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6.

주택시장에 대한 흔한 착각 두가지.

최근 정부의 새 부동산 정책에 관한 여러 논의를 지켜보며 사람들이 가지는 흔한 오해 두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1. 세입자에게 전월세 계약을 2년 더 연장할 권한을 주는 것과 2. 분양가 할인이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 대중들의 희망과는 반대로 이 둘은 모두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리는 효과를 낼 것이다.

1. 전월세 계약을 2년 연장할 권한은 집값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세입자는 계약기간과 무관하게 최소 2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권한을 가진다. 그리고 현재 당정은 2년이 만료된 뒤, 세입자가 2년 더 전월세 계약을 연장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법은 전세가격을 올려 갭투자자들의 주택구매를 더욱 용이하게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 아래서는 전세가격은 대체로 상승한다.(최근 CPI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찍었지만 이는 잘못된 소비자물가 바스켓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 4년 간의 전세가격은 2년보다 높고, 향후 10년 간의 전세가는 4년 보다도 더 높다. 따라서 전세기간을 늘리면 세입자가 계약시 맡겨야 할 전세금이 올라간다. 그리고 전세금을 올리는 효과가 하나 더 있다.

시장은 공평하다. 누구도 손해보는 계약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계약의 조항이 다른 한쪽에 불리하게 되어있다면 거래 상대방은 그 만큼을 보상해주어야 계약이 이루어진다. 앞서 정부가 고려하는 개정안에 따르면 2년 뒤 계약을 연장할 권리는 세입자에게만 있다. 집주인은 2년 뒤 세입자를 붙잡고 싶어도 세입자가 나가겠다고 하면 두말없이 전세금을 빼줘야 한다. 하지만 권리는 공짜가 아니다. 세입자에게 일방적으로 권리를 주게 되면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금융용어로 세입자는 2년 뒤 계약을 연장할 옵션을 사게 되는 것이고, 집주인은 옵션을 팔면서 그만큼의 프리미엄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 프리미엄은 대개 전세가격의 상승으로 지불될 것이다.


2. 분양가 할인은 공급을 줄이는가.

당연하다. 10억짜리 물건을 9억에 팔 사람은 소수고 그걸 5억에 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정부가 이 10억짜리 물건을 싸게 팔라고 강제하면 물건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 제품을 생산하지 않아 공급이 끊어진다. 이런 아주 단순한 원리를 부정하며 공급이 줄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을 예로 든다. 1980-2000년에도 분양가는 크게 할인되어 판매되었지만 공급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그들은 두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그 시절의 이자율이 높았다는 것과 당시 건설사들의 시공능력이 검증되지 못했다는 것.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짓기도 전에 아파트를 분양하는 선분양이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과거 건설사들과 주택조합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분양받은 사람들은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집값을 미리 내고, 대신 조합과 건설사는 그 이자 만큼 조달비용을 아끼니 대신 집을 싸게 줄 수 있었다. 집을 다 짓고 분양하는 후분양을 추진할 경우 건설기간 동안 공사비를 조달해야해서 이자비용이 늘어난다. 건설사의 신용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강 계산했을때 과거의 기준금리가 6-8%였다면 신축가격 100에 해당하는 분양가는 약 85-90정도가 된다. 따라서 1억짜리 집을 10% 싼 9천만 원에 선분양하는 것은 그냥 제값에 판 것이지, 싸게 분양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조달금리는 턱없이 낮으며 공사기간도 단축되었다. 그러니 과거처럼 신축아파트보다 15% 싼 값에 아파트를 분양하게 되면 조합과 시공사들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도 분양을 안한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선택권을 가지는 것은 늘 유무형의 비용을 동반한다. 반대로 상대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내게 수익이 생긴다는 말이 된다. 선분양에 나선 건설사들은 정말 거지같은 집을 지을 수도, 럭셔리한 고급주택을 지을 수도 있지만 분양받은 계약자는 설령 부실시공이라도 무조건 그 집을 인수해야 한다. 과거에는 수많은 건설사들이 난립했기 때문에 아파트의 질이 A급에서부터 D급까지 다양했다. 따라서 분양가격은 이런 위험을 반영해서 낮게 측정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서울에서 분양에 나서는 대형시공사들은 어느정도의 퀄리티를 보장하고 있고, 심지어 고급 아파트의 경우 독자적 브랜드를 도입하기 때문에 분양가격이 앞서 말한 위험을 반영할 필요가 적어졌다. 그러니 분양가가 기존 신축보다 낮아져야 할 이유도 줄어들었다.


따라서 현재 정부가 시행하려 하는 두 정책은 모두 전세가격, 그리고 매매가격 모두를 상승시킬 것이다. 하지만 바보는 끝까지 바보 짓을 반복하니 정부는 참여정부 시절 처럼 바보 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 실거주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어서 집을 사기를 권한다.

누구를 위해 연금은 매수를 누르나

와. 도대체 한국 증시가 세계 증시를 앞서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가. 그저 조용히 이 랠리를 즐기고 싶다만 뭔가 석연찮은 것이 있다. 주식을 병들게 한 것이 정치였는데, 주가와는 달리 정치는 점점 악화되니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배경에는 국민연금이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23영업일동안 매일 주식을 사들였고, 그 금액은 이달 들어서만도 벌써 2.5조가 넘어갔다. 역대 30일간 사들인 금액으로 보면 역대 최대치를 찍었으니 국민연금의 이런 매수행테는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하지만 과연 누구를 위해 연금은 매수를 누르는 것일까.

모든 금융사들은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인다. 고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득을 우선하는 행위는 그 경중에 상관없이 심각한 처벌을 받는다. 최근 여의도에서 몇몇 직원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선행매매를 했다는 루머가 돌았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그들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두번 다시 금융시장에서 잡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짓을 아무리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펀드매니저들이 있다. 바로 국민연금. 코스피의 밸류에이션은 지난 몇년 중 가장 높은 수준에 머물러있는데 올해 국내주식비중을 줄인다던 국민연금은 갑자기, 난데없이, 뜬금없이 폭풍같은 매수주문을 내며 시장의 팔자 호가를 뜯었다. 그 배경에 대해 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의 부진으로 목표한 비중을 맞추기 위해 주식을 더 사야 했다"고 답하지만, 매매 행태와 종목을 보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긴 대단히 어렵다. 그들이 그런 비정상적 매매에 나선 것은 최근 부진한 정권의 지지율이나 일본을 상대로 펼치는 자존심대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입자의 이익보다 다른 정치적 목적을 우선하는 것을 수도 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 당장 현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의 이력부터 보면 금융쪽에서 일한 경력이 단 한줄도 없다. 심지어 비슷한, 덧셈뺄셈이라도 해 본 경력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 그는 평생 계산기 한번 두드려 본 적 없고 회계장부의 각 항목이 뭔지도 모를 것이다. 억지로 국민연금의 연관고리를 찾으라면 그가 국민연금 본부가 이전한 전주시 덕진구 출신의 국회의원이라는 점, 그것 단 하나 뿐이다. 국민연금은 세계 4-5위 수준의 대형 기금으로 운용자산이 600조가 넘는데, 보통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탑 펀드매니저들은 아무리 적어도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같은 대도시의 삶을 누린다.  하지만 그들과 경쟁하는 국민연금은 인구가 꼴랑 65만 명 밖에 안되는 전주시에, 그것도 도심에서 20분 넘게 떨어져 있는 외곽 깡촌에 쳐박혀있다.

그렇다고 돈은 잘 주나. 그럴리가 있나. 이 펴엉등한 나라에서. 장담컨대 아마 그들이 경쟁하는 헷지펀드에서 일하는 비서의 연봉이 더 높을 것이다. 돈도 안주는데다 깡촌에 쳐박혀있는데 우수인력이 거기에서 일하고 싶을 리가 없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를 전주로 이전하자 막대한 수의 운용역이 우르르 빠져나가 인력충원에 크게 애를 먹지 않았나. 심지어 전주가 고향인 사람도 전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데 누가 거기로 따라가나. 남은 사람들과 새로 충원한 사람들은 대부분 여의도나 광화문으로 이직하는데 실패하고 업계에서 헷지펀드 비서만큼의 연봉도 못 받는 사람이다. 당신의 연금은, 그리고 노후는 이런 사람들의 손에 운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국민연금을 전주로, 그것도 자신의 지역구로 이전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국민의 노후를 망가뜨린 보상으로 김성주는 세계 4대 연금의 이사장 자리를 맡았다. 축하한다. 당신의 미래는 그의 손에 달렸다.

