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

흑석 김의겸 선생과 조로남불

아직도 끝없이 터져나오는 조국의 지저분한 과거를 보며 나는 김의겸을 떠올렸다. 나이 쉰 다섯에 전세금과 아내의 퇴직금, 그리고 은행 대출을 온통 끌어다 재개발 상가에 몰빵하신 고독한 승부사, 흑석 김의겸 선생. 물론 그도 내로남불의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한때 재개발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고위직들의 부동산투기에 분노하던 그 언론인은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관사에 기어들어가 흑석동에 자신의 여생을 베팅했다. 무엇이 좀스러운 언론인으로 오십평생을 살아온 그를 흑석동의 복덕방으로 이끌었을까?

2017년 언젠가의 그를 헤아려본다. 오랜 투쟁끝에 청와대에 모인 과거의 운동권 진보 동지들. 김수현, 조국, 김상곤, 김현미, 장하성 등. 그들과 웃으며 사랑채를 나서 뜰을 걸으며, 보통의 중년들이 그러듯 그들도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쯤은 나눳을 것이다. 장 실장, 이번에 잠실 집값 많이 올랐다면서? 쏠쏠하겠네? 허허 뭐 다 그렇지, 김 장관 김 실장님들, 부동산 정책 살살 좀 해주세요~ 우리 집사람 걱정이 많아요, 허허허. 뭐 그리 걱정하십니까. 저도 과천 재건축 보유자입니다. 하하하. 뭐 이런 대화가 계속될 동안 그는 대범한 척 함께 껄껄 웃으면서도 가슴 한켠이 쓰렸을 것이다. 가재, 게, 붕어, 개구리들의 지지를 받아 도착한 청와대에서 진짜 흙수저는 그 하나 뿐이었다. 심지어 집을 파시라고 외치던 김현미도 집이 두 채라 회의실 저 구석에서 복덕방에 전화를 걸고 있는 것 아닌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러 도착한 청와대에서 혼자 가재나 붕어같은 해물탕 식자재 취급을 받던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대개 많은 집에서는 아내가 집을 사자고 독촉하고 남편은 만류하다 꼭 사단이 난다. 거봐요, 집은 여자 말 듣는거라니까. 우리 아버지들은 그렇게 평생을 시달려왔다. 그도 별반 다를 바 없었으리라. 적폐를 청산하고 가진자들을 혼내 주기 바쁜 그를 두고 그의 아내는 바가지를 긁었을 것이다. 지난번 청와대 부부동반 모임에 가보니 다들 강남에 집 한두채 씩 떡떡 사던데 당신은 뭐냐, 조 수석님은 뭐 이상한 펀드에 수십 억을 넣고 심지어 대통령 아들도 국가사업으로 크게 해먹던데 당신은 도대체 뭐하러 청와대 대변인을 하고 있는거냐. 어허 이 여편네가 큰일날 소리를 하고 있어. 그게 그런거 하라고 만든 자린줄 알어? 그럼 뭐하려고 만든 자린데? 당신 빼고 다 부동산 하나씩 끼고 있는거 알기나 해? 그렇게 투닥거리면서 아내는 문을 쾅 닫고 나가 문간방에서 잠들었을지 모른다.

어느날 아침, 벌개진 얼굴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는 김현미 장관의 뒤에서 호갱노노 앱으로 부동산 실거래가를 검색한 뒤 환하게 웃는 조국 민정수석과 장하성 정책실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깨닫는다. '저들이 왜 부동산을 잡아.. 이대로 가단 나만 바보되는거야..' 그날 그는 고교 후배를 만나 아구찜에 소주를 너댓병 시켜 잔뜩 마시고선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거나하게 취해 집에 도착한 뒤, 자신을 흘겨보는 아내를 붙잡고 그는 자신의 계획을 소상히 털어놓는다.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역시 내 남편 언젠간 그럴 줄 알았다며 다음날 학교에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정산받았다. 그 역시 다음날 청와대 관리자를 불러 관사에 비는 방이 있는지 확인한 후 가족들을 모두 이주시킨 뒤 전세금을 돌려받는다. 청와대 대변인이 가족들과 함께 경호원들이나 사는 관사에 살다니. 모양새가 좀 빠지긴 하지만 뭐 어떠냐. 금수저들 사이에서 혼자 흙수저나 물고 있다 5년 뒤에 쫒겨나는 것 보다야 낫지.

