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513조 5천억원으로 확정하여 오는 9월 3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예년보다 약 9.3% 늘어난 규모로 R&D, 에너지(환경) 그리고 SOC투자지출을 대폭 늘렸다. 나는 과거 포스팅에서 경제불황이 온다면 한국은 과거 리만사태때보다 더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링크), 만약 국회에서 이 예산이 통과된다면 그 예측은 빗나갈 것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재정정책은 어디다 쓰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많이 쓰는 지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경제침체 상황에서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은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지, 정부가 기가막힌 사업에 돈을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바보같은 사업에 돈을 퍼부어도 그 돈을 벌어들인 약싹빠른 사업가들은 현명하게 돈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케인즈경은 아예 땅을 파서 돈을 묻으라 했다.) 따라서 순수하게 경제적 측면만 본다면 정부의 재정적자 폭만 보면 되지, 구체적 예산안을 뜯어볼 필요는 없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내년도 적자재정은 GDP의 약 1.6-1.9%로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을 뛰어넘는 가장 공격적 재정지출이 될 것이다.
이 공은 마땅히 홍남기에게 돌아가야할 것 같다. 지난 국회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그는 내년도 예산안의 첫자리가 "5"가 될 것이라며 언질을 주긴 했지만, 그가 실제로 가져온 숫자는 대범하게 500조 선을 훌쩍 넘긴 513.5조였다. 나는 그를 무색무취의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홍남기를 재평가해야할 것이다. 그는 MB와 강만수 못지 않게 공격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다.
재정건정성에 집착하는 일부는 방만한 예산을 지적하며 국가부채수준을 운운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적은 세가지 이유에서 틀렸다. 첫째, 지금은 재정건전성을 논할 때가 아니다. 재정건전성은 경제가 건강할 때 관리하는 것이지 위기상황에서 따지는 것이 아니다. 올해 발표되는 모든 데이터는 단 한가지도 빠짐없이 지난 10년 이래 가장 심한 경기침체를 예고하는데 지금 부채비율을 운운하는 것은, 마치 트럭에 치여 피를 줄줄 흘리는 응급환자를 두고 혈중 콜레스트롤 수치가 높으니 살을 빼라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건 나중에 따지자. 둘째, 한국의 공공부채는 공기업의 부채를 포함하더라도 약 GDP의 70%선으로 선진국이나 OECD평균에 비하면 그닥 높지 않다. 다시말하지만 국가부채가 낮은 나라는 탄자니아나 북한, 고조선같은 나라들이 가장 낮다. 우리가 1998년에 겪었던 사태는 달러표시 부채의 상환이 문제였지 그 당시에도 정부는 원화표시 부채를 갚는 데엔 아아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셋째, 재정건전성을 대하는 대중의 기본 시각은 부채가 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큰 이견이 존재한다. 폐쇄된 시스템 아래서는 한 사람의 부채는 누군가의 자산이다. 내가 은행에서 백만원을 빌린다는 것은, 누군가 은행에 백만원을 예금했다는 것과 같다. 즉 한국의 대외부채/자산이 같다면 현재 우리가 진 빚은 지금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돈을 빌린 것이지, 우리들의 후손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에 대해서는 폴 크루그먼의 글을 추천한다.(링크) 부채는 결코 악이 아니다.
물론 좋아하기는 아직 이를 수 있다. 국회는 이 수퍼예산을 반드시 반대할 것이고, 특히나 재정건전성에 변태적으로 집착하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예산안을 축소하려고 들 것이다. 현재 여야는 세가지 이슈, 1. 조국 임명 2. 선거법 3. 내년 예산안 대립하고 있는데 청와대와 여당은 1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2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여야의 합의 테이블에서 가장 먼저 양보할 카드는 바로 3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예스맨에 불과한 줄 알았던 홍남기가 이런 공격적인 예산안을 준비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앞서 그는 차기 총리로까지 거론되는 김현미의 분양가상한제를 유예시키는 등, 경제부총리로서의 목소리를 점차 내고 있는데 부디 현 정부가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를 바란다. 애초에 우리가 청와대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은 것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바라기 때문 아니었던가.
[다만 별을 4개만 준 것은 세입계획에서 법인세의 감소를 가계에 대한 약 8.1조의 세수 증가로 채웠기 때문이다. 가장 효율적인 확장적 예산은 감세안을 동반한 공격적 적자예산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바보같은 사업에 돈을 퍼부어도 그 돈을 벌어들인 약싹빠른 사업가들은 현명하게 돈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에 극히 공감합니다.