이런 펀드의 실적이 좋을리 없다. 국민연금은 먼 미래에 돌려주겠다며 국민에게서 600조의 돈을 걷어간 뒤 계산해보니 나중에 못 돌려주겠다며 돈을 더 내놓으라고 겁박하는데, 이를 보면 사회면에서 숱하게 읽은 연인에게 사기당한 사례가 떠오른다. 처음엔 더 큰돈으로 돌려주겠다며 한푼 두푼 삥땅치다 점점 큰 금액을 뜯어가는 그런 비극적인 결말의 이야기들. 상식적으로 연금이 노후를 보장해주지 못하면 없애버려야지 왜 돈을 더 붓나.

며칠 전 검찰은 삼성 이재용의 경영승계를 도와준 혐의로 국민연금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연금이 가입자의 이익 외에 다른 목적을 가진 것은 명명백백히 처벌받아야 할 사안이다. 그리고 폭락하는 지지율 대신 주가를 올리는 짓이나 국회에 의석 수 한두 개 늘리겠다고 가입자들의 미래를 망치는 짓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아니, 재벌의 경영승계는 수십 년에 한번 일어나는 일이지만 국민연금을 망치는 짓은 매시매분매초 벌어지는 비극이다. 어제부터 국민연금의 매수세가 멈췄는데 아니나다를까 한국 주식은 여지없이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빈자리는 우리 가여운 개미들이 메우고 있다.

정치논리로 국민들의 노후를 망치는 악당들이 있을 곳은 전망 좋은 사무실이 아니라 깜방이다.

당장 가라.




2019. 9. 22.

현재의 이상한 분양제도: 486들의 착취

또다시 분양의 시즌이 돌아왔다. 이렇게 날씨 좋은 주말 오후에 모델하우스 앞에서 몇시간 씩 줄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또 그렇게 몇백대 1의 경쟁률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청약자들을 보면서도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게 믿는 소수의 멍청이들이 있고 비극은 그들이 정책결정자들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글에서 나는 김수현을 머리가 나쁜 촌놈이라고 비난했는데(링크) 심지어 그랬던 나도 저 인간이 못돼 처먹기까지 한 줄은 몰랐다. 그는 과천의 한 재건축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단지는 그가 스스로 입안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상한제를 간발의 차이로 피해갔다.

하지만 그렇게 못돼 처먹은 것은 김수현 하나가 아니다. 이는 현재의 이상한 분양정책을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2030대는 분양시장에 관심이 적어 넘기고 싶겠지만, 차근차근 따라와 주길 바란다. 왜냐하면 이 제도야말로 저들이 노골적으로 당신을 착취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제도는 국민주택규모, 즉 약 35평 이하의 아파트의 분양은 100% 가점제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가점제란 무주택기간, 자녀 수, 청약통장 보유기간 등등에 따라 종합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가 높은 사람부터 우선적으로 분양하는 제도이다. 얼핏 듣기에는 합리적으로 들리겠지만 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어떤 사람이 가점이 높을까? 당연히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높다. 그들은 과거의 무주택기간도 길었고 자녀 수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가구는 소형이 아닌, 중대형 평수를 원한다. 그런데 왜 그들에게 소형평수를 우선배정한다는 것일까? 이 분양정책이 시행된 이후 각 신축단지의 24평 아파트는 거의 모두 486/586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훌쩍 큰 자녀를 하나나 둘을 둔 486가족은 결코 24평 아파트의 실수요자들이 아니다. 소형평형의 실수요자들은 2030대 신혼부부들이다. 따라서 이 제도는 실수요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소형아파트를 우선배정하는 괴상한 제도다. 심지어 1주택까지는 청약의 우선순위를 유지할 수 있으니 과거의 무주택 기간이 길었다면 청약점수가 높아 소형아파트를 가져갈 수 있다. 24평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32살의 신혼부부지만, 그 집을 분양받는것은 그들이 아니라 아이를 둘 둔 42살의 운동권세대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저런 정책으로 대출을 모두 막았다. 따라서 미래소득은 많지만 당장 오늘의 자산은 적은 신혼부부는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없고, 모아둔 돈이 좀 있는 42살의 운동권세대가 실수요자도 아니면서 소형아파트를 싼값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신혼부부가 청약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집은 당장 필요도 없는 40평 50평대 뿐인데, 게다가도 그들은 자본이 모자라 이런 집에 청약을 넣을 수도 없다. 즉 현재의 청약제도는 신축아파트를 죄다 4050대에게 몰아주는 제도나 다름없다.

이 개편안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김수현미가 미숙해서 저지른 실수라고 생각했기에 곧 시정될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임대사업제도가 변하고 장기보유특공제도가 수정될 동안 이 괴상한 분양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이 개편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한 바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의도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열심히 산 나는 2주택자가 될 테니 젊은 너희는 세입자로 들어와 살아라, 어디 젊은것들이 벌써부터 집을 가질 생각을 하냐, 세입자 신세도 겪어보고 그러는게 다 청춘이지. 너무나 조국스럽지 않은가. 저들이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조국을 쉴드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는  젊은이들에 대한 운동권세대의 착취다. 그리고 이런 착취를 보는 것이 처음이 아니다. 바로 최저임금제. 해고를 어렵게 만들면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회사가 신규고용을 막고 기존 경력자들의 연봉을 높여주는 효과를 낸다.(링크) 저 운동권세대가 구축하려는 사회주의는 이상의 세계가 아닌, 중국이나 북한 러시아처럼 소수의 당원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실제의 사회주의다. 사회주의의 이면을 꿰뚫어 본 조지오웰은 동물 농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동물을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고. 그리고 저 운동권 세대는 자신들에게 더더욱 평등한 분양제도를 만들었다. 우리들은 이에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


*그 보다 큰 평형은  50%만 가점제, 나머지는 추첨
**1주택까지는 청약의 우선순위를 유지할 수 있고 무주택 기간은 30살부터 세기 시작한다. 따라서 집이 없는 32살의 신혼부부보다 40살에 집을 산 1주택 42세의 운동권 가장이 가점이 훨씬 높다.

2019. 9. 21.

(故)고바우 영감

첫 연재가 언제 어디부터였는지 매체마다 주장이 조금씩 엇갈리긴 하지만 이 고바우 영감이 대한민국의 최장 시사만화라는 데에는 아무 이견이 없다. 무려 1만 4139회에 걸치는 그의 만평은 한국의 살아있는 근대사 그 자체였고 민주화의 역사가 그랬듯이 고바우 영감 역시 수많은 풍파를  겪어야 했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것은 단연코 경무대 똥통사건일 것이다. 경무대는 청와대의 전신으로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채, 조선이나 일제 총독부의 신민으로 살아오던 사람들에게 경무대는 뭐 경복궁이나 다름없지 않았겠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부터가 전주이씨 양녕대군파였는데. 그리고 1957년 그 권력구조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건이 터진다.

슬하에 자녀가 없던 이승만은 부통령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을 양자로 입적한다. 친부는 부통령이요, 양부는 대통령이니 그에게 두려울 것이 무어가 있으랴. 그는 경찰서의 헌병을 폭행하기도 하고 아무런 자격 없이 서울대 법대에 편입하려 드는 등,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던 중 그를 닮은 한 빈손의 백수 청년이 이강석을 사칭하며 경주에 나타나 온갖 접대와 향응, 그리고 금품까지 받고 다니다 적발되어 검거된 것이다. 본디 해프닝으로 끝날 사건이었지만, 아무런 공식직함도 없이 단지 대통령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온갖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자 민심은 흉흉해진다.