그렇게 그는 아내의 퇴직금과 전세금을 가지고 복덕방으로 향한다. 이보소. 이 동네서 가장 좋은 물건이 뭐요. 어이구. 테레비죤에서나 보던 하늘 같으신 청와대 대변인께서 왕림하셨는데 누가 그를 속일 소냐. 복덕방 주인은 벌벌 떨며 콤퓨타를 켜고 리스트를 쭉 뽑는다. 이건 얼마요? 복덕방 사장은 오른 부동산이 자기 죄라도 된 양 어쩔줄 몰라하며 대답한다. "이,이십오억입니다만." 망할. 아직도 모자른다. 이 낡은 상가가 나같이 훌륭한 언론인도 사지 못할정도로 오르다니. 이 더러운 세상. 하지만 그는 기름기 좔좔 흐르는 조 수석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x발 조 수석 딸은 이번에 의전 보냈다던데 내 자식을 가재 게 붕어로 살게 할순 없어..." 그는 얼마 전 술을 함께 마신, 은행 지점장으로 있다던 고등학교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다. 그런데 아뿔싸. 김수현 그 양반이 발표한 뭐시기 정책에 걸려 대출이 안나온댄다. 제길. 어쩐지 생긴것 부터 재수가 없더니만. 그의 침묵에서 무엇인가를 읽었는지 그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저기.. 하지만 형님께서 힘을 좀 써주시면 제가..." 그 후배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김의겸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후배의 은행은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을 넘겨 대출을 해주고 청와대 대변인은 흑석 김의겸 선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윽고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호되게 털린 김의겸 선생은 짐짓 의연한 태도로 대중에게 감성팔이를 시도해본다. 노모를 모시려고 했다, 이건 아내가 했다. 하지만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작년까지의 그가 그랬던 것 처럼 서민들도 다 한번 씩은 복덕방에 들렀다가 한숨만 지으며 나온 적이 있지 않은가. 다만 그들에겐 들어갈 관사와 복덕방 주인을 움츠러들게 할 권세, 그리고 전화 걸 은행지점장이 없었을 뿐이지. 대중의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았고 김의겸 선생은 결국 대변인 직을 사퇴했다. 청와대도 버리고, 아내도 팔고 노모를 팔 지언정 흑석동 재개발은 못팔겠다는 그의 의지에 화답하여 올해 여름부터 부동산은 가파르게 반등했다.

최근 온갖 추문과 범죄혐의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작태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올해 초 매섭게 공격당하던 그는 아마도 기자회견 중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우 열뻗쳐서 정말, 그래 시발 나도 용되고 싶어서 재개발 샀다 왜! 근데 너네 이 중에 내가 가장 깨끗한건 아냐? 내가 김수현처럼 재건축 조합원이면서 지꺼만 피해서 부동산대책 발표하기를 했어, 김현미처럼 토지형질변경을 해서 농지에 건물을 올렸어. 어우 너네 조국은 어떤줄 알어? 재 딸 뭐하는지 봤어? 야 시발 내가 제일 깨끗해!"

무엇이 평생 무주택자로 살아온 그 쉰 다섯의 장년을 복덕방으로 밀어넣었는지 곱씹어보게 된다.




[위의 대화는 전적으로 본인의 상상력에 의존한 것으로 사실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댓글 18개:

  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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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늘 글 최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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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와 글마다 현안에 감탄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책 한 권 내시면 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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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엌.. 현안이 아니라 혜안이요.. 유식한 글에 무식한 댓글달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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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와 필력 장난아닙니다. ㅋㅋㅋ 항상 글 잘 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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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재밌게 보긴 했는데...좀 조롱이 심한 듯 하여 마음 한켠 불편하기도 합니다.
    허구일지 진실일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실체에 가까울 것 같단 생각이긴 하지만은요..
    저 또한 스토리 전개와는 상관없이 핵심 논점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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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팩트폭력이라 생각하신다면 왜 이 정도 풍자에 불편해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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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혜학과 골계미 뿜뿜하는 글이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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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흐미 이거 퍼가도되나여? 명필입니다. 출처 게시는 할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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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현대 자본주의의 이합집산이자 꽃인 blackstone (티거명:blk의) 수익률을 아득히 뛰어넘는 blackstone 김의겸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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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힘든 세상 크게 웃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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