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7.

한국 경제 네 가지 예측

대학때 은사님께서 돈 받는 일이 아니라면 사석에서 절대 공짜로 예측 따위는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야 뭐 말 안듣기로 소문난 제자니 그냥 하겠다. 그리고 아래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전망일 뿐이다.

1. 불황이 온다면 한국은 2008/09년보다 더욱 심하게 타격을 받을다.
2. 불황이 오든 오지 않든 한국의 지니계수는 역대 최대로, 또 최대 속도로 벌어질 것이다
3. 환율은 연말 전 1200원 중반을 찍을 것이다.
4. 다음 경제부총리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될 것이다.


1. 경제가 침체에 들어가면 정부는 두 가지 수단을 써서 대응한다. 하나는 통화정책, 또 하나는 재정정책. 통화정책은 쉽게 말해 다같이 대출을 회수해서 시중에서 돈이 귀해질 때 중앙은행이 나서서 돈을 풀어줘 유동성을 확보해주는 정책이다. (이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Ray Dalio의 동영상 강의를 추천한다. 링크) 재정정책은 다같이 지출과 투자를 줄여서 경제가 침체될 때 정부가 돈을 대신 써줘서 수요를 늘리고 대신 경제가 활황일 때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과거의 GDP를 보면 프랑스나 영국같은 선진국들도 한 해는 +15%성장했다 다음 해에는 -9% 감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하지만 현대 경제학은 앞서 언급한 두 정책수단을 통해 경제가 과냉, 혹은 과열로 흐르지 않도록 조절해준다. 그 결과 이제 규모가 있고 어느정도 경제가 성숙한 국가의 성장률이 5%이상 스윙하는 일은 드물다.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은 이 두 수단을 모두 쓰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먼저 통화정책을 보면, 앞서 여러번 지적했듯이(링크) 우리나라는 통화정책을 제대로 쓰는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행의 금리결정은 항상 후행적이고 늘 너무 늦게 올리고 너무 늦게 내린다. 게다가 현 청와대가 각종 경제 현안에 입김을 미치는 정도가 그 어느때 보다도 강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갑자기 한국은행이 적극적으로 통화정책을 펼칠 가능성은 더 낮다. 따라서 금융위기가 오더라도 한국은행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체면치례로 뒤는게 연준이나 타 중앙은행을 후행적으로 쫒아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는 그나마 괜찮다. 옛날에도 그랬으니까. 진짜 문제는 재정정책에 있다. 만약 경기가 극도로 나빠진다면 빠르고 강력한 재정정책이 중요하다. 2008년에 우리가 침체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던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재정정책이 있었다.(내가 4대강을 재평가하는 날이 올 줄이야..) 당시 아시아 국가 중 GDP대비 재정지출 비율을 보면 단연코 한국이 가장 컸다. 이명박 정부에게는 IMF 시절 경제정책 수립에 참여했던 강만수 부총리가 있었고 국회를 장악한 여당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청와대는 이 둘이 모두 없다. 홍남기 부총리는 예산처 출신으로 재정집행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데다 청와대 내에서 발언권도 세지 않다. 보통 청와대 내에서 경제정책과 아젠다를 담당하는 것은 정책실장인데 현재 정책실장은 부동산 폭등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는 김수현 실장이다.(전공: 도시공학) 그러니 경제위기 상황이 와도 재정정책을 드라이브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갑자기 홍남기 부총리가 영웅처럼 나서거나 운좋게 청와대 내의 숨겨진 제갈공명같은 인재가 재정정책을 설계해 들고 나오더라도 그 전망은 암울하다. 어디까지나 내 사견이지만, 재정정책은 어디다 쓰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많이 쓰는 지가 중요하다. 정부가 돈을 바보같이 쓰더라도 그 돈을 번 사람들은 최대한 현명하게 쓰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재정승수는 여전히 어느정도 유지될 것이다. 케인즈는 아예 땅을 파서 돈을 묻어도 된다고 했는데 뭐 반도국가에서 세로로 운하를 파는 것 쯤이야 양반이지. 하지만 그러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국회는 그 어느때보다도 분열되어 있고 자한당 의원들은 균형재정에 집착하고 있어 문재인의 추경에 동의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당장 GDP의 0.3%정도밖에 되지 않는 미세먼지 추경도 몇달째 국회에서 표류중이지 않은가. 정부지출이 경제를 떠받친 2009-10년 재정적자가 GDP의 거의 4-5%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재정정책이 적절하게 시행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뿐만 아니라 과거 금융위기 시절에는 중국의 성장률이 유지되면서 한국도 덩달아 선방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현재 만약 리세션이 온다고 한다면 그 진원지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2009년의 순풍이 이제는 악풍이 되었다. 배는 더 망가지고 선장과 선원은 더 무능한데. 그럼 같은 폭풍이 닥친다고 해도 피해는 훨씬 크겠지.