경무대의 권위를 팔고 다닌게 과연 대통령 아들 하나 뿐일까. 그리고 거기에 상처받고 다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지금에도 그럴진대 그 시절엔 훨씬 더했을것이다. 그러자 고 김성환 화백은 자신의 만평에서 똥을 치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경무대에 출입하는 사람은 목에 힘을 주고 다닌다는 촌철살인을 날리다 연행되어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수도 없이 이런 저런 만평들을 통해 시민을 대신하여 권력자들에게 독설을 날렸다. 서슬 퍼런 박정희때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나가던 신군부 시절까지도. 대머리였던 전두환을 문어에 비유하기도 했으니 그는 무척이나 고달프게 살아왔을것이다. 그 당시 정권의 탄압이 어땠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벌금으로 도대체 얼마를 냈는지 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웃었다고 하니 기개는 물론이고 꽤나 유쾌하기까지 한 화백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랬던 그가 지난 9월 8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생전 최초로 등록문화재(제538호)에 오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국 현대언론사에서 그의 공을 기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대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함께 역사가 되어버린 고 고바우 영감을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9월 10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고바우 영감, 하늘의 별이 되다’ '김성환 화백 회고전'을 개최한다. 위에 올린 경무대 똥통 외에도 "아니 이사람 어떻게 살아남은거야?" 싶은 촌평들이 많으니 한번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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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가 청와대가 되고, 20세기가 21세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두마리 봉황이 가지는 힘은 막강하다. 민주화의 두 영웅,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도 약속이나 한듯 똑같이 막후에서 실세로 활동하며 돈을 받다 구속되었고 노무현과 이명박은 그들의 아들대신 형들이 돌아다니며 뇌물을 챙겨 먹다 유죄선고를 받았다. 심지어 박근혜는 가족이 없자 친구를 불러 비선실세를 맡겼다가 탄핵되지 않았나.

그리고 이제 우리는 현 정부의 실세들도 그 전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이 제작한 허접한 제품 수백억 원어치를, 심지어 수의계약으로 사줬지 않은가. 인터넷에 올라온 그 코딩교재는 왠만한 학교의 전기과 2,3학년정도면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수준인데 아무나 저런 허접한 물건을 국가에 수백억 납입할 수 있다면 나부터 회사를 때려치겠다. 게다가 한투증권 PB는 민정수석의 아내가 부탁하자 별 실적도 없는데도 그녀의 집에 들락날락거리며 하드를 교체해주고 심지어 경상북도 영주까지 따라갔다. 먼저 PB는 그런걸 해주는 사람도 아니고, 저걸 할 줄 아는 사람도 아니다. 나와 부모님, 그리고 친척들도 PB를 이용하는데, 조국이 부동산을 뺀 전재산을 저 PB에게 맡겨도 매니저가 영주까지 따라가주지 않는다. 결국 우린 경무대의 똥을 치워도 엣헴엣헴 거리고 다니던 1957년보다 그닥 나아지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언론들은 사안을 대할때 옳고 그름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좌파와 우파로 나뉜다. 그들의 시시비비는 정의가 아닌 진영으로 갈린다. 만약 고 김성환 화백이 자유당 정권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오늘의 권력형 비리를 보면, 또 진영논리로 이를 감싸는 자칭 "시사만화가"들의 모습을 본다면 과연 고바우 영감은 뭐라고 했을까? 그 빈자리를 무척이나 안타까워하고 서글퍼하는 것이 나 하나는 아니니라.





조국의 권력비리를 대하는 한 시사만화가의 만평

촛불 그리고 언더독.


어제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거기엔 나이 그윽한 어르신들보다 앳된 학생들이 많았고 팜플렛과 촛불을 나눠주던 운영진 모두 내 조카보다도 어린 청년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입학부터 졸업까지 매 학년의 가을은, 그것도 저렇게 청명한 날씨의 가을 밤은 내게 몇 없던 소중한 날이었는데 저 젊은이들은 그 소중한 하루를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데 쓰기로 한 것이다. 처음으로 사랑을 속닥거릴 시간에, 혹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번화가를 거니는 대신 아크로폴리스에 나오기를 택한 저들의 하루는 나같은 아즈씨나 할배의 고루한 하루와 결코 같지 않다.

폭력으로 점철된 학창 시절을 겪은 나는, 그리고 나의 선배 세대는 불평등에 익숙하다. 선생은 기분이 나쁘다고 패고, 선배는 담배를 내놓으라며 패던, 뭐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우리는 권위에 굴복하는데에 익숙하다. 그러니 민정수석이면, 또는 여당 핵심인사면 어느정도 불법을 저질러도 뭐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던 것이 우리세대의 노예같은 도덕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그런 불평등을 거부하며 자란 세대고, 또 그런 구시대를 끝내겠다고 약속한 것은 바로 조국을 포함한 운동권 세대들이다. 그리고 그 운동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이 청년들은 배웠던대로 곧바로 일어섰다. 마치 1987년의 그들과도 같이.

잡과 집을 빼앗긴 세대는 이제 젊음마저 빼앗겼다. 배나오고 다 늙어서 이제 전립선에 문제가 생겨 팔팔정이나 찾아 헤메는 486들은 아직도 지들이 젊은줄 알고 20대들이 못배워먹어서 우경화되었다며 무시한다. 하지만 젊음은 그대들의 사유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정의 역시 그대들의 전유물이 될수 없다. 조국이고 우병우고 문재인이고 박근혜고 간에, 불법을 저지르면 빵에 가고 비도덕적인 짓을 하면 욕을 처먹는 것이 상식이고 정의다. 그게 당신들이 주장한 바 아니었나.

나는 금수저로 곱게 자랐지만, 우리 아버지는 시골 깡촌에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달걀을 먹어 보는게 꿈 이었던 소년이었다. 어린시절 우리 집에서 일하던 파출부 아주머니는 한글은 물론이고 숫자도 못 읽어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전화번호 좀 눌러달라고 부탁하던 분이셨지만 그녀의 아들은 명문대 공과대학을 졸업해서 오늘 날에도 유명한 대기업에 재직중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회사에 와서 아들뻘 되는 이들의 커피잔을 닦고 화장실의 휴지를 치우시지만 그녀의 아들은 외국계 회사의 임원으로 해외지사를 오가고 있다. 내 대학 동기 중 하나는 21세기에도 가끔 전기가 끊기는 오지에서 독학으로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한, 이번달 학비를 내기위해 아버지가 농기계를 팔아야하는 흙수저였지만 그는 의대로 편입했으니, 아마 지금쯤 의사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언더독들에게 열광한다. 조국의 자식이 당연히 조민이 되는 그런 세상은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아니다.

 
광장에 앉아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저 아이들이 맞이할 내일은 그런 언더독들의 세상이기를 바란다. 내가, 그리고 저들이 믿는 진정한 평등한 세상은 오늘 같이 시원한 가을날 밤, 장관의 아들과 파출부의 아들이 서울대의 강의실에 나란히 앉아 '야 우리 중간고사 끝나면 같이 미팅나가지 않을래'라며 키득키득 웃는 그런 날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 9. 15.

언어를 보호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모든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해야 합니다. 정확함과 완벽한 문체가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모든 착오를 겪은 후에야 독창성의 이면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 독창성과 같은 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독창성의 면에는 정확성-'어슴푸레한 달', '미소짓는 착한 마음', '모든 연도 중에서도 가장 불행했던 해' 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어를 보호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이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한때는 작가를 꿈꾸었던 내가 금융계에 발을 디딛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장 흔하고 평범한 언어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푸르스트의 조언대로 나는 언어를 공격하고 공격하고 또 물어 뜯어가며 독창적인 색채를 갖추기 위해 갖은 애를 써왔지만 나만의 언어세계를 구축하는데에 실패했고 몇번의 도전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야 나는 작가의 꿈을 접었다.

그렇게 독창성이 없던 글을 쓰던 내가 회사에서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 글이 너무 독특하다는 것이었으니 어떻게 내가 돌지 않았겠나. 그리고 그렇게 십여 년동안 그저 그런 글을, 숫자와 전문용어가 뒤범벅된 딱딱하고 영혼이 결여된 글을 써오고 나니 이젠 언어를 공격하는 법 마저 잊어버린듯 하다.

 photo by Elliott Erwitt

하지만 난 아직도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노라 ㅋ

2019. 9. 14.

맘충, 사이코패스, 그리고 타인은 지옥이다.

