이 무조건 팔아야 한다. 심지어 주식이 저렴해 질 수록 사기는 커녕 더 많이 팔아야 하는 딜레마에, 그것도 잘 팔리는 가장 우량한 자산부터 팔아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한다. 삼성전자와 개잡주를 들고있는데, 개잡주가 하한가라 팔 수 없으니 우량한 삼성전자를 팔아서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는 것처럼. 이 단계에서는 가치평가와 미래 실적 예측은 아무 의미가 없다. 파산하느냐, 돈을 돌려주지 않고 고소당하느냐, 아니면 팔 것이냐의 기로에 있을 뿐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나는 현 상황이 금융위기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2008년의 금융위기는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내리는 것 외에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몰랐던 상황에서 맞이한 신용경색이었고, 지난 10년 간의 경험 끝에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의 한계는 0%라는 가상의 선이 아니라 상상력과 중앙은행의 의지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금리가 더 인하될 지, 또 신용경색이 얼마나 더 강하게 발생할 지 모르겠지만 중앙은행은 우한코로나 환자들은 구하지 못해도 금융시장은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증명할 것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개입이 시작되어 신용경색은 피하더라도 주식의 부진은 한동안 멈추지 않는다. 중앙은행들이 돈을 더 풀기까지 주식시장은 5% 폭락했다, 금리인하 소식에 도로 상승했다가 또 나쁜 헤드라인 하나에 폭락하는 상황을 반복할 것이고, 또 이렇게 변동성이 커지게 되면 각 투자자들은 자산을 재평가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좋은 자산이란 무조건 절대수익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변동성은 낮은데 투자수익률이 괜찮은 자산들이다. 거의 모든 투자자들은 이 기준에 따라 좋은 자산과 나쁜 자산을 구분한다. 허나 변동성은 순식간에 몇배로 커질 수 있는데 비해 투자수익률은 그러기 어렵다, 아니 현재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는 되려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회사의 기업가치가 변한 것도 아니고, 경제전망이 바뀌지 않아도 변동성이 커졌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좋은 기업이 하루아침에 나쁜기업으로 탈바꿈한다. 물론 투자자들도 바보가 아니니, 하루 이틀 혹은 1주와 같은 짧은 기간의 변동성만으로 자산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식의 급등락이 단기에 그치지 않고 한달 이상 이어질 경우 그들은 변동성을 새롭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시장은 2차 충격을 겪는다. [내가 이전 글에서 시장에 두번째 폭락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주식시장 변동성이 현재와 같은 수준에 이를 경우 이와 같은 프로세스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저점매수 기회를 노리는 사람은 1차가 아닌 이 2차 폭락기에 진입해야 한다. 저점을 정확하게 잡아내지 못하는 이상, 1차 폭락에 진입하면 대개 2차 폭락을 못견디고 손절하게 되기 대문이다.

[나는 우한코로나가 스페인독감과 같은 치명적 재앙을 가져오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이나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높은 사망률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공포의 본질은 늘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미국 정부는 계속해서 치료제 제조가 임박하다곤 하지만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어도 사망률이 뭐 한  2%에서 0.2%로 줄어들 뿐이다. 이는 의학적 관점에선 엄청난 발전일 지 몰라도 인간의 감정은 합리적으로 확률을 계산하지 않기에 공포를 크게 경감하진 못할 것이다.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길은 백신을 맞아서 면역을 갖추는 것 뿐인데 현재 전문가들 중에 백신이 3달 안에 개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가. 시장의 공포는 피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가장 불쌍한 투자자들은 연준의 깜짝 금리인하했다고 다음날 곧장 한국 주식을 매입한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2차 폭락은 아직 오지 않았을 뿐더러 역대급으로 무능한 한국은행 총재를 둔 덕에 전세계 금융시장이 신용경색을 일으킬 동안 한국은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앙은행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시장으로 남았고, 또 동시에 환시개입으로 환율수준을 찍어누르기 때문에  해외중앙은행들이 공급한 유동성이 국내로 흘러들어올 루트도 막은데 동시에, 환율의 자연스러운 조정으로 국내 수출이 개선될 여지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 인구당 확진자 수가 세계 1위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주식시장은 박살나는데 중앙은행이 완화에 나서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 국가의 미래를 거하게 말아먹은 케이스가 있다. 바로 옆 나라 일본. 이 블로그의 첫 포스팅(링크)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중앙은행장 하나가 어떻게 나라경제를 20년간 거덜냈는지 분석한 글이고 이를 작성한 지 자그마치 5년이나 흘렀는데, 놀랍게도 그 마지막 문단은 오늘날의 총재를 평가하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는 디플레이션 위험이 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의 주장과는 다르게 디플레이션 압력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고,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이미 디플레와 싸우기 시작했다. ........ 어쩌면 총재는 속으로 조직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잔다르크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장은 그를 시대착오적 돈키호테라며 조롱했다.


5년이 흘렀건만 같은 병신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병신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댓글 8개:

  1. 요즘 학생인 저는 칩거하며 재무관리 강의 듣고 ETF매매하고 글 읽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근데 뉴스를 보면
    또 외교부장관이 사고쳤더군요... 마치 조선총독부 건물을 부수고나서 IMF때 제일 먼저 쪼르르 달려갈 느낌이 드는건 이유모를 기시감 때문인건지....
    MB는 스와프협정 맺고나서 독도방문하는데(그것도 미국의 암묵적 방관하에) 이 정부는 참 할줄 아는건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다 화풀이밖에 못하는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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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그리고 혹시 제 처참한 실력이지만, 영화 인타임과MMT/QE을 관련지어 시스템에 관한 독후감을 쓰는 중인데 혹시 검수를 요청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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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가 감히 누군가의 글을 검수할 실력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보내주신다면 정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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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잠 안와서 밤새 S&P500 보고 있는데 깜깜합니다.. 이미 연준의 50bp 추가 인하는 기정사실인거 같습니다. 국채 2년물이 한 때 40bp도 갔었어요.. 금리 인하 한다고 해도 지수 2% 내리는건 이제 무덤덤하고 3%에 조금 놀라는 수준이 되어버렸습니다. 50bp 긴급인하한 과거사례가 911,리먼,it버블인데, 저는 13년부터 주식을 했기 때문에 저것들은 그냥 역사적 사건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 역사적 하락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엄청 걱정됩니다. 작년 8월에 장단리 금리 역전되었을 때 언젠가는 1~2년안에 침체 올꺼라 경고가 있었지만 지금보다는 나중일이니 미 대선전까지는 상승보고 투자했는데 결과가 처참합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포트는 현재 골드만 삭스와 BDC 회사인 ares capital이 5:5 비중입니다. 골드만은 평단이 너무 높아서 지금 손절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ares는 그냥 배당받으면서 버틸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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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만 때엔 인덱스가 5~8% 빠지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던 시절이었습니다. 과거 가격움직임을 보고 만약 리만같은 상황이 닥치지 않는 전제 아래, 최악의 상황이 어디까지 악화될지 보시고 그걸 견딜수 있다면 버티시고 못 견디겠다면 견딜 수 있는 만큼 포지션을 조정하는것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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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선생님의 통찰력 있는 글을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ㅠㅠㅠ
    항상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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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부동산도 위험할까요?

    그렇다면(모든 자산이 다 위험하다면) 결국 전부 현금화하는게 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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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죄송하지만 글실력이 너무 좋아서여. 경제관련해서는 무뇌..아니 문외한이라서 책추천해주실수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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