2. 불황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현재의 소득주도정책은 부자의 소득을 폭증시키고 빈자의 소득을 0으로 만들고 있다. 이를 해결할 적절한 정책은 대대적 감세를 시행해서 자본투자가 이뤄지도록 만들고 최저임금을 크게 깎아 가난한 사람들이 근로소득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당신은 이 둘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특히 현 정부 아래서. 문재인 정부는 계속해서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다. 난 올해 7월에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8%를 상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박근혜-이명박정부 시절 상승률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럼 빈민층을 넘어 이제 중위권 노동자들 중 일부가 실직하거나 구직을 못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소득은 0이 될 것이다. 정부는 미봉책으로 그들에게 실업급여와 복지혜택을 제공하겠지만 기존 소득에 비하면 이는 턱없이 작은 금액이다. 그리고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올릴 것이다. 그럼 부자들은 자본을 국내가 아닌 해외로 돌릴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해외에 발을 걸칠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은 더욱 가난해지고 그럴 방안이 있는 자본은 더욱 부유해질 것이다, 아 물론 저소득층에 비해서.

결국 최저임금이 빈부격차를 벌리는 정책의 핵심 중 하나인데(나머지 하나는 필수재인 부동산을 폭등시키는 정책) 명목상승률을 깎을 수 없으니 인플레이션을 높여 실질 상승률을 낮추는 방법 외에는 답이 없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오면 빈부격차는 더 벌어진다. 게다가 당장 다음 정권이 맞는 정책을 시행해서 고용이 다시 늘어난다고 해도, 현재 장기실업에 빠진 사람들에 앞서 갓 졸업한 대졸자들이나 단기실업자들이 먼저 직업을 고용할 것이다. 2016년에는 92년생 김지영은 25살의 실직자였지만 2021년이 되면 지영씨는 30살의 실업자가 된다. 그리고 기업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늘 30살의 실업자보다 그 해의 25세 실업자를 선호한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 없듯 92년생 김지영의 실직한 삶도 되돌릴 수 없다. 앞으로 몇년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부의 사다리에서 미끄러지지 마라. 두번 다시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3. 지난 5년간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설 때의 환경을 보면 주로 외국인들의 국내자산 매도 물량이 수급을 끌어올렸던 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외국인이 채권과 주식 모두를 순매수했는데도 불구하고 원화는 약 5.5% 폭락했다. 모든 EM국가들 중 원화보다 더 폭락한 나라는 몇년 전 쿠데타가 일어났던 터키와 국가부도의 단골멤버인 아르헨티나 밖에 없다. 즉 과거와는 원화 약세의 요인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것이 내국인들의 해외자산 수요라고 생각한다. 외국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통화가 5%정도 약해지면(그것도 태국 바트같은 통화는 4% 강해질 동안)  원화자산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해 매도세가 약해지거나 매수로 돌아서는데, 환변동에 덜 민감한 국내 투자자은 애초에 해외자산을 확보하는게 목적이라 환율이 올라가면 더욱 빠르게 쫒아가서 산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수출기업에도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수출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할 때엔 원화가 필요하니 갑작스럽게 환율이 반등하면 열심히 달러를 팔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투자가 해외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달러를 팔 압력이 덜하다. 올해 환율이 1200을 돌파하고 나면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4. 다음 경제부총리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있고 청와대는 국회에서 개헌 통과선을 확보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기 때문에 연말로 갈 수록 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수장에 코드보다 능력을 갖춘 사람을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 최종구 위원장은 기획재정부의 국제금융국과 경제정책국을 거쳐 현 정부 인사중 그 누구보다도 경제부총리 자리에 맞는 적임자이며 정무적 감각도 갖춘 사람이다. 게다가 최근 그는 금융위원장의 직무를 넘어서는 사안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타다 이재웅 대표에게 "무례하고 이기적"이라고 지적했으며 얼마 전에는 각 은행들이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평가하겠다고 발언했다. 이 둘은 모두 금융위원회의 소관이나 책임을 벗어나는 분야인데, 오랫동안 공무원 생활을 해온 그가 타 부서의 영역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엔 복안이 있으니 그러는 것 아닐까. 특히 환율과 경상수지 흑자폭 축소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하면 국제금융국에 오래 몸담은 그에게 힘이 실릴 가능성이 더 크다.

댓글 4개:

  1. 4번 빼곤 다 맞는 내용이네요..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상황을 잘 아니 런하신거 같구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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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실 벌써 두개나 틀렸죠.. 최종구는 경제부총리로 지명되지 않았고 최저임금 상승률은 대폭 낮아졌습니다.

    역시 대학때 은사님 말 들을 걸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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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핏형이 그랬죠. 경제 예측 점수가 50점만 넘어도 억만장자된다고.ㅎ 그럼에도 예측이라는것이 의미있는건 결과를 추론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사심없이 공유해주시기에 저에게는 HHMM님의 글을 읽는 시간이 참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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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코로나가 발발한 지금 봐도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예측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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