답글삭제그나저나 세부내역을 살펴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가계 증세가 8조나 있었군요. 이 부분은 좀
실망스럽긴 하네요.
잘봤습니다
답글삭제올해도 460조라는 슈퍼 예산을 풀었으나 나오는 퍼포먼스는 디플레우려죠
510조를 푼다 한들 그 돈이 부동산에만 흘러간다면 정권이 날라가겠죠
그리고 출산율 0.6 ~ 0.7까지 내려갈거고요
과거 미국에서 말한 땅에 묻으라는 거는 미국이 그 당시 제조업 세계 1위였고 무슨 짓을 하든 대부분
미국 제품을 사게 되어있었으니 가능했던 것이고요
지금은 돈을 뿌린다 한들 국내기업들이 파이 대다수를 먹는게 아닙니다
그게 세계화니까요 케인즈 시대와의 비유는 기본 전제가 다르다고 봐야죠
하드웨어는 해외 제품을 사도 괜찮습니다 우린 중간재 위주의 국가니까요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무턱대고 뿌리는 건 이제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직접 타겟(산업)을 지정해서 지원하고 사기꾼 새끼들은 걸러내서 감방 보내고 영구축출시키고
이런식으로 가는 게 훨씬 도움됩니다 이 방식이 실리콘벨리의 성장방식이죠
기초 규제 해제 및 산업 육성을 만들어주고 그 뒤는 기업이 알아서 자생하고요
적어도 계획적으로 뿌려야죠 기업 위주로 말이죠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한국은 공무원이 가장 강한 집단이고 그에 따라 규제가 너무 많은게 현실이니까요
소비의 트렌드가 하드웨어 > 소프트웨어로 전향됬다고 보충합니다 최근 미국의 빅기업들 이름만 보셔도 알겁니다
삭제경제학 원론을 공부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삭제전세계가 유동성 함정을 논하는 시점에 경제학원론이나 보라니요 ㅠㅠ
삭제그런건 이미 본지 오래고 원론이 적용되지 않는 시기가 지금인거 아시잖아요
무한 QE로 인해서 말이죠 QE4, QE5까지 언급되고 있으니 사실상 무한 QE로 가겠죠
세계는 사실상 무한한 유동성으로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는 시점에 원론;;;
필립스 곡선이 고장났음을 파월이 직접 인정한 시점인데...
애초에 채권의 마이너스 금리가 말이 되는 현상이 아닌거 잘 아시잖아요
본원통화량 자체가 급증가 했음에도 디플레우려라는 말도 안되는 현실도 아실거고요
원론대로라면 시장이 붕괴하고 불환화폐 시스템은 끝났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지 않았죠 기존의 법칙이 서서히 망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그걸 필드에서 뛰는 선생님이 인식을 못할 리가 없다고 보는데요
뭐 어찌되었던간에 과거에도 미래에도 지금보다 화폐가 많은 시기는 없을겁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려면 중학교 물상부터 알아야 합니다. 경제학의 기초에 대해서는 저보다 훨씬 훌륭한 스승들이 많으니 그분들의 교재를 참고하세요.
삭제참고로 제가 이전 포스팅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우리가 통화량이라고 부르는 것은 m2,m3,m4등으로 본원통화는 그 중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해요. 연준이 그렇게 미친듯이 본원통화를 풀었는데도 전체 통화량의 1/5도 되지 않습니다.
뉴턴의 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서 양자역학에 손을 대는 것은 사이비철학관으로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왜 세계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장기금리가 마이너스에 진입했는지는 별도로 포스팅을 작성할게요.
그때까지 경제학 원론을 공부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주인장님. 글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혹시 상기 댓글 관련해서 별도로 포스팅 작성한다고 하신게 블로그에 올라와있나요?ㅎ 찾고있는데 잘 안보여서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감사합니다.
삭제아니요 아직 못했습니다.. ㅠㅠ 일단 저는 정부재정준칙, 그리고 선진국의 평균연령 증가가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여러 주장이 많아 정리하는게 너무 방대한 일이네요.
삭제댓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ㅎㅎ. 항상 힘내시고 행복하세요!! 글도 가끔 써주신다면 금상첨화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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