  • 맘충이라는 단어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때가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남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자기 자식을 이기적으로 챙기느라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면서도 뻔뻔한 그들. 맘충. 하지만 그들이 원래부터 그런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배려심 넘치는 여자들이라도 아이가 생기고 나면 맘충으로 변한다. 다소간의 차이만 있을 뿐.
  • 진화생물학 차원에서 보면 그들이 맘충으로 돌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자손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를 돕는 호르몬이 있다.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상대에게 감정적 유대를 느끼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 생물학시간에 이 호르몬은 흔히 임신한 여성에게서 분비된다고 배웠는데, 단순히 그 뿐 아니라 사랑에 빠졌을 때, 심지어 가벼운 친밀감을 느낄 때에도 분비된다고 한다. 그리고 옥시토신의 분비는 상대(혹은 집단)에 대한 희생적 행동을 유발한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사랑하는 이를 위한 희생, 더 나아가 가족, 친구 등과 같은 집단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경우, 모두 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흔히 이를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얼핏 들으면 옥시토신은 마치 이타심을 강화시키는 마법의 물질 같지만 근래에 밝혀진 연구에 의하면 이 호르몬에도 숨겨진 그림자가 있다. 바로 옥시토신의 농도가 높을땐 이질적 개체나 집단에 대한 공격성이 증가한다는 것. 심지어 옥시토신이 활발하게 분비된 남성의 경우 새로운 여성을 보았을때 성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따라서 옥시토신 농도가 가장 높게 분비된, 육아기의 맘(mom)들은 내 아이의 편의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나와 내 아이가 아닌 존재에겐 철저한 무관심을 보이고, 더 나아가 과도한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맘충이 되는 것은 교양이 아닌 본능의 문제다.
  • 논의의 범위를 확대하면 이는 역사의 가장 어두운 면과도 연관되어 있다. 인간에게 자기희생이 가장 필요할 때는 언제일까. 바로 육아와 전쟁이다. 한 개인이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는 경우는 대부분 그 둘로 축약되지 않는가. 단지 후자의 경우 그 대상이 종교냐, 사상이냐, 혹은 민족이나 국가이냐로 달라질 뿐. 그 좋은 사례는 2차 세계대전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관동군과 나치의 SS부대를 떠올려 보라. 그 둘 모두 국가나 민족을 위해 개인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던지는 극한의 이타심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타인종을 가장 끔찍하게, 죄책감 없이 살육한 범죄 집단이기도 하다. 의학적으로 조사해 본 바는 없지만 그들의 옥시토신 농도가 일반인 평균보다 높았으리라는 것은 쉬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따라서 옥시토신이 과도하게 분비된 사람을 보며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내리게 된다. 만약 우리 편이라면 그는 성자가 될 것이고 적이라면 사이코패스로 보일 것이다.
  • 대중은 유영철이나 이영학같은 사이코패스들을 보며 저런 짐승만도 못한, 악마같은 놈이라며 우리와 다른 존재로 그들을 구분짓는다. 따라서 그들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이 당연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 다르다'는 그 유대감의 결여야말로 사이코패스들의 가장 큰 특징이지 않은가.*  그리고 앞서 설명한 옥시토신은 멀쩡한 일반인도 "나와 다르다"라는 사실 하나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 웹툰 원작의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사이코패스들이 우연히 한 고시원에 모여 살게 되며 펼쳐지는 극한 스릴러. 듣기에도 소름돋는 이 제목은 샤르트르의 희곡의 대사 중 일부를 차용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의 작용을 이해한다면 이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타인에게는 내가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마침 추석이니 굳이 글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면, 우리 모두 역시 어머니가 타인에게 맘충이 되어서까지 나를 지킨 덕분에 오늘날 까지 존재할 수 있던, 그 수혜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타인은 지옥이다를 보고 연휴라 오래간만에 본가의 어머니를 뵙고 와서 쓴 글]



*이는 다른 곳에서 약간 변형하여 인용한 내용임을 이미 밝힌다. 물론 나 혼자 하는 사색 중에서도 순수하게 스스로 창작해낸 내용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2019. 9. 12.

나는 자본주의 할께 너희는 사회주의 해

또 좌파 정치인이 서민 유권자들을 배신했다. 그들은 진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진보의 가치를 수도 없이 배반했으니 그냥 좌파라고 하자. 굳이 내가 손가락 아프게 일일히 사례를 열거하지 않아도 내로남불이란 네 글자만 네이버나 구글에 검색하면 무수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조국은 그 정점에 있다. 입으로는 사회주의를 외치면서 자기 돈은 사모펀드에 넣는 기행을 보여준 그는 인지부조화를 극복한 초인에 가깝지 않은가. 아마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조국과 그의 아내를 알았더라면 감히 그정도 실력으로 서울대 문서위조학과를 운운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성적도 안 나오는 딸을 의대에 밀어넣으며 자신의 능력이 형법이나 정치가 아닌 대치 은마사거리 학원가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니 여의도에 헷지펀드를 차리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조국과 같은 좌파 정치인들의 스탠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나는 자본주의 할테니 너희는 사회주의를 하렴. 자신들은 뇌물을 받고 석연치 않게 국영사업을 수주받고 탈세를 하면서도 국민들에게는 복지를 줄테니 세금을 내놓으라고 외친다. 공부도 못하는 자기 자식을 이리저리 힘써서 의전에 보내는 것은 자식사랑이고, 흙수저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연대 고대에 가면 미래의 기득권이라며 대학을 없애겠다고 협박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유독 좌파 정치인들에게서 두드러진다. 어째서 좌파 정치인들은 서민 지지자들을 배신하는가.

그 근본적 원인은 애초에 좌파 정치인이 서민이 아니라는데에 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계급에 속해있다. 정치는 돈과 조직이 있어야 가능한데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정치판에 뛰어들 수 없지 않은가. 이는 공식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정당별 국회의원들의 평균 자산을 보면 민주당이 약 55.2억원으로 가장 많고 한국당이 29.8억원으로 그 다음을 차지한다. 심지어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의당의 국회의원들 역시 평균 약 5.2억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마저도 대한민국에서 상위 15%안에 드는 상류층이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재래시장에 방문해 코다리무침을 맨손으로 집어먹고 상인들이 주는 쌀막걸리를 거하게 들이키지만, 저녁이 되면 자신의 짙게 선팅된 검은색 에쿠스를 타고 로얄 살루트를 마시러 워커힐 호텔로 향한다.

그렇게 서민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에게 속는다. 배우 류승룡이 영화에서 가난한 경찰역할을 해서 인기를 끌어도 세트장을 나서고 나면 벤츠를 몰고 십수억짜리 주상복합에 살듯, 서민 정치인들도 그 "서민정치인"이라는 역할을 맡고 있을뿐 그들의 실제 삶이 꼭 배역과 일치해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윤리기준은 딱 거기에 머물러 있다. 마치 프로레슬링이 다 짜고 치는 쇼지만, 관객들에게 쇼라는 것을 들키지만 않으면 돈을 벌듯 좌파 정치인들도 정말 진짜 같은 연기를 잘 한다면 자신은 도덕적으로 별 흠결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타 여권인사들의 조국 옹호발언에서도 들어난다. 일례로 유시민은 젊은세대가 엄친아 조국을 시기해서 화가 난 것이라고 분석하며 2030대의 화를 돋궜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를 수 있나. 대중이 유영철에게 분노하는 이유가 '다들 사람을 죽여보고 싶은데 못해봐서 질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 역시 살인자일 가능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유시민, 손혜원, 이재명, 박원순의 옹호발언의 기저에 깔린 전제는 다음과 같다, "조국의 도덕성에는 문제가 없다, 우리 사회지도층에게 이정도는 보편적인 것 아닌가."

젋은세대와 좌파정치인들 간의 인식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스크린 상에서는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여배우가 강남의 모 클럽에서 예거밤을 연달아 들이키고 몸을 흔드는게 디스패치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결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딱 그 심정으로 조국 역시 스스로도 정치인으로서 내뱉은 트위터 대사와 실제 삶이 일치하지 않아도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청문회에서 그의 억울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라. 아마 그의 굳게 다문 입술 너머에서는 "내가 법무부 장관만 되면 나는 무죄가 될텐데 왜 이 가재, 게, 붕어, 개구리 새끼들이 지랄일까" 라는 불평이 꾹꾹 눌러 숨겨져있을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태도는 여느 정치인에게나 다 있다. 선거철이 되면 수십조의 재산을 가진 정몽준도 고시원에 찾아가고 앞치마를 두른채 노숙자들에게 밥을 퍼주고 나경원같은 엘리트도 동네 수퍼마켓을 찾아다니며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하지만 그들이 타겟으로 노리는 5060대 유권자들은 그것이 하나의 쇼라는 것을 아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경험이 적은 2030는 이게 진짜인 줄 안다. 과거 조국이 트위터에 입시제도와 강남집값을 비난할 때 젊은세대는 "그는 정말 다르다"고 외치며 좌파정치인들을 지지했지만 세상에 나도 저들과 똑같소, 라고 하는 정치인을 봤나. 장충동 족발골목에 가면 다들 자기네가 원조라고 써붙이듯이 그들도 다 똑같이 자신 만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다만 좌파정치인들의 메소드 연기가 순진했던 2030대들에게 좀 더 어필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2030대의 표를 꿀꺽 삼킨 운동권 정치인들은 그들에게서 먼저 집을 빼았고(링크), 잡을 빼았고(링크), 이제는 희망마저 빼앗고 있다.

