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Big Short에 대한 감상은 과거에 한차례 올린 적이 있으니(링크) 본문을 읽기에 앞서 먼저 읽기를 권한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두가지 카타르시스를 판다. 대중들이 동경하는 월가의 고소득 뱅커들은 사실 인성 빻은 멍청이들이자 사기꾼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똑똑한 당신이라면) 그들의 헛점을 노려 큰 돈을 벌 기회가 수시로 찾아온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부자가 되고 싶은 이들은 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한다. 그 환상은 무척이나 잘못되어 있으니까.
금융권은 매년 대학 졸업자들 중 가장 똑똑하고 명석한 사람들을 뽑기 위해 애쓰고 그들중 가장 돈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승진하며, 또 가장 훌륭한 시스템을 가진 회사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애쓴다, 낮에도 그리고 밤에도. 뭐 그러다 비도덕적인 일을 저지르다 감방에 가기도 하지만. 그리고 금융시장은 그들중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돈을 몰아준 뒤,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곳이다. 따라서 당신이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있다면 시장이 아닌 자신이 바보가 아닌지를 먼저 의심해야 한다. 명심하라, 당신은 천재도 아니고 또 금융시장에 타고난 천재란 없다. 타고난 일중독자만이 있을뿐.
트레이더가 보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의 팀원들이 자신에게 CDS를 매도한 도이치의 세일즈 지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을 불러 항의하는 장면이다. 모기지 시장의 붕괴에 베팅했던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기초자산이 박살나는데 어떻게 MBS의 가격이 오를 수 있냐면서. 지레드는 침착하게 그들에게 이렇게 받아친다. "당신들은 이 시스템이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데에 베팅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시스템을 믿고 있지 않냐." 사실 MBS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은행들의 양심이 불량이어서가 아니라, 당시 연준이 7개월동안 금리를 325bp나 급격하게 인하해서 모든 채권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시점부터는 파산위험이 금리하락분을 상쇄해서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맞았겠지만, 부동산시장의 붕괴에 베팅한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 않은가. 그런 은행들이 매기는 시가평가가 하락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애초에 시장이 비합리적라는데에 베팅한 이들이 시가평가가 잘못됐다고 항의하는 것 또한 비합리적인 일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기억해야하는 것은 투자은행의 로비에서도 쫒겨나던 얼치기들이 베팅을 잘해서 수억달러를 버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시장을 거슬러 베팅하기로 결정한 마크 바움의 팀원들이 실사를 펼치는 장면이다. (그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실제로 수천개의 모기지를 기반으로 한 CDS를 매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모기지 집 주인들, 부동산 중개업자, 모기지 세일즈, 세입자들을 찾아가 일일히 면담했고 심지어 그들 중 하나인 스트리퍼를 만나기까지 했다. 그는 평생 살면서 자신이 마주칠 일도 없던 사람들을 일일히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조롱을 참아가며 실사를 마친 뒤 베팅에 나섰다. 99대 1의 베팅을 하기 위해서는 남들의 99배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시장에 맞선 베팅기회는 십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인데다 그 기회를 포착하려면 백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머지 시간은 시장에 순응한 이의 몫이다. 지난 한달간 개미들이 세번째로 많이 사들인 종목이 코스피 인버스인데 우리 한국 시장에 마이클 베리와 마크 바움 꿈나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마이클 베리는 비관론이 최고조일 때가 아니라 낙관론이 팽배할 때 시장을 거슬러 베팅했고, 마크 바움은 시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접 자기 발로 뛰어 밝혀낸 뒤 행동에 나섰다. 악재가 터진 뒤 시장이 붕괴한 뒤에 방구석에 앉아 신문기사 몇개 읽고 인버스를 사는 것은 Big Short이 아닌 그저 small gamble일 뿐이다.
그 영화 재밌게 봤는데 현살에 대입해서 보자니 참 안타깝네요ㅠ 개미들의 미래ㅠ
답글삭제영화는 너무 재미있죠. 특히 한국영화부도의날을 보신 뒤에 보시면 두배로 재미있습니다.
삭제역추세하면 보통 죽기 마련이죠. 그래도 확실한 근거가 있으면 다이버전스 매매가 손익비는 크니까~
답글삭제선배님 글을 한번씩 생각 날때마다 뒤에서 부터 읽는데, 또 무릎을 탁 치게 만드십니다. 한국 하워드막스 켄피셔 이지 않나.. 싶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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