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6.

누구를 위해 연금은 매수를 누르나

와. 도대체 한국 증시가 세계 증시를 앞서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가. 그저 조용히 이 랠리를 즐기고 싶다만 뭔가 석연찮은 것이 있다. 주식을 병들게 한 것이 정치였는데, 주가와는 달리 정치는 점점 악화되니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배경에는 국민연금이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23영업일동안 매일 주식을 사들였고, 그 금액은 이달 들어서만도 벌써 2.5조가 넘어갔다. 역대 30일간 사들인 금액으로 보면 역대 최대치를 찍었으니 국민연금의 이런 매수행테는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하지만 과연 누구를 위해 연금은 매수를 누르는 것일까.

모든 금융사들은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인다. 고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득을 우선하는 행위는 그 경중에 상관없이 심각한 처벌을 받는다. 최근 여의도에서 몇몇 직원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선행매매를 했다는 루머가 돌았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그들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두번 다시 금융시장에서 잡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짓을 아무리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펀드매니저들이 있다. 바로 국민연금. 코스피의 밸류에이션은 지난 몇년 중 가장 높은 수준에 머물러있는데 올해 국내주식비중을 줄인다던 국민연금은 갑자기, 난데없이, 뜬금없이 폭풍같은 매수주문을 내며 시장의 팔자 호가를 뜯었다. 그 배경에 대해 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의 부진으로 목표한 비중을 맞추기 위해 주식을 더 사야 했다"고 답하지만, 매매 행태와 종목을 보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긴 대단히 어렵다. 그들이 그런 비정상적 매매에 나선 것은 최근 부진한 정권의 지지율이나 일본을 상대로 펼치는 자존심대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입자의 이익보다 다른 정치적 목적을 우선하는 것을 수도 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 당장 현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의 이력부터 보면 금융쪽에서 일한 경력이 단 한줄도 없다. 심지어 비슷한, 덧셈뺄셈이라도 해 본 경력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 그는 평생 계산기 한번 두드려 본 적 없고 회계장부의 각 항목이 뭔지도 모를 것이다. 억지로 국민연금의 연관고리를 찾으라면 그가 국민연금 본부가 이전한 전주시 덕진구 출신의 국회의원이라는 점, 그것 단 하나 뿐이다. 국민연금은 세계 4-5위 수준의 대형 기금으로 운용자산이 600조가 넘는데, 보통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탑 펀드매니저들은 아무리 적어도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같은 대도시의 삶을 누린다.  하지만 그들과 경쟁하는 국민연금은 인구가 꼴랑 65만 명 밖에 안되는 전주시에, 그것도 도심에서 20분 넘게 떨어져 있는 외곽 깡촌에 쳐박혀있다.

그렇다고 돈은 잘 주나. 그럴리가 있나. 이 펴엉등한 나라에서. 장담컨대 아마 그들이 경쟁하는 헷지펀드에서 일하는 비서의 연봉이 더 높을 것이다. 돈도 안주는데다 깡촌에 쳐박혀있는데 우수인력이 거기에서 일하고 싶을 리가 없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를 전주로 이전하자 막대한 수의 운용역이 우르르 빠져나가 인력충원에 크게 애를 먹지 않았나. 심지어 전주가 고향인 사람도 전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데 누가 거기로 따라가나. 남은 사람들과 새로 충원한 사람들은 대부분 여의도나 광화문으로 이직하는데 실패하고 업계에서 헷지펀드 비서만큼의 연봉도 못 받는 사람이다. 당신의 연금은, 그리고 노후는 이런 사람들의 손에 운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국민연금을 전주로, 그것도 자신의 지역구로 이전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국민의 노후를 망가뜨린 보상으로 김성주는 세계 4대 연금의 이사장 자리를 맡았다. 축하한다. 당신의 미래는 그의 손에 달렸다.

이런 펀드의 실적이 좋을리 없다. 국민연금은 먼 미래에 돌려주겠다며 국민에게서 600조의 돈을 걷어간 뒤 계산해보니 나중에 못 돌려주겠다며 돈을 더 내놓으라고 겁박하는데, 이를 보면 사회면에서 숱하게 읽은 연인에게 사기당한 사례가 떠오른다. 처음엔 더 큰돈으로 돌려주겠다며 한푼 두푼 삥땅치다 점점 큰 금액을 뜯어가는 그런 비극적인 결말의 이야기들. 상식적으로 연금이 노후를 보장해주지 못하면 없애버려야지 왜 돈을 더 붓나.

며칠 전 검찰은 삼성 이재용의 경영승계를 도와준 혐의로 국민연금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연금이 가입자의 이익 외에 다른 목적을 가진 것은 명명백백히 처벌받아야 할 사안이다. 그리고 폭락하는 지지율 대신 주가를 올리는 짓이나 국회에 의석 수 한두 개 늘리겠다고 가입자들의 미래를 망치는 짓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아니, 재벌의 경영승계는 수십 년에 한번 일어나는 일이지만 국민연금을 망치는 짓은 매시매분매초 벌어지는 비극이다. 어제부터 국민연금의 매수세가 멈췄는데 아니나다를까 한국 주식은 여지없이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빈자리는 우리 가여운 개미들이 메우고 있다.

정치논리로 국민들의 노후를 망치는 악당들이 있을 곳은 전망 좋은 사무실이 아니라 깜방이다.

당장 가라.




댓글 3개:

  1. 현 정권의 역사적 평가가 어떨지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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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건 정말로 제대로 된 상승이 아니라고 강하게 생각하고있었는데 역시나가 역시나입니다. 웃기게도 가장 큰 피해자들은 현 정권의 가장 큰 지지자들 세대 위주일텐데 평소 논란만드는 위력에 비해서 아무말도 없는 것을 보면 스스로 능력이 없어 도태되는 모습을 큰 스케일로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아 근데 왜 그걸 남까지 끌고 죽으려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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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번 정부의 인사는 다른 의미에서 아주 대단한 것 같습니다. 국민연금 운용책들이 더이상 금융투자나 외국인 공매도세력이 던지는 물량 방어하는 호구 수준에서 머물러선 안되는데, 또 국민연금 빼고는 막아주는 곳도 없으니...여러모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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