 
그런 위선과 배신은 좌파정치인들의 핵심 지지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위는 갤럽에서 공개한 가장 최근의 국정지지도 자료인데 흥미로운 사실을 두가지 발견할 수 있다. 첫번째는 바로 현 정부가 정치적으로 가장 위하는 척 하는 계층, 자영업과 블루칼라, 20대, 저소득가구(빨간색)가 현정부에 불만이 가장 많은 집단이란 것이다. 소주성의 첫 희생자인 그들은 운동권 좌파정치인들의 설익은 정책들이 모두 잘못됐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두번째 흥미로운 것은 정책실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계층, 정부의 괴상한 정책 때문에 망하지도, 짤리지도 않고 더운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면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신입사원들에게 자기 집값 자랑하는 사람들, 3040대 화이트칼라 상류층들이 현 정부의 정책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사실이다.(파란색) 잘사는 사람이 지지하고 못사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정부. 한국 정치를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이 표를 보여주면서 현 정부의 정치성향이 어느 쪽일 것 같은지 묻는다면 그는 아마 "뭐여 당연 꼴보수 아녀?"라고 대답하지 않겠는가.

결국 현재의 정치는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을 대상으로 사회적 실험을 거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3년간 장하성같은 패션좌파 정치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괴상한 정책을 써서 서민들의 삶을 개차반으로 만들어놓고는,  "허허 이게 안되네"하고 돌아서는데, 그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영업자 무직자 빈민층을 내려다보는 저 화이트칼라 40대 중상류층들은 그래도 이게 맞는 길이라며 그들의 비명소리를 외면한다, 아니 입을 막는다, 아니 사다리를 부숴놓고 그들을 발로 꾹꾹 밟아 수렁으로 더욱 깊게 밀어넣는다. 과연 이게 진보정치인가? 퍽이나. 퍽유. 윤동권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레닌이나 마르크스가 이를 봤다면 유산계급인 그들의 대가리를 망치로 후려쳐서 부쉈을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분노해야한다. 정치를 잘 짜여진 연극이라고 생각하는 저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야한다. 자신들이 이제 기득권의 위치에 올라섰으면서 가상의 적을 만들어낸 다음 서민들과 하층민들의 분노와 지지를 끌어다 자기 배를 더욱 불리는 그 비위와 부패에 더욱 역겨워하고 분노해야한다. 자기 자식에게는 안 먹이는 똥을 서민들보고 퍼먹으라고 강요하는 정치를 당장 그만두게 해야한다. 손혜원의 부동산투자, 문준용씨의 교육부 사업 수주, 김제동의 시급 천만원 짜리 MIC, 주진우 기자의 명품 발망 자켓, 그리고 조국의 사모펀드 투자. 그들은 모두 개인의 삶에서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철저하게 쫒으면서도 대중에게는 사회주의를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 소득주도성장, 한반도운전자론, 부동산정책 등 수많은 전문가들이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한 정책들에 당사자들과 그 지지자들은 어떤 책임을 졌나. 소주성을 주장한 장하성은 주중대사가 되었고 외교정책을 총괄한 문정인은 주미대사로 추천되었다. 부동산 정책을 망친 김수현은 사회수석에서 정책실장으로 승진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략공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피의자여야 할 조국이 사법부와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부 여당 지지자들은 그 개혁이 자신들에게 유리할거라 생각하며 환호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주성이, 외교정책이, 부동산정책이 그 지지자들을 엿먹인 것울 있었나. 서민이 아닌 그들이 이끄는 이 사법개혁도 당신네들 좋으라고 하는게 아닌데 왜 박수치며 좋아하는가.

박정희는 생전 대중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시골에서 주전자로 막걸리를 들이키는 사진을 종종 공개했다. 그리고 몇몇 지자자들은 아마 깡촌의 촌놈이 이리저리 출세해 대통령까지 되었다는 성공 신화에 매료되어 그를 지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최후의 만찬에는 주전자와 막걸리 대신 심수봉과 조니 워커가 있었다. 이처럼 상류층인 정치인들은 가난마져 훔쳐다 서민들의 정치적 지지를 가져다 배를 불린다. 사실 이는 사람과 정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흔하게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에겐 사회주의를 강요하면서 본인은 자본가로 사는 그 이중성은 절대적으로 해롭다. 바라건대 서민 코스프레에 속지 말지어다. 당신의 빈티는 그들의 빈티지와는 결이 같지 않을지니.

2019. 9. 9.

miscellaneous ideas for my own

  • 재무제표를 분석하다 보면 대개 밑바닥에 miscellaneous라고 표기된 항목들을 발견하게 된다. 회사의 경영상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너무나도 작고 사소하고 보잘것 없는 그런저런 활동들. 그런 하찮은 것들에 회계사, 재무담당자들 그리고 투자자들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모두 뭉뚱그려 miscellaneous profits/expenses라고 표기한다.
  • 하지만 신중한 투자자라면 이 항목들을 뜯어볼 필요가 있다. 이따금씩 회사가 숨기고 싶어 하는 행위들의 단서가 그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불법이든 편법이든 그 무엇이든. 그리하여 때로는 매출액이나 EBITA가 아닌 바로 이 항목에서 그 회사의 진짜 본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 어쩌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분석하고 투자하고 투기하며 그로 인한 결과에 웃고 울지만 그것들이 내 본질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는 하루종일 돈을 벌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사회적으로 쓸모있는 사람을 연기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는 그것이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니라는 그 날카로운 간극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단지 돈, 혹은 권력, 혹은 명예를 좆느라 그 마찰음을 외면할 뿐.
  • 그래서 나는 아무도 모를 이 곳에 진짜 내 생각들을 남기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물론이고 내 실명을 달고서는 아무데서도 할수도 없는-사실 별 쓸모도 없는 그저 그런 잡다한 이야기들. 하지만 나에게는 경제와 시장을 예측하는 것 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도 이 별볼일 없는 생각들이 더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기록하는 것은 대개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한, 철저히 이기적인 행위라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paint by Saul Steinberg

2019. 9. 8.

희망의 가격

로또를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 45개의 숫자 중 6개를 맞춰야 상금을 지급하는 로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바보같이 비싼 상품이다. 로또의 당첨확률은 800만분의 1보다 더 작은데*, 이 바늘구멍을 뚫고 당첨되었을 경우의 상금은 전체 매출액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서 세금을 떼고 나면, 실제 수령액은 매출액의 1/3로 줄어들게 된다. 수학적으로 1천원짜리 한 장의 기대값이 약 333원인 셈이니, 로또는 내재가치의 3배나 되는 증권이나 다름없다.

