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1.

촛불 그리고 언더독.


어제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거기엔 나이 그윽한 어르신들보다 앳된 학생들이 많았고 팜플렛과 촛불을 나눠주던 운영진 모두 내 조카보다도 어린 청년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입학부터 졸업까지 매 학년의 가을은, 그것도 저렇게 청명한 날씨의 가을 밤은 내게 몇 없던 소중한 날이었는데 저 젊은이들은 그 소중한 하루를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데 쓰기로 한 것이다. 처음으로 사랑을 속닥거릴 시간에, 혹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번화가를 거니는 대신 아크로폴리스에 나오기를 택한 저들의 하루는 나같은 아즈씨나 할배의 고루한 하루와 결코 같지 않다.

폭력으로 점철된 학창 시절을 겪은 나는, 그리고 나의 선배 세대는 불평등에 익숙하다. 선생은 기분이 나쁘다고 패고, 선배는 담배를 내놓으라며 패던, 뭐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우리는 권위에 굴복하는데에 익숙하다. 그러니 민정수석이면, 또는 여당 핵심인사면 어느정도 불법을 저질러도 뭐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던 것이 우리세대의 노예같은 도덕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그런 불평등을 거부하며 자란 세대고, 또 그런 구시대를 끝내겠다고 약속한 것은 바로 조국을 포함한 운동권 세대들이다. 그리고 그 운동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이 청년들은 배웠던대로 곧바로 일어섰다. 마치 1987년의 그들과도 같이.

잡과 집을 빼앗긴 세대는 이제 젊음마저 빼앗겼다. 배나오고 다 늙어서 이제 전립선에 문제가 생겨 팔팔정이나 찾아 헤메는 486들은 아직도 지들이 젊은줄 알고 20대들이 못배워먹어서 우경화되었다며 무시한다. 하지만 젊음은 그대들의 사유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정의 역시 그대들의 전유물이 될수 없다. 조국이고 우병우고 문재인이고 박근혜고 간에, 불법을 저지르면 빵에 가고 비도덕적인 짓을 하면 욕을 처먹는 것이 상식이고 정의다. 그게 당신들이 주장한 바 아니었나.

나는 금수저로 곱게 자랐지만, 우리 아버지는 시골 깡촌에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달걀을 먹어 보는게 꿈 이었던 소년이었다. 어린시절 우리 집에서 일하던 파출부 아주머니는 한글은 물론이고 숫자도 못 읽어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전화번호 좀 눌러달라고 부탁하던 분이셨지만 그녀의 아들은 명문대 공과대학을 졸업해서 오늘 날에도 유명한 대기업에 재직중이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회사에 와서 아들뻘 되는 이들의 커피잔을 닦고 화장실의 휴지를 치우시지만 그녀의 아들은 외국계 회사의 임원으로 해외지사를 오가고 있다. 내 대학 동기 중 하나는 21세기에도 가끔 전기가 끊기는 오지에서 독학으로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한, 이번달 학비를 내기위해 아버지가 농기계를 팔아야하는 흙수저였지만 그는 의대로 편입했으니, 아마 지금쯤 의사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언더독들에게 열광한다. 조국의 자식이 당연히 조민이 되는 그런 세상은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아니다.

 
광장에 앉아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저 아이들이 맞이할 내일은 그런 언더독들의 세상이기를 바란다. 내가, 그리고 저들이 믿는 진정한 평등한 세상은 오늘 같이 시원한 가을날 밤, 장관의 아들과 파출부의 아들이 서울대의 강의실에 나란히 앉아 '야 우리 중간고사 끝나면 같이 미팅나가지 않을래'라며 키득키득 웃는 그런 날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댓글 2개:

  1. 선생님 마틴루터킹 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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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선배님도 오셨다니ㄷㄷ 영접 못한 게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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