물론 적정가치의 10배 100배에 팔리는 주식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주식들은 애초에 내재가치를 계산하기 어렵지 않은가. 게다가 잡주는 일시적으로 폭등하기도 하지만 결코 과대평가 수준에 장기간 머물수 없다. 하지만 로또의 기대값은 수학적으로 명확하게 확정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적정 가격의 세배라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이보다 더 안정적으로 더 비싼 상품을 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바보들만이 로또를 산다고 생각했다. 아니고서야 누가 이렇게 비싼 프리미엄을 내고 이걸 사나. 아무리 얼빠진 동네 바보라도 "돈놓고 돈먹기, 천원 내고 삼백원 먹기"라고 외치는 야바위꾼의 테이블에 앉지는 않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난 10여년간 나는 이 업계의 수백억대의 자산가들이나 명문대 박사학위를 사진 영재들이 로또를 사는 것을 보았다. 나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도,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도 로또를 산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희망을 필요로 하고 부자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으스대며 수억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늘 부족함을 느낀다. 사람은 원래 만족을 모르게 설계되어 있으니까. 게다가 수입이 큰 만큼 지출도 크기에 가족들을 위해 이런 저런 비용을 모두 빼고 남는 돈도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나면 오늘의 나를 위한 돈은 몇 푼 안남게 된다. 당신의 연봉이 5천이든, 5억이든, 50억이든, 다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정, 연봉 50억은 솔직히 장담 못하겠다.) 해가 진 뒤 우리 직장인들의 삶은 다 비슷하다. 연봉 5천의 김과장은 3호선을 타고 연신내로 돌아갈 터이고, 연봉 5억의 대니 킴은 포르쉐를 몰며 타워펠리스로 향하겠지만 집에 도착한 그들은 똑같이 윗집 남편, 아내 친구 남편, 딸내미 반장 아버지와 자신을 비교당하고, 비교하며 좌절한다. 서른살이 넘으면 삶의 테두리가 어느정도 선명해지고 자신의 미래도 적당히 그려지지 않는가. 그 추세에서 벗어나려면 한 번의 모험을 해야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다. 무섭다. 따라서 작은 비용으로 삶을 바꿔줄 희망을 찾게 된다. 그 마음 만큼은 부자도 똑같지 않을까.

게다가 로또는 그런 희망을 독점한 유일한 상품이다. 천원의 소비로 인생이 바뀌진 않는다. 심지어 개폭등할 알트코인을 찾았다고 해도, 고작 천원어치를 사면 당신의 미래엔 아무 변화도 없을 것이다. 뭐 친구들에게 술 한번 사고 정말 운좋으면 좋은 시계도 하나 살수 있겠지. 천원으로는 이젠 컵라면이나 김밥한줄도 사먹기 어려운 시대이지만 그 돈으로 로또를 한장 사면 수십억 어치 상금을 받을 꿈에 부풀어 한주를 지낼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겠나. 국가는 이런 극단적 페이아웃 구조를 지닌 상품들을 사행성이라는 명목으로 금지하면서도 뒤돌아서 열심히 복권을 판다. 하기사 담배도 인삼도 그리고 카지노도 마찬가지지. 로또는 그렇게 희망을 독점하고 있다.

공급이 제한적인 독점시장의 가격은 늘 균형점을 넘어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렇게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3배의 프리미엄이 붙어도 불티나게 팔리는 로또는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내일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난히 고단했던 하루가 지나고 나면 불꺼진 업무지구 내 조그만한 한 편의점에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대형 금융사의 등기이사도 청소부도 계산대 앞에 나란히 서서 서로 어색한 눈인사를 나눈 뒤 들뜬 마음으로 여섯개의 숫자를 세심하게 고른다. 누구는 사랑하는 이의 생일을 찍을 것이고, 누구는 자신만의 행운의 숫자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 그 숫자들 만큼이나 당첨금을 어떻게 쓸지 그 꿈도 다양하겠지. 그렇게 제냐 수트와 아식스 츄리닝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들뜬 마음으로 각자의 꿈을 한장씩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 순간 만큼은 모두가 평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희망의 값어치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소중한 법이니까. 부자에게도, 또 빈자에게도.



*1/45C6=8,145,060

2019. 9. 3.

박서보와 국립현대미술관

우리나라의 여러 미술관 중에서도 내가 국립현대미술관을 가장 좋아하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국립]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품위와 엄격함을 유지하면서도 대중들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는 그 자상함에 있지 않을까 한다 . 그리고 지난달 막을 내린 박서보의 전시회는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전시회는 특이하게도 작가의 그림을 역순으로 전시했는데, 아마 이는 아래 설명할 모종의 이유 때문이리라.

미술에는, 특히 그 감상에는 정답따윈 존재하지 않으니 이를 내 멋대로 해석해보려 한다. 1950/60년대의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그랬던 것 처럼 박서보 역시 황폐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서구를 동경하는 분위기에서 자랐을 것이다. 한끼를 먹으면 다음 끼니는 굶어야 했고 자고 일어나면 동네의 누군가가 죽어나가던, 우리가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머리 노오란 백인들의 문화는 동경의 대상이었으리라. 대다수의 1세대 한국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서구의 화풍을 모사하는 것으로 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기술은 모방할 수 있어도 영혼은 베낄 수 없어 그런 것일까. 다른 선후배/동료 작가들이 그러했듯 그 역시 내적 갈등을 겪은 끝에 전통적 화풍으로 회귀한다.

내가 금융에 적을 두기 전, 고 이만익 선생님을 뵙고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서양화풍을 곧잘 따라해 '너는 미술에 재능이 있다' 라는 말 한마디에 겁없이 파리로 떠났지만 거기에서 자신은 개성이 없는 아시아 변방의 한 그림장이에 불과했다고. 그러다 결국 그는 한국의 전통미술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한다. 박서보 역시 이와 비슷한 단계를 거쳤다. 그는 1960년대 초기 파리에 머물며 당시 유행하던 엥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형질(原形質) No. 18-64, 1964년 작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한 한계를 느꼈으리라. 막걸리에 파전을 즐기던 우리가 파리의 어느 하우스파티에 초대받아 와인과 치즈를 대접받을 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 처럼, 애초에 파리지앵으로 태어나지 못했던 그 역시 어느 순간 엥포르멜이라는 단어부터 표현기법까지,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 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이후 그의 작품에선 점차 한국적 정취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유전질(遺傳質) No.2-68, 1968년 작
그가 단색화로 나아가기 전, 당시 유행하던 팝아트적인 느낌에 오방색을 입힌 60년대 후반의 작품은 그런 내면의 갈등을 넌지시 비추고 있다. 스윙스같은 토종 랩퍼들이 아무리 흑인 흉내를 내고 혀를 돌려 꼬아봐도 빌보드 힙합 레이블에 이름을 올리기는 커녕 흉내쟁이에 불과한 취급을 받듯, 그 시절 파리에 머물던 1세대 화가들도 아마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그래서 그들 중 많은 수가 한국 고유의 미적 세계로 회귀한다. 아마 이 작품은 그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묘법 No.991004 / No.000321, No.000327
이후 그는 한국의 전통적인 색채를 이용해서 자신만의 단색추상화 세계를 구축한다. 더 나아가 작품의 재료로 자연친화적인 닥종이를 사용하면서 단순히 색채로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그는 더욱 깊게 전통적 미학의 세계로 파고든다. 그렇게 그는 한국의 단색화의 대부로 불리며 한국의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작가 중 하나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묘법(描法) No.180503, 2018년 작
묘법(描法) No.071208, 2007년 작
앞서 말했듯이 이 전시는 독특하게도 작가의 작품을 시대적 역순으로 전시하고 있다. 한국은 더이상 세계 예술계에서 듣도 보지도 못한 무명의 국가가 아니라 작지만 한편으론 선명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은 신생국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예술가들은 대중예술뿐 아니라 현대미술이나 클래식 그리고 무용에서도 모방을 넘어 그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 덕에 BTS가 개량한복을 억지로 입고 춤을 추지 않아도, 싸이가 자신의 신곡에 자진모리 장단을 넣지 않아도, 조수미가 '내 발성의 힘은 김치덕분'이라는 뭐 그런 국뽕적 요소를 강조하지 않아도 그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동시대 문화와 잘 어우러진다. 그런 오늘날의 눈높이로 볼 때 1세대 화가들의 전통적 미학에 대한 집착은 살짝 고루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지칠줄 모르는 수행자 역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한번 자신의 화풍에 변화를 주었다. 그는 형광색이나 밝은 파스텔 톤, 혹은 도발적인 핑크 등 전통적인 한국의 색채에서 벗어나 마치 마크 제이콥스 같은 명품브랜드들과 콜래보레이션이라도 할 것 같은 세련된 색채로 자신의 작품 영역을 확장했다. 여든 여덟살의 노작가의 변신 치고는 꽤나 파격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 만큼이나 시계열의 강박에서 벗어나 세련된 현대작들을 먼저 배치하여 관객의 흥미를 이끄려 노력한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자들의 신선한 발상에도 박수를 보낸다. 현대미술사를 전공한 그들은 이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박서보의 전성기 시절의 작품들, 칙칙하고 올드하지만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앞에 배치하고 싶은 유혹들을 수도 없이 느꼈을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정석적인 전시회의 공식에서 벗어나 아흔을 바라보는 작가의 현대적인 감각의 새 작품들을 전면에 배치한 것은 우리와 같은 아마추어 관람객들이 현대미술에 조금이라도 더 매력을 느끼길 바라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요란한 단어들의 조합 없이는 예술을 설명하지 못하는 일부 미술평론가들이나 불친절한 작가들과는 달리, 그들은 우아하면서도 친절한 태도로 손을 내밀어 우리를 현대미술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MMCA, ♡MMCA

2019. 9. 2.

분노하지 않는 자는 조국(祖國)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사진출처: 중앙일보 (링크)
  •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믿기지 않아 내가 느끼는 감정이 경악인지 분노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는 오늘 11시 경 자신에게 쏟아진 각종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하겠다며 여당에 통보했다고 한다. 정치부 기자들과 법무부 출입 기자들은 기존 일정을 바꾸지 못해 하루 연기해줄 것을 주문했지만 조 후보자는 기자단의 요청을 거절한 채 셀프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이 간담회에는 민주당 출입기자들이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법부는 직접증거로 판단하지만 대중과 유권자는 정황증거만으로도 정치인들을 재단한다. 조국은 이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그저 폴리페서인 줄 알았던 시절, 본인 스스로가 수많은 보수 정치인들을 정황증거로 몰아붙이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은 자신의 수많은 혐의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가 정말 억울하고 대중의 분노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왜 이런 비겁한 방식으로 해명에 나서는가. 우리는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지 않는 소인배 모략꾼의 추악한 면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 바로 어제 올린 글에서 그를 조로남불이라고 조롱했지만 사실 내로남불은 그의 수많은 악덕 중에서도 가장 하찮은 것이다. 그에게는 범죄 혐의가 짙다. 조민 양이 논문을 위조한 것은 가족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과 무관하다고 했지만, 세상 어떤 교수가 고딩이 찾아와서 제1저자를 시켜달라는데 그걸 들어주겠는가. 이것은 명명백백히 조국 후보자의 혐의인데 그 가족간 범죄를 밝히는 것이 패륜이라면 여당 대표는 당장 정유라한테 달려가 무릎꿇고 패륜의 죄를 빌어라.
  • 그의 해명 중 가장 말이 안되는 부분은 사모펀드에 대한 논란이다. 설정금액이 74억이라는 조항은, 말 그대로 74억을 넣겠다는 말이지 그 한도 이하에선 지 맘대로 넣을수 있는 조항이 아니다. 세상에 그런 계약서가 어디있나. 회사가 직원과 계약을 할 때 연봉이 1억이라고 하면 그 이하로 아무 금액이나 줘도 되는 경우를 보았는가. 여당의원들은 마이너스 통장을 예로 들어가며 국민들을 병신취급하는데 세상에 그렇게 돈을 굴리는 투자자는 없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그런 옵션 조항을 넣을 수는 있겠지만 그럼 그 내역이 계약서에 소상히 명시되어있어야 한다. 참고로 그 사모펀드는 조국과 일가친척의 돈을 받아 관급공사를 수주했는데 최순실이 운영한 K스포츠재단과 무엇이 다른가.
  • 이러한 의혹에 대해 조 후보자는 사모펀드 자체를 잘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그럼 둘 중 하나다. 잘 알지도 못하는 금융상품에 전재산을 몰빵하는 등신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범죄자거나. 둘 중 어느쪽이든 법무부장관 자리에는 맞지 않는다. 그가 서야할 곳은 기자간담회도, 국회청문회도 아닌 바로 검찰의 포토라인이다.
  • 내가 더욱 분노하는 것은 국민을 대하는 그와 여당 그리고 정부의 태도이다. 과연 조국은 이 괴상한 간담회가 중도층을 분노케 할줄 몰랐을까? 아니 그는 분명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수를 차지하는 중도 대중을 버리고 소수 여당 지지자들의 신임을 굳히는 길을 택했다. 자신의 향후 거취가 다수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당 친위대에게 있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가, 또 여당과 청와대가 만약 민주적 정당성에 무게를 뒀다면 야당지지자는 물론이고 중도층에게 공분을 일으키는 이런 해괴한 방식의 기자회견을 기획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지지하는 광신도들만을 국민취급하겠다는 저 태도는 반민주적이며 다분히 독재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 과거에도 이런 분노를 느낀적이 있다. 3년 전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뜨거운 화두였을때 불편한 질문을 던진 기자를 매섭게 쏘아보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 내가 그때 분노한 이유는 좌파빨갱이라서가 아니라 권력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조국 전 민정수석에게 분노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가 우파틀딱이라서가 아니다. 위정자가 당신을 개돼지 취급하는데 분노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개돼지나 다름이 없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련다. 조국(丙申)에게 분노하지 않는자는 조국(祖國)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2019. 9. 1.

흑석 김의겸 선생과 조로남불

아직도 끝없이 터져나오는 조국의 지저분한 과거를 보며 나는 김의겸을 떠올렸다. 나이 쉰 다섯에 전세금과 아내의 퇴직금, 그리고 은행 대출을 온통 끌어다 재개발 상가에 몰빵하신 고독한 승부사, 흑석 김의겸 선생. 물론 그도 내로남불의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한때 재개발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고위직들의 부동산투기에 분노하던 그 언론인은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관사에 기어들어가 흑석동에 자신의 여생을 베팅했다. 무엇이 좀스러운 언론인으로 오십평생을 살아온 그를 흑석동의 복덕방으로 이끌었을까?

2017년 언젠가의 그를 헤아려본다. 오랜 투쟁끝에 청와대에 모인 과거의 운동권 진보 동지들. 김수현, 조국, 김상곤, 김현미, 장하성 등. 그들과 웃으며 사랑채를 나서 뜰을 걸으며, 보통의 중년들이 그러듯 그들도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쯤은 나눳을 것이다. 장 실장, 이번에 잠실 집값 많이 올랐다면서? 쏠쏠하겠네? 허허 뭐 다 그렇지, 김 장관 김 실장님들, 부동산 정책 살살 좀 해주세요~ 우리 집사람 걱정이 많아요, 허허허. 뭐 그리 걱정하십니까. 저도 과천 재건축 보유자입니다. 하하하. 뭐 이런 대화가 계속될 동안 그는 대범한 척 함께 껄껄 웃으면서도 가슴 한켠이 쓰렸을 것이다. 가재, 게, 붕어, 개구리들의 지지를 받아 도착한 청와대에서 진짜 흙수저는 그 하나 뿐이었다. 심지어 집을 파시라고 외치던 김현미도 집이 두 채라 회의실 저 구석에서 복덕방에 전화를 걸고 있는 것 아닌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러 도착한 청와대에서 혼자 가재나 붕어같은 해물탕 식자재 취급을 받던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대개 많은 집에서는 아내가 집을 사자고 독촉하고 남편은 만류하다 꼭 사단이 난다. 거봐요, 집은 여자 말 듣는거라니까. 우리 아버지들은 그렇게 평생을 시달려왔다. 그도 별반 다를 바 없었으리라. 적폐를 청산하고 가진자들을 혼내 주기 바쁜 그를 두고 그의 아내는 바가지를 긁었을 것이다. 지난번 청와대 부부동반 모임에 가보니 다들 강남에 집 한두채 씩 떡떡 사던데 당신은 뭐냐, 조 수석님은 뭐 이상한 펀드에 수십 억을 넣고 심지어 대통령 아들도 국가사업으로 크게 해먹던데 당신은 도대체 뭐하러 청와대 대변인을 하고 있는거냐. 어허 이 여편네가 큰일날 소리를 하고 있어. 그게 그런거 하라고 만든 자린줄 알어? 그럼 뭐하려고 만든 자린데? 당신 빼고 다 부동산 하나씩 끼고 있는거 알기나 해? 그렇게 투닥거리면서 아내는 문을 쾅 닫고 나가 문간방에서 잠들었을지 모른다.

어느날 아침, 벌개진 얼굴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는 김현미 장관의 뒤에서 호갱노노 앱으로 부동산 실거래가를 검색한 뒤 환하게 웃는 조국 민정수석과 장하성 정책실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깨닫는다. '저들이 왜 부동산을 잡아.. 이대로 가단 나만 바보되는거야..' 그날 그는 고교 후배를 만나 아구찜에 소주를 너댓병 시켜 잔뜩 마시고선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거나하게 취해 집에 도착한 뒤, 자신을 흘겨보는 아내를 붙잡고 그는 자신의 계획을 소상히 털어놓는다.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역시 내 남편 언젠간 그럴 줄 알았다며 다음날 학교에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정산받았다. 그 역시 다음날 청와대 관리자를 불러 관사에 비는 방이 있는지 확인한 후 가족들을 모두 이주시킨 뒤 전세금을 돌려받는다. 청와대 대변인이 가족들과 함께 경호원들이나 사는 관사에 살다니. 모양새가 좀 빠지긴 하지만 뭐 어떠냐. 금수저들 사이에서 혼자 흙수저나 물고 있다 5년 뒤에 쫒겨나는 것 보다야 낫지.

그렇게 그는 아내의 퇴직금과 전세금을 가지고 복덕방으로 향한다. 이보소. 이 동네서 가장 좋은 물건이 뭐요. 어이구. 테레비죤에서나 보던 하늘 같으신 청와대 대변인께서 왕림하셨는데 누가 그를 속일 소냐. 복덕방 주인은 벌벌 떨며 콤퓨타를 켜고 리스트를 쭉 뽑는다. 이건 얼마요? 복덕방 사장은 오른 부동산이 자기 죄라도 된 양 어쩔줄 몰라하며 대답한다. "이,이십오억입니다만." 망할. 아직도 모자른다. 이 낡은 상가가 나같이 훌륭한 언론인도 사지 못할정도로 오르다니. 이 더러운 세상. 하지만 그는 기름기 좔좔 흐르는 조 수석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x발 조 수석 딸은 이번에 의전 보냈다던데 내 자식을 가재 게 붕어로 살게 할순 없어..." 그는 얼마 전 술을 함께 마신, 은행 지점장으로 있다던 고등학교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다. 그런데 아뿔싸. 김수현 그 양반이 발표한 뭐시기 정책에 걸려 대출이 안나온댄다. 제길. 어쩐지 생긴것 부터 재수가 없더니만. 그의 침묵에서 무엇인가를 읽었는지 그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저기.. 하지만 형님께서 힘을 좀 써주시면 제가..." 그 후배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김의겸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후배의 은행은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넘겨 대출을 해주고 청와대 대변인은 흑석 김의겸 선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윽고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호되게 털린 김의겸 선생은 짐짓 의연한 태도로 대중에게 감성팔이를 시도해본다. 노모를 모시려고 했다, 이건 아내가 했다. 하지만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작년까지의 그가 그랬던 것 처럼 서민들도 다 한번 씩은 복덕방에 들렀다가 한숨만 지으며 나온 적이 있지 않은가. 다만 그들에겐 들어갈 관사와 복덕방 주인을 움츠러들게 할 권세, 그리고 전화 걸 은행지점장이 없었을 뿐이지. 대중의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았고 김의겸 선생은 결국 대변인 직을 사퇴했다. 청와대도 버리고, 아내도 팔고 노모를 팔 지언정 흑석동 재개발은 못팔겠다는 그의 의지에 화답하여 올해 여름부터 부동산은 가파르게 반등했다.

최근 온갖 추문과 범죄혐의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작태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올해 초 매섭게 공격당하던 그는 아마도 기자회견 중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우 열뻗쳐서 정말, 그래 시발 나도 용되고 싶어서 재개발 샀다 왜! 근데 너네 이 중에 내가 가장 깨끗한건 아냐? 내가 김수현처럼 재건축 조합원이면서 지꺼만 피해서 부동산대책 발표하기를 했어, 김현미처럼 토지형질변경을 해서 농지에 건물을 올렸어. 어우 너네 조국은 어떤줄 알어? 재 딸 뭐하는지 봤어? 야 시발 내가 제일 깨끗해!"

무엇이 평생 무주택자로 살아온 그 쉰 다섯의 장년을 복덕방으로 밀어넣었는지 곱씹어보게 된다.




[위의 대화는 전적으로 본인의 상상력에 의존한 것으로 사실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0년 예산안 평가, 홍남기의 MB화(★★★★☆)

지난 29일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513조 5천억원으로 확정하여 오는 9월 3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예년보다 약  9.3% 늘어난 규모로 R&D, 에너지(환경) 그리고 SOC투자지출을 대폭 늘렸다. 나는 과거 포스팅에서 경제불황이 온다면 한국은 과거 리만사태때보다 더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링크), 만약 국회에서 이 예산이 통과된다면 그 예측은 빗나갈 것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재정정책은 어디다 쓰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많이 쓰는 지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경제침체 상황에서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은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지, 정부가 기가막힌 사업에 돈을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바보같은 사업에 돈을 퍼부어도 그 돈을 벌어들인 약싹빠른 사업가들은 현명하게 돈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케인즈경은 아예 땅을 파서 돈을 묻으라 했다.) 따라서 순수하게 경제적 측면만 본다면 정부의 재정적자 폭만 보면 되지, 구체적 예산안을 뜯어볼 필요는 없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내년도 적자재정은 GDP의 약 1.6-1.9%로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을 뛰어넘는 가장 공격적 재정지출이 될 것이다.

이 공은 마땅히 홍남기에게 돌아가야할 것 같다. 지난 국회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그는 내년도 예산안의 첫자리가 "5"가 될 것이라며 언질을 주긴 했지만, 그가 실제로 가져온 숫자는 대범하게 500조 선을 훌쩍 넘긴 513.5조였다. 나는 그를 무색무취의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홍남기를 재평가해야할 것이다. 그는 MB와 강만수 못지 않게 공격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다.

재정건정성에 집착하는 일부는 방만한 예산을 지적하며 국가부채수준을 운운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적은 세가지 이유에서 틀렸다. 첫째, 지금은 재정건전성을 논할 때가 아니다. 재정건전성은 경제가 건강할 때 관리하는 것이지 위기상황에서 따지는 것이 아니다. 올해 발표되는 모든 데이터는 단 한가지도 빠짐없이 지난 10년 이래 가장 심한 경기침체를 예고하는데 지금 부채비율을 운운하는 것은, 마치 트럭에 치여 피를 줄줄 흘리는 응급환자를 두고 혈중 콜레스트롤 수치가 높으니 살을 빼라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건 나중에 따지자. 둘째, 한국의 공공부채는 공기업의 부채를 포함하더라도 약 GDP의 70%선으로 선진국이나 OECD평균에 비하면 그닥 높지 않다. 다시말하지만 국가부채가 낮은 나라는 탄자니아나 북한, 고조선같은 나라들이 가장 낮다. 우리가 1998년에 겪었던 사태는 달러표시 부채의 상환이 문제였지 그 당시에도 정부는 원화표시 부채를 갚는 데엔 아아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셋째, 재정건전성을 대하는 대중의 기본 시각은 부채가 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큰 이견이 존재한다. 폐쇄된 시스템 아래서는 한 사람의 부채는 누군가의 자산이다. 내가 은행에서 백만원을 빌린다는 것은, 누군가 은행에 백만원을 예금했다는 것과 같다. 즉 한국의 대외부채/자산이 같다면 현재 우리가 진 빚은 지금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돈을 빌린 것이지, 우리들의 후손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에 대해서는 폴 크루그먼의 글을 추천한다.(링크) 부채는 결코 악이 아니다.

물론 좋아하기는 아직 이를 수 있다. 국회는 이 수퍼예산을 반드시 반대할 것이고, 특히나 재정건전성에 변태적으로 집착하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예산안을 축소하려고 들 것이다. 현재 여야는 세가지 이슈, 1. 조국 임명 2. 선거법 3. 내년 예산안 대립하고 있는데 청와대와 여당은 1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2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여야의 합의 테이블에서 가장 먼저 양보할 카드는 바로 3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예스맨에 불과한 줄 알았던 홍남기가 이런 공격적인 예산안을 준비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앞서 그는 차기 총리로까지 거론되는 김현미의 분양가상한제를 유예시키는 등, 경제부총리로서의 목소리를 점차 내고 있는데 부디 현 정부가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를 바란다. 애초에 우리가 청와대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은 것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바라기 때문 아니었던가.


[다만 별을 4개만 준 것은 세입계획에서 법인세의 감소를 가계에 대한 약 8.1조의 세수 증가로 채웠기 때문이다. 가장 효율적인 확장적 예산은 감세안을 동반한 공격적 